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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왕종명 기자

도망자가 된 제보자

도망자가 된 제보자
입력 2016-09-12 09:44 | 수정 2016-09-1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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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1월, 이른바 '김미영 팀장'으로 불리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적발돼 조직원 20여 명이 대거 구속됐습니다.

    이 같은 성과는 중국 사업을 추진하다 이 조직의 세부 정보를 알게 돼 제보한 김 씨 덕분입니다.

    하지만 검찰조사와 재판과정에서 조사보고서가 노출되면서 김 씨의 신변이 드러났고, 김 씨는 이후 검거되지 않은 조직원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으며 쫓기는 처지가 됐습니다.

    범죄수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제보자, 경찰과 국가는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과연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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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출사기 문자메시지의 상징 '김미영 팀장'

    한 푼이 절박한 이들을 속여 거액을 뜯어낸 '김미영 팀장' 보이스피싱 조직이 3년 전 검거됐습니다.

    28명 구속, 16명 불구속, 49명 체포영장 총 93명이 적발됐고 중국에서 활동하던 총책까지 역대 최대 규모의 보이스피싱 조직을 잡아들인 성과였습니다.

    [당시 뉴스]
    "중국에 거점을 둔 전화금용사기."
    "이 정도 규모면 기업이라고 해도 될까요. 조직원이 4백 명."

    이들을 검거한 곳은 검찰도 경찰청도 아닌 충남의 한 경찰서.

    [곽태희/천안동남경찰서 수사과장]
    "중국에 있는 총책과 사장단, 팀장급 피싱책을 검거했다는 게 상당히 의미가 있고."

    지방 경찰서의 기적 같은 성과로 평가받아 담당 경찰은 일 계급 특진했습니다.

    경찰 조직 내에서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김미영 팀장' 조직 검거에는 사실 최초 신고부터 1년 넘게 이 조직에 접근해 정보를 빼낸 뒤 경찰에 제공한 어느 제보자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보자는 지금 도망자가 됐습니다.

    그가 제보했다는 사실이 김미영 팀장 조직에 노출되면서 살해 협박을 받고 있는 겁니다.

    김 모 씨는 오늘도 술을 마셨습니다.

    소주 한 병을 또 사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겁니다.

    [김00/제보자]
    "잘 지내나 어떻게 지내? 갈 곳이 없다 이제, 잘 곳이 없네."

    해가 지면 잠자리 찾는 게 일이고 잠을 자려면 술을 마셔야 합니다.

    [김00/제보자]
    "절대 못 잡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이 제 집이 아니잖아요. 눈치도 보일 수도 있죠."

    뒷주머니엔 호신용 삼단봉을 넣고 다닙니다.

    [김00/제보자]
    "제 보디가드죠. 안 지켜주잖아요 누군가가."

    뒤에서 누가 다가오면 덜컥 겁이 납니다.

    [김00/제보자]
    "뭔가 빠른 게 오면 나를 칼로 찌르든가 뭔가 둔기로 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아기들 자전거 타고 막 오잖아요. 피하는 거예요 제가."

    요즘은 지인이 회사 창고 한 켠에 마련해준 공간이 김 씨의 은신처입니다.

    여기저기 떠돌며 도피 생활을 한 지 2년,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섬뜩한 살해 협박을 받고부터

    집에는 돌아갈 수 없게 됐습니다.

    [김00/제보자]
    "다른 사람들을 다 잡아넣고 니는 똑바로 살 거 같냐. 니는 죽을 것이다. 한국에 우리 조직이 얼마나 있는 줄 아냐. 제 몸을 다 잘라서."

    김 씨가 받은 문자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숫자 4로 가득한 전화번호

    [김00/제보자]
    "니들은 내가 항상 주시하고 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너희 XX들을 팔등분해서 전국 팔도에 골고루 나누어 묻어주마."

    전체 조직원 4백여 명 중 아직 40여 명만 검거된 상태,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머지 조직원들이 김 씨의 결혼 상대자까지 살해 대상으로 언급하자 김 씨는 8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00/제보자]
    "어느 남자가 같이 하자 하겠어. 같이 더러운 모습을 같이 가야 될 이유가 없잖아요. 그 더러운 모습이라는 거는 둘이 손 잡고 가다가 둘 다 죽는 거예요."

    몇년 전까지만 해도 김 씨는 직원 12명을 두고 고급 승용차를 중국으로 수출하는 회사를 운영했지만, 회사도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김00/제보자]
    "범죄자들이 모두 이 공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빠른 판단을 해야 저희 직원들도 동고동락했던 직원들도 큰 피해 없이."

    가족과 집과 회사까지 모든 걸 잃어버린 김씨 김씨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2012년 당시 김씨는 중국을 상대로 사업 확장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친구 조 모씨가 현지 투자자를 소개해주겠다며 접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투자자들의 계좌가 불법 환전용으로 의심받아 금융 거래가 정지됐다며 투자가 힘들어졌다고 했습니다.

    [김00/제보자]
    "비즈니스 플랜을 계속 만들어나가고 있던 찰나에 이 친구들이 갑자기 형님들한테 투자를 해줄 돈이 갑자기 통장이 묶였습니다. 천안동남경찰서에서 통장을 다 묶었다고."

    김씨는 투자를 받기 위해 이들이 정상적인 사업가라는 증거를 경찰에 제시하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김00/제보자]
    "사업증도 다 제출하고 어떻게 해서 어떤 돈의 출처에 대한 내용을 설명을 하고 그렇게 해서 경찰에다 팩스를 보내서 3일 있다 통장이 다 풀렸습니다."

    투자자들은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며 김씨를 중국으로 초대했고, 이들과 어울리던 자리에서 전부터 김 씨를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뜻 밖의 말을 들었습니다.

    [김00/제보자]
    "저 애들이 누군지 아냐, 뭐 어떤 관계냐. 저 친구들이 보이스피싱 하는 애들이다. 니 조심해라 일단 거리를 두는 게 맞지 않냐고."

    사업파트너로 알고 도와준 이들이 범죄 조직이었다는 사실에 김 씨는 자신도 공범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다고 합니다.

    [김00/제보자]
    "이 친구들이 벌어놓은 돈으로 술도 마시고 여러가지 하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모든 게 저한테 죄책감으로 남더라고요. 과연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갈 것인 지 아니면 제보를 해서 이 조직을 아예 뿌리를 뽑을 것인 지."

    고민 끝에 경찰을 찾아갔습니다.

    [김00/제보자]
    "제보를 하고 싶다. 나 역시도 정확히 (범죄 조직이) 맞다고 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 시간을 달라. (대신) 나라는 거를 절대 노출되면 안된다. 경찰들도 이거는 절대로 노출이 되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김 씨는 조직의 흑막을 벗겨내기 위한 증거 수집에 들어갔습니다.

    '김미영 팀장' 보이스 피싱 조직의 활동 근거지인 중국 칭다오 시입니다.

    회장급인 총책은 물론 사장급 간부 5명이 검거되면서 이 조직은 현재 칭타오를 철수한 상태입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범죄 조직을 한국 경찰이 검거할 수 있었던 건 그 만큼 치밀한 정보 덕이었고 이 정보를 캐내기 위한 제보자 김 씨의 활동은 흡사 첩보 영화를 연상시킵니다.

    김씨는 철저히 중국의 투자를 기대하는 한국의 사업가로 행동하고 사업차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친분을 쌓았습니다.

    [김00/제보자]
    "여기는 ooo하고 xxx이 같이 살았던 곳입니다. (여기는 간부급?) 네 그렇죠. 여기는 우두머리들이 살았던 장소죠."

    중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주요 조직원들의 면면을 파악하고, 조선족들을 동원해 보이스피싱 콜센터의 감시원으로 투입시켰습니다.

    [000 정보원]
    "사람들 시켜서 얘들 뭐하는 애들인가 봐봐. 사무실처럼 칸막이 쫙 해서 전화를 한다. 거기 웬만하게 들어가면 거의 잠복식으로 들어가면 열흘, 20일 고생하면서 동태 파악을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김씨를 믿게 된 조직 간부가 자신들의 실체를 드러내고 동업을 제안하면서 김 씨는 결정적인 증거를 포착합니다.

    [김00/제보자]
    "한국에서 인력만 중국으로 보내주면 형님은 가만히 계시면 자기들이 지분을 30% 주겠습니다. 그러니까 저보고 쉽게 말해서 보이스피싱 조직에 들어오라는 이야기와 똑같은 거죠. 그래서 제가 속으로 야 인마 참 맹랑하구나. 끝에는 이렇게 나오는구나."

    1년 넘는 접촉 끝에 김씨는 총책과 사장단 등 간부급 20여 명의 조직도와 신원, 역할에 따라 정교하게 짜여진 범죄 구성도를 파악해 경찰에 제공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경찰은 조직원들의 입국 사실을 확인해 검거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담당경찰]
    "(제보자 김씨가) 저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조직 체계에 대해 설명해줬고 특정할 수 있는 그런 것들, 어디서 활동했는지 고향 어딘 지, 그 분이 아시는 연락처도 알려주셨고."

    한바탕 검거가 마무리되고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즈음 검거된 조직원의 가족으로부터 김 씨에게 협박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김 씨가 제보자란 걸 알게 된 겁니다.

    [김00/제보자]
    "(경찰에게) 내 제보한 내용이 왜 그 가족들이 알고 있냐. 그러니까 절대 그럴 일 없다는 식으로 자기넨 아니다, 경찰이 (노출)한 건 아니라고."

    그러던 중 검거된 핵심 간부가 무죄로 풀려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고 경찰은 김 씨에게 직접 법정에 나와 증언하라고 요청합니다.

    [김00/제보자]
    "얘(핵심 간부)를 다시 잡아넣기 위해서 저의 힘이 다시 선생님 힘이 필요합니다. 증인 좀 검찰이 요청했으니까 좀 도와주시라고. 그러면서 저의 신분을 완벽하게 지켜주기 위해서."

    김 씨는 고민 끝에 증언을 수락했고, 방청객과 피고인이 모두 퇴정한 뒤 증언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피고인의 변호사는 이미 김 씨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김00/제보자]
    "저라는 사람을 이미 알아버렸던 거지. 몇월 며칠 어디서 만나서 만난 적 있냐. 밥 먹은 적 있냐."

    퇴정했다는 피고인들, 즉 조직원들은 대기실에서 김 씨의 증언을 듣고 있었습니다.

    [김00/제보자]
    "(대기실) 문이 열려 있는 겁니다. 제 목소리를 들으려고. 저는 그게 보이더라고요."

    김 씨가 경찰에 제보하고 진술한 내용은 재판의 증거로 제출됐고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피고인의 변호사는 이 기록을 열람, 복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비록 김 씨가 가명으로 돼 있었지만 피고인 측은 누가 제보했는지 기록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겁니다.

    [김00/제보자]
    "이 내용 보게 되면 누구라는 걸 딱 알게 이름을 아무리 가명으로 쓴다한들 이름 누구라고 딱 알 수밖에 없는 내용입니다."

    2580은 당시 담당 경찰을 만났습니다.

    그 역시 살해 협박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당시 담당 경찰]
    "조심하라는 얘기 많이 들었고 조선족 애들 동원할 수 있다. 저도 그런 전화 받고 나니까 사실 한동안은 골목길 가는데 인기척 느껴지면 섬뜩하고."

    그러면서 재판 과정에서 김 씨의 신분 노출을 지켜보고 자신 또한 화가 났다고 합니다.

    [당시 담당 경찰]
    "진짜 열 받았어요 법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공소유지 주체가 검찰이잖아요. 000 검사님 좀 젊으신 오신지 얼마 안 된 여자 검사였고요. 초짜 검사구나."

    이에 대해 검찰은 김 씨의 진술 없이 피고인들의 혐의 입증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고 수사관 인솔 하에 별도의 통로를 통해 이동했으며, 화상모니터를 통해 증언하는 등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자신의 진술이 재판 증거로 제출돼 피고인 측이 열람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00/제보자]
    "그런 이야기 듣고 나서 (제보) 하겠습니까? 제가 왜 제 목숨을 제가 쉽게 내놓을 수는 없잖아요 이 나라에서. 수사 참고용으로만 한다. 이 애들을 잡기 위한 참고용으로만 한다고 이야기했죠."

    [이상민/변호사]
    "(수사기관이)당신의 인적사항이 오픈되지 않고 당신이 했던 이야기가 상대방 귀에 전혀 들어가지 않게 하겠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셨다면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할 약속이거든요."

    김 씨가 더 분개하는 건 신분이 노출된 뒤 경찰과 검찰이 취한 신변보호 조치입니다.

    김 씨에게 이사를 가라면서 이사지원비 3백만 원을 지급했고 응급상황에 대비한 비상 호출기를 지급했지만 막상 호출기를 눌러도 경찰은 오지 않았습니다.

    [김00/제보자]
    "처음에는 경찰이 출동한다고 했었죠. 한번 모르고 이게 눌러졌나봐요. 그래서 전화가 와요. 전화를 받으니까 나는 경찰인 줄 알았는데 00 보안업체라고 하면서 이야기하더라고요. 이거는 뭐 긴급하고 위급할 때 쓰라고 준 건데."

    여러 차례 신변 불안을 호소하자 담당 경찰은 신고포상금 50만 원을 입금해줬고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다른 곳에 도움을 청해보라고 했습니다.

    [담당 경찰]
    "누구든 도와주지도 않고 그런 상황이잖아요. 이거를 국민권익위원회에다가 해 가지고 어떤 실질적인 보상이라든지."

    김 씨는 용감한 시민은커녕 도망자가 된 자신의 명예를 되찾고 싶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박종강 변호사/소송 대리인]
    "수사기관인 국가, 감독기관인 국가 또 책임기관인 국가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이 이 사건 소송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검찰은 2580에 이번 보도로 행여 제보자들이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뜻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범죄자 검거에 정보를 제공한 제보자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쉽게 제보를 강요할 순 없는 일입니다.

    제보자의 신원 정보와 생명을 보장할 수 있도록 확실한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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