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장인수 기자
장인수 기자
세계일주, 그 후
세계일주, 그 후
입력
2016-06-27 10:41
|
수정 2016-06-2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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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세계 일주를 꿈꾸지만 막상 떠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수천만 원의 비용, 6개월에서 1년씩 휴가를 낼 수 없는 현실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직서를 던지고, 한국에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훌쩍 세계 일주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주변에선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걱정하 기도합니다.
정말 괜찮을까요? 다녀온 뒤엔 뭘 먹고살까요? 일자리는 구했을까요?
가족들과는 잘 지낼까요? 후회는 하지 않을까요? 세계 일주를 다녀온 사람들,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2580이 수소문해 찾아가 봤습니다.
--------------------------------------------------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델프트.
배용연 오빛나씨 부부는 재작년부터 취업비자를 받아 이곳에 삽니다.
남편 배용연씨가 현지의 IT 기업에 취업을 하면서 이주해온 겁니다.
[배용연]
"(건축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 세계로 보급하는 회사고요."
이 네덜란드 회사가 먼저 배씨에게 일자리를 제안해왔습니다.
[마자르 파토비/영업팀장]
"(스카웃 제의를 하며) 그가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일깨워줬죠."
정두용, 안보라 씨 부부는 작년부터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변과 가깝고 인테리어도 잘 돼 있어 인기가 좋은 편입니다.
[정두용]
"만실입니다. (잘 되나 봐요?) 비교적."
윤태근 씨는 한산도에서 요트 사업을 합니다.
해외에서 요트를 들여오기도 하고.
[윤태근]
"시모노세키 세관에서 (요트를) 통관한 적이 2~30번 되는데, 그런 일은 처음 들어."
사람들에게 요트 모는 법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네덜란드 IT 회사에 다니는 배용연씨, 제주도에서 팬션을 운영하는 정두용씨, 한산도에서 요트 사업을 하는 윤태근 씨, 이들은 모두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곳에서 서로 상관없는 일을 하는 이들은, 실은 같은 계기를 통해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됐습니다.
이들은 모두 세계 일주를 떠났던 사람들입니다.
배용연씨 부부는 원래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녔습니다.
툭하면 야근에 주말 근무까지 해야 했던 부부는 직장 생활 5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세계 일주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빛나]
"여기서 더 나이가 들고 아기도 생기고 뭔가 책임감이 더 커지면 힘들 거 같다. 지금이 제일 적합한 타이밍이다."
회사에 사표를 냈고 전세금과 퇴직금으로 여행경비를 마련해 지난 2012년 9월 세계 일주를 떠났습니다.
아홉 달을 돌아다니던 이들은 네덜란드에서 전 직장 동료 마자르를 만났습니다.
당시 마자르는 이직을 해 네덜란드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이 회사는 해외 영업을 맡아줄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해외 영업 경험이 있는데다 세계 일주까지 하고 있던 배씨는 회사에겐 꽤 탐나는 인재였습니다.
[거잔 스크래퍼스 사장/네덜란드 IT 회사]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다루면서 일을 하는 데 문제가 없었으면 했고요. 배씨가 그런 사람이었죠."
배씨는 여행 도중 화상 채팅으로 면접을 봤습니다.
[배용연]
"에콰도르 하필이면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은 곳을 여행할 때 온라인으로 화상 면접을 진행했었어야 했었어요. 어떻게 답변을 해가지고 서로 좋다고 이야기가 되었었고.."
그로부터 1년 뒤, 세계 일주를 끝낸 배씨는 네덜란드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세계 일주가 새로운 인생을 여는 계기가 된 겁니다.
[오빛나]
"저희 인생에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고 도전될 거다라고 생각을 했고, 여행도 했는데(네덜란드에) 살아보는 것도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결심하게 됐죠."
학원 강사였던 정두용씨는 모터싸이클을 타고 세계 일주를 했습니다.
볼리비아에서 역시 여행 중이던 안보라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정두용]
"쿠스코에서 만나고 그러다 보니까'나도 마추픽추로 갈 건데 같이 가지 않을래?' 이러면서 마추픽추도 같이 여행 갔다 오고 그러다가 이렇게 된 거죠."
한국에 돌아와 결혼한 뒤 제주도에 내려와 폐가를 사들였습니다.
둘이 직접 폐가를 고치고 가구도 만들어 펜션을 열었습니다.
[정두용]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오름이라든지 그런 멋진 풍경들이 있으니까 매일매일 여행 다니는 그런 느낌이 있어서 좋아요."
윤태근 씨는 소방공무원이었습니다.
그러다 자신의 꿈을 좇아 요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윤태근]
"(바람을 타고) 타악 이리 가면은 무념무상에 빠지거든요. 이때 완전히 아드레날린이 나오죠. 이게 요트 매력이죠."
그는 한국 최초로 요트 세계 일주에 도전했습니다.
가족과 생계를 외면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윤태근]
"아 반대 심했습니다. 이혼하고 가라, 뭐 절대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애가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이었거든요."
가족의 원망을 뒤로한 채 꿈을 향해 돛을 올렸던 그는 지금은 가족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윤태근]
"애들은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가 세계 일주를 도전해가지고 해냈던 거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게 최고 저한테는 큰 보람이죠."
한산도에 2천 평의 땅을 사들이고 정부에 사업 허가도 얻어내 지금은 어엿한 마리나 사업장 사장입니다.
16년 전, 잘 나가던 서울시 국장이 돌연 휴직계를 내고 가족들과 함께 세계 일주를 떠났습니다.
다섯 식구의 가장인 공무원과 세계 일주.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그들의 여행은 세간에 크게 화제가 됐고, 여행기가 책으로도 나왔습니다.
16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당시 서울시 국장은, 지금 서울의 한 구청장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위 공무원이 일을 멈추고 세계 일주를 떠난다는 건 그 당시, 특히 공직사회에선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성/서울 구로구청장]
"당시 내무부 장관이(서울시로) 공문을 보내 가지고 공직사회에 나쁜 선례가 남을 수 있으므로 절대로 휴직을 허락하지 말 것. 이렇게(공문이) 끝났습니다."
서울시 대책 회의까지 열린 끝에 결국 무급 휴직을 승인받아 다녀온 세계 일주.
이후 그는 오히려 정부 쪽에서 먼저 찾는 사람이 됐습니다.
[이성/서울 구로구청장]
"참 재미있는 거는 저한테 휴직을 절대로 받아주면 안 된다는 내무부가 제일 먼저 저한테 공문을 보내 가지고 내무부 지방행정 연수원 거기서 강연을 맡아 달라 그래서.."
세계 일주의 1세대라고도 할 수 있는 그는, 공무원으로서도, 가장으로서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그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했다고 회고합니다.
[이성/서울 구로구청장]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게 아깝긴 하겠지만 가지고 있는 게 꼭 없어진다 생각하지 마시고 돌아와서 다시 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다른 도전을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나은 도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세계 일주가 이름처럼 낭만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여행의 과정이나, 그 이후의 생활은, 동화 주인공처럼 구름 속을 걷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치열한 삶의 연속일 뿐입니다.
설치 디자이너였던 최동익 씨는 2013년 6월 아파트를 팔아 가족과 함께 세계 일주를 떠났습니다.
숙식을 해결할 수 있도록 개조한 버스에 다섯 식구가 꾸역꾸역 올라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했습니다.
1년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최씨의 직업은 벌이가 시원찮은 여행 작가입니다.
부인 박미진 씨는 생계를 위해 틈틈이 식당 일을 합니다.
[최동익]
"노후를 위해서 다들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데(우리는) 유랑이나 하고 다녔으니 당연히 대가는 지불해야죠. 우리 박 여사도 식당일 하러 나가고 우리 딸 아이도 아르바이트 나가고.."
여행을 위해 집을 팔았기 때문에 시골에 있는 친척 땅을 빌려 직접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여행 뒤에 찾아온 곤궁한 삶.
하지만, 최씨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합니다.
[최동익]
"지금 당장 행복할 방법. 비교하지 않는 것 누구 집 차는 뭔데, 나는 어디까지 가야 행복한데.. 거기에 대한 쫓음이 없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물질적인 비교로 인한 불행은 지금 없습니다. 여행이 준 선물이죠."
여행이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닙니다.
작은 버스 안에서 24시간을 다섯 식구가 함께 지내다 보니 처음엔 많이 싸웠다고 합니다.
[최동익]
"삼시세끼 24시간을 4평 남짓한 집(버스)에서 함께 있었던 거예요. 뛰쳐나가면 자기 문 닫고 들어갈 방이 없으니까 대문 열고 나가봐야 시베리아인데 자기가 어딜 가요."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같은 관계를 떠나 서로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면서부터 많은 게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최동익]
"차가 시베리아에서 고장 났을 때. '아버지는 차를 못 고친다.'라고 그 이야기하기가 그렇게 어렵더라고요. 아이들도 가족도 아버지가 차를 다 고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야. 근데 '그렇지 않다.'라고 이야기하고 '도와달라' 그러고부터는 누가 끌고 간다는 게 아니고 하나의 팀이 됐죠."
최동익 씨는 여행 후 세 자녀의 허락을 받고 명함을 하나 팠습니다.
직함은 '아버지'입니다.
[최동익]
"너무 행복합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만큼 아버지로서 성공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해 차도 없어 집도 남루해 그런 잣대 기준으로 봤을 때 네가 뭔 행복이야 여행 갔다 와 가지고 망한 거지. 그게 답을 드릴 수가 없다는 거죠. 정말 행복합니다."
세계 일주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좌표를 얻는 일.
황인범 씨가 그렇습니다.
2009년 자전거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황씨는 자전거 해외여행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자전거 동호인들을 데리고 해외의 유명한 자전거 코스를 다녀오는 일입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자전거 세계여행을 떠났던 그는 처음엔 대기업에 취직했습니다.
[황인범]
"(입사)지원서를 쓸 때도 할 얘기가 많았고, 그리고 면접 들어가서도 이 자전거 얘기가 나오기만 하면 면접관들이 귀 기울이면서 얘기를 경청해 주시더라고요. 이건 어땠냐 거긴 어땠냐."
하지만, 조직 생활에 맞지 않는다는 걸 느낀 그는 대학로에서 장사를 시작했고 꽤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곧 자신이 정말 원하는 건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재작년 다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했습니다.
[황인범]
"내가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닐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더라. 이런 걸 깨닫고 제가 세계 여행하면서 느꼈던 그런 행복들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면 좋겠다."
안정적인 직장, 성공한 사업은 포기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난주 키르기스스탄에 다녀온 그는 다음 주 스위스로 떠납니다.
세계 일주는 여전히 누구에게나 크고 부담스러운 선택이고 결심이고 도전입니다.
[최동익]
"돌아오면 뭐 하지? 어떡하지? 그게 제일 무서웠죠."
하지만, 길을 떠나고,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든 삶은 계속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해줬고, 이 깨달음은 또 다른 선택과 도전을 마주하는 연료가 됐습니다.
[오빛나]
"우리 스스로 우리 힘으로 온전히 다 해냈다라는게..아 그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것도 다 해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
세계 일주라는 꿈에 도전한 사람들.
그들이 이룬 건 세계 일주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걸 하며 살 수 있는 오늘일지도 모릅니다.
수천만 원의 비용, 6개월에서 1년씩 휴가를 낼 수 없는 현실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직서를 던지고, 한국에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훌쩍 세계 일주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주변에선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걱정하 기도합니다.
정말 괜찮을까요? 다녀온 뒤엔 뭘 먹고살까요? 일자리는 구했을까요?
가족들과는 잘 지낼까요? 후회는 하지 않을까요? 세계 일주를 다녀온 사람들,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2580이 수소문해 찾아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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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델프트.
배용연 오빛나씨 부부는 재작년부터 취업비자를 받아 이곳에 삽니다.
남편 배용연씨가 현지의 IT 기업에 취업을 하면서 이주해온 겁니다.
[배용연]
"(건축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 세계로 보급하는 회사고요."
이 네덜란드 회사가 먼저 배씨에게 일자리를 제안해왔습니다.
[마자르 파토비/영업팀장]
"(스카웃 제의를 하며) 그가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일깨워줬죠."
정두용, 안보라 씨 부부는 작년부터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변과 가깝고 인테리어도 잘 돼 있어 인기가 좋은 편입니다.
[정두용]
"만실입니다. (잘 되나 봐요?) 비교적."
윤태근 씨는 한산도에서 요트 사업을 합니다.
해외에서 요트를 들여오기도 하고.
[윤태근]
"시모노세키 세관에서 (요트를) 통관한 적이 2~30번 되는데, 그런 일은 처음 들어."
사람들에게 요트 모는 법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네덜란드 IT 회사에 다니는 배용연씨, 제주도에서 팬션을 운영하는 정두용씨, 한산도에서 요트 사업을 하는 윤태근 씨, 이들은 모두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곳에서 서로 상관없는 일을 하는 이들은, 실은 같은 계기를 통해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됐습니다.
이들은 모두 세계 일주를 떠났던 사람들입니다.
배용연씨 부부는 원래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녔습니다.
툭하면 야근에 주말 근무까지 해야 했던 부부는 직장 생활 5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세계 일주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빛나]
"여기서 더 나이가 들고 아기도 생기고 뭔가 책임감이 더 커지면 힘들 거 같다. 지금이 제일 적합한 타이밍이다."
회사에 사표를 냈고 전세금과 퇴직금으로 여행경비를 마련해 지난 2012년 9월 세계 일주를 떠났습니다.
아홉 달을 돌아다니던 이들은 네덜란드에서 전 직장 동료 마자르를 만났습니다.
당시 마자르는 이직을 해 네덜란드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이 회사는 해외 영업을 맡아줄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해외 영업 경험이 있는데다 세계 일주까지 하고 있던 배씨는 회사에겐 꽤 탐나는 인재였습니다.
[거잔 스크래퍼스 사장/네덜란드 IT 회사]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다루면서 일을 하는 데 문제가 없었으면 했고요. 배씨가 그런 사람이었죠."
배씨는 여행 도중 화상 채팅으로 면접을 봤습니다.
[배용연]
"에콰도르 하필이면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은 곳을 여행할 때 온라인으로 화상 면접을 진행했었어야 했었어요. 어떻게 답변을 해가지고 서로 좋다고 이야기가 되었었고.."
그로부터 1년 뒤, 세계 일주를 끝낸 배씨는 네덜란드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세계 일주가 새로운 인생을 여는 계기가 된 겁니다.
[오빛나]
"저희 인생에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고 도전될 거다라고 생각을 했고, 여행도 했는데(네덜란드에) 살아보는 것도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결심하게 됐죠."
학원 강사였던 정두용씨는 모터싸이클을 타고 세계 일주를 했습니다.
볼리비아에서 역시 여행 중이던 안보라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정두용]
"쿠스코에서 만나고 그러다 보니까'나도 마추픽추로 갈 건데 같이 가지 않을래?' 이러면서 마추픽추도 같이 여행 갔다 오고 그러다가 이렇게 된 거죠."
한국에 돌아와 결혼한 뒤 제주도에 내려와 폐가를 사들였습니다.
둘이 직접 폐가를 고치고 가구도 만들어 펜션을 열었습니다.
[정두용]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오름이라든지 그런 멋진 풍경들이 있으니까 매일매일 여행 다니는 그런 느낌이 있어서 좋아요."
윤태근 씨는 소방공무원이었습니다.
그러다 자신의 꿈을 좇아 요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윤태근]
"(바람을 타고) 타악 이리 가면은 무념무상에 빠지거든요. 이때 완전히 아드레날린이 나오죠. 이게 요트 매력이죠."
그는 한국 최초로 요트 세계 일주에 도전했습니다.
가족과 생계를 외면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윤태근]
"아 반대 심했습니다. 이혼하고 가라, 뭐 절대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애가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이었거든요."
가족의 원망을 뒤로한 채 꿈을 향해 돛을 올렸던 그는 지금은 가족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윤태근]
"애들은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가 세계 일주를 도전해가지고 해냈던 거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게 최고 저한테는 큰 보람이죠."
한산도에 2천 평의 땅을 사들이고 정부에 사업 허가도 얻어내 지금은 어엿한 마리나 사업장 사장입니다.
16년 전, 잘 나가던 서울시 국장이 돌연 휴직계를 내고 가족들과 함께 세계 일주를 떠났습니다.
다섯 식구의 가장인 공무원과 세계 일주.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그들의 여행은 세간에 크게 화제가 됐고, 여행기가 책으로도 나왔습니다.
16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당시 서울시 국장은, 지금 서울의 한 구청장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위 공무원이 일을 멈추고 세계 일주를 떠난다는 건 그 당시, 특히 공직사회에선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성/서울 구로구청장]
"당시 내무부 장관이(서울시로) 공문을 보내 가지고 공직사회에 나쁜 선례가 남을 수 있으므로 절대로 휴직을 허락하지 말 것. 이렇게(공문이) 끝났습니다."
서울시 대책 회의까지 열린 끝에 결국 무급 휴직을 승인받아 다녀온 세계 일주.
이후 그는 오히려 정부 쪽에서 먼저 찾는 사람이 됐습니다.
[이성/서울 구로구청장]
"참 재미있는 거는 저한테 휴직을 절대로 받아주면 안 된다는 내무부가 제일 먼저 저한테 공문을 보내 가지고 내무부 지방행정 연수원 거기서 강연을 맡아 달라 그래서.."
세계 일주의 1세대라고도 할 수 있는 그는, 공무원으로서도, 가장으로서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그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했다고 회고합니다.
[이성/서울 구로구청장]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게 아깝긴 하겠지만 가지고 있는 게 꼭 없어진다 생각하지 마시고 돌아와서 다시 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다른 도전을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나은 도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세계 일주가 이름처럼 낭만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여행의 과정이나, 그 이후의 생활은, 동화 주인공처럼 구름 속을 걷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치열한 삶의 연속일 뿐입니다.
설치 디자이너였던 최동익 씨는 2013년 6월 아파트를 팔아 가족과 함께 세계 일주를 떠났습니다.
숙식을 해결할 수 있도록 개조한 버스에 다섯 식구가 꾸역꾸역 올라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했습니다.
1년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최씨의 직업은 벌이가 시원찮은 여행 작가입니다.
부인 박미진 씨는 생계를 위해 틈틈이 식당 일을 합니다.
[최동익]
"노후를 위해서 다들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데(우리는) 유랑이나 하고 다녔으니 당연히 대가는 지불해야죠. 우리 박 여사도 식당일 하러 나가고 우리 딸 아이도 아르바이트 나가고.."
여행을 위해 집을 팔았기 때문에 시골에 있는 친척 땅을 빌려 직접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여행 뒤에 찾아온 곤궁한 삶.
하지만, 최씨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합니다.
[최동익]
"지금 당장 행복할 방법. 비교하지 않는 것 누구 집 차는 뭔데, 나는 어디까지 가야 행복한데.. 거기에 대한 쫓음이 없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물질적인 비교로 인한 불행은 지금 없습니다. 여행이 준 선물이죠."
여행이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닙니다.
작은 버스 안에서 24시간을 다섯 식구가 함께 지내다 보니 처음엔 많이 싸웠다고 합니다.
[최동익]
"삼시세끼 24시간을 4평 남짓한 집(버스)에서 함께 있었던 거예요. 뛰쳐나가면 자기 문 닫고 들어갈 방이 없으니까 대문 열고 나가봐야 시베리아인데 자기가 어딜 가요."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같은 관계를 떠나 서로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면서부터 많은 게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최동익]
"차가 시베리아에서 고장 났을 때. '아버지는 차를 못 고친다.'라고 그 이야기하기가 그렇게 어렵더라고요. 아이들도 가족도 아버지가 차를 다 고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야. 근데 '그렇지 않다.'라고 이야기하고 '도와달라' 그러고부터는 누가 끌고 간다는 게 아니고 하나의 팀이 됐죠."
최동익 씨는 여행 후 세 자녀의 허락을 받고 명함을 하나 팠습니다.
직함은 '아버지'입니다.
[최동익]
"너무 행복합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만큼 아버지로서 성공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해 차도 없어 집도 남루해 그런 잣대 기준으로 봤을 때 네가 뭔 행복이야 여행 갔다 와 가지고 망한 거지. 그게 답을 드릴 수가 없다는 거죠. 정말 행복합니다."
세계 일주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좌표를 얻는 일.
황인범 씨가 그렇습니다.
2009년 자전거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황씨는 자전거 해외여행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자전거 동호인들을 데리고 해외의 유명한 자전거 코스를 다녀오는 일입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자전거 세계여행을 떠났던 그는 처음엔 대기업에 취직했습니다.
[황인범]
"(입사)지원서를 쓸 때도 할 얘기가 많았고, 그리고 면접 들어가서도 이 자전거 얘기가 나오기만 하면 면접관들이 귀 기울이면서 얘기를 경청해 주시더라고요. 이건 어땠냐 거긴 어땠냐."
하지만, 조직 생활에 맞지 않는다는 걸 느낀 그는 대학로에서 장사를 시작했고 꽤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곧 자신이 정말 원하는 건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재작년 다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했습니다.
[황인범]
"내가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닐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더라. 이런 걸 깨닫고 제가 세계 여행하면서 느꼈던 그런 행복들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면 좋겠다."
안정적인 직장, 성공한 사업은 포기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난주 키르기스스탄에 다녀온 그는 다음 주 스위스로 떠납니다.
세계 일주는 여전히 누구에게나 크고 부담스러운 선택이고 결심이고 도전입니다.
[최동익]
"돌아오면 뭐 하지? 어떡하지? 그게 제일 무서웠죠."
하지만, 길을 떠나고,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든 삶은 계속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해줬고, 이 깨달음은 또 다른 선택과 도전을 마주하는 연료가 됐습니다.
[오빛나]
"우리 스스로 우리 힘으로 온전히 다 해냈다라는게..아 그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것도 다 해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
세계 일주라는 꿈에 도전한 사람들.
그들이 이룬 건 세계 일주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걸 하며 살 수 있는 오늘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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