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정영훈 기자
정영훈 기자
그들은 어쩌다 카지노 미아가 됐나
그들은 어쩌다 카지노 미아가 됐나
입력
2017-01-16 10:32
|
수정 2017-01-1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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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경력만 15년이다. 카지노에서 날린 게 15억 정도 되니까 한 해 1억 원씩 날린 셈이다”
가산을 탕진하고 카지노 주변에서 장기체류하는 이른바 ‘카지노 미아’인 60대 남성의 푸념입니다.
그는 “강원랜드가 도박중독에 앞장서고 있으며, 도박중독 예방보다 오히려 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도박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정선에 눌러앉게 된 이른바 ‘카지노 미아’, 이들 가운데 300명을 조사한 심층 면접 자료가 공개됐는데요.
2580 카메라가 이들의 참담한 일상을 추적했습니다.
--------------------------------------
어둠이 내린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
평일인데도 카지노 게임장은 테이블마다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붐빕니다.
이곳에서 카지노 출입 경력만 50년, 이른바 '카지노 대부'로 불린다는 노인을 만났습니다.
[김 OO/82세]
"(오늘 뭐하실 거예요?) 방세를 석 달을 못 줬잖아. 오늘 (게임)할 형편이 안 돼. 돈이 있어야지 그런데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한 바퀴 돌다 보면 지금 자리가 더러 있을걸?"
얼마를 서성였을까..
김 씨는 금세 테이블 한 자리를 꿰차고 게임에 몰두합니다.
여기는 5만 원짜리 테이블...5천 원부터 (한 판 베팅이)5만 원까지.
한때는 하루에 수천만 원을 따고 잃으며 '큰 손'으로 통했다는 김 씨.
하지만, 지금은 베팅 한도가 가장 낮은 게임 테이블을 전전하는 이른 '생활 도박인'으로 전락했습니다.
김 씨는 70년대 충무로에서 몇 편의 영화를 제작했던 이른바 잘 나가던 영화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발을 들여놓은 카지노의 덫에 빠졌고 통제 불능의 도박중독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대박을 좇아 강원랜드 카지노 인근에 아예 눌러앉기로 작정한 뒤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김 씨를 다시 만난 건 카지노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정선군 고한읍.
[김 OO/82세]
"(강원랜드 카지노) 왔을 때 처음에 투숙했던 여관, (카지노 오셨을 때?) 처음에 왔을 때 여기 묵고 있었지."
이른바 '달방'이라 불리는 월세 여관방입니다.
[김OO/82세]
"(이렇게 오래 계실 줄은 몰랐겠네요.) 물론이지 하루 이틀 있다가 가고 했지, 장기적으로 있는 게 아니라 하루 이틀 있다가 가고 그러다가 남들이 방을 잡고 있으니까 경비가 절감되잖아."
어디론가 발걸음을 재촉하는 김 씨.
[김 OO/82세]
"(맛있게 드십시오.) 예 고맙습니다."
봉사단체가 무료로 나눠주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어른 한 명이 눕기도 비좁은 여관방이 82살 김 씨의 보금자리.
10년 넘게 이 생활입니다.
[김 OO/82세]
"이건 이 방에서 특실이야. 여기가, 다른 방은 이 방 절반밖에 안 돼."
처음 카지노에 발을 들인 건 1970년대.
그땐 돈 따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합니다.
[김 OO/82세]
"쌀 한 가마에 5천 원 하던 시절에 하루에 5만 원, 8만 원...쌀 열 가마 스무 가마를 따는 거라 한 며칠을 그래서 못된 마음에 ‘아니 대한민국에 이런 황금의 어장 같은 이런 곳이 있느냐’.."
김 씨는 마카오 등지로 해외 원정 카지노까지 다니게 됐고, 결국 자신도 모르게 도박 중독의 수렁에 빠졌습니다.
지난 2003년에 강원랜드가 문을 열자 있던 돈을 모조리 끌어다 베팅했습니다.
아들 명의의 아파트까지 담보로 잡고 대박을 노렸지만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10억 원이 순식간에 날아갔습니다.
[김 OO/82세]
"부자지간이지만 자식 놈 집을 애비가 없앴으니 무슨 염치로 자식을 봐. 그래서 완전 단절돼 가지고 아들내미 얼굴을 못 봐."
두 번이나 출입 정지를 당했지만 이곳을 끝내 떠나지 못했습니다.
[김 OO/82세]
"처음에는 1년, 나중에는 3년, 그래서 4년 동안 못 들어갔지. 여기 다니는 사람이 못 들어가면 사형선고 당한 것 같애."
인터뷰 중 어디론가 전화를 겁니다.
카지노 입장권을 신청하는 전화.
1번부터 100번까지, 운 좋게 앞번호가 당첨되면 그것만으로도 돈벌이가 됩니다.
[김 OO/82세]
"어쩌다 ARS 당첨되면 (다른 사람이 나한테) 자리 좀 비켜줘요. 해서 5만 원도 주고, 좋은 손님 만나면 10만 원도 주고, 불로소득인 것 같지만 카지노가 아니면 그런 수입 어디 가서 이 나이에 구경해."
김 씨의 남은 소망은 마지막 가는 길에 어느 누구에게도 신세 지지 않는 것, 그러나 그 목표를 이룰 수단마저도 도박입니다.
[김 OO/82세]
"우리 두 내외 장례를 치르려면 한 사람당 천만 원이 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2천만 원만 지금 손에 쥔다고 하면 단호히 (카지노를) 떠나겠어."
카지노 영업이 끝나는 새벽 6시.
강원랜드 주변은 인근 숙박업소와 찜질방에서 손님을 태우러 온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카지노가 다시 문을 여는 건 오전 10시.
그때까지 잠시 눈을 붙이려는 사람들이 찜질방으로 몰려가는 겁니다.
[찜질방 이용객]
"만약에 3만, 5만 원 넣고 30만 원짜리 쥐어봐. 그러면 맨날 거기 간단 말이야. 그런 거예요. 그러면 그 위에 이제 아줌마들 같은 경우는 목숨을 거는 거예요."
예순여덟 살 최 모 씨도 카지노와 찜질방을 매일같이 오갑니다.
[최 OO/68세]
"지금 들어가면 한 2~3시간 자고 10시 입장이니까 10시에 가서.."
넉넉한 가정에서 자라 대학 시절엔 유명 여성 잡지 모델로도 활동했다는 최 모 씨.
카지노에 빠진 뒤 재산도, 가족도 잃었습니다.
[최 OO/68세]
"(가족들은 몰라요?) 모르죠. 저희 집에서는 저만 이렇게 XXX니까 그냥 엄마가 혼자서 장사하는 줄 알고 있죠, 아들은. 그런데 이미 가게 다 말아먹고.."
강원랜드 카지노에 내려온 지 1년 반, 자신의 아파트와 가게를 모두 날리고 여러 사람에게 진 빚도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최 씨를 다시 만난 건 카지노 게임장에서였습니다.
[최 OO/68세]
"기계가 비어 있는 게 없죠? 어휴 (게임이) 안 돼 안 돼."
테이블에 앉고 채 2시간도 안 돼 수중에 있던 돈을 다 잃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건 최 씨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최 OO/68세]
"친구가 너는 어쩜 병아리 졸듯이 졸다가도 노름 얘기만 하고 강원랜드 얘기만 나오면 눈에서 광채가 난다고 그러는 거 보니까 저는 중독, 제가 생각해도 중독이에요. 친구가 강원랜드 게임할 돈으로 얼굴에 보톡스를 맞고 마사지를 해라 그러는 데 우리는 주름을 당길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게임을 하지.."
김 씨와 최 씨, 두 사람의 도박 중독 정도를 측정해봤습니다.
8점 이상은 당장 상담이 필요한 고위험군.
두 사람 모두 해당됐는데, 최 씨의 경우는 그 배에 가까운 수치가 나왔습니다.
[이승용/임상심리사 강원 도박중독 예방 치유센터]
"중독 수치를 한참 지나셔서 가장 만성화되셨고 심각성이 높게 나온 상태였어요. 이분 같은 경우 빨리 치료 받으시고..."
카지노 게임장에서 만난 또 한 명의 갬블러.
[박 OO]
"올해 들어 처음 왔어요. 지난달에는 세 번인가 네 번 왔고. (따셨어요, 좀?) 잃었다니까. (여기는) 기계가 유리하게 만들어놨어."
박 씨는 부인과 함께 카지노를 드나들다 둘 다 도박 중독에 빠졌습니다.
굴지의 대기업 임원까지 올랐던 박 씨, 재미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곳에 눌러앉게 됐습니다.
[박 OO]
"우리 마누라가 요즘은 더 적극적이에요. 온통 머리에 그 생각밖에 없겠죠. 11월 초에는 한 번 천5백만 원 정도 땄어요. 그러니까 더 자주 올라가고 베팅이 세지는 거야."
가랑비에 옷 젖듯 잃기 시작한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서울 강남의 고급아파트 전세금 등 재산 30억 원을 지난 1년 새 허공에 날렸습니다.
[박 OO]
"이 도박이라는 거는 딴 것만 기억하지 잃은 건 기억이 안 돼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마약보다 중독성이 더 강한 거 같아요. 그래서 잘 끊어지지가 않아요."
가산을 탕진하고 가족이 무너져 어쩔 수 없이 강원랜드 카지노 주변에 장기체류하는 이들은 대략 1천 명 안팎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통계조차 없습니다.
이들이 각종 범죄와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는 실태조사는 최근에서야 이뤄졌습니다.
카지노 인근의 한 사우나.
지난달 이곳에서 일하던 50대 남성이 보일러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거액을 잃고 인터넷 도박에까지 손을 댔다 여기저기서 빌린 빚만 잔뜩 쌓여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OO사우나 직원]
"돈 많이 해 먹고 그냥 자살했지. 남의 돈 빌려 가지고 서울에 사설 카지노 가서 돈 다 잃고..."
2580은 카지노 주변 장기체류자에 대한 첫 대규모 실태조사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조사에 응한 장기체류자 3백 명 가운데 절반이 카지노에서 3억 원 이상을 잃었다고 답했습니다.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우울 장애 유병률은 25%.
우리나라 성인 평균치보다 4배나 높았습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3년 이상 장기 체류할수록 자살 위험성은 올라갔습니다.
[김민혁 교수/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체류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런 식으로 자살 사고도 굉장히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체류자들의 열악한 삶의 환경들, 어디서도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절박한 체류의 경험들, 이런 것들이 많이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15억 원을 다 잃을 때까지 카지노 폐인으로 지내다 몇 해 전 스스로 카지노 출입정지를 신청한 정 모 씨.
아예 반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 만큼 독한 마음을 먹기까지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정 OO]
"도박을 끊겠다고 하기 전에, 그때는 그런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하죠. 그렇지. 어떻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다. 이렇게 해야 되나? 죽으려면..."
체감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늦은 밤.
칼바람 부는 거리에서 정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네 대리기사입니다. 네 빨리 가겠습니다."
낮에는 도시락 배달을,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 OO]
"(가족) 있어요. 있는데 단절돼 있지. 도박 때문에..그래서 내가 열심히 살아서 열심히 못 살았던 것이 있어서 보여주려 그래. 그래서 열심히 하는 거야."
카지노를 오가는 택시 안.
[손 OO]
"나중에 다시 한 번 올라가시는 한이 있더라도 안 될 때는 나오는 게 맞아요. 그러니까 많이 넣으면 안 된다 이거죠. 그런데 그게 함정이거든."
택시기사 손 씨 역시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카지노에 살다시피 했던 도박중독자였습니다.
자발적으로 출입정지를 시켜 도박은 끊었지만 이미 수십억 원을 잃은 상황.
[손 OO]
"처음에 대리 게임 시킬 때 용돈 좀 벌어 쓰라고 해 가지고 하루에 한 7백에서 천씩 줬어요. 사실 한 20억 이상까지는(손실 계산이) 어느 정도 그거 되는데 그 뒤에 거는 계산이 안 됩니다."
지난해 강원랜드 카지노에 60일 이상 출입한 사람은 7천8백 명.
한 달에 보름 이상을 두 달 연속 출입하면 강원랜드가 출입 정지 조치를 하지만 상담만 한 번 받으면 언제든 다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원종화 센터장/강원랜드 중독관리센터]
"경고 내지는 강한 출입 제한도 많은 검토를 해 왔는데요. 첫째는 국민 자유권 침해라는 법적인 문제가 있고요. 또 한 가지는 너무 강한 (출입제한) 제도가 풍선 효과로 오히려 반발 효과를 유발한다는 주장도 너무 강해서..."
결국, 제발로 찾아가 날 들여보내지 말아 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 출입이 사실상 자유롭다는 얘긴데, 자발적으로 출입 정지 신청을 할 정도면 이미 경제적, 정신적 파탄 상태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비판이 커지자 강원랜드는 4월부터는 두 달 연속 보름이상 출입한 사람들을 한 달간 강제 출입정지를 시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후보다는 예방적 조치가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장효강/강원센터장 한국 도박문제관리센터]
"단순히 출입일수 제한의 개념보다는 어떤 많은 돈을 지출하는 사람들, 도박에 많은 돈을 쓰는 사람들을 최대한 강원랜드에서 선별해내고, 선별된 사람들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치유 상담을 연계한다든가, 개입을 하는 방법이 중요해요."
지난해 강원랜드 카지노 입장객은 3백만 명을 넘어섰고, 영업이익은 최근 3년간 해마다 5천억 원대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도박 중독 치료나 예방사업에 쓴 돈은 전체 매출의 0.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카지노에 쌓여가는 돈만큼 함께 늘어가는 카지노 미아.
화려한 불빛 아래 감춰진 불편한 풍경입니다.
가산을 탕진하고 카지노 주변에서 장기체류하는 이른바 ‘카지노 미아’인 60대 남성의 푸념입니다.
그는 “강원랜드가 도박중독에 앞장서고 있으며, 도박중독 예방보다 오히려 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도박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정선에 눌러앉게 된 이른바 ‘카지노 미아’, 이들 가운데 300명을 조사한 심층 면접 자료가 공개됐는데요.
2580 카메라가 이들의 참담한 일상을 추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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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린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
평일인데도 카지노 게임장은 테이블마다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붐빕니다.
이곳에서 카지노 출입 경력만 50년, 이른바 '카지노 대부'로 불린다는 노인을 만났습니다.
[김 OO/82세]
"(오늘 뭐하실 거예요?) 방세를 석 달을 못 줬잖아. 오늘 (게임)할 형편이 안 돼. 돈이 있어야지 그런데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한 바퀴 돌다 보면 지금 자리가 더러 있을걸?"
얼마를 서성였을까..
김 씨는 금세 테이블 한 자리를 꿰차고 게임에 몰두합니다.
여기는 5만 원짜리 테이블...5천 원부터 (한 판 베팅이)5만 원까지.
한때는 하루에 수천만 원을 따고 잃으며 '큰 손'으로 통했다는 김 씨.
하지만, 지금은 베팅 한도가 가장 낮은 게임 테이블을 전전하는 이른 '생활 도박인'으로 전락했습니다.
김 씨는 70년대 충무로에서 몇 편의 영화를 제작했던 이른바 잘 나가던 영화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발을 들여놓은 카지노의 덫에 빠졌고 통제 불능의 도박중독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대박을 좇아 강원랜드 카지노 인근에 아예 눌러앉기로 작정한 뒤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김 씨를 다시 만난 건 카지노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정선군 고한읍.
[김 OO/82세]
"(강원랜드 카지노) 왔을 때 처음에 투숙했던 여관, (카지노 오셨을 때?) 처음에 왔을 때 여기 묵고 있었지."
이른바 '달방'이라 불리는 월세 여관방입니다.
[김OO/82세]
"(이렇게 오래 계실 줄은 몰랐겠네요.) 물론이지 하루 이틀 있다가 가고 했지, 장기적으로 있는 게 아니라 하루 이틀 있다가 가고 그러다가 남들이 방을 잡고 있으니까 경비가 절감되잖아."
어디론가 발걸음을 재촉하는 김 씨.
[김 OO/82세]
"(맛있게 드십시오.) 예 고맙습니다."
봉사단체가 무료로 나눠주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어른 한 명이 눕기도 비좁은 여관방이 82살 김 씨의 보금자리.
10년 넘게 이 생활입니다.
[김 OO/82세]
"이건 이 방에서 특실이야. 여기가, 다른 방은 이 방 절반밖에 안 돼."
처음 카지노에 발을 들인 건 1970년대.
그땐 돈 따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합니다.
[김 OO/82세]
"쌀 한 가마에 5천 원 하던 시절에 하루에 5만 원, 8만 원...쌀 열 가마 스무 가마를 따는 거라 한 며칠을 그래서 못된 마음에 ‘아니 대한민국에 이런 황금의 어장 같은 이런 곳이 있느냐’.."
김 씨는 마카오 등지로 해외 원정 카지노까지 다니게 됐고, 결국 자신도 모르게 도박 중독의 수렁에 빠졌습니다.
지난 2003년에 강원랜드가 문을 열자 있던 돈을 모조리 끌어다 베팅했습니다.
아들 명의의 아파트까지 담보로 잡고 대박을 노렸지만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10억 원이 순식간에 날아갔습니다.
[김 OO/82세]
"부자지간이지만 자식 놈 집을 애비가 없앴으니 무슨 염치로 자식을 봐. 그래서 완전 단절돼 가지고 아들내미 얼굴을 못 봐."
두 번이나 출입 정지를 당했지만 이곳을 끝내 떠나지 못했습니다.
[김 OO/82세]
"처음에는 1년, 나중에는 3년, 그래서 4년 동안 못 들어갔지. 여기 다니는 사람이 못 들어가면 사형선고 당한 것 같애."
인터뷰 중 어디론가 전화를 겁니다.
카지노 입장권을 신청하는 전화.
1번부터 100번까지, 운 좋게 앞번호가 당첨되면 그것만으로도 돈벌이가 됩니다.
[김 OO/82세]
"어쩌다 ARS 당첨되면 (다른 사람이 나한테) 자리 좀 비켜줘요. 해서 5만 원도 주고, 좋은 손님 만나면 10만 원도 주고, 불로소득인 것 같지만 카지노가 아니면 그런 수입 어디 가서 이 나이에 구경해."
김 씨의 남은 소망은 마지막 가는 길에 어느 누구에게도 신세 지지 않는 것, 그러나 그 목표를 이룰 수단마저도 도박입니다.
[김 OO/82세]
"우리 두 내외 장례를 치르려면 한 사람당 천만 원이 있어야 돼. 그러니까 나는 2천만 원만 지금 손에 쥔다고 하면 단호히 (카지노를) 떠나겠어."
카지노 영업이 끝나는 새벽 6시.
강원랜드 주변은 인근 숙박업소와 찜질방에서 손님을 태우러 온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카지노가 다시 문을 여는 건 오전 10시.
그때까지 잠시 눈을 붙이려는 사람들이 찜질방으로 몰려가는 겁니다.
[찜질방 이용객]
"만약에 3만, 5만 원 넣고 30만 원짜리 쥐어봐. 그러면 맨날 거기 간단 말이야. 그런 거예요. 그러면 그 위에 이제 아줌마들 같은 경우는 목숨을 거는 거예요."
예순여덟 살 최 모 씨도 카지노와 찜질방을 매일같이 오갑니다.
[최 OO/68세]
"지금 들어가면 한 2~3시간 자고 10시 입장이니까 10시에 가서.."
넉넉한 가정에서 자라 대학 시절엔 유명 여성 잡지 모델로도 활동했다는 최 모 씨.
카지노에 빠진 뒤 재산도, 가족도 잃었습니다.
[최 OO/68세]
"(가족들은 몰라요?) 모르죠. 저희 집에서는 저만 이렇게 XXX니까 그냥 엄마가 혼자서 장사하는 줄 알고 있죠, 아들은. 그런데 이미 가게 다 말아먹고.."
강원랜드 카지노에 내려온 지 1년 반, 자신의 아파트와 가게를 모두 날리고 여러 사람에게 진 빚도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최 씨를 다시 만난 건 카지노 게임장에서였습니다.
[최 OO/68세]
"기계가 비어 있는 게 없죠? 어휴 (게임이) 안 돼 안 돼."
테이블에 앉고 채 2시간도 안 돼 수중에 있던 돈을 다 잃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건 최 씨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최 OO/68세]
"친구가 너는 어쩜 병아리 졸듯이 졸다가도 노름 얘기만 하고 강원랜드 얘기만 나오면 눈에서 광채가 난다고 그러는 거 보니까 저는 중독, 제가 생각해도 중독이에요. 친구가 강원랜드 게임할 돈으로 얼굴에 보톡스를 맞고 마사지를 해라 그러는 데 우리는 주름을 당길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게임을 하지.."
김 씨와 최 씨, 두 사람의 도박 중독 정도를 측정해봤습니다.
8점 이상은 당장 상담이 필요한 고위험군.
두 사람 모두 해당됐는데, 최 씨의 경우는 그 배에 가까운 수치가 나왔습니다.
[이승용/임상심리사 강원 도박중독 예방 치유센터]
"중독 수치를 한참 지나셔서 가장 만성화되셨고 심각성이 높게 나온 상태였어요. 이분 같은 경우 빨리 치료 받으시고..."
카지노 게임장에서 만난 또 한 명의 갬블러.
[박 OO]
"올해 들어 처음 왔어요. 지난달에는 세 번인가 네 번 왔고. (따셨어요, 좀?) 잃었다니까. (여기는) 기계가 유리하게 만들어놨어."
박 씨는 부인과 함께 카지노를 드나들다 둘 다 도박 중독에 빠졌습니다.
굴지의 대기업 임원까지 올랐던 박 씨, 재미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곳에 눌러앉게 됐습니다.
[박 OO]
"우리 마누라가 요즘은 더 적극적이에요. 온통 머리에 그 생각밖에 없겠죠. 11월 초에는 한 번 천5백만 원 정도 땄어요. 그러니까 더 자주 올라가고 베팅이 세지는 거야."
가랑비에 옷 젖듯 잃기 시작한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서울 강남의 고급아파트 전세금 등 재산 30억 원을 지난 1년 새 허공에 날렸습니다.
[박 OO]
"이 도박이라는 거는 딴 것만 기억하지 잃은 건 기억이 안 돼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마약보다 중독성이 더 강한 거 같아요. 그래서 잘 끊어지지가 않아요."
가산을 탕진하고 가족이 무너져 어쩔 수 없이 강원랜드 카지노 주변에 장기체류하는 이들은 대략 1천 명 안팎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통계조차 없습니다.
이들이 각종 범죄와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는 실태조사는 최근에서야 이뤄졌습니다.
카지노 인근의 한 사우나.
지난달 이곳에서 일하던 50대 남성이 보일러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거액을 잃고 인터넷 도박에까지 손을 댔다 여기저기서 빌린 빚만 잔뜩 쌓여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OO사우나 직원]
"돈 많이 해 먹고 그냥 자살했지. 남의 돈 빌려 가지고 서울에 사설 카지노 가서 돈 다 잃고..."
2580은 카지노 주변 장기체류자에 대한 첫 대규모 실태조사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조사에 응한 장기체류자 3백 명 가운데 절반이 카지노에서 3억 원 이상을 잃었다고 답했습니다.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우울 장애 유병률은 25%.
우리나라 성인 평균치보다 4배나 높았습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3년 이상 장기 체류할수록 자살 위험성은 올라갔습니다.
[김민혁 교수/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체류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런 식으로 자살 사고도 굉장히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체류자들의 열악한 삶의 환경들, 어디서도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절박한 체류의 경험들, 이런 것들이 많이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15억 원을 다 잃을 때까지 카지노 폐인으로 지내다 몇 해 전 스스로 카지노 출입정지를 신청한 정 모 씨.
아예 반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 만큼 독한 마음을 먹기까지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정 OO]
"도박을 끊겠다고 하기 전에, 그때는 그런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하죠. 그렇지. 어떻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다. 이렇게 해야 되나? 죽으려면..."
체감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늦은 밤.
칼바람 부는 거리에서 정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네 대리기사입니다. 네 빨리 가겠습니다."
낮에는 도시락 배달을,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 OO]
"(가족) 있어요. 있는데 단절돼 있지. 도박 때문에..그래서 내가 열심히 살아서 열심히 못 살았던 것이 있어서 보여주려 그래. 그래서 열심히 하는 거야."
카지노를 오가는 택시 안.
[손 OO]
"나중에 다시 한 번 올라가시는 한이 있더라도 안 될 때는 나오는 게 맞아요. 그러니까 많이 넣으면 안 된다 이거죠. 그런데 그게 함정이거든."
택시기사 손 씨 역시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카지노에 살다시피 했던 도박중독자였습니다.
자발적으로 출입정지를 시켜 도박은 끊었지만 이미 수십억 원을 잃은 상황.
[손 OO]
"처음에 대리 게임 시킬 때 용돈 좀 벌어 쓰라고 해 가지고 하루에 한 7백에서 천씩 줬어요. 사실 한 20억 이상까지는(손실 계산이) 어느 정도 그거 되는데 그 뒤에 거는 계산이 안 됩니다."
지난해 강원랜드 카지노에 60일 이상 출입한 사람은 7천8백 명.
한 달에 보름 이상을 두 달 연속 출입하면 강원랜드가 출입 정지 조치를 하지만 상담만 한 번 받으면 언제든 다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원종화 센터장/강원랜드 중독관리센터]
"경고 내지는 강한 출입 제한도 많은 검토를 해 왔는데요. 첫째는 국민 자유권 침해라는 법적인 문제가 있고요. 또 한 가지는 너무 강한 (출입제한) 제도가 풍선 효과로 오히려 반발 효과를 유발한다는 주장도 너무 강해서..."
결국, 제발로 찾아가 날 들여보내지 말아 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 출입이 사실상 자유롭다는 얘긴데, 자발적으로 출입 정지 신청을 할 정도면 이미 경제적, 정신적 파탄 상태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비판이 커지자 강원랜드는 4월부터는 두 달 연속 보름이상 출입한 사람들을 한 달간 강제 출입정지를 시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후보다는 예방적 조치가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장효강/강원센터장 한국 도박문제관리센터]
"단순히 출입일수 제한의 개념보다는 어떤 많은 돈을 지출하는 사람들, 도박에 많은 돈을 쓰는 사람들을 최대한 강원랜드에서 선별해내고, 선별된 사람들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치유 상담을 연계한다든가, 개입을 하는 방법이 중요해요."
지난해 강원랜드 카지노 입장객은 3백만 명을 넘어섰고, 영업이익은 최근 3년간 해마다 5천억 원대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도박 중독 치료나 예방사업에 쓴 돈은 전체 매출의 0.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카지노에 쌓여가는 돈만큼 함께 늘어가는 카지노 미아.
화려한 불빛 아래 감춰진 불편한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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