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최 훈 기자
최 훈 기자
가짜 '고흐'와 2백억 사기단
가짜 '고흐'와 2백억 사기단
입력
2015-12-21 11:23
|
수정 2015-12-2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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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억 대 자산가 이 모 씨의 집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화가라는 故 박수근 화백의 작품, 조선시대 혜원 신윤복의 그림이 몇 점씩 쌓여 있습니다.
값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명작들입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변호사가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빌려 가면서 담보물처럼 주고 간 것들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모든 그림이 전부 다 가짜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 자산가는 자신의 전 재산과 지인, 친척의 재산까지 모두 227억을 날리고 끼니까지 걱정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가짜 고흐 그림까지 등장시켜 버젓이 전시회까지 열었던 희대의 사기단을 추적합니다.
-------------------------------------------------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아파트.
200제곱 미터가 넘는 집이지만, 집안은 의외로 허름하고, 3~40년이 넘은 물건과 낡은 가구들로 가득합니다.
[이 OO]
"40년 된 걸로 기억합니다. (40년 된 걸 지금도 쓰세요?) 쓰죠. 검소합니다. 저는 팬티도 기워 입습니다."
화장실 문은 망가져 너덜너덜하고, 40년 된 가죽 지갑은 해지고 곳곳이 찢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집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값비싼 미술품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근. 현대 서예 대가로 꼽히는 여초 김응현의 10폭짜리 대형 병풍과 고 박수근 화백의 정물화까지.
"가치를 논할 수 없는 거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집 주인 이모 씨 재산은 100억 원 가량.
그런데 이 씨는 악착같이 모은 전 재산을 최근 모두 사기당했습니다.
이 집도 조만간 경매에 넘어가고, 지하철 화장실에서 휴지를 가져와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OO]
"휴지 조금씩 말아가지고 나올 때는 정말 피눈물이 (진짜 지금은 생활비 자체가 없으신 거예요?) 생활비도 없죠. 저 점심이요. 고구마 싸갖고 나가서 고구마하고 물하고... 점심도 굷고 다닙니다."
100억 원 대 자산가가 하루아침에 끼니를 걱정하게 됐습니다.
자기 돈뿐 아니라, 가족과 지인들 돈까지 모두 227억 원을 사기당했습니다.
이 씨는 이게 모두 유명 화가 반 고흐의 작품과 변호사 때문이라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2010년 서울 코엑스.
빈센트 반 고흐의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이라는 그림이 두 달 동안 전시됐습니다.
전시회 측은 이 그림이 반 고흐가 숨지기 직전인 1890년 작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양 OO/소장자 대리인]
"이 작품은 고흐가 자살하기 한 달 전에 그린 작품이고요."
이 작품은 뜻밖에 한국인이 소장 중이었는데 해외 매각을 앞두고 고별 전시회가 열린 겁니다.
당시 추정 가는 1천억 원.
[김 OO/전시 주최 측]
"그 중에서도 템페라는 보도된 바와 같이 4~5점밖에 안 됩니다. 그중에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보니까."
이 전시회가 열리기 석 달 전.
앞서 본 100억대 자산가 이 씨는 이 전시회를 기획했다는 전상엽씨를 처음 만납니다.
서로를 잘 알고 지내던 조 모 변호사가 둘을 소개했습니다.
전 씨는 모 그룹 대주주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00]
"누구냐 그랬더니 그때 제(변호사)가 일본 일 같이 하고 있다는 OO 그룹 성북동 회장님 아들입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소개를 해줘서."
그리고 얼마 뒤 조 변호사는 전시회 비용 6천만 원이 부족하다며 이 씨에게 돈을 빌려 갔고, 또 몇 달 뒤엔 고흐 그림에 대한 보험 가입비가 필요하다며 3천만 원을, 그리고 전시회가 끝나자 이 작품이 외국에 팔릴 예정이라 반출해야 한다며 조 변호사가 2억 원을, 또 몇 달 뒤 전 씨가 1억 원을 더 빌려 갔다고 이 씨는 말합니다.
[이 00]
"특수 포장을 해서 외국으로 반출해야 되는데 혹시 분실되거나 그거 하면 안 되니까 보험을 들어야 된다. 그러면서 2억을 빌려 갔습니다."
조 변호사가 소개해 준 전 씨도 이 씨에게 돈을 꾸기 시작합니다.
전 씨는 일본에 아버지의 비자금 2~3천억 원이 있는데, 이 돈을 한국으로 들여와 유명 특급 호텔과 경기도의 한 대학교를 인수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세금 문제가 해결 안돼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상태니 돈을 잠시만 빌려주면 일이 끝난 뒤 원금에 10억 원을 더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00]
"2011년도에 제가 돈을 빌려주면서 얼마나 기간이 걸리느냐 그랬더니 한 3개월 정도면 끝난다 그래요."
전 씨는 이때부터 2년간 모두 20억여 원을 이씨로부터 꿔갔습니다.
전 씨는 돈을 빌릴 때마다 일본 재무성과 금융청의 공문서를 꼬박꼬박 보여주며 이 씨를 안심시켰습니다.
이 씨는 한국과 일본에서 재무성 직원이라는 사람도 여러 번 만났습니다.
[이 OO]
"(제가) 택시 타고 후쿠오카 OOO 호텔로 갑니다. 거기 가니까 재무성 직원 카카와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면서 서류를 내놓으면서 이제는 재무성 일이 끝났습니다. 하고 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그럽니다."
이런 일은 되풀이됐고, 결국 빌려 준 돈이 무려 227억 원까지 불어났습니다.
이 씨는 왜 이렇게까지 계속 돈을 줬을까.
전 씨는 일본에서 세금 계산이 잘못돼 돈을 더 내지 않으면 그동안 빌려준 돈까지 못 받게 된다는 식으로 이 씨를 압박했습니다.
[이 OO]
"또 하나 끝나면 또 이제 또 금융청 서류가 넘어오고 세무청에서 서류가 넘어오고, 보증 보험을 들어라. (어머니 입장에서는 이미 들어간 돈이 100억 정도가 있으니까) 그렇죠. (이게 해결 안 되면 이 돈도 못 받게 되니까?) 맞습니다."
이렇게 발목을 잡힌 이 씨는 집과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가족과 지인들 돈까지 빌려서 전 씨에게 줬습니다.
동생한테 5억 원, 사업가 박 모 씨에게서 45억 원 등돈을 빌린 주변 사람만 15명입니다.
[박 OO/피해자]
"(24억 대출도 받으신 거예요?) 그럼요. (이자가 얼마나 나가죠?) 오늘 780몇 만 원 나갔어요. (써보지도 못 한 돈인데 이자는 내시네요.) 그럼요. 나는 구경도 못한 돈이에요."
이 씨가 의심할 때마다 전 씨는 전시회를 했던 반 고흐 그림만 팔리면 된다고 안심시켰습니다.
[이 OO]
"일본에서 팔면 천억 원이고 삼성 홍라희한테 팔면 5백억 원인데 싸게라도 팔아서 이 문제부터 먼저 해결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얘길 합니다."
하지만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그 대신 또 다른 고가의 미술품들을 이 씨 집에 보내왔습니다.
10억 원 가치의 여초 김응현 선생의 서예 작품 병풍과 조선시대 화가 혜원 신윤복의 산수도에 박수근 화백의 정물화.
추사 김정희의 대련 작품까지.
혹시 돈을 못 갚더라도 이 작품을 팔면 50억 원은 될 거라고 했습니다.
전 씨는 45억 원을 빌려준 사업가 박 씨에게도 1억 원 대 조선 백자와 가치를 매기기 힘들다는 흥선대원군의 난 그림 여러 점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결국 전 씨는 약속한 날까지 돈을 갚지 않았고, 이 씨는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전 씨와 조 변호사를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고, 이 씨 남편은 화병으로 쓰러졌지만 치료비가 없어 집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이 씨 동생]
"말도 못 해요. 막판에는 폐에 물이 고였는데 병원에서 입원 하라 하는데 입원도 못 시켰어요. 사기 때문에 사람 죽은 거예요."
돈만 안 갚은 게 아니었습니다.
이 씨는 이들을 고소한 뒤 더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전 씨가 자신에게 줬던 그 유명 미술품들 이야깁니다.
억대 가치가 있다던 혜원 신윤복의 산수도를 한국미술품 감정협회에 맡겨봤습니다.
가짜였습니다.
다른 전문가들 의견도 마찬가지.
서명과 글씨도 혜원의 것이 아니고, 화풍도 일본식이라는 겁니다.
[고재식 미술품 감정 전문가]
"위작은 가격이 없는 겁니다. 지금 봐서는 이게 액자가 더 비싸죠. 이 액자 꾸미려면 한 25만 원 정도 듭니다."
박수근의 정물화, 흥선 대원군의 난 그림, 모두 위작이고, 1억 원이 넘을 거라던 조선백자 도자기도 가짜였습니다.
[김 ○○ (도자기 감정 전문가)]
"조선 초기 때 물건인데 이건 지금은 형태를, 그런 형태로 본을 떠서 만든 위작이에요. 위작. (이것도 가짜네요?) 그렇죠."
그렇다면 전시회까지 했던 반 고흐의 작품은 진짜일까?
이 그림은 이미 전시회 당시부터 가짜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뉴스데스크 2010년 12월 29일]
"반 고흐가 말년에 그렸다는 추정가 천억 원 짜리 작품이 지금 서울에서 전시되고 있는데요. 이것이 가짜라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 작품은 그림이 아니고 프린터로 뽑은 인쇄물이란 겁니다.
그림을 확대해 보면 인쇄물에서만 보이는 일정한 간격의 점들, 이른바 망점들이 보입니다.
당시 전시회를 관람했던 한 미술 복원 전문가는 명백한 위작이라 너무 황당했다고 합니다.
[김주삼/미술복원 전문가]
"전혀 전혀. 그러니까 인쇄물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인쇄물인데 여기에다 뭘 칠해놔서 약간 옛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면 그 많은 일본 재무성과 금융청의 공문서와 은행 입출금 내역 등은 어떻게 된 걸까?
이 문서들을 일본 대사관 관계자에게 보여줬더니 어이없어합니다.
모두 위조됐단 겁니다.
[일본 대사관 직원]
"어떻게 하면 속을 수 있을까 네. 나쁜 사람도 있네."
일본 금융청 수장은 장관인데 이 문서엔 청장이라고 쓰여 있고, 직인도 개인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또, 공문에 언급된 부서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일본 대사관 관계자]
"금유청에는 국제납세국이라는 부서도 없고, 납세는 국세청이 하기 때문에 금융청에서 그런 업무를 보지 않습니다."
이 직원은 이 문서들을 한국인이 만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글자 폰트가 일본과 다르고 일본 사람들은 쓰지 않는 말도 있다는 겁니다.
[일본 대사관 관계자]
"'정상'(세조니)라는 말을 쓰는데 '정상적'(세조데끼)이라는 말은 안 씁니다."
전 씨 아버지가 모 그룹 대주주란 말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속은 겁니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이 씨는 똑같은 피해자가 여럿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조 변호사로부터 전 씨를 소개받을 때부터 이미 그들은 다른 사기 사건의 피고인 신분이었습니다.
[김 OO/피해자]
"(전상엽 씨는 몇 번 보셨어요?) 그 친구야 많이 봤죠. 돈을 받아야 되니까. (변호사한테도 개인적으로 빌려주셨나요?) 민사 소송까지 했었잖아요. 그래서 다 이겼는데도 뭐 돈 없다고 오리발이니까."
이 피해자도 전 씨를 조 변호사로부터 소개받았다고 했습니다.
신윤복의 산수도 같은 그림들로 현혹시키는 건 이미 전에도 써먹던 수법이었습니다.
[김 OO]
"감정 내가 몇 번 씩 다 해봤어요. 그거 다 가짜예요. 그거 다 내가 받았다가 다시 다 돌려준 거예요. 다시 돌렸구나. 아 그게 결국은 이 OO 씨한테 갔구나. 난 돌려달라길래 아무 생각 없이 돌려줬는데..."
이제야 모든 걸 알게 된 이 씨.
이 씨는 조 변호사와 10년 넘게 알고 지냈고, 전 씨에게 돈을 빌려줘도 된다고 확인서까지 써줘서 믿었다고 했습니다.
실제 확인서에는 본인과 전 씨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조 변호사 자신의 동산과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 씨에게 넘기겠다고 적혀 있습니다.
2580은 조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조 변호사는 이씨에게 전 씨를 소개해 준 건 도의적으로는 미안하지만, 자신은 사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자기도 속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조 OO 변호사]
"227억에 관해서 나는 개입이 전혀 없다. 알지도 못 했다. (전시회 때) 전시회 때 나는 가지도 않았다. 전시는 내가 개최한 적 없다. (당시에 돈 빌려 가신 것도 그림 때문에 빌려 가신 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 여러 가지 사연이 많습니다. 그런 거 하고 다릅니다."
자필서명과 인감이 찍힌 확인서도 조작된 거라고 했습니다.
[조 OO 변호사]
"그 때 다른 일로 저기 전 OO(아버지)이 전상엽 (아들) 일가에게 저기 인감증명서하고 사인을 해준 게 있어요. 다른 서류를. (다른 용도인데 누군가 조작을 했다는 뜻인가요?) 그건 제 생각인데. 나는 그 서류 처음 본 거예요."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달 조 변호사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영장실질심사 전날 달아난 주범 전상엽씨는 고급 호텔을 전전하며 거액을 흥청망청 쓰고 있다는 소문만 들릴 뿐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검찰은 전 씨를 출국정지시키고 전국에 지명 수배했습니다.
값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명작들입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변호사가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빌려 가면서 담보물처럼 주고 간 것들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모든 그림이 전부 다 가짜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 자산가는 자신의 전 재산과 지인, 친척의 재산까지 모두 227억을 날리고 끼니까지 걱정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가짜 고흐 그림까지 등장시켜 버젓이 전시회까지 열었던 희대의 사기단을 추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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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한 대형 아파트.
200제곱 미터가 넘는 집이지만, 집안은 의외로 허름하고, 3~40년이 넘은 물건과 낡은 가구들로 가득합니다.
[이 OO]
"40년 된 걸로 기억합니다. (40년 된 걸 지금도 쓰세요?) 쓰죠. 검소합니다. 저는 팬티도 기워 입습니다."
화장실 문은 망가져 너덜너덜하고, 40년 된 가죽 지갑은 해지고 곳곳이 찢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집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값비싼 미술품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근. 현대 서예 대가로 꼽히는 여초 김응현의 10폭짜리 대형 병풍과 고 박수근 화백의 정물화까지.
"가치를 논할 수 없는 거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집 주인 이모 씨 재산은 100억 원 가량.
그런데 이 씨는 악착같이 모은 전 재산을 최근 모두 사기당했습니다.
이 집도 조만간 경매에 넘어가고, 지하철 화장실에서 휴지를 가져와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OO]
"휴지 조금씩 말아가지고 나올 때는 정말 피눈물이 (진짜 지금은 생활비 자체가 없으신 거예요?) 생활비도 없죠. 저 점심이요. 고구마 싸갖고 나가서 고구마하고 물하고... 점심도 굷고 다닙니다."
100억 원 대 자산가가 하루아침에 끼니를 걱정하게 됐습니다.
자기 돈뿐 아니라, 가족과 지인들 돈까지 모두 227억 원을 사기당했습니다.
이 씨는 이게 모두 유명 화가 반 고흐의 작품과 변호사 때문이라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2010년 서울 코엑스.
빈센트 반 고흐의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이라는 그림이 두 달 동안 전시됐습니다.
전시회 측은 이 그림이 반 고흐가 숨지기 직전인 1890년 작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양 OO/소장자 대리인]
"이 작품은 고흐가 자살하기 한 달 전에 그린 작품이고요."
이 작품은 뜻밖에 한국인이 소장 중이었는데 해외 매각을 앞두고 고별 전시회가 열린 겁니다.
당시 추정 가는 1천억 원.
[김 OO/전시 주최 측]
"그 중에서도 템페라는 보도된 바와 같이 4~5점밖에 안 됩니다. 그중에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보니까."
이 전시회가 열리기 석 달 전.
앞서 본 100억대 자산가 이 씨는 이 전시회를 기획했다는 전상엽씨를 처음 만납니다.
서로를 잘 알고 지내던 조 모 변호사가 둘을 소개했습니다.
전 씨는 모 그룹 대주주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00]
"누구냐 그랬더니 그때 제(변호사)가 일본 일 같이 하고 있다는 OO 그룹 성북동 회장님 아들입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소개를 해줘서."
그리고 얼마 뒤 조 변호사는 전시회 비용 6천만 원이 부족하다며 이 씨에게 돈을 빌려 갔고, 또 몇 달 뒤엔 고흐 그림에 대한 보험 가입비가 필요하다며 3천만 원을, 그리고 전시회가 끝나자 이 작품이 외국에 팔릴 예정이라 반출해야 한다며 조 변호사가 2억 원을, 또 몇 달 뒤 전 씨가 1억 원을 더 빌려 갔다고 이 씨는 말합니다.
[이 00]
"특수 포장을 해서 외국으로 반출해야 되는데 혹시 분실되거나 그거 하면 안 되니까 보험을 들어야 된다. 그러면서 2억을 빌려 갔습니다."
조 변호사가 소개해 준 전 씨도 이 씨에게 돈을 꾸기 시작합니다.
전 씨는 일본에 아버지의 비자금 2~3천억 원이 있는데, 이 돈을 한국으로 들여와 유명 특급 호텔과 경기도의 한 대학교를 인수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세금 문제가 해결 안돼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상태니 돈을 잠시만 빌려주면 일이 끝난 뒤 원금에 10억 원을 더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00]
"2011년도에 제가 돈을 빌려주면서 얼마나 기간이 걸리느냐 그랬더니 한 3개월 정도면 끝난다 그래요."
전 씨는 이때부터 2년간 모두 20억여 원을 이씨로부터 꿔갔습니다.
전 씨는 돈을 빌릴 때마다 일본 재무성과 금융청의 공문서를 꼬박꼬박 보여주며 이 씨를 안심시켰습니다.
이 씨는 한국과 일본에서 재무성 직원이라는 사람도 여러 번 만났습니다.
[이 OO]
"(제가) 택시 타고 후쿠오카 OOO 호텔로 갑니다. 거기 가니까 재무성 직원 카카와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면서 서류를 내놓으면서 이제는 재무성 일이 끝났습니다. 하고 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그럽니다."
이런 일은 되풀이됐고, 결국 빌려 준 돈이 무려 227억 원까지 불어났습니다.
이 씨는 왜 이렇게까지 계속 돈을 줬을까.
전 씨는 일본에서 세금 계산이 잘못돼 돈을 더 내지 않으면 그동안 빌려준 돈까지 못 받게 된다는 식으로 이 씨를 압박했습니다.
[이 OO]
"또 하나 끝나면 또 이제 또 금융청 서류가 넘어오고 세무청에서 서류가 넘어오고, 보증 보험을 들어라. (어머니 입장에서는 이미 들어간 돈이 100억 정도가 있으니까) 그렇죠. (이게 해결 안 되면 이 돈도 못 받게 되니까?) 맞습니다."
이렇게 발목을 잡힌 이 씨는 집과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가족과 지인들 돈까지 빌려서 전 씨에게 줬습니다.
동생한테 5억 원, 사업가 박 모 씨에게서 45억 원 등돈을 빌린 주변 사람만 15명입니다.
[박 OO/피해자]
"(24억 대출도 받으신 거예요?) 그럼요. (이자가 얼마나 나가죠?) 오늘 780몇 만 원 나갔어요. (써보지도 못 한 돈인데 이자는 내시네요.) 그럼요. 나는 구경도 못한 돈이에요."
이 씨가 의심할 때마다 전 씨는 전시회를 했던 반 고흐 그림만 팔리면 된다고 안심시켰습니다.
[이 OO]
"일본에서 팔면 천억 원이고 삼성 홍라희한테 팔면 5백억 원인데 싸게라도 팔아서 이 문제부터 먼저 해결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얘길 합니다."
하지만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그 대신 또 다른 고가의 미술품들을 이 씨 집에 보내왔습니다.
10억 원 가치의 여초 김응현 선생의 서예 작품 병풍과 조선시대 화가 혜원 신윤복의 산수도에 박수근 화백의 정물화.
추사 김정희의 대련 작품까지.
혹시 돈을 못 갚더라도 이 작품을 팔면 50억 원은 될 거라고 했습니다.
전 씨는 45억 원을 빌려준 사업가 박 씨에게도 1억 원 대 조선 백자와 가치를 매기기 힘들다는 흥선대원군의 난 그림 여러 점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결국 전 씨는 약속한 날까지 돈을 갚지 않았고, 이 씨는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전 씨와 조 변호사를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고, 이 씨 남편은 화병으로 쓰러졌지만 치료비가 없어 집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이 씨 동생]
"말도 못 해요. 막판에는 폐에 물이 고였는데 병원에서 입원 하라 하는데 입원도 못 시켰어요. 사기 때문에 사람 죽은 거예요."
돈만 안 갚은 게 아니었습니다.
이 씨는 이들을 고소한 뒤 더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전 씨가 자신에게 줬던 그 유명 미술품들 이야깁니다.
억대 가치가 있다던 혜원 신윤복의 산수도를 한국미술품 감정협회에 맡겨봤습니다.
가짜였습니다.
다른 전문가들 의견도 마찬가지.
서명과 글씨도 혜원의 것이 아니고, 화풍도 일본식이라는 겁니다.
[고재식 미술품 감정 전문가]
"위작은 가격이 없는 겁니다. 지금 봐서는 이게 액자가 더 비싸죠. 이 액자 꾸미려면 한 25만 원 정도 듭니다."
박수근의 정물화, 흥선 대원군의 난 그림, 모두 위작이고, 1억 원이 넘을 거라던 조선백자 도자기도 가짜였습니다.
[김 ○○ (도자기 감정 전문가)]
"조선 초기 때 물건인데 이건 지금은 형태를, 그런 형태로 본을 떠서 만든 위작이에요. 위작. (이것도 가짜네요?) 그렇죠."
그렇다면 전시회까지 했던 반 고흐의 작품은 진짜일까?
이 그림은 이미 전시회 당시부터 가짜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뉴스데스크 2010년 12월 29일]
"반 고흐가 말년에 그렸다는 추정가 천억 원 짜리 작품이 지금 서울에서 전시되고 있는데요. 이것이 가짜라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 작품은 그림이 아니고 프린터로 뽑은 인쇄물이란 겁니다.
그림을 확대해 보면 인쇄물에서만 보이는 일정한 간격의 점들, 이른바 망점들이 보입니다.
당시 전시회를 관람했던 한 미술 복원 전문가는 명백한 위작이라 너무 황당했다고 합니다.
[김주삼/미술복원 전문가]
"전혀 전혀. 그러니까 인쇄물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인쇄물인데 여기에다 뭘 칠해놔서 약간 옛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면 그 많은 일본 재무성과 금융청의 공문서와 은행 입출금 내역 등은 어떻게 된 걸까?
이 문서들을 일본 대사관 관계자에게 보여줬더니 어이없어합니다.
모두 위조됐단 겁니다.
[일본 대사관 직원]
"어떻게 하면 속을 수 있을까 네. 나쁜 사람도 있네."
일본 금융청 수장은 장관인데 이 문서엔 청장이라고 쓰여 있고, 직인도 개인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또, 공문에 언급된 부서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일본 대사관 관계자]
"금유청에는 국제납세국이라는 부서도 없고, 납세는 국세청이 하기 때문에 금융청에서 그런 업무를 보지 않습니다."
이 직원은 이 문서들을 한국인이 만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글자 폰트가 일본과 다르고 일본 사람들은 쓰지 않는 말도 있다는 겁니다.
[일본 대사관 관계자]
"'정상'(세조니)라는 말을 쓰는데 '정상적'(세조데끼)이라는 말은 안 씁니다."
전 씨 아버지가 모 그룹 대주주란 말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속은 겁니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이 씨는 똑같은 피해자가 여럿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조 변호사로부터 전 씨를 소개받을 때부터 이미 그들은 다른 사기 사건의 피고인 신분이었습니다.
[김 OO/피해자]
"(전상엽 씨는 몇 번 보셨어요?) 그 친구야 많이 봤죠. 돈을 받아야 되니까. (변호사한테도 개인적으로 빌려주셨나요?) 민사 소송까지 했었잖아요. 그래서 다 이겼는데도 뭐 돈 없다고 오리발이니까."
이 피해자도 전 씨를 조 변호사로부터 소개받았다고 했습니다.
신윤복의 산수도 같은 그림들로 현혹시키는 건 이미 전에도 써먹던 수법이었습니다.
[김 OO]
"감정 내가 몇 번 씩 다 해봤어요. 그거 다 가짜예요. 그거 다 내가 받았다가 다시 다 돌려준 거예요. 다시 돌렸구나. 아 그게 결국은 이 OO 씨한테 갔구나. 난 돌려달라길래 아무 생각 없이 돌려줬는데..."
이제야 모든 걸 알게 된 이 씨.
이 씨는 조 변호사와 10년 넘게 알고 지냈고, 전 씨에게 돈을 빌려줘도 된다고 확인서까지 써줘서 믿었다고 했습니다.
실제 확인서에는 본인과 전 씨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조 변호사 자신의 동산과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 씨에게 넘기겠다고 적혀 있습니다.
2580은 조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조 변호사는 이씨에게 전 씨를 소개해 준 건 도의적으로는 미안하지만, 자신은 사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자기도 속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조 OO 변호사]
"227억에 관해서 나는 개입이 전혀 없다. 알지도 못 했다. (전시회 때) 전시회 때 나는 가지도 않았다. 전시는 내가 개최한 적 없다. (당시에 돈 빌려 가신 것도 그림 때문에 빌려 가신 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 여러 가지 사연이 많습니다. 그런 거 하고 다릅니다."
자필서명과 인감이 찍힌 확인서도 조작된 거라고 했습니다.
[조 OO 변호사]
"그 때 다른 일로 저기 전 OO(아버지)이 전상엽 (아들) 일가에게 저기 인감증명서하고 사인을 해준 게 있어요. 다른 서류를. (다른 용도인데 누군가 조작을 했다는 뜻인가요?) 그건 제 생각인데. 나는 그 서류 처음 본 거예요."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달 조 변호사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영장실질심사 전날 달아난 주범 전상엽씨는 고급 호텔을 전전하며 거액을 흥청망청 쓰고 있다는 소문만 들릴 뿐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검찰은 전 씨를 출국정지시키고 전국에 지명 수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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