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왕종명 기자
왕종명 기자
가락시장의 이상한 변신
가락시장의 이상한 변신
입력
2015-10-05 11:02
|
수정 2015-10-05 19:08
재생목록
국내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서울 가락시장. 지어진 지 30년이 넘다 보니 낡고 노화된 시설에 혼잡하다는 불편이 제기되면서 현대화 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올해 1단계로 가락몰을 완공하고 상인들이 이주하게 되어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상인들은 이전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쾌적한 환경과 신속한 물류운송 시스템을 갖췄다는 24시간 농수산쇼핑몰 가락몰. 과연 어떻게 설계된 걸까요?
--------------------------------------------------------------------------------------------------------------------------------------------
"생존권 위협하는 가락몰 반대한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시장에서 채소와 과일을 파는 상인들입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새벽 장사를 마치고 아침에 모여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가락몰 이전 반대한다"
이들이 시장 한복판을 관통해 도착한 곳은 새로 지은 고층 건물.
"새로운 가락시장, 가락몰입니다."
상인들은 이 새 건물에 입주하지 않겠다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겁니다.
[배유덕/가락시장 상인]
"장사를 가서 할 수 있으면 어찌 돈 들여서 지어놓고 새 건물인데 어서 가려고 하지 왜 안 가겠소. 오죽 못 가겠으면 장사도 그만두고 뭣도 그만두고 날이면 날마다 데모하느라고 뙤약볕에 가서 개장한 지 30년 된 가락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거래량이 많은 공영도매시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사이 시설도 낡고 유통질서도 복합해지면서 지난 2009년 '디자인 서울'의 일환으로 현대화 사업이 시작됐고 그 1단계로 직판 상인들이 입주할 가락몰이 올해 2월 완공됐습니다.
새 건물에서 장사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데 상인들은 왜 들어가지 못하겠다는 걸까요?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54만 3천여 제곱미터. 축구장 70여 개 크기로 국내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 가락시장.
지하 3층, 지상 18층짜리 가락몰은 시장 동쪽 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총 3단계인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의 1단계로 청과, 수산, 축산 직판 시장이 여기로 이전하면 그 빈자리에 경매장과 대형 도매상을 위한 2, 3 단계 사업이 진행됩니다.
원래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지난달부터 입주가 시작돼야 하지만 아직도 텅 비어있습니다.
입주를 가장 거세게 반대하는 이들은 지하 1층으로 배정받은 청과 직판 상인입니다.
일단 산지에서 곧바로 온 채소를 다듬고 물을 뿌려 신선함을 유지시키기엔 지하라는 공간이 맞지 않다는 겁니다.
[청과 직판 상인]
"야채 자체는 먼지 또 흙이 묻어 있으니까 (쓱 만져보고) 이게 지금 다 그 흙이에요, 먼지고. 내일 아침 상태를 보면 대파가 이렇게 꼬부려집니다. 채소는 신선도를 강조하는데 지하에 가서 생물도 숨을 쉬어야 할 것 아닙니까 뭣보다 물류 운송이 문제라고 합니다."
현재의 청과 직판 시장은 사방으로 뚫린 출입구가 모두 147개 하지만 가락몰 지하 1층엔 출입구가 단 3개, 그것도 한쪽으로만 나있습니다.
상품을 싣기 위해 출입구 앞에 한꺼번에 몰리는 손님들의 트럭 수백 대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겁니다.
[김병철/청과직판 상인]
"147개 통로가 있는데도 새벽 시간대에는 고성이 오갑니다. 야 빨리 좀 가봐라/가장 피크라고 하는 (아침) 5시부터 7시 사이 이 시간대는 말 그대로 물류 운송수단이 마비라고 봐야죠"
또 지금은 1층 가게에서 1층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수평 상권이지만 가락몰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동해야 하는 수직 상권이라 동선이 길어지고 그만큼 시간도 더 걸릴 거라고 걱정합니다.
[최종태/청과직판 상인]
"연세 드신 분들도 많이 장사하기 때문에 제일 안쪽에서 출입구 나가는 게 정확한 시간 안 재 봤지만 노인네들 한번 배달 갔다 오면 (장사) 끝나요."
현대화 사업의 주체인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는 지하 1층에 240대의 주차 공간이 있는 만큼 지상과 다를 바 없다는 입장입니다.
[임창수 팀장/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 공사관리 팀]
"구매자들 차량을 (한 시간대) 평균 조사해보면 한 250대 내외라는 거죠. 이 정도 주차대수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가락시장의 주 고객인 식재료 납품업자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김기태/식재료 납품업자]
"그건 아니죠. 저희가 지하로 내려가야 되는데 당연히 불편하죠. 지하로 갈 바에는 안 사죠."
[주금산/식재료 납품업자]
"그 많은 차들이 다 어디로 들어가겠어요. 들어가겠어요. 지하에 있는 시장은 아예 거래를 안 하지요."
실제로 어떨지, 손님들이 주로 사용하는 1톤부터 3.5톤 트럭을 몰고 지하로 가봤습니다.
가장 작은 1톤 트럭.
상품을 싣고 유턴해서 나와야 하는데 왕복 2차선 넓이다 보니 한 번에 돌지 않습니다.
이번엔 3.5톤 트럭.
양옆에 다른 차가 주차돼있다고 가정해봤더니 대여섯 번 왔다 갔다 한끝에야 차를 돌릴 수 있습니다.
그 사이 뒤차들은 길게 늘어섰습니다.
[트럭 운전기사]
"이런 주차 전쟁을 겪으면서 물건을 만날 사면 싸움까지 나요. 저 같으면 물건 사러 여기 안 들어올 거 같습니다."
트럭이 지하로 내려오지 않으면 지상에 댈 수밖에 없는데, 지상에 그럴 만한 주차공간도 없고, 있다 해도 지상까지 배달할 운송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상인들은 말합니다.
지금은 시장 안을 자유롭게 다니는 오토바이, 매연과 소음 때문에 가락몰에선 사용할 수 없습니다.
손수레에 싣고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총 9대뿐이어서 손님이 몰리는 시간엔 상인 660명과 손님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싸움을 벌여야 할 판이라고 합니다.
[지강도/청과직판 상인]
"저희는 시간 다툼이거든요.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인데. 한두 분 정도는 기다렸다 같이 움직일 수 있지만요 열 사람 스무 사람 다 기다릴 수 없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상인들끼리 또 싸움이 양이 많은 상품은 주로 전동차로 나르는데 지상으로 이어지는 전동차 전용 도로는 한 개. 짐을 싣고 운행해봤습니다.
먼저 내려가는 길
"(브레이크. 이게 밟은 거예요? 안 서네?) 네.."
경사를 이기지 못하고 전동차가 밀려 내려갑니다.
이번엔 올라가는 길
"(스톱, 출발! 오오오오) 쾅,"
실려있던 채소가 뒤로 쏟아집니다.
감자 1톤을 싣자 전동차가 뒤로 밀립니다.
"출발! 출발! 할 수가 없다니까요.
(안 되겠어, 밀어주세요)"
앞이나 뒤에 다른 차가 있다면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청과직판 상인]
"백 퍼센트 사고 나죠. 될 수가 없는 거예요. 장사가 이렇다 보니 가락몰에선 트럭까지 대량의 상품을 날라주는 도매 영업이 아니라 주부 같은 일반 소비자가 조금씩 사서 직접 가져가는 마트형 소매 영업 밖에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문복덕/청과직판 상인]
"하루 저녁에 물동량이 수천 톤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데 거기는 쇼핑몰 쇼핑센터, 그대로 소매시장을 지어놓고 파 한단 고추 한 근 팔게 만들어 놓고 실제로 농수산식품공사는 현대화 사업을 통해 가락시장에 혼재돼 있는 도매와 소매를 분리하겠다면서 대형 도매상에 비해 규모가 작은 직판 시장을 소매로 분류해 소매를 전담할 가락몰로 배치했습니다."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무빙워크를 설치하고 (서류) 카트를 수백 대 도입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니세 팀장/ 서울시농수산식품공장 임대관리팀]
"(무빙워크도 보조수단으로 설치를?) 소비자 소비자, 일반 소비자용"
그렇다면 청과 직판이 과연 소매업일까.
30년 경력의 상인과 하루 장사를 같이 해봤습니다.
집을 나서는 시간은 오후 4시 반, 시장에 나오면 낮 시간 닫혀있던 가게 문을 열고 경매장으로 향합니다.
저녁시간 진행되는 경매에 나온 상품을 미리 살펴보기 위해섭니다.
[황성업/청과직판 상인]
"줄줄이 다니면서 아 오늘 좋은 물건이 어떤 자리에 앉았구나 이걸 20분 만에 다 봐야 돼 경매에서 상품을 낙찰받으면 그 자리에서 사들여 가게로 옮깁니다."
[황성업/청과직판 상인]
"이게 지금 열이 나잖아요. 그럼 바람 들어오게 잘라야 돼 이걸. 채소가 당연히 숨을 쉬어야죠
달이 중천에 걸린 밤 12시, 손님이 본격적으로 몰려듭니다.
주로 동네 마트나 식당, 학교, 병원 등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업자들입니다.
[정향순/청과직판 상인]
"가정 주부들은 안 옵니다. 1%도 없습니다. 누가 여기 채소 사러 오시겠습니까 지하철 타고 매출 규모도 일반 소매업 수준이 아닙니다."
[지상도/청과직판 상인]
"삶은 나물 취급하고 있는데 1년에 저희가 신고하는 매출액이 15억 정도 하고 있거든요. 버섯 하시는 분은 연 매출 40억이라고 들었어요."
손님 발길이 끊어진 아침 8시에 가게 문을 닫습니다.
30년을 이렇게 장사했습니다.
[강연실/명예교수]
"직판상인들이 평균 35곳의 거래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도매 중심이죠. (이 분들의 영업형태가 이 건물 지하 1층을 들어갈 경우 조화가 됩니까?) 전혀 불가능합니다."
공사는 청과 직판의 일부 상인만 가락몰 입주를 거부하고 있을 뿐 청과 직판 나머지 상인과 1층 입주 상인은 이미 자리까지 배정받아 곧 입주를 할 거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당 상인들 말은 다릅니다.
입주 신청을 하지 않으면 가락시장에서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경고에 신청만 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입주신청 상인]
"여기 들어와서 어떻게 장사를 해 (그럼 신청은 왜 하셨어요?) 오죽하면은 자리라도 취소를 안 될라고 지금 신청을 일단 해놨지 1층에 입주하는 수산이나 축산, 건어물 상인도 상당수가 교통, 주차, 비개방형 설계, 물류 동선을 문제 삼아 입주를 거부하거나 대대적인 시설 보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중의/패류(조개류) 직판상인]
"도살장에 간 기분이지 재래시장이 아니에요. 여기는 사방팔방이 다 트여 있는데도 아무 데나 차를 세워놔요 그런데도 빨리 안 오면 (손님이) 떠나버려요. 정말 여기서 죽어도 사수할 겁니다."
[김용수/축산직판 조합장]
"1층에 주차장 49대. 우리 한 400대 되도록 요구를 하고 있거든요. 손님 입장에서 다 마찬가지죠. 1층에 (차를) 대고 싶어하죠."
더구나 시장 구석구석 좌판을 펴고 장사하는 수백 명의 무허가 상인은 가락몰 이전 대상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에서 그대로 장사를 하게 돼 이들에게 손님을 빼앗길 거란 위기감도 큽니다.
[강연실/명예교수]
"고객들이 구매하기 편리한 곳에 그걸 이용하지 접근이 어려운 폐쇄 공간까지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락몰) 안에 들어가는 행위 그 자체가 자기 자신의 영업을 못할 뿐만 아니라 내 경쟁자를 살 찌우게 해주는 그런 행위니까"
가락몰에 자리를 배정한 방식을 놓고도 모욕적이라는 불만이 높습니다.
공사는 현대화 사업을 위해 2010년부터 매달 상인 개개인에게 점수를 매겨왔고 그 1등부터 꼴등 순으로 가락몰에 자리를 선정하도록 했습니다.
[나원균/건어물 직판 상인]
"말 잘 듣는 놈은 1등, 공과금 잘 안내면 2등 그런 식이지. 그 순서대로 1번 먼저 가서 찍고 다음 2번 찍고 이런 식이었지. 기분 몹시 나쁘지 시장은 자리가 매출과 직결되다 보니 노량진수산 시장만해도 공정한 상권 유지를 위해 3년에 한 번씩 추첨을 통해 자리를 배치하는데 가락몰은 공사 측이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기준을 적용해 등수를 매기는 건 상인들의 영업권 침해라는 겁니다."
[지상도/청과직판 상인]
"우리 상인들을 공사 중심으로 공사에 맞는 그런 상인들로 길들이기 위한 하나의 족쇄이고"
상인들 불만이 커지자 공사는 이미 완공된 가락몰에 추가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권상구/팀장]
"방수, 영업을 좀 지원해주고 활성화하는 공사, 또 하나는 램프라든지 엘리베이터 추가 설치 같은 물류 효율을 좀더 개선하는"
2010년부터 시작한 공사인데 왜 이제 와서 고칠까?
[이니세/팀장]
"공사 완공 전까지는 (상인들이) 영업이다 바쁘다 보니까 이런 거 하나하나 또 그런 거를 저희한테 요구할 여력도 없고 또 그런 전문 수준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이 애초 설계 때부터 문제였다는 게 지난해 서울시가 공사를 상대로 벌인 감사에서 드러났습니다.
공모를 통해 당선된 설계안이 당선 취소에 해당할 정도였지만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 겉모습만 화려하고 내부는 볼품없는 건물이 될 우려가 크다.
뭣보다 설계 전에 공청회 등을 통해 상인들의 의견수렴을 거쳐야 했지만 아무런 협의 없이 추진했다는 겁니다.
[이동혁/유통연구원장]
"도매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 저는 전혀 아니라고 보고 결국은 (농수산식품공사) 조직을 위해서 앞으로 우리가 수익을 내서 어떻게 조직을 계속적으로 키워나갈 것인가"
상인들이 이전을 거부하고 있지만 공사 측은 당장 2단계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며 12월에 직판 시장을 철거하겠다는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권상구/팀장]
"그 자리가 확보돼야지만이 도매 권역 사업을 들어갈 수가 있는데"
[김이선/청과직판 조합장]
"상인들 생존권이 달렸기 땜에 끝까지 존치. 비워줄 생각 없죠. 이 청과 직판 자리를 비워주지는 못하죠"
이러다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30년간 혼재해온 다양한 상행위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어떻게 정리할지 현대화사업 시작 전에 답을 내놨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강감창 부의장/서울시의원]
"답도 없고 그냥 밀어붙인 거죠 지금까지. 밀어붙여놓고 막 몰아가는 거예요. 이제 가락몰 들어가라 여기 직판상인들 들어가면요 죽습니다. 이미 현대화 사업은 사형선고가 내려진 거나 다름없는 것이죠"
농촌 경제 연구원은 2012년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이 당초 계획인 2018년에서 7년 미뤄진 2025년이 돼야 마무리되고,총 사업비도 지금의 7천억 원에서 5천억 원 늘어난 1조 2천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예상을 지금의 현대화 사업을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경고로 해석합니다.
[왕성우 교수]
"1단계 끝나고 2단계는 남은 돈 가지고 리모델링 할 수밖에 없다. 리모델링을 하더라도 현장에서 영업하고 있는 유통 당사자들하고 충분한 협의를 거쳐 가지고"
더 쾌적한 자리를 주겠다는데, 더 좋은 시설로 만들어 주겠다는데 상인과 손님들이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미 3천억 원의 사업비가 들어갔고, 앞으로 또 수천억 원의 돈을 투입해야 합니다.
엄청난 예산을 들여놓고 텅 빈 시장이 되지 않도록 정책의 전환이 필요해 보입니다.
올해 1단계로 가락몰을 완공하고 상인들이 이주하게 되어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상인들은 이전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쾌적한 환경과 신속한 물류운송 시스템을 갖췄다는 24시간 농수산쇼핑몰 가락몰. 과연 어떻게 설계된 걸까요?
--------------------------------------------------------------------------------------------------------------------------------------------
"생존권 위협하는 가락몰 반대한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시장에서 채소와 과일을 파는 상인들입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새벽 장사를 마치고 아침에 모여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가락몰 이전 반대한다"
이들이 시장 한복판을 관통해 도착한 곳은 새로 지은 고층 건물.
"새로운 가락시장, 가락몰입니다."
상인들은 이 새 건물에 입주하지 않겠다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겁니다.
[배유덕/가락시장 상인]
"장사를 가서 할 수 있으면 어찌 돈 들여서 지어놓고 새 건물인데 어서 가려고 하지 왜 안 가겠소. 오죽 못 가겠으면 장사도 그만두고 뭣도 그만두고 날이면 날마다 데모하느라고 뙤약볕에 가서 개장한 지 30년 된 가락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거래량이 많은 공영도매시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사이 시설도 낡고 유통질서도 복합해지면서 지난 2009년 '디자인 서울'의 일환으로 현대화 사업이 시작됐고 그 1단계로 직판 상인들이 입주할 가락몰이 올해 2월 완공됐습니다.
새 건물에서 장사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데 상인들은 왜 들어가지 못하겠다는 걸까요?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54만 3천여 제곱미터. 축구장 70여 개 크기로 국내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 가락시장.
지하 3층, 지상 18층짜리 가락몰은 시장 동쪽 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총 3단계인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의 1단계로 청과, 수산, 축산 직판 시장이 여기로 이전하면 그 빈자리에 경매장과 대형 도매상을 위한 2, 3 단계 사업이 진행됩니다.
원래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지난달부터 입주가 시작돼야 하지만 아직도 텅 비어있습니다.
입주를 가장 거세게 반대하는 이들은 지하 1층으로 배정받은 청과 직판 상인입니다.
일단 산지에서 곧바로 온 채소를 다듬고 물을 뿌려 신선함을 유지시키기엔 지하라는 공간이 맞지 않다는 겁니다.
[청과 직판 상인]
"야채 자체는 먼지 또 흙이 묻어 있으니까 (쓱 만져보고) 이게 지금 다 그 흙이에요, 먼지고. 내일 아침 상태를 보면 대파가 이렇게 꼬부려집니다. 채소는 신선도를 강조하는데 지하에 가서 생물도 숨을 쉬어야 할 것 아닙니까 뭣보다 물류 운송이 문제라고 합니다."
현재의 청과 직판 시장은 사방으로 뚫린 출입구가 모두 147개 하지만 가락몰 지하 1층엔 출입구가 단 3개, 그것도 한쪽으로만 나있습니다.
상품을 싣기 위해 출입구 앞에 한꺼번에 몰리는 손님들의 트럭 수백 대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겁니다.
[김병철/청과직판 상인]
"147개 통로가 있는데도 새벽 시간대에는 고성이 오갑니다. 야 빨리 좀 가봐라/가장 피크라고 하는 (아침) 5시부터 7시 사이 이 시간대는 말 그대로 물류 운송수단이 마비라고 봐야죠"
또 지금은 1층 가게에서 1층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수평 상권이지만 가락몰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동해야 하는 수직 상권이라 동선이 길어지고 그만큼 시간도 더 걸릴 거라고 걱정합니다.
[최종태/청과직판 상인]
"연세 드신 분들도 많이 장사하기 때문에 제일 안쪽에서 출입구 나가는 게 정확한 시간 안 재 봤지만 노인네들 한번 배달 갔다 오면 (장사) 끝나요."
현대화 사업의 주체인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는 지하 1층에 240대의 주차 공간이 있는 만큼 지상과 다를 바 없다는 입장입니다.
[임창수 팀장/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 공사관리 팀]
"구매자들 차량을 (한 시간대) 평균 조사해보면 한 250대 내외라는 거죠. 이 정도 주차대수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가락시장의 주 고객인 식재료 납품업자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김기태/식재료 납품업자]
"그건 아니죠. 저희가 지하로 내려가야 되는데 당연히 불편하죠. 지하로 갈 바에는 안 사죠."
[주금산/식재료 납품업자]
"그 많은 차들이 다 어디로 들어가겠어요. 들어가겠어요. 지하에 있는 시장은 아예 거래를 안 하지요."
실제로 어떨지, 손님들이 주로 사용하는 1톤부터 3.5톤 트럭을 몰고 지하로 가봤습니다.
가장 작은 1톤 트럭.
상품을 싣고 유턴해서 나와야 하는데 왕복 2차선 넓이다 보니 한 번에 돌지 않습니다.
이번엔 3.5톤 트럭.
양옆에 다른 차가 주차돼있다고 가정해봤더니 대여섯 번 왔다 갔다 한끝에야 차를 돌릴 수 있습니다.
그 사이 뒤차들은 길게 늘어섰습니다.
[트럭 운전기사]
"이런 주차 전쟁을 겪으면서 물건을 만날 사면 싸움까지 나요. 저 같으면 물건 사러 여기 안 들어올 거 같습니다."
트럭이 지하로 내려오지 않으면 지상에 댈 수밖에 없는데, 지상에 그럴 만한 주차공간도 없고, 있다 해도 지상까지 배달할 운송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상인들은 말합니다.
지금은 시장 안을 자유롭게 다니는 오토바이, 매연과 소음 때문에 가락몰에선 사용할 수 없습니다.
손수레에 싣고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총 9대뿐이어서 손님이 몰리는 시간엔 상인 660명과 손님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싸움을 벌여야 할 판이라고 합니다.
[지강도/청과직판 상인]
"저희는 시간 다툼이거든요.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인데. 한두 분 정도는 기다렸다 같이 움직일 수 있지만요 열 사람 스무 사람 다 기다릴 수 없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상인들끼리 또 싸움이 양이 많은 상품은 주로 전동차로 나르는데 지상으로 이어지는 전동차 전용 도로는 한 개. 짐을 싣고 운행해봤습니다.
먼저 내려가는 길
"(브레이크. 이게 밟은 거예요? 안 서네?) 네.."
경사를 이기지 못하고 전동차가 밀려 내려갑니다.
이번엔 올라가는 길
"(스톱, 출발! 오오오오) 쾅,"
실려있던 채소가 뒤로 쏟아집니다.
감자 1톤을 싣자 전동차가 뒤로 밀립니다.
"출발! 출발! 할 수가 없다니까요.
(안 되겠어, 밀어주세요)"
앞이나 뒤에 다른 차가 있다면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청과직판 상인]
"백 퍼센트 사고 나죠. 될 수가 없는 거예요. 장사가 이렇다 보니 가락몰에선 트럭까지 대량의 상품을 날라주는 도매 영업이 아니라 주부 같은 일반 소비자가 조금씩 사서 직접 가져가는 마트형 소매 영업 밖에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문복덕/청과직판 상인]
"하루 저녁에 물동량이 수천 톤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데 거기는 쇼핑몰 쇼핑센터, 그대로 소매시장을 지어놓고 파 한단 고추 한 근 팔게 만들어 놓고 실제로 농수산식품공사는 현대화 사업을 통해 가락시장에 혼재돼 있는 도매와 소매를 분리하겠다면서 대형 도매상에 비해 규모가 작은 직판 시장을 소매로 분류해 소매를 전담할 가락몰로 배치했습니다."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무빙워크를 설치하고 (서류) 카트를 수백 대 도입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니세 팀장/ 서울시농수산식품공장 임대관리팀]
"(무빙워크도 보조수단으로 설치를?) 소비자 소비자, 일반 소비자용"
그렇다면 청과 직판이 과연 소매업일까.
30년 경력의 상인과 하루 장사를 같이 해봤습니다.
집을 나서는 시간은 오후 4시 반, 시장에 나오면 낮 시간 닫혀있던 가게 문을 열고 경매장으로 향합니다.
저녁시간 진행되는 경매에 나온 상품을 미리 살펴보기 위해섭니다.
[황성업/청과직판 상인]
"줄줄이 다니면서 아 오늘 좋은 물건이 어떤 자리에 앉았구나 이걸 20분 만에 다 봐야 돼 경매에서 상품을 낙찰받으면 그 자리에서 사들여 가게로 옮깁니다."
[황성업/청과직판 상인]
"이게 지금 열이 나잖아요. 그럼 바람 들어오게 잘라야 돼 이걸. 채소가 당연히 숨을 쉬어야죠
달이 중천에 걸린 밤 12시, 손님이 본격적으로 몰려듭니다.
주로 동네 마트나 식당, 학교, 병원 등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업자들입니다.
[정향순/청과직판 상인]
"가정 주부들은 안 옵니다. 1%도 없습니다. 누가 여기 채소 사러 오시겠습니까 지하철 타고 매출 규모도 일반 소매업 수준이 아닙니다."
[지상도/청과직판 상인]
"삶은 나물 취급하고 있는데 1년에 저희가 신고하는 매출액이 15억 정도 하고 있거든요. 버섯 하시는 분은 연 매출 40억이라고 들었어요."
손님 발길이 끊어진 아침 8시에 가게 문을 닫습니다.
30년을 이렇게 장사했습니다.
[강연실/명예교수]
"직판상인들이 평균 35곳의 거래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도매 중심이죠. (이 분들의 영업형태가 이 건물 지하 1층을 들어갈 경우 조화가 됩니까?) 전혀 불가능합니다."
공사는 청과 직판의 일부 상인만 가락몰 입주를 거부하고 있을 뿐 청과 직판 나머지 상인과 1층 입주 상인은 이미 자리까지 배정받아 곧 입주를 할 거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당 상인들 말은 다릅니다.
입주 신청을 하지 않으면 가락시장에서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경고에 신청만 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입주신청 상인]
"여기 들어와서 어떻게 장사를 해 (그럼 신청은 왜 하셨어요?) 오죽하면은 자리라도 취소를 안 될라고 지금 신청을 일단 해놨지 1층에 입주하는 수산이나 축산, 건어물 상인도 상당수가 교통, 주차, 비개방형 설계, 물류 동선을 문제 삼아 입주를 거부하거나 대대적인 시설 보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중의/패류(조개류) 직판상인]
"도살장에 간 기분이지 재래시장이 아니에요. 여기는 사방팔방이 다 트여 있는데도 아무 데나 차를 세워놔요 그런데도 빨리 안 오면 (손님이) 떠나버려요. 정말 여기서 죽어도 사수할 겁니다."
[김용수/축산직판 조합장]
"1층에 주차장 49대. 우리 한 400대 되도록 요구를 하고 있거든요. 손님 입장에서 다 마찬가지죠. 1층에 (차를) 대고 싶어하죠."
더구나 시장 구석구석 좌판을 펴고 장사하는 수백 명의 무허가 상인은 가락몰 이전 대상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에서 그대로 장사를 하게 돼 이들에게 손님을 빼앗길 거란 위기감도 큽니다.
[강연실/명예교수]
"고객들이 구매하기 편리한 곳에 그걸 이용하지 접근이 어려운 폐쇄 공간까지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락몰) 안에 들어가는 행위 그 자체가 자기 자신의 영업을 못할 뿐만 아니라 내 경쟁자를 살 찌우게 해주는 그런 행위니까"
가락몰에 자리를 배정한 방식을 놓고도 모욕적이라는 불만이 높습니다.
공사는 현대화 사업을 위해 2010년부터 매달 상인 개개인에게 점수를 매겨왔고 그 1등부터 꼴등 순으로 가락몰에 자리를 선정하도록 했습니다.
[나원균/건어물 직판 상인]
"말 잘 듣는 놈은 1등, 공과금 잘 안내면 2등 그런 식이지. 그 순서대로 1번 먼저 가서 찍고 다음 2번 찍고 이런 식이었지. 기분 몹시 나쁘지 시장은 자리가 매출과 직결되다 보니 노량진수산 시장만해도 공정한 상권 유지를 위해 3년에 한 번씩 추첨을 통해 자리를 배치하는데 가락몰은 공사 측이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기준을 적용해 등수를 매기는 건 상인들의 영업권 침해라는 겁니다."
[지상도/청과직판 상인]
"우리 상인들을 공사 중심으로 공사에 맞는 그런 상인들로 길들이기 위한 하나의 족쇄이고"
상인들 불만이 커지자 공사는 이미 완공된 가락몰에 추가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권상구/팀장]
"방수, 영업을 좀 지원해주고 활성화하는 공사, 또 하나는 램프라든지 엘리베이터 추가 설치 같은 물류 효율을 좀더 개선하는"
2010년부터 시작한 공사인데 왜 이제 와서 고칠까?
[이니세/팀장]
"공사 완공 전까지는 (상인들이) 영업이다 바쁘다 보니까 이런 거 하나하나 또 그런 거를 저희한테 요구할 여력도 없고 또 그런 전문 수준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이 애초 설계 때부터 문제였다는 게 지난해 서울시가 공사를 상대로 벌인 감사에서 드러났습니다.
공모를 통해 당선된 설계안이 당선 취소에 해당할 정도였지만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 겉모습만 화려하고 내부는 볼품없는 건물이 될 우려가 크다.
뭣보다 설계 전에 공청회 등을 통해 상인들의 의견수렴을 거쳐야 했지만 아무런 협의 없이 추진했다는 겁니다.
[이동혁/유통연구원장]
"도매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 저는 전혀 아니라고 보고 결국은 (농수산식품공사) 조직을 위해서 앞으로 우리가 수익을 내서 어떻게 조직을 계속적으로 키워나갈 것인가"
상인들이 이전을 거부하고 있지만 공사 측은 당장 2단계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며 12월에 직판 시장을 철거하겠다는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권상구/팀장]
"그 자리가 확보돼야지만이 도매 권역 사업을 들어갈 수가 있는데"
[김이선/청과직판 조합장]
"상인들 생존권이 달렸기 땜에 끝까지 존치. 비워줄 생각 없죠. 이 청과 직판 자리를 비워주지는 못하죠"
이러다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30년간 혼재해온 다양한 상행위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어떻게 정리할지 현대화사업 시작 전에 답을 내놨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강감창 부의장/서울시의원]
"답도 없고 그냥 밀어붙인 거죠 지금까지. 밀어붙여놓고 막 몰아가는 거예요. 이제 가락몰 들어가라 여기 직판상인들 들어가면요 죽습니다. 이미 현대화 사업은 사형선고가 내려진 거나 다름없는 것이죠"
농촌 경제 연구원은 2012년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이 당초 계획인 2018년에서 7년 미뤄진 2025년이 돼야 마무리되고,총 사업비도 지금의 7천억 원에서 5천억 원 늘어난 1조 2천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예상을 지금의 현대화 사업을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경고로 해석합니다.
[왕성우 교수]
"1단계 끝나고 2단계는 남은 돈 가지고 리모델링 할 수밖에 없다. 리모델링을 하더라도 현장에서 영업하고 있는 유통 당사자들하고 충분한 협의를 거쳐 가지고"
더 쾌적한 자리를 주겠다는데, 더 좋은 시설로 만들어 주겠다는데 상인과 손님들이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미 3천억 원의 사업비가 들어갔고, 앞으로 또 수천억 원의 돈을 투입해야 합니다.
엄청난 예산을 들여놓고 텅 빈 시장이 되지 않도록 정책의 전환이 필요해 보입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