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민병호 기자

날지 못하는 조종사의 꿈

날지 못하는 조종사의 꿈
입력 2016-05-16 15:49 | 수정 2016-05-16 15:49
재생목록
    하늘을 날며 고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비행기 조종사.

    최근 저가 항공사가 늘면서 항공 면허증을 따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학생이나 직장인이 크게 늘었습니다.

    자격증을 따는데 수천만 원에 수백 시간의 비행이 필요하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으로 비행학원에 기꺼이 거액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학원에서는 비행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고, 수강료도 돌려받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지난 2월에는 비행훈련을 하던 비행기가 추락해 훈련생과 교관이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는데요.

    ------------------------------------------------------

    특유의 엔진 소리와 함께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활주로로 이동하는 교육용 비행기.

    관제탑의 이륙 허가가 떨어지고.

    "훈련기 이륙을 허가합니다."

    조금씩 속도를 올리더니.

    무게 5.7톤의 경비행기가 사뿐히 날아오릅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맑은 하늘.

    아래로 푸른 바다와 모래사장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내려다보입니다.

    [문가람/한서대학교 항공운항학과]
    "비행할 때는 지상에서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을 공중에서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아직은 교육생에 불과하지만 파일럿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긴장된 표정으로 조종간을 잡고 움직입니다.

    "학창 시절부터 꿈꿔왔던 직업이기도 하고 여성이 부족한 직업군이긴 하지만 그만큼 도전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지상으로 돌아갈 시간.

    약간의 흔들림과 함께 착륙에 성공하고.

    이렇게 한 차례의 비행이 끝납니다.

    '고생했어(수고하셨습니다.)'

    직접 비행기를 몰고 하늘을 나는 일.

    누구나 한 번쯤은 가졌봤던 꿈일 겁니다.

    최근 국내외 항공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이 꿈을 직업으로 갖기 위한 조종사 지원자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31살 장창현 씨는 지난해, 5년간의 직장생활을 접었습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장창현]
    "조종사라는 꿈이 어릴 적부터 있긴 했었는데 그 방법을 잘 몰랐어요. 그때는 이제 공군 아니면 항공대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을 했다가 우연치 않은 기회에 TV 매체를 통해(방법을) 알게 돼 가지고."

    조종사가 되기까지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결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직장 생활 5년 동안 모은 3천만 원이 지난해 교육비로 다 들어갔습니다.

    [장창현]
    "지금은 집에서 도움을 받고 있죠. 왜냐면 학비 따로 비행교육비 따로니까 그걸 다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 들어서..(얼마 정도 드시나요?) 거의 1억 원 비슷하게 든다고 보시면 되고요."

    수백 시간의 비행을 채우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은 크게 자가용, 사업용, 운송용 3가지로 나뉘는데

    각각 40시간, 200시간, 1,500시간의 비행을 채워야 시험칠 자격이 주어집니다.

    대개 1년 반에서 2년을 꼬박 비행에 매달려야 하지만 조종사를 하겠다는 지원자들은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내 항공사 취업을 위해 사업용 조종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지난해 1천여 명.

    최근 5년간 무려 3천 6백여 명이 사업용 자격증을 땄습니다.

    [이근성 교수/한국항공전문학교 항공조종과]
    "현재 지금 젊은 사람들이 취업을 못하는 경향이 있고..(조종사는) 연봉도 우선 고액 연봉이고 또 근무도 65세까지 할 수 있으니까 다른 일반직보다는 전문직으로 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오는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 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등 민간항공기 조종사의 평균 연봉은 1억 2천여만 원.

    직업별 평균소득 순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직업군에 속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등 국내외 저비용 항공사들이 크게 늘면서 조종사 수요도 그만큼 늘었습니다.

    [최연철 교수/한서대 항공산업대학원장]
    "보잉사나 국제민간항공 에어버스에서 얘기를 하기를 '20년 후에는 조종사가 55만 명 정도가 부족할 것이다.' 하는 것에 근거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조종사 양성을 활성화시키고 있고."

    하지만, 조종사 자격증이 취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연철 교수/한서대 항공산업대학원장]
    "이게 70점 내지 60점 이상이면 자격을 딸 수 있거든요. 자동차 면허하고 똑같아요. 자격증은 땄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거는 90점 정도의 수준의 인원을 요구하거든요. 항공사에서는. 그러니까 자격증이 있어도 취업은 안되는.. 양질의 조종사가 부족한 거지 조종사가 부족한 건 아니에요."

    현직 조종사들도 장밋빛 전망만 보고 조종사가 되려는 건 위험하다고 충고합니다.

    [황인수 부기장/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자격증 취득자의) 10% 정도만이 항공사에 취업을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블루오션은 아닙니다."

    [박종국 기장/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들인 비용과 시간만큼 그런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굉장이 많이 있습니다."

    조종사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2010년까지만 해도 5곳에 불과하던 민간조종교육원도 최근 5년 사이 무려 16곳으로 늘어났습니다.

    문제는 시설이나 환경이 열악한 민간교육원이 많은데다 관리감독할 제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것.

    피해를 입었다는 교육생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 2월, 김포공항.

    한 민간조종 교육원의 경비행기가 활주로 끝 부분에 추락했습니다.

    기체 앞부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상태.

    이륙한 지 불과 2분 만에 일어난 이 사고로 비행기에 타고 있던 30대 교관과 교육생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해당 교육원은 눈이 오는 등 기상이 악화되자 비행을 자제하라는 문자를 보냈다고 주장합니다.

    [강○○/A조종교육원 관계자]
    "오후에 기상이 안 좋아져서 비행 자제 요청 문자를 발송했어요, 최종 판단은 기장님들이 하세요."

    사고기에는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지 않아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조사중인 상태.

    이 교육원 교관 출신인 한 현직 부기장은 사고가 난 훈련기가 예전에도 문제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소○○/B 항공사 부기장]
    "옛날에 제가 탔을 때도 공중에서 시동이 몇 번 꺼질 뻔했고요. 청주에 엔진문제로 해 가지고 불시착한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경험이 좀 있으니까 아무래도 좀 불안하고."

    해당 교육원은 각종 규정 위반으로 지난 3년 동안 7차례나 행정처분을 받았습니다.

    운항이나 정비 위반은 물론 훈련기에 항공유 대신 싼 휘발유를 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을 뿐 사망 사고가 난 이후에도 여전히 운영 중입니다.

    피해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 교육원 피해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

    비행 실습을 제대로 받지 못해 남은 교육비 환불을 요구했지만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문○○/A조종교육원 피해자]
    "(처음에 얼마 내셨어요?) 저는 6000만 원.(내신 돈 중에 얼마 정도까지 수강을..) 지금 한 2000만 원 정도 남았습니다. 못 받았고 받을 수도 없고 지금 뭐 재정상태가 워낙 안 좋기 때문에 돌려받기 힘들 것 같고.."

    1천만 원 넘게 피해봤다는 교육생만 200여 명.

    그런데 어쩐 일인지 피해자 대부분은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걸 꺼렸습니다.

    [문○○/A조종교육원 피해자]
    "저도 2000만 원 엄청 큰돈이잖아요. 근데 저 말고도 더 많은 금액이 묶여 있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학교가 망해가지고 그 돈이 날아갔다고 생각을 하면 누가 책임질 거예요. 그래서 언론에다가 얘기를 안 하는 거예요."

    교육이나 안전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비행이나 취업에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두려웠다는 교육생도 있었습니다.

    [서○○/A조종교육원 피해자]
    "아는 사람들 다 있는데 괜히 시끄러워지면 취직에 방해될까 봐. '이 사람은 조직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그런 것 때문에 함부로 드러나는 걸 싫어하는 편이죠."

    해당 교육원은 선불로 고액의 교육비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교육생들에게도 그만큼 할인 혜택을 줬다면서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오○○/A조종교육원 관계자]
    "할인의 어떤 대가를 받고 돈(교육비)을 선납했다면 이 업체가 이 자금을 필요한 곳에 사용을 할 수도 있는 것을 인정을 해야죠.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환급해주세요.' 이렇게 돼버리면 휘청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민간 조종교육원에서 근무했던한 업계 관계자는 싼값에 빨리 면허를 취득하고 싶은 교육생과 열악한 민간 비행학원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탓이라고 말합니다.

    [원○○/C조정교육원 전 교관]
    "빨리 면허증 취득해서 빨리 항공사 가고 싶잖아요. 그리고 싸게 하고 싶잖아요. 학생들은 시설 장비 인원이 그 교육원을 선택하는 기준이 아니라 어느 학원이 좀 더 단기간에 좀 더 할인을 많이 해줄 수 있느냐.."

    학원들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항공기 관리나 점검보다는 할인 마케팅에 주력한다는 겁니다.

    [원○○/C조정교육원 전 교관]
    "학원은 학생들 심리를 잘 아는 거죠. '아 쟤네들은 시설 장비 이런 거 다 필요 없어'. 일단 빨리 어떻게 되든 무슨 방법을 취하든 빨리 싸게만 해주면 된다.."

    사람은 많고 비행시간은 한정돼 있다 보니 무리한 비행을 강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C조정교육원 전 교관]
    "학생들도 빨리 비행시간 채워야 되고..계속 밀려가지고 비행도 제대로 못 했는데 돈은 들어가도 환불도 안 해주고..타야죠. 그러니까 오히려 더 이제 안전은 뒷전이고... (타겠다.) 네, 찾아온 기회니까 타야죠. 어떻게 온 기회인 게 그렇죠."

    피해를 보상받는 것도 힘듭니다.

    법적으로 '전문교육기관'이 아닌 '항공기사용사업자'로 분류돼 있다 보니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치든 이를 규제하거나 관리할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교육과정에서의 사고를 막고 양질의 조종사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준을 표준화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최연철 교수/한서대 항공산업대학원장]
    "'야간에 3시간 비행을 해야 된다' 어느 기관은 3시간을 규정해 놓고 하고 있고 어느 기관은 그것을 빼고 있어도 정부 자격 취득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것까지 해야만 조종사로서 운영이 적절하다고 보여지는 거죠."

    정부도 이런 문제들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난 3일 대처방안을 내놓았습니다.

    교육기관에 대한 안전감독을 이착륙 직전이나 불시 점검 등으로 강화하고.

    교통량이 많아 사고 위험이 컸던 김포공항에서의 훈련비행을 올해 말까지 지방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또 항공사 취업준비 훈련과정을 신설하는 등 2020년까지 2천 명 이상의 조종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풍식 서기관/국토교통부 운항정책과]
    "항공사에서 원하는 부분까지 충족을 하려면(비행훈련을) 더 해야 되거든요. 더 해야 되는데 그 과정이 없다 보니까 외국에 직접 나가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이제(국내에) 만드는..."

    하지만, 기상 상황이나 항공 인프라 등 국내 여건을 감안하면 책상머리 대책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실제 조종사 직업에 대한 붐이 일면서 관련학과를 보유한 4년제 대학이 8개까지 늘고 입학경쟁률도 5:1을 넘어서고 있지만 비행교육 시설을 갖춘 대학은 단 한 곳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김동욱 기장/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그 학교 관계자들이 교통부하고 회의를 할 때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은 학교 인가는 내주고 왜 비행할 여건을 안 만들어주느냐.' '학생들이 지금 3학년이 되는데, 비행 한 번 못했다.'"

    하늘을 날며 높은 연봉의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싶다는 조종사의 꿈.

    하지만, 이 꿈을 꾸던 교육생이나 교관들이 2010년 이후 거의 매년, 훈련용 경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규정과 정비 속에 안전한 비행이 이뤄지고 있는지.

    더욱 엄격한 관리 감독이 필요해 보입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