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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노경진 기자

혼자라서 좋은 이유

혼자라서 좋은 이유
입력 2016-01-25 10:58 | 수정 2016-01-2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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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혼자 고깃집에 가서 삼겹살 1인분을 주문해 먹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혼자 무엇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측정해 보는 인터넷상의 우스갯 질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혼자라는 건 어떻게든 피하거나 눈치 보거나 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최근 우리 주변의 풍속도가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 포털 회사가 SNS에 올라와 있는 네티즌들의 글을 빅 데이터로 분석해보니, ‘혼자’라는 단어는 과거엔 ‘힘들다’ ‘싫다’ ‘외롭다’ 등 부정적인 서술어와 주로 사용됐지만 최근에는 ‘좋다’ ‘재미있다’등 긍정적인 서술어와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혼자’라는 것이 더 이상 ‘남겨지는 결과’가 아니라 ‘적극적인 선택’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혼자라서 좋다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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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가득한 거실,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

    싱어송라이터 조은실 씨가 이번에 택한 여행지는 경기도 파주의 예술인 마을입니다.

    혼자 지내긴 꽤 널찍한 공간, 하지만 동행은 없습니다.

    책이 건네는 소리 없는 수많은 말들.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이 고요함이 좋습니다.

    첫 싱글 앨범 발표를 앞두고 긴장된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집에선 할머니, 엄마, 언니, 3대가 같이 살지만 여행은 이렇게 혼자 다니는 게 좋다고 합니다.

    [조은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도 그 기쁨이 있지만 혼자 있을 때는 더 혼자에 집중할 수 있잖아요."

    남들 시선은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조은실]
    "같이 갈 친구가 없어서 막 혼자 여행하고 막 그런 거라면 많이 슬플 거 같아요. 외롭고.. 아마 거기서 또 그 외로움 속에서 단련해가서 자유를 얻을 수도 잇지만, 일단은 이 혼자라는 것은 내가 선택했기에 더 값지고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혼자'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혼자 외롭다.. 심심하다,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십니까?

    그런데 그런 고정관념을 벗고 나는 혼자서도 좋다고, 오히려 혼자여서 더 좋다고 말하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남의 시선 신경 쓸 시간에 보다 더 나에게 집중하겠다는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서울의 한 생활용품 매장.

    침구류와 그릇,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

    여성들이 많지만, 남성들도 곳곳에 눈에 띕니다.

    직장인 공진규씨도 종종 이곳을 찾습니다.

    오늘은 유리병에 담긴 방향제를 샀습니다.

    [공진규]
    "집에 지금 공기가 안 좋아서. 그래서 디퓨저를 모으면 공기도 좋아지면서 인테리어 효과가 되게 좋거든요."

    작은 원룸이지만, 공 씨는 손수 페인트를 칠하고 조명을 바꿔달고 싱크대도 재조립하며 인테리어에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세입자로서 잠시 머무를 집, 더구나 혼자 사는 집에 이런 노력과 비용이 아깝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공진규]
    "계약기간이 2년인데, 글쎄요. 2년이면 짧으면 짧은 건데,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저는 꽤 긴 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2년 동안 행복할 수 있다라고 하면 사실 낭비는 아닌 것 같아요."

    바쁜 일상을 마치고 집에서 갖는 혼자만의 시간을 훨씬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공진규]
    "저만의 공간이죠. 이게 이 공간이 저한테 주는 의미가 제가 집에 들어왔을 때 마치 애완견 키우시는 분들처럼 이 집이 저를 반겨준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래서 혼자 사는 느낌이 사실 아니에요. 이 집이랑 같이 산다는 느낌이 좀 있고."

    오래된 연립주택을 개조해 개인작업실 겸 생활공간을 마련한 김란씨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큰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지인들의 원룸 인테리어나 가게 디자인을 도와주던 김 씨는 자신도 독립해 혼자 지내보기로 했습니다.

    [김란]
    "혼자 있을 때 충분히 잘 지내고 스스로를 건사하는 것. 그리고 그게 내 몸 하나 가꾸고 이 문제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공간까지 가꿀 수 있는 사람이 저는 정말 배우자를 만나거나 아이를 기르거나 충분히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독신 주의자는 아니지만, 결혼을 미리 염두에 두고 지낼 필요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김란]
    "(예전엔) 어차피 다 결혼할 거니까 결혼 가기 전에 1~2년 잠깐 (혼자) 사는 거였다면 이제는 그 기간이 10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결혼하지 않고 계속 살 수도 있는 거니까요. 언젠가는 결혼할 거니까 이 생각이 별로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아요."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어느새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27%, 4분의 1을 넘어섰습니다.

    시장은 이 같은 변화에 이미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이 고깃집은 아예 간판부터가 '1인 화로구이'입니다.

    '혼자와도 맘 편한 곳'을 표방합니다.

    바 형식의 자리에 앉으면 책 한 권 크기의 1인용 화로를 가져다줍니다.

    혼자 고깃집에 가서 주문해 먹는 게 혼자 밥 먹기 최고의 단계라는 인터넷상의 우스갯 이야기.

    그냥 농담이 아니라 그게 절실한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데 착안했습니다.

    [사장]
    "이게 기운이 없을 때 정말 소고기가 먹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혼자 고깃집 왔을 때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당연하죠. 가서 좀 눈치도 보이고 1인분 시키기도 좀 눈치도 보이고 그런 사람들이 저만이 아닐 거다. 그렇게 생각을 한 거죠."

    혼자 사는 사람도 오지만, 회식 자리가 아니어도 조용하게 고기를 먹고 싶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사장]
    "우리가 때려 먹는다고 하잖습니까. 그냥 퍼질러가지고 왁자지껄하게 그런 공간에서 자기 시간과 공간을 편안하게 확보한다는 건 좀 어렵죠. 그래서 저희 집은 이게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아마 여자분들이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대학가 원룸촌에 자리 잡은 이 술집도 혼자 앉아 마실 수 있는 바가 테이블 자리들보다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합니다.

    부담 없이 한 잔 마시러 혼자 들르는 직장인, 대학생들이 손님들의 다숩니다.

    스트레스 대부분이 극심한 경쟁,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만큼 가끔은 스스로 혼자가 돼 위안을 얻습니다.

    [이호형]
    "제가 하고 싶은 게 있고 제가 생각하고 싶어서 이런 시간을 가진 것에 대해서 남의 시선 생각하느라고.. 그렇게 하는 게 오히려 제 인생의 낭비인 것 같아요. 그냥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은 혼자 있는 게 맞는 거죠."

    혼자 밥을 먹는 이들을 위한 편의점 도시락 시장은 불황 속에서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3천억 원 규모, 1년 전보다 50%가량 커졌습니다.

    소형 가전, 가구, 소형차 등 1인 족을 겨냥한 상품들을 묶어 '솔로 이코노미'란 말도 생겨났습니다.

    [전미영 교수]
    "젊은이들의 소비취향을 보시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 취향에 맞춘 그런 제품들을 선호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쪼개지고 시장이 작아지고, 세분화되고.."

    그렇다면 '혼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2580은 이 주제에 대해 빅데이터 분석업체와 함께 흥미 있는 분석을 해봤습니다.

    최근 3년간 쓰인 인터넷 블로그 글 4억 건을 들여다봤습니다.

    '혼자'란 말과 함께 사용된 단어를 추려보니 2013년까진 '혼자여서 힘들다'가 1위였지만, 2014년부터 '혼자라서 좋다'가 1위로 올라섰습니다.

    혼자를 대표하는 서술어가 '좋다'가 된 겁니다.

    '혼자라서 편하다'란 표현도 2013년 7위에서 2015년에는 5위로 올라섰고, '혼자여서 심심하다'는 '혼자라서 신난다', '혼자여서 아프다'는 '혼자라서 다행이다'와 자리를 바꿨습니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예전에는 혼자라는 게 굉장히 봤을 때 좀 더 불우해 보이고 힘들어 보이는 삶에 대한 표상 같은 거였거든요. 이것이 점점 더 긍정으로 바뀌기 시작했어요. 아주 급격하게. 그래서 이제는 혼자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더 이상 그것이 불쌍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는 감정들이 늘고 있다."

    또, '혼자'와 '시간'이란 단어가 함께 언급되면 '소중하다', '필요하다', '중요하다'는 표현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왕 혼자라면, 어쩔 수 없이 홀로 남겨졌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혼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얘기도 됩니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예전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백만, 2백만이었는데, 이제 5백만 이상이 되잖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라는 형태의 새로운 트랜드가 만들어진다 라고 보시면 돼요. 그것이 '좋다, 나쁘다'의 의미가 아니라 이제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의 이슈일 것 같고."

    지속적인 경기 불황에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사건사고.

    지금 나 자신에 집중하고 개인의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혼자'의 긍정률을 높인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전미영 교수]
    "굳이 내 취향과 맞지 않는 상대방에게 굳이 맞출 필요도 없고, 또 혼자 보내는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서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이 굉장히 소중하고 굉장히 또 품격 있는 하나의 취미활동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일까요.

    지난 한 해 서점가에 화제가 됐던 주제어는 단연 '혼자'라는 단어였습니다.

    중요한 건, 혼자의 삶이 젊은 세대가 놀고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전 세대를 아우르는 관심사라는 겁니다.

    특히 평균수명이 늘어난 요즘,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은 중. 장년세대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또 다른 측면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방송 출연과 강연, 저술 등의 활동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던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는 4년 전 안식년을 맞아 가족은 한국에 남겨두고 혼자 훌쩍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 없이 홀로 지낸 시간.

    처음엔 견딜 수 없이 외로웠는데, 곧 외로움이야말로 앞으로 가장 익숙해져할 감정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김정운 교수]
    "옛날에는 열심히 일하다가 정년퇴직하면 바로 죽었어요. 그러니까 외로울 시간도 없었어요. 그런데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외로운 시간이 20년 30년 돼버린단 말이에요. 그럼 이거 어떻게 된 문제냐? 이런 것들이 한국 사회 큰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

    은퇴 이후 기존의 역할과 사회관계가 사라진 채 그 긴 시간을 보내려면,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 게 아니라 외로운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김정운 교수]
    "그럼 당신은 뭘 추구하고 싶으냐,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게 뭐냐, 뭐하고 싶으냐고 물어봐요. 직장 때려치우고 그러면 뭐하고 싶으냐. 그럼 다들 멈칫하다가 한 90프로는 세계여행, 이렇게 되는 거예요.. 정말 당신이 추구하는 가치이냐 이거죠."

    수많은 인간관계와 사회적 관계가 씨줄, 날줄처럼 촘촘히 얽혀있던 전통사회에서 혼자라는 건 종종 낙오자로 치부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평균수명 연장, 정보통신의 발달 등 시대의 변화는 기존의 잣대로 누군가의 인생을 재단하는 일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혼자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즐기는 이들.

    요즘 떠오르는 '혼자'라는 화두는 '함께 함'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생활과 가치관을 존중하고 즐기는 여유의 또 다른 이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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