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민병호 기자

심판의 자격

심판의 자격
입력 2015-03-16 09:08 | 수정 2015-03-16 11:11
재생목록
    대한야구협회 소속 심판 3명이 지난달 더 이상 심판으로 뛸 수 없도록 퇴출됐습니다.

    오심 때문도, 실적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이유는 하나, ‘선수 출신’이 아니라는 것.

    이들은 선수 출신 아닌 일반인도 심판이 될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하던 일을 접고 이 길로 나섰지만, 그 야구의 꿈이 다름 아닌 ‘야구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좌절된 것입니다.

    이런 사정도 모른 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심판으로서 어릴 적 못 이룬 야구인의 꿈을 이루겠다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공정함이 생명인 심판, 그들의 세계는 과연 공정한 것일까?

    =====================================================================

    때론 힘차게, 때론 화려하게.

    순간의 판정으로 그라운드의 희비를 가르는 사람.

    특히 아이들에게는 인기 만점입니다.

    하지만 겉보기처럼 멋있기만 한 건 아닙니다.

    ◀김기남▶
    "어떻게 보면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고달프고 또 슬프기도 하고.."

    ◀이민호/프로야구 심판▶
    "게임하다가 김밥 맞아본 적도 있고 그 족발도 꼭 드시면 다 발라가지고 뼈만 던지시더라고요. 몇년 전에는 오심으로 저희가 심판실을 나가지 못한 적도 있었고..."

    그래도 많은 이들이 매력을 느끼는 직업입니다.

    ◀이다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진영▶
    "경기를 총 지배하는 거쟎아요. 한번은 해보고 싶은 그런 직업 중 하나입니다"

    ◀김진영▶
    "대한민국 국민들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스포츠에 종사한다는 그런 사명감이 있더라고요. 물론 화려하진 않지만 저희들처럼 판정을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많이 있고.."

    야구 인기가 높아지면서 야구 심판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주로 선수 출신이 많았지만 최근엔 일반인 남성부터 여성들까지
    야구 심판의 길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나도 야구심판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야구심판학교의 입학 경쟁률이 2:1을 넘어섰을 정도입니다.

    8년차 소방관 이시형씨.

    밤낮없이 사고현장에 출동해 생명을 구해내고 평소엔 안전교육 교관으로 쉴 틈이 없습니다.

    화재시 대응 요령을 비롯해 완강기 사용법에 심폐소생술까지....

    ◀이시형/서울 소방학교▶
    "알아서 먼저 교대해 주세요, 조금 지친 거 같으면. 혼자 하지 마시고 한 분은 인공호흡을 도와주세요. 인공 호흡 한번 도와주세요. 한분이 인공호흡을 도와주세요. 지금 힘들쟎아.."

    하지만 주말이면 다른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사회인 야구 심판.

    심판학교를 수료한지 아직 2달도 안된 초보 심판이지만 목소리엔 힘과 자신감이 넘칩니다.

    ◀이시형/서울 소방학교▶
    "스트레스가 해소되고요. 뭐랄까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살아있다는 느낌, 그런 게 진짜 있어요..큰 목소리로 큰 동작으로 콜업을 했을때 뭔가 상쾌한 느낌이 듭니다"

    사회인 야구팀에서 뛰던 이씨는 무릎을 다친 뒤 심판에 도전함으로써 야구사랑을 이어갔습니다.

    ◀이시형/서울 소방학교▶
    "무릎을 다치고 이제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때..아 이 좋아하는 거를 어떻게 하면 계속 할 수 있을까..계속 그라운드에 남아있기 위해서 생각한 게 사실 심판이죠"

    심판의 직업적 특성도 소방관인 자신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이시형/서울 소방학교▶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되는 것들, 이 필드를 저희 소방관들이 이제 안전하게 장악을 해야되는 것처럼 심판들도 이런 필드를 운영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장악을 해야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공통점이 있어서 흥미롭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주말 충주에서 열린 전국 농아인야구대회.

    주심과 1루,2루,3루심 심판 4명이 모두 여성입니다.

    국내 야구에서는 처음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심판학교에서 만난 동기생 4명이 다시 뭉친 겁니다.

    ◀한은결/사회인 야구 심판▶
    "이렇게 재능기부형식으로 심판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좋고..즐겁게 뛰어다니는 애들 보면 또 마음이 즐겁기도 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반도체 회사에 다니고 있는 조희영씨는 사회인 야구리그에서 직접 뛰고 있는 선수 겸 심판입니다.

    야구에 대한 열정은 매주말 때론 선수로, 때론 심판으로 그를 그라운드로 불러냅니다.

    ◀조희영/사회인 야구 심판▶
    "제가 처음 야구를 시작할때처럼 그때도 여자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심판도 마찬가지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심판학교를 수료하기 위해서는 10주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복잡한 야구 규칙을 익히는 건 물론, 체력과 발성 훈련도 거쳐야 합니다.

    지원자들은 다양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사부터 네일 아트 디자이너까지. 열정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야구 심판의 세계는 열려있는 셈입니다.

    취미 정도로 야구심판을 하려는 사람도 많지만 아마야구, 나아가 프로야구 심판을 목표로 삼는 이들도 상당수입니다.

    실제로 국내 야구 규정 상 아마야구나 프로야구 심판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작년까지 대한야구협회 소속으로 아마야구 심판을 봤던 최명균씨와 김용일씨. 프로야구 심판까지 꿈꿨던 두 동기생은 올해 초 갑자기 퇴출 통보를 받았습니다.

    ◀김용일/대한야구협회 심판▶
    "그냥 전화 한통이 왔어요. 1월 5일날, '용일아, 너 올해는 위촉 안 될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이런 식으로 그냥 전화를 하고 끊었거든요“

    ◀최명균/대한야구협회 심판▶
    "그 심판이사가 직접 전화한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다른 누구를 시켜서.."

    김용일씨는 대한야구협회 심판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물었고, 생각지 못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심판이사/김용일씨 녹화 녹취▶
    "야구를 안 한 비야구인들이기 때문에 다른 감독들한테도 이런 이상한 얘기를 내가 많이 들으니까. 왜 비야구인들 보내가지고 내 입장 이렇게 곤란하게 만드느냐..."
    단지 선수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특별히 심각한 오심을 한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김용일/대한야구협회 심판▶
    "똑같이 평가를 해서 공개를 하면서 '너는 이게 잘못됐고 너는 이게 잘한 거고' 그렇게 해야 저희도 만약에 잘목을 했고 그러면 승복을 하고 '아 내가 잘 못 봤구나..잘 못 했구나.'이런 생각을 하는데 아무 기준도 없고..."

    뭘 물어도, 돌아오는 말은 "너는 비 야구인"이라는 비수같은 한마디.

    심판이사는 자기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심판 이사/김용일씨 녹화 녹취▶
    "내가 항상 고등학교 감독, 대학 감독들한테 듣는 얘기가. '아 저놈들 어디서 야구했습니까?', '왜 저런 놈들을 데려다 놨습니까?' 그런데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되냐? 어? 내가 그걸 지금 1년동안 들었다"

    최명균 씨와 김용일 씨는 2년전 대한야구협회 소속 아마야구 심판이 됐습니다.

    당시 협회는 일반인 출신 심판을 위촉했다며 언론에 대대적인 홍보를 하기도 했습니다.

    ◀최명균/대한야구협회 심판▶
    "다양한 방면의 사람들을 이렇게 해서 '심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주겠다' 라는 그런 문구를 보고 나서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 일단 들어가면 똑같이는 할 수 있으려나 보다."

    문제는 현 심판이사가 부임해 온 작년부터 시작됐습니다.

    2013년과 2014년 야구협회 심판 배정표입니다.

    같은 동기들을 기준으로 봤을때 2013년 배정된 경기수는 서로 비슷합니다. 사회인야구까지 심판경력만 6년인 김용일 씨의 경우 능력을 인정받아 동기들 중 가장 많은 경기를 배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선수 출신 동기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경기를 배정받았습니다.

    ◀김용일/대한야구협회 심판▶
    "○○○ 이사가 심판이사로 바뀌면서 1년차 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었죠. 저희는 경기 수당으로 생활을 하는데 경기를 안 넣어주게 되면..."

    그렇다고 불만을 제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최명균/대한야구협회 심판▶
    "얘기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왜 우리한테는 배정을 안 해주느냐'라고 얘기를 하면 그 분이 생각하시기에는 그런 거예요. '어 나한테 이렇게 이의 제기해 ?' 그래 가지고 완전 이렇게 더 저기할까봐.." (더 피해를 볼까봐?) "네"

    현재 대한야구협회 소속 아마추어 심판 가운데 고등학교때까지 선수 생활을 하지 않은 비선수 출신은 여성 1명을 포함해 모두 4명.

    남자 심판 3명에게만 해촉통보가 갔습니다. 여성 심판 한 명은 비선수출신이긴 해도 협회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는 겁니다.

    ◀최명균/대한야구협회 심판▶
    "야구를 안 했으면 00(여성심판)도 그러면 위촉을 못 받겠네요?"
    "00(여성심판)은 (야구협회) 회장님 특명이야 그렇게 알고.."

    방관하던 야구협회는 인권위원회의 조사와 2580의 취재가 시작되자
    지난 10일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심판으로 위촉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대한야구협회 관계자▶
    "비선수 출신들은 좀 제외를 하려고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그거는 이제 심판이사님 생각이셨고요. 규정이 비선수 출신이면 제외된다는 그런 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위촉을 하기로 한 겁니다"

    3년 전 비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야구협회 심판에 위촉됐던 황재원씨.

    10년 다니던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야구 심판의 길로 뛰어들었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크게 마음을 다쳤습니다.

    ◀황재원/대한야구협회 심판▶
    "'처음이다'라는 이런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그리고 자존심도 있었고..문제가 일으켜지게 되면 일반인 비선수 출신들이 들어오지 못할 가능성때문에 굉장히 많이 노력했었는데"

    황씨 역시 해촉통보를 받았다가 다시 위촉 통보를 받았지만 경기 배정은 선수출신 심판과 여전히 차별이 있을 거란 말도 들었습니다.

    ◀황재원/대한야구협회 심판▶
    "경기장 안에서 뭔가 문제가 있을때는 저희들도 벌을 받을 준비는 돼 있습니다. 그리고 잘했을 경우에는 칭찬받을 준비도 되어 있고요. 그런데 위촉을 해주겠다라고는 하는데 경기 배정은 전과 동일할 지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참 의미없는 얘기구나..."

    심판이사의 대답에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심판이사/김용일씨 녹화 녹취▶
    "너 지금 그것때문에 따지는 거야, 지금?"
    (아니 납득이 안가지 않습니까?)
    "너 자꾸 그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넣기 싫어 그랬다. 네 마음대로 한번 해봐라 그러면 내가 넣기 싫어서 그랬어 어떻게 대답을 해줄까?"

    심판이사는 2580과의 통화에서 비선수출신 심판과 선수출신 심판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게 오히려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심판이사/대한야구협회▶
    "우리 심판들이 초등학교부터 야구를 해 가지고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심판 보는 애들이에요 거의 다. 그런 애들하고 지금 비야구인, 한두 달 교육 받아가지고 자격증 따서 심판 보는 애들하고 똑같이 취급을 해달라고 하면..형평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을 해요"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주심으로도 유명한 심판계의 전설 김광철씨.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지난해까지 심판학교장으로 후진을 양성했던 김씨는 이번 일에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김광철/前야구 심판학교장▶
    "대한야구협회에 들어갔다가 또 나름대로 자기가 잘해서 프로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열려고 들어왔던 애인데..지금 야구 안했다고 다 내?아? ..앞으로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더 크게 보자"

    본인 역시 선수 출신 심판이지만 잘못된 편견은 버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김광철/前야구 심판학교장▶
    "일반인출신들한테 항상 '비선수 출신'이라고 나는 안돼 이런 생각 갖지 말고...심판은 경험이 우선이니까 많은 경험을 쌓는다고 그러면 충분히 프로도 갈 수 있다. 그런 시대가 곧 올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 지, 계속해서 꿈을 가져도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김용일/대한야구협회 심판▶
    "돈을 좆아서 대한야구협회 심판을 간 게 아니라 꿈을 좆아서 간 거 였는데..."

    ◀허구연/야구 해설위원▶
    "어떤 분야든 최고에 대한 꿈이 있어야 된다고 보거든요. 꿈을 갖게끔 해주자 심판도. 처음에 낮은 수준의 아마 야구를 보다가도 '와 쟤는 프로야구에 갈 수도 있다'는 그런 꿈을 키워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봐요."

    야구인이냐 비야구인이냐를 단지 선수 출신이냐 여부로 가르는 곳이라면, 원칙과 공정함을 생명으로 해야 할 심판의 세계에 능력과 열정 대신 그런 구분법이 적용되는 곳이라면, '꿈의 구장'이란 표현이 무색한 '그들만의 리그'가 돼버릴 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