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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권희진 기자

모두가 위작이라는데.. "내 작품 맞다" 이우환 화백은 왜?

모두가 위작이라는데.. "내 작품 맞다" 이우환 화백은 왜?
입력 2016-07-25 10:21 | 수정 2016-07-2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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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 화가 가운에 세계에서 43번째로 높은 작품 값을 받는다는 이우환 화백.

    최근 경찰은 이 화백의 그림을 가짜로 그린 위조화가를 붙잡아 위작의 유통 경로와 자금흐름까지 파악했고 관련자들은 현재 구속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찰은 여러 가지 과학적 근거를 대며 위작임을 확신하고 있지만 정작 이 화백은 "내가 진품이라면 진품"이라며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는 고가 위작의 유통과 이를 판매하는 대형 화랑들의 이해관계가 상당 부분 개입됐을 거란 게 업계의 얘기입니다.

    작품의 진위를 결정하는 감평원 위원들이 그림을 파는 화랑의 대표들인 이상한 구조, 이를 믿고 거액의 그림을 샀다가 피해를 입는 사람들입니다.

    복마전 같은 미술계 위작 거래의 속사정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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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 화백의 78년 작품, '점으로부터'

    국내 최고의 미술품 경매사인 케이옥션에서 작년 12월, 5억 7천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최근 위작으로 판명돼 경찰이 압수했습니다.

    진품을 입증하는 감정서가 위조됐기 때문입니다.

    다른 그림의 감정번호를 도용한 어설픈 수법.

    [김 00/미술품 감정전문가]
    "진짜에는 감정서가 위조될 이유가 없어요. 아니 이게 진품인데 감정서를 가짜를 왜 그거 갖다 붙입니까."

    이 그림을 포함해 13점의 위작을 확인했다는 게 경찰의 발표.

    그런데 이 경찰발표가 엉터리라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이우환 화백, 본인이었습니다.

    [이우환 화백/6월26일]
    "이상한 사람들 말만 지금 믿고 있잖아요? 작가가, 작가가 기본 아닙니까."

    경찰이 미술시장에서 거래된 작품이 가짜임을 경찰이 수사를 통해 입증했데, 정작 누구보다 자기 작품의 저작권을 보호해야 할 화가는 이게 진짜라고 주장하는 이상한 상황.

    이우환 화백은 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걸까요?

    올해 여든 살인 이우환 화백.

    이 화백은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화가이자 조작 가로, 그의 작품은 현존하는 전 세계 작가 중에 43번째로 비싼 값에 팔립니다.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예술학과]
    "한국 현대미술의 틀, 위상을 부여해 준 핵심존재라고 말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2~3년 전쯤부터 화랑이 밀집한 서울 인사동을 중심으로 이 화백의 위작 150여 점이 은밀하게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이 화백의 위작을 만들고 유통시킨 혐의로 현 모 씨 등 3명을 구속했습니다.

    현 씨 등은 위작을 50점 넘게 만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김성운 계장/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위조범들의 자백을 확보했으며 그 자백을 뒷받침할 수 있는 모방증거 역시 확보했습니다."

    위작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2580은 감정에 참여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이들의 수법을 분석했습니다.

    경찰이 밝힌 이우환 화백의 위작들은 한 점에 수억 원을 호가하는 1978년과 79년 작품의 형태.

    30년 이상 된 그림처럼 보이려면 재료를 낡아 보이게 만드는 작업이 우선입니다.

    희석한 벽돌색 물감을 밝은 회색인 새 캔버스 천의 뒷면에 칠합니다.

    그러자 캔버스천이 마치 오랜 세월이 지나 먼지가 내려앉은 것처럼 어두운 색으로 변합니다.

    [최명윤/국제미술 과학연구소장]
    "완전히 수분을 날려보내고 마르게 되면 아까 그 색깔(위작의 색깔)과 거의 동일하게 나올 겁니다."

    실제로 1976년에 그려진 진품의 뒷면.

    현미경으로 보니, 40년 동안 쌓인 먼지들이 까만 점으로 보입니다.

    이번엔 낡은 것처럼 조작한 캔버스의 뒷면.

    먼지는 없고 군데군데 붉은 물감이 스며든 흔적이 보입니다.

    [최명윤/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
    "저거는 무기물들이 투입돼서 변한 거죠."

    낡은 것처럼 조작한 캔버스의 성분을 측정했더니 산화철의 성분이 급증했습니다.

    벽돌색을 내기 위한 물감의 주성분입니다.

    위작들의 캔버스 뒷면에선 이 성분이 다량 검출됐습니다.

    [최명윤/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
    "뭐냐하면 저 색깔을 내기 위해 철 성분이 들어가 있는 색소를 쓰고 있다."

    위작에 사용된 그림 틀.

    새로 만든 나무 틀에 담뱃불을 들이거나, 물감을 칠해 낡아 보이게 처리합니다.

    70년대 못을 사용하거나 아예 낡은 틀을 구해 물감을 칠한 캔버스 천을 씌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허술했습니다.

    낡아 보이기 위해 나무 틀에 칠한 아크릴릭 물감이 이음새 사이로 흘러들어 간 흔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낡은 틀을 고정하기 위해 70년대엔 없었던 알루미늄 타카핀을 박아 넣기도 했습니다.

    금세 알아볼 수 있는 초보 수준의 수법이라고 합니다.

    [최명윤/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
    "굉장히 솜씨가 상당히 뒤떨어지는 거죠."

    이 때문에 경찰과 전문가들은 압수한 그림 13점을 모두 위작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 가운데 3점은 실제로 12억 4천만 원에 팔렸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진품임을 확인하는 감정서를 발급하는 곳은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위작 가운데 2점에 감정평가원은 진품 감정서를 발급해줬습니다.

    이 감정서를 믿고 구매자는 한 점에 4억 원 이상의 거액을 주고 그림들을 산 겁니다.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관계자]
    "8번 중의 3번은 선생님께 보여드리지 않고 감정서가 나갔고요.."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은 어떤 곳일까.

    이곳의 법인등기서류를 보면, 공공기관이 아니라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6명의 사내 이사와 대표 이사 모두, 그림을 거래하는 화상, 즉 화랑 주인들입니다.

    경찰은 이들이 주식회사 감정평가원의 주주이기도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속한 감정위원들도 대부분 미술품을 거래하는 화랑 주인들로 구성됩니다.

    [장준영/미술시장 분석가]
    "어떤 학문적인 바탕 위에서 연구하고 또 그것에 다각적인 측면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화랑 주인들에 의해 안목에 의해 진품이 가짜로 되기도 하고 가짜가 진품이 되는 그런 현실입니다."

    다시 말해 미술품을 거래해 돈을 버는 화상들이 미술품의 진위 여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예술학과]
    "화랑, 화상들이 자신들이 다루는 작품들을 자신들이 감정한다고 하는 건 정말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꼴이 되기 때문에.."

    문제의 그림들을 진품이라고 감정했던 감정위원들은 경찰 조사에서는 위작이라고 자신들의 내렸던 감정 결과를 번복했습니다.

    압수된 그림을 본 뒤, 이 화백은 한풀 꺾였습니다.

    [이우환 화백/6월27일]
    "내일모레 다시 올 거에요. 내가 좀 여러 가지 다시 확인해야 할 점이 있어요."

    그러나 하루 뒤, 다시 위작은 한 점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우환 화백/6월30일 기자회견]
    "13점 그림들은 저만의 호흡, 리듬과 색채 쓰는 방법, 그린 작품으로서 작가인 제가 눈으로 확인한 바 틀림없는 제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이 화백이 경찰과 대립하는 이유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가운데, 2580은 상당수의 위작이 더 있을 수 있다는 정황을 취재 과정에서 확인했습니다.

    지난 2012년을 전후해 이우환 화백의 작품이라며 감정을 받고 싶다는 요청이 갑자기 늘어납니다.

    모두 27점.

    한 점에 4~5억 원을 호가하는 그림들이지만 대부분 출처를 알 수 없는 의심스러운 그림들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관계자]
    "저희가 소장경위 요청을 해도 그 사람들은 너희가 무슨 경찰이냐 그런 것들을 요청하느냐 의뢰됐던 작품들은 출처가 나왔던 게 없어서.."

    [이 00/전 감정평가위원]
    "아 이건 아닌데, 이건 30년 된 게 아닌데. 그런 것들이 자꾸 눈에 띄는 거에요."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은 그러나 27점의 그림을 모두 진품으로 판정했습니다.

    이우환 화백이 자기작품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관계자]
    "우리가 그동안 봤던 선생님 작품하고는 조금 상이한 부분이 있다라고 해서 선생님께 여쭤봤는데 선생님께서 자신의 작품이 맞으시다고 답변을 주셨고.."

    그러나 이 그림들의 위작 가능성은 계속 제기됐습니다.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관계자]
    "감정을 의뢰했던 모든 의뢰인들에게 연락해서 재감정을 할 테니 작품 다시 가져오라고 통보를 했습니다. (근데 안 가져왔군요.)예 그중에 재감정이 의뢰된 게 단 한 점도 없었습니다."

    이 27점 가운데 2점은 이번에 위작으로 판명돼 경찰에 압수됐습니다.

    나머지 25점은 진품이라는 감정서를 달고 이미 유통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우환 화백의 그림 가운데 일련번호가 겹치는 그림들까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점으로부터 작품번호 78055.

    선으로부터 작품번호 78055.

    다른 그림인데 같은 작품번호, 심지어 서명도 다릅니다.

    작품 번호 790147은 심지어 3작 품에서 나타납니다.

    이렇게 작품번호가 겹치는 경우는 확인된 것만 6건입니다.

    [최명윤/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
    "검사를 다시 해야 되는 그림들이 50%는 넘지 않나라고 봅니다. 제가 본 그림 중에.."

    이에 대해 이우환 화백은 자신의 그림에 다른 사람이 서명하거나 작품번호를 매기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우환 화백/6월30일 기자회견]
    "어떤 건 화랑이 써서 붙인 것도 있어요. 또 사실은 번호뿐만 아니라 사인도 나중에 한 것도 있어요. 그리고 번호가 두 번 세 번 겹친 게 꽤 있어요."

    이번 논란은 13점의 위작 여부를 확인하는 선에서 끝나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경찰은 위조범뿐 아니라 그동안 이우환 화백의 그림이 거래된 내역에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고 보고 화랑가로까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우환 화백은 대부분의 그림을 H 화랑을 통해 유통시켰습니다.

    게다가 지난 2013년엔, 이 H 화랑에 자기 작품을 감정할 수 있는 권한까지 위임하는 유례없는 관계로까지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H 화랑은 경찰에 압수된 위작을 진품으로 판정했고, 이 그림은 K 화랑을 통해 4억 원 정도에 팔렸습니다.

    K 화랑은 경찰에 적발된 위작 6점을 거래한 곳입니다.

    그런데 H 화랑이 문제의 K 화랑에서 50억 원 상당의 그림을 사들여 유통시킨 것이 드러났고, 경찰은 이 그림들 역시 위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작이 확인됐을 때 이 화백과 H 화랑은 동시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예술학과]
    "가짜라고 자기가 말하는 순간 그 화랑을 통해 판매됐던 모든 작품들을 화랑은 다 반환해 줘야 되잖아요. 생각해보세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우환 선생님 작품을 팔았겠어요? 수십억 수백억 되겠죠. 감당할 수 없겠죠."

    감정서가 위조된 그림을 경매에 올려 5억 7천만 원에 낙찰되게 한 케이옥션과 H 화랑은 같은 지주회사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실상 한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문에 경찰은 감정서가 위조된 것을 알고도 케이옥션이 위작을 경매에 부쳤을 가능성도 조사할 계획입니다.

    H 화랑과 케이옥션 측은 어떤 입장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H 화랑 직원]
    "대표님 지금 지방 출장 가셨다고 안 계신대요."

    유명화가의 위작을 구하는 것은 지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00 화랑]
    "더러는 구할 수 있지 김환기 것도 있고.. 누구 뭐 와갖고 50호짜리 이우환 작품을 팔았다고 합디다."

    이런 위작들이 화랑들을 거쳐 진품 감정서를 받기만 한다면 수억 원에도 거래될 수 있습니다.

    [00 화랑]
    "6백만 원 주고 현00씨(위조피의자)한테 콜렉터가 샀겠어요? 어떤 작품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거죠. 히스토리도 만들고. 2315 화랑들이 장난질하고 있다는 거지요."

    이런 구조 속에서 위작 논란은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작가의 부인 최성숙 문신미술관 관장은 열흘 전 서울옥션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위작인 것도 모르고 작가의 작품이라며 전시를 하고 책자까지 만들어 경매에 내놔 작가의 명예를 떨어뜨렸다는 것입니다.

    [최성숙/문신미술관 명예관장]
    "(위작이) 책에 실리고 프리뷰 전시회 했고 그게 완전히 문신의 예술을 땅에 떨어뜨린 거에요."

    서울옥션 측은 2차례 감정 결과 진품이라고 판정했지만, 작가 측의 요구로 경매 출품을 보류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논란에 휩싸인 이우환 화백의 그림 13점은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됐습니다.

    과학적인 수사로 위작임이 확인되고, 그 위작을 거액을 주고 산 사람이 있는데, 내 작품 내 눈으로 보면 안다며 진짜라고
    밀어붙이는 거장.

    이 희한한 소동 속에서, 위조범이 활개치고, 또 작품의 감정과 거래까지 몇몇 화랑들 손에 좌지우지되는 미술 시장의 요지경 같은 난맥상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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