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장인수 기자
장인수 기자
스위스 금괴와 세금폭탄
스위스 금괴와 세금폭탄
입력
2015-09-07 11:42
|
수정 2015-10-19 13:30
재생목록
몇 년 전, 잘 나가던 금괴 수입업자가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스위스에서 금괴를 수입한 뒤 15억 세금을 추징당한 후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한국과 유럽 자유무역연합이 FTA를 체결한 뒤 스위스 금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서 수입량이 급증했는데, 수입 업체들이 뒤늦게 수억 원 씩의 ‘관세 폭탄’을 맞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관세가 없어진 걸 감안해 싼 값에 금을 이미 처분한 수입업체들은 줄도산했고 이처럼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한국과 스위스 사이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
2011년 5월, 서울 논현동의 한 지하주차장에서 금 수입업자 이 모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는 잘나가는 금 수입업체의 사장이었습니다.
[이OO /금 수입업자 친구]
"어유 그때는 최고였죠. 종로에서 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갔으니까."
그런데 2008년 갑자기 15억원의 세금을 관세청으로부터 추징당했습니다.
그가 외국 금괴의 원산지를 속이고 국내로 들여와 탈세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15억원의 세금을 내고 자금압박에 시달리게 되면서 사업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결국 우울증에 시달리다 3년만에 세상을 등진 겁니다.
[이OO/ 금 수입업자 친구]
"우울증이 와서 만날 산에 다니고 항상 뭐 죽고 싶다 그랬는데.. 시작은 관세죠. 한두 푼도 아니고 십 몇 억을 다시 토해내라고 하니까.."
당시 이처럼 원산지를 속이고 금괴를 들여와 탈세를 했다는 이유로 적발된 사람은 이 씨 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15개의 금 수입업체가 적발돼 총 120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들이 2580을 찾아와 자신들은 탈세를 한 적이 없다며, 자유무역협정, 이른바 FTA를 없애 달라고 하소연했습니다.
2006년 9월, 우리나라와 유럽자유무역연합 국가 사이에 자유무역협정, 즉 FTA가 발효됐습니다.
유럽자유무역연합은 EU에 가입하지 않은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등 4개국이 모여 만든 공동체입니다.
FTA가 발효되자 한국의 금 수입업자들은 스위스 금괴를 집중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동수 대표/ 금 수입업체]
"그때 저희가 (스위스 금을) 한 10톤 정도 수입을 했습니다. (10톤이면 얼마 정도 되나요?) 그때 당시 시세로 한 2000억 원 정도.."
FTA로 3%의 관세가 사라지자 고품질에 가격경쟁력까지 생긴 스위스 금을 국내업체들이 본격적으로 들여오기 시작한 겁니다.
[유동수 대표/ 금 수입업체]
"거기가 금 기술력이 굉장히 좋아서 보통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위스의 금을 가장 선호합니다. 순도도 가장 좋고.."
FTA 발효 1년만에 스위스 금괴 수입이 10배 넘게 폭증하자 정부는 문제가 없는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FTA로 관세를 면제받으려면 해당국가에서 만든 제품이어야 하고, 그 확인은 수출업자나 수입업자가 아닌 양국 정부가 하도록 돼 있습니다.
스위스 정부에 진짜 스위스산 금괴가 맞는지 원산지 확인을 요청했더니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수입한 금괴의 상당수가 스위스산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배은배 대표/금 수입업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저희가 정상적으로 사업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가져왔던 모든 것들이 다 잘못됐다고 해서.."
그러자 관세청은 면제해줬던 관세 3%를 다시 적용해 스위스 금을 수입한 15개 업체에 모두 120억 원의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분명 스위스에서 수입해왔는데 스위스산이 아니라는 스위스 정부의 뜻밖의 답변.
이 때문에 뒤늦게 120억원의 관세를 물게 된 금 수입업자들은 스위스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곧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10개월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한국 수입업체들은 즉각 스위스 금 수출업체에 항의했습니다.
이들이 발행해준 원산지 증명 서류를 믿고 금을 수입했기 때문입니다.
[유동수 대표/ 금 수입업체]
"그 원산지 증명서를 발행한 회사들이 스위스의 금융그룹의 자회사죠. 우리나라 국민은행이라든가 신한은행보다 더 큰 회사에서 발행한 증명서이기 때문에 당연히 믿고.."
항의를 받은 스위스 금 수출업체들은 자신들이 만든 금은 스위스 산이 맞다며 스위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스위스 정부는
금괴 생산 공정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결국 스위스 금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스위스 연방법원도 한국에 수출한 금은 스위스산이라고 최종 판결했습니다.
한국의 금 수입업자들은 스위스 금으로 판명났으니 자신들이 낸 120억원을 돌려달라고 관세청에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관세청은 거절했습니다.
근거는 FTA 협정문.
원산지 검증을 요청한 날부터 수출국이 10개월 이내에 회신을 하지 않으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한국이 스위스에 원산지 증명을 요청한 건 2007년 9월 7일.
협정대로라면 스위스는 이로부터 10개월 뒤인 2008년 7월 6일까지는 한국에 회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스위스 연방법원이 판결을 내린 건 이보다도 2년이 더 지난 2010년 7월 5일이었습니다.
스위스 정부 입장에선 법원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뭐라고 답할 수 없는 상황.
[웨딩/ 주한 스위스 대사]
"스위스 관세청과 금 수출업자 사이에 법적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세청이 (한국에) 10개월 안에 답변을 해주지 못 했습니다."
억울한 건 한국의 금 수입업체들.
잘못은 스위스가 했는데 120억 원의 세금은 자신들이 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배은배 대표/금 수입업체]
"정부에서는 너희들이 잘못한 건 없지만 우리로서는 법이 그러니 그냥 그건 너희들 알아서 그쪽(스위스) 가서 소송을 하든 어떻게 하든 그쪽에서 풀어라."
금은 전 세계적으로 시세가 균일해 금 수입업자들은 수입원가에 0.1~0.5% 정도의 마진을 붙여 판매합니다.
유동수씨는 스위스 금 2천억 원 어치를 팔아 6억 원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64억 원의 관세가 나온 겁니다.
배은배씨도 스위스 금을 팔아 7천만 원을 벌었는데 6억 원의 관세가 나왔습니다.
[유동수 대표/ 금 수입업체]
"심지어는 (스위스 업체들이) '한국에 지금 세금 모자라냐? 도대체 한국 세관이 왜 그러느냐?'라고 저한테 되묻더라고요 거의 뭐 비웃음을 당했죠."
번 돈 보다 10배가 많은 세금을 맞은 업체들은 줄줄이 도산했고, 앞서 본 금 수입업자 이 모 씨도 이렇게 15억 원의 관세를 낸 뒤 우울증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겁니다.
이 같은 일은 스위스 금괴만이 아닙니다.
어떤 품목이든 우리와 FTA를 맺은 국가의 공무원들이 원산지 증명 서류를 늦게 보내면 아무 잘못 없는 한국의 수입업자는 관세 폭탄을 맞게 됩니다.
독일에서 크레인을 수입해 파는 손동혁 사장은 2012년 독일 릭벨사의 크레인 석 대를 수입해 팔았습니다.
그가 수입한 기종은 어떤 지형에서도 작업이 가능한 '올 테러인 크레인'으로 전 세계에서 독일과 미국 두 나라만 만들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릭벨과 디막이라는 두 회사만 생산하고 있고, 한국 업체들은 모두 이 두 독일 회사의 제품을 수입해 쓰고 있습니다.
[손동혁 대표/크레인 수입업체]
"그렇죠. 독일 밖에 없죠. 다른 나라에서 만들 수가 없는 거죠. 특히 립헬라는 경우 이게 우리나라 90%를 차지하는데 거의 다 립헬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관세청은 이 크레인이 진짜 독일산이 맞는지 확인해봐야겠다며 독일에 원산지 증명을 요청했습니다.
[정관수 대표/ 크레인 수입업체]
"의심품목이라고 해서 (조사를) 하는 것 같은데 왜 이게 의심품목인지를 모르겠어요. 아직도. 솔직하게."
그런데 독일 관세청은 10개월이 넘겨서야 독일산이 맞다는 서류를 보내왔습니다.
한국 관세청이 너무 많은 증명 서류를 요구해 제때 보낼 수 없었다는 겁니다.
[독일 수출업체 관계자(음성대역)]
"한국에서 요청한 자료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너무 많은 것을 요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독일 관세청에서 10개월 안에 회신할 수 없다는 임시 보고서를 한국에 보냈다고 합니다."
관세청은 이번에도 크레인이 독일산인 건 맞지만 10개월 시한을 넘겼기 때문에 관세를 걷어야겠다며 17곳의 수입업체에게 24억원을 과세했습니다.
수입업체들은 자신들이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관세를 내야 하냐며 해당 세관에 따지러 갔습니다.
세관측도 이들이 억울한 상황이라는 건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OO세관 직원]
"마음 같아서는 제가 불이익을 주고 싶어요. (독일) 새관 당국에. 왜 당신네들이 기한 내에 회신을 안 해줘서 우리나라 수입업자들이 억울하게 추징을 당해야 되나 저도 얘기하고 싶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OO세관 직원]
"(납부 기한을 6개월 이산은 연장을 할 수가 없도록 돼 있어요. 법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업체들은 당국의 이런 태도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손동혁 대표/ 크레인 수입업체]
"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우리가 승소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 사람들은 (세금 내고) 부도가 났는데? 그러면 누가 그 업체를 살려줘요. 관세청에서 다시 살려줄까요? 못 살려주잖아요."
이같은 10개월의 함정에 걸려 제대로 된 제품을 수입하고도 뒤늦게 관세를 추징당한 업체는 수백개가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덕근 교수/서울대 국제대학원]
"업체들의 오류가 아니라 행정적인 차원에서 불가피한 지연이 발생해서 시한을 못 맞춘다거나 그런 것 때문에 업체한테 피해를 전가한다는 거는 그건 좀 상당히 부당하다고 봐야죠."
스위스 금으로 뒤늦게 관세를 부과 받은 유동수 대표는 같은 시기에 스위스에서 백금도 수입했습니다.
관세청은 스위스에 이 백금의 원산지 증명도 요청했고 역시 10개월을 넘긴 뒤에 스위스산이 맞다는 증명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스위스와의 '상호 신뢰가 최우선시'된다며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유동수 대표/ 금 수입업체]
"같은 회사에 같은 계약서에 같은 공장에서 보내온 똑같은 물건인데 다만 그게 금이냐 백금이냐의 차이 밖에는 없었습니다. 너무 이해가 안 되죠. 상황에 따라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하니까.."
정부가 마음먹기에 따라 업체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겁니다.
금 수입업체들은 자신들의 사건이 FTA 협정문에서 규정한 예외적인 경우로 해석해야 한다면서 정부를 상대로 관세 120억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하지만 우리정부는 10개월 내에 회신을 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는 전쟁이나 천재지변만 해당된다며 세금을 걷어야겠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관세청은 서면을 통해, 원산지 검증이 10개월 내에 이뤄지지 않으면 관세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습니다.
[관세청]
"(인터뷰는 안 되는 건가요?) 그거는 좀 안 되는 것 같아요. 너무 부담스러워서.."
오히려 상대국인 스위스 정부가 이들을 예외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웨딩/ 주한 스위스 대사]
"스위스는 입장이 명확합니다. 이 사건은 예외적인 경우로 봐야 합니다."
불필요한 장벽을 없애 무역을 활성화 하자는게 FTA를 설명하는 가장 손쉬운 정의일 겁니다.
그러나 자유무역이라는 발표만 믿었다가 기업들이 느닷없이 세금 폭탄을 맞아 도산하는 일이 벌어지고, 더구나 그 이유가 공무원들의 형식적인 일처리 때문이라면, FTA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위스에서 금괴를 수입한 뒤 15억 세금을 추징당한 후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한국과 유럽 자유무역연합이 FTA를 체결한 뒤 스위스 금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서 수입량이 급증했는데, 수입 업체들이 뒤늦게 수억 원 씩의 ‘관세 폭탄’을 맞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관세가 없어진 걸 감안해 싼 값에 금을 이미 처분한 수입업체들은 줄도산했고 이처럼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한국과 스위스 사이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
2011년 5월, 서울 논현동의 한 지하주차장에서 금 수입업자 이 모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는 잘나가는 금 수입업체의 사장이었습니다.
[이OO /금 수입업자 친구]
"어유 그때는 최고였죠. 종로에서 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갔으니까."
그런데 2008년 갑자기 15억원의 세금을 관세청으로부터 추징당했습니다.
그가 외국 금괴의 원산지를 속이고 국내로 들여와 탈세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15억원의 세금을 내고 자금압박에 시달리게 되면서 사업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결국 우울증에 시달리다 3년만에 세상을 등진 겁니다.
[이OO/ 금 수입업자 친구]
"우울증이 와서 만날 산에 다니고 항상 뭐 죽고 싶다 그랬는데.. 시작은 관세죠. 한두 푼도 아니고 십 몇 억을 다시 토해내라고 하니까.."
당시 이처럼 원산지를 속이고 금괴를 들여와 탈세를 했다는 이유로 적발된 사람은 이 씨 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15개의 금 수입업체가 적발돼 총 120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들이 2580을 찾아와 자신들은 탈세를 한 적이 없다며, 자유무역협정, 이른바 FTA를 없애 달라고 하소연했습니다.
2006년 9월, 우리나라와 유럽자유무역연합 국가 사이에 자유무역협정, 즉 FTA가 발효됐습니다.
유럽자유무역연합은 EU에 가입하지 않은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등 4개국이 모여 만든 공동체입니다.
FTA가 발효되자 한국의 금 수입업자들은 스위스 금괴를 집중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동수 대표/ 금 수입업체]
"그때 저희가 (스위스 금을) 한 10톤 정도 수입을 했습니다. (10톤이면 얼마 정도 되나요?) 그때 당시 시세로 한 2000억 원 정도.."
FTA로 3%의 관세가 사라지자 고품질에 가격경쟁력까지 생긴 스위스 금을 국내업체들이 본격적으로 들여오기 시작한 겁니다.
[유동수 대표/ 금 수입업체]
"거기가 금 기술력이 굉장히 좋아서 보통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위스의 금을 가장 선호합니다. 순도도 가장 좋고.."
FTA 발효 1년만에 스위스 금괴 수입이 10배 넘게 폭증하자 정부는 문제가 없는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FTA로 관세를 면제받으려면 해당국가에서 만든 제품이어야 하고, 그 확인은 수출업자나 수입업자가 아닌 양국 정부가 하도록 돼 있습니다.
스위스 정부에 진짜 스위스산 금괴가 맞는지 원산지 확인을 요청했더니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수입한 금괴의 상당수가 스위스산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배은배 대표/금 수입업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저희가 정상적으로 사업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가져왔던 모든 것들이 다 잘못됐다고 해서.."
그러자 관세청은 면제해줬던 관세 3%를 다시 적용해 스위스 금을 수입한 15개 업체에 모두 120억 원의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분명 스위스에서 수입해왔는데 스위스산이 아니라는 스위스 정부의 뜻밖의 답변.
이 때문에 뒤늦게 120억원의 관세를 물게 된 금 수입업자들은 스위스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곧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10개월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한국 수입업체들은 즉각 스위스 금 수출업체에 항의했습니다.
이들이 발행해준 원산지 증명 서류를 믿고 금을 수입했기 때문입니다.
[유동수 대표/ 금 수입업체]
"그 원산지 증명서를 발행한 회사들이 스위스의 금융그룹의 자회사죠. 우리나라 국민은행이라든가 신한은행보다 더 큰 회사에서 발행한 증명서이기 때문에 당연히 믿고.."
항의를 받은 스위스 금 수출업체들은 자신들이 만든 금은 스위스 산이 맞다며 스위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스위스 정부는
금괴 생산 공정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결국 스위스 금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스위스 연방법원도 한국에 수출한 금은 스위스산이라고 최종 판결했습니다.
한국의 금 수입업자들은 스위스 금으로 판명났으니 자신들이 낸 120억원을 돌려달라고 관세청에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관세청은 거절했습니다.
근거는 FTA 협정문.
원산지 검증을 요청한 날부터 수출국이 10개월 이내에 회신을 하지 않으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한국이 스위스에 원산지 증명을 요청한 건 2007년 9월 7일.
협정대로라면 스위스는 이로부터 10개월 뒤인 2008년 7월 6일까지는 한국에 회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스위스 연방법원이 판결을 내린 건 이보다도 2년이 더 지난 2010년 7월 5일이었습니다.
스위스 정부 입장에선 법원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뭐라고 답할 수 없는 상황.
[웨딩/ 주한 스위스 대사]
"스위스 관세청과 금 수출업자 사이에 법적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세청이 (한국에) 10개월 안에 답변을 해주지 못 했습니다."
억울한 건 한국의 금 수입업체들.
잘못은 스위스가 했는데 120억 원의 세금은 자신들이 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배은배 대표/금 수입업체]
"정부에서는 너희들이 잘못한 건 없지만 우리로서는 법이 그러니 그냥 그건 너희들 알아서 그쪽(스위스) 가서 소송을 하든 어떻게 하든 그쪽에서 풀어라."
금은 전 세계적으로 시세가 균일해 금 수입업자들은 수입원가에 0.1~0.5% 정도의 마진을 붙여 판매합니다.
유동수씨는 스위스 금 2천억 원 어치를 팔아 6억 원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64억 원의 관세가 나온 겁니다.
배은배씨도 스위스 금을 팔아 7천만 원을 벌었는데 6억 원의 관세가 나왔습니다.
[유동수 대표/ 금 수입업체]
"심지어는 (스위스 업체들이) '한국에 지금 세금 모자라냐? 도대체 한국 세관이 왜 그러느냐?'라고 저한테 되묻더라고요 거의 뭐 비웃음을 당했죠."
번 돈 보다 10배가 많은 세금을 맞은 업체들은 줄줄이 도산했고, 앞서 본 금 수입업자 이 모 씨도 이렇게 15억 원의 관세를 낸 뒤 우울증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겁니다.
이 같은 일은 스위스 금괴만이 아닙니다.
어떤 품목이든 우리와 FTA를 맺은 국가의 공무원들이 원산지 증명 서류를 늦게 보내면 아무 잘못 없는 한국의 수입업자는 관세 폭탄을 맞게 됩니다.
독일에서 크레인을 수입해 파는 손동혁 사장은 2012년 독일 릭벨사의 크레인 석 대를 수입해 팔았습니다.
그가 수입한 기종은 어떤 지형에서도 작업이 가능한 '올 테러인 크레인'으로 전 세계에서 독일과 미국 두 나라만 만들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릭벨과 디막이라는 두 회사만 생산하고 있고, 한국 업체들은 모두 이 두 독일 회사의 제품을 수입해 쓰고 있습니다.
[손동혁 대표/크레인 수입업체]
"그렇죠. 독일 밖에 없죠. 다른 나라에서 만들 수가 없는 거죠. 특히 립헬라는 경우 이게 우리나라 90%를 차지하는데 거의 다 립헬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관세청은 이 크레인이 진짜 독일산이 맞는지 확인해봐야겠다며 독일에 원산지 증명을 요청했습니다.
[정관수 대표/ 크레인 수입업체]
"의심품목이라고 해서 (조사를) 하는 것 같은데 왜 이게 의심품목인지를 모르겠어요. 아직도. 솔직하게."
그런데 독일 관세청은 10개월이 넘겨서야 독일산이 맞다는 서류를 보내왔습니다.
한국 관세청이 너무 많은 증명 서류를 요구해 제때 보낼 수 없었다는 겁니다.
[독일 수출업체 관계자(음성대역)]
"한국에서 요청한 자료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너무 많은 것을 요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독일 관세청에서 10개월 안에 회신할 수 없다는 임시 보고서를 한국에 보냈다고 합니다."
관세청은 이번에도 크레인이 독일산인 건 맞지만 10개월 시한을 넘겼기 때문에 관세를 걷어야겠다며 17곳의 수입업체에게 24억원을 과세했습니다.
수입업체들은 자신들이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관세를 내야 하냐며 해당 세관에 따지러 갔습니다.
세관측도 이들이 억울한 상황이라는 건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OO세관 직원]
"마음 같아서는 제가 불이익을 주고 싶어요. (독일) 새관 당국에. 왜 당신네들이 기한 내에 회신을 안 해줘서 우리나라 수입업자들이 억울하게 추징을 당해야 되나 저도 얘기하고 싶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OO세관 직원]
"(납부 기한을 6개월 이산은 연장을 할 수가 없도록 돼 있어요. 법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업체들은 당국의 이런 태도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손동혁 대표/ 크레인 수입업체]
"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우리가 승소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 사람들은 (세금 내고) 부도가 났는데? 그러면 누가 그 업체를 살려줘요. 관세청에서 다시 살려줄까요? 못 살려주잖아요."
이같은 10개월의 함정에 걸려 제대로 된 제품을 수입하고도 뒤늦게 관세를 추징당한 업체는 수백개가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덕근 교수/서울대 국제대학원]
"업체들의 오류가 아니라 행정적인 차원에서 불가피한 지연이 발생해서 시한을 못 맞춘다거나 그런 것 때문에 업체한테 피해를 전가한다는 거는 그건 좀 상당히 부당하다고 봐야죠."
스위스 금으로 뒤늦게 관세를 부과 받은 유동수 대표는 같은 시기에 스위스에서 백금도 수입했습니다.
관세청은 스위스에 이 백금의 원산지 증명도 요청했고 역시 10개월을 넘긴 뒤에 스위스산이 맞다는 증명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스위스와의 '상호 신뢰가 최우선시'된다며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유동수 대표/ 금 수입업체]
"같은 회사에 같은 계약서에 같은 공장에서 보내온 똑같은 물건인데 다만 그게 금이냐 백금이냐의 차이 밖에는 없었습니다. 너무 이해가 안 되죠. 상황에 따라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하니까.."
정부가 마음먹기에 따라 업체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겁니다.
금 수입업체들은 자신들의 사건이 FTA 협정문에서 규정한 예외적인 경우로 해석해야 한다면서 정부를 상대로 관세 120억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하지만 우리정부는 10개월 내에 회신을 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는 전쟁이나 천재지변만 해당된다며 세금을 걷어야겠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관세청은 서면을 통해, 원산지 검증이 10개월 내에 이뤄지지 않으면 관세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습니다.
[관세청]
"(인터뷰는 안 되는 건가요?) 그거는 좀 안 되는 것 같아요. 너무 부담스러워서.."
오히려 상대국인 스위스 정부가 이들을 예외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웨딩/ 주한 스위스 대사]
"스위스는 입장이 명확합니다. 이 사건은 예외적인 경우로 봐야 합니다."
불필요한 장벽을 없애 무역을 활성화 하자는게 FTA를 설명하는 가장 손쉬운 정의일 겁니다.
그러나 자유무역이라는 발표만 믿었다가 기업들이 느닷없이 세금 폭탄을 맞아 도산하는 일이 벌어지고, 더구나 그 이유가 공무원들의 형식적인 일처리 때문이라면, FTA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