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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송양환 기자

몸값 오른 빈 병

몸값 오른 빈 병
입력 2015-11-23 11:04 | 수정 2015-12-1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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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줏병, 맥줏병 등 빈 병을 가게에 돌려주면 받는 보증금이 내년 1월 21일부터 2배 이상 인상되면서 시중에서 빈 병을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수거업체들은 보증금 인상을 앞두고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류업계는 공병 순환이 안되자 연말 특수를 앞두고 급한대로 중국산 유리병을 수입해 충당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자원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공병 보증금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고, 주류업계는 보증금 인상으로 인한 공병 회수 효과는 미미하며 결국 술값만 오르게 될 거라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몸값' 오른 유리병,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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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김경수 할머니가 아파트 단지와 상가를 돌며 재활용 가능한 물건을 수레에 싣습니다.

    종이는 킬로그램에 50원 남짓.

    소주 병은 개당 40원, 맥주병은 50원을 받을 수 있지만 좀처럼 눈에 띄지 않습니다.

    [김경수]
    "쓰레기 통 옆에 이런 봉지에 하나씩 담아서 놓고 그랬는데 지금은 없어요."

    고물상에서도 빈병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폐품을 가득 실은 화물차에서 골라낸 소주 병은 10여 개에 불과합니다.

    [신현주/고물상 업주]
    "평균 1톤 화물차 기준했을 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물건을 냈는데 지금은 두 달이 되도록 한 차를 못 내고 있으니까."

    빈병을 주워 생활하는 영세민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돕니다.

    [폐품 수집상]
    "(빈병이) 없어서 여태 이거 한 거예요. 이거 해서 되겠어요? 이게 밥값이 되겠냐고."

    폐품이라 생각했던 빈병들이 요즘 때아닌 품귀 현상을 빚고 있습니다.

    주류 회사는 빈병이 없어서 술을 못 만들 지경이라 하고, 고물상과 폐품을 주워 파는 사람들도 모두 빈병이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빈병만 사들여 주류업체에 납품하는 공병상.

    화물차가 아파트 분리수거 처리업체에서 빈병들을 싣고 왔습니다.

    쏟아보니 돈이 되는 소주, 맥주병보다 다른 잡병이 훨씬 많습니다.

    [김재웅 대표/공병상]
    "혼합 병을 싣고 왔을 때 보통 비율이 한 40%에서 43% 재사 용병이 포함돼있었는데 지금은 한 25% 정도."

    공병상을 운영하면서 빈병이 이렇게 없어진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김재웅 대표/공병상]
    "제가 이 업을 한 지 18년 됐는데요. 지금까지 역사상 이래 처음입니다. 뭐 이렇게 마당이 비어있을 새가 없어요. 연신 들어오고 나가고 하니까. 그런데 지금 보시다시피 훤하잖아요."

    이런 현상은 지난 9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유승광 과장/환경부 자원재활용과]
    "빈 용기 보증금은 현재 소주병 40원, 맥주병 50원에서 각각 100원, 130원으로 인상될 예정입니다."

    정부는 지난 9월 3일 빈병 보증금을 2배 이상 올리는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내년 1월 21일부터 현재 40원인 소주 병의 보증금은 100원으로 50원인 맥주병의 보증금은 130원으로 두 배 이상 오릅니다.

    전남 나주의 한 다세대 주택.

    이 신혼부부는 빈병값 인상이 발표된 뒤 집에서 마신 술병을 모아두기 시작했습니다.

    한 병, 두 병 모으기 시작한 게 300여 병, 집안 한켠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 OO]
    "뉴스를 한번 보니까 공병 값 인상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에는 그냥 바로 먹으면 갖다가 버리고 버리고 했는데 그거 뉴스를 보고 그때부터 모았던 거 같아요."

    큰 돈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내년에 빈병 값이 올랐을 때 내다 팔겠다는 생각입니다.

    [박 OO]
    "딱히 수고라고 생각하진 않고 그냥 집에다 쌓아뒀다고 오르면 파는 거라서 나중에 팔면 공돈 정도 생긴다 그런 거니까요."

    이렇게 어딘가에서 빈병이 잠자고 있다 보니 빈병 회수율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빈병값 인상이 발표된 지난 9월 회수된 빈병은 3억 6천만 개.

    전달보다 1천3백만 개, 회수율로는 10% 포인트 이상 감소했습니다.

    술을 제조하는 업체들은 빈병 구하기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 소주 업체는 하루 평균 200만 병 들어오던 재사 용병이 최근엔 120-130만 병으로 줄었습니다.

    송년회를 앞둔 연말 성수기지만 병이 부족해 오히려 생산량을 줄이고 있습니다.

    [이석세 부장/소주 생산업체]
    "일일 저희들이 250만 병을 생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180만 병 정도를 생산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빈 병을) 웃돈을 주고 지금 회수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새 병을 생산하는 업체는 바빠졌습니다.

    빨갛게 달아오른 유리물이 소주 병으로 쉴 새 없이 찍혀 나옵니다.

    [권재용 팀장/유리병 제조업체]
    "저희가 하루에 50만 병을 생산하고 있는데 생산하는 족족 다 출고가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전 같은 경우에는 소주병 이외에 사이다병 같은 다른 제품들도 생산을 했었는데 지금은 전량 소주 병을 생산해서 출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류업체 대형 화물차가 새 병을 실어가려고 입구에 길게 늘어서 기다리는 상황.

    일부 소주업체는 급한 대로 중국에서 새 병 5천만 개 정도를 수입할 예정입니다.

    빈병 가격이 몇 십 원 오르는, 어찌 보면 별일 아닌 거 같아 보이는 일이 나비효과처럼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병값 인상을 앞두고 벌어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복잡한 정부와 관련 업계의 서로 다른 셈법이 그 몇 십 원 안에서 엇갈리고 있습니다.

    소주병 40원, 맥주병 50원인 보증금은 1994년 정해진 뒤 21년 동안 한 번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물가는 오르면서 빈병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아졌고, 소비자가 직접 병을 반환하는 대신 아파트 분리수거함에 내놓아 보증금을 포기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입니다.

    [유승광 과장/환경부 자원재활용과]
    "21년 동안 보증금이 동결되다 보니까 이제는 소비자들이 빈병을 반환하는 거를 찾아보기가 어렵게 됐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소비자가 한 해 포기하는 보증금만 570억 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분리수거 등을 통해 내놓는 빈병은 공병상 등이 수집해 제조업체로 보냅니다.

    한 맥주 제조업체에서 사용 불가 판정을 받은 빈병 상태를 확인해봤습니다.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이 병은 입구의 작은 흠집 때문에 재사용할 수 없습니다.

    [윤명근 실장/맥주 생산업체]
    "이렇게 되면 못쓰는 이유가 뚜껑을 닫았을 때 탄산가스가 이쪽으로 새는 거예요 조금씩. 그러면 맥주의 맛이 유지가 안 되기 때문에."

    이런 흠집은 보통 분리수거할 때 마대에 담겨 고물상이나 공병상으로 옮겨지면서 병끼리 부딪혀 생깁니다.

    정부는 빈병 보증금을 올려 소비자들이 직접 소매상에 반납하는 체계를 갖추면 이런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 소비자들이 되가져온 빈병을 더 잘 받아주라는 의미에서 주류 제조업체가 상점들에게 지불하는 취급 수수료라는 게 있는데, 정부는 이 취급 수수료도 내년엔 2배 정도 올릴 예정입니다.

    [유승광 과장/환경부 자원재활용과]
    "앞으로 반환을 거부하게 되면 그 소매점에 대해서는 과태료도 부과되고 그 반환 거부 행위에 대해서 신고를 하시게 되면 그 소비지한테 보상급도 지급하는.."

    주류업계는 특히 이 취급 수수료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현재 소주병 16원, 맥주병 19원인 취급 수수료를 일괄적으로 33원으로 올리면 해마다 업계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수수료만 줄잡아 120억 원이 넘는다는 겁니다.

    [서정록 이사/한국주류산업 협회]
    "소주 가격이 1천 원인데요. 세금을 53% 빼고 47% 하면 실제 출고 가격은 470원밖에 안 되거든요. 470원에 17원의 그 비율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우리 업계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만큼 술값을 올려야 하는데 내년 총선을 앞둔 터라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는 게 업계의 입장입니다.

    빈병 보증금 인상이 빈병 재사용에 도움이 될지를 두고도 전망이 엇갈립니다.

    우리나라에서 1년 동안 출고되는 소주, 맥주병은 약 50억 개.

    이 가운데 95%가 제조업체로 회수되고 50억 개 가운데 85%는 다시 술을 담는데 사용됩니다.

    정부는 이 85%가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치라며, 빈병 가격을 올리면 재사용율을 최고 95%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주류업계는 깨끗한 제품을 선호하는 우리 국민들의 특성상 85%가 재사용 가능한 최대치라고 맞섭니다.

    [서정록 이사/한국주류산업 협회]
    "우리 국민들은 상표가 조금 찢어져도 아무리 좋은 소주가 담겨 있어도 사지를 않습니다. 재사용률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용 안 하는 게 아니라 흠집이 있거나 이유가 있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회수율은 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술을 살 때 몇 십 원씩 병값을 더 내야 하기 때문에 술값이 오르는 결과가 된다는 입장.

    이에 대해 정부는 재사용률이 높아지면 결국 업계한테 이익이 되는 일인데, 주류업계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보증금 인상을 술값을 올리는 구실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유승광 과장/환경부 자원재활용과]
    "현재 재사용률이 85%에서 95%로 증가한다면 450억 원 정도의 추가 편익이 발생 예상됩니다. 한 120억 원 정도의 그 부담을 제품 가격에 반영해서 소비자에게 전가하겠다라는 거는 일반 국민들이 이런 내용들을 아시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합니다."

    업계와 정부의 신경전은 빈병 회수의 주도권 싸움으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앞.

    한말례 할머니가 1주일 동안 모은 빈병을 기계에 집어넣습니다.

    기계가 자동으로 병을 인식해 빈병 보증금을 계산하고 할머니는 영수증을 마트 고객센터에 주고 현금을 받습니다.

    [한말례]
    "이러게 들어오니까 좋죠. 내가 늙어서 아무래도 세고 또 세도 못해. 이게 제일 쉬워."

    이 무인 회수기는 환경부 인가를 받은 공익법인 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가 설치한 것.

    소비자들이 빈병을 쉽게 반환할 수 있도록 운영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여수호 팀장/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유럽에서 일반화된 기계입니다. 독일 같은 경우 4만여 대 이상이 설치되어서 운영 중에 있습니다. 평가를 해보니까 보통 때 회수 받던 양에 비해서 한 20% 증가한 걸 저희가 숫자로는 확인을 했습니다."

    내년에 법이 시행되면 현재 주류업체와 공병상 등이 직접 주고받는 빈병 보증금과 취급 수수료를 이 센터가 일괄적으로 관리하게 됩니다.

    주류업계와 공병상들은 지금도 업계 자율로 잘 운영되고 있는 제도를 굳이 정부 규제하에 넣으려 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환경부 공무원들이 퇴직 후에 이 센터로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며 제 식구 챙기기라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습니다.

    [김종택 이사장/공병 자원순환협회]
    "재사 용병 납품 보증금 및 수수료를 손을 대려고 하는 이유가 뭔지, 더 단순해져야 할 건데 자꾸 옥상옥을 만들어서 필요 없는 일을 흔히 말하는 '환피아'라는 그 라인에다가 다 권한을 준 거예요."

    하지만 센터 측은, 직접 당사자인 주류업 계보다 공익법인인 센터가 이 돈을 더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여수호 팀장/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뭐 처음에는 다 불편하시겠죠. 공공에서 공적으로 관리가 되고 투명하게 관리가 되면 불편하시겠지만 나중에는 득이 더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저희들 생각입니다."

    빈병 재사용을 늘려 환경을 보호하고 자원도 절약하자는 취지엔 논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시행도 하기 전부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부와 업계의 논란 역시 무엇이 소비자, 국민들에게 이익이 가는 일인지 무엇이 자원 순환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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