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이필희 기자
이필희 기자
"미국 가서 싸우세요"
"미국 가서 싸우세요"
입력
2015-03-30 09:29
|
수정 2015-03-3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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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기계설비 부품을 수출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이 모 씨가 지난 1월 갑자기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지난 2012년 미국 검찰이 사기 미수 등의 혐의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는데 작년 말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구속된 이 씨는 소명도 충분히 하지 못한 채 미국으로의 인도가 결정됐습니다.
미국은 우리 측의 인도 요청이 있을 경우 인신 보호 요청을 통해 범죄 피의자가 자신의 입장을 수차례에 걸쳐 소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단 한 번의 심사로 여부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 씨의 경우 송환이 결정된 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몇몇 증거와 정황을 찾아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미 결정됐으니 미국 법정에서 이기고 돌아오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 씨는 이대로 미국으로 보내져야 하는가.
====================================================================
지난 1월 9일 중소기업 대표 이헌석 씨는 집 근처의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한 외국 회사가 이씨의 회사를 불법적으로 인수, 합병하려는 시도에 대해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박진명 / 이헌석 부인 ▶
추가 자료 경찰서에서 요구하는데 그거 갖다 주고 중국 갔다 올게, 그렇게 하고 나갔어요.
그런데 이 씨의 부인은 잠시 뒤 남편으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 박진명 / 이헌석 부인 ▶
9시 반에서 10시 그 사이였던 거 같아요. '이상한 일이, 안 좋은 일이 생겼어' 그러면서 '내가 지금 구속된대.'
서울경찰청 외사과 직원들이 경찰서에 나오는 이 씨를 기다리고 있다가 체포한 겁니다.
◀ 대전 둔산경찰서 수사관 ▶
서울청에서 전화가 왔어요. 혹시 이헌석 씨라고 고소인이네요. 본인 하고 있는 사건의. 그래서 아 맞다 그런데 왜 전화를 주셨냐 그랬더니 미국에서 구속영장이 발부가 됐다는 거에요.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적도 없는 이 씨는 자신도 모르게 발부된 구속 영장에 의해 그날 오후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 이헌석 ▶
이런 바보 같은 일이 어디 있냐고. 한 번도 내가 길 가다가 침도 뱉어본 적도 없고 쓰레기 한 번을 버려본 적이 없는데..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한 기업인이 어느 날 갑자기 철창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 남성은 구속되기 전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를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구속이 되고 나서야 자신을 범죄인으로 규정하고 신병 인도를 요청한 건, 바다 건너 미국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뉴스에서나 가끔 보던, 이른바 범죄인 인도 요청이었습니다.
충북 청주시의 한 공장.
사무실 건물의 한 층이 절반 이상 텅 비어 있고, 책상과 컴퓨터, 각종 집기들은 한쪽으로 모아져 있습니다.
남아 있는 책상들도 자리를 지키는 직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로 아래층은 책상을 모두 치우고 아예 폐쇄했는데,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백명이 넘었던 직원은 대표가 구속된 이후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 서수덕 이사 ▶
올해 대표님 상황 발생이 되면서 지금 한 2개월에 걸쳐서 70명 가까이가
인력손실이 있어서 지금은 30명.. (1월부터?) 네 그렇습니다.
이헌석 대표를 구속시킨 사건은 6년 전인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 씨의 회사는 기존 제품에 비해 전기 비용을 30~40% 가량 줄일 수 있는 송풍기를 개발했습니다.
이 송풍기를 미국 정부가 짓는 하수처리장 시설에 잇따라 납품하게 되면서
매출도 급격히 늘었습니다.
◀ 이민석 / 당시 영업본부장 ▶
매출도 갑자기 막 120억, 150억 하던 게 300억 가까이 쭉 올라가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거죠.
그런데 미국은 자국 정부의 예산이 투입되는 공사에는 반드시 미국산 제품만 쓰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ARRA법'이라 부르는 이 법을 지키기 위해 이 씨는 미국에 공장을 따로 차리고 미국인 직원들이 한국에서 보내주는 부품을 조립해 납품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 씨의 회사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맙니다.
납기를 못 지킬까봐 한국에서 완제품 수준으로 기계를 만들어 미국에 보낸 겁니다.
◀ 이민석 / 당시 영업본부장 ▶
미국에서 조립을 해서 나가려면 거의 한 두달이 넘게 걸려야 돼요. 그런데 일주일 후부터 돌려야 되는 거예요, 물건을. 그렇지 않으면 미국 하수처리장에서 폐수가 방류가 돼..
시간을 줄이겠다고 개당 1톤 가까운 장비를 비싼 돈 들여가며 비행기로 보내면서 'Assemblled in USA', '미국에서 조립됨'이라는 표시까지 붙였습니다.
2011년 1월, 미국 세관은 이를 적발했고 원산지 표시 위반으로 관련 제품 14억원어치를 모두 압류했습니다.
◀ 서수덕 이사 ▶
'Assembled in USA' 표기도 미국에서 당연히 적어야 되는데 국내 공장, 우리 직원들도 저를 포함해서 영어 부분에 대한 그리고 무역에 대한 그런 개념이 부족한 데서 나온 상황이구요.
이 씨의 회사는 납기 지연금을 물었고, 미국에서 새로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등 추가로 30억 가까이 손실을 봤습니다.
여기에 원산지 표시법 위반으로 미국 입찰 자격까지 박탈당했습니다.
사건은 그렇게 끝난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1년 정도 지난 2012년 2월, 미국 검찰이 이헌석 대표를 사기 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한 겁니다.
세관에서 압류된 사례들로 미뤄 이씨가 처음부터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 의사가 없었다고 본 겁니다.
미국 법원이 기소를 할만하다고 인정하면서 이 씨에 대한 체포 영장도 발부됐습니다.
◀ 이찬진 / 이헌석 변호인 ▶
기소에 관해서 결정을 승인해 준 거죠. 승인해 주는 재판을 했다는 거고 그래서 기소장이 들어온 겁니다. (유무죄 판정이 난 상황도 아니네요?) 전혀 아니죠.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이 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한 건 2012년 11월.
하지만 법무부는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작년 12월이 돼서야 인도절차에 착수했습니다.
◀ 정진우 / 법무부 국제형사과장 ▶
증거나 인도필요성 등에 대해서 신중하게 검토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건 같은 경우에 2년 정도 시간이 소요된 걸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사이 이씨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4년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에 이헌석 씨는 지난 1월 체포됐고, 그로부터 2주 뒤, 판사 앞에서 소명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 이민석 / 당시 영업본부장 ▶
1~2분 발언 기회 주고 끝이에요.
(2분밖에 못하셨어요?) 토탈 한 10분 했나요? 마지막으로 항변 한 번 해보십시오 그러니까 전 억울합니다. 그걸로 끝이었어요.
소명이 충분하진 않았지만 결과가 나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 이민석 / 당시 영업본부장 ▶
변호사님 쪽에서 '이건 금세 나오는 일이에요. 별 일 있겠어요? 이정도 일인데. 사람을 죽였거나 반인륜적인 일도 아니고..'
하지만 결론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법원은 수사와 재판의 필요성이 있고 이 씨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고려할 때 미국에서 비인도적인 대우를 받지 않고 충분히 재판을 받을수 있다며 인도를 결정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에 가서 싸우라고 결정한 겁니다.
◀ 이헌석 대표 ▶
여기 3개월, 4개월, 미국 가서 재판하면 토탈 6개월 뭐 이렇게 지나갈 텐데 그 사이 회사 다 망가져. 18년 동안 기술개발해온 회사라고..
법원의 결정 이후, 이씨의 가족들은 미국의 공장 등을 뒤져 사기 의도가 없었음을 호소할 만한 새로운 증거들을 찾아냈습니다.
이 씨의 회사가 ARRA 규정에 맞춰 납품한 공사는 모두 14건.
이 가운데 미국 검찰은 세관에 적발된 6건만 문제삼아 사기 미수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그 앞뒤의 나머지 공사는 모두 규정을 지킨 것들이었습니다.
◀ 이찬진 / 이헌석 변호인 ▶
왜 유독 14개 중에서 이 6개만 가지고 뭐라고..납기 지연을 해서 우리가 한국에서 완제품을 보낸 건 잘못한 건 맞는데 그걸 가지고 어떻게 사기가 되느냐
미국 검찰은 미국 현지 공장 직원들의 진술을 중요한 근거로 삼았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이 발견됐습니다.
한 미국 현지 직원은, 이헌석 대표가 '부품으로 보내면 운송비가 너무 비싸 아예 완제품으로 보내는 게 낫다'고 말했으며, 그때부터 미국 공장에는 조립된 완제품만 운송됐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이 직원은 2010년 6월에 회사를 그만뒀고, 문제가 된 완제품은 그보다 5개월이나 뒤에 운송된 것들입니다.
이 씨 측은 그가 위증을 한 거라고 주장합니다.
◀ 박진명 / 이헌석 부인 ▶
이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거죠. 그 사람이 물건을 볼 수도 없었던 거고..
이런 증거들을 모아 우리 대법원에 항고하고 집행정지 신청도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범죄인 인도 결정은 이른바 '단심제'라 한 번 결정되고 나면 되돌릴 수가 없다는 겁니다.
◀ 이찬진 / 이헌석 변호인 ▶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불구속 수사 및 불구속 재판의 원칙, 불복해서 항소, 상고할 수 있는 권리, 재판 받을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잖아요. 소속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왜 달리 취급이 되어야 되느냐에 관한 문제가 있는 거죠.
이 씨는 구속된 상태에서 꼼짝없이 미국으로 보내질 예정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다른 결정이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범죄인 인도법에 따르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이 범죄가 미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수준의 처벌이 가능해야 범죄인인도를 할 수 있습니다.
미국 검찰이 이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원산지 표시법 위반에 의한 '사기미수'.
◀ 김영석 교수 / 이대 법학전문대학원 ▶
사기 미수라고 하는 것이 과연 1년 이상의 그것도 벌금형이 아니라 징역형 그런 걸로 해당이 되는지..법원에서 결정을 했으니까 맞다고는 생각이 되는데 과연 사실이 그런 건지...
게다가 이 씨는 우리나라 사람이고 문제가 된 물건도 한국에서 만든 만큼
유,무죄 판단은 우리 사법부가 하면 될 일이라는 겁니다.
◀ 김영석 교수 / 이대 법학전문대학원 ▶
우리나라 영역에서 일부 발생했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서는 전부라고 할 수도 있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속지주의 원칙상 우리나라가 형사관할권을 행사할 수도 있기 때문에 범죄인 인도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사유가 됩니다.
우리와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은 미국도 단심제로 인도 여부를 결정하지만,우리나라에는 없는, '인신보호 청원'이라는 제도를 별도로 두고 있습니다.
인신보호청원이란, 범죄인 인도 대상자가 수사기관의 구금이나 결정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이 과정에서 부당함이 인정될 경우 법무부 장관이 최종적으로 인도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태원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아더 패터슨은 지난 2012년 10월 한국으로 송환이 결정되고도 이 인신보호청원을 통해 시간을 벌고 있습니다.
이헌석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입니다.
단 한차례의 결정, 그리고 그 이후에는 자신의 결백을 호소할 정황과 증거를 찾았어도 들어주는 곳이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
인신보호영장제도에 의해서 우회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길도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당사자로서는 굉장히 가혹하고 매우 어려운 열악한 입장에 놓임으로써 자국민 보호에 상당히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 해외에 물건을 수출하다가 사소한 실수 또는 위법만으로도 이 씨처럼 쉽게 넘겨지는 사례가 잇따를 거란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 최상천/청주상공회의소 조사진흥부장 ▶
실수에 의해서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기는데 만일 전격적으로 이런 인도가 이뤄지고 선례가 남게 된다고 하면 중소기업들이 어떻게 안심하고 해외시장 개척하고 수출할 수 있겠습니까.
이헌석 씨의 부인은 법원의 인도 결정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 박진명 / 이헌석 부인 ▶
집으로 돌려보내주세요. 국민이 그냥 잘한 게 없더라도 내 나라 내 백성이니까 국민이 지켜주시길 원해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상황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 이헌석 대표 ▶
이거 끝나고 나면 이민 가고 싶어 진짜. 여기 있고 싶지가 않아. 다 미친X들 같아. 그냥 보면 알 수 있는데...
죄를 지었더라도 충분히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고, 수사기관과 사법부는 최대한 듣고 신중한 결정을 내리는 것.
더구나 그 대상이 이역만리 낯선 외국의 법정에 서야할 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같은 호소는 더욱 절박할 겁니다.
혹시라도 억울한 게 없을지, 우리 제도에 한 번 더 챙겨봐야할 건 없는지,
묻고 또 되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난 2012년 미국 검찰이 사기 미수 등의 혐의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는데 작년 말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구속된 이 씨는 소명도 충분히 하지 못한 채 미국으로의 인도가 결정됐습니다.
미국은 우리 측의 인도 요청이 있을 경우 인신 보호 요청을 통해 범죄 피의자가 자신의 입장을 수차례에 걸쳐 소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단 한 번의 심사로 여부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 씨의 경우 송환이 결정된 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몇몇 증거와 정황을 찾아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미 결정됐으니 미국 법정에서 이기고 돌아오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 씨는 이대로 미국으로 보내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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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9일 중소기업 대표 이헌석 씨는 집 근처의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한 외국 회사가 이씨의 회사를 불법적으로 인수, 합병하려는 시도에 대해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박진명 / 이헌석 부인 ▶
추가 자료 경찰서에서 요구하는데 그거 갖다 주고 중국 갔다 올게, 그렇게 하고 나갔어요.
그런데 이 씨의 부인은 잠시 뒤 남편으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 박진명 / 이헌석 부인 ▶
9시 반에서 10시 그 사이였던 거 같아요. '이상한 일이, 안 좋은 일이 생겼어' 그러면서 '내가 지금 구속된대.'
서울경찰청 외사과 직원들이 경찰서에 나오는 이 씨를 기다리고 있다가 체포한 겁니다.
◀ 대전 둔산경찰서 수사관 ▶
서울청에서 전화가 왔어요. 혹시 이헌석 씨라고 고소인이네요. 본인 하고 있는 사건의. 그래서 아 맞다 그런데 왜 전화를 주셨냐 그랬더니 미국에서 구속영장이 발부가 됐다는 거에요.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적도 없는 이 씨는 자신도 모르게 발부된 구속 영장에 의해 그날 오후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 이헌석 ▶
이런 바보 같은 일이 어디 있냐고. 한 번도 내가 길 가다가 침도 뱉어본 적도 없고 쓰레기 한 번을 버려본 적이 없는데..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한 기업인이 어느 날 갑자기 철창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 남성은 구속되기 전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를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구속이 되고 나서야 자신을 범죄인으로 규정하고 신병 인도를 요청한 건, 바다 건너 미국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뉴스에서나 가끔 보던, 이른바 범죄인 인도 요청이었습니다.
충북 청주시의 한 공장.
사무실 건물의 한 층이 절반 이상 텅 비어 있고, 책상과 컴퓨터, 각종 집기들은 한쪽으로 모아져 있습니다.
남아 있는 책상들도 자리를 지키는 직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로 아래층은 책상을 모두 치우고 아예 폐쇄했는데,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백명이 넘었던 직원은 대표가 구속된 이후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 서수덕 이사 ▶
올해 대표님 상황 발생이 되면서 지금 한 2개월에 걸쳐서 70명 가까이가
인력손실이 있어서 지금은 30명.. (1월부터?) 네 그렇습니다.
이헌석 대표를 구속시킨 사건은 6년 전인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 씨의 회사는 기존 제품에 비해 전기 비용을 30~40% 가량 줄일 수 있는 송풍기를 개발했습니다.
이 송풍기를 미국 정부가 짓는 하수처리장 시설에 잇따라 납품하게 되면서
매출도 급격히 늘었습니다.
◀ 이민석 / 당시 영업본부장 ▶
매출도 갑자기 막 120억, 150억 하던 게 300억 가까이 쭉 올라가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거죠.
그런데 미국은 자국 정부의 예산이 투입되는 공사에는 반드시 미국산 제품만 쓰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ARRA법'이라 부르는 이 법을 지키기 위해 이 씨는 미국에 공장을 따로 차리고 미국인 직원들이 한국에서 보내주는 부품을 조립해 납품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 씨의 회사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맙니다.
납기를 못 지킬까봐 한국에서 완제품 수준으로 기계를 만들어 미국에 보낸 겁니다.
◀ 이민석 / 당시 영업본부장 ▶
미국에서 조립을 해서 나가려면 거의 한 두달이 넘게 걸려야 돼요. 그런데 일주일 후부터 돌려야 되는 거예요, 물건을. 그렇지 않으면 미국 하수처리장에서 폐수가 방류가 돼..
시간을 줄이겠다고 개당 1톤 가까운 장비를 비싼 돈 들여가며 비행기로 보내면서 'Assemblled in USA', '미국에서 조립됨'이라는 표시까지 붙였습니다.
2011년 1월, 미국 세관은 이를 적발했고 원산지 표시 위반으로 관련 제품 14억원어치를 모두 압류했습니다.
◀ 서수덕 이사 ▶
'Assembled in USA' 표기도 미국에서 당연히 적어야 되는데 국내 공장, 우리 직원들도 저를 포함해서 영어 부분에 대한 그리고 무역에 대한 그런 개념이 부족한 데서 나온 상황이구요.
이 씨의 회사는 납기 지연금을 물었고, 미국에서 새로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등 추가로 30억 가까이 손실을 봤습니다.
여기에 원산지 표시법 위반으로 미국 입찰 자격까지 박탈당했습니다.
사건은 그렇게 끝난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1년 정도 지난 2012년 2월, 미국 검찰이 이헌석 대표를 사기 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한 겁니다.
세관에서 압류된 사례들로 미뤄 이씨가 처음부터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 의사가 없었다고 본 겁니다.
미국 법원이 기소를 할만하다고 인정하면서 이 씨에 대한 체포 영장도 발부됐습니다.
◀ 이찬진 / 이헌석 변호인 ▶
기소에 관해서 결정을 승인해 준 거죠. 승인해 주는 재판을 했다는 거고 그래서 기소장이 들어온 겁니다. (유무죄 판정이 난 상황도 아니네요?) 전혀 아니죠.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이 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한 건 2012년 11월.
하지만 법무부는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작년 12월이 돼서야 인도절차에 착수했습니다.
◀ 정진우 / 법무부 국제형사과장 ▶
증거나 인도필요성 등에 대해서 신중하게 검토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건 같은 경우에 2년 정도 시간이 소요된 걸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사이 이씨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4년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에 이헌석 씨는 지난 1월 체포됐고, 그로부터 2주 뒤, 판사 앞에서 소명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 이민석 / 당시 영업본부장 ▶
1~2분 발언 기회 주고 끝이에요.
(2분밖에 못하셨어요?) 토탈 한 10분 했나요? 마지막으로 항변 한 번 해보십시오 그러니까 전 억울합니다. 그걸로 끝이었어요.
소명이 충분하진 않았지만 결과가 나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 이민석 / 당시 영업본부장 ▶
변호사님 쪽에서 '이건 금세 나오는 일이에요. 별 일 있겠어요? 이정도 일인데. 사람을 죽였거나 반인륜적인 일도 아니고..'
하지만 결론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법원은 수사와 재판의 필요성이 있고 이 씨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고려할 때 미국에서 비인도적인 대우를 받지 않고 충분히 재판을 받을수 있다며 인도를 결정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에 가서 싸우라고 결정한 겁니다.
◀ 이헌석 대표 ▶
여기 3개월, 4개월, 미국 가서 재판하면 토탈 6개월 뭐 이렇게 지나갈 텐데 그 사이 회사 다 망가져. 18년 동안 기술개발해온 회사라고..
법원의 결정 이후, 이씨의 가족들은 미국의 공장 등을 뒤져 사기 의도가 없었음을 호소할 만한 새로운 증거들을 찾아냈습니다.
이 씨의 회사가 ARRA 규정에 맞춰 납품한 공사는 모두 14건.
이 가운데 미국 검찰은 세관에 적발된 6건만 문제삼아 사기 미수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그 앞뒤의 나머지 공사는 모두 규정을 지킨 것들이었습니다.
◀ 이찬진 / 이헌석 변호인 ▶
왜 유독 14개 중에서 이 6개만 가지고 뭐라고..납기 지연을 해서 우리가 한국에서 완제품을 보낸 건 잘못한 건 맞는데 그걸 가지고 어떻게 사기가 되느냐
미국 검찰은 미국 현지 공장 직원들의 진술을 중요한 근거로 삼았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이 발견됐습니다.
한 미국 현지 직원은, 이헌석 대표가 '부품으로 보내면 운송비가 너무 비싸 아예 완제품으로 보내는 게 낫다'고 말했으며, 그때부터 미국 공장에는 조립된 완제품만 운송됐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이 직원은 2010년 6월에 회사를 그만뒀고, 문제가 된 완제품은 그보다 5개월이나 뒤에 운송된 것들입니다.
이 씨 측은 그가 위증을 한 거라고 주장합니다.
◀ 박진명 / 이헌석 부인 ▶
이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거죠. 그 사람이 물건을 볼 수도 없었던 거고..
이런 증거들을 모아 우리 대법원에 항고하고 집행정지 신청도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범죄인 인도 결정은 이른바 '단심제'라 한 번 결정되고 나면 되돌릴 수가 없다는 겁니다.
◀ 이찬진 / 이헌석 변호인 ▶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불구속 수사 및 불구속 재판의 원칙, 불복해서 항소, 상고할 수 있는 권리, 재판 받을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잖아요. 소속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왜 달리 취급이 되어야 되느냐에 관한 문제가 있는 거죠.
이 씨는 구속된 상태에서 꼼짝없이 미국으로 보내질 예정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다른 결정이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범죄인 인도법에 따르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이 범죄가 미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수준의 처벌이 가능해야 범죄인인도를 할 수 있습니다.
미국 검찰이 이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원산지 표시법 위반에 의한 '사기미수'.
◀ 김영석 교수 / 이대 법학전문대학원 ▶
사기 미수라고 하는 것이 과연 1년 이상의 그것도 벌금형이 아니라 징역형 그런 걸로 해당이 되는지..법원에서 결정을 했으니까 맞다고는 생각이 되는데 과연 사실이 그런 건지...
게다가 이 씨는 우리나라 사람이고 문제가 된 물건도 한국에서 만든 만큼
유,무죄 판단은 우리 사법부가 하면 될 일이라는 겁니다.
◀ 김영석 교수 / 이대 법학전문대학원 ▶
우리나라 영역에서 일부 발생했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서는 전부라고 할 수도 있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속지주의 원칙상 우리나라가 형사관할권을 행사할 수도 있기 때문에 범죄인 인도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사유가 됩니다.
우리와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은 미국도 단심제로 인도 여부를 결정하지만,우리나라에는 없는, '인신보호 청원'이라는 제도를 별도로 두고 있습니다.
인신보호청원이란, 범죄인 인도 대상자가 수사기관의 구금이나 결정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이 과정에서 부당함이 인정될 경우 법무부 장관이 최종적으로 인도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태원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아더 패터슨은 지난 2012년 10월 한국으로 송환이 결정되고도 이 인신보호청원을 통해 시간을 벌고 있습니다.
이헌석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입니다.
단 한차례의 결정, 그리고 그 이후에는 자신의 결백을 호소할 정황과 증거를 찾았어도 들어주는 곳이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
인신보호영장제도에 의해서 우회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길도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당사자로서는 굉장히 가혹하고 매우 어려운 열악한 입장에 놓임으로써 자국민 보호에 상당히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 해외에 물건을 수출하다가 사소한 실수 또는 위법만으로도 이 씨처럼 쉽게 넘겨지는 사례가 잇따를 거란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 최상천/청주상공회의소 조사진흥부장 ▶
실수에 의해서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기는데 만일 전격적으로 이런 인도가 이뤄지고 선례가 남게 된다고 하면 중소기업들이 어떻게 안심하고 해외시장 개척하고 수출할 수 있겠습니까.
이헌석 씨의 부인은 법원의 인도 결정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 박진명 / 이헌석 부인 ▶
집으로 돌려보내주세요. 국민이 그냥 잘한 게 없더라도 내 나라 내 백성이니까 국민이 지켜주시길 원해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상황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 이헌석 대표 ▶
이거 끝나고 나면 이민 가고 싶어 진짜. 여기 있고 싶지가 않아. 다 미친X들 같아. 그냥 보면 알 수 있는데...
죄를 지었더라도 충분히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고, 수사기관과 사법부는 최대한 듣고 신중한 결정을 내리는 것.
더구나 그 대상이 이역만리 낯선 외국의 법정에 서야할 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같은 호소는 더욱 절박할 겁니다.
혹시라도 억울한 게 없을지, 우리 제도에 한 번 더 챙겨봐야할 건 없는지,
묻고 또 되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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