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송양환 기자
송양환 기자
가출 후 119일 "기댈 곳이 없었다"
가출 후 119일 "기댈 곳이 없었다"
입력
2015-04-13 09:29
|
수정 2015-04-1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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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말싸움을 한 뒤 집을 나간 중학교 2학년 한 모양.
옷가지도 챙겨나가지 않았을 정도로 우발적이었던 한 양의 가출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참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갈 곳 없이 떠돌다 포주에게 넘겨져 조건만남의 덫에 빠진 한 양은 이렇게 만난 남성에게 무참히 살해된 것입니다.
한 양이 이런 비참한 결말로 내몰릴 때까지 막을 방법은 과연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인가.
지금도 거리를 떠돌며 조건 만남으로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
이들은 2580 취재진에게 한 양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털어놓았습니다.
======================================================================
작년 11월 28일.
충북 증평에서 중학교 2학년 15살 한 모양이 집을 나갔습니다.
전학 문제로 가족과 조금 다툰 뒤였습니다.
◀ 충북 괴산경찰서 관계자 ▶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하고서 얘가 쓰는 휴대폰은 자기 엄마 명의 휴대폰이거든. 그거만 들고 나간 거죠."
("맨 몸으로?") "네."
옷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나갔습니다.
가족도 선생님도 전에 없던 한 양의 가출이 길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OO중학교 교사 ▶
"성격이 상당히 명랑하고 애가 밝았어요. 2학년 말이니까 아이를 기다린 거죠 학교에서는. 3학년 진급도 시켜놓고."
가출 넉 달이 된 3월 26일 아침,
한양은 서울 봉천동의 한 모텔에 나타났습니다.
빨간색 스웨터를 입은 15살 한 양 곁에는 낯선 남성이 함께 있습니다.
그날 이 모텔에서, 이 남성의 손에 한 양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 한증섭 형사과장 / 서울 관악경찰서 ▶
"살인 용의자 김 모씨는 피해자 한 양과 일명 조건만남을 하기로 하고 모텔에 투숙한 후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사망하게 하여 살해한 것입니다"
한 양은 가출을 한 뒤, 돈을 받고 성관계를 하는 이른바 '조건 만남'을 하며 생활했습니다.
그날도 스마트폰 채팅어플로 만난 남성을 따라 모텔에 들어갔다 변을 당했습니다.
15살 소녀의 가출이 이런 참극으로 끝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한 양의 가출신고가 접수된 건 집을 나간 뒤 보름이 지난 12월 12일.
어머니와 연락을 계속하며 곧 집으로 돌아가겠다던 한 양이 전날 돌연 자신을 찾지 말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 충북 괴산경찰서 관계자 ▶
"'나를 자꾸 찾는 것 같은데, 자꾸 그러면 난 더 깊이 숨을 거다'라고 그러니까 신고를 하게 된 거죠."
휴대폰 위치추적을 실시한 경찰은 12월 19일과 24일 휴대폰의 위치가 경북 구미로 확인돼 수색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한양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2580 취재 결과 한양은 가출한 뒤 서울에 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가출청소년들이 모여 사는 이른바 '가출팸' 운영자인 20대 여성 A씨를 찾아 서울 신림동 원룸촌에 온 겁니다.
한 양이 집을 나온 직후였다고 합니다.
◀ A씨 / '가출팸' 운영자(음성대역) ▶
"11월 말인지 12월 초에 그 아이가 저한테 SNS로 쪽지를 보냈어요. 자기가 집을 나왔는데 잠잘 데가 없다 자기 재워줄 수 있냐고 해서 같이 지내자고 했죠."
한 양을 데리고 있던 A씨는 12월 중순, 30만 원을 받기로 하고 27살 김 모씨에게 한 양을 소개시켰습니다.
김 씨는 여성들을 데리고 성매매를 시키는 이른바 포주였습니다.
◀ 김OO / 성매매 업주 ▶
"신림동에서 구인광고를 내다가 따로 연락이 와가지고 이런 친구가 있다고.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됐어요."
("미성년자로 보이진 않았어요?")
"처음엔 저희도 가물가물했는데 짐작은 하고 있었죠"
이때부터 한 양은 조건만남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외부와의 연락도 차단됐습니다.
한 양이 숨지기 직전까지 사용했던 휴대전화는 포주가 구해다 준 이른바 '공기계폰'.
◀ 김OO / 성매매 업주 ▶
"한 양은 원래 폰이 있었고요. 액정이 나가서 폰이 안 돼서 같이 일하던 형이 핸드폰을 가져다 줬죠."
(공기계 폰을?) "네."
공기계폰은 유심칩이 없어 통화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wifi로 인터넷 연결은 가능하기 때문에 성매매 여성이나 포주들은 이 공기계폰으로 PC방, 커피숍 등에서 채팅어플에 접속해 성매수 남성을 찾습니다.
위치추적과 사용자 확인이 어려워 경찰을 따돌릴 수 있고, 성매매 여성들이 외부와 연락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임희섭 경사 / 서울 관약경찰서 ▶
"여성들이 처음에 성매매 그쪽으로 흘러 들어갔을 때는 폰을 포주들한테 뺏겨요. 뺏겨서 포주들이 그 폰을 다 초기화시켜서 다른 데로 돌려요 대포폰처럼."
이렇게 외부와 차단된 한 양은 간간이 SNS를 통해서만 친구들과 연락했습니다.
1월 초엔 친구들이 한 양을 찾으러 서울까지 올라왔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 충북 괴산경찰서 관계자 ▶
"1월 경에 (서울로) 올라갔는데 만나지 못해서 (SNS) 음성통화로 통화를 했는데 '가출해보니까 힘들더라'라는 말을 했다.."
이 시기 한양은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포주들에게 계속 감시를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 임희섭 경사 / 서울 관악경찰서 ▶
"남자들은 그 옆에서, 그 옆방에 잡아서 여자들을 관리를 해요 못 나가게. 아니면 나가더라도 같이 나갈 수 있게. 남자들이 옆에서 항상 붙어있어요."
가출팸에서 성매매 포주에게 넘겨져 외부와 연락이 차단되고 감시까지 받는 상황.
한 양은 그렇게 죽음까지 이르게 된 겁니다.
사춘기 소녀의 가출은 우발적이었지만, 그 이후에 그가 만나게 된 세상은 이렇게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그래서 한 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걸 미리 알고 있다면 집을 나가는 청소년의 수가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거리에는 언제 소리없이 사라질지 모르는 또 다른 한 양이 많이 있습니다.
한 양이 성매수 남성을 만났던 채팅어플.
조건만남을 찾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2580은 이 어플에서 한 여성을 접촉했습니다.
새벽 1시에 만난 김 모양은 얼굴에 여드름이 있는 어린 모습이었습니다.
◀ 김OO (가명) ▶
"채팅? 제가 늦게 나왔죠 죄송해요. 여기 위로 올라가요."
취재진을 유흥가로 안내하던 김 양은 배가 고프다고 했습니다.
◀ 김OO (가명) ▶
"저 맛있는 거 한 개만 사주시면 안돼요?"
"뭐 먹고 싶은데?"
"저요? 여기에서 맛있는 거.."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산 뒤, 김양은 미리 정해놓은 모텔로 향했고
모텔 주인은 신분증 검사도 없이 방 열쇠를 내줬습니다.
냉장고 안 음료수를 꺼내 허겁지겁 치킨을 먹는 김양은 1998년생 올해 17살입니다.
취재진은 신분을 밝힌 뒤,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 김OO (가명) ▶
"집 나온 상태요."
("가출했어요? 언제 가출한 거예요?")
"저요? 세달, 네달 전인가."
김 양은 숨진 한 양처럼 채팅어플로 조건만남을 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처음 조건만남을 한 건 첫 가출을 한 14살 때.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나섰지만 끔찍했다고 말합니다.
◀ 김OO (가명) ▶
"엄청 무서웠어요. 그냥 다리도 후들후들 거리고 온몸이 다 떨리고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머리가 많이 복잡하고 힘든데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었어요"
하루에 보통 5명의 남성을 상대한다는 김 양.
잘못된 건 알고 있지만, 집에 돌아가기는 싫고 밖에서 생활하려면 돈이 필요해서 계속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 김OO (가명) ▶
"몸 머리부터 끝까지 다 오염된 거 같고 감염된 거같이 무서운데 속으로는 진짜 타들어갈 만큼 엄청 싫고 죽어도 싫은데 겉으로는 그냥 웃고 그냥 즐거운 척"
김 양 역시 공기계폰만 가지고 있어 외부와 연락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 김OO (가명) ▶
"핸드폰이 두 개인가 세 개에요. 다 공기계예요. 핸드폰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가출, 조건만남, 공기계폰.
모든 상황이 살해된 한 양과 같은 17살 소녀.
그래도 집에 들어가기는 싫다고 했습니다.
◀ 김OO (가명) ▶
"안 해요. 절대로 안 해요. 가서 뭐해요. 가서 또 맞고 잔소리 듣고. 차라리 그럴 바에는 그냥 밖에서 조건만남을 하든 뭐 하는 게 더 낫지"
그런데 대화를 마치고 돌아가는 김 양이 모텔 앞에서 한 승용차에 타는 게
목격됐습니다.
승용차에는 운전하는 남성과 함께 앳된 모습의 또다른 여성이 타고 있었고
차량은 황급히 사라졌습니다.
김 양 역시 성매매 조직에 묶여 있는 듯했습니다.
2580은 이 일대에서 청소년들을 이용한 조직적인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정황을 경찰에 알리고 수사를 요청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출청소년 수는 약 22만 명.
전체 청소년 인구의 2% 정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가출한 이들이 머물 수 있는 쉼터는 전국에 100여 곳 수용 인원은 1천5백 명 남짓.
나머지의 상당수는 거리를 헤매거나 가출팸, 성매매 포주 등과 함께 생활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 이현숙 대표 / 탁틴내일 ▶
"가출팸 같은 경우에도 보면 자기식대로의 대안가정을 만든 것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뭔가 가족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유대관계라든지.."
특히 단순히 일탈을 위한 가출이 아니라 가정폭력 등에 시달리다가 집을 뛰쳐나오는 이른 바 '탈출형 가출'의 경우 아이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결국 돈이 필요한 청소년들은 쉽게 범죄 유혹에 빠지게 되고,
특히 여성 청소년들을 노리는 덫은 사회 곳곳에 깔려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주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채팅, 친구 선후배를 통해 조건만남을 제안받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 이현숙 대표 / 탁틴내일 ▶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거나 살 수 있는 방식들이 있었다고 하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데 그런 길을 가기 전에 너무 빠르게 성매매를 통해서 생존하는 방식을 배우는 거죠"
이들을 보호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포주와 함께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 머물며 조건만남을 했던 17살 서 모양.
◀ 서OO (가명) ▶
"돈을 짧은 시간 내에 많이 벌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일 하러 갔던 건데 그런 일인 줄은 모르고 갔죠"
하지만 서 양은 하루에 최소 5명 씩 성매매를 강요당했고 성매매 대가로 받은 돈 1천 5백만 원도 포주에게 빼앗겼습니다.
일을 그만 둔다고 하자 포주는 서양을 심하게 폭행했고 숙소 안에서 성폭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 서OO (가명) ▶
"야구 배트 들고 와서 때리고 진짜 아무 생각 안 들어요. 아 죽겠구나. 드는 생각 딱 하나에요. 아, 죽겠구나"
결국 함께 일하던 다른 성매매 여성들과 함께 겨우 탈출해 경찰에 신고하고 나서야 포주들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 최정기 강력팀장 / 서울 중랑경찰서 ▶
"본인도 처벌을 당할 걸 알면서도 찾아온 경우는 극히 드문데 오죽했으면 이 여성들이 이렇게 경찰서를 자기발로 찾아왔을 것인가. 개인적으로 경찰관인 걸 떠나서 너무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너무 그런 학대를 받고 또 강요에 의해서 성매매를 했다는.."
21살 최 모양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8살 때 가출했습니다.
곧 가출팸에 합류했습니다.
처음에 갈 곳 없던 최양을 따뜻하게 맞아줬던 가출팸은 곧 본색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 최OO (가명) ▶
"처음에는 한 3~4일 정도는 정말 잘 해줘요. 그러면 나는 여기 잘 왔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이제 슬쩍 말을 건네요. 야 너 조건만남 해"
또래가 모인 가출팸 안에서도 여성 청소년을 착취하는 일이 심각하게 벌어진다고 말합니다.
◀ 최OO (가명) ▶
"거기서 제일 아래인 애들이 조건만남을 계속 하는 거고 걔네가 못 한다, 도망갔다 하면 다음번인 여자애들이 하는 거고. '우리 데리고 있는 여자 있는데 너 얘 사갈래?' 이러면서 돈으로 사고 팔고 계속"
2580이 만난 10대 가출 소녀는 한 양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 김OO (가명) ▶
"그냥 여자도 안쓰럽고. 뭔가 꼭 저 같았어요. 제가 만났던 남자가 저를 죽인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아이들의 불행을 이용해 돈을 벌거나
쾌락을 좇는 추악한 어른들이 존재하는 한
이 악순환은 끊을 방법이 없습니다.
◀ 김OO (가명) / 성매매 업주▶
"매수남들이 미성년자라고 돌려보내거나 꺼려하거나 이러지는 않던가요?"
"네 그러지는 않아요."
◀ 서OO (가명) ▶
(주민증 검사 이런 거 안해요?)
"안 해요 단 한번도. 차라리 민증 검사 해서라도 내가 안 들어가서 차라리 안하고 싶다 그런 생각 할 때도 많죠."
이런저런 이유로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
이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못하더라도 안전한 쉼터를 마련해 적어도 성매매의 늪으로 내몰리지는 않도록 막아주는 일.
15살 한 양을 어이없게 떠나보낸 어른들에게 남은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옷가지도 챙겨나가지 않았을 정도로 우발적이었던 한 양의 가출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참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갈 곳 없이 떠돌다 포주에게 넘겨져 조건만남의 덫에 빠진 한 양은 이렇게 만난 남성에게 무참히 살해된 것입니다.
한 양이 이런 비참한 결말로 내몰릴 때까지 막을 방법은 과연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인가.
지금도 거리를 떠돌며 조건 만남으로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
이들은 2580 취재진에게 한 양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털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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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28일.
충북 증평에서 중학교 2학년 15살 한 모양이 집을 나갔습니다.
전학 문제로 가족과 조금 다툰 뒤였습니다.
◀ 충북 괴산경찰서 관계자 ▶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하고서 얘가 쓰는 휴대폰은 자기 엄마 명의 휴대폰이거든. 그거만 들고 나간 거죠."
("맨 몸으로?") "네."
옷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나갔습니다.
가족도 선생님도 전에 없던 한 양의 가출이 길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OO중학교 교사 ▶
"성격이 상당히 명랑하고 애가 밝았어요. 2학년 말이니까 아이를 기다린 거죠 학교에서는. 3학년 진급도 시켜놓고."
가출 넉 달이 된 3월 26일 아침,
한양은 서울 봉천동의 한 모텔에 나타났습니다.
빨간색 스웨터를 입은 15살 한 양 곁에는 낯선 남성이 함께 있습니다.
그날 이 모텔에서, 이 남성의 손에 한 양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 한증섭 형사과장 / 서울 관악경찰서 ▶
"살인 용의자 김 모씨는 피해자 한 양과 일명 조건만남을 하기로 하고 모텔에 투숙한 후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사망하게 하여 살해한 것입니다"
한 양은 가출을 한 뒤, 돈을 받고 성관계를 하는 이른바 '조건 만남'을 하며 생활했습니다.
그날도 스마트폰 채팅어플로 만난 남성을 따라 모텔에 들어갔다 변을 당했습니다.
15살 소녀의 가출이 이런 참극으로 끝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한 양의 가출신고가 접수된 건 집을 나간 뒤 보름이 지난 12월 12일.
어머니와 연락을 계속하며 곧 집으로 돌아가겠다던 한 양이 전날 돌연 자신을 찾지 말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 충북 괴산경찰서 관계자 ▶
"'나를 자꾸 찾는 것 같은데, 자꾸 그러면 난 더 깊이 숨을 거다'라고 그러니까 신고를 하게 된 거죠."
휴대폰 위치추적을 실시한 경찰은 12월 19일과 24일 휴대폰의 위치가 경북 구미로 확인돼 수색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한양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2580 취재 결과 한양은 가출한 뒤 서울에 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가출청소년들이 모여 사는 이른바 '가출팸' 운영자인 20대 여성 A씨를 찾아 서울 신림동 원룸촌에 온 겁니다.
한 양이 집을 나온 직후였다고 합니다.
◀ A씨 / '가출팸' 운영자(음성대역) ▶
"11월 말인지 12월 초에 그 아이가 저한테 SNS로 쪽지를 보냈어요. 자기가 집을 나왔는데 잠잘 데가 없다 자기 재워줄 수 있냐고 해서 같이 지내자고 했죠."
한 양을 데리고 있던 A씨는 12월 중순, 30만 원을 받기로 하고 27살 김 모씨에게 한 양을 소개시켰습니다.
김 씨는 여성들을 데리고 성매매를 시키는 이른바 포주였습니다.
◀ 김OO / 성매매 업주 ▶
"신림동에서 구인광고를 내다가 따로 연락이 와가지고 이런 친구가 있다고.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됐어요."
("미성년자로 보이진 않았어요?")
"처음엔 저희도 가물가물했는데 짐작은 하고 있었죠"
이때부터 한 양은 조건만남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외부와의 연락도 차단됐습니다.
한 양이 숨지기 직전까지 사용했던 휴대전화는 포주가 구해다 준 이른바 '공기계폰'.
◀ 김OO / 성매매 업주 ▶
"한 양은 원래 폰이 있었고요. 액정이 나가서 폰이 안 돼서 같이 일하던 형이 핸드폰을 가져다 줬죠."
(공기계 폰을?) "네."
공기계폰은 유심칩이 없어 통화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wifi로 인터넷 연결은 가능하기 때문에 성매매 여성이나 포주들은 이 공기계폰으로 PC방, 커피숍 등에서 채팅어플에 접속해 성매수 남성을 찾습니다.
위치추적과 사용자 확인이 어려워 경찰을 따돌릴 수 있고, 성매매 여성들이 외부와 연락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임희섭 경사 / 서울 관약경찰서 ▶
"여성들이 처음에 성매매 그쪽으로 흘러 들어갔을 때는 폰을 포주들한테 뺏겨요. 뺏겨서 포주들이 그 폰을 다 초기화시켜서 다른 데로 돌려요 대포폰처럼."
이렇게 외부와 차단된 한 양은 간간이 SNS를 통해서만 친구들과 연락했습니다.
1월 초엔 친구들이 한 양을 찾으러 서울까지 올라왔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 충북 괴산경찰서 관계자 ▶
"1월 경에 (서울로) 올라갔는데 만나지 못해서 (SNS) 음성통화로 통화를 했는데 '가출해보니까 힘들더라'라는 말을 했다.."
이 시기 한양은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포주들에게 계속 감시를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 임희섭 경사 / 서울 관악경찰서 ▶
"남자들은 그 옆에서, 그 옆방에 잡아서 여자들을 관리를 해요 못 나가게. 아니면 나가더라도 같이 나갈 수 있게. 남자들이 옆에서 항상 붙어있어요."
가출팸에서 성매매 포주에게 넘겨져 외부와 연락이 차단되고 감시까지 받는 상황.
한 양은 그렇게 죽음까지 이르게 된 겁니다.
사춘기 소녀의 가출은 우발적이었지만, 그 이후에 그가 만나게 된 세상은 이렇게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그래서 한 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걸 미리 알고 있다면 집을 나가는 청소년의 수가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거리에는 언제 소리없이 사라질지 모르는 또 다른 한 양이 많이 있습니다.
한 양이 성매수 남성을 만났던 채팅어플.
조건만남을 찾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2580은 이 어플에서 한 여성을 접촉했습니다.
새벽 1시에 만난 김 모양은 얼굴에 여드름이 있는 어린 모습이었습니다.
◀ 김OO (가명) ▶
"채팅? 제가 늦게 나왔죠 죄송해요. 여기 위로 올라가요."
취재진을 유흥가로 안내하던 김 양은 배가 고프다고 했습니다.
◀ 김OO (가명) ▶
"저 맛있는 거 한 개만 사주시면 안돼요?"
"뭐 먹고 싶은데?"
"저요? 여기에서 맛있는 거.."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산 뒤, 김양은 미리 정해놓은 모텔로 향했고
모텔 주인은 신분증 검사도 없이 방 열쇠를 내줬습니다.
냉장고 안 음료수를 꺼내 허겁지겁 치킨을 먹는 김양은 1998년생 올해 17살입니다.
취재진은 신분을 밝힌 뒤,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 김OO (가명) ▶
"집 나온 상태요."
("가출했어요? 언제 가출한 거예요?")
"저요? 세달, 네달 전인가."
김 양은 숨진 한 양처럼 채팅어플로 조건만남을 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처음 조건만남을 한 건 첫 가출을 한 14살 때.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나섰지만 끔찍했다고 말합니다.
◀ 김OO (가명) ▶
"엄청 무서웠어요. 그냥 다리도 후들후들 거리고 온몸이 다 떨리고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머리가 많이 복잡하고 힘든데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었어요"
하루에 보통 5명의 남성을 상대한다는 김 양.
잘못된 건 알고 있지만, 집에 돌아가기는 싫고 밖에서 생활하려면 돈이 필요해서 계속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 김OO (가명) ▶
"몸 머리부터 끝까지 다 오염된 거 같고 감염된 거같이 무서운데 속으로는 진짜 타들어갈 만큼 엄청 싫고 죽어도 싫은데 겉으로는 그냥 웃고 그냥 즐거운 척"
김 양 역시 공기계폰만 가지고 있어 외부와 연락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 김OO (가명) ▶
"핸드폰이 두 개인가 세 개에요. 다 공기계예요. 핸드폰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가출, 조건만남, 공기계폰.
모든 상황이 살해된 한 양과 같은 17살 소녀.
그래도 집에 들어가기는 싫다고 했습니다.
◀ 김OO (가명) ▶
"안 해요. 절대로 안 해요. 가서 뭐해요. 가서 또 맞고 잔소리 듣고. 차라리 그럴 바에는 그냥 밖에서 조건만남을 하든 뭐 하는 게 더 낫지"
그런데 대화를 마치고 돌아가는 김 양이 모텔 앞에서 한 승용차에 타는 게
목격됐습니다.
승용차에는 운전하는 남성과 함께 앳된 모습의 또다른 여성이 타고 있었고
차량은 황급히 사라졌습니다.
김 양 역시 성매매 조직에 묶여 있는 듯했습니다.
2580은 이 일대에서 청소년들을 이용한 조직적인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정황을 경찰에 알리고 수사를 요청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출청소년 수는 약 22만 명.
전체 청소년 인구의 2% 정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가출한 이들이 머물 수 있는 쉼터는 전국에 100여 곳 수용 인원은 1천5백 명 남짓.
나머지의 상당수는 거리를 헤매거나 가출팸, 성매매 포주 등과 함께 생활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 이현숙 대표 / 탁틴내일 ▶
"가출팸 같은 경우에도 보면 자기식대로의 대안가정을 만든 것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뭔가 가족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유대관계라든지.."
특히 단순히 일탈을 위한 가출이 아니라 가정폭력 등에 시달리다가 집을 뛰쳐나오는 이른 바 '탈출형 가출'의 경우 아이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결국 돈이 필요한 청소년들은 쉽게 범죄 유혹에 빠지게 되고,
특히 여성 청소년들을 노리는 덫은 사회 곳곳에 깔려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주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채팅, 친구 선후배를 통해 조건만남을 제안받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 이현숙 대표 / 탁틴내일 ▶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거나 살 수 있는 방식들이 있었다고 하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데 그런 길을 가기 전에 너무 빠르게 성매매를 통해서 생존하는 방식을 배우는 거죠"
이들을 보호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포주와 함께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 머물며 조건만남을 했던 17살 서 모양.
◀ 서OO (가명) ▶
"돈을 짧은 시간 내에 많이 벌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일 하러 갔던 건데 그런 일인 줄은 모르고 갔죠"
하지만 서 양은 하루에 최소 5명 씩 성매매를 강요당했고 성매매 대가로 받은 돈 1천 5백만 원도 포주에게 빼앗겼습니다.
일을 그만 둔다고 하자 포주는 서양을 심하게 폭행했고 숙소 안에서 성폭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 서OO (가명) ▶
"야구 배트 들고 와서 때리고 진짜 아무 생각 안 들어요. 아 죽겠구나. 드는 생각 딱 하나에요. 아, 죽겠구나"
결국 함께 일하던 다른 성매매 여성들과 함께 겨우 탈출해 경찰에 신고하고 나서야 포주들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 최정기 강력팀장 / 서울 중랑경찰서 ▶
"본인도 처벌을 당할 걸 알면서도 찾아온 경우는 극히 드문데 오죽했으면 이 여성들이 이렇게 경찰서를 자기발로 찾아왔을 것인가. 개인적으로 경찰관인 걸 떠나서 너무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너무 그런 학대를 받고 또 강요에 의해서 성매매를 했다는.."
21살 최 모양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8살 때 가출했습니다.
곧 가출팸에 합류했습니다.
처음에 갈 곳 없던 최양을 따뜻하게 맞아줬던 가출팸은 곧 본색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 최OO (가명) ▶
"처음에는 한 3~4일 정도는 정말 잘 해줘요. 그러면 나는 여기 잘 왔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이제 슬쩍 말을 건네요. 야 너 조건만남 해"
또래가 모인 가출팸 안에서도 여성 청소년을 착취하는 일이 심각하게 벌어진다고 말합니다.
◀ 최OO (가명) ▶
"거기서 제일 아래인 애들이 조건만남을 계속 하는 거고 걔네가 못 한다, 도망갔다 하면 다음번인 여자애들이 하는 거고. '우리 데리고 있는 여자 있는데 너 얘 사갈래?' 이러면서 돈으로 사고 팔고 계속"
2580이 만난 10대 가출 소녀는 한 양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 김OO (가명) ▶
"그냥 여자도 안쓰럽고. 뭔가 꼭 저 같았어요. 제가 만났던 남자가 저를 죽인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아이들의 불행을 이용해 돈을 벌거나
쾌락을 좇는 추악한 어른들이 존재하는 한
이 악순환은 끊을 방법이 없습니다.
◀ 김OO (가명) / 성매매 업주▶
"매수남들이 미성년자라고 돌려보내거나 꺼려하거나 이러지는 않던가요?"
"네 그러지는 않아요."
◀ 서OO (가명) ▶
(주민증 검사 이런 거 안해요?)
"안 해요 단 한번도. 차라리 민증 검사 해서라도 내가 안 들어가서 차라리 안하고 싶다 그런 생각 할 때도 많죠."
이런저런 이유로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
이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못하더라도 안전한 쉼터를 마련해 적어도 성매매의 늪으로 내몰리지는 않도록 막아주는 일.
15살 한 양을 어이없게 떠나보낸 어른들에게 남은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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