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이호찬 기자
이호찬 기자
똑같은 붕어빵 기사들, 누가·왜 자꾸?…기자들 만나보니
똑같은 붕어빵 기사들, 누가·왜 자꾸?…기자들 만나보니
입력
2015-03-09 09:13
|
수정 2015-03-0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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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만 열면 실시간 핫이슈가 줄줄이 뜨는 세상.
언론사 이름은 달라도제목을 클릭해보면 기사 내용은 붕어빵처럼 똑같습니다.
사실 확인도 안되고 기자 이름도 없는 이른바 '어뷰징'기사들.
누가, 왜, 이런 낚시 기사들을 올리는걸까요?
클릭수를 올리기 위해 더 빨리, 더 뻔뻔하게 베껴야하는 어뷰징기사의 비밀과 마주해봅니다.
============================================================
지난달 26일 오전.
배우 이병헌, 이민정 씨 부부가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인천공항 입국장으로 나왔습니다.
이병헌 씨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 이병헌▶
좀 더 일찍 여러분들께 사과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취재진 앞에 모습을 보인 건 불과 3분.
하지만, 이날 하루 이병헌 씨와 관련된 기사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1,800건 넘게 쏟아졌습니다.
연예 매체 뿐 아니라 유력 일간지와 경제지들도 회사당 6,70건의 관련 기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병헌 씨의 발언 하나 하나를 쪼개 제목을 바꿔 달았고, 내용은 그대로, 심지어 오타까지 그대로 전송됐습니다.
3분간 비친 이들 부부의 표정, 차림새로 수십가지 제목이 만들어졌습니다.
충격, 눈길, 세상에, 헉..과 같은 단어가 제목에 따라붙었고, 하필이면 왜 간통죄 위헌 판결 당일 귀국했냐는 다소 황당한 제목도 있었습니다.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기사도 아니었습니다.
시간마다 새로운 내용이 알려지는 속보성 기사도 아니었습니다.
같은 내용의 기사를 언론사들은 왜 인터넷에 하루종일 쏟아냈을까요?
오로지 기사 조회수만을 올리기 위한 언론사들의 치열한 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가수 박상민 씨는 지난해 11월, 욕설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박 씨가 격투기 관람 도중 낭심을 맞고 쓰러진 선수에게 욕설을 했다는 기사들 때문이었습니다.
◀박상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 1등을 했다는 거예요. '어, 뭐 때문에 그렇지?' 보니까 제가 심한 욕을 했다는 거예요.
누군가 올린 인터넷 게시판 글을 한 언론이 그대로 기사화하자 다른 언론사들도 앞다퉈 이를 보도한 겁니다.
◀박상민▶
((박상민 씨나 회사측에) 확인하는 기자들도 있었나요?) 전혀 없었습니다. 전화라는 건 단 한번도 없었고요. 어떤 기자분도 접촉을 한 적이 없습니다.
박 씨는 억울해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계 동영상을 찾아봤습니다.
욕설은 없었습니다.
영상에 나온 박 씨의 유일한 음성은.
◀박상민▶
"빨리해 이씨"
그 뿐이었습니다.
◀박상민▶
분위기를 좀 전환하려고 이렇게 했어요. 이렇게 하니까 사람들 폭소가 막 터지는 거예요. 그래서 카메라가 다른 데로 옮길 줄 알았는데 저를 계속 찍어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빨리해 이씨" 이렇게 한 거예요.
기사는 각 언론사로 퍼져가면서, 점점 자극적으로 변해갔습니다.
◀박상민▶
"일어나 이 XX야" 이렇게 했다고 했는데, 또다른 언론사에서는 '엄살 피우지말고 일어나 이 XX야' 제목을 또 그렇게 쓴 거예요. 전체적인 흐름을 빨리 했으면 좋겠다. "빨리해 이씨" 이거였는데, '엄살 피우지말고 일어나 이 XX야' 그거 하고 입이 똑같은가요?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요.
한 인터넷 언론사는 제목만 계속 바꿔가며, 불과 두 시간 동안 기사를 10번 넘게 송고했습니다.
박 씨는 이 언론사를 대상으로 언론중재위에 조정 신청을 했고, 올해 초 욕설은 없었다는 정정보도 결정을 받아 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엔 여전히 다른 언론사들의 같은 기사들이 떠 있습니다.
◀박상민▶
욕 했다고 아는 사람이 100명이면 아니라고 본 사람은 한 10명 정도밖에 안 되는 거죠. 사람을 정말 나쁜 사람, 좋은 사람 만드는 게 정말 간단한 세상이 된 것 같아요..
성우 윤소라 씨.
지난달,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가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던 박창진 사무장과 마주쳤습니다.
안쓰럽고 반가운 마음에 함께 사진 한 장을 찍었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윤소라▶
응원을 하고 걱정을 하는 쪽이어서 제가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한 장 찍자고 말씀드렸고, 흔쾌히 허락을 해주셔서 제가 트위터에 올렸던 거예요.
그런데 불과 몇시간 뒤, 윤 씨의 트위터를 그대로 인용해 박창진 목격담, 근황 포착 등의 제목으로
기사 수십개가 올라왔습니다.
◀윤소라▶
정말 몇 시간 안에 거의 수십 군데에서 동시에 (기사가) 올라와서 정말 놀랐죠.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하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었지, 그렇게 언론에 마음대로.. 그분의 뜻하고는 상관이 없는 거잖아요.
기사를 내기 전 확인을 요청한 언론사는 이번에도 없었습니다.
◀윤소라▶
정말 한 군데서도 저한테 연락을 한 데가 없었거든요. 신기하더라고요, 그게.. 일단은 '박창진' 하면 클릭수가 올라가고 조회수가 뜨니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덤벼서 베끼기를 했겠죠.
박사무장을 난처하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던 윤 씨는 예상치 못했던 파장에 분개했습니다.
◀윤소라▶
직장에서 조금 더 불이익이 혹시 있었다면 어떡하나... 막말로 제가 정말 사실이 아닌 의도적인 거짓말을 올렸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그게 그대로 기사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되니까 무섭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인터넷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언론사들의 어뷰징 경쟁 때문입니다.
오용, 남용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어뷰징.
요즘은 사실 확인이나 새로운 사실 전달보다는 지 누리꾼들의 클릭을 노리고, 같은 내용의 기사를 살짝 바꿔 포털사이트에 계속 전송하는 것을 '어뷰징'이라 부릅니다.
포털사이트의 각종 검색어로 쏟아내는 기사들 대부분이 이런 어뷰징 기사들입니다.
2580은 이같은 기사를 직접 작성했던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유력 경제지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김모 씨.
◀김00/전 경제지 인턴▶
여기 밑에 있는 것들이랑 실시간 검색어, 그리고 이렇게 실시간 검색어를 누르면 핫토픽 키워드라고 시간대별로 나오는 게 있어요. 그런 걸 다 썼는데..
기사는 일단 베끼는 거였습니다.
◀김00/전 경제지 인턴▶
처음에 들어가면 그냥 같이 일하는 인턴들이 예시를 보여줘요. (타사 기사를) 긁어서 그냥 그대로 붙여 넣고, 거기서 토씨만 조금씩 바꿔서 '이렇게 올리면 돼.'하면 그때부터 그냥 바로 업무를 그렇게 진행을 하는 거예요.
데스킹이라 불리는 기사 수정 과정도 거의 없었다고 말합니다.
◀김00/전 경제지 인턴▶
선배가 봐주면 시간이 더 걸리니까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사이에 실시간 검색어가 내려가거나 우리가 트래픽(조회수)에서 뒤질 수가 있으니까 그냥 일단 올리고 보라는 입장이었어요. 뭔지 몰라도 베껴놓고 보는 거죠.
기사의 목적은 오로지 조회수.
◀김00/전 경제지 인턴▶
기사 안에 같은 말이 몇 번 들어가야 되고 그래야 트래픽(조회수)이 잘 나온다는 식으로.. (제목은) 내용과 관계 없더라도 일단은 자극적이게 뽑으라는 말을 많이 했죠. 그냥 트래픽의 노예라고 해요. 저희는..
한 인터넷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던 이 모씨의 말 역시 비슷했습니다.
◀이00/ 전 인터넷 언론사 기자▶
원본 기사를 긁어서 밑에 네티즌 반응을 붙인다거나 아니면 위, 아래 순서만 바꾼다거나, 자주 하는 기자들은 1분이면 카피해서(베껴서) 만들어낼 수 있는..
뉴스 검색 상단에 노출돼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선 같은 기사를 계속 보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00/ 전 인터넷 언론사 기자▶
다른 매체들도 다 같은 방식으로 어뷰징을 하기 때문에 금방 뒤로 검색 노출 상단에서 밑으로 밀리게 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두 번, 세 번, 많게는 열 번까지 (같은 기사를) 올리게 되는 거고요.
이 씨 역시 별도로 확인 취재를 해본 경험은 없다고 말합니다.
◀이00/ 전 인터넷 언론사 기자▶
(실시간) 검색어가 오르게 되면 무조건 쓰는 경우가 많이 있죠. 오보든 정확한 보도든 상관없이 검색어에만 의존해서 실제 취재하지 않고 쓰게 되니까 최초 보도가 만약에 오보일 경우는 어뷰징 기사도 당연히 오보가 될 테고..
이런 기사들은 대부분 기사 끝에 기자의 이름이 없다는게 특징입니다.
◀이00/ 전 인터넷 언론사 기자▶
바이라인(작성자 이름)이 본인 것이 안 들어가다 보니까 크게 부담이 안 되는 거죠, 실제적으로. 어차피 내 이름으로 나가는 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최근엔 기사 앞 뒤로 검색어만 반복해 적어 놓거나, 심지어 검색어들만 모아 놓은 의미없는 제목의 기사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00/ 전 인터넷 언론사 기자▶
이게 최악의 경우로 가고 있는 건데, '키워드 뉴스'라는 거죠. (제목에) 검색어 키워드만 전부 다 여기 붙인 거예요. 검색어들로만 이루어진 모음들을 만들어 놓은 거죠..
인터넷 기사 마지막에 요즘 공식처럼 따라붙는 누리꾼 반응, 이 역시 실제 반응이 아니라 기사에 검색어를 조금이라도 더 넣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김00/전 경제지 인턴▶
('이병헌, 이민정'이 실시간 검색어라면) '이병헌 이민정, 헐 진짜?', '이병헌 이민정 어떡해' 이런 식으로 그냥 유입수를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그렇게 4-5개 이상은 (네티즌 반응에) 넣으라는 지침 같은 게 있었죠.
◀최00/ 전 연예매체 인턴▶
네티즌 반응을 직접 보고 하는 건 줄 알았는데요. 그건 아니고 그냥 자기 생각을 위주로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최근엔 주요 일간지나 경제지,
일부 방송사까지 어뷰징 경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한 언론에 공개된 조선닷컴의 어뷰징 기사 매뉴얼입니다.
기사 쓰는데 10분을 넘지 않아야 효과적이다, 네이버와 다음의 비슷한 검색어를 함께 섞어서
제목 등에 넣으라고 돼 있습니다.
경쟁지 기사가 상단에 올라와 있으면 가장 먼저 그 키워드로 기사를 써서 우위를 점해라.
여기에 예시까지 들면서 타사 기사를 자신의 문장으로 고쳐 쓰는 방법, 사실상 베끼는 법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선닷컴 측은 한 직원이 개인적으로 후배 교육을 위해 만든 것일 뿐, 공식적인 문서는 아니라며, 관련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다른 언론사 관계자는 인터넷 언론까지 수백개 언론이 포털에서 1대1로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선 낚시성 기사를 쓸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돈 때문이라는 겁니다.
◀00 닷컴 관계자▶
환경 자체가 지금 그게 아니면 안 되게끔 되어 있거든요. 일정 트래픽(조회수)이 안 나오면 저희는 광고로 먹고사는 회사인데, 광고 수입 자체가 큰 영향을 받으니까요.
실제 주요 언론사의 지난달 기사 조회수를 조사한 결과 1,2위는 엽총 난사 등 사건 사고와 연예인, 여행지 관련 기사였습니다.
이 가운데 백지영 집공개, 여성에게 위험한 여행지 관련 기사는 검색어를 이용해 수십건씩 전송했던
어뷰징 기사였습니다.
한 경제지의 경우 1위부터 10위까지 경제 관련 기사는 하나도 없었고, 선정적 제목의 연예 관련 어뷰징 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양윤직/오리콤 미디어본부장▶
광고주 입장에서는 어떤 언론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기사의 조회수가 얼마냐가 훨씬 더 중요한 관심사죠. 경쟁적으로 속보 경쟁을 한다든지 소위 낚시성 기사를 많이 내보낼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포털 사이트측도 어뷰징은 골칫거리라고 말합니다.
◀이준걸/ 다음카카오 미디어본부장▶
검색 품질에 영향을 준다는 게 가장 큰 문제고요. 가장 빠른 시간에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뉴스 콘텐츠 도달률이 떨어진다는 것이...
◀유봉석/ 네이버 미디어플랫폼센터장▶
사실 큰 이슈가 아닌데도 언론사들이 대량으로 기사를 생산해 내면 큰 이슈처럼 느껴지는 거거든요. 사회적으로 의제설정 같은 게 굉장히 왜곡돼서 일어날 확률이 높고요.
하지만 어뷰징을 줄이기 위해선 포털사이트들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유통 플랫폼을 제공만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유통에 있어서 사회적 책무를 다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뉴스 콘텐츠들을 생산한 뉴스 미디어가 주도권을 가지고 유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일부 언론들의 선정성 경쟁은 이미 도를 넘어선 지 오래됐습니다.
사건 사고나 심지어 부고 관련 기사에도 조회수를 올리려는 어뷰징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
제3의 기관에 의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김정섭 교수/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영상연기학과▶
어뷰징의 실태를 양적, 질적으로 평가해서 심각성 정도를 지수화해서 발표하는 거죠. 특정 문제가 심각한 언론사들을 공표함으로써 그런 걸 줄이는 기능을..
어뷰징의 가장 큰 문제는 여론을 왜곡하고 정작 중요한 이슈에 대한 관심을 멀어지게 할 위험이 크다는 데 있습니다.
조회수를 늘리겠다고, 광고비를 더 받겠다고마구잡이로 쏟아내는 기사들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은 저널리즘의 기본이 훼손될 때 그 피해는 결국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언론사 이름은 달라도제목을 클릭해보면 기사 내용은 붕어빵처럼 똑같습니다.
사실 확인도 안되고 기자 이름도 없는 이른바 '어뷰징'기사들.
누가, 왜, 이런 낚시 기사들을 올리는걸까요?
클릭수를 올리기 위해 더 빨리, 더 뻔뻔하게 베껴야하는 어뷰징기사의 비밀과 마주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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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전.
배우 이병헌, 이민정 씨 부부가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인천공항 입국장으로 나왔습니다.
이병헌 씨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 이병헌▶
좀 더 일찍 여러분들께 사과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취재진 앞에 모습을 보인 건 불과 3분.
하지만, 이날 하루 이병헌 씨와 관련된 기사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1,800건 넘게 쏟아졌습니다.
연예 매체 뿐 아니라 유력 일간지와 경제지들도 회사당 6,70건의 관련 기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병헌 씨의 발언 하나 하나를 쪼개 제목을 바꿔 달았고, 내용은 그대로, 심지어 오타까지 그대로 전송됐습니다.
3분간 비친 이들 부부의 표정, 차림새로 수십가지 제목이 만들어졌습니다.
충격, 눈길, 세상에, 헉..과 같은 단어가 제목에 따라붙었고, 하필이면 왜 간통죄 위헌 판결 당일 귀국했냐는 다소 황당한 제목도 있었습니다.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기사도 아니었습니다.
시간마다 새로운 내용이 알려지는 속보성 기사도 아니었습니다.
같은 내용의 기사를 언론사들은 왜 인터넷에 하루종일 쏟아냈을까요?
오로지 기사 조회수만을 올리기 위한 언론사들의 치열한 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가수 박상민 씨는 지난해 11월, 욕설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박 씨가 격투기 관람 도중 낭심을 맞고 쓰러진 선수에게 욕설을 했다는 기사들 때문이었습니다.
◀박상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 1등을 했다는 거예요. '어, 뭐 때문에 그렇지?' 보니까 제가 심한 욕을 했다는 거예요.
누군가 올린 인터넷 게시판 글을 한 언론이 그대로 기사화하자 다른 언론사들도 앞다퉈 이를 보도한 겁니다.
◀박상민▶
((박상민 씨나 회사측에) 확인하는 기자들도 있었나요?) 전혀 없었습니다. 전화라는 건 단 한번도 없었고요. 어떤 기자분도 접촉을 한 적이 없습니다.
박 씨는 억울해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계 동영상을 찾아봤습니다.
욕설은 없었습니다.
영상에 나온 박 씨의 유일한 음성은.
◀박상민▶
"빨리해 이씨"
그 뿐이었습니다.
◀박상민▶
분위기를 좀 전환하려고 이렇게 했어요. 이렇게 하니까 사람들 폭소가 막 터지는 거예요. 그래서 카메라가 다른 데로 옮길 줄 알았는데 저를 계속 찍어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빨리해 이씨" 이렇게 한 거예요.
기사는 각 언론사로 퍼져가면서, 점점 자극적으로 변해갔습니다.
◀박상민▶
"일어나 이 XX야" 이렇게 했다고 했는데, 또다른 언론사에서는 '엄살 피우지말고 일어나 이 XX야' 제목을 또 그렇게 쓴 거예요. 전체적인 흐름을 빨리 했으면 좋겠다. "빨리해 이씨" 이거였는데, '엄살 피우지말고 일어나 이 XX야' 그거 하고 입이 똑같은가요?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요.
한 인터넷 언론사는 제목만 계속 바꿔가며, 불과 두 시간 동안 기사를 10번 넘게 송고했습니다.
박 씨는 이 언론사를 대상으로 언론중재위에 조정 신청을 했고, 올해 초 욕설은 없었다는 정정보도 결정을 받아 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엔 여전히 다른 언론사들의 같은 기사들이 떠 있습니다.
◀박상민▶
욕 했다고 아는 사람이 100명이면 아니라고 본 사람은 한 10명 정도밖에 안 되는 거죠. 사람을 정말 나쁜 사람, 좋은 사람 만드는 게 정말 간단한 세상이 된 것 같아요..
성우 윤소라 씨.
지난달,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가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던 박창진 사무장과 마주쳤습니다.
안쓰럽고 반가운 마음에 함께 사진 한 장을 찍었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윤소라▶
응원을 하고 걱정을 하는 쪽이어서 제가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한 장 찍자고 말씀드렸고, 흔쾌히 허락을 해주셔서 제가 트위터에 올렸던 거예요.
그런데 불과 몇시간 뒤, 윤 씨의 트위터를 그대로 인용해 박창진 목격담, 근황 포착 등의 제목으로
기사 수십개가 올라왔습니다.
◀윤소라▶
정말 몇 시간 안에 거의 수십 군데에서 동시에 (기사가) 올라와서 정말 놀랐죠.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하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었지, 그렇게 언론에 마음대로.. 그분의 뜻하고는 상관이 없는 거잖아요.
기사를 내기 전 확인을 요청한 언론사는 이번에도 없었습니다.
◀윤소라▶
정말 한 군데서도 저한테 연락을 한 데가 없었거든요. 신기하더라고요, 그게.. 일단은 '박창진' 하면 클릭수가 올라가고 조회수가 뜨니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덤벼서 베끼기를 했겠죠.
박사무장을 난처하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던 윤 씨는 예상치 못했던 파장에 분개했습니다.
◀윤소라▶
직장에서 조금 더 불이익이 혹시 있었다면 어떡하나... 막말로 제가 정말 사실이 아닌 의도적인 거짓말을 올렸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그게 그대로 기사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되니까 무섭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인터넷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언론사들의 어뷰징 경쟁 때문입니다.
오용, 남용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어뷰징.
요즘은 사실 확인이나 새로운 사실 전달보다는 지 누리꾼들의 클릭을 노리고, 같은 내용의 기사를 살짝 바꿔 포털사이트에 계속 전송하는 것을 '어뷰징'이라 부릅니다.
포털사이트의 각종 검색어로 쏟아내는 기사들 대부분이 이런 어뷰징 기사들입니다.
2580은 이같은 기사를 직접 작성했던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유력 경제지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김모 씨.
◀김00/전 경제지 인턴▶
여기 밑에 있는 것들이랑 실시간 검색어, 그리고 이렇게 실시간 검색어를 누르면 핫토픽 키워드라고 시간대별로 나오는 게 있어요. 그런 걸 다 썼는데..
기사는 일단 베끼는 거였습니다.
◀김00/전 경제지 인턴▶
처음에 들어가면 그냥 같이 일하는 인턴들이 예시를 보여줘요. (타사 기사를) 긁어서 그냥 그대로 붙여 넣고, 거기서 토씨만 조금씩 바꿔서 '이렇게 올리면 돼.'하면 그때부터 그냥 바로 업무를 그렇게 진행을 하는 거예요.
데스킹이라 불리는 기사 수정 과정도 거의 없었다고 말합니다.
◀김00/전 경제지 인턴▶
선배가 봐주면 시간이 더 걸리니까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사이에 실시간 검색어가 내려가거나 우리가 트래픽(조회수)에서 뒤질 수가 있으니까 그냥 일단 올리고 보라는 입장이었어요. 뭔지 몰라도 베껴놓고 보는 거죠.
기사의 목적은 오로지 조회수.
◀김00/전 경제지 인턴▶
기사 안에 같은 말이 몇 번 들어가야 되고 그래야 트래픽(조회수)이 잘 나온다는 식으로.. (제목은) 내용과 관계 없더라도 일단은 자극적이게 뽑으라는 말을 많이 했죠. 그냥 트래픽의 노예라고 해요. 저희는..
한 인터넷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던 이 모씨의 말 역시 비슷했습니다.
◀이00/ 전 인터넷 언론사 기자▶
원본 기사를 긁어서 밑에 네티즌 반응을 붙인다거나 아니면 위, 아래 순서만 바꾼다거나, 자주 하는 기자들은 1분이면 카피해서(베껴서) 만들어낼 수 있는..
뉴스 검색 상단에 노출돼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선 같은 기사를 계속 보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00/ 전 인터넷 언론사 기자▶
다른 매체들도 다 같은 방식으로 어뷰징을 하기 때문에 금방 뒤로 검색 노출 상단에서 밑으로 밀리게 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두 번, 세 번, 많게는 열 번까지 (같은 기사를) 올리게 되는 거고요.
이 씨 역시 별도로 확인 취재를 해본 경험은 없다고 말합니다.
◀이00/ 전 인터넷 언론사 기자▶
(실시간) 검색어가 오르게 되면 무조건 쓰는 경우가 많이 있죠. 오보든 정확한 보도든 상관없이 검색어에만 의존해서 실제 취재하지 않고 쓰게 되니까 최초 보도가 만약에 오보일 경우는 어뷰징 기사도 당연히 오보가 될 테고..
이런 기사들은 대부분 기사 끝에 기자의 이름이 없다는게 특징입니다.
◀이00/ 전 인터넷 언론사 기자▶
바이라인(작성자 이름)이 본인 것이 안 들어가다 보니까 크게 부담이 안 되는 거죠, 실제적으로. 어차피 내 이름으로 나가는 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최근엔 기사 앞 뒤로 검색어만 반복해 적어 놓거나, 심지어 검색어들만 모아 놓은 의미없는 제목의 기사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00/ 전 인터넷 언론사 기자▶
이게 최악의 경우로 가고 있는 건데, '키워드 뉴스'라는 거죠. (제목에) 검색어 키워드만 전부 다 여기 붙인 거예요. 검색어들로만 이루어진 모음들을 만들어 놓은 거죠..
인터넷 기사 마지막에 요즘 공식처럼 따라붙는 누리꾼 반응, 이 역시 실제 반응이 아니라 기사에 검색어를 조금이라도 더 넣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김00/전 경제지 인턴▶
('이병헌, 이민정'이 실시간 검색어라면) '이병헌 이민정, 헐 진짜?', '이병헌 이민정 어떡해' 이런 식으로 그냥 유입수를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그렇게 4-5개 이상은 (네티즌 반응에) 넣으라는 지침 같은 게 있었죠.
◀최00/ 전 연예매체 인턴▶
네티즌 반응을 직접 보고 하는 건 줄 알았는데요. 그건 아니고 그냥 자기 생각을 위주로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최근엔 주요 일간지나 경제지,
일부 방송사까지 어뷰징 경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한 언론에 공개된 조선닷컴의 어뷰징 기사 매뉴얼입니다.
기사 쓰는데 10분을 넘지 않아야 효과적이다, 네이버와 다음의 비슷한 검색어를 함께 섞어서
제목 등에 넣으라고 돼 있습니다.
경쟁지 기사가 상단에 올라와 있으면 가장 먼저 그 키워드로 기사를 써서 우위를 점해라.
여기에 예시까지 들면서 타사 기사를 자신의 문장으로 고쳐 쓰는 방법, 사실상 베끼는 법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선닷컴 측은 한 직원이 개인적으로 후배 교육을 위해 만든 것일 뿐, 공식적인 문서는 아니라며, 관련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다른 언론사 관계자는 인터넷 언론까지 수백개 언론이 포털에서 1대1로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선 낚시성 기사를 쓸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돈 때문이라는 겁니다.
◀00 닷컴 관계자▶
환경 자체가 지금 그게 아니면 안 되게끔 되어 있거든요. 일정 트래픽(조회수)이 안 나오면 저희는 광고로 먹고사는 회사인데, 광고 수입 자체가 큰 영향을 받으니까요.
실제 주요 언론사의 지난달 기사 조회수를 조사한 결과 1,2위는 엽총 난사 등 사건 사고와 연예인, 여행지 관련 기사였습니다.
이 가운데 백지영 집공개, 여성에게 위험한 여행지 관련 기사는 검색어를 이용해 수십건씩 전송했던
어뷰징 기사였습니다.
한 경제지의 경우 1위부터 10위까지 경제 관련 기사는 하나도 없었고, 선정적 제목의 연예 관련 어뷰징 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양윤직/오리콤 미디어본부장▶
광고주 입장에서는 어떤 언론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기사의 조회수가 얼마냐가 훨씬 더 중요한 관심사죠. 경쟁적으로 속보 경쟁을 한다든지 소위 낚시성 기사를 많이 내보낼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포털 사이트측도 어뷰징은 골칫거리라고 말합니다.
◀이준걸/ 다음카카오 미디어본부장▶
검색 품질에 영향을 준다는 게 가장 큰 문제고요. 가장 빠른 시간에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뉴스 콘텐츠 도달률이 떨어진다는 것이...
◀유봉석/ 네이버 미디어플랫폼센터장▶
사실 큰 이슈가 아닌데도 언론사들이 대량으로 기사를 생산해 내면 큰 이슈처럼 느껴지는 거거든요. 사회적으로 의제설정 같은 게 굉장히 왜곡돼서 일어날 확률이 높고요.
하지만 어뷰징을 줄이기 위해선 포털사이트들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유통 플랫폼을 제공만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유통에 있어서 사회적 책무를 다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뉴스 콘텐츠들을 생산한 뉴스 미디어가 주도권을 가지고 유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일부 언론들의 선정성 경쟁은 이미 도를 넘어선 지 오래됐습니다.
사건 사고나 심지어 부고 관련 기사에도 조회수를 올리려는 어뷰징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
제3의 기관에 의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김정섭 교수/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영상연기학과▶
어뷰징의 실태를 양적, 질적으로 평가해서 심각성 정도를 지수화해서 발표하는 거죠. 특정 문제가 심각한 언론사들을 공표함으로써 그런 걸 줄이는 기능을..
어뷰징의 가장 큰 문제는 여론을 왜곡하고 정작 중요한 이슈에 대한 관심을 멀어지게 할 위험이 크다는 데 있습니다.
조회수를 늘리겠다고, 광고비를 더 받겠다고마구잡이로 쏟아내는 기사들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은 저널리즘의 기본이 훼손될 때 그 피해는 결국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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