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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민병호 기자

낙석, 알아서 피해라?

낙석, 알아서 피해라?
입력 2015-09-21 11:53 | 수정 2015-09-2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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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국립공원 설악산 산책로를 걷던 70대 등산객이 낙석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산비탈에서 무려 100톤 규모의 돌무더기가 굴러떨어지며 나무와 교량 등을 덮쳤고 이에 깔려 사망했습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측은 낙석은 천재지변, 즉 불의의 사고이며 사고 지점 근처에 ‘낙석 조심’이라는 팻말을 여러 개 붙여 놨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유족들은 등산로를 이탈한 것도 아니고 공원 측이 등산객들이 다니라고 일부러 조성해 놓은 산책로를 걷다가 이 같은 사고를 당했는데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습니다.

    산에서 일어나는 각종 낙석 사고, 그저 운이 없을 뿐인가, 굴러 오는 돌은 알아서 피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관리주체인 관청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에는 과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일인지 냉정히 따져 봅니다.

    ==================================================================

    지난달 설악산.

    계곡 아래로 철제 다리가 널브러져 있고 뭔가에 휩쓸린 듯 나무들이 쓰러져 있습니다.

    계곡 아래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119를 찾습니다.

    '119 부르세요 여기. 119 부르세요 지금...'

    산에서 떨어진 바위가 나무와 다리, 다리를 건너던 등산객 3명을 덮친 겁니다.

    [조창열(사고 목격자)]
    "'우웅' 하고 '스윽' 뭐가 내려오더라구요. 그리고 이렇게 보니까 흙이 '주욱' 흙더미 같은 것들이 막 내려오는 거예요. 그 순간에 '콱' 철제 다리를 덮쳐 버린 거예요"

    잠시 후 구조 헬기가 도착했고 사람들이 부상자들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우종환(사고자)]
    "한참 내려오면서 경치 구경도 하고 그리고 오색 약수터라는 데가 조금 내려가면 있다는 얘기만 듣고 그러고부터 기억이 없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던 설악산 나들이는 끔찍한 사고의 악몽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산에서 떨어진 바위 때문에 한 사람이 목숨을 잃고 두 사람이 크게 다쳤습니다.

    이들은 모두 국립공원에서 만들어 놓은 등산로를 이용해 다리를 건너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요.

    그냥 단지 운이 없었다고 해야 하는 걸까요.

    사고 이후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된 설악산 흘림골 입구.

    국립공원관리공단의 통제 아래 사고 현장에 들어가 봤습니다.

    당시 등산객들은 흘림골 입구에서 출발해 오색 약수터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사고는 산행 시작 3시간쯤 뒤, 도착지점을 2.5km 정도 남겨두고 일어났습니다.

    [김기창(공단 직원)]
    "이 앞에 보이시는 바위산, 위에서부터 굴러떨어진 돌에 의해서 2차 낙석이 발생이 돼서 저 앞에 보이시는 저 끊어진 교량, 저 끝단 부분으로 이제 돌이 굴렀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봤습니다.

    길이 가파르고 미끄러워 밧줄을 타고 내려가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계곡 아래, 사고의 원인이 된 60톤짜리 바위가 보였습니다.

    사고로 유실된 이 다리는 지난 5월 신축된 높이 6m 길이 20m 중량 3.5톤의
    아치형 철제 구조물입니다.

    그런데 150m 위에서 100톤 규모의 낙석이 발생하면서 30m 길이의 나무와 함께 쓸려 무너진 겁니다.

    당시 3명의 등산객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는데 그중 7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조창열 씨는 간발의 차로 사고를 면했지만 눈앞에서 지인을 잃었습니다.

    [조창열]
    "저는 뒤에 같이 오시던 분이 있더라고요. 그분이 보셨는지 '회장님' 하고 저의 혁대를 당겨버리더라고요.. (그분이 안 당겼으면) 같이 갔죠 쓸려버렸죠 "

    만약 당시 다리를 건너던 등산객이 많았다면 더 끔찍한 사고로 이어졌을 거라고 했습니다.

    [조창열]
    "보니까 애들도 많이 왔더라고요. 평범한 길이잖아요. 그런데 이 다리가 한순간에 쓸려가지고 사상자가 났다는 건 감히 예측할 수 없는 일이죠."

    이번 사고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이혁재씨.

    다음 달 칠순 잔치를 앞두고 있던 아버지의 죽음이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이혁재(사고 유가족)]
    "그 당시에 입었던 거. 등산하실 때 (장례 치르고 이것만 좀 남겨두셨군요)
    이거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또 남기신 거라, 또 직접 입으셨던 거라..."

    가지 말라는 길로 간 것도 아니고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운이 없었다고만 하기엔 억울한 죽음.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책임을 물었지만 자연재해 사망위로금 1천만 원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중상을 입은 피해자들에게도 위로금 500만 원이 전부라고 했습니다.

    [이혁재(사고 유가족)]
    "부상당하신 분들은 계속 병원에 계시잖아요. 병원 수술비에다가 병원비에다가 또 병원 퇴원을 해도 또 후유증 이런 것에 대해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계시더라고요."

    사고 한 달 만에 어렵게 만난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은 소송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관리공단 관계자]
    "지금처럼 이렇게 사건이 생기면 법적으로 서로의 과실을 따지는 게 제일 일반적인 방법이었고요 소송이 들어오지 않으면 저희가 해결해 드릴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어서요"

    [이혁재(사고 유가족)]
    "그러니까 소송을 하라는 거죠. 그리고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우리가 패소한 적이 없지?'"

    시설물에 대한 보험도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국립공단관계자]
    "그런 거에 대해서는 지금 저희가 보험은 설계를 가입해 놓은 것은 없어요.
    (보험이 아예 없어요?) 네, 없습니다."

    이번 사고로 갈비뼈 10개가 부러지고 뇌와 장기에 심한 손상을 입은 우종환씨.

    사고 발생 20일 만에 겨우 의식을 되찾았지만 수술 경과보다 병원비가 더 걱정입니다.

    지금까지 치료비만 2천여만 원.

    앞으로 얼마가 더 들지 모릅니다.

    [우종환(사고피해자)]
    "천재지변이라고 얘기를 할 순 있죠 당연히 근데 저희 상식으로.. 국가가 인정하는 국가에서 시설한.. 국민이 마음을 놓고 등산도 하고 할 수 있는 지역인데 어쩌면 그런 데 들어가서 이렇게 쉽게 사고를 당하고..."

    결국 피해자 가족들은 법의 심판을 받아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김재식 변호사]
    "자연 재해라 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 대법원은 그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면 불가항력으로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명확하게 판시를 하고 있거든요."

    자연재해냐 인재냐.

    사실 설악산은 올해만 5차례의 낙석이 발생했을 정도로 지질학적 특성상 언제 어디서나 낙석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바위와 돌들이 끊임없이 눈에 띄고 낙석주의 표지판도 수도 없이 세워져 있습니다. 더 위험한 건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의 낙석.

    [김기창(관리공단)]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대형 낙석이 발생되면 낙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구간은 아무 데도 없어요. 위험하다라는 것을 통해서 이제 무조건 위험하니까 다 통제한다라고 하면 제가 볼 때 설악산 전체 구간을 다 통제해야 될 상황..."

    갑자기 굴러 떨어지는 돌을 어쩌겠냐는 항변이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엄연히 사람들의 출입이 허용되고, 그 숫자도 많은 곳이라면, 알아서 피하란 말만 할 게 아니라 이런 불상사를 줄일 수 있도록 사전에, 또는 사후에 얼마나 철저한 조치를 하고 있느냐는 챙겨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지점에선 올해 1월에도 낙석이 발생했습니다.

    당시에는 나무 구조물만 부서지고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공단 측은 위험을 없앤다며 같은 자리에 높이만 높여 새 다리를 만들었고, 바로 여기서 사상자가 생긴 겁니다.

    [이승석(낙석사고 유가족)]
    "한번 떨어졌던 곳이면 자연재해입니다. 그런데 1월달에도 사고가 났고 다시 증축했으니 '안전하게 다닐 수 있습니다'라는 푯말까지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다시 사고가 난 것은 자연재해가 아니고 인재라고 생각하거든요."

    낙석이 반복되는 위험한 곳이라면 주의 표지판만 세울게 아니라 출입을 통제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설악산의 빼어난 경치를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고 싶어 하는 등산객이나 생업과 직결된 지역 주민들의 의견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공단 관계자(녹취)]
    "설악산을 따지면 지금 확인된 곳만 58개소입니다. 낙석 떨어지는 거. 그렇게 따지면 설악산 전체를 다 통제해야 됩니다. '야, 그렇게 위험한 데를 어떻게 막아야지' 이러는데 지금 밑에는 (주변 상인들은) 난리입니다. 개방 안하냐고 당신들 책임질 수 있겠냐고.."

    실제로, 사고 이후 흘림골이 폐쇄되면서 주변 상인들은 적잖은 타격을 입었고 국립공원 측에 흘림골 개방을 요구했습니다.

    [주변상인]
    "흘림골을 개방을 해 달라. 거기가 통제가 되면 여기 장사가 안 되니까. (그런데 이전에도 거기 한 번 낙석 떨어진 적이 있어서..) 거기가 사고가 많이 나요. (사고 많이 나면 거기(흘림골) 어떻게 해야 되는거 아니에요?)(그래서) 임시로 가을만이라도 좀 열어달라고 동네 사람들 회의 끝에. (그랬더니) 그러면 그렇게 하라고 해가지고"

    위험한 곳인 건 알지만 상인들의 입장은 분명하며, 곧 다시 개방될 거라고 합니다.

    [주변 상인]
    "지금 저희 애기 아빠가 거기서 (복구공사) 하고 있는데 위험하대요. 전문가들이 오셔가지고 탐방을 하셔가지고 이 곳 (흘림골)은 절대 오픈할 수 없다 했는데 여기 사람들하고 다시 몇 차례 (회의를) 거쳐가지고 지금 이번에 월요일부터 수리 복구를 하게 된 거예요... 한 달 동안 오픈하는 걸로 하고.."

    본격적인 단풍철이 되면 엄청난 인파들이 몰려들 거라고 했습니다.

    [주변 상인]
    "흘림골이 지금 3시간 코스고.. 가을 같은 경우는 3시간 코스에 사람들이 제일 많아요.(그러면 가을에는 흘림골에 사람들이 줄을 서겠네요?) 이제 밀려서 떠 밀려서 간다고 보시면 되요."

    이렇듯 등산객이나 관리공단, 상인 모두 실제로 나에게 닥치지 않은 위험은 그리 와 닿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암벽등반의 메카로 불리는 북한산 인수봉.

    아름다운 산세와 함께 저 멀리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렇게 평화로워 보이는 인수봉도 매년 낙석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석 달 전 한 명이 숨진 것을 비롯해 지난 2년간, 낙석사고로 2명이 죽고 4명이 다쳤습니다.

    모두 암벽등반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동윤(북한산 구조대)]
    "바위에 있으면 공간이 제약이 되어 있잖아요. 매달려 있다든지 아니면 묶여있기 때문에 피할 수 있는 그런 조건 자체가 평지보다는 상당히 제약이 따라요."

    위험이 예견되는 낙석을 인위적으로 떨어뜨려 제거하는 장면입니다.

    이렇듯 때마다 낙석 제거가 이뤄지고 있지만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암벽등반 동호인들은 이런 위험은 스스로 감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동수(대학산악연맹)]
    "사실 굉장히 불행한 일인데 그건 어떻게 보면 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그런 위험을 자기들이 미리 알고 오는 것이고...."

    법원도 지난해, 암벽등반 사망자 유가족이 낸 소송에서 '암벽등반 자체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며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암벽등반이 아닌 정규 등산로에서 낙석사고가 났을 경우에도 등산객만이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엇갈립니다.

    [송재호 / 등산객]
    "단순하게 돌이 떨어진 데에 대해서는 국립공원이 거기까지 무한하게 책임을 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김장선 / 등산객]
    "여기가 국립공원이다 보니까 관리하는 주체에서 나라에서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 5년간 국립공원에서 낙석으로 인한 재산. 인명피해는 모두 16건.

    암반 자체가 노령화되면서 낙석사고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시설물에 대한 보험 가입 등의 적극적인 대처는 여전히 쉽지 않은 분위깁니다.

    [김진광(국립공원관리공단 재난안전부장)]
    "영업배상책임보험 같은 경우 요율을 추산해서 산출을 해보면... 매년 한 22억 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됩니다...사고가 안나면 20억원의 예산이 국민 혈세가 낭비되는 그런 사례가 발생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이번 주부터 단풍철이 시작됩니다.

    이 기간 국립공원을 찾는 사람은 1천3백만 명.

    또 어디에서 돌이 떨어져 사고가 날지 모르고 그 책임 소재를 따지는 일도 쉽지 않을 겁니다.

    마른하늘에 벼락 맞을 낮은 확률이라도, 대비할 여지가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아보는 노력이 아쉬운 이유는, 그 낮은 확률이 바로 내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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