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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기자
최훈 기자
최악의 국정 농단 '최순실 게이트'
최악의 국정 농단 '최순실 게이트'
입력
2016-10-31 10:11
|
수정 2016-10-3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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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민간인인 최순실씨에게 대통령 연설문 및 발언 자료 등을 유출한 데 대해 사과했습니다.
최씨는 이밖에도 박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을 이용해 공무원 인사를 좌우하고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 원의 돈을 걷는 등 국정을 농단하고 각종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비선실세로 정권의 뿌리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 사실과 의혹을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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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설마' 했습니다.
최순실 씨가 가장 좋아하는 건 '대통령 연설문' 고치는 일이라는 측근의 말이 보도됐습니다.
청와대의 반응은 단호했습니다.
[이원종/대통령 비서실장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 (지난 21일)]
"아니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어떻게 그런 것이 밖으로 활자화되는지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하지만, 지난 24일 저녁, 방송을 통해 공개된 태블릿 피씨 속에는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던 바로 그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일국의 최고 통치자의 각종 연설문을 일개 민간인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한 달 먼저 받아보고, 수정까지 했다는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보도가 나온 지 불과 스무 시간 만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대국민 사과 (지난 25일)]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현대 정치에서 대통령은 메시지로 통치하고, 그래서 대통령의 연설은 통치행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터진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선출되지 않은 한 민간인, 대통령의 오랜 지인 한 사람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데서 더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2014년 3월28일,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의 구체방안을 제시해 큰 주목을 받았던 독일 드레스덴 연설.
[독일 드레스덴 연설 2014년]
"저는 한국의 자본, 기술과 북한의 자원, 노동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의미하며 장차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에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극도의 보안 속에 작성돼 연설 직전까지 청와대 내에서도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순실씨는 이 연설문 사전원고를 24시간 전에 파일로 받아 열어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외에도 2013년도 신년사와 같은 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사 등 박 대통령의 연설문 44개가 태블릿 PC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박상철 교수/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대통령의 연설문이라는 건 국가의 굉장히 중요한 기조라든가 원칙, 시스템을 상징하는 용어들이 들어가 있단 말이죠. 그 연설문에 따라서 모든 정책은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대통령 권력과 대통령 정책의 첫 출발부터 최순실씨가 개입됐다, 이렇게까지 볼 수 있는 것이 연설문의 개입에 대한 국민적 충격입니다."
박 대통령은 연설문이 최 씨에게 미리 건네진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최순실 씨 역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심정 표현을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드리게 됐다며 이를 시인했습니다.
태블릿 PC에 있는 청와대 문서는 연설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국가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국무회의 말씀자료, 청와대 비서진 인사 개편안, 북한과의 접촉 등 국가 안보와 관련된 민감한 내용까지 망라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두 사람의 관계는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 씨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70년대 불교, 기독교, 천도교의 교리를 혼합한 종교를 만들어 스스로 칙사나 태자마마로 불렀던 최태민 씨.
1974년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 뒤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박 대통령에게 '꿈에서 육 여사를 만났고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자신을 통하면 들을 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접근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구국봉사단 등에서 함께 활동했는데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박정희 대통령이 최씨를 직접 심문하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이어졌습니다.
80년대 육영재단과 영남대 이사장에 취임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옆에서 최태민 씨가 재벌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위키리크스에 의해 공개된 미국 극비 문서엔 최태민 씨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심신을 완벽하게 통제해, 결국 최태민 목사의 자녀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소문이 많다고 적혀있습니다.
[이종훈/정치평론가]
"박지만 씨라든가 박근령 씨가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보고 느끼고 발언한 것을 보면 최면에 걸려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거죠."
하지만, 박 대통령은 최태민 씨 관련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실체가 드러난 것은 없었다고 반박했습니다.
[한나라당 경선후보 검증 청문회 (2007년)]
"실체가 있으면 모르지만 실체가 있지 않은 은 상태에서 같은 얘기를 열번하면 실체가 있는 얘기가 됩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비슷한 내용을 폭로했다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김해호/한나라당원 비리 의혹 기자회견(2007년)]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은) 최태민이라고 하는 사람과 그의 딸 최순실이라고 하는 사람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농락당해서 세상의 비웃음과 웃음거리가 된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고..."
이런 최태민 씨와의 관계는 최태민 씨가 아끼던 다섯째 딸인 최순실씨로 이어졌습니다.
최씨는 70년대 말 새마음봉사단에서 총재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대학생단체 대표로 함께 활동했고 최태민 씨가 사망한 뒤에도 박 대통령의 말벗 역할을 하며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최순실 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1998년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할 때 핵심역할을 했던 이가 최순실씨의 남편인 정윤회 씨입니다.
비서실장으로 불리던 정씨는 2002년 미래연합을 창당할 당시 박 대통령의 보좌진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이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현 청와대 비서관들입니다.
이렇듯 최태민 씨로부터 40년간 대를 이어 맺어온 최순실씨와의 친분이 대통령이 된 후에도 계속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만흠 원장/한국정치아카데미]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와의 관계가 그냥 일상적인 측근과의 관계가 아니라 뭔가 주술적인 속성까지 겹쳐서, 현대정치에서는 보기 어려운 그런 문제가 터졌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 사적인 친밀함이 공적인 영역, 국가를 경영하는 일을 침범했다는 점입니다.
최순실 씨는 청와대 문서뿐만 아니라 공식석상에 나서는 대통령의 의상도 직접 챙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강남의 한 사무실.
최순실 씨가 직원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면서, 직원들이 가져온 의상을 직접 고릅니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초록색 옷은 2014년 11월 10일, 베이징TV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입었던 옷입니다.
필리핀 정상회담에서 입은 주황색 자켓과 정부세종청사 완공 기념식에서 입은 겨울 롱코트도 최 씨의 손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화면에 청와대 이영선 행정관과 윤전추 전 3급 행정관이 등장합니다.
공손하게 전화기를 건네는 등 깍듯이 수행하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주머니에서 5만 원권을 여러 장 꺼내 직원들에게 직접 건네는 장면도 목격됐습니다.
최씨가 대통령과의 친분을 앞세워 공직자처럼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승마선수인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입학과 학점취득 과정이었습니다.
금메달을 들고 들어간 입학면접, 지도교수에 대한 부당한 압력에 이어 엉터리 리포트에 주어진 학점 등 각종 특혜 의혹에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총장이 물러났습니다.
[OOO/이화여대 학생]
"이 학생 입학 처리되었고 한 사람의 학점 취득을 위해 학칙이 급히 개정되기까지 했다."
최씨의 힘은 공직사회, 국가사업에도 영향을 미친 걸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재로선 특히 문화와 체육분야에 집중돼 있는데, 여기서 최씨의 측근들 이름이 등장합니다.
체육 쪽에선 펜싱국가대표 출신 고영태 씨가 문화분야에선 CF 감독 출신의 차은택 씨가, 핵심 인물입니다.
유흥업소에서 일했던 고영태 씨는 최 씨를 만난 뒤 가방사업을 시작해 대통령이 그 가방을 들고 다니기도 했고, 최 씨가 세운 더블루K라는 회사의 이사를 맡은 최 씨의 최측근입니다.
고영태 씨의 소개로 최씨를 만난 차은택 CF 감독은 아예 공조직으로 진입했습니다.
2014년 8월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을 맡았고, 작년엔 창조경제 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 본부장으로 발탁됐습니다.
2014년 8월 차씨의 스승인 김종덕 홍익대교수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됐고, 석 달 뒤엔 차씨의 외삼촌인 김상률 교수가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 자리에 올랐습니다.
다음 달 12월 차관급인 콘텐츠진흥원장이 된 송성각 씨와는 광고업계에서 차씨를 키워준 각별한 선후배 사이였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
"(송성각 원장이) 제일기획에 계실 때 (차은택 씨에게) 광고를 맡기고 하셨던 것 같아요."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에 포진한 지인들.
최순실 씨와 차은택, 고영태 씨 등은 정부의 문화 체육 관련 사업을 따내면서 승승장구했습니다.
문화부는 일체 부인하고 있지만 표절 논란을 빚었던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와 한복 세계화, 한식 세계화, 아리랑 브랜드 개발 등 문화융성 프로젝트도 이들의 계획하에 추진됐다는 의혹까지 나왔습니다.
한 방송은 1천8백억 원대의 문화 융성 프로젝트와 관련해 이들이 초안을 만들면 문화체육관광부는 그대로 집행했다고 했습니다.
차은택 씨가 기획한 '늘품체조'는 석연치 않게 국민 체조로 선정됐고,최순실 씨의 개인 회사 더블루K는아무 실적도 없는 상태에서 문체부 산하기관의 사업을 따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박상철 교수/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예를 들어 최순실 씨와 그 측근들이 가져간 불량한 돈들이 몇백억 원, 몇천억 원, 나아가서 조 단위가 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대한 분노도 보통 이상이 될 수가 있죠."
그리고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두 개의 민간 재단이 등장합니다.
작년 10월 설립된 미르재단의 초대 이사장은 차은택 씨의 대학원 은사인 김형수 교수, 올해 1월 만들어진 K스포츠재단의 제2대 이사장으로 최순실 씨의 단골 마사지센터 원장인 정동춘 씨가 선임됐습니다.
이 두 재단에 수십 개의 기업이 모두 7백74억 원의 기금을 냈습니다.
최순실씨의 지휘로 대기업들에 돈을 걷었고,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직접 모금에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이례적으로 빠르게 이뤄진 정부승인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우상호 의원/국회 예산결산특위 (지난 27일)]
"돈을 내게 만든 곳이 어디냐, 이것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안종범 수석은 아니라고 계속 하시니까요.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틀 만에 수백억의 돈을 냈다는 전례가 없기 때문에, 일해 재단 이후로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게 유사성이 자꾸 확인되는데요."
하지만, 전경련과 청와대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고 강조했고, 대통령도 이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지난 20일)]
"문화 융성을 위한 기업들의 순수한 참여의지에 찬물을 끼얹어 한류 문화 확산과 기업의 해외진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최순실 씨가 중대한 국가문서를 들여다보고, 주변인사들과 함께 정부사업에 깊숙이 관여하는 동안 국가의 시스템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비판도 따갑습니다.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을 관리해야 하는 최전방 책임자인 우병우 민정수석은 입을 다물고 있고, 각종 의혹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은 최순실씨와 일면식도 없다며 관련 의혹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습니다.
[안종범/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지난 21일)]
"미르 재단 그리고 k스포츠 재단의 설립 과정, 그리고 모음 과정에 제가 개입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모른다는 말로 이 어이없는 상황이 초래된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김무성 전 대표/새누리당]
"아니 박근혜 후보 옆에 최순실이 있다는 거 몰랐던 사람이 어딨습니까?"
[김만흠 원장/한국정치아카데미]
"정말 모른다고 하면 껍데기로 청와대에서 참모를 하고 있었던 것이고, 아니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특히 최순실씨에게 연설문과 문건을 전달한 당사자로 지목되고 있는 정호성 부속실장 역시 국정농단 파문과 관련 없다는 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국회 예산결산특위 (지난 21일)]
"본인(정호성)하고 통화를 하고 확인을 했습니다. '본인은 전달한 사실이 있느냐' (물었더니) '그런 사실 없다'고 말했고요."
대통령이 직접 연관돼 있기도 하거니와 소통이 부족한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종훈/정치평론가]
"청와대 비서진들도 그렇고 내각도 똑같은 상황이라는 거예요. 장관들도 지금 누구도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한 마디 조언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이렇게 되면 그냥 시키는 일만 하는 거죠."
역대 최악의 비선실세 국정 농단 파문, 충격받은 국민들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대통령 지지도가 10%대로 급락한 가운데 언론은 경쟁적으로 추가보도를 이어가고 있고, 검찰의 수사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국정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최씨는 이밖에도 박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을 이용해 공무원 인사를 좌우하고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 원의 돈을 걷는 등 국정을 농단하고 각종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비선실세로 정권의 뿌리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 사실과 의혹을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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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설마' 했습니다.
최순실 씨가 가장 좋아하는 건 '대통령 연설문' 고치는 일이라는 측근의 말이 보도됐습니다.
청와대의 반응은 단호했습니다.
[이원종/대통령 비서실장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 (지난 21일)]
"아니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어떻게 그런 것이 밖으로 활자화되는지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하지만, 지난 24일 저녁, 방송을 통해 공개된 태블릿 피씨 속에는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던 바로 그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일국의 최고 통치자의 각종 연설문을 일개 민간인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한 달 먼저 받아보고, 수정까지 했다는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보도가 나온 지 불과 스무 시간 만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대국민 사과 (지난 25일)]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현대 정치에서 대통령은 메시지로 통치하고, 그래서 대통령의 연설은 통치행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터진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선출되지 않은 한 민간인, 대통령의 오랜 지인 한 사람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데서 더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2014년 3월28일,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의 구체방안을 제시해 큰 주목을 받았던 독일 드레스덴 연설.
[독일 드레스덴 연설 2014년]
"저는 한국의 자본, 기술과 북한의 자원, 노동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의미하며 장차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에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극도의 보안 속에 작성돼 연설 직전까지 청와대 내에서도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순실씨는 이 연설문 사전원고를 24시간 전에 파일로 받아 열어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외에도 2013년도 신년사와 같은 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사 등 박 대통령의 연설문 44개가 태블릿 PC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박상철 교수/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대통령의 연설문이라는 건 국가의 굉장히 중요한 기조라든가 원칙, 시스템을 상징하는 용어들이 들어가 있단 말이죠. 그 연설문에 따라서 모든 정책은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대통령 권력과 대통령 정책의 첫 출발부터 최순실씨가 개입됐다, 이렇게까지 볼 수 있는 것이 연설문의 개입에 대한 국민적 충격입니다."
박 대통령은 연설문이 최 씨에게 미리 건네진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최순실 씨 역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심정 표현을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드리게 됐다며 이를 시인했습니다.
태블릿 PC에 있는 청와대 문서는 연설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국가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국무회의 말씀자료, 청와대 비서진 인사 개편안, 북한과의 접촉 등 국가 안보와 관련된 민감한 내용까지 망라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두 사람의 관계는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 씨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70년대 불교, 기독교, 천도교의 교리를 혼합한 종교를 만들어 스스로 칙사나 태자마마로 불렀던 최태민 씨.
1974년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 뒤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박 대통령에게 '꿈에서 육 여사를 만났고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자신을 통하면 들을 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접근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구국봉사단 등에서 함께 활동했는데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박정희 대통령이 최씨를 직접 심문하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이어졌습니다.
80년대 육영재단과 영남대 이사장에 취임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옆에서 최태민 씨가 재벌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위키리크스에 의해 공개된 미국 극비 문서엔 최태민 씨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심신을 완벽하게 통제해, 결국 최태민 목사의 자녀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소문이 많다고 적혀있습니다.
[이종훈/정치평론가]
"박지만 씨라든가 박근령 씨가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보고 느끼고 발언한 것을 보면 최면에 걸려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거죠."
하지만, 박 대통령은 최태민 씨 관련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실체가 드러난 것은 없었다고 반박했습니다.
[한나라당 경선후보 검증 청문회 (2007년)]
"실체가 있으면 모르지만 실체가 있지 않은 은 상태에서 같은 얘기를 열번하면 실체가 있는 얘기가 됩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비슷한 내용을 폭로했다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김해호/한나라당원 비리 의혹 기자회견(2007년)]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은) 최태민이라고 하는 사람과 그의 딸 최순실이라고 하는 사람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농락당해서 세상의 비웃음과 웃음거리가 된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고..."
이런 최태민 씨와의 관계는 최태민 씨가 아끼던 다섯째 딸인 최순실씨로 이어졌습니다.
최씨는 70년대 말 새마음봉사단에서 총재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대학생단체 대표로 함께 활동했고 최태민 씨가 사망한 뒤에도 박 대통령의 말벗 역할을 하며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최순실 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1998년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할 때 핵심역할을 했던 이가 최순실씨의 남편인 정윤회 씨입니다.
비서실장으로 불리던 정씨는 2002년 미래연합을 창당할 당시 박 대통령의 보좌진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이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현 청와대 비서관들입니다.
이렇듯 최태민 씨로부터 40년간 대를 이어 맺어온 최순실씨와의 친분이 대통령이 된 후에도 계속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만흠 원장/한국정치아카데미]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와의 관계가 그냥 일상적인 측근과의 관계가 아니라 뭔가 주술적인 속성까지 겹쳐서, 현대정치에서는 보기 어려운 그런 문제가 터졌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 사적인 친밀함이 공적인 영역, 국가를 경영하는 일을 침범했다는 점입니다.
최순실 씨는 청와대 문서뿐만 아니라 공식석상에 나서는 대통령의 의상도 직접 챙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강남의 한 사무실.
최순실 씨가 직원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면서, 직원들이 가져온 의상을 직접 고릅니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초록색 옷은 2014년 11월 10일, 베이징TV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입었던 옷입니다.
필리핀 정상회담에서 입은 주황색 자켓과 정부세종청사 완공 기념식에서 입은 겨울 롱코트도 최 씨의 손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화면에 청와대 이영선 행정관과 윤전추 전 3급 행정관이 등장합니다.
공손하게 전화기를 건네는 등 깍듯이 수행하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주머니에서 5만 원권을 여러 장 꺼내 직원들에게 직접 건네는 장면도 목격됐습니다.
최씨가 대통령과의 친분을 앞세워 공직자처럼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승마선수인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입학과 학점취득 과정이었습니다.
금메달을 들고 들어간 입학면접, 지도교수에 대한 부당한 압력에 이어 엉터리 리포트에 주어진 학점 등 각종 특혜 의혹에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총장이 물러났습니다.
[OOO/이화여대 학생]
"이 학생 입학 처리되었고 한 사람의 학점 취득을 위해 학칙이 급히 개정되기까지 했다."
최씨의 힘은 공직사회, 국가사업에도 영향을 미친 걸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재로선 특히 문화와 체육분야에 집중돼 있는데, 여기서 최씨의 측근들 이름이 등장합니다.
체육 쪽에선 펜싱국가대표 출신 고영태 씨가 문화분야에선 CF 감독 출신의 차은택 씨가, 핵심 인물입니다.
유흥업소에서 일했던 고영태 씨는 최 씨를 만난 뒤 가방사업을 시작해 대통령이 그 가방을 들고 다니기도 했고, 최 씨가 세운 더블루K라는 회사의 이사를 맡은 최 씨의 최측근입니다.
고영태 씨의 소개로 최씨를 만난 차은택 CF 감독은 아예 공조직으로 진입했습니다.
2014년 8월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을 맡았고, 작년엔 창조경제 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 본부장으로 발탁됐습니다.
2014년 8월 차씨의 스승인 김종덕 홍익대교수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됐고, 석 달 뒤엔 차씨의 외삼촌인 김상률 교수가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 자리에 올랐습니다.
다음 달 12월 차관급인 콘텐츠진흥원장이 된 송성각 씨와는 광고업계에서 차씨를 키워준 각별한 선후배 사이였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
"(송성각 원장이) 제일기획에 계실 때 (차은택 씨에게) 광고를 맡기고 하셨던 것 같아요."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에 포진한 지인들.
최순실 씨와 차은택, 고영태 씨 등은 정부의 문화 체육 관련 사업을 따내면서 승승장구했습니다.
문화부는 일체 부인하고 있지만 표절 논란을 빚었던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와 한복 세계화, 한식 세계화, 아리랑 브랜드 개발 등 문화융성 프로젝트도 이들의 계획하에 추진됐다는 의혹까지 나왔습니다.
한 방송은 1천8백억 원대의 문화 융성 프로젝트와 관련해 이들이 초안을 만들면 문화체육관광부는 그대로 집행했다고 했습니다.
차은택 씨가 기획한 '늘품체조'는 석연치 않게 국민 체조로 선정됐고,최순실 씨의 개인 회사 더블루K는아무 실적도 없는 상태에서 문체부 산하기관의 사업을 따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박상철 교수/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예를 들어 최순실 씨와 그 측근들이 가져간 불량한 돈들이 몇백억 원, 몇천억 원, 나아가서 조 단위가 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대한 분노도 보통 이상이 될 수가 있죠."
그리고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두 개의 민간 재단이 등장합니다.
작년 10월 설립된 미르재단의 초대 이사장은 차은택 씨의 대학원 은사인 김형수 교수, 올해 1월 만들어진 K스포츠재단의 제2대 이사장으로 최순실 씨의 단골 마사지센터 원장인 정동춘 씨가 선임됐습니다.
이 두 재단에 수십 개의 기업이 모두 7백74억 원의 기금을 냈습니다.
최순실씨의 지휘로 대기업들에 돈을 걷었고,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직접 모금에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이례적으로 빠르게 이뤄진 정부승인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우상호 의원/국회 예산결산특위 (지난 27일)]
"돈을 내게 만든 곳이 어디냐, 이것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안종범 수석은 아니라고 계속 하시니까요.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틀 만에 수백억의 돈을 냈다는 전례가 없기 때문에, 일해 재단 이후로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게 유사성이 자꾸 확인되는데요."
하지만, 전경련과 청와대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고 강조했고, 대통령도 이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지난 20일)]
"문화 융성을 위한 기업들의 순수한 참여의지에 찬물을 끼얹어 한류 문화 확산과 기업의 해외진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최순실 씨가 중대한 국가문서를 들여다보고, 주변인사들과 함께 정부사업에 깊숙이 관여하는 동안 국가의 시스템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비판도 따갑습니다.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을 관리해야 하는 최전방 책임자인 우병우 민정수석은 입을 다물고 있고, 각종 의혹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은 최순실씨와 일면식도 없다며 관련 의혹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습니다.
[안종범/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지난 21일)]
"미르 재단 그리고 k스포츠 재단의 설립 과정, 그리고 모음 과정에 제가 개입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모른다는 말로 이 어이없는 상황이 초래된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김무성 전 대표/새누리당]
"아니 박근혜 후보 옆에 최순실이 있다는 거 몰랐던 사람이 어딨습니까?"
[김만흠 원장/한국정치아카데미]
"정말 모른다고 하면 껍데기로 청와대에서 참모를 하고 있었던 것이고, 아니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특히 최순실씨에게 연설문과 문건을 전달한 당사자로 지목되고 있는 정호성 부속실장 역시 국정농단 파문과 관련 없다는 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국회 예산결산특위 (지난 21일)]
"본인(정호성)하고 통화를 하고 확인을 했습니다. '본인은 전달한 사실이 있느냐' (물었더니) '그런 사실 없다'고 말했고요."
대통령이 직접 연관돼 있기도 하거니와 소통이 부족한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종훈/정치평론가]
"청와대 비서진들도 그렇고 내각도 똑같은 상황이라는 거예요. 장관들도 지금 누구도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한 마디 조언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이렇게 되면 그냥 시키는 일만 하는 거죠."
역대 최악의 비선실세 국정 농단 파문, 충격받은 국민들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대통령 지지도가 10%대로 급락한 가운데 언론은 경쟁적으로 추가보도를 이어가고 있고, 검찰의 수사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국정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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