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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권희진 기자

"잠 좀 잡시다"

"잠 좀 잡시다"
입력 2016-06-27 09:49 | 수정 2016-06-2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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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제 연구팀의 조사결과에서 우리나라는 인공조명에 피해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야구장의 야간 조명, 유흥업소의 간판 등 거리가 밝아질수록 빛으로 인한 분쟁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명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할 수 없다는 분쟁은 매년 3천여 건에 이릅니다.

    과도한 인공조명이 유방암과 전립선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는데요.

    잠 못 드는 대한민국의 밤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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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의 프로야구 경기장, 챔피언스필드.

    경기장을 밝히는 조명이 뿜어낸 강렬한 빛이 바로 옆 아파트 단지로 흘러넘칩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경기장까지는 불과 80미터.

    쏟아지는 빛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아파트의 외벽이 마치 햇볕에 닿은 것처럼 번들거립니다.

    집 안은 어떨지 들어가 봤습니다.

    야구장을 바라보는 아파트 11층의 주방 창문.

    강렬한 빛이 두 눈을 정면에서 찔러옵니다.

    [박한표/아파트 주민]
    "야구 시즌 때는 쉽게 얘기해서 트라우마가 생기는 거예요. 아 이제 또 몇 달 동안은 고생해야겠다. 그게 상당히 우린 정신적으로 고통이 심하죠."

    잠을 청하기 위해 실내 등을 꺼봤습니다.

    거실은 마치 전등을 켠 것처럼 환합니다.

    잠이 들려면 빛을 피해야 하지만 도무지 방법이 없습니다.

    [김병오/아파트 주민]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워낙 불빛이 새니까. 오늘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불빛이, 불빛 때문에 완전히 공해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원하지 않는 빛으로 인한 고통, 이른바 빛 공해라고 하는 새로운 종류의 환경피해가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빛과 관련된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는 매년 3천 건이 넘습니다.

    도시의 밤이 밝아질수록, 분쟁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재작년,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기아타이거즈의 홈구장, 챔피언스필드가 건립되면서 주민들의 고통은 시작됐습니다.

    프로야구 시즌인 일 년의 절반은 빛과 싸우는 기간, 야구장의 빛은 새벽 1시가 넘어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김수현/아파트 주민]
    "11시 정도에 끝나게 되면 그 이후에도 청소하고 뒷정리하느라고 새벽에 12시, 1시 그 정도까지도 불이 켜져 있을 때가 많아요."

    더운 날씨에도 창문을 닫아걸고 두꺼운 커튼을 치는 것 말고 방법은 없습니다.

    [최민호/아파트 주민]
    "지금도 초여름 시작하는 단계인데 푹푹 찌거든요. 실내는 거의 암막 커튼 치고 에어컨을 틀고 살다시피 합니다. 그럼 전기세도 엄청나겠죠."

    어린 아이들은 밤낮을 구분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김수현/아파트 주민]
    "애들이 자야 하는데 빛 같은 걸 보고 있으면 밤인 줄 몰라요. 낮인 줄 알고, 엄마 아침이야 아직 잠잘 시간 아니잖아. 우리 둘째 같은 경우는 그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점이 좀 안쓰럽더라고요."

    주민들은 쏟아지는 빛을 막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박한표/아파트 주민]
    "김치냉장고도 제일로 높은 것으로 사라.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가려놓은 거에요. 이게."

    주거지역의 최대 밝기 허용기준은 10룩스.

    10룩스를 넘어서면 수면의 질과 양이 크게 떨어지고 뇌의 활성도도 낮아진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습니다.

    [이은일 교수/고려대 의대 빛 공해 연구팀]
    "실제로 검사를 해보면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져요. 뭐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지거든요."

    아파트 곳곳에서는 실제로 기준치의 2배 가까운 17룩스의 밝기가 측정됐고, 지난 14일 광주시의 조사에서는 기준치의 3배 가까운 최대 27룩스가 측정되기도 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주민 730여 명은 작년 9월, 광주시와 기아타이거즈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오민근 변호사/주민 측 소송대리인]
    "주민들이 이렇게 이와 같은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당신네들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달라. 법적으로도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 정당하다 이걸 확인 받는 데에 의미를 뒀기 때문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주민들과 빛을 둘러싼 소송을 벌이게 된 광주시는 난감해하고 있습니다.

    [광주시청체육진흥과]
    "소음에 대한 손해배상 사례는 좀 있었지만 빛 같은 경우는 전국 최초인 것으로 알고 있고 특히 야구장 같은 경우는.. 실은 저희도 난감합니다. 야구장을 지어놨는데."

    문제는 또 있습니다.

    3년 전 새로 제정된 빛 공해 방지법에 따라 광주시는 내년부터 시 전체를 빛 공해 관리구역으로 지정할 예정입니다.

    관리구역으로 지정되면 야구장 측은 이 아파트로 들어오는 빛의 밝기를 5년 내에 10룩스 이하, 지금의 절반 가까이 줄여야 합니다.

    [송일석/광주시청 환경정책과 주무관]
    "적용이 될 경우에는 5년간 유예기간 동안에 개선 대책을 마련해서 개선해야 하고. 개선 명령을 내렸는데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사용 중지, 사용 제한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빛을 막을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조명을 낮춘 채 경기를 할 수도 없고, 기아타이거즈 측은 야구장의 폐쇄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습니다.

    [허 권/기아타이거즈 홍보팀장]
    "빛이라는 건 경기 자체 어찌 보면 일부분이라 저희가 이 조명을 줄일 수는 없어서 저희도 사실 그게 난감합니다. 그렇게 관리구역으로 정해져서 조도를 올릴 수 없다. 그러면 야구 경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그런 상황이에요."

    소송까지는 아니어도 집 안으로 들어오는 빛 때문에 민원을 제기하거나 분쟁이 벌어지는 경우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빛 공해로 인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법규도 마땅히 없고, 피해를 입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천광역시, 김 모 씨의 오피스텔입니다.

    창 밖으로 붉은색, 푸른색 등 색색의 현란한 조명들이 경쟁하듯 빛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견디다 못한 김 씨는 여러 차례 구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김○○/오피스텔 주민]
    "제가 구청에 진짜 아마 이 동네 저보다 전화를 많이 한 사람 없을 거에요. 진짜로. 전화를 할 때마다 물론 해결을 한다고 하는데 그게 효과가 없어요."

    불빛은 동이 틀 무렵에나 꺼지니 매일 밤이 빛과의 전쟁입니다.

    [김○○/오피스텔 주민]
    "11시쯤, 12시쯤. 그때는 또 광선이 최고로 또 많을 때죠. 보통 한 새벽 날이 밝기 전까지는 그냥 있다고 보시면 돼요. 한 4시? 4시 반까지 그냥 있다고 보시면 돼요."

    광고며 간판의 불빛들이 앞다퉈 밝기 경쟁을 벌이다 보니, 주민들은 차광 커튼으로도 빛을 막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말합니다.

    [김○○/오피스텔 주민]
    "마사지 집에 이게 눈에 잘 보여야 하니까 그게 최고로 심해요. 이게 칼라가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이렇게 들어오면..."

    관할 구청에는 이 일대에서만 최근 10여 건 이상의 빛 공해 민원이 접수됐지만, 해결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크기 5제곱미터 이하의 중소형 간판은 불빛을 규제할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천 서구청 관계자]
    "지금 현재는 뭐 딱히 간판에 대한 빛에 대한 규제 같은 건 없어요. 그냥 뭐 설치할 수 없는 지역이나 그런 걸 명시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저희도 계속 요청드린다고 그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거에요."

    빛 공해 피해를 입증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

    도로 너머 대형 스크린의 화면이 바뀔 때마다 마치 실내에 TV를 켠 것처럼 번쩍거리는 빛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이○○/아파트 주민]
    "이런 암막 커튼, 재질도 두꺼운데 꼭 닫으니까 에어컨을 애들한테 맨날 틀어줄 수도 없고, 선풍기를 틀어줄 수도 없는 상황이고 좀 이 빛 하나 때문에 이렇게 불편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게 번쩍거리니까요."

    거대한 빛의 번쩍임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막막합니다.

    대형 간판을 설치할 때는 제곱미터 당 8백 칸델라의 밝기를 넘을 수 없도록 규제가 되어 있지만, 그 빛이 주변에 미치는 피해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아무리 빛 피해를 호소해도 이를 입증할 기준이 없다는 얘깁니다.

    [기호익 과장/빛 측정 전문업체]
    "(보기에는 심각한데 수치로는 잘 안 나오는 거네요.)"그렇죠, 아무래도 눈으로 보는 시감 효과하고 실제로 기계로 센서로 읽어들이는 값하고는 현재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빛 공해 피해는 단지 불편함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빛에 노출되는 환경이 심혈관계 질환이나 암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상식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고려대 빛 공해 연구팀이 경기도 안산과 안성의 거주자들을 비교했더니, 빛 공해가 상대적으로 심한 안산에서 불면증 환자의 비율은 안성보다 70% 높게 나타났습니다.

    빛 공해와 암의 상관관계 연구에서는 빛 공해가 특히 여성의 유방암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은일 교수/고려대 의대 빛 공해 연구팀]
    "빛 공해가 가장 낮은 지역하고 가장 높은 지역이랑 비교했을 때, 유방암이 24% 정도 더 높다. 빛 공해가 폐암 같은 경우에는 영향을 안 미치는데 유방암 같은 경우는 영향을 미친다. 이런 게 이스라엘 연구에서도 나오고 미국연구에서도 나오고 우리나라 연구에서도 나오고.."

    깜빡이거나 빛의 밝기가 계속 변하는 빛에 노출되는 경우 더 위험합니다.

    [홍일희/수면의학 전문의]
    "일정 조도가 올라가 있는 경우하고 간판처럼 번쩍번쩍하는 전광판 개념은 굉장히 차이가 많습니다. 실질적으로 눈앞에서 반짝반짝하는 개념은 뇌를 각성시키는 요소를 굉장히 크게 가지고 있어요."

    어린이들이 이런 위험에 노출되는 건 더욱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홍일희/수면의학 전문의]
    "성장장애, 학습장애 이런 것들이 초래될 수 있는 것이죠. 잠을 못 자면 성장호르몬 분비가 떨어지고요, 그다음에 자꾸 주변의 뇌파가 깨어있는 상태가 많아지면 특히 렘수면이라는 게 방해를 받기 시작하면 학습능력이 굉장히 떨어지는 걸로 돼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에야 비로소 빛 공해 방지법이 만들어지면서 빛의 밝기 등을 규정한 관련 기준이 처음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준조차도 빛 공해 관리구역으로 지정된 곳에만 적용될 뿐이고, 5년 유예기간까지 있습니다.

    현재는 서울시만 유일하게 시의 전 구역을 빛 공해 관리구역으로 지정했을 뿐입니다.

    [김훈 강원대 교수/조명전기설비학회장]
    "지자체장이 관리구역으로 지정을 안 하면 그 방지법에 관련된 기준들이 적용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 기준을 전 국토에 다 적용을 하고 특별히 빛 공해에 문제가 많은 지역 또는 빛 공해가 급격히 증가하는 지역 이런 데는 특별히 추가적인 관리하는.."

    미국과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지난 10일 발표한 세계 빛 공해 지도입니다.

    한반도 남쪽 전체가 진한 주홍빛으로 뒤덮여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빛 공해가 심하다는 측정 결과.

    국토의 89%가 빛 공해 지역으로 분류됐습니다.

    인구가 밀집해 있고, 건물과 간판이 어떤 빛을 내뿜어도 문제 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김훈 강원대 교수/조명전기설비학회장]
    "특히 새로운 어떤 개발 지역 같은 곳에서 이 업소들이나 이런 쪽이 들어오면서 간판을 달기 시작하면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특히 야간 경관의 형성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이러한 조명을 억제하는 그러한 방안이 필요하다."

    강력한 빛을 쏘아내는 조명 기술의 발달, 이를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부재 속에 거리의 조명들은 오로지 눈길만 끌면 된다는 밝기 경쟁을 지속해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밤하늘은 제대로 쳐다보기조차 힘든 공해 수준의 불빛들에 점령당했습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뒤 편안히 잠들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일이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인 시대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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