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권희진 기자
권희진 기자
표절, 문단의 민낯
표절, 문단의 민낯
입력
2015-06-29 10:13
|
수정 2015-06-3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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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작가 신경숙의 표절 파문이 문단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표절을 부인했던 출판사 창비의 해명과 불분명하게 표절을 인정한 신경숙 본인의 사과는 더 큰 반발을 샀고, 침통한 문학계에는 연일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표절 의혹이 제기된 것은 이번 작품 뿐만이 아니라는데, 그동안 논란이 된 표절 작품은 무엇이 있고, 왜 문제가 표면화되지 않았던 걸까?
======================================================================
지난 16일 한 온라인매체에 한 소설가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신경숙 작가가 1996년 발표한 단편소설 '전설'이 1983년 번역출간된 일본 유명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을 표절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두 소설의 특정구절을 나란히 비교했습니다.
먼저 '우국'의 한 대목.
[우국]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전설]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이어지는 문장.
[우국]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전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와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표현이 나옵니다.
[우국]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전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정문순 평론가]
"'기쁨을 아는 몸'이란 표현 자체가 김후란 씨 특유의 용어다. 본인의 독창적인 용어인데 그 부분도 가져다 썼다..“
권위있는 문학상들을 있는대로 휩쓸고, 발표하는 소설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작가.
문학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문단의 블루칩으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소식은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그런데, 이 표절논란이 왜 이제서야 불거졌을까요.
이 사건을 계기로 이른 바 스타작가와 주류평론의 관계, 나아가 우리 문단 전반의 뿌리깊은 문제점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신경숙 작가의 대표작 '엄마를 부탁해'의 유럽 출판 기념회 현장.
외국인 독자들이 줄지어 신경숙 작가에게 사인을 요청합니다.
'엄마를 부탁해'는 36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고 미국에선 초판만 10만 부가 발간됐습니다.
[신경숙 기자회견]
"미국에 내린 첫 눈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시장에서 최단 시간 200만부 판매를 돌파한 기록.
신 씨는 출판사라면 탐내지 않을 수 없는, 상업적 성공을 보장하는 작가였습니다.
[백원근 대표/책과 사회 연구소]
"영화로 치면 소설에서 100만부라고 하는 것은 1000만 관객이 든 그런 영화에 비유될만한데요 2000만 관객이 든 영화다. 뭐 이렇게 비유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현대문학상과 이상문학상, 만해문학상 등 권위있는 문학상들을 모두 수상했습니다.
'문체미학의 정수',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탐구' 같은 평론가들의 찬사.
지난 2008년엔 불과 45살에 동인문학상 종신심사위원에 선정되면서 문단의 원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습니다.
이번 표절지적이 나온 직후 신경숙씨는 출판사를 통해 표절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자기기억으로는 '우국'이라는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으며, 진실과 상관없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출판사인 창비 역시 작가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보다 신경숙의 '전설'이 작품으로서 우월한데도 일부 구절이 유사하다고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오창은/중앙대 교수 문학평론가]
"창비가 대응했던 그 문구 자체가 한국문학이 스스로 얼마만큼 닫혀 있었던가. 내부만 보고 외부 내지는 한국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얼마나 서툰가."
한국작가회의 측은 "귀중한 작가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고 밝혔고, 주류 평론가들은 하나같이 입을 열기 꺼려했습니다.
[김 모 평론가]
"저는 이것에 대해서 입장 드릴 수 있는게 아니라 제 마음 자체가 너무 착잡한 거예요."
거물이 된 스타작가, 출판권력으로까지 불리는 권위있는 출판사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
하지만 독자들의 입에선 실망, 배신감 같은 단어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이임정]
"사람들한테 엄청나게 다가왔던 그런 문장이었는데 그 문장이 표절했던 문장이었다고 하면.. 배신과 실망이 클 거 같아요."
[김연숙]
"그 사람한테 보냈던 박수가 이렇게 돌아온다는 건 독자에 대한 배신 그런 거죠."
신경숙 씨는 직접적으로 표절을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언론인터뷰를 통해 "문장을 대조해보면서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거나 "쇠스랑으로 발등을 찍고 싶었다"면서 이번 논란에 대해 독자에게 사과했습니다.
출판사 창비측도 '전설'이 실린 신경숙씨의 작품집의 출고를 정지하고, 서점가에 나와있는 작품집을 회수했습니다.
신경숙 작가에 대한 표절 논란이 불거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15년 전에도 이번과 똑같은 표절 논란이 제기됐었고, 다른 여러 표절 의혹들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논란은 있었지만 이상하게 문단 내에선 표절인지 아닌지를 따져보려는 시도조차 없었습니다.
지난 2000년, 정문순 평론가는 신경숙 작가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평론을 문예중앙에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문제 제기는 없었고 결국 알지만 말하지 않는 상태로 표절 의혹은 15년을 잠복해 있었습니다.
[이명원 교수/문학평론가]
"문제 제기를 한다고 해도 제기된 문제에 대해 침묵한다는 문화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신 씨가 재미유학생의 유고집을 무단 인용했다는 의혹도 결국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후 신 씨에 대한 이런저런 표절 논란이 일었지만, 그 때마다 문단은 조용했습니다.
[정문순 문학평론가]
"인기 작가였고 돈이 되는 작가였기 때문에 신경숙 씨의 약점이 노출되면서 그를 잃는다는것은 문학계에선 상당한 상처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저는 봅니다"
그러는 동안 신경숙 작가는 각종 문학상까지 휩쓴 베스트셀러 작가로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문학적인 권위를 검증받은데다 수익까지 보장하는 작가.
신 씨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신 씨의 문학적 명성과 비중에 묻히곤 했습니다.
[심보선 시인]
"작가들과 평론가들의 문제, 즉 특정 작가들은 애호하고 비호하는 그런 관행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관행 속에 표절 의혹은 시한폭탄처럼 문단에 잠재해왔습니다.
몇년 전에는 한 작가 지망생이 자신의 신춘문예 응모작을 문단의 중견작가가 표절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표절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들이 터져나왔지만 의혹의 당사자도, 문단도, 역시 침묵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중견작가 조경란 씨의 장편소설 '혀'.
사랑하고, 맛보고, 거짓말하는 상징으로 혀를 다뤘다고 표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주이란 씨의 단편소설 '혀'.
육식성, 사기꾼, 애정 행위를 좋아하는 인간 욕망으로서의 혀를 다뤘다고 했습니다.
순서만 다를 뿐 '혀'가 상징하는 3가지가 두 소설에서 일치합니다.
글의 말미에 혀을 잘라 요리하는 장면도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두 소설은 왜 이렇게 비슷한 것일까.
주이란 씨는 2007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혀'라는 단편을 응모하기 위해 전년 12월에 원고를 제출했습니다.
중견작가 조경란 씨는 당시 3년째 이 신춘문예의 심사위원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7년 11월, 심사위원이던 조경란 작가가 '혀'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을 발표합니다.
주이란씨는 바로 표절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주이란 작가/표절 피해 제기]
"혀가 뜻하는 그 상징, 인간의 욕망이라는 그 상징을 똑같이. 구성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너무나도 똑같았어요." "이거는 내 것을 읽고 내 것을 그대로 표절했구나."
문제가 불거지자 조경란 씨는 자신은 심사위원이 아니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주이란 씨의 작품을 본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문학동네(조경란의 '혀' 출판)관계자]
"착각해서 잘못 그 때 조경란 작가가 잘못 대답할 수 있어요. 그것 가지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건 말이 안되죠."
조경란씨의 소설을 출판한 문학동네 측은 소설의 제목이나 독창적인 주제는 얼마든지 일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조경란 씨가 문단에 데뷔하던 97년 쯤에 소설 '혀'의 아이디어를 들어 판권 계약을 했다며, 바로 이 점이 제목과 3가지 상징이 우연히 일치했다는 유력한 증거라고 밝혔습니다.
[문학동네(조경란의 '혀' 출판)관계자]
"그러니까 증거는 없는 거네요. 당시 사장님이 들었다는 거 말고는." "네. 그런데 주이란씨도 그같은 작품을 응모했는지는 증명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주이란 씨가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없어요."
그러나 평생을 글과 씨름해 온 문인들의 말은 좀 다릅니다.
[김곰치 작가]
"난 읽어봤고. 그 다음에 주이란씨가 이것을 주장하게 된 과정을 싹 훑어봤고. 했을 때 저는 제가 어디 부름을 받아서 그걸 판단하는 자리에 간다면 표절이라고 저는 이렇게 말을 하겠어요"
[정문순 평론가]
"아이디어나 생각이나 소설 전개 등등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그런 부분을 훔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주 교묘한 거라고 저는 판단을 했습니다."
일부 작가들이 당시 표절이라고 지적했지만 작가와 출판사 측은 대응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덮었습니다.
[주이란 작가/표절피해 제기]
"제가 내용 증명 보낸 것에 대한 답변도 없고 그런 식이었다가 그게 사회 문제화되니까 자기네들은 이미 옛날부터 구상을 했고 그래서 문제가 없다."
저작권분쟁조정위원회가 세 차례나 출석을 요구했지만 조경란 작가 측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조경란 씨는 다른 소설로 동인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소설 '혀'의 표절논란은 그렇게 유야무야 됐습니다.
[문학동네(조경란의 '혀' 출판)관계자]
"충분히 이게 논란이 되어서 일단락 된 사안인데.."
조경란 씨의 소설 '혀'는 영어로 번역돼 10여개 국의 해외 판권까지 얻었고, 피해를 호소했던 주이란 씨는 한국을 떠났습니다.
[주이란 작가/표절 피해 제기]
"저한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또 내가 만들어 낸 하나의 세계인데, 저에게 소중한 것을 그렇게 훔쳐간다라는 것. 정말 자기 아이를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 같은 그런 느낌이거든요"
논란이 일어도, 문단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문학계 내부에선 창비와 문학동네, 문학과 지성사 등 3대 출판사의 지나치게 비대해진 영향력을 주된 이유로 지목합니다.
[오창은 교수/중앙대 문학평론가]
"주요 출판사는 문예지를 중심으로 문학생산의 토대를 장악했습니다. 신인상 제도를 통해 등단 제도를 장악하고 자기 매체 출신의 작가를
양성합니다."
이런 출판사와 연계된 평론가들이나 작가들이 바로 주요 문학상의 심사위원들입니다.
[이 모 작가]
"그것만큼 작가들이 갈망하는 메리트가 없으니까. 문학상을 한 번 받으면 그 작가는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그 작가의 존재가 증명이 되는 것이거든요."
문단의 주류를 비판하며 스스로 소외를 자초하면, 작가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작가들은 말합니다.
[이 모 작가]
"그런 패거리 문화에 거리를 두고 들어가 있지 않은 작가들은 그냥 작품을 쓰건 책을 내건 간에 전혀 어떤 메아리가 없어요. 그러면 그 작가는 금방 지치게 돼요."
이로 인한 침묵이 우리 문학계의 병을 깊게 했다는 진단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방민호 교수/서울대 국문과]
"현재 문단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 출판사들의 카르텔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언론 문학상 제도, 또 평론가들의 상호협동구조. 이런 것들을 개선해야 될 필요가 있고."
어두웠던 시절, 밤하늘 별빛처럼 반짝이며 위로와 희망을 건네주던 우리의 문학.
팍팍한 현실과는 다른 곳으로 여겨졌던 문학이라는 성소가, 숨겨왔던 속살을 내보이게 됐고 실망한 독자들은 발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초유의 표절 사태가 몰고 온 한국 문학의 전례없는 위기.
어쩌면 그동안의 침묵을 깨워 문단의 치열한 반성과 토론을 재촉하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표절을 부인했던 출판사 창비의 해명과 불분명하게 표절을 인정한 신경숙 본인의 사과는 더 큰 반발을 샀고, 침통한 문학계에는 연일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표절 의혹이 제기된 것은 이번 작품 뿐만이 아니라는데, 그동안 논란이 된 표절 작품은 무엇이 있고, 왜 문제가 표면화되지 않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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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한 온라인매체에 한 소설가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신경숙 작가가 1996년 발표한 단편소설 '전설'이 1983년 번역출간된 일본 유명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을 표절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두 소설의 특정구절을 나란히 비교했습니다.
먼저 '우국'의 한 대목.
[우국]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전설]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이어지는 문장.
[우국]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전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와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표현이 나옵니다.
[우국]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전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정문순 평론가]
"'기쁨을 아는 몸'이란 표현 자체가 김후란 씨 특유의 용어다. 본인의 독창적인 용어인데 그 부분도 가져다 썼다..“
권위있는 문학상들을 있는대로 휩쓸고, 발표하는 소설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작가.
문학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문단의 블루칩으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소식은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그런데, 이 표절논란이 왜 이제서야 불거졌을까요.
이 사건을 계기로 이른 바 스타작가와 주류평론의 관계, 나아가 우리 문단 전반의 뿌리깊은 문제점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신경숙 작가의 대표작 '엄마를 부탁해'의 유럽 출판 기념회 현장.
외국인 독자들이 줄지어 신경숙 작가에게 사인을 요청합니다.
'엄마를 부탁해'는 36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고 미국에선 초판만 10만 부가 발간됐습니다.
[신경숙 기자회견]
"미국에 내린 첫 눈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시장에서 최단 시간 200만부 판매를 돌파한 기록.
신 씨는 출판사라면 탐내지 않을 수 없는, 상업적 성공을 보장하는 작가였습니다.
[백원근 대표/책과 사회 연구소]
"영화로 치면 소설에서 100만부라고 하는 것은 1000만 관객이 든 그런 영화에 비유될만한데요 2000만 관객이 든 영화다. 뭐 이렇게 비유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현대문학상과 이상문학상, 만해문학상 등 권위있는 문학상들을 모두 수상했습니다.
'문체미학의 정수',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탐구' 같은 평론가들의 찬사.
지난 2008년엔 불과 45살에 동인문학상 종신심사위원에 선정되면서 문단의 원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습니다.
이번 표절지적이 나온 직후 신경숙씨는 출판사를 통해 표절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자기기억으로는 '우국'이라는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으며, 진실과 상관없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출판사인 창비 역시 작가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보다 신경숙의 '전설'이 작품으로서 우월한데도 일부 구절이 유사하다고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오창은/중앙대 교수 문학평론가]
"창비가 대응했던 그 문구 자체가 한국문학이 스스로 얼마만큼 닫혀 있었던가. 내부만 보고 외부 내지는 한국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얼마나 서툰가."
한국작가회의 측은 "귀중한 작가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고 밝혔고, 주류 평론가들은 하나같이 입을 열기 꺼려했습니다.
[김 모 평론가]
"저는 이것에 대해서 입장 드릴 수 있는게 아니라 제 마음 자체가 너무 착잡한 거예요."
거물이 된 스타작가, 출판권력으로까지 불리는 권위있는 출판사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
하지만 독자들의 입에선 실망, 배신감 같은 단어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이임정]
"사람들한테 엄청나게 다가왔던 그런 문장이었는데 그 문장이 표절했던 문장이었다고 하면.. 배신과 실망이 클 거 같아요."
[김연숙]
"그 사람한테 보냈던 박수가 이렇게 돌아온다는 건 독자에 대한 배신 그런 거죠."
신경숙 씨는 직접적으로 표절을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언론인터뷰를 통해 "문장을 대조해보면서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거나 "쇠스랑으로 발등을 찍고 싶었다"면서 이번 논란에 대해 독자에게 사과했습니다.
출판사 창비측도 '전설'이 실린 신경숙씨의 작품집의 출고를 정지하고, 서점가에 나와있는 작품집을 회수했습니다.
신경숙 작가에 대한 표절 논란이 불거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15년 전에도 이번과 똑같은 표절 논란이 제기됐었고, 다른 여러 표절 의혹들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논란은 있었지만 이상하게 문단 내에선 표절인지 아닌지를 따져보려는 시도조차 없었습니다.
지난 2000년, 정문순 평론가는 신경숙 작가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평론을 문예중앙에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문제 제기는 없었고 결국 알지만 말하지 않는 상태로 표절 의혹은 15년을 잠복해 있었습니다.
[이명원 교수/문학평론가]
"문제 제기를 한다고 해도 제기된 문제에 대해 침묵한다는 문화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신 씨가 재미유학생의 유고집을 무단 인용했다는 의혹도 결국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후 신 씨에 대한 이런저런 표절 논란이 일었지만, 그 때마다 문단은 조용했습니다.
[정문순 문학평론가]
"인기 작가였고 돈이 되는 작가였기 때문에 신경숙 씨의 약점이 노출되면서 그를 잃는다는것은 문학계에선 상당한 상처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저는 봅니다"
그러는 동안 신경숙 작가는 각종 문학상까지 휩쓴 베스트셀러 작가로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문학적인 권위를 검증받은데다 수익까지 보장하는 작가.
신 씨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신 씨의 문학적 명성과 비중에 묻히곤 했습니다.
[심보선 시인]
"작가들과 평론가들의 문제, 즉 특정 작가들은 애호하고 비호하는 그런 관행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관행 속에 표절 의혹은 시한폭탄처럼 문단에 잠재해왔습니다.
몇년 전에는 한 작가 지망생이 자신의 신춘문예 응모작을 문단의 중견작가가 표절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표절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들이 터져나왔지만 의혹의 당사자도, 문단도, 역시 침묵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중견작가 조경란 씨의 장편소설 '혀'.
사랑하고, 맛보고, 거짓말하는 상징으로 혀를 다뤘다고 표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주이란 씨의 단편소설 '혀'.
육식성, 사기꾼, 애정 행위를 좋아하는 인간 욕망으로서의 혀를 다뤘다고 했습니다.
순서만 다를 뿐 '혀'가 상징하는 3가지가 두 소설에서 일치합니다.
글의 말미에 혀을 잘라 요리하는 장면도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두 소설은 왜 이렇게 비슷한 것일까.
주이란 씨는 2007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혀'라는 단편을 응모하기 위해 전년 12월에 원고를 제출했습니다.
중견작가 조경란 씨는 당시 3년째 이 신춘문예의 심사위원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7년 11월, 심사위원이던 조경란 작가가 '혀'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을 발표합니다.
주이란씨는 바로 표절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주이란 작가/표절 피해 제기]
"혀가 뜻하는 그 상징, 인간의 욕망이라는 그 상징을 똑같이. 구성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너무나도 똑같았어요." "이거는 내 것을 읽고 내 것을 그대로 표절했구나."
문제가 불거지자 조경란 씨는 자신은 심사위원이 아니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주이란 씨의 작품을 본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문학동네(조경란의 '혀' 출판)관계자]
"착각해서 잘못 그 때 조경란 작가가 잘못 대답할 수 있어요. 그것 가지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건 말이 안되죠."
조경란씨의 소설을 출판한 문학동네 측은 소설의 제목이나 독창적인 주제는 얼마든지 일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조경란 씨가 문단에 데뷔하던 97년 쯤에 소설 '혀'의 아이디어를 들어 판권 계약을 했다며, 바로 이 점이 제목과 3가지 상징이 우연히 일치했다는 유력한 증거라고 밝혔습니다.
[문학동네(조경란의 '혀' 출판)관계자]
"그러니까 증거는 없는 거네요. 당시 사장님이 들었다는 거 말고는." "네. 그런데 주이란씨도 그같은 작품을 응모했는지는 증명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주이란 씨가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없어요."
그러나 평생을 글과 씨름해 온 문인들의 말은 좀 다릅니다.
[김곰치 작가]
"난 읽어봤고. 그 다음에 주이란씨가 이것을 주장하게 된 과정을 싹 훑어봤고. 했을 때 저는 제가 어디 부름을 받아서 그걸 판단하는 자리에 간다면 표절이라고 저는 이렇게 말을 하겠어요"
[정문순 평론가]
"아이디어나 생각이나 소설 전개 등등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그런 부분을 훔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주 교묘한 거라고 저는 판단을 했습니다."
일부 작가들이 당시 표절이라고 지적했지만 작가와 출판사 측은 대응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덮었습니다.
[주이란 작가/표절피해 제기]
"제가 내용 증명 보낸 것에 대한 답변도 없고 그런 식이었다가 그게 사회 문제화되니까 자기네들은 이미 옛날부터 구상을 했고 그래서 문제가 없다."
저작권분쟁조정위원회가 세 차례나 출석을 요구했지만 조경란 작가 측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조경란 씨는 다른 소설로 동인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소설 '혀'의 표절논란은 그렇게 유야무야 됐습니다.
[문학동네(조경란의 '혀' 출판)관계자]
"충분히 이게 논란이 되어서 일단락 된 사안인데.."
조경란 씨의 소설 '혀'는 영어로 번역돼 10여개 국의 해외 판권까지 얻었고, 피해를 호소했던 주이란 씨는 한국을 떠났습니다.
[주이란 작가/표절 피해 제기]
"저한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또 내가 만들어 낸 하나의 세계인데, 저에게 소중한 것을 그렇게 훔쳐간다라는 것. 정말 자기 아이를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 같은 그런 느낌이거든요"
논란이 일어도, 문단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문학계 내부에선 창비와 문학동네, 문학과 지성사 등 3대 출판사의 지나치게 비대해진 영향력을 주된 이유로 지목합니다.
[오창은 교수/중앙대 문학평론가]
"주요 출판사는 문예지를 중심으로 문학생산의 토대를 장악했습니다. 신인상 제도를 통해 등단 제도를 장악하고 자기 매체 출신의 작가를
양성합니다."
이런 출판사와 연계된 평론가들이나 작가들이 바로 주요 문학상의 심사위원들입니다.
[이 모 작가]
"그것만큼 작가들이 갈망하는 메리트가 없으니까. 문학상을 한 번 받으면 그 작가는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그 작가의 존재가 증명이 되는 것이거든요."
문단의 주류를 비판하며 스스로 소외를 자초하면, 작가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작가들은 말합니다.
[이 모 작가]
"그런 패거리 문화에 거리를 두고 들어가 있지 않은 작가들은 그냥 작품을 쓰건 책을 내건 간에 전혀 어떤 메아리가 없어요. 그러면 그 작가는 금방 지치게 돼요."
이로 인한 침묵이 우리 문학계의 병을 깊게 했다는 진단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방민호 교수/서울대 국문과]
"현재 문단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 출판사들의 카르텔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언론 문학상 제도, 또 평론가들의 상호협동구조. 이런 것들을 개선해야 될 필요가 있고."
어두웠던 시절, 밤하늘 별빛처럼 반짝이며 위로와 희망을 건네주던 우리의 문학.
팍팍한 현실과는 다른 곳으로 여겨졌던 문학이라는 성소가, 숨겨왔던 속살을 내보이게 됐고 실망한 독자들은 발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초유의 표절 사태가 몰고 온 한국 문학의 전례없는 위기.
어쩌면 그동안의 침묵을 깨워 문단의 치열한 반성과 토론을 재촉하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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