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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장인수 기자

"와서 무릎 꿇으세요" 교복 대리점에 무슨 일이…

"와서 무릎 꿇으세요" 교복 대리점에 무슨 일이…
입력 2014-12-29 08:53 | 수정 2014-12-2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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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복업계의 1인자 엘리트 교복의 대리점 29곳이 작년 한 해 동안 줄줄이 계약 해지를 당했습니다.

    대리점주들은 본사의 부당한 횡포, 이른바 ‘갑질’ 때문이라는데..

    불량 교복을 공급하고도 반품을 받아주지 않아 창고엔 10억 어치가 넘는 교복이 쌓여있고, 본사에 밉보이면 그마저 물건 공급도 제때 받지 못했다는 대리점주들.

    결국 이들은 계약을 해지당한 뒤 자신들끼리 따로 교복업체를 차렸는데 예기치 못했던 반전이 생겼습니다.

    교복업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지난 24일 예비소집일이었던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앞.

    예비신입생들이 학교를 찾았습니다.

    교복 업체들에겐 홍보를 위한 절호의 기회.

    ◀교복업체 아르바이트 학생▶
    "아이비클럽으로 와요" "스쿨룩스에요"

    전단지를 봤더니 겨울 교복 한 벌이 17만2천원.

    작년에는 26만원이었는데 갑자기 9만원이나 싸졌습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새 교복을 팔겠다고 나온 사람들이 학생들에게 교복을 물려 입으라고 말합니다.

    ◀교복업체 아르바이트 학생▶
    "물려입기에 체크했어요? 물려입기해요. 물려입기 했어?"

    전단지엔 물려 입기 신청 방법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비싼 가격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복.

    그런데 최근 전국적으로 교복 값이 크게 내려갔습니다.

    또 어찌된 일인지 한 벌이라도 더 팔아야할 대형 교복업체들이 예비신입생들에게 물려 입으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복 시장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경기도 구리시에서 18년째 엘리트 학생복 대리점을 해온 백창영씨는 올 여름 갑자기 본사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했습니다.

    ◀백창영/전 엘리트 대리점 사장▶
    "사실 그날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 밖에 안 나옵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지난해 엘리트 학생복 전국대리점 협의회를 만든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이들은 엘리트 학생복 본사에 여러 가지 부당행위, 이른바 '갑 질'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교육부 앞에서 집회도 열었습니다.

    ◀이은봉/전 엘리트 대리점 사장▶
    "반품을 받아달라고 저희들이 데모를 했습니다"

    본사측은 처음엔 전향적으로 대리점 사장들과 협상을 진행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뒤로는 대리점 포기 각서를 요구하며 이들을 압박했고, 결국 올해 전국 180여개 대리점 가운데 29곳과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계약해지를 당한 분당 대리점의 창고.

    교복이 잔뜩 쌓여있습니다.

    ◀진병권/전 엘리트 대리점 사장▶
    "본사에서 출고가로 따지면 10억에서 13억 가량됩니다.(13억 정도요?) 네."

    팔고 남은 교복은 물론이고, 본사가 잘못 만든 불량품까지 반품을 받지 않아 쌓인 재고라고 합니다.

    허리 치수를 조절할 수 있는 슬라이딩 조절기.

    지난해 계속 고장이 나 학생과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반품은 불가능했습니다.

    ◀전 엘리트 분당대리점 직원 ▶
    "저희는 그 전에 반품을 해가라. 바지 치마 전량이 14년도 것이 불량이 난 거에요. 100% 리콜 대상인데도 안 해주는 거죠"

    대리점이 교복을 주문하면 공장에서 만들어진 교복은 본사와 총판을 거쳐 대리점에 옵니다.

    그런데 교복이 불량품이면 대리점은 이를 창고에 쌓아두고 정상 교복을 또다시 본사에서 사와 팔아야 했다는 겁니다.

    엘리트의 2008년도 여름 교복.

    한 번 빤 옷을 새 옷과 비교하자 한눈에도 줄어든 게 확연합니다.

    ◀백창영/전 엘리트 대리점 사장▶
    "한번 빨았어. 줄었어요. 보시면 핑크색도 있죠. 옷이 물도 들고 학교에서 난리 난 거죠"

    엄연한 불량품인데도 반품은 되지 않았습니다.

    2010년도 남자 바지도 본사가 디자인을 잘못해 팔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남학생들이 호리호리해 보이는 쫄바지를 선호해 본사가 바지통을 줄였는데, 너무 줄이는 바람에 다리가 들어가지 않았던 겁니다.

    2009년에는 여학생 블라우스의 단추를 갑자기 똑딱단추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학교에선 똑딱단추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백창영/전 엘리트 대리점 사장▶
    "여학생들이 이걸 입으면 남학생들이 뒤에서 장난치면 다 벌어집니다. 이 옷 다 바꿔줬습니다. 한 학교는. 그래서 손해배상을 해 달라 했는데 아직까지도 안 해 줍니다"

    본사는 이렇게 대리점과 상의 없이 교복 디자인을 수시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선 디자인 변경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팔 수 없는 신상품들이 곧바로 재고가 됐고, 대리점 마다 이런 재고가 수억원에서 많게는 10억 원어치가 넘게 쌓여 있습니다.

    엘리트 학생복 본사를 찾아갔습니다.

    계약 해지는 대리점들이 원해서 이뤄진 거라고 합니다.

    ◀홍종선/엘리트 학생복 대표이사▶
    "우리가 해지한 게 아니고 해지당한 겁니다”
    (대리점들은 (계약 종료) 3개월 전부터 계약해지통보를 받았다고..) 절대 그런 거 없습니다"

    엘리트가 한 대리점에 보낸 계약해지통보서입니다.

    계약기간이 8월 13일인데 6월 25일에 이미 계약해지를 통보했습니다.

    대리점을 계속 하고 싶다고 내용증명까지 보냈지만 결국 계약은 해지됐습니다.

    엘리트 측은 또 본사 잘못인 경우 재고를 모두 반품처리하거나 보상해줬다고 합니다.

    ◀홍종선/엘리트 학생복 대표이사▶
    "수선해주기나 반품 받기나 감가해주거나 하여튼 대리점 특성에 맞춰서 정리를 다 해준 거죠.(재고가 남은 대리점들은 어떻게 된 거죠?) 모르죠 그건"

    입지 못하게 된 쫄바지는 대리점들이 원한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홍종선/엘리트 학생복 대표이사▶
    "어떤 대리점은 과도하게 줄여달라고 하는 대리점이 있어요. 대리점이 선택을 합니다. 바지통을. 6인치로 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6.5인치로 해달라고 하고.."

    주문을 잘못한 대리점 잘못이니까 반품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대리점주들은 펄쩍 뜁니다.

    그런 바지를 주문한 적이 없고, 더구나 대리점이 선택할 수 있는 치수는 허리와 바지 밑단뿐이라는 겁니다.

    ◀백창영/전 엘리트 대리점 사장▶
    "바지 허벅지나 종아리 이런 데는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임의대로 만들어 오는 겁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엘리트 대리점들은 지난해 전국적인 협의회를 만들었습니다.

    대전에서 대리점을 하는 김태형씨도 협의회에 참가하고 같은 지역 대리점들과 몇차례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총판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총판 직원/당시 대리점주와 통화내용▶
    "만약에 그 모이는 데서 업무적인 이야기 하면 그거 우리 쪽에 들려오면 마지막 경고인데 가만히 두지 않겠어요"

    엘리트 대리점협의회는 교육부와 교육청 앞에서 교복 출고가 인하와 본사의 재고 반품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고 김씨도 적극 참가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총판 직원/당시 대리점주와 통화내용▶
    "와서 (총판)사장님한테 당장 무릎 꿇고 빌어요. (뭐라고요?) 무릎 꿇고 빌라고요 사장님한테. 계속 나가면 가만히 안 둔 다고 했잖아요. 경고했고 마지막으로.."

    결국 김씨는 달려가서 총판사장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김태형/전 엘리트 대리점 사장▶
    "네 고개 숙이면서 무릎 꿇고 정말 빌었던 적도 있습니다"

    이 지역 총판 사장이 다른 대리점 사장에게 보낸 휴대전화 메시지 내용입니다.

    반말은 기본이고 욕설도 서슴지 않습니다.

    대리점들은 수시로 총판직원들 접대도 해야 했다고 말합니다.

    ◀정연국/전 엘리트 대리점 직원▶
    "2차로 여자 있는 술집 가고. 룸살롱에서 하룻밤에 200~300만 원씩 쓰고 그 비용이 만만치 않죠"

    ◀정연국/전 엘리트 대리점 직원▶
    "네 심지어는 어디어디로 좀 보내달라. (술값을요?) 네 그런 적도 있었죠. 보내주기도 했죠"

    어떻게 이런 횡포가 가능한 걸까?

    본사와 대리점의 계약기간은 1년.

    매년 계약을 연장하려면 대리점들은 본사에 잘 보여야 합니다.

    본사에 밉보이게 되면 여러 가지 보복을 당했다고 대리점주들은
    말합니다.

    ◀백창영/전 엘리트 대리점 사장▶
    "5년 전에도 (본사와) 크게 싸웠는데 그때도 싸울 때도 본사에서는 제 물건만 6월에 줬습니다. 하복을. 1억7천만원이나 손해를 봤습니다. 보복으로 한 달 늦게 줬습니다. 이미 학생들은 하복을 입고 다니는데.."

    ◀김대학 /전 엘리트 대리점 사장▶
    "입학식이 3월2일입니다. 그런데 3월1일 저녁에 도착한 옷이 있습니다. 퀵 기사를 30명을 동원해서 그걸 일일이 다 배달했습니다. 그런데 전화가 왔습니다. 소비자가. '야이 개**야. 단추는 달아줘야 될 거 아니야' (단추도 안 달린 옷이란 거예요?) 네"

    단체행동을 한 대리점에는 갖가지 압박도 가했습니다.

    '본사와 총판의 요구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대리점을 포기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각서를 내밀기도 했습니다.

    ◀전 엘리트 대리점 사장▶
    "대리점을 포기하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읽어보니까 좀 무서운 거예요. 이거는 조금 더 상황을 보면서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랬더니 그렇게 할 거면 지금 당장 관두라고.."

    엘리트 측은 1년 마다 계약을 새로 하는 건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임재용/엘리트 대리점 상무▶
    "1년이라는 계약기간은 저희들이 계속 해왔던 부분이고 그것 때문에 대리점이 갑자기 잘리고 이런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대리점 포기 각서에 대해서는 총판과 대리점 사이의 문제에 대해서는 본사가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임재용/엘리트 대리점 상무▶
    "(자동 갱신이면 왜 그런 걸 쓰라고 하시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총판이 원하는 부분이 있겠죠. 그게 안되면.."

    14년간 엘리트 학생복 대리점을 하다 2년 전 계약해지를 당한 정연국씨.

    엘리트 측은 미수금 7천만원을 갚으라며 담보로 잡고 있던 정씨의 아파트를
    경매로 넘겨버렸습니다.

    정씨는 아파트를 팔아 미수금 5천만원을 갚았지만 남아있던 2억 원어치의 교복 재고를 처리할 길이 없어 결국 망했습니다.

    ◀정연국/전 엘리트 대리점 사장▶
    "카드 쓰고 나중에는 사채까지 쓰게 되니까 개인 파산에 이르게 되고 집사람 이혼하고 가정 파탄나고.."

    엘리트 측은 올해 원가절감을 이유로 생산공장을 개성공단으로 대거 이전하면서 기존에 교복을 생산하던 6개 공장들과의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김길동/전 납품 업체 사장▶
    "나 하나 잘리는 건 나이도 먹었고 그만 둬도 좋다고. 이 종업원들 어디로 가냐 이거야 이 사람들 생계를, 어디 가서 먹고 사냐고"

    엘리트에서 계약이 해지된 대리점과 공장들은 '교복 조합'을 결성해 직접 교복을 팔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교복 가격에 거품이 사라졌습니다.

    겨울교복 한 벌을 기준으로 했을 때 기존 교복업체들은 지난해 공장에서 10만원 정도에 납품받은 뒤 본사와 총판을 거쳐 18만원에 대리점에 납품했고 대리점은 소비자에게 26만원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교복 조합은 공장에서 10만원에 납품받아 소비자에게 17만원 정도에 팔고 있습니다.

    싼 가격 때문에 올해 국공립학교에서 처음 실시한 학교 주관 구매 입찰도
    대거 따냈습니다.

    ◀이은봉/전 엘리트 대리점 사장▶
    "싸질 수 있는 이유가 본사 마진, 총판 마진 뺐으니까 그렇겠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기존의 대형 교복 업체들.

    엘리트 교복 역시 자신들이 계약을 해지한 대리점주가 차린 교복 조합의 매장 바로 옆에 또다른 대리점을 차렸고,

    작년엔 26만원이었던 교복 가격은 옆 매장에 맞춰 17만원 선으로 내렸습니다.

    하지만 국공립 학교가 대부분 입찰로 교복업체를 결정했기 때문에 교복을 살 학생이 없는 상황입니다.

    기존 업체들은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입찰받은 교복 대신 물려입기를 하겠다고 신청하고 자기들 대리점에 와서 교복을 사라고 편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앞서 본 교복업체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교복전단지를 나눠주면서 물려입기를 신청하라고 안내한 건 이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교복 단가가 크게 내려가 업계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학교 입찰 제도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임재용/엘리트 대리점 상무▶
    "특히 우리 봉제공장 가보셔서 알겠지만 40대 이상 노인들입니다. 여기 그만두면 뭘 새로 할 겁니까? 공장 사장도 마찬가지고.. 우리 대리점도 굉장히 영세합니다"

    하지만 실제 중소업체들은 정부 정책을 적극 환영하고 있습니다.

    ◀김동석/한국학생복사업자협의회 회장▶
    "교복 값을 잡으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 없다는 거죠. 입찰해서 한 사람이 하게끔 하면 자연적으로 해결 돼, 모든 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른바 갑의 횡포를 규탄하는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지만 바뀐 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교복의 사례에서 보듯 갑의 횡포를 걷어냈더니 을인 대리점과 납품공장은 물론이고 소비자까지 모두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김길동/전 납품 업체▶
    "우리는 가격을 낮춰서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고 공장들은 유지될 수 있는 수준의 공임을 받으면 또 공장이 유지되는 거고 서로 행복해야지 이게 경제민주화 아냐"

    갑과 을이 서로 적이 아니라 결국은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파트너라는 생각을 공유하는 것,

    이것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출발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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