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조의명 기자
조의명 기자
"2016 촛불시민혁명"
"2016 촛불시민혁명"
입력
2016-12-12 10:01
|
수정 2016-12-1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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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의 실체가 드러난 뒤 탄핵에 이르기까지, 정치권을 꾸준히 밀어붙인 힘은 촛불로 대변되는 시민의 목소리였습니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1차 대통령 담화 이후 3만에서 탄핵표결이 무산된 지난주 232만 명으로 급증.
하야, 조기퇴진, 개헌 등 갖가지 손익계산과 셈법에 골몰하던 정치권에 단호하게 탄핵을 요구했습니다.
SNS와 광장을 통해 주권자의 힘을 보여준 촛불명예혁명의 의미를 짚어봅니다.
------------------------------------------------------
[정세균/국회의장]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추미애 대표/더불어민주당]
"오늘은 국민이 승리한 날이다."
[유승민 의원/새누리당]
"가장 고통스러운 표결이었습니다."
대통령 직무정지/오후 7시 3분
"부덕과 불찰로 이렇게 큰 국가적 혼란을 겪게 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황교안/국무총리]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배보윤 공보관/헌법재판소]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써 재판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새로운 주말을 맞았습니다.
국가 최고권력자에게 그 권한을 내려놓게 한 주권자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 내려진 현장.
시민들은 다시 광장에 모였고, 어김없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훗날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될 오늘을 만든 건 지난 6주간 뜨겁게 타오른 촛불의 힘이었습니다.
[1차 대국민담화/10월 25일]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건, 진정성 없는 해명에 분노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사건의 실체가 하나둘 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광화문의 인파는 1주일 만에 열 배로 늘었습니다.
오만한 권력의 민 낯이 한 꺼풀씩 벗겨질수록 촛불을 든 사람들은 더욱 늘기 시작했고.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이 불면 꺼진다.."
찬바람이 몰아쳐도, 첫눈이 내린 날에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광화문을 넘어 전국으로 번져나갔습니다.
공을 국회에 넘긴 대통령.
여기에 정치권이 각자의 셈법으로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자 촛불은 더욱 거대한 파도로 일렁대며 주권자의 분노와 심판 의지를 경고했습니다.
"대통령이 어디 외국 가서 돈 벌어 옵니까? 자기 재산으로 (국가) 운영합니까? 우리가 세금 낸 걸로 해요. 근데 이런 날강도들이 어딨어?"
"한치의 노력도 없이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대학에 부정입학을 했습니다.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저희도 공부할 시간에 말이나 탈 걸 그랬습니다."
'이게 나라냐'는 실망과 분노, '이대로는 안 된다'는 다짐.
먹고살기 바빠서 그동안 침묵해 왔던 평범한 소시민들의 목소리는 어떤 정치인의 연설보다도 공감 가는 국민들 스스로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병훈 교수/중앙대 사회학과]
"그전만 하더라도 '각자도생'이랄까요. 한국 사회에서 우리 대부분의 모습이... 시민들 하나가 정말 살기 바쁘고 그런 존재처럼 생각됐는데 이번에 일이 터지고 이번에 광장에 큰 물줄기로 모아진 사람들 보면... 아 우리가 갖고 있는 힘이 이거였구나."
[정요섭]
"우리나라는 편의점 국가가 아닙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편의점에 들어가서 1+1을 사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저도 그렇지만, 대통령은 1+1으로 뽑지 않았습니다!"
거친 분노 대신 재치있는 풍자와 패러디로 비틀어진 정국을 날카롭게 꼬집기도 하고,
[조성해/고등학생]
"평소 같았다면 저는 역사책을 읽으며 다가올 모의고사를 준비했을 것입니다. 허나 저는 이 부당하고 처참한 현실을 보며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에 오늘 살아있는 역사책 속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금다교/초등학생]
"대통령은 최순실이 써 준 것을 꼭두각시처럼 그냥 읽었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이 국가를 좋게 만들려는 생각을 못하나 봅니다."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이 목소리를 낼 땐, 어른들은 대견함과 미안함을 함께 느꼈습니다.
경건하기만 하던 애국가는 광장에 모인 수십만 촛불의 마음을 비장한 나라 사랑으로 묶어냈습니다.
[전인권/가수]
"내가 그날 한 가지 잘했다고 생각한 건, 쇼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내 있는 마음을 다해 보자. 그렇게 노래했어요."
더 나은 미래,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광장에 모인 모두가 함께 나누었습니다.
[전인권/가수]
"세계적으로 가장 폼나는 시위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정말 잘 돼야 되는 거 아닌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 나는 뭐 정치하는 사람도 아니고 노래하는 사람이지만..."
광화문 한 귀퉁이 작은 구둣방.
38년 동안 이 골목을 지켜왔다는 나이 든 구두 미화원은 주말마다 달아오르는 촛불을 보며 30년 전 해묵은 기억을 떠올립니다.
[이세웅]
"예전에 군사정권 때는 뭐 최루탄 때문에 하루도 안 우는 날이 없었어요... 일하다가 도망가야 돼요. 저 세종문화회관 뒤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던 1987년 민주항쟁을 넘어 사상 최대 규모의 국민적 행동으로 기록될 2016년 촛불 혁명.
달라진 도심의 풍경만큼이나 집회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세웅]
"많이 달라졌죠. 평화적으로 하는 것 같고, 자발적으로 청소, 쓰레기도 주워 간다고 그러니까. 그거는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뭐 손댈 게 없지 청소할 게 없으니까."
비장함은 유쾌함으로, 격렬한 투쟁은 평화와 비폭력의 외침으로 진화했습니다.
촛불이 꺼지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쓰레기를 치우고, 날씨가 추워지면 낯선 타인과 기꺼이 따뜻한 차 한 잔, 든든한 요깃거리를 나눴습니다.
앞을 막아선 경찰대원과 다투는 대신 고생한다며 안아주고, 행렬을 가로막은 차 벽에 꽃 스티커를 붙이는
집회.
아이와 함께 촛불을 드는 걸 겁낼 필요가 없다는 믿음은 더 많은 이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됐습니다.
87년 그때의 젊은이들과 요즘 청년들은 광장에서 만나 서로를 격려하며 세대의 벽마저 허물었습니다.
[강남훈 교수/한신대 경제학과]
"유인물을 뿌리고 구호 한 번 외치면 감옥에 잡혀갔습니다. 잡혀가서 3년씩 감옥에 살았습니다. 그렇게 불행하던 시절을 살았지만 3년 감옥 살다 나오고 군대 갔다 오면 바로 취직이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세대보다 더 행복한 면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조은/청년참여연대]
"어떻게 보면 87세대 분들이나 그리고 지금 16세대 분들이나 그 당시 세대에 따른 고충은 확실히 있지 않은가. 그 고충의 결이 다르다 생각합니다."
민주, 정의, 평등 같은 추상적인 단어만으로는 풀어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갈등을 품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
최순실 사태는 관료사회와 정치, 재계와 교육, 문화계 등 우리 사회 전 분야의 병폐와 부조리를 낱낱이 드러낸 사건이었고, 모두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도 생겨났습니다.
[김동춘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87년 민주화보다 훨씬 더 폭이 넓고 깊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87년 민주화는 반독재 투쟁의 성격이 있었고, 이번의 경우에는 온갖 문제가 다, 예를 들면 사법, 그다음 관료 모든 문제가 다 관련돼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진면목을 사람들이 다 알게 되는 계기가 됐기 때문에. (훗날) '2016 명예혁명' 이런 형태로 기억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의미를 담은 1분간의 소등 행사.
이심전심으로 함께한 촛불 파도의 정신은 외신 보도를 통해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사이마 모신/CNN 서울특파원]
"6주 연속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광장을 따라 경복궁까지 가득 메웠습니다."
실망과 분노를 차분하게 갈무리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겁니다.
[이소베 세이지/후지TV 서울특파원]
"이러한 집회의 모습이 뜨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냉정을 유지하고... 굉장히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려와 존중이 돋보였던 촛불 민심, 하지만 때로는 준엄하고 날카롭게 주권자의 힘을 드러냈습니다.
정치권이 이해득실을 따지고 국회의 탄핵 결의가 좌초 위기에 놓이자 여야 정치인들의 휴대전화에는 항의 문자 폭탄이 쏟아졌습니다.
탄핵을 청원하는 온라인사이트에는 100만 건 가까이 청원이 몰렸고, 18원 후원금 보내기 운동 등 적극적으로 국민의 뜻을 주장하며 국회의원들을 압박했습니다.
며칠 전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집단지성을 모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빛을 발했습니다.
[박영선 의원/더불어민주당]
"이분이 김기춘 실장 본인 맞으시죠?"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죄송합니다. 저도 이제 나이 들어서.."
청문회 내내 최순실을 모른다며 발뺌하던 김기춘 전 실장을 무너뜨린 건 한 인터넷 커뮤니티 주식 갤러리의 네티즌 제보였습니다.
꼭 광장에 나오지 않더라도, 국민들은 일상 속의 작은 실천과 참여를 통해 저마다 마음속에 작은 촛불 하나씩을 밝혔습니다.
아파트 창문에, 시장골목 작은 가게 앞에도 어느 새부터인가 집회 현장에서만 볼 수 있던 손팻말과 현수막이 하나 둘 씩 내걸리기 시작했습니다.
[김은진/망원시장 상인]
"저희는 집회를 나가고 싶어도 생계를 위해서 나갈 수가 없는 실정이에요.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붙여놓고, 마음은 거기가 있는데..."
이른바 3.5%의 법칙.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미국 덴버대 정치학과]
"역사적으로 국민 3.5% 이상이 참여한 적극적, 지속적 운동이 실패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난 100년 세계사를 돌아볼 때, 국민 3.5% 이상이 뜻을 모아 목소리를 낸다면 어떤 강력한 정권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왔다는 겁니다.
여기엔 두 가지의 전제가 따릅니다.
폭력을 쓰지 않을 것,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
어쩌면 훗날 오늘 대한민국의 촛불 혁명은 우리뿐 아니라 세계인이 기억할 3.5% 법칙의 좋은 사례가 될지도 모릅니다.
탄핵 가결 이후 처음 열린 어제 촛불집회.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때가 떠오를 만큼 환호와 흥분에 사로잡힌 광장.
한편으론 특검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만큼, 촛불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우지수/대학생]
"기쁜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헌재 판결 날 때까지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을 외면한 권력의 눈앞에서 타오른 불꽃, 그렇다면 직접 나의 목소리를 전하겠다는 함성.
민심은 파도가 되어 흘렀고, 포기하지 않는 믿음은 거대한 바다를 이루며 권력의 중심을 향해 밀려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잦아들지는 몰라도, 촛불은 언제 다시 타오를지 모릅니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1차 대통령 담화 이후 3만에서 탄핵표결이 무산된 지난주 232만 명으로 급증.
하야, 조기퇴진, 개헌 등 갖가지 손익계산과 셈법에 골몰하던 정치권에 단호하게 탄핵을 요구했습니다.
SNS와 광장을 통해 주권자의 힘을 보여준 촛불명예혁명의 의미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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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국회의장]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추미애 대표/더불어민주당]
"오늘은 국민이 승리한 날이다."
[유승민 의원/새누리당]
"가장 고통스러운 표결이었습니다."
대통령 직무정지/오후 7시 3분
"부덕과 불찰로 이렇게 큰 국가적 혼란을 겪게 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황교안/국무총리]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배보윤 공보관/헌법재판소]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써 재판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새로운 주말을 맞았습니다.
국가 최고권력자에게 그 권한을 내려놓게 한 주권자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 내려진 현장.
시민들은 다시 광장에 모였고, 어김없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훗날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될 오늘을 만든 건 지난 6주간 뜨겁게 타오른 촛불의 힘이었습니다.
[1차 대국민담화/10월 25일]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건, 진정성 없는 해명에 분노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사건의 실체가 하나둘 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광화문의 인파는 1주일 만에 열 배로 늘었습니다.
오만한 권력의 민 낯이 한 꺼풀씩 벗겨질수록 촛불을 든 사람들은 더욱 늘기 시작했고.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이 불면 꺼진다.."
찬바람이 몰아쳐도, 첫눈이 내린 날에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광화문을 넘어 전국으로 번져나갔습니다.
공을 국회에 넘긴 대통령.
여기에 정치권이 각자의 셈법으로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자 촛불은 더욱 거대한 파도로 일렁대며 주권자의 분노와 심판 의지를 경고했습니다.
"대통령이 어디 외국 가서 돈 벌어 옵니까? 자기 재산으로 (국가) 운영합니까? 우리가 세금 낸 걸로 해요. 근데 이런 날강도들이 어딨어?"
"한치의 노력도 없이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대학에 부정입학을 했습니다.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저희도 공부할 시간에 말이나 탈 걸 그랬습니다."
'이게 나라냐'는 실망과 분노, '이대로는 안 된다'는 다짐.
먹고살기 바빠서 그동안 침묵해 왔던 평범한 소시민들의 목소리는 어떤 정치인의 연설보다도 공감 가는 국민들 스스로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병훈 교수/중앙대 사회학과]
"그전만 하더라도 '각자도생'이랄까요. 한국 사회에서 우리 대부분의 모습이... 시민들 하나가 정말 살기 바쁘고 그런 존재처럼 생각됐는데 이번에 일이 터지고 이번에 광장에 큰 물줄기로 모아진 사람들 보면... 아 우리가 갖고 있는 힘이 이거였구나."
[정요섭]
"우리나라는 편의점 국가가 아닙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편의점에 들어가서 1+1을 사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저도 그렇지만, 대통령은 1+1으로 뽑지 않았습니다!"
거친 분노 대신 재치있는 풍자와 패러디로 비틀어진 정국을 날카롭게 꼬집기도 하고,
[조성해/고등학생]
"평소 같았다면 저는 역사책을 읽으며 다가올 모의고사를 준비했을 것입니다. 허나 저는 이 부당하고 처참한 현실을 보며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에 오늘 살아있는 역사책 속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금다교/초등학생]
"대통령은 최순실이 써 준 것을 꼭두각시처럼 그냥 읽었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이 국가를 좋게 만들려는 생각을 못하나 봅니다."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이 목소리를 낼 땐, 어른들은 대견함과 미안함을 함께 느꼈습니다.
경건하기만 하던 애국가는 광장에 모인 수십만 촛불의 마음을 비장한 나라 사랑으로 묶어냈습니다.
[전인권/가수]
"내가 그날 한 가지 잘했다고 생각한 건, 쇼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내 있는 마음을 다해 보자. 그렇게 노래했어요."
더 나은 미래,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광장에 모인 모두가 함께 나누었습니다.
[전인권/가수]
"세계적으로 가장 폼나는 시위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정말 잘 돼야 되는 거 아닌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 나는 뭐 정치하는 사람도 아니고 노래하는 사람이지만..."
광화문 한 귀퉁이 작은 구둣방.
38년 동안 이 골목을 지켜왔다는 나이 든 구두 미화원은 주말마다 달아오르는 촛불을 보며 30년 전 해묵은 기억을 떠올립니다.
[이세웅]
"예전에 군사정권 때는 뭐 최루탄 때문에 하루도 안 우는 날이 없었어요... 일하다가 도망가야 돼요. 저 세종문화회관 뒤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던 1987년 민주항쟁을 넘어 사상 최대 규모의 국민적 행동으로 기록될 2016년 촛불 혁명.
달라진 도심의 풍경만큼이나 집회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세웅]
"많이 달라졌죠. 평화적으로 하는 것 같고, 자발적으로 청소, 쓰레기도 주워 간다고 그러니까. 그거는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뭐 손댈 게 없지 청소할 게 없으니까."
비장함은 유쾌함으로, 격렬한 투쟁은 평화와 비폭력의 외침으로 진화했습니다.
촛불이 꺼지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쓰레기를 치우고, 날씨가 추워지면 낯선 타인과 기꺼이 따뜻한 차 한 잔, 든든한 요깃거리를 나눴습니다.
앞을 막아선 경찰대원과 다투는 대신 고생한다며 안아주고, 행렬을 가로막은 차 벽에 꽃 스티커를 붙이는
집회.
아이와 함께 촛불을 드는 걸 겁낼 필요가 없다는 믿음은 더 많은 이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됐습니다.
87년 그때의 젊은이들과 요즘 청년들은 광장에서 만나 서로를 격려하며 세대의 벽마저 허물었습니다.
[강남훈 교수/한신대 경제학과]
"유인물을 뿌리고 구호 한 번 외치면 감옥에 잡혀갔습니다. 잡혀가서 3년씩 감옥에 살았습니다. 그렇게 불행하던 시절을 살았지만 3년 감옥 살다 나오고 군대 갔다 오면 바로 취직이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세대보다 더 행복한 면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조은/청년참여연대]
"어떻게 보면 87세대 분들이나 그리고 지금 16세대 분들이나 그 당시 세대에 따른 고충은 확실히 있지 않은가. 그 고충의 결이 다르다 생각합니다."
민주, 정의, 평등 같은 추상적인 단어만으로는 풀어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갈등을 품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
최순실 사태는 관료사회와 정치, 재계와 교육, 문화계 등 우리 사회 전 분야의 병폐와 부조리를 낱낱이 드러낸 사건이었고, 모두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도 생겨났습니다.
[김동춘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87년 민주화보다 훨씬 더 폭이 넓고 깊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87년 민주화는 반독재 투쟁의 성격이 있었고, 이번의 경우에는 온갖 문제가 다, 예를 들면 사법, 그다음 관료 모든 문제가 다 관련돼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진면목을 사람들이 다 알게 되는 계기가 됐기 때문에. (훗날) '2016 명예혁명' 이런 형태로 기억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의미를 담은 1분간의 소등 행사.
이심전심으로 함께한 촛불 파도의 정신은 외신 보도를 통해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사이마 모신/CNN 서울특파원]
"6주 연속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광장을 따라 경복궁까지 가득 메웠습니다."
실망과 분노를 차분하게 갈무리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겁니다.
[이소베 세이지/후지TV 서울특파원]
"이러한 집회의 모습이 뜨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냉정을 유지하고... 굉장히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려와 존중이 돋보였던 촛불 민심, 하지만 때로는 준엄하고 날카롭게 주권자의 힘을 드러냈습니다.
정치권이 이해득실을 따지고 국회의 탄핵 결의가 좌초 위기에 놓이자 여야 정치인들의 휴대전화에는 항의 문자 폭탄이 쏟아졌습니다.
탄핵을 청원하는 온라인사이트에는 100만 건 가까이 청원이 몰렸고, 18원 후원금 보내기 운동 등 적극적으로 국민의 뜻을 주장하며 국회의원들을 압박했습니다.
며칠 전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집단지성을 모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빛을 발했습니다.
[박영선 의원/더불어민주당]
"이분이 김기춘 실장 본인 맞으시죠?"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죄송합니다. 저도 이제 나이 들어서.."
청문회 내내 최순실을 모른다며 발뺌하던 김기춘 전 실장을 무너뜨린 건 한 인터넷 커뮤니티 주식 갤러리의 네티즌 제보였습니다.
꼭 광장에 나오지 않더라도, 국민들은 일상 속의 작은 실천과 참여를 통해 저마다 마음속에 작은 촛불 하나씩을 밝혔습니다.
아파트 창문에, 시장골목 작은 가게 앞에도 어느 새부터인가 집회 현장에서만 볼 수 있던 손팻말과 현수막이 하나 둘 씩 내걸리기 시작했습니다.
[김은진/망원시장 상인]
"저희는 집회를 나가고 싶어도 생계를 위해서 나갈 수가 없는 실정이에요.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붙여놓고, 마음은 거기가 있는데..."
이른바 3.5%의 법칙.
[에리카 체노웨스 교수/미국 덴버대 정치학과]
"역사적으로 국민 3.5% 이상이 참여한 적극적, 지속적 운동이 실패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난 100년 세계사를 돌아볼 때, 국민 3.5% 이상이 뜻을 모아 목소리를 낸다면 어떤 강력한 정권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왔다는 겁니다.
여기엔 두 가지의 전제가 따릅니다.
폭력을 쓰지 않을 것,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
어쩌면 훗날 오늘 대한민국의 촛불 혁명은 우리뿐 아니라 세계인이 기억할 3.5% 법칙의 좋은 사례가 될지도 모릅니다.
탄핵 가결 이후 처음 열린 어제 촛불집회.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때가 떠오를 만큼 환호와 흥분에 사로잡힌 광장.
한편으론 특검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만큼, 촛불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우지수/대학생]
"기쁜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헌재 판결 날 때까지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을 외면한 권력의 눈앞에서 타오른 불꽃, 그렇다면 직접 나의 목소리를 전하겠다는 함성.
민심은 파도가 되어 흘렀고, 포기하지 않는 믿음은 거대한 바다를 이루며 권력의 중심을 향해 밀려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잦아들지는 몰라도, 촛불은 언제 다시 타오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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