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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민병호 기자

'야신'이 돌아왔다

'야신'이 돌아왔다
입력 2014-11-10 08:48 | 수정 2014-11-1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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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번의 해고, 그러나 13번째 기회로 돌아온 야신 김성근.

    만년 꼴찌팀 한화의 팬들은 동영상을 만들고 청원 운동까지 하며 김성근을 원했습니다.

    올해 일흔 둘의 노감독은 결국 한화의 사령탑이 되었습니다.

    불같은 승부욕,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고집. 소위 비주류로 시작해 ‘힘들고 어려울때면 찾는 감독’이 되기까지, 그에게 ‘야구’란 무엇이고 ‘프로’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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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선 올해 프로야구 챔피언을 가리기 위한 한국시리즈가 한창이지만

    바다 건너 이 곳 오키나와에서는 지난 5년간 4번이나 최하위에 머물렀던 한화의 내년 준비가 벌써부터 시작됐습니다.

    만년 꼴찌팀 한화에 과연 변화의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지 야구의 신이라 불리는 신임 김성근 감독에게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한화 선수들의 하루는 단순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오로지 훈련입니다.

    이른바 김성근식 지옥훈련.

    유니폼은 금세 더러워지고 숨은 턱밑까지 차 오릅니다

    표정도 자연스레 일그러집니다.

    시즌 직후에 갖는 마무리캠프는 대개 훈련 강도가 높지 않고 주전급들은 참여하지 않는 게 관례였지만 올해는 한 명의 예외없이 모두 모였습니다.

    무한 경쟁.

    김성근 감독이 오면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 김성근 ▶
    "리더라고 하면 조직이 원하는 결과를 내야돼 되요. 그게 제일 간단해요.옆에서 뭐라고 해도 나는 그렇게 개의치 않아요. 그렇다고 기분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에 흔들리고 있으면 갈 길도 못가요."

    프로 10년차 베테랑 정근우 선수.

    김성근 감독이 한화로 온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때 느낌은 어땠을까.

    ◀ 정근우 ▶
    "일단 첫번째로 '아 죽었다'..."

    훈련 강도는 상상 그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 정근우 ▶
    “(옷도 안 벗고 그대로 잤다가 아침에 나오는 적도 있다면서요?) 네, 저 그런 적도 있어요. 씻을 힘이 없어서 아 진짜 힘들어가지고 그랬던 적도 있어요. (그냥 그대로 자고?) 그냥 자려고 잔 게 아니라 잠깐 누워있어야지 했는데 그게 아침이 되버린거죠."

    지도 방식도 다른 감독들과는 좀 다릅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훈련 내내 한번도 앉아 쉬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포수 송구부터.. 주루 플레이에다가... 타격이나 투구 자세까지.

    일일이 지도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프로 선수인지, 아마추어 선수인지 선수들 스스로도 헷갈릴 정도.

    하려던 게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훈련이 끝나는 법은 없습니다.

    해가 져도 훈련은 멈추지 않습니다.

    바닷가 숙소 앞에 만들어 놓은 그물 망에서 특별 타격 연습이 이어집니다.

    불평이 나올 법도 하지만 선수들은 오히려 담담합니다.

    ◀ 김태균 ▶
    "몸이 힘들어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저희 팀도 우승을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있다면..정신적으로는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김성근 감독이 한화 사령탑에 선임되기 전날.

    어떤 팬은 한화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쳤고

    다른 팬들은 SNS를 통해 김 감독 영입을 호소했습니다.

    왜 그가 필요했을까.

    정성이 통했는지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구단은 다음날 김성근 감독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김성근 ▶
    "마음속에서부터 다시 식었던 열정이 솟아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개개인한테 매달리고 그런 야구는 안 할 거예요.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오고 안 따라오면 제가 같이 하지도 않을 거예요."

    지난 수요일.

    2군에서 쓸만한 선수들을 찾기위해 잠깐 귀국한 김성근 감독을 2580이 만났습니다.

    뼈있는 농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한 김 감독.

    ◀ 김성근 ▶
    "제일 놀란 것은 살찐 아이들이 많네요. 제가 프로야구 감독하면서 제일 무게감 있는 팀 같아요. 100킬로 넘는 아이들이 14명.15명 이더라고..이것을 어떻게 빼느냐."

    3년 만의 프로팀 귀환.

    김성근의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 김성근 ▶
    "제일 중요한 것은 1%의 가능성이라고 하는 것. 이 것을 쫓아다녀야 되지 않나 싶어요. 선수 스스로가 이것은 딱 볼때 안돼. 안 되더라도 끝끝내 따라붙어서 어떻게 만들어가나..이 집요함이 제일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재일교포 출신으로, 또 프로 선수 경력도 없는 김성근 감독에게 한국에서의 야구 인생은 역경 그 자체였습니다.

    지난 84년 OB를 시작으로 지금 한화까지 감독을 맡은 프로 팀만 무려 7개.

    고강도 훈련으로 만년 하위팀들을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고

    SK 시절엔 3번이나 정상에 오르기도 했지만 매번 돌아온 결과는 해고였습니다.

    불같은 승부욕,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성격 탓에 지도자 생활 45년동안 해고통보만 무려 12차례.

    하지만 김감독은 12번 쫓겨났다는 사실보다 그래도 계속해서 자신을 찾는 곳이 있었다는게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스스로의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는 겁니다.

    ◀ 김성근 ▶
    "제일 중요했던 것은 간단해요. 돈하고 자기 자리에 매달리지 말라고. 그러면 사람이 사명감이 없어져요. 그렇죠?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일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지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운동 선수에 대한 고정관념도 깨고 싶었습니다.

    ◀ 김성근 ▶
    "내가 1959년에 대한민국 처음에 왔을때 운동선수들은 공부도 안한다 깡패다 아주 무식한 이런 게 있더라고요. 이 것을 언젠가는 내가 뒤집을 수는 없을까 싶었어요. 사회 의식 자체를..."

    그래서 바쁜 일정도 마다않고 한달에 열번 넘게 강연을 다녔고 매년 한권 이상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훈련 스케쥴에도 선수들과의 대화 시간이 빠지지 않습니다.

    최근 롯데를 비롯해 내부 소통 문제로 곤욕을 치른 구단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김성근 리더십은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 허구연 ▶
    "저도 야구 생활을 오래 했지만 연습만 시키는 감독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다 싫어해요. 그런데 왜 제자들이 그 팀 소속원들이 불평을 그렇게 안 하느냐. 저는 그 속에는 엄청난 연습을 시키면서도 끌고 가면서도 흔히 말하는 소통이 되는 감독이라고 봐요. 그게 없었으면 벌써 엉망진창이 되었을 거예요."

    한화의 2군 유격수 박한결.

    김성근 감독이 뒤에서 지켜보기 시작하자 20살 유망주 얼굴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감독의 주문.

    결국 볼을 1000개쯤 때려낸 후에야 개인 지도는 끝이 났습니다.

    ◀ 박한결 ▶
    "일단은 뭐 저를 좋게 봐주신 거니까 그건 좋은데 말로만 들어봤는데 진짜 해보니까 진짜, 진짜 죽을 맛이었습니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 박한결 ▶
    “(굳은 살이 (운동을) 하는 데도 계속 이렇게 되는거예요?) 방금 까진 거고요. 원래는 이 정도까지 된 적은 없었어요. 김성근 감독님 오시고 스케쥴이 이렇게 바뀌고 이 정도까지 된 겁니다"

    박한결 선수는 이날 김성근 감독에게 가능성을 인정받고 오키나와 1군 캠프에 추가 합류하게 됐습니다.

    ◀ 허구연 ▶
    "솔직히 현장에서도 무슨 저런 야구를 저렇게 연습을 해서 애들을 망가뜨리고 부상당하게 한다든지 이런 비판적인 그런 시각도 분명히 있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나 젊은 후배들이 보고 느껴야 될 것은 뭐냐. 과연 그만한 열정을 가지고 치열하게 자기가 경쟁을 하고 투쟁을 하느냐..."

    이번이 자신의 지도자 생활에서 마지막 도전이 될 거라고 선언한 김성근 감독.

    그 가운데는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중장년층에게 희망이 되고픈 욕심도 있습니다.

    ◀ 김성근 ▶
    "우리 세대랄까 우리 시대의 흐름이라고 하면 한 50대 되면 소외당하쟎아요. 나는 새로운 것도 좋지만 헌 것의 더 좋은 점이 있다면 세상 사람이 버리면 안된다고 봐요. 프레시한 옷 입고 또 교훈도 필요하고..이게 맞춰져야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모두가 김성근식 야구를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팬들의 축제이기도 한 한국시리즈에서 판정에 항의해 선수단을 철수시키거나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투수를 바꾸고, 도루를 지시해 상대를 자극하는 등

    규칙에 어긋나지는 않지만 간혹 승부욕이 지나쳐 보이는 모습때문입니다.

    ◀ 허구연 ▶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좀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현장도 많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래요. 그럼 이겨라 다른 거 없어요 이겨라. 그런 야구해서는 우승 못 합니다. 보여줘야 될 거 아니냐."

    세간의 이런 시선에 대해 정작 본인은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듯 했습니다.

    ◀ 김성근 ▶
    "이기기 위해서는 주위 사람 세상 사람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 목적은 달성해요. 그게 집요하게 따라붙으니까 세상 사람들 볼때 뭐 승부지상주의다, 야구가 지저분하다 더럽다..나는 그런거 아니라고 봐요"

    김성근 감독은 한화에 오기전 고양원더스라는 독립야구단을 이끌었습니다.

    모두가 안된다고 버렸던 선수들이 모인 곳.

    김 감독은 지옥훈련을 통해 무려 27명을 다시 프로로 올려보냈습니다.

    ◀ 송주호 ▶
    "야구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타협하지 말고 일단은 죽기살기로 하다보면 언젠가는 높은 위치에 올라갈 수 있다. 이런 말씀 많이 해주셨고요."

    누군가는 일흔 두살의 노 감독을 야구밖에 모르고 타협도 모르는 고집불통 영감님 정도로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어렵고 힘들때마다 김 감독을 찾고 믿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가 말하는 '리더'란 이런 것.

    ◀ 김성근 ▶
    "감독생활하면서 힘들다고 느껴본 적은 없어요. 왜냐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힘이 들때 필요한 게 리더지. 그렇죠? 이것을 힘들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리더 위치에 설 자격이 없죠."

    대부분이 포기할 나이인 65살에야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집념의 승부사.

    그에게 승부는 이겨야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매 순간이 마지막입니다.

    ◀ 김성근 ▶
    "언제든지 '순간'이라고 하면 마지막 아니에요? 그 의식을 가지고 덤벼들어야지 다음이라고 하는 의식 속에는 마지막이 아니니까..그러니까 순간에 모든 것을 펼치려면 마지막이라는 의식이..."

    돈을 받아서 프로가 아니라 프로라서 돈을 받는다는 단순한 원칙.

    12번 해고됐지만 13번째 기회가 온다는 집념.

    돌아온 야신 김성근 감독이 만년 꼴찌팀 한화와 만들어갈 드라마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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