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조의명 기자
조의명 기자
폐품 줄게 명품 다오
폐품 줄게 명품 다오
입력
2015-10-26 11:55
|
수정 2015-10-27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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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소방 호스가 근사한 가방으로 변신하고, 커피 찌꺼기로 만든 컵에 커피를 담아 마십니다.
이제는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라 '새 활용'을 추구하는 소위 '업사이클링'의 시대. 그 다양하고 기발한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
서울 용산의 한 자전거 공작소.
해마다 수천 대씩 버려지는 낡은 자전거를 수리해 다시 판매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만드는 것은 자전거뿐이 아닙니다.
천장에 달린 독특한 모양의 전등 갓.
못 쓰는 자전거 부품으로 만든 겁니다.
타이어 빠진 바퀴는 그럴듯한 탁자로 변신했고, 남은 부품으로는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2년 전부터 여기서 일해온 노기행씨의 작품입니다.
[노기행]
"이건 휠로 만들었거든요 휠. 타이어 들어가는 휠로 만들고 이건 비받이, 자전거 뒤에 있는 거고요."
노 씨는 여기 오기 전까지 10년을 노숙인으로 보냈습니다.
그런 노 씨에게, 남이 버린 자전거로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일은 남다른 의미였습니다.
[노기행]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몰라도 거의 나랑 좀 비슷한 그런 것 같아요 만들면서. 나도 누구한테는 보잘 것도 없고 쓸 데도 없고 그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았는데 이것도 알고 보면 이제 거둬와서 낡은 거를 이제 때 벗기고 광내고 그래서..."
꼬리에 불을 밝힌 익살스런 강아지 전등부터, 근사한 연필꽂이까지, 모두 노 씨의 손을 거쳤습니다.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설립된 이곳은 중고 자전거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어려움을 겪어 왔지만, 공방을 찾은 사람들이 노 씨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았습니다.
[지상화 팀장 / 두 바퀴 희망자전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이게 진짜 자전거로 만든 게 맞냐부터 시작해서 이런 걸 만들 수 있냐. 디자인 관련된 분들이 오셔서 구경을 하셔도 '야 이거 정말 손색이 없고'..."
지금은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만들어 팔고 있지만 구입 문의가 쇄도하면서, 조만간 정식 매장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노기행]
"이렇게 하다 보니까 자꾸 뭔가를 더 만들어보고 싶고 자꾸 시도해보고 싶고 그러고는 싶어요 자꾸.."
고물 자전거에서 희망을 찾아낸 노기행 씨처럼, 남들은 쓰레기라 부르는 버려진 물건 속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다시 쓸 수 있게 고치는 게 아니라 새것보다 나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작업.
그들은 그걸 '재활용' 대신 '새 활용'이라 부릅니다.
뭘 새로 만들기엔 너무 낡고 해진, 그래서 이런 걸 어디다 쓰려고 굳이 모아놨을까 싶은 천 조각.
소방서에서 쓰다 폐기한 소방 호스입니다.
[박용학]
"소방관 분들이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썼던 그런 소방 호스를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서 그것을 한번 팔아보자..."
소방관인 아버지를 따라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이규동 씨와 친구 박용학 씨는 소방관들의 땀과 노력을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소방호스로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규동]
"락스에도 집어넣어 보고 세제도 해 보고 어떻게든 하얗게 만들려고 고민을 하다가 이제 역으로 생각을 좀 다르게 했어요. 그래서 이 흔적을 지우려고 하기보다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어떨까."
불에 그을리고 땀에 젖은 구조 현장의 자국들을 그대로 살려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일선 소방서에서 모아온 낡은 장비들마다 사연 없는 물건이 없었습니다.
[이규동]
"순직하신 소방관 분 자녀분이 이렇게 저희한테 방화복을 기부를 해 주셨어요. 저희가 어떤 식으로 제품을 만들어야 될지 고민을 하는데... 이건 차마 자를 수가 없는 제품이더라고요."
낡고 때묻었지만 이야기가 담긴 가방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수작업 생산이라 한 달 판매량은 240개 정도지만 만드는 족족 완판, 밀려드는 구매 요청에 난감해할 정돕니다.
서울 압구정동의 한 패션 브랜드에서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싶다는 제안도 해왔습니다.
이 씨는 가방을 팔아 얻은 수익금의 일부를 털어 일선 소방관들에게 소방장 갑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이규동]
"단순하게 소방호스로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그런 기업 이상의, 소방관 분들을 응원할 수 있는 여러 문화를 만들어보고자 노력을 하고 있고..."
재활용을 뜻하는 단어 '리사이클'과 업그레이드를 합친 신조어 '업사이클'.
재활용 제품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새것보다는 품질이 떨어진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고정관념을 넘어 낡은 물건을 활용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해 내는 일을 말합니다.
[이준영 교수 / 상명대 소비자 주거학과]
"후손들 또는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적인 소비 같은 것들에 좀 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인간적인 가치, 그 안에 숨어있는 따뜻한 공동체적인 가치 같은 것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업사이클 제품을 상품화한 서울 성동구의 아름다운 가게 매장.
낡은 청바지와 버려진 가죽 소파로 만든 각종 소품들, 익살스런 고릴라 인형은 아동복 조각을 잘라 만들었습니다.
[나 선호 / 아름다운 가게]
"이렇게 유행 지났다고 버려지는 재킷들이 굉장히 많아요. 근데 가죽이 워낙 좋거든요. 10년 이상 다 이렇게 되도 멀쩡한 가죽들이 많아요."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 하나하나 궁리해서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만들다 보니 일반 재활용품보다 가격은 높지만, 그렇다고 비싼 가격은 아닙니다.
시중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개성 덕에 일부러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남윤서 / 대학생]
"버려진 걸로 만들었다고 하면 사실은 편견을 가지기가 쉽잖아요. 좀 품질도 떨어질 것 같고, 그런데 이렇게 멋있는 게 업사이클링 제품이었구나. 이런 편견에 대해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대량으로 찍어낸 게 아닌 나만의 물건이라는 의미를 제품에 담기도 합니다.
군복 소매를 이어붙여 만든 점퍼, 남자 셔츠로 만든 여성용 조끼.
옷마다 숫자가 적힌 꼬리표가 붙어 있는데 세상에 두 벌, 혹은 세 벌밖에 없단 뜻입니다.
국내 유명 패션 기업에서 버려지는 재고를 활용해 한정판 제품으로 내놓은 업사이클 브랜드입니다.
[권송환 팀장 / K 패션업체]
"패션 산업이 굉장히 빠르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2년 3년 정도가 지나면 남는 재고는 전부 다 소각을 대부분 진행을 합니다. 그렇게 소각되어지는 제품들을 다시 한 번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을 좀 찾고 싶었고요."
업사이클링은 예술가나 디자이너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목공 수업이 한창인 교실.
근처 공장에서 얻어온 포장용 폐목재를 활용해 가구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강좌입니다.
폐품을 활용해 집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을 직접 만들어보고, 손재주 좋은 주부들에게는 앞으로 1인 공방으로 판로를 열어주겠다는 겁니다.
[김명현 / 주부]
"예전 같으면 집안에 있는 물건을 버리기에 바빴는데 지금은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되고요. 길을 가다 보면 이거 가지고 뭘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때로는 작가들의 손을 거쳐 아름다운 작품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 집에서 내가 쓸 가구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는, 다시 말해 제약 없이 변신하는 게 업사이클링의 매력입니다.
[임승균 / 설치예술가]
"버려지거나 잉여의 재료들을 어떻게 하면 더 새로운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하고 사람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재료를 바라보고 제품을 바라보았으면..."
일상의 쓰레기보다 더 큰 것도 얼마든지 업사이클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거대한 지하 동굴, 평일에도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사실 일제시대까지 금을 캐던 폐광이었습니다.
30년 이상 방치됐던 이곳은 색다른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습니다.
1년 내내 서늘한 지하의 특성을 살린 와인 창고, 똬리를 튼 거대한 용 조형물.
인구 35만의 작은 도시지만 개장 반 년 만에 70만 명 넘는 관람객이 몰렸습니다.
[강진숙 / 광명시청 문화재생 T/F팀]
"광산과 자원회수 시설과 그리고 여기 있는 업사이클 아트센터가 하나의 재생이라는 콘셉트로 하나의 구역을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작년까지 마흔 곳 남짓에 불과했던 국내 업사이클링 업체는 1년 만에 1백여 개로 늘었습니다.
시장 규모도 매년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관심도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장밋빛 전망보다 풀어야 할 숙제가 더 많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디자이너 우상 경 씨는 원두커피 찌꺼기를 이용해 친환경 플라스틱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지난 5월 특허를 따냈습니다.
[우상 경 / 커피 플라스틱 개발자]
"이 커피 찌꺼기가 일반인들한테는 쓰레기지만 저는 이걸 재활용해서 플라스틱을 만들어서 수출도 하고 하는 저한테는 중요한 보물이죠."
해외에서 커피 찌꺼기를 이용한 업사이클 상품이 연구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파고들기 시작한 게 3년 전.
어설픈 시제품으로 시작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동안 돈 주고 버려야 할 쓰레기였던 커피 찌꺼기인데, 막상 활용하려니 까다롭다는 겁니다.
[우상경]
"제가 한번 커피 찌꺼기를 대량으로 갖고 오려고 모 기업이랑 협의가 끝났어요. 모 기업에서 공문을 보내달라. 환경부에 질의를 하고 이상 없으면 주겠다... 그쪽(환경부)에서 하는 이야기가 우리는 모르니까 알아서 하십시오."
현행법상 사업체에서 나온 산업 쓰레기는 폐기물 처리업자만 취급하게 돼 있어, 작은 공방이 대부분인 업사이클 업체는 접근 자체가 어렵습니다.
[박미현 대표 / 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
"업사이클은 법령에 되게 예민한 부분이에요. 왜냐면 폐기물 법 자체가 굉장히 상세하게 규정이 되어 있고, 엄밀하게 따지면 모든 업사이클 기업들이 다 불법단체가 되는 거죠."
지난 7월 법이 개정돼 내년부터는 규제가 완화될 예정이지만, 여전히 모순이 많다는 지적입니다.
[홍수열 소장 / 자원순환사회경제 연구소]
"업사이클링 제품 같은 경우에는 공공 녹색상품으로도 분류가 안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업사이클링 제품을 공공 우선 구매 이것들 정해서 구매를 해야 되는데 이렇게 못 하는 거죠."
너무 많이 만들고, 너무 많이 버리는 시대,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힘으로 폐품이 명품이 되고, 오래된 것의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건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업사이클 바람이 반짝 유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대안으로 이어지려면 개발자의 노력, 소비자의 관심뿐 아니라 정책적인 뒷받침도 따라야 할 겁니다.
이제는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라 '새 활용'을 추구하는 소위 '업사이클링'의 시대. 그 다양하고 기발한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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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의 한 자전거 공작소.
해마다 수천 대씩 버려지는 낡은 자전거를 수리해 다시 판매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만드는 것은 자전거뿐이 아닙니다.
천장에 달린 독특한 모양의 전등 갓.
못 쓰는 자전거 부품으로 만든 겁니다.
타이어 빠진 바퀴는 그럴듯한 탁자로 변신했고, 남은 부품으로는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2년 전부터 여기서 일해온 노기행씨의 작품입니다.
[노기행]
"이건 휠로 만들었거든요 휠. 타이어 들어가는 휠로 만들고 이건 비받이, 자전거 뒤에 있는 거고요."
노 씨는 여기 오기 전까지 10년을 노숙인으로 보냈습니다.
그런 노 씨에게, 남이 버린 자전거로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일은 남다른 의미였습니다.
[노기행]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몰라도 거의 나랑 좀 비슷한 그런 것 같아요 만들면서. 나도 누구한테는 보잘 것도 없고 쓸 데도 없고 그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았는데 이것도 알고 보면 이제 거둬와서 낡은 거를 이제 때 벗기고 광내고 그래서..."
꼬리에 불을 밝힌 익살스런 강아지 전등부터, 근사한 연필꽂이까지, 모두 노 씨의 손을 거쳤습니다.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설립된 이곳은 중고 자전거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어려움을 겪어 왔지만, 공방을 찾은 사람들이 노 씨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았습니다.
[지상화 팀장 / 두 바퀴 희망자전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이게 진짜 자전거로 만든 게 맞냐부터 시작해서 이런 걸 만들 수 있냐. 디자인 관련된 분들이 오셔서 구경을 하셔도 '야 이거 정말 손색이 없고'..."
지금은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만들어 팔고 있지만 구입 문의가 쇄도하면서, 조만간 정식 매장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노기행]
"이렇게 하다 보니까 자꾸 뭔가를 더 만들어보고 싶고 자꾸 시도해보고 싶고 그러고는 싶어요 자꾸.."
고물 자전거에서 희망을 찾아낸 노기행 씨처럼, 남들은 쓰레기라 부르는 버려진 물건 속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다시 쓸 수 있게 고치는 게 아니라 새것보다 나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작업.
그들은 그걸 '재활용' 대신 '새 활용'이라 부릅니다.
뭘 새로 만들기엔 너무 낡고 해진, 그래서 이런 걸 어디다 쓰려고 굳이 모아놨을까 싶은 천 조각.
소방서에서 쓰다 폐기한 소방 호스입니다.
[박용학]
"소방관 분들이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썼던 그런 소방 호스를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서 그것을 한번 팔아보자..."
소방관인 아버지를 따라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이규동 씨와 친구 박용학 씨는 소방관들의 땀과 노력을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소방호스로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규동]
"락스에도 집어넣어 보고 세제도 해 보고 어떻게든 하얗게 만들려고 고민을 하다가 이제 역으로 생각을 좀 다르게 했어요. 그래서 이 흔적을 지우려고 하기보다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어떨까."
불에 그을리고 땀에 젖은 구조 현장의 자국들을 그대로 살려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일선 소방서에서 모아온 낡은 장비들마다 사연 없는 물건이 없었습니다.
[이규동]
"순직하신 소방관 분 자녀분이 이렇게 저희한테 방화복을 기부를 해 주셨어요. 저희가 어떤 식으로 제품을 만들어야 될지 고민을 하는데... 이건 차마 자를 수가 없는 제품이더라고요."
낡고 때묻었지만 이야기가 담긴 가방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수작업 생산이라 한 달 판매량은 240개 정도지만 만드는 족족 완판, 밀려드는 구매 요청에 난감해할 정돕니다.
서울 압구정동의 한 패션 브랜드에서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싶다는 제안도 해왔습니다.
이 씨는 가방을 팔아 얻은 수익금의 일부를 털어 일선 소방관들에게 소방장 갑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이규동]
"단순하게 소방호스로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그런 기업 이상의, 소방관 분들을 응원할 수 있는 여러 문화를 만들어보고자 노력을 하고 있고..."
재활용을 뜻하는 단어 '리사이클'과 업그레이드를 합친 신조어 '업사이클'.
재활용 제품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새것보다는 품질이 떨어진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고정관념을 넘어 낡은 물건을 활용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해 내는 일을 말합니다.
[이준영 교수 / 상명대 소비자 주거학과]
"후손들 또는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적인 소비 같은 것들에 좀 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인간적인 가치, 그 안에 숨어있는 따뜻한 공동체적인 가치 같은 것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업사이클 제품을 상품화한 서울 성동구의 아름다운 가게 매장.
낡은 청바지와 버려진 가죽 소파로 만든 각종 소품들, 익살스런 고릴라 인형은 아동복 조각을 잘라 만들었습니다.
[나 선호 / 아름다운 가게]
"이렇게 유행 지났다고 버려지는 재킷들이 굉장히 많아요. 근데 가죽이 워낙 좋거든요. 10년 이상 다 이렇게 되도 멀쩡한 가죽들이 많아요."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 하나하나 궁리해서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만들다 보니 일반 재활용품보다 가격은 높지만, 그렇다고 비싼 가격은 아닙니다.
시중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개성 덕에 일부러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남윤서 / 대학생]
"버려진 걸로 만들었다고 하면 사실은 편견을 가지기가 쉽잖아요. 좀 품질도 떨어질 것 같고, 그런데 이렇게 멋있는 게 업사이클링 제품이었구나. 이런 편견에 대해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대량으로 찍어낸 게 아닌 나만의 물건이라는 의미를 제품에 담기도 합니다.
군복 소매를 이어붙여 만든 점퍼, 남자 셔츠로 만든 여성용 조끼.
옷마다 숫자가 적힌 꼬리표가 붙어 있는데 세상에 두 벌, 혹은 세 벌밖에 없단 뜻입니다.
국내 유명 패션 기업에서 버려지는 재고를 활용해 한정판 제품으로 내놓은 업사이클 브랜드입니다.
[권송환 팀장 / K 패션업체]
"패션 산업이 굉장히 빠르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2년 3년 정도가 지나면 남는 재고는 전부 다 소각을 대부분 진행을 합니다. 그렇게 소각되어지는 제품들을 다시 한 번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을 좀 찾고 싶었고요."
업사이클링은 예술가나 디자이너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목공 수업이 한창인 교실.
근처 공장에서 얻어온 포장용 폐목재를 활용해 가구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강좌입니다.
폐품을 활용해 집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을 직접 만들어보고, 손재주 좋은 주부들에게는 앞으로 1인 공방으로 판로를 열어주겠다는 겁니다.
[김명현 / 주부]
"예전 같으면 집안에 있는 물건을 버리기에 바빴는데 지금은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되고요. 길을 가다 보면 이거 가지고 뭘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때로는 작가들의 손을 거쳐 아름다운 작품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 집에서 내가 쓸 가구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는, 다시 말해 제약 없이 변신하는 게 업사이클링의 매력입니다.
[임승균 / 설치예술가]
"버려지거나 잉여의 재료들을 어떻게 하면 더 새로운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하고 사람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재료를 바라보고 제품을 바라보았으면..."
일상의 쓰레기보다 더 큰 것도 얼마든지 업사이클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거대한 지하 동굴, 평일에도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사실 일제시대까지 금을 캐던 폐광이었습니다.
30년 이상 방치됐던 이곳은 색다른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습니다.
1년 내내 서늘한 지하의 특성을 살린 와인 창고, 똬리를 튼 거대한 용 조형물.
인구 35만의 작은 도시지만 개장 반 년 만에 70만 명 넘는 관람객이 몰렸습니다.
[강진숙 / 광명시청 문화재생 T/F팀]
"광산과 자원회수 시설과 그리고 여기 있는 업사이클 아트센터가 하나의 재생이라는 콘셉트로 하나의 구역을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작년까지 마흔 곳 남짓에 불과했던 국내 업사이클링 업체는 1년 만에 1백여 개로 늘었습니다.
시장 규모도 매년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관심도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장밋빛 전망보다 풀어야 할 숙제가 더 많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디자이너 우상 경 씨는 원두커피 찌꺼기를 이용해 친환경 플라스틱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지난 5월 특허를 따냈습니다.
[우상 경 / 커피 플라스틱 개발자]
"이 커피 찌꺼기가 일반인들한테는 쓰레기지만 저는 이걸 재활용해서 플라스틱을 만들어서 수출도 하고 하는 저한테는 중요한 보물이죠."
해외에서 커피 찌꺼기를 이용한 업사이클 상품이 연구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파고들기 시작한 게 3년 전.
어설픈 시제품으로 시작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동안 돈 주고 버려야 할 쓰레기였던 커피 찌꺼기인데, 막상 활용하려니 까다롭다는 겁니다.
[우상경]
"제가 한번 커피 찌꺼기를 대량으로 갖고 오려고 모 기업이랑 협의가 끝났어요. 모 기업에서 공문을 보내달라. 환경부에 질의를 하고 이상 없으면 주겠다... 그쪽(환경부)에서 하는 이야기가 우리는 모르니까 알아서 하십시오."
현행법상 사업체에서 나온 산업 쓰레기는 폐기물 처리업자만 취급하게 돼 있어, 작은 공방이 대부분인 업사이클 업체는 접근 자체가 어렵습니다.
[박미현 대표 / 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
"업사이클은 법령에 되게 예민한 부분이에요. 왜냐면 폐기물 법 자체가 굉장히 상세하게 규정이 되어 있고, 엄밀하게 따지면 모든 업사이클 기업들이 다 불법단체가 되는 거죠."
지난 7월 법이 개정돼 내년부터는 규제가 완화될 예정이지만, 여전히 모순이 많다는 지적입니다.
[홍수열 소장 / 자원순환사회경제 연구소]
"업사이클링 제품 같은 경우에는 공공 녹색상품으로도 분류가 안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업사이클링 제품을 공공 우선 구매 이것들 정해서 구매를 해야 되는데 이렇게 못 하는 거죠."
너무 많이 만들고, 너무 많이 버리는 시대,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힘으로 폐품이 명품이 되고, 오래된 것의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건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업사이클 바람이 반짝 유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대안으로 이어지려면 개발자의 노력, 소비자의 관심뿐 아니라 정책적인 뒷받침도 따라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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