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권희진 기자
권희진 기자
사상 최대의 운송작전, '케이슨'의 항해
사상 최대의 운송작전, '케이슨'의 항해
입력
2015-09-14 09:38
|
수정 2015-09-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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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사동항은 지금 부두를 짓기 위해 방파제 건설공사가 한창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케이슨'이라 부르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육지에서 옮겨와야 하는데, 거센 파도를 뚫고 동해 바다를 건너는 일이 여간 험난하지 않는데요.
아파트 한 동 규모의 케이슨을 운반하는 50시간의 항해를 함께 했습니다.
=============================================================================
경북 포항시 영일만항.
이른 아침 햇살이 퍼지는 바다 위에, 상자 모양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떠있습니다.
높이 22 미터에 무게 1만 4천 톤, 작은 운동장 크기인 1천4백 제곱미터의 상판 면적, 웬만한 아파트 한 동이 물 위에 떠 있는 셈입니다.
이런 구조물을 건설 현장에선 '케이슨'이라고 부르는데 주로 지하철이나 교량 같은 대형 토목공사에 사용됩니다.
이 케이슨은 동해를 가로질러 울릉도 사동항의 거센 파도를 막아낼 방파제의 일부가 될 예정입니다.
대형 기중기에 들린 작업자들이 밧줄을 묶기 위해 케이슨 위로 올라갑니다.
[작업자]
"예인줄 체결 작업하고요, 끝난 다음에 난간줄 죽 묶어야 하고요.."
케이슨과 배를 연결할 특수섬유를 꼬아 만든 지름 10 센티미터의 굵은 밧줄.
사람 손으로는 들어 올릴 수도 없어 대형 해상 기중기로 밧줄을 끌어올리고, 묶습니다.
[박현모/울릉도 방파제 공사 팀장]
"600톤까지 이제 파도를 견딜 수 있도록 그렇게 설계된 지금 나와 있는 로프 중에는 거의 가장 강도가 높은 로프라고 보시면 됩니다."
출항을 앞둔 마지막 점검.
[유상인/안전관리관]
"안전하게 운송될 수 있는지 그런 것들 판단하고요. 그다음에 예인라인에 어떤 강도들이 그 당항차를 견딜 수 있는지.."
콘크리트 덩어리를 물에 띄우는 부력을 얻기 위해 케이슨 내부의 빈 공간, 격실은 철판으로 덮었습니다.
항해 도중 물이 들이칠만한 틈은 모두 틀어막아 방수처리를 했고, 비상 상황에서 물을 퍼내기 위한 배수 시설도 설치했습니다.
[박현모/울릉도 방파제 공사 팀장]
"비상시 물을 배수하기 위해서 저희들이 이제 양수기하고 발전기를 올려놓고.."
출항을 앞두고 오징어 한 포와 막걸리 한 되를 놓고 무사 도착을 기원합니다.
"안전한 예인을 기원합니다!"
앞으로 사흘 동안은 파고가 1.5미터 이하로 잦아든다는 기상예보.
두 달 반의 기상분석 끝에 출항일을 잡았지만 깊은 바다의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박종익/을릉도 방파제 현장소장]
"수심 2천 미터 이상을 지나가다 보니까 중간에 날이 안 좋아지면 조치를 할 방법은 없습니다."
드디어 출항 시간.
예인선이 밧줄을 끌어당기기 시작합니다.
"스르릉. 철컹.."
굉음을 울리며 바다로 떨어진 밧줄은 곧 팽팽해지고, 거대한 케이슨이 서서히 수면 위를 움직이면서, 사상 최대의 수송작전이 시작됐습니다.
1시간에 걸쳐 마지막 준비와 점검을 마친 예인선단이 항구를 빠져나와 망망대해로 접어들었습니다.
목적지인 울릉도까지 210킬로미터, 웬만한 아파트 한 동 부피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꼬박 이틀 이상 끌고 가야 하는 길고 험난한 항해가 시작됐습니다.
바다 한복판의 화산섬, 울릉도의 강한 파도를 막으려면 모두 14개의 이런 초대형 구조물을 연결해 방파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파트 단지 한 개를 지을 분량의 시멘트며 철근, 공사 부지 등이 필요하지만, 울릉도에서는 이런 것들을 조달할 수 없어, 육지인 포항에서 하나하나 만들어 배로 끌고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케이슨 하나에 사용되는 철근만 1천 톤, 만드는 데만 석 달 가까이 걸리고, 제작비는 40억 원이 넘습니다.
[박현모/울릉도 방파제 공사 팀장]
"그게 가능하겠어? 불가능할 거 같은데? 그런 얘기를 다 해주셨거든요. 왜냐하면 한 번도 어디에도 수심이 2천 미터가 넘는 심해를 거쳐서 거의 2박 3일 동안 50시간 동안 운반하는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는 없습니다."
포항 앞바다를 빠져나온 예인선단이 울릉도를 향해 북동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케이슨을 사이에 두고 주 예인선인 영일호가 앞에서 끌고 흔들림을 잡아주는 장원 3호가 뒤를 따릅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예인선과 지휘 통제선인 독도선 등 모두 4척의 배와 콘크리트 덩어리가 한데 뭉쳐 동해 바다의 파도를 천천히 헤쳐나갑니다.
걸음걸이 속도인 시속 4Km, 험한 바닷길을 안전하게 가기 위한 최고 속도입니다.
예인선의 키를 잡은 박동수 선장은 경력 40년의 베테랑입니다.
그런 그도 모험에 가까운 이번 항해에선 바짝 긴장해 있습니다.
[박동수 선장/영일호]
"가기 전에 직원들이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포기도 할까 했습니다." 11325 "중간에 수심이 파도가 2천 미터 넘어가는데 가면 자체적인 파도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때 위험한 요소는 따릅니다.."
출항한 지 4시간, 오후 들어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고, 바람이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바닷바람에 빗방울이 섞여들기 시작합니다.
[박동수 선장/영일호]
"비는 안 오면 좋죠. 비가 오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날까 봐 그게 조금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짙푸른 바다 위로 노을의 붉은빛이 번져가고,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떨어질 때, 바다가 더욱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칠흑같이 어두워진 바다에는 파도에 흔들리는 예인선단의 불빛 만이 남았습니다.
기상 예보와는 달라진 바다의 상황에 박동수 선장은 동이 틀 때까지 배의 키를 놓을 수 없었습니다.
항해 이틀째, 오전 9시.
바다가 갑자기 사나와졌습니다.
짐승의 울음 같은 소리를 내며 비바람이 몰아치고, 3미터를 넘는 높은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예인선단의 배들은 파도를 넘을 때마다 아래로 고꾸라지듯 바다에 뱃머리를 들이받았습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삼킬 듯 뱃전을 뒤덮고, 파도를 넘을 때마다 엄청난 충격이 고스란히 배에 전해져옵니다.
정오 무렵, 예인선단은 울릉도로 향하던 대형 여객선 선플라워호와 마주칩니다.
[최태열 선장/썬플라워호]
"지금 보니까 울릉도 쪽이 저쪽 포항 쪽보다 (기상이) 조금 더 나쁘네요?"
[박동수 선장/영일호]
"여기보다 울릉도가 기상이 조금 더 안 좋다고요?"
[최태열 선장/썬플라워호]
"해상 실황이 그 밑에 보다 이쪽이 조금 더 나쁜데. 왔다 갔다 하면서 필요한 거 있으면 저희들이 최대한 협조해 드릴게요"
[박동수 선장/영일호]
"지나가실 때 조금만 떨어져서 지나가주시면 좋겠습니다."
늦은 오후.
바다는 더욱 거칠어지고, 배가 파도를 타넘을 때마다 예인줄은 느슨해졌다가, 마치 끊어질 듯 팽팽해지기를 반복합니다.
1만 4천 톤의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도 거센 파도에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해질 무렵, 높은 파도에 시달리던 지휘통제선, 독도선의 엔진 두 개중 하나가 꺼졌습니다.
[박동수 선장/영일호]
"어려우면 이야기하십시오. 제가 회항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못 따라올 정도 되면 이야기하십시오."
새벽 2시 45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독도선의 나머지 엔진도 완전히 멎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배가 멈춰 서면서 한순간 파도에 뒤집힐 수 있는 긴박한 상황.
[박동수 선장/영일호]
"안전하게 하려면 그걸 20미터 30미터 중간에 홀딩해가 2,30미터 줘서 안전하게 가요.."
[박동수 선장/영일호]
"갑자기 긴급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지휘 통제선 독도호가 트러블이 생겨서 대승 3호가 독도 쪽으로 예인해서 사동항으로 바로 들어갈 겁니다."
예비 예인선이 독도호를 인양해 먼저 가기로 하면서 4척의 예인선단은 2척으로 줄었습니다.
길고 험악했던 밤이 지나고, 태양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붉은 해가 떠오르는 수평선 저편, 푸른 바다 위로 우뚝 솟은 울릉도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간밤의 위기를 넘기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
울릉도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목이 메이고 눈시울은 뜨거워졌습니다.
[정용무/울릉도 방파제 공사과장]
"6번째 운반을 하는데요. 가장 힘들었습니다. 진짜 힘들었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 위로, 두 척으로 줄어든 예인선단이 서서히 울릉도 사동항을 향해 다가옵니다.
꼬박 50시간, 악전고투를 벌이며 거칠고 깊은 동해바다를 건너온 예인선이 무사히 울릉도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바다 위로 끌고 온 거대한 구조물을 수심 18미터의 해저에 정확하게 내려놓아야 하는 또 한차례의 어려운 작업이 남았습니다.
"나오세요. 뒤에 나오세요."
항내에 들어선 예인선은 밧줄을 감으며 예인줄의 길이를 줄였습니다.
이미 설치된 5개의 구조물, 케이슨 옆에 운반해 온 구조물을 정확하게 이어붙이기 위해섭니다.
"이거 땡길 수 있다."
"자르면 안된다니까는."
하늘은 맑았지만 파도는 여전히 높았습니다.
강한 너울에 배가 흔들릴 때마다 케이슨에 연결한 예인줄이 위태롭게 팽팽해집니다.
그러기를 수차례.
케이슨을 끌고 오던 예인줄이 힘을 견디지 못하고 갑자기 끊어졌습니다.
또 한차례의 위기 상황.
[정찬기/영일호 항해사]
"예인 로프가 터졌습니다. 너울 때문에. 너울이 치면 케이슨하고 배하고 따로 놀기 때문에 갑자기 급장이 먹어서 터졌습니다."
결국 후미의 장원호가 후진하면서 케이슨을 끌고, 줄이 끊어진 영일호는 이를 옆에서 밀면서 나아갑니다.
이렇게 해서 포항을 떠나온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마침내 제 위치에 도착했습니다.
구조물이 내려앉을 위치인 수심 18미터 아래 해저 지반은 잠수부들이 일일이 손으로 미리 다져뒀습니다.
지금은 바다 위에 떠있는 구조물의 빈 공간에 물을 채우고 있는데요, 이렇게 서서히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거대한 구조물이 오차 범위 15센티미터의 이내의 정확한 위치에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바닷물을 넣고 빼며 케이슨의 위치를 조정한 끝에 이미 설치된 5개의 케이슨 옆으로 6번째 케이슨이 성공적으로 연결됐습니다.
울릉도 사동항은 독도로 향하는 배가 출발하는 곳.
정부는 이곳에 여객선과 함께 해경 배 한 척과 해군 배 두 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부두를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박희영/울릉도 방파제공사 감리단장]
"해군 부두는 부두 연장이 한 4백 미터 될 겁니다. 2백 미터와 2백 미터. 2백 미터에 한 배를 댈 수가 있고 그러니까 두 배를 댈 수 있죠. 동시에.."
독도에서의 분쟁과 같은 유사시에 대비해 울릉도에 구축함과 같은 대형 해군 함정이 정박할 수 있는 접안시설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동해안을 출발한 우리 함정이 독도 해역에 도착하려면 꼬박 4시간 이상이 걸리지만,
울릉도의 해군 부두가 완공되면 1시간 남짓이면 독도 해역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양욱/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원]
"출항할 수 있는 출항 준비를 갖춘 그 전투함이 배치돼있다라는 거 자체는 그쪽을 적이 함부로 공격을 하거나 혹은 들어와서 무력시위를 할 수 없게 되는 그런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항구를 건설하려면 방파제가 먼저 만들어져 울릉도의 남동 방향에서 몰아치는 거친 파도를 막아내야 합니다.
모두 14개의 거대한 케이슨을 이어붙여야 하는 640미터 길이의 방파제는 내후년 1월 완공될 예정입니다.
그러려면 앞으로 8개의 케이슨이 또 줄줄이 포항에서 울릉도까지의 고된 항해를 해야 합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북풍이 불고, 조류의 방향도 바뀌어 동해의 항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박현모/울릉도 방파제 공사 팀장]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는 없거든요. 바다를 이길 수 없고, 어차피 최선의 준비를 하고 최고의 준비를 하더라도 기상이 나쁘고 파도가 높으면 또 작업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동해의 거센 파도와 바람.
자연의 허락 없인 완수할 수 없는 이 거대하고도 험난한 케이슨의 항해가 끝나면 우리 땅 독도로 가는 길도 한층 가까워질 전망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케이슨'이라 부르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육지에서 옮겨와야 하는데, 거센 파도를 뚫고 동해 바다를 건너는 일이 여간 험난하지 않는데요.
아파트 한 동 규모의 케이슨을 운반하는 50시간의 항해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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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영일만항.
이른 아침 햇살이 퍼지는 바다 위에, 상자 모양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떠있습니다.
높이 22 미터에 무게 1만 4천 톤, 작은 운동장 크기인 1천4백 제곱미터의 상판 면적, 웬만한 아파트 한 동이 물 위에 떠 있는 셈입니다.
이런 구조물을 건설 현장에선 '케이슨'이라고 부르는데 주로 지하철이나 교량 같은 대형 토목공사에 사용됩니다.
이 케이슨은 동해를 가로질러 울릉도 사동항의 거센 파도를 막아낼 방파제의 일부가 될 예정입니다.
대형 기중기에 들린 작업자들이 밧줄을 묶기 위해 케이슨 위로 올라갑니다.
[작업자]
"예인줄 체결 작업하고요, 끝난 다음에 난간줄 죽 묶어야 하고요.."
케이슨과 배를 연결할 특수섬유를 꼬아 만든 지름 10 센티미터의 굵은 밧줄.
사람 손으로는 들어 올릴 수도 없어 대형 해상 기중기로 밧줄을 끌어올리고, 묶습니다.
[박현모/울릉도 방파제 공사 팀장]
"600톤까지 이제 파도를 견딜 수 있도록 그렇게 설계된 지금 나와 있는 로프 중에는 거의 가장 강도가 높은 로프라고 보시면 됩니다."
출항을 앞둔 마지막 점검.
[유상인/안전관리관]
"안전하게 운송될 수 있는지 그런 것들 판단하고요. 그다음에 예인라인에 어떤 강도들이 그 당항차를 견딜 수 있는지.."
콘크리트 덩어리를 물에 띄우는 부력을 얻기 위해 케이슨 내부의 빈 공간, 격실은 철판으로 덮었습니다.
항해 도중 물이 들이칠만한 틈은 모두 틀어막아 방수처리를 했고, 비상 상황에서 물을 퍼내기 위한 배수 시설도 설치했습니다.
[박현모/울릉도 방파제 공사 팀장]
"비상시 물을 배수하기 위해서 저희들이 이제 양수기하고 발전기를 올려놓고.."
출항을 앞두고 오징어 한 포와 막걸리 한 되를 놓고 무사 도착을 기원합니다.
"안전한 예인을 기원합니다!"
앞으로 사흘 동안은 파고가 1.5미터 이하로 잦아든다는 기상예보.
두 달 반의 기상분석 끝에 출항일을 잡았지만 깊은 바다의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박종익/을릉도 방파제 현장소장]
"수심 2천 미터 이상을 지나가다 보니까 중간에 날이 안 좋아지면 조치를 할 방법은 없습니다."
드디어 출항 시간.
예인선이 밧줄을 끌어당기기 시작합니다.
"스르릉. 철컹.."
굉음을 울리며 바다로 떨어진 밧줄은 곧 팽팽해지고, 거대한 케이슨이 서서히 수면 위를 움직이면서, 사상 최대의 수송작전이 시작됐습니다.
1시간에 걸쳐 마지막 준비와 점검을 마친 예인선단이 항구를 빠져나와 망망대해로 접어들었습니다.
목적지인 울릉도까지 210킬로미터, 웬만한 아파트 한 동 부피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꼬박 이틀 이상 끌고 가야 하는 길고 험난한 항해가 시작됐습니다.
바다 한복판의 화산섬, 울릉도의 강한 파도를 막으려면 모두 14개의 이런 초대형 구조물을 연결해 방파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파트 단지 한 개를 지을 분량의 시멘트며 철근, 공사 부지 등이 필요하지만, 울릉도에서는 이런 것들을 조달할 수 없어, 육지인 포항에서 하나하나 만들어 배로 끌고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케이슨 하나에 사용되는 철근만 1천 톤, 만드는 데만 석 달 가까이 걸리고, 제작비는 40억 원이 넘습니다.
[박현모/울릉도 방파제 공사 팀장]
"그게 가능하겠어? 불가능할 거 같은데? 그런 얘기를 다 해주셨거든요. 왜냐하면 한 번도 어디에도 수심이 2천 미터가 넘는 심해를 거쳐서 거의 2박 3일 동안 50시간 동안 운반하는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는 없습니다."
포항 앞바다를 빠져나온 예인선단이 울릉도를 향해 북동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케이슨을 사이에 두고 주 예인선인 영일호가 앞에서 끌고 흔들림을 잡아주는 장원 3호가 뒤를 따릅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예인선과 지휘 통제선인 독도선 등 모두 4척의 배와 콘크리트 덩어리가 한데 뭉쳐 동해 바다의 파도를 천천히 헤쳐나갑니다.
걸음걸이 속도인 시속 4Km, 험한 바닷길을 안전하게 가기 위한 최고 속도입니다.
예인선의 키를 잡은 박동수 선장은 경력 40년의 베테랑입니다.
그런 그도 모험에 가까운 이번 항해에선 바짝 긴장해 있습니다.
[박동수 선장/영일호]
"가기 전에 직원들이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포기도 할까 했습니다." 11325 "중간에 수심이 파도가 2천 미터 넘어가는데 가면 자체적인 파도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때 위험한 요소는 따릅니다.."
출항한 지 4시간, 오후 들어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고, 바람이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바닷바람에 빗방울이 섞여들기 시작합니다.
[박동수 선장/영일호]
"비는 안 오면 좋죠. 비가 오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날까 봐 그게 조금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짙푸른 바다 위로 노을의 붉은빛이 번져가고,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떨어질 때, 바다가 더욱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칠흑같이 어두워진 바다에는 파도에 흔들리는 예인선단의 불빛 만이 남았습니다.
기상 예보와는 달라진 바다의 상황에 박동수 선장은 동이 틀 때까지 배의 키를 놓을 수 없었습니다.
항해 이틀째, 오전 9시.
바다가 갑자기 사나와졌습니다.
짐승의 울음 같은 소리를 내며 비바람이 몰아치고, 3미터를 넘는 높은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예인선단의 배들은 파도를 넘을 때마다 아래로 고꾸라지듯 바다에 뱃머리를 들이받았습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삼킬 듯 뱃전을 뒤덮고, 파도를 넘을 때마다 엄청난 충격이 고스란히 배에 전해져옵니다.
정오 무렵, 예인선단은 울릉도로 향하던 대형 여객선 선플라워호와 마주칩니다.
[최태열 선장/썬플라워호]
"지금 보니까 울릉도 쪽이 저쪽 포항 쪽보다 (기상이) 조금 더 나쁘네요?"
[박동수 선장/영일호]
"여기보다 울릉도가 기상이 조금 더 안 좋다고요?"
[최태열 선장/썬플라워호]
"해상 실황이 그 밑에 보다 이쪽이 조금 더 나쁜데. 왔다 갔다 하면서 필요한 거 있으면 저희들이 최대한 협조해 드릴게요"
[박동수 선장/영일호]
"지나가실 때 조금만 떨어져서 지나가주시면 좋겠습니다."
늦은 오후.
바다는 더욱 거칠어지고, 배가 파도를 타넘을 때마다 예인줄은 느슨해졌다가, 마치 끊어질 듯 팽팽해지기를 반복합니다.
1만 4천 톤의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도 거센 파도에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해질 무렵, 높은 파도에 시달리던 지휘통제선, 독도선의 엔진 두 개중 하나가 꺼졌습니다.
[박동수 선장/영일호]
"어려우면 이야기하십시오. 제가 회항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못 따라올 정도 되면 이야기하십시오."
새벽 2시 45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독도선의 나머지 엔진도 완전히 멎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배가 멈춰 서면서 한순간 파도에 뒤집힐 수 있는 긴박한 상황.
[박동수 선장/영일호]
"안전하게 하려면 그걸 20미터 30미터 중간에 홀딩해가 2,30미터 줘서 안전하게 가요.."
[박동수 선장/영일호]
"갑자기 긴급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지휘 통제선 독도호가 트러블이 생겨서 대승 3호가 독도 쪽으로 예인해서 사동항으로 바로 들어갈 겁니다."
예비 예인선이 독도호를 인양해 먼저 가기로 하면서 4척의 예인선단은 2척으로 줄었습니다.
길고 험악했던 밤이 지나고, 태양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붉은 해가 떠오르는 수평선 저편, 푸른 바다 위로 우뚝 솟은 울릉도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간밤의 위기를 넘기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
울릉도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목이 메이고 눈시울은 뜨거워졌습니다.
[정용무/울릉도 방파제 공사과장]
"6번째 운반을 하는데요. 가장 힘들었습니다. 진짜 힘들었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 위로, 두 척으로 줄어든 예인선단이 서서히 울릉도 사동항을 향해 다가옵니다.
꼬박 50시간, 악전고투를 벌이며 거칠고 깊은 동해바다를 건너온 예인선이 무사히 울릉도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바다 위로 끌고 온 거대한 구조물을 수심 18미터의 해저에 정확하게 내려놓아야 하는 또 한차례의 어려운 작업이 남았습니다.
"나오세요. 뒤에 나오세요."
항내에 들어선 예인선은 밧줄을 감으며 예인줄의 길이를 줄였습니다.
이미 설치된 5개의 구조물, 케이슨 옆에 운반해 온 구조물을 정확하게 이어붙이기 위해섭니다.
"이거 땡길 수 있다."
"자르면 안된다니까는."
하늘은 맑았지만 파도는 여전히 높았습니다.
강한 너울에 배가 흔들릴 때마다 케이슨에 연결한 예인줄이 위태롭게 팽팽해집니다.
그러기를 수차례.
케이슨을 끌고 오던 예인줄이 힘을 견디지 못하고 갑자기 끊어졌습니다.
또 한차례의 위기 상황.
[정찬기/영일호 항해사]
"예인 로프가 터졌습니다. 너울 때문에. 너울이 치면 케이슨하고 배하고 따로 놀기 때문에 갑자기 급장이 먹어서 터졌습니다."
결국 후미의 장원호가 후진하면서 케이슨을 끌고, 줄이 끊어진 영일호는 이를 옆에서 밀면서 나아갑니다.
이렇게 해서 포항을 떠나온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마침내 제 위치에 도착했습니다.
구조물이 내려앉을 위치인 수심 18미터 아래 해저 지반은 잠수부들이 일일이 손으로 미리 다져뒀습니다.
지금은 바다 위에 떠있는 구조물의 빈 공간에 물을 채우고 있는데요, 이렇게 서서히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거대한 구조물이 오차 범위 15센티미터의 이내의 정확한 위치에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바닷물을 넣고 빼며 케이슨의 위치를 조정한 끝에 이미 설치된 5개의 케이슨 옆으로 6번째 케이슨이 성공적으로 연결됐습니다.
울릉도 사동항은 독도로 향하는 배가 출발하는 곳.
정부는 이곳에 여객선과 함께 해경 배 한 척과 해군 배 두 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부두를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박희영/울릉도 방파제공사 감리단장]
"해군 부두는 부두 연장이 한 4백 미터 될 겁니다. 2백 미터와 2백 미터. 2백 미터에 한 배를 댈 수가 있고 그러니까 두 배를 댈 수 있죠. 동시에.."
독도에서의 분쟁과 같은 유사시에 대비해 울릉도에 구축함과 같은 대형 해군 함정이 정박할 수 있는 접안시설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동해안을 출발한 우리 함정이 독도 해역에 도착하려면 꼬박 4시간 이상이 걸리지만,
울릉도의 해군 부두가 완공되면 1시간 남짓이면 독도 해역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양욱/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원]
"출항할 수 있는 출항 준비를 갖춘 그 전투함이 배치돼있다라는 거 자체는 그쪽을 적이 함부로 공격을 하거나 혹은 들어와서 무력시위를 할 수 없게 되는 그런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항구를 건설하려면 방파제가 먼저 만들어져 울릉도의 남동 방향에서 몰아치는 거친 파도를 막아내야 합니다.
모두 14개의 거대한 케이슨을 이어붙여야 하는 640미터 길이의 방파제는 내후년 1월 완공될 예정입니다.
그러려면 앞으로 8개의 케이슨이 또 줄줄이 포항에서 울릉도까지의 고된 항해를 해야 합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북풍이 불고, 조류의 방향도 바뀌어 동해의 항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박현모/울릉도 방파제 공사 팀장]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는 없거든요. 바다를 이길 수 없고, 어차피 최선의 준비를 하고 최고의 준비를 하더라도 기상이 나쁘고 파도가 높으면 또 작업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동해의 거센 파도와 바람.
자연의 허락 없인 완수할 수 없는 이 거대하고도 험난한 케이슨의 항해가 끝나면 우리 땅 독도로 가는 길도 한층 가까워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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