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김현경 기자
김현경 기자
"저 퇴근했는데요?" 스마트폰의 퇴근을 허하라
"저 퇴근했는데요?" 스마트폰의 퇴근을 허하라
입력
2016-07-18 10:09
|
수정 2016-07-1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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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에 업무가 끝나면 동아리 활동이 시작되는 회사가 있습니다.
직원들은 퇴근하고 싶지만, SNS에 출결과 활동 인증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동아리에 출석해왔습니다.
스마트폰이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은 24시간으로 연장되고 있습니다.
새벽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는 메신저 알림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직장인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생각해 봅니다.
---------------------------------------
"(굿모닝?) 안녕하세요."
광고 회사 대표 김민성 씨.
출근과 동시에 노트북을 켜고 메신저에 접속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회사 내에서 회의를 소집하거나 거래처 담당자와의 의견을 주고받는 일이 모두 모니터 속 대화로 이뤄집니다.
[김민성 대표/00 광고회사]
"메시지를 여러 명이 같이 받으니까 실수할 일도 줄어들고, 글이 남으니까 아무래도 편하게."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으로 편집된 광고 영상을 고객회사에 찍어 보내고 즉석에서 의견도 교환하면서 순발력 있게 일을 처리합니다.
점심 시간에는 틈틈이 이메일을 확인합니다.
[김민성 대표/00 광고회사]
"광고주 업무 관련 메일, 직원들이 확인해 달라는 것들. 저는 외부 업무가 많으니까 (모바일 업무가) 거의 절반 이상인 것 같아요."
퇴근 후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시간.
여기서도 업무 연락은 끊이지 않고 종종 이어집니다.
[김민성 대표/00 광고 회사]
"늦은 시간이나 긴급한 일들은 밤에도 연락될 수 있거든요. 저는 가급적 그런 상황은 피하려고 하는데..."
이젠 손에 든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업무를 처리하는 게 흔한 풍경이 됐습니다.
일 처리가 훨씬 편하고 빨라졌지만 이런 상황이 모두에게 반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휴대폰 때문에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퇴근 후의 자유를 빼앗겼다고 호소하는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10년차 직장인 김 모 씨.
맞벌이다 보니 초등학생 딸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주말이 고작이지만, 그마저 모바일 메신저로 불쑥불쑥 날아오는 상사의 메시지 때문에 오붓한 휴식을 망치기 일쑤입니다.
[김 00]
"정말 아침이고 밤이고 주말이고 아무 상관없었어요.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뭐 읽어봤니? 이거 했니? 저거 했니? 여행 가도 하다못해 캠핑을 가도 전 이거(스마트폰) 하고 있어야 되니까.."
상사가 해외 출장이라도 가면 김씨도 함께 밤낮이 바뀝니다.
[김 00]
"시차가 있잖아요. 그러면 본인이 깨어있는 시간에 계속 업무 지시가 오는데 그게 미국 같은 경우에는 저는 밤이니까 되게 힘들었거든요."
대답이 늦으면 어김없이 질책을 받기 때문에 매일매일 24시간이 긴장 상태.
[김 00]
"제가 답을 안 해주면 일을 안 한다고 생각하니까 CCTV가 지켜보는 것처럼 SNS에 감시당하는 느낌?"
10개가 넘는 업무 관련 단체 대화방까지 관리하다 보면 '메시지 감옥'에 갇힌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김 00]
"(단체 대화방이) 회의 탁자라고 생각을 하시면 여기 회의 탁자에도 앉아있는 거고 저기 회의 탁자에도 앉아있는 거거든요. 몇 개의 방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면서 끊임없이 이럴 때는 정말 미치겠다.."
음악에 맞춰 커다란 북을 치는 여성들 그런데 시계를 보면 밤 11시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이들은 강원도 지역 한 원예농협이 운영하는 마트에서 일하는 여사원들이 시간에 왜 북을 치고 있는 걸까?
[박 00/00원예농협 직원]
"(밤) 10시 30분에 스터디가 시작했어요. (마트) 마감 시간 끝나고 가야 하니까 그러면 1시간 하면 11시 30분, 집에 가면 12시가 넘는 경우도 있고. 그걸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게 아니라 쌓이는 거죠."
회사 측은 지난해 봄부터 "꿈을 키우라"며 전 직원들에게 1주일에 한 번씩 공부나 취미 활동을 하도록 지원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스터디 '제도.
1인당 1년에 10만 원씩 지원금을 주는 등 취지는 좋았지만, 직원들은 달갑지 않았습니다.
[박00/00원예농협 직원]
"참석을 안 하면 벌금을 1만 원씩 내야 되고 만약에 어디 가서 참석 못 할 경우에는 인증 사진을 찍어서 보내야 됐었어요."
각 스터디별로 활동사진과 영상을 사내 게시판과 온라인 커뮤니티, 단체 대화방 등에 매주 올려야 하다 보니 아무리 퇴근이 늦어도, 심지어 휴가일 때도 동아리 활동을 빠질 수 없었습니다.
[김 00/00 원예농협 직원]
"(스터디 관리팀에서) '어느 팀 보고가 안 올라왔습니다. 빨리 보고해주세요.' 단체 대화방을 나가면 또 강제로 초대해서 들어와 있고 들어가서 밤새도록 '딩동딩동' 하는 거예요. 그럼 그건 내가 회사를 떠난 게 아니죠."
연말에 시상을 위해 점수를 매긴다는 명목이었지만 직원들에겐 일거리가 늘어난 셈.
[이 00/00원예농협 직원]
"목요일 몇 시까지 마감이니까 그때까지 (사진이나 댓글을) 안 올리면 점수 차감. 야근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최근 전체 직원 160여 명 중 절반이 못 참겠다며 집단적으로 '스터디'를 탈퇴했습니다.
[최 00/00원예농협 직원]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하거든요,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런 삶이 됐을 때 나중에 직장에 나와서도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직원들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었을 뿐 강제성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00원예농협 관계자]
"처음부터 다 완벽하게 진행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정착돼 가는 과정 중의 하나였다고 보시면 될 것 같고.."
"7월 13일 수요일 두 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
퇴근 후에도 쉬지 못하는 사연은 특수한 일부의 얘기만은 아닙니다.
[박경림/<2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 진행자]
"일 끝나고 집에 와서 밥 먹으려 하면 꼭 전화 와서 내일 할 일 다 아는데 굳이 또 알려주는 직장 상사! 어휴~ 어디 갔니? 내 밥맛아."
[박경림/<2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 진행자]
"휴가 기간 거래처 담당자! '휴가 시라던데 죄송한데요.' 해놓고 한 시간을 상담했던 너! 진짜 화난다."
'업무 시간 외 메시지'가 주제였던 이날 방송에서 10분 사이에 수백 개의 다양한 하소연이 쏟아졌습니다.
메신저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친 경우도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신 모 씨.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원장이 퇴근 후 보내는 업무 지시 메시지 때문에 새벽까지 일해야 했습니다.
[신 00]
"보통 한 (밤) 9시쯤? (밤) 11시에 온 적도 있어요. '이런 주제를 가지고 강의(자료)를 만들어서 가지고 와라.' 하면 다음날 가서 검사를 맡아야 되는 거예요."
메시지를 무시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신 00]
"제가 확인을 안 하면 바로 전화가 오는 거예요. 어느 날 너무너무 많이 힘들어가지고 카톡을 탈퇴를 하고 아예 그냥 잠적을 했었어요. 그랬는데도 계속 연락이 오니까.."
3년째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됐습니다.
[신 00]
"(밤 9시) 그때쯤이면 가족들이 다 모이니까 얘기도 하고 쉬는 시간인데 (메시지를) 받는 순간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인데 화가 너무 많이 나서 막 주체를 할 수가 없어가지고 어느 날은 막 화나서 우는 거 있잖아요. 울어서 엄마는 놀래서 왜 그러냐고.."
결국, 체중이 급격히 늘고 몸이 상하는 걸 견디지 못해 휴직했다고 합니다.
[신 00]
"사먹지도 않던 초콜릿을 사서 먹기도 하고 단 걸로 (스트레스가) 많이 풀어지더라고요. 나는 벗어나고 싶은데 누군가 내 발목을 붙잡고 안 놔주는 그런 느낌이 드니까 (나 자신이) 되게 한심스럽고.."
2년 전 번역과 통역 전문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던 전 모 씨도 퇴근 후. 주말·휴가를 가리지 않는 업무 지시를 견디다 못해 1년 만에 사표를 냈습니다.
언제 어딜 가든 스마트폰 충전기에 보조 배터리,노트북까지 챙겨다니는 생활.
[전 00]
"(스마트폰에서 소리가 나면) 가슴이 왠지 막 두근두근 거리기도 하고 강박 관념이 생긴 거죠 (전화를) 안 받으면 불안하고.."
결국, 쉬는 날 외출조차 꺼리게 됐습니다.
[전 00]
"어차피 나가봐야 또 계속 연락받아야 되니까 나가기도 귀찮고 편하게 얘기도 못 하고 이러니까 굳이 그럴 바에는 안 나가고 말지 이렇게.."
[임세원 교수/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일의 시작만 있고 끝이 없다라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많죠. 무력해져 있죠. 에너지 수준이 굉장히 떨어져 있고 지쳐 있는 쉽게 말해서 배터리가 거의 다 방전돼버린 사람 같은 그런 모습인 거고.."
최근 실시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근무시간 외에 업무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87%, 즉 10명 중 9명이나 됐습니다.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고 싶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건데요.
아직 일부지만 자율적으로 개선해 나가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국내 한 대형 통신 회사.
올봄부터 밤 10시 이후에는 업무 전화나 메시지 전송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박지영 팀장/00 통신사]
"휴대폰으로 업무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아서 10시 이후에 특히 업무 지시나 이런 부분이 진행되면 보직을 해임하는 정도의 인사적인 조치까지 진행을 한다.."
삶과 일의 균형이 이뤄져야 업무 효율도 높아진다는 회사 방침에 따른 변화입니다.
[사내 방송]
"효율적으로 금일 업무를 마무리하시고 5시에 칼퇴(정시퇴근) 하시어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 달에 두 번은 전 직원이 모두 한 시간 일찍, 오후 5시에 퇴근을 합니다.
[백균영 과장/00 통신사]
"오늘은 빨리 가야되는 날이니까 빨리빨리 업무를 해야 돼 그러면서 효율적으로 사람들이 회의도 빨리 끝내고.."
독일정부는 이미 지난 2013년 업무 시간 이후엔 비상시가 아니면 상사가 직원에게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폭스바겐같은 기업은 노사협약을 맺고 근로시간 종료 30분 후엔 업무용 스마트폰의 이메일 기능이 멈추고 다음날 근무시간 30분 전이돼야 재가동되도록 했습니다.
BMW는 퇴근 후엔 공식적으로 휴대폰을 꺼도 됩니다.
[베른트 엑슈타인/BMW 대변인]
"직원들이 자유 시간에 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진정한 휴식은 직원들이 회사일에서 모든 신경을 끄고 의도적으로 연락이 불가능해야지만 가능합니다."
프랑스 정부 역시 최근 퇴근 시간 이후 상사의 휴대전화나 이메일을 받지 않아도 될 권리를 법으로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경우 업무 시간이 아닌 때에도 스마트 기기로 일하는 시간이 일주 일당 677분, 즉 11시간이 넘습니다.
국회에선 '퇴근 후 업무 전화.SNS 금지'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고용노동부도 경제 5단체와 함께 관련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영돈 국장/고용노동부 청년 여성 고용정책국]
"사실 강제로 하기보다는 자발성이 우러나와야 되고 또 서로 불편함이 없어야 되잖아요. 밑에서부터 자발성은 사실 힘든 것이고 CEO나 윗사람들이 관리자, 간부 중심으로 확산이 돼야죠."
하지만, 시민들은 '연락받지 않을 권리'가 구체적으로 제도화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반응입니다.
[이혜수]
"(회사에서) 워낙 위아래가 정확히 정해져 있기 때문에/상대가 듣기에는 얘가 나의 권위를 침해하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전문가들은 퇴근 후 이뤄지는 업무 지시가 근로 시간에 포함되는지부터 정부가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김기선 부연구위원/한국노동연구원]
"(스마트 기기를) 업무시간 외에도 활용하면 초기에는 생산성이 좀 더 오르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 이후에는 업무 스트레스가 훨씬 더 강화되고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거든요?"
발전하는 기술로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일상과 노동의 경계.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돈을 더 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사고방식으론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업무와 휴식을 구분하고 일과 가정을 균형 있게 양립할 수 있도록 직원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직원들은 퇴근하고 싶지만, SNS에 출결과 활동 인증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동아리에 출석해왔습니다.
스마트폰이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은 24시간으로 연장되고 있습니다.
새벽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는 메신저 알림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직장인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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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안녕하세요."
광고 회사 대표 김민성 씨.
출근과 동시에 노트북을 켜고 메신저에 접속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회사 내에서 회의를 소집하거나 거래처 담당자와의 의견을 주고받는 일이 모두 모니터 속 대화로 이뤄집니다.
[김민성 대표/00 광고회사]
"메시지를 여러 명이 같이 받으니까 실수할 일도 줄어들고, 글이 남으니까 아무래도 편하게."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으로 편집된 광고 영상을 고객회사에 찍어 보내고 즉석에서 의견도 교환하면서 순발력 있게 일을 처리합니다.
점심 시간에는 틈틈이 이메일을 확인합니다.
[김민성 대표/00 광고회사]
"광고주 업무 관련 메일, 직원들이 확인해 달라는 것들. 저는 외부 업무가 많으니까 (모바일 업무가) 거의 절반 이상인 것 같아요."
퇴근 후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시간.
여기서도 업무 연락은 끊이지 않고 종종 이어집니다.
[김민성 대표/00 광고 회사]
"늦은 시간이나 긴급한 일들은 밤에도 연락될 수 있거든요. 저는 가급적 그런 상황은 피하려고 하는데..."
이젠 손에 든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업무를 처리하는 게 흔한 풍경이 됐습니다.
일 처리가 훨씬 편하고 빨라졌지만 이런 상황이 모두에게 반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휴대폰 때문에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퇴근 후의 자유를 빼앗겼다고 호소하는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10년차 직장인 김 모 씨.
맞벌이다 보니 초등학생 딸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주말이 고작이지만, 그마저 모바일 메신저로 불쑥불쑥 날아오는 상사의 메시지 때문에 오붓한 휴식을 망치기 일쑤입니다.
[김 00]
"정말 아침이고 밤이고 주말이고 아무 상관없었어요.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뭐 읽어봤니? 이거 했니? 저거 했니? 여행 가도 하다못해 캠핑을 가도 전 이거(스마트폰) 하고 있어야 되니까.."
상사가 해외 출장이라도 가면 김씨도 함께 밤낮이 바뀝니다.
[김 00]
"시차가 있잖아요. 그러면 본인이 깨어있는 시간에 계속 업무 지시가 오는데 그게 미국 같은 경우에는 저는 밤이니까 되게 힘들었거든요."
대답이 늦으면 어김없이 질책을 받기 때문에 매일매일 24시간이 긴장 상태.
[김 00]
"제가 답을 안 해주면 일을 안 한다고 생각하니까 CCTV가 지켜보는 것처럼 SNS에 감시당하는 느낌?"
10개가 넘는 업무 관련 단체 대화방까지 관리하다 보면 '메시지 감옥'에 갇힌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김 00]
"(단체 대화방이) 회의 탁자라고 생각을 하시면 여기 회의 탁자에도 앉아있는 거고 저기 회의 탁자에도 앉아있는 거거든요. 몇 개의 방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면서 끊임없이 이럴 때는 정말 미치겠다.."
음악에 맞춰 커다란 북을 치는 여성들 그런데 시계를 보면 밤 11시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이들은 강원도 지역 한 원예농협이 운영하는 마트에서 일하는 여사원들이 시간에 왜 북을 치고 있는 걸까?
[박 00/00원예농협 직원]
"(밤) 10시 30분에 스터디가 시작했어요. (마트) 마감 시간 끝나고 가야 하니까 그러면 1시간 하면 11시 30분, 집에 가면 12시가 넘는 경우도 있고. 그걸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게 아니라 쌓이는 거죠."
회사 측은 지난해 봄부터 "꿈을 키우라"며 전 직원들에게 1주일에 한 번씩 공부나 취미 활동을 하도록 지원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스터디 '제도.
1인당 1년에 10만 원씩 지원금을 주는 등 취지는 좋았지만, 직원들은 달갑지 않았습니다.
[박00/00원예농협 직원]
"참석을 안 하면 벌금을 1만 원씩 내야 되고 만약에 어디 가서 참석 못 할 경우에는 인증 사진을 찍어서 보내야 됐었어요."
각 스터디별로 활동사진과 영상을 사내 게시판과 온라인 커뮤니티, 단체 대화방 등에 매주 올려야 하다 보니 아무리 퇴근이 늦어도, 심지어 휴가일 때도 동아리 활동을 빠질 수 없었습니다.
[김 00/00 원예농협 직원]
"(스터디 관리팀에서) '어느 팀 보고가 안 올라왔습니다. 빨리 보고해주세요.' 단체 대화방을 나가면 또 강제로 초대해서 들어와 있고 들어가서 밤새도록 '딩동딩동' 하는 거예요. 그럼 그건 내가 회사를 떠난 게 아니죠."
연말에 시상을 위해 점수를 매긴다는 명목이었지만 직원들에겐 일거리가 늘어난 셈.
[이 00/00원예농협 직원]
"목요일 몇 시까지 마감이니까 그때까지 (사진이나 댓글을) 안 올리면 점수 차감. 야근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최근 전체 직원 160여 명 중 절반이 못 참겠다며 집단적으로 '스터디'를 탈퇴했습니다.
[최 00/00원예농협 직원]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하거든요,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런 삶이 됐을 때 나중에 직장에 나와서도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직원들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었을 뿐 강제성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00원예농협 관계자]
"처음부터 다 완벽하게 진행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정착돼 가는 과정 중의 하나였다고 보시면 될 것 같고.."
"7월 13일 수요일 두 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
퇴근 후에도 쉬지 못하는 사연은 특수한 일부의 얘기만은 아닙니다.
[박경림/<2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 진행자]
"일 끝나고 집에 와서 밥 먹으려 하면 꼭 전화 와서 내일 할 일 다 아는데 굳이 또 알려주는 직장 상사! 어휴~ 어디 갔니? 내 밥맛아."
[박경림/<2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 진행자]
"휴가 기간 거래처 담당자! '휴가 시라던데 죄송한데요.' 해놓고 한 시간을 상담했던 너! 진짜 화난다."
'업무 시간 외 메시지'가 주제였던 이날 방송에서 10분 사이에 수백 개의 다양한 하소연이 쏟아졌습니다.
메신저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친 경우도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신 모 씨.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원장이 퇴근 후 보내는 업무 지시 메시지 때문에 새벽까지 일해야 했습니다.
[신 00]
"보통 한 (밤) 9시쯤? (밤) 11시에 온 적도 있어요. '이런 주제를 가지고 강의(자료)를 만들어서 가지고 와라.' 하면 다음날 가서 검사를 맡아야 되는 거예요."
메시지를 무시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신 00]
"제가 확인을 안 하면 바로 전화가 오는 거예요. 어느 날 너무너무 많이 힘들어가지고 카톡을 탈퇴를 하고 아예 그냥 잠적을 했었어요. 그랬는데도 계속 연락이 오니까.."
3년째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됐습니다.
[신 00]
"(밤 9시) 그때쯤이면 가족들이 다 모이니까 얘기도 하고 쉬는 시간인데 (메시지를) 받는 순간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인데 화가 너무 많이 나서 막 주체를 할 수가 없어가지고 어느 날은 막 화나서 우는 거 있잖아요. 울어서 엄마는 놀래서 왜 그러냐고.."
결국, 체중이 급격히 늘고 몸이 상하는 걸 견디지 못해 휴직했다고 합니다.
[신 00]
"사먹지도 않던 초콜릿을 사서 먹기도 하고 단 걸로 (스트레스가) 많이 풀어지더라고요. 나는 벗어나고 싶은데 누군가 내 발목을 붙잡고 안 놔주는 그런 느낌이 드니까 (나 자신이) 되게 한심스럽고.."
2년 전 번역과 통역 전문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던 전 모 씨도 퇴근 후. 주말·휴가를 가리지 않는 업무 지시를 견디다 못해 1년 만에 사표를 냈습니다.
언제 어딜 가든 스마트폰 충전기에 보조 배터리,노트북까지 챙겨다니는 생활.
[전 00]
"(스마트폰에서 소리가 나면) 가슴이 왠지 막 두근두근 거리기도 하고 강박 관념이 생긴 거죠 (전화를) 안 받으면 불안하고.."
결국, 쉬는 날 외출조차 꺼리게 됐습니다.
[전 00]
"어차피 나가봐야 또 계속 연락받아야 되니까 나가기도 귀찮고 편하게 얘기도 못 하고 이러니까 굳이 그럴 바에는 안 나가고 말지 이렇게.."
[임세원 교수/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일의 시작만 있고 끝이 없다라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많죠. 무력해져 있죠. 에너지 수준이 굉장히 떨어져 있고 지쳐 있는 쉽게 말해서 배터리가 거의 다 방전돼버린 사람 같은 그런 모습인 거고.."
최근 실시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근무시간 외에 업무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87%, 즉 10명 중 9명이나 됐습니다.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고 싶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건데요.
아직 일부지만 자율적으로 개선해 나가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국내 한 대형 통신 회사.
올봄부터 밤 10시 이후에는 업무 전화나 메시지 전송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박지영 팀장/00 통신사]
"휴대폰으로 업무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아서 10시 이후에 특히 업무 지시나 이런 부분이 진행되면 보직을 해임하는 정도의 인사적인 조치까지 진행을 한다.."
삶과 일의 균형이 이뤄져야 업무 효율도 높아진다는 회사 방침에 따른 변화입니다.
[사내 방송]
"효율적으로 금일 업무를 마무리하시고 5시에 칼퇴(정시퇴근) 하시어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 달에 두 번은 전 직원이 모두 한 시간 일찍, 오후 5시에 퇴근을 합니다.
[백균영 과장/00 통신사]
"오늘은 빨리 가야되는 날이니까 빨리빨리 업무를 해야 돼 그러면서 효율적으로 사람들이 회의도 빨리 끝내고.."
독일정부는 이미 지난 2013년 업무 시간 이후엔 비상시가 아니면 상사가 직원에게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폭스바겐같은 기업은 노사협약을 맺고 근로시간 종료 30분 후엔 업무용 스마트폰의 이메일 기능이 멈추고 다음날 근무시간 30분 전이돼야 재가동되도록 했습니다.
BMW는 퇴근 후엔 공식적으로 휴대폰을 꺼도 됩니다.
[베른트 엑슈타인/BMW 대변인]
"직원들이 자유 시간에 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진정한 휴식은 직원들이 회사일에서 모든 신경을 끄고 의도적으로 연락이 불가능해야지만 가능합니다."
프랑스 정부 역시 최근 퇴근 시간 이후 상사의 휴대전화나 이메일을 받지 않아도 될 권리를 법으로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경우 업무 시간이 아닌 때에도 스마트 기기로 일하는 시간이 일주 일당 677분, 즉 11시간이 넘습니다.
국회에선 '퇴근 후 업무 전화.SNS 금지'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고용노동부도 경제 5단체와 함께 관련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영돈 국장/고용노동부 청년 여성 고용정책국]
"사실 강제로 하기보다는 자발성이 우러나와야 되고 또 서로 불편함이 없어야 되잖아요. 밑에서부터 자발성은 사실 힘든 것이고 CEO나 윗사람들이 관리자, 간부 중심으로 확산이 돼야죠."
하지만, 시민들은 '연락받지 않을 권리'가 구체적으로 제도화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반응입니다.
[이혜수]
"(회사에서) 워낙 위아래가 정확히 정해져 있기 때문에/상대가 듣기에는 얘가 나의 권위를 침해하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전문가들은 퇴근 후 이뤄지는 업무 지시가 근로 시간에 포함되는지부터 정부가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김기선 부연구위원/한국노동연구원]
"(스마트 기기를) 업무시간 외에도 활용하면 초기에는 생산성이 좀 더 오르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 이후에는 업무 스트레스가 훨씬 더 강화되고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거든요?"
발전하는 기술로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일상과 노동의 경계.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돈을 더 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사고방식으론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업무와 휴식을 구분하고 일과 가정을 균형 있게 양립할 수 있도록 직원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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