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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권희진

그날, 분만실에서 무슨 일이...

그날, 분만실에서 무슨 일이...
입력 2016-08-29 11:08 | 수정 2016-08-30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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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하던 산모가 분만실에 들어간 지 2시간 만에 사망했습니다.

    병원에서는 급격히 산모의 상태가 나빠져 마취 없이 응급 제왕절개수술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부검 결과, 진료기록에 없는 '프로포폴'이 검출됐고, 당시 경찰에 제출된 두 번의 진료기록이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의사는 급박한 상황에서 기억이 오락가락 한 것이라는데요.

    결국, 국과수는 사인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4년 만에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그날 분만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창백한 얼굴, 마른 나뭇가지처럼 가늘고 힘없는 팔다리.

    촛점없는 눈동자와 얼굴의 미세한 움직임만이 4살 유환이의 생명을 증명할 뿐입니다.

    뇌조직의 상당 부분이 괴사한, 저산소성 뇌손상.

    [현병철/故박지연 씨 남편]
    "거의 식물인간이죠. 먹지도 못하고 눈도 못 마주치고 귀도 듣지도 못하고.."

    위장을 통해 공급되는 우유로 가느다란 생명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태가 나아질 가능성은 없습니다.

    [현병철/故박지연 씨 남편]
    "유환아.."

    엄마의 뱃속에서 유환이는 내내 건강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분만 도중 갑자기 목숨을 잃었고, 산소 공급이 끊어진 채 유환이는 세상에 나왔습니다.

    [현병철/故박지연 씨 남편]
    "조금만 더 조치만 빨랐더라면..지금 와서 그게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지금 와서. 애기 건강하니까 위안 삼으래요. 이게 건강한 겁니까."

    병원 측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했고, 이 모든 불행은 고스란히 유가족들의 몫이 됐습니다.

    첫 아이처럼 유환이도 자연분만으로 낳을 예정이었던 엄마는 분만실에 걸어들어갈 때만 해도 건강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불과 30분도 안돼 위급한 상태에 빠져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상하게도 병원 측은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보호자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고, 산모의 사망도 1시간 반 동안이나 숨겼습니다.

    의혹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도대체 그날 분만실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지난 2012년 2월 1일 저녁 7시 40분, 출산 기미를 느낀 산모 박 모 씨가 야근 중인 남편 대신 시아주버니와 함께 병원에 걸어들어왔습니다.

    9시 21분, 당직 의사 이 모씨가 옷을 갈아입고 나갔고, 9시 34분, 산모는 걸어서 수술실로 이동합니다.

    9시 36분이 되자 외출했던 당직 의사가 병원 1층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합니다.

    9시 46분, 간호조무사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현기웅/故박지연 씨 유가족]
    "제가 불안했어요. 그래서 저희 여동생한테 전화를 했었죠. 좀 느낌이 이상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병원 측은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현기웅/故박지연 씨 유가족]
    "걱정하지 마시라고 아무 일 없다고 산모 다 건강하다고.."

    한 시간쯤 지난 10시 53분, 의료진은 아기가 태어났다고 알려줬습니다.

    이상하게도 아기를 제대로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현기웅/故박지연 씨 유가족]
    "그냥 들어갔어요. 이렇게 해가지고 왜 안보여주냐. 야 이상하다."

    11시, 남편 현병철 씨가 병원에 도착했지만 이 때까지도 병원 측은 산모의 상태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현병철/故박지연 씨 남편]
    "산모는 괜찮냐. 의사 나오면 얘기해줄거다. 내가 왔을 때도 아무런 고지는 없어요."

    그러던 11시 50분, 퇴근했던 원장이 갑자기 병원에 나타나 1시간 반 전인 10시 반에 산모가 이미 사망했다고 말했습니다.

    [산모 사망 직후 수술실 녹취]
    "(아마 산모가 뇌출혈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무슨 소리 하는거에요. 건강했는데 (진통이 오면 막 힘주면서 피가 막 올라가니까 압력이) 아무 얘기 안했잖아요. 안하셨어요. (그러니깐 저는 안했죠) 이 사람들 이상한 사람이네."

    복부가 절개된 산모의 시신과 수술대 주변은 깨끗이 닦아낸 상태였습니다.

    [현기웅/故박지연 씨 유가족]
    "수술실에 갔더니 깨끗해요. 여기 환자도 피가 하나도 안묻어 있어요. 답답한 거죠. 그 시간에 다 그걸 처리를 한 거 같아요."

    엄마가 숨진 뒤 유환이는 이 병원 신생아실에서 13시간을 머물다가 큰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미 뇌손상을 크게 입은 상태였습니다.

    [현기정/故박지연 씨 유가족]
    "유환이의 MRI 사진을 보면 가운데 뇌가 하얗게 나오거든요. 가운데 뇌가 그냥 봐도 하얘요."

    병원 측은 유환이가 태어난 시간은 10시 2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대로라면 9시34분에 걸어서 수술실에 들어간 산모가 순식간에 상태가 악화돼 바로 수술하고 아기를 꺼냈다는 뜻입니다.

    [현기정/故박지연 씨 유가족]
    "너무 급해 갖고 무마취로 생으로 배를 갈라서 아기를 꺼냈다고 그러더라구요."

    병원측은 갑작스런 산모의 사망원인이 양수색전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양수색전증은 양수 성분이 혈관을 통해 폐에 들어가 갑자기 산모의 호흡 장애와 혈액응고 장애를 일으키는 증상입니다.

    워낙 갑작스러운 증상이어서 대처가 어려운 만큼', 병원 측에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000/A산부인과 원장]
    "내가 감히 말씀드리지만 저희도 피해잡니다. 그날 밤 뭔지도 모르고 당한거에요. 이게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그러나 유가족들이 병원 CCTV를 입수하면서 여러 의혹들이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병원 측 진료 기록과 CCTV의 시간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진료기록에 따르면 산모의 얼굴이 파래지고, 의식을 잃고 대변을 쏟았다는 시간은 9시30분.

    그러나 CCTV에는 9시34분에 산모가 혼자 걸어서 수술실로 이동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9시 36분, 건물 1층에선 외출했던 당직의사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산모가 사경을 헤멨다는 9시30분 경에 의사가 병원 밖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000/A산부인과 원장]
    "이 사람들이(유가족) 자꾸 시간을 따지는데 시간은 맞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미친 간호사가 (바쁜데) 실시간으로 적겠습니까."

    하지만 의료법 전문가의 의견은 다릅니다.

    [이용환/변호사·의사]
    "의료법 상 시간을 적는 이유는 그 의료행위가 이뤄진 시간을 적어서 그 처치가 적절한 시간에 이뤄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근데 그 시간이 대충 그 시간이었다고 얘기한다고 하면 그 진료기록부를 다 믿을 수가 없잖아요."

    더 이상한 건 간호기록부.

    산모가 그토록 위급했다는 시간에 태아의 맥박이 불규칙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산모의 상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차영주/산부인과 전문의]
    "1차 기록지에는 그런 산모 상태가 뭐 어땠는지 잘 안 나와 있고, 이것만 봤을 땐 애기 심박동이 떨어져서 응급으로 수술한 것처럼 그렇게 일단은 나와 있어요."

    병원 측은 급박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습니다.

    [000/당시 진료의사]
    "이게 이제 얘도(간호조무사) 나중에 기록하다보니까 착각을 한 거 같은데.."

    의사들은 그러나 위급했다는 산모의 상태가 기록에서 아예 누락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차영주/산부인과 전문의]
    "간호기록지는 보통은 실시간으로 돼요. 실시간으로 차팅을 하고 순간순간 근데 이제 아주 응급상황에서는 뭐 그냥 종이같은 데만 써놓고 나중에 차트를 쓰는 경우도 있긴 해요."

    사망 사고 4일 뒤, 병원 측은 진료기록부와 간호기록부를 다시 작성해 경찰에 추가로 제출했습니다.

    서로 다른 2벌의 의무 기록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차영주/산부인과 전문의]
    "차트가 두 개 존재한다는 거 자체가 좀 믿을 수 없는 상황이고..."

    이렇게 다시 작성된 2번째 진료기록부의 시간은 이제 CCTV의 시간과 비슷해졌습니다.

    9시 30분에 의식을 잃었다던 산모의 상태는 9시 40분에 의식을 잃었다고 정정됐습니다.

    CCTV와 비슷한 시간으로 고쳐진 것입니다.

    간호기록부의 시간도 바뀌었습니다.

    1차 기록에는 마취과 의사에게 연락한 시간이 9시 36분, 그런데 2차 기록에는 9시45분으로 CCTV의 시간에 맞춰 수정됐습니다.

    [이용환/변호사·의사]
    "나중에 수정된 진료기록부를 보게 되면 시간에 따라서 우리가 의료행위가 적정했는지 판단하는데 그 시간을 본인이 적정한 것처럼 기재하기 위해서 시간을 변경시켰기 때문에 진료기록부 상으로 봤을 때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여지는 겁니다."

    의사가 머리 식히고 야식을 먹으러 나갔다, 4층을 통해 5층 수술실에 도착했다는 등 알리바이처럼 보이는 내용까지 추가됐습니다.

    [김덕경 교수/서울삼성병원 마취통증과]
    "의무기록에 무슨 의사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밖에 나갔다 옴, 그걸 그렇게 안적죠 사실. 적어야 될 이유도 없고.. 이런 걸로 봐서는 사실은 전체적인 의무기록 자체를 신뢰하기가 쉽지 않은.."

    이렇게 재작성된 진료기록에는 호흡곤란과 청색증 같은, 산모가 양수색전증으로 사망했음을 암시하는 증상이 새로 추가됐습니다.

    [차영주/산부인과 전문의]
    "2차 기록차트는 누가 봐도 딱 양수색전증이라는 생각이 들게 보이죠. 차트만 봤을 때는.."

    이 두번째 진료기록은 나중에 병원의 책임이 없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됐습니다.

    CCTV와 진료기록 외에도 의혹은 또 있습니다.

    당시 의사는 급박한 나머지 마취없이 수술을 했다고 했는데 국과수 부검결과 쓰지도 않았다는 마취제, 프로포폴이 시신에서 검출된 것입니다.

    마취제인 프로포폴을 주사했다는 내용을 의사는 왜 숨겼던 것일까요?

    2차 진료기록에는 의사가 마취제도 없이 산모의 배를 절개했다고 돼 있습니다.

    [000/당시 진료 의사]
    "생각해보니까 안 준 거 같기도 하고 착각이 들었어요. 2차 차트 적을 때가 며칠 뒤에 적었으니까 그때 내가 안적었구나 착각을 해서 그때 이제 안 쓴 겁니다."

    그런데 이 의사는 1년 쯤 지나 갑자기 마취제인 프로포폴을 썼던 기억이 났다고 진술했습니다.

    [000/당시 진료 의사]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내가 그날 (프로포폴을) 준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프로포폴을 줬다. 이렇게 얘기를 한 거죠. 워낙 정신없는 상황이고 급박한 상황이니까.."

    약물 투여 사실을 기록도 하지 않고, 기억도 못한다는 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일까?

    [김덕경 교수/서울삼성병원 마취통증과]
    "중요한 약제 중 하나인 프로포폴 투여 여부는 당연히 기록이 됐어야 하고 또 기억을 했으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뒤늦게 이제 애기하는 거는 전체적인 기록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양수색전증이 맞다면 당시 산모는 호흡곤란을 겪고 있던 상황.

    여기에 프로포폴을 투여하면 호흡 장애를 유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덕경 교수/서울삼성병원 마취통증과]
    "혈압도 많이 떨어져 있고 산소포화도도 겨우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면 프로포폴 50mg도 사실 적지 않은 용량이죠. 완전히 무호흡 상태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프로포폴을 썼다는 사실을 감춘 이유가 바로 이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용환 변호사·의사]
    "프로포폴이 적혀 있지 않다는 거는 프로포폴로 인해서 환자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거를 의사가 인식을 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빼버리는 겁니다."

    이런 여러 의혹을 놓고 유가족들은 병원측과 갈등을 빚었고, 사고 발생 2주 뒤, 병원 측은 유가족들을 업무방해로 고소했습니다.

    [현병철/故박지연 씨 남편]
    "거기서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지금 병원에 있는 자체가 우리가 업무 방해래요. 2월2일부터 산모가 죽은 다음부터 우리가 있는 자체가 업무 방해래요.."

    병원 측은 또 산모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했고, 1억 5천만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포함해 20여건의 민형사상 소송을 유가족 측에 제기한 상태입니다.

    [000/A산부인과 원장]
    "저희도 돈 받고 싶어서 한 거 아니에요. 방어수단으로 한 거예요. 방어수단으로.그래야 좀 덜할 거 아닙니까."

    [김명기/故박지연씨 유가족]
    "저희가 멱살이라도 한번 잡았으면 이렇게 분하지도 않겠어요. 계속 그래도 녹취보시면 알잖아요. 의사선생님 의사선생님."

    사고 한 달 뒤인 2012년 3월, 국과수는 부검 결과와 병원의 진료기록 등을 토대로 산모의 사인을 양수색전증으로 결론지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이 모든 일에 병원의 책임은 없다고 판결했고, 검찰은 병원 측을 기소중지했습니다.

    그러기를 4년, 아픈 아이를 돌보고 병원과 지루한 소송을 벌이느라 유가족들의 생업은 중단됐고, 평범했던 일상은 파괴됐습니다.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다는 이들은 그저 극성스러운 유가족들로 여겨졌습니다.

    [김명기/故박지연씨 유가족]
    "의료진들이 유가족을 상대로 스물 몇 건씩 고소한 거는 이게 전세계 토픽감에 나올 일 아닙니까? 이런 나라가 어디있습니까 사실."

    그러던 지난 6월 말, 산모의 사인을 다시 검토해달라는 유가족들의 거듭된 요청에 국과수가 마침내 답변서를 보내왔습니다.

    병원 측 진료 기록을 믿기 어렵다며, 산모의 죽음은 양수색전증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혈액응고장애와 자궁출혈 등 양수색전증 증상이 계속됐다는 진료기록과 부검결과가 달랐다며, 부검에서는 이같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프로포폴과 바륨을 사용한 것 때문에 사망했다는 유가족들의 주장도 고려해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양수색전증으로 사망했다는 당초 감정 결과를 사실상 뒤집은 셈입니다.

    [김명기/故박지연씨 유가족]
    "여태까지는 99대1로 불리했다가 저희가 이제 50대50으로 공정해진 거에요. 이제 좀 사실에 가까운 일을 재판하면서 따질 수 있겠죠."

    검찰은 이 병원의 진료기록 위조 등의 혐의에 대해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고, 법원은 이 가족의 엄청난 불행에 병원은 과연 아무 책임이 없는지, 다시 따져볼 예정입니다.

    그날 분만실에선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진실은 다시 법의 판단에 맡겨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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