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공윤선 기자
공윤선 기자
따스한 눈으로 세상을 보다
따스한 눈으로 세상을 보다
입력
2016-08-01 09:47
|
수정 2016-08-0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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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고용 실태가 방송된 이후 주문이 늘어 더 많은 장애인들을 고용하게 됐다는 사회적 기업, 구두닦이 출신 변호사,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그래도 세상을 살 만한 건 나보다 주변을 더 살피고 최선을 다해 삶을 마주하는 사람들 덕분입니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2580이 다시 만났습니다.
------------------------------------
세상 어딘가에선 눈 돌리고 싶은 사건이 일어나고 누군가는 억울한 일을 당해왔겠지만 우리 사회 전체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실천한 많은 사람들의 힘일 것이고, 2580도 그런 변화에 작지만 힘을 보태려 애써왔습니다.
<303만 원의 기적/2016.02.28>
물건 배송, 제본에 꽃꽂이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이 회사의 직원 대부분은 중증장애로 분류되는 발달장애인입니다.
회사 이름은 베어 베터, 곰처럼 느리지만 성실하고 꼼꼼한 발달장애인을 최대한 많이 고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착한 사회적 기업입니다.
[이진희/베어베터 공동대표]
"졸업하면 갈 데 없다. 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셨어요. 제가 기업에 있었던 사람 입장에서 경쟁적인 회사에서는 이 사람들을 뽑을 수가 없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
일거리가 늘어 303만 원의 매출이 증가할 때마다 발달장애인 직원 한 명씩을 더 고용할 계획이라는 베어베터.
기적은 이루어졌습니다.
2580 방송 5개월이 지난 현재 베어베터는 40명의 장애인들을 더 채용했습니다.
[이진희/베어베터 공동대표]
"바로 다음 날부터 엄청나게 전화가 폭주했어요. 저희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신규로 계약한 회사가 20여 개가 넘어요.(직원이)연말까지 200명 넘을 거 같습니다."
장애인이 일자리를 구하긴 여전히 어렵지만 지난 10년간 취업자 수는 꾸준히 늘어왔고, 이 회사처럼 장애인 고용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도 5배 정도 늘었습니다.
[이한나/베어베터 신규 사원]
"즐겁고, 전철 타는 것도 재밌고 배송 나가서 이렇게 사람들한테 물건 주는 것도 즐겁고 재밌습니다."
<생리-'금기'와 '편견'/2002.9월>
'생리대' 문제를 방송이 다루는 것만으로도 파격이었습니다.
해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생리대만 30억 개.
쌀이나 연탄처럼 여성들의 필수품인 생리대도 부가세를 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최명숙/여성민우회 사무처장]
"생리를 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절대적으로 필수용품이다 해서 절대필수품이니까 면세돼야 한다.."
2580의 보도 이후 우리 사회는 생리대 부가세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4년엔 실제로 생리대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없앴습니다.
<신문지로 버텼어요./2016년 6월>
하지만, 최근에도 비싼 생리대 가격으로 한숨 쉬는 여학생들의 사연은 여전했습니다.
부가세는 폐지됐지만 업체들이 가격을 계속 올려 왔기 때문입니다.
[김00]
"진짜 없으니까 신문지라도 사용해보자 해서 신문지를 써본 거죠. 신문지를 부드럽게 해서 뭉친 다음에 잉크 부분에 궁둥이가 닿지 않도록 휴지랑 막 감싸서.."
각종 보도가 이어지면서 각계의 기부행렬이 이어졌고 국회와 지자체 등에서는 생리대 무료 지원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얼굴없는 고객님/2009.3월>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내가 왜 너희들한테 전화한 줄 알아? 왜 전화한 줄 아냐고..XXX아!! 할 말 있으면 해봐. 이 XXX야."
[이00/상담사]
"소화가 안 되고 토하기도 하고 처음에 콜 하게 되면 속상한 것 때문에 밥을 걸러요. 제일 문제는 생리불순.."
욕설과 음담패설을 서슴지 않는 이른바 진상 고객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콜센터 직원들의 실태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2011.12월>
2년 뒤 2580은 다시 이들 감정노동자들을 찾았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다산 콜센터..) 누구야 이 000 들아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디 000들이 교육을 시키는 거야.."
지속적인 문제제기.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콜센터 업무가 중요한 홈쇼핑 등에서도 그저 참을 것이 아니라 악성 전화의 경우 통화를 먼저 종료하고.
"야 XXX년아.. 이것들이 계속 말장난하고 있어.. 야 XXX 년아."
"고객님 욕설로 일관하시면 통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전화를 먼저 끊겠습니다."
10분 동안 휴식을 취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습니다.
[김희경/CJ홈쇼핑 상담사]
"옛날 같은 경우에는 무조건 참고 저희가 버티는 게 능사였는데. 노력들을 많이 해주셔서 옛날보다는 회사생활을 하는 게 재미지구나."
또, 상담원이 받는 스트레스를 측정, 실질적으로 줄여 줄 수 있는 기술을 개발 해 활용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장진호 과장/SK텔링크]
"(상담원이)스트레스를 받으면 백색 소음을 이제 저희가 의식하지 못하게 (헤드폰으로) 쏴주고 있는데. 스트레스가 60% 정도 떨어지는 걸로 데이터가 나와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주인공은 뭐니뭐니해도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힘들지만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간 사람들, 그리고 자신보다 더 힘든 주변을 살피는 사람들.
삶 그 자체로 감동을 전한, 2580이 만난 사람들입니다.
<'뻔뻔하게 살아라'/2003.1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이종삼씨가 스쿠터를 타고 도착한 곳은 경기도 동두천 시내의 한 어린이집.
2시간 가까운 씨름 끝에 고장 난 컴퓨터를 고쳐줍니다.
"지금도 아프신 데도 잘 고치시잖아..아저씨한테 한번 뽀뽀해줘 고맙습니다."
어린이집을 나와 찾은 곳은 사고로 척추가 다쳐 온몸이 마비된 박재철 씨 집입니다.
[이종삼]
"날 봐, 날 보면 모르겠냐, 변해야 돼 이렇게 있으면 아무도 안 놀아줘.."
그 자신도 장애인이지만 종삼씨가 돌보고 있는 장애인과 소년소녀 가장은 수십 명에 이릅니다.
동화 속 키다리 아저씨처럼 그는 주의에 사랑을 뿌리고 희망을 전합니다.
<내 아이도 아닌데../1998.9월>
서울 안암동, 지하 13평짜리 조그만 연립주택에 사는 오정희 씨는 세 아이를 키웁니다.
자신의 어린 아들딸과 4살 형진이까지 부모의 이혼 뒤 형편이 좋지 않은 형진이의 아빠 대신 아무 혈연이 없는 정희씨가
수양부모를 자처하고 나선 겁니다.
[오정희]
"저희들 같은 경우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사실 소득으로 치면은 도시 하층에 속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라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지 않으면 거의 저희들이 사회에 봉사할 길이 없어요."
오정희 씨는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각 가정에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정희]
"지금 수양부모 되신 분 중에 21분이 계시는데 정말 가진 부부는 두어 분 정도밖에 안 돼요. 나머지는 다 정말 평범하고 저희들 같이 이렇게 살아요."
<다시 부르는 노래/1994.10월>
가난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을 떠난 서정암 씨가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의 구두 닦는 곳이었습니다.
좁은 상자 안에서 종일 구두를 닦으면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쉬지 않았습니다.
8년 만에 서울대 합격, 그리고 7년 뒤엔 사법시험의 문턱도 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잘 계셨어요?"
22년 만에 다시 만난 서정암 씨.
10년 동안의 판사생활을 거쳐 지난 5월엔 동료 변호사들과 로펌을 세워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삶입니다.
[서정암]
"그동안 제가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어떤 보답이 아닌가 싶어서 제 스스로도 만족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단했던 시절, 그 덕분에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하나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는 법조인이 됐다고 말합니다.
[서정암]
"제가 어려운 삶을 살다 보니까 다른 사람 말을 듣는 데는 좀 더 귀를 기울였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 서서 이제 많이 판결을 하다 보니까 관대한 판사였다는 그런 평도 좀 들었거든요. 형사 판결할 때.."
자신처럼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할 위기에 있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습니다.
23년 전 인간 승리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주목을 받았던 그는 다시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서정암]
"저도 사실은 거의 막바지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던 공부거든요. 배수진이라고 하는 데 그런 마음 가지고 뭐든지 하면 설정했던 목표만큼은 아니어도 거기에 다가설 수 있는 성과는 얻지. 않을까?"
<희아의 네 손가락/2003.11월>
무릎까지만 있는 다리, 손가락은 두 개씩.
희아에겐 불가능에 가까웠던 피아노 연주였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7살 유치원 때 참가한 전국학생연주대회에서 당당히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이희아]
"채점하신 교수님이 엘리베이터에서 심사 마치고 가는데 (제가) 손가락이 4개인 줄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로 감동을 전한 희아.
피아노실력도 실력이지만 밝고 담대한 희아의 모습은 많은 이에게 흐뭇함을 선사했습니다.
[이희아]
"어떤 애가 '숏다리'라고 놀렸어요, 얼마나 빨리 뛰어가는지..쏜살같이 뛰어가더니 애를 막 때렸어요. (숏다리 괴물이 달려오니까)"
당시 17살에서 이제는 30대 숙녀가 된 희아씨를 2580이 13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전국을 돌며 연주회를 했지만, 지금은 모든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머리에 다발성 혈종이 생겨 장시간 연주하는데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희아]
"오래 차를 타고 그러면 뇌 혈종 자체가 머리가 어지러우면서 구토 증세도 나고 그래서 공연도 좀 쉬면서 그냥 좀 즐기면서 살려고요."
언제 다시 연주회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피아노로 유명해지기 전처럼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희아: 네 안녕하세요. (어릴 때부터 팬인데, 사진 한 장만 좀 찍어주세요.) 예."
[이나현]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하시고 너무 좋아해요."
희아의 연주를 보며 희망과 용기를 얻었던 사람들, 이제 이들의 응원이 그에게 다시 힘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이희아]
"여기 시청하시는 분들이 저뿐만 아니고 MBC에 나왔던 많은 장애인분들 생각해주시면서 많이 장애인들이 살아가는 삶 많이 응원해주시고 하셨으면.."
2580이 천 회를 이어오는 동안 우리 사회는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 속에서도 개선하고, 성장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윤인진 교수/고려대 사회학과]
"한국인들의 성격, 또 한국 사회의 특징들이 정말로 좋은 방향으로 이게 표출이 되면 전 굉장히 좋은 성과를 단기간에 이룰 수도 있다. 그간 우리 한국사회의 변화의 큰 축은 '무엇이 기본적인 하나의 인간의 권리'인가에 대한
인식이 저는 확대되어 온 거라고 생각을 하고.."
소득 성장, 수출확대 같은 물질적인 발전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타인의 생명을 위해 사후에 자신의 몸을 기증하겠다고 서약하는 사람들이 15년 전보다.
스무 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자원봉사 참가자 수 역시 지난 2003년에 비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인정, 세상을 데우는 힘이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임신혁 실장/초록우산 어린이재단]
"IMF 때 기업후원이나 고액후원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많이 줄었거든요, 그런데 깜짝 놀란 것이 개인 기부자들은 늘었어요. 이분들이 한결 같이 하시는 말씀은 나도 이렇게 힘든데 어려운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겠느냐."
더 행복하고, 더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자 2580 역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고, 여전히 미진하다는 안팎의 지적과 충고에 2580은 겸허히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윤혜상/여성 성폭력 상담소]
"피해자가 또 한 번의 2차 피해를 경험하지 않도록 성폭력이나 성매매나 가정폭력, 이러한 사례를 다를 때 너무 구체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나영 교수/중앙대]
"주류에서 배제된 사람,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 사회적 약자들 그리고 꼭 국내의 문제 뿐 아니라 국외에 눈을 돌려서 글로벌한 이슈에도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나은수/주부]
"무거운 문제, 다루기 힘든 것조차도 더 매섭게 다루면 오히려 시청자들은 그런 걸 보고서 알 권리를 충족을 하는 거니까."
[하지현 교수/건대 정신건강의학과]
"6개월, 1년 후에 그 사건이 결국은 어떻게 해결이 됐는지 내지는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내지는 결국은 구조적인 시스템이 문제였다면 시스템 변화를 위해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얘기들을 애프서 서비스 입장에서 해주면 좋지 않을까?"
2580이 1천 회동 안전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절대 밝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주어진 삶을 정직히, 최선을 다해 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갈 '희망가'가 됐습니다.
원칙과 상식이 지켜지는 사회, 약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 사람 향기가 진하게 느껴지는 사회를 위해 2580은 더욱 진지하게 질문하고 깊이 고민하겠습니다.
그래도 세상을 살 만한 건 나보다 주변을 더 살피고 최선을 다해 삶을 마주하는 사람들 덕분입니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2580이 다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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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딘가에선 눈 돌리고 싶은 사건이 일어나고 누군가는 억울한 일을 당해왔겠지만 우리 사회 전체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실천한 많은 사람들의 힘일 것이고, 2580도 그런 변화에 작지만 힘을 보태려 애써왔습니다.
<303만 원의 기적/2016.02.28>
물건 배송, 제본에 꽃꽂이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이 회사의 직원 대부분은 중증장애로 분류되는 발달장애인입니다.
회사 이름은 베어 베터, 곰처럼 느리지만 성실하고 꼼꼼한 발달장애인을 최대한 많이 고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착한 사회적 기업입니다.
[이진희/베어베터 공동대표]
"졸업하면 갈 데 없다. 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셨어요. 제가 기업에 있었던 사람 입장에서 경쟁적인 회사에서는 이 사람들을 뽑을 수가 없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
일거리가 늘어 303만 원의 매출이 증가할 때마다 발달장애인 직원 한 명씩을 더 고용할 계획이라는 베어베터.
기적은 이루어졌습니다.
2580 방송 5개월이 지난 현재 베어베터는 40명의 장애인들을 더 채용했습니다.
[이진희/베어베터 공동대표]
"바로 다음 날부터 엄청나게 전화가 폭주했어요. 저희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신규로 계약한 회사가 20여 개가 넘어요.(직원이)연말까지 200명 넘을 거 같습니다."
장애인이 일자리를 구하긴 여전히 어렵지만 지난 10년간 취업자 수는 꾸준히 늘어왔고, 이 회사처럼 장애인 고용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도 5배 정도 늘었습니다.
[이한나/베어베터 신규 사원]
"즐겁고, 전철 타는 것도 재밌고 배송 나가서 이렇게 사람들한테 물건 주는 것도 즐겁고 재밌습니다."
<생리-'금기'와 '편견'/2002.9월>
'생리대' 문제를 방송이 다루는 것만으로도 파격이었습니다.
해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생리대만 30억 개.
쌀이나 연탄처럼 여성들의 필수품인 생리대도 부가세를 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최명숙/여성민우회 사무처장]
"생리를 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절대적으로 필수용품이다 해서 절대필수품이니까 면세돼야 한다.."
2580의 보도 이후 우리 사회는 생리대 부가세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4년엔 실제로 생리대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없앴습니다.
<신문지로 버텼어요./2016년 6월>
하지만, 최근에도 비싼 생리대 가격으로 한숨 쉬는 여학생들의 사연은 여전했습니다.
부가세는 폐지됐지만 업체들이 가격을 계속 올려 왔기 때문입니다.
[김00]
"진짜 없으니까 신문지라도 사용해보자 해서 신문지를 써본 거죠. 신문지를 부드럽게 해서 뭉친 다음에 잉크 부분에 궁둥이가 닿지 않도록 휴지랑 막 감싸서.."
각종 보도가 이어지면서 각계의 기부행렬이 이어졌고 국회와 지자체 등에서는 생리대 무료 지원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얼굴없는 고객님/2009.3월>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내가 왜 너희들한테 전화한 줄 알아? 왜 전화한 줄 아냐고..XXX아!! 할 말 있으면 해봐. 이 XXX야."
[이00/상담사]
"소화가 안 되고 토하기도 하고 처음에 콜 하게 되면 속상한 것 때문에 밥을 걸러요. 제일 문제는 생리불순.."
욕설과 음담패설을 서슴지 않는 이른바 진상 고객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콜센터 직원들의 실태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2011.12월>
2년 뒤 2580은 다시 이들 감정노동자들을 찾았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다산 콜센터..) 누구야 이 000 들아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디 000들이 교육을 시키는 거야.."
지속적인 문제제기.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콜센터 업무가 중요한 홈쇼핑 등에서도 그저 참을 것이 아니라 악성 전화의 경우 통화를 먼저 종료하고.
"야 XXX년아.. 이것들이 계속 말장난하고 있어.. 야 XXX 년아."
"고객님 욕설로 일관하시면 통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전화를 먼저 끊겠습니다."
10분 동안 휴식을 취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습니다.
[김희경/CJ홈쇼핑 상담사]
"옛날 같은 경우에는 무조건 참고 저희가 버티는 게 능사였는데. 노력들을 많이 해주셔서 옛날보다는 회사생활을 하는 게 재미지구나."
또, 상담원이 받는 스트레스를 측정, 실질적으로 줄여 줄 수 있는 기술을 개발 해 활용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장진호 과장/SK텔링크]
"(상담원이)스트레스를 받으면 백색 소음을 이제 저희가 의식하지 못하게 (헤드폰으로) 쏴주고 있는데. 스트레스가 60% 정도 떨어지는 걸로 데이터가 나와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주인공은 뭐니뭐니해도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힘들지만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간 사람들, 그리고 자신보다 더 힘든 주변을 살피는 사람들.
삶 그 자체로 감동을 전한, 2580이 만난 사람들입니다.
<'뻔뻔하게 살아라'/2003.1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이종삼씨가 스쿠터를 타고 도착한 곳은 경기도 동두천 시내의 한 어린이집.
2시간 가까운 씨름 끝에 고장 난 컴퓨터를 고쳐줍니다.
"지금도 아프신 데도 잘 고치시잖아..아저씨한테 한번 뽀뽀해줘 고맙습니다."
어린이집을 나와 찾은 곳은 사고로 척추가 다쳐 온몸이 마비된 박재철 씨 집입니다.
[이종삼]
"날 봐, 날 보면 모르겠냐, 변해야 돼 이렇게 있으면 아무도 안 놀아줘.."
그 자신도 장애인이지만 종삼씨가 돌보고 있는 장애인과 소년소녀 가장은 수십 명에 이릅니다.
동화 속 키다리 아저씨처럼 그는 주의에 사랑을 뿌리고 희망을 전합니다.
<내 아이도 아닌데../1998.9월>
서울 안암동, 지하 13평짜리 조그만 연립주택에 사는 오정희 씨는 세 아이를 키웁니다.
자신의 어린 아들딸과 4살 형진이까지 부모의 이혼 뒤 형편이 좋지 않은 형진이의 아빠 대신 아무 혈연이 없는 정희씨가
수양부모를 자처하고 나선 겁니다.
[오정희]
"저희들 같은 경우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사실 소득으로 치면은 도시 하층에 속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라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지 않으면 거의 저희들이 사회에 봉사할 길이 없어요."
오정희 씨는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각 가정에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정희]
"지금 수양부모 되신 분 중에 21분이 계시는데 정말 가진 부부는 두어 분 정도밖에 안 돼요. 나머지는 다 정말 평범하고 저희들 같이 이렇게 살아요."
<다시 부르는 노래/1994.10월>
가난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을 떠난 서정암 씨가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의 구두 닦는 곳이었습니다.
좁은 상자 안에서 종일 구두를 닦으면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쉬지 않았습니다.
8년 만에 서울대 합격, 그리고 7년 뒤엔 사법시험의 문턱도 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잘 계셨어요?"
22년 만에 다시 만난 서정암 씨.
10년 동안의 판사생활을 거쳐 지난 5월엔 동료 변호사들과 로펌을 세워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삶입니다.
[서정암]
"그동안 제가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어떤 보답이 아닌가 싶어서 제 스스로도 만족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단했던 시절, 그 덕분에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하나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는 법조인이 됐다고 말합니다.
[서정암]
"제가 어려운 삶을 살다 보니까 다른 사람 말을 듣는 데는 좀 더 귀를 기울였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 서서 이제 많이 판결을 하다 보니까 관대한 판사였다는 그런 평도 좀 들었거든요. 형사 판결할 때.."
자신처럼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할 위기에 있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습니다.
23년 전 인간 승리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주목을 받았던 그는 다시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서정암]
"저도 사실은 거의 막바지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던 공부거든요. 배수진이라고 하는 데 그런 마음 가지고 뭐든지 하면 설정했던 목표만큼은 아니어도 거기에 다가설 수 있는 성과는 얻지. 않을까?"
<희아의 네 손가락/2003.11월>
무릎까지만 있는 다리, 손가락은 두 개씩.
희아에겐 불가능에 가까웠던 피아노 연주였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7살 유치원 때 참가한 전국학생연주대회에서 당당히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이희아]
"채점하신 교수님이 엘리베이터에서 심사 마치고 가는데 (제가) 손가락이 4개인 줄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로 감동을 전한 희아.
피아노실력도 실력이지만 밝고 담대한 희아의 모습은 많은 이에게 흐뭇함을 선사했습니다.
[이희아]
"어떤 애가 '숏다리'라고 놀렸어요, 얼마나 빨리 뛰어가는지..쏜살같이 뛰어가더니 애를 막 때렸어요. (숏다리 괴물이 달려오니까)"
당시 17살에서 이제는 30대 숙녀가 된 희아씨를 2580이 13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전국을 돌며 연주회를 했지만, 지금은 모든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머리에 다발성 혈종이 생겨 장시간 연주하는데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희아]
"오래 차를 타고 그러면 뇌 혈종 자체가 머리가 어지러우면서 구토 증세도 나고 그래서 공연도 좀 쉬면서 그냥 좀 즐기면서 살려고요."
언제 다시 연주회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피아노로 유명해지기 전처럼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희아: 네 안녕하세요. (어릴 때부터 팬인데, 사진 한 장만 좀 찍어주세요.) 예."
[이나현]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하시고 너무 좋아해요."
희아의 연주를 보며 희망과 용기를 얻었던 사람들, 이제 이들의 응원이 그에게 다시 힘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이희아]
"여기 시청하시는 분들이 저뿐만 아니고 MBC에 나왔던 많은 장애인분들 생각해주시면서 많이 장애인들이 살아가는 삶 많이 응원해주시고 하셨으면.."
2580이 천 회를 이어오는 동안 우리 사회는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 속에서도 개선하고, 성장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윤인진 교수/고려대 사회학과]
"한국인들의 성격, 또 한국 사회의 특징들이 정말로 좋은 방향으로 이게 표출이 되면 전 굉장히 좋은 성과를 단기간에 이룰 수도 있다. 그간 우리 한국사회의 변화의 큰 축은 '무엇이 기본적인 하나의 인간의 권리'인가에 대한
인식이 저는 확대되어 온 거라고 생각을 하고.."
소득 성장, 수출확대 같은 물질적인 발전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타인의 생명을 위해 사후에 자신의 몸을 기증하겠다고 서약하는 사람들이 15년 전보다.
스무 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자원봉사 참가자 수 역시 지난 2003년에 비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인정, 세상을 데우는 힘이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임신혁 실장/초록우산 어린이재단]
"IMF 때 기업후원이나 고액후원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많이 줄었거든요, 그런데 깜짝 놀란 것이 개인 기부자들은 늘었어요. 이분들이 한결 같이 하시는 말씀은 나도 이렇게 힘든데 어려운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겠느냐."
더 행복하고, 더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자 2580 역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고, 여전히 미진하다는 안팎의 지적과 충고에 2580은 겸허히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윤혜상/여성 성폭력 상담소]
"피해자가 또 한 번의 2차 피해를 경험하지 않도록 성폭력이나 성매매나 가정폭력, 이러한 사례를 다를 때 너무 구체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나영 교수/중앙대]
"주류에서 배제된 사람,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 사회적 약자들 그리고 꼭 국내의 문제 뿐 아니라 국외에 눈을 돌려서 글로벌한 이슈에도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나은수/주부]
"무거운 문제, 다루기 힘든 것조차도 더 매섭게 다루면 오히려 시청자들은 그런 걸 보고서 알 권리를 충족을 하는 거니까."
[하지현 교수/건대 정신건강의학과]
"6개월, 1년 후에 그 사건이 결국은 어떻게 해결이 됐는지 내지는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내지는 결국은 구조적인 시스템이 문제였다면 시스템 변화를 위해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얘기들을 애프서 서비스 입장에서 해주면 좋지 않을까?"
2580이 1천 회동 안전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절대 밝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주어진 삶을 정직히, 최선을 다해 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갈 '희망가'가 됐습니다.
원칙과 상식이 지켜지는 사회, 약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 사람 향기가 진하게 느껴지는 사회를 위해 2580은 더욱 진지하게 질문하고 깊이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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