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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민병호 기자

'버림받은 4할 타자'…짜고 치는 그들만의 리그

'버림받은 4할 타자'…짜고 치는 그들만의 리그
입력 2015-06-01 09:38 | 수정 2015-06-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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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서울고를 황금사자기 고교야구 우승으로 이끌고 수훈상을 받은 홍승우군.

    야구특기생으로 대학 3곳에 합격했지만, 하나같이 야구부에는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프로와 대학 진학을 두고 감독과 갈등을 빚은 탓에 추천서를 받지 못하고 여러 대학에 복수 지원했는데, 이 때문에 이미 입학하기로 했던 다른 선수가 불합격했다는 것입니다.

    야구판의 관행을 어겼다는 이유로 미운털이 박힌 홍군은 현재 야구선수의 꿈을 버리고 재수생으로 입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전 스카우트 금지제도는 허울뿐이고 고교와 대학간의 커넥션으로 결정되는 야구 입시 의혹.

    야구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올해 초 고등학교를 졸업한 홍승우 군.

    사회인 야구를 하는 아버지 부탁으로 동호회원들에게 야구를 지도중인 승우 군은 얼마전까지 촉망받는 야구선수였습니다.

    지난해 황금사자기 전국 고교야구 결승전.

    전반기 왕중왕전으로 불리는 대회 결승전에서 결승타 포함 5타점을 쓸어담은 홍승우 군은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수훈상과 득점상까지 받았습니다.

    3학년때 출전한 17경기 평균 타율이 4할.

    빼어난 성적으로 체육특기자 전형에 응시해 서울 소재 대학 3곳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승우 군의 입학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홍창기/홍승우 아버지]
    "최종적으로 붙었을 때는 감독한테 전화가 와서 굳이 부르고 싶지는 않다 시끄럽고 복잡해지니까 라고 얘기를 했고요."

    다른 대학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홍창기/홍승우 아버지]
    "등록하고 나니까 바로 00대 코치한테 전화가 왔어요. 넣을지 몰랐다 등록할 줄 몰랐다 왜 했는지 의도가 이상하다 이런식으로 얘기를 했고요."

    승우군은 요즘 입시 학원에 다니며 재수를 하고 있습니다.

    체육특기자가 아닌 일반 학생들처럼 수능 준비를 시작한 겁니다.

    9년 동안의 야구 선수 생활도, 프로선수가 되겠다는 꿈도 여기서 멈췄습니다.

    [홍승우]
    "일이터지고 나서 방에서 안 나왔어요. 한 이틀동안 울기만 했었는데.. (야구할 때도 울어본 적 별로 없죠?) 네, 우승하고도 안 울었고.. 그만 둔다고 생각하니까 그 때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아깝다기보다 아쉬웠죠. 제 의지가 아니라서..."

    촉망받던 4할대 타자, 고교 야구 유망주는 결국 대학 야구부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실력이 없는 것도,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니었지만 대학은 어쩐 일인지 그의 입학을 달가와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2580은 취재를 하면서 성적이나 실력보다 우선하는, '관행'이라고 불리는 야구계의 부조리한 대학입시 행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 수시모집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9월초.

    한 아마야구 인터넷 사이트에 '대학 진학 선수 현황'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야구특기생을 뽑는 30개 대학 합격자들의 이름과 출신 학교,포지션이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아직 원서 접수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합격자 명단이 나돌 수 있을까.

    2580이 일일이 확인한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여기에 명시된 학생의 88%가 실제 그 대학에 입학한 겁니다.

    서울 수도권 소재 대학의 경우엔 적중률이 거의 100%에 가까웠습니다.

    [홍창기/홍승우 아버지]
    "보통은 (고3) 봄에 알고요. 그리고 확정적으로는 첫 대회가 끝나면 알고요. 빠른 애들은 2학년 말에 압니다. 결국은 사전에 다 얘기가 끝났다는 얘기죠."

    합격자를 미리 내정해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입니다.

    승우 군에게 문제가 생긴 것도 이 때문이라고 아버지는 주장합니다.

    기대했던 프로 진출이 무산된 뒤 미리 합의되지 않은 대학에, 그것도 여섯군데나 지원하는 바람에 이 바닥의 불문율을 어겼다는 겁니다.

    [홍창기/홍승우 아버지]
    "자기네는 올해 외야자원을 뽑을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승우가 성적이 좋아서 합격시킬 수 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지방의 모 고등학교 투수가 떨어지게 생겼다. 그 집은 난리가 났다."

    원서를 내자마자 여기저기서 원성이 이어졌습니다.

    [A대학교 야구부 코치/홍승우 부모 녹취]
    "도대체 이렇게 야구판을 시끄럽게 하셔놓고 과연 야구를 하실 생각이 있어서 저희 학교를 지원을 하는 건지 저희도 당황스럽죠."

    대학 관계자도 입학은 할 수 있지만 야구를 하는 건 감독에게 달려있다고 했습니다.

    [B대학교 야구부 코치/홍승우 부모 녹취]
    "일단은 야구는 우리가 못 시켜요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데 학교는 다닐 수가 있죠. 야구부를 하고 싶으면 우리 감독이 있어요. 감독하고 충분히 상의를 해서..."

    서울 소재 이름난 대학들의 지난해 야구특기생 입학경쟁률입니다.

    입학이 하늘의 별따기라고 불리는 곳들이지만 경쟁률은 신기하게도 1.5:1을 넘지 않습니다.

    [강신욱/단국대 국제스포츠 학과]
    "지금 대학에서 한 여섯군데 수시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데 그렇게 홍보를 하더라도 거의 한군데 지원하는 거예요..학내에 있는 다른 교수님들이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거죠."

    일단 원서 접수가 끝난 뒤에는 대학 감독이 선발에 개입하기 어려운 탓에 고등학교 감독들과 뽑을 학생들을 미리 정하고 그 학생들에게만 원서를 내게 해서 경쟁율을 1:1 수준으로 맞춰온 관례 때문 입니다.

    교육부가 금지한 사전스카우트제가 실제론 살아있고, 그래서 예상 밖의 지원자는 짜놓은 판을 깨는 문제아 취급을 받는다는 겁니다.

    [홍창기/홍승우 아버지]
    "사전 스카우트 금지거든요 지금 대학교 같은 경우는. 그런데 그거를 다 해놓았다는 얘기고요. 그 판이 짜여 있기 때문에 프로를 지망했던 애는 떨어져도 (대학에) 가지 말라는 얘기인거죠."

    2580은 얼마전 한 통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대한야구협회에서 경기 실적 증명서를 허위 발급해 두명의 학생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겁니다.

    지난해 9월 초 최초 발급된 두 학생의 실적증명서입니다.

    고교야구 주말리그 전반기와 후반기 성적이 두 줄로 기재돼 있습니다.

    그런데 수시 모집 마감 전날인 9월 16일 재발급된 증명서를 보면

    '주말리그 왕중왕전 참가'라는 최초 증명서에 없었던 실적이 추가돼있습니다.

    [대한야구협회 관계자]
    "그 날이 (원서)제출 마감일이다 보니까 (00고 코치가) 계속 사정 얘기하면서 (실적증명서를) 발급해 달라 떼를 쓰는 상황이었고 협회 쪽에서는 발급 기준을 계속 반복적으로 설명하면서 안된다고.."

    대한야구협회 입시 지침에 따르면 대회에 참가했다는 실적 증명을 위해서는 투수는 1이닝, 타자는 3타석 이상 출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이 학생들의 경우 한명은 아웃카운트를 2개 밖에 잡지 못했고 다른 한명은 아웃카운트 1개도 없이 공 3개를 던진 게 전부였는데 대회 참가 실적증명서를 발급받았습니다.

    지침상 발급될 수 없는 증명서가 발급된 겁니다.

    이 증명서를 제출한 두 학생은 왕중왕전 실적이 필수였던 한 대학에 지원할 수 있었고 합격했습니다.

    증명서 발급을 지시한 건 전 대한야구협회 사무국장이라고 했습니다.

    [대한야구협회 관계자]
    "당시에 한 7~8명 직원들이 있었는데 그 직원들이 다 들을 수 있을만한 목소리로..'발급해' 하는 식으로..강요하는 수준의.."

    전 사무국장은 사실 확인에 즉답을 피했습니다.

    [나○○/前 대한야구협회 사무국장]
    "(실적증명서를 발급하라고 지시한 건 사실이 아닌가요?) 누가 그런 얘기를 합니까. 수사중이니까 저는 할 말 없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으면 마음대로 쓰세요."

    야구협회가 전 사무국장을 해고한 가운데 허위 발급 지시의 진위나 대가성에 대해서는 현재 경찰에서 수사중입니다.

    승우군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누가봐도 탁월한 실력을 가진 선수들은 입시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문제는 실력이 그만그만한 학생들의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학생들의 입시 당락을 결정짓는 건 과연 뭘까요?

    야구특기생으로 대학에 들어간 이 모씨.

    이씨는 원래 서울 소재 유명대학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뜻밖의 제안을 받고 지망대학을 바꿨습니다.


    [이○○(가명)/前 대학야구 선수]
    "'너 거기에서 1억 달라고 했는데 아빠가 자존심 상해서 안줬다' 그렇게 해서 저희 부모님이 커트를 시키니까 원래는 5개 (대)학교 정도에서 오퍼가 들어왔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걸 다 감독이 끊어버린 거죠. (고등학교 감독이?) 네, 대학을 못 가도록. '지방대나 가라 너는' 이런식으로 끊어버려서.."

    야구에 뜻이 없으면서도 쉽게 유명대학에 입학하고 졸업장을 따기 위해 체육특기자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전공학과에 따라 오가는 액수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가명)/前 대학야구 선수]
    "제일 우선권이 서울에 있는 체육교육과 사범대학교, 졸업하면 체육교사 자격증이 나오는 학교가 단가가 제일 세더라고요."

    현 특기생 제도로는 재수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학부모들이 검은 유혹에 빠지는 이유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김대희 박사/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
    "학교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이상은 대회 출전이 불가하기 대문에 이번 한번, 단 한번의 입시에 내가 해당 학교를 못가면 아예 대학을 못 간다라는 인식 자체가 학부모도 불안하게 만들고 학생 자체도 불안하게 만드는 거죠."

    10년 가까이 고교야구에 몸담았던 한 전직 심판은 특정 선수의 타율을 올려주기 위해 양팀 감독이 짜고하는 시합을 수차례 목격했다고 합니다.


    [김○○(가명)/前 고교야구 심판]
    "사전에 서로 얘기가 돼 있는 거죠. 번트를 대쟎아요. 타율을 맞춰준다고. 그러면 3루 수비수가 저 뒤에 가 있습니다. 공을 안 받죠. 그럼 그게 내야안타로 기록이 되니까..그럼 백발백중으로 (그렇게) 1루에 나가있는 주자가 견제해서 아웃됩니다. '야..이게 무슨 경기인가'"

    더 어이없었던 건 그 장면을 본 학부모들의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김○○(가명)/前 고교야구 심판]
    "학부형들은 전문가예요. 눈으로 딱 보고 '어, 저거 (서로 짜고 하는)작전이구나. 쟤는 좋겠다. 쟤 대학 됐구나. 우리 애는 어떻게 되는거지' 이게 벌써 학부형들 사이에..."

    불과 2년전, 전직 프로야구 감독을 포함한 전,현직 대학감독들이 돈을 받고
    입시부정을 저지른 혐의로 대거 처벌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잠깐이었을 뿐 달라진 건 별로 없었습니다.

    [김○○(가명)/前 고교야구 심판]
    "난리가 나도 '재수없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 ..영구 제명을 한다든가 걸리면 다시는 이 바닥에 발을 못 뻗게, 제재가 강하다 이러면 겁을 내겠죠."

    최근엔 대학구조조정과 맞물려 운동부를 없애는 대학이 늘고 있습니다.

    실제 2012년부터 40개 넘게 없어졌습니다.

    [김대희 박사/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
    "비리 문제에 운동이 얽히니까 학교 운동부 그럼 없애라 폐지해라 이러한 추세로 가고 있습니다. 현장의 지도자나 감독이나 또 학생 선수라든지 학부모들이 자정의식 없이는 이러한 제도 자체가 나중에 없어질 수 있는.."

    입시전형을 하기도 전에 합격자가 미리 내정되고 관행을 어길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들만의 리그.

    [홍창기/홍승우 아버지]
    "이것을 항의할 수 없는 어떤 부모님들, 이런 부모님들은 얼마나 답답할까..야구판에서 찍히지 않기 위해서 말들을 안 하는 거죠. 그런 속앓이들을 하고 결국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사라져 가는 거고요."

    올해도 600명이 넘는 고 3 야구선수들이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이제는 선수 이전에 학생인 이들이 원하는 대학에 공정하게 도전할 수 있는
    수험생의 당연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그릇된 관행의 시계를 되돌려 놓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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