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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공윤선 기자

‘렌트프리’의 덫

‘렌트프리’의 덫
입력 2017-02-06 10:44 | 수정 2017-02-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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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료 1년치를 자신들이 줄 테니 들어와서 장사만 하라고 한다면 누구든 귀가 솔깃하지 않을까요?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피자집을 개업한 임 모 씨도 바로 이런 조건으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년치 임대료를 내준다던 분양대행사는 약속한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고 결국 임 씨는 장사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 보증금 2억을 포기하고 나왔습니다.

    임 씨 같은 손해를 본 가게는 수십 곳에 달하는데.. 불황에 빈 상가가 늘고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분양도 원활하지 않아지자 최근 등장한 ‘렌트프리’.

    임차인에게 월세를 일정기간 지원하는 방법으로 분양과 임대를 해결하는 건데, 임차인 입장에선 이렇게 돈을 받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게 되는 허점이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렌트프리의 함정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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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의 한 신도시

    내년 봄 준공을 앞둔 한 대형 상가의 분양과 임차인 모집이 한창입니다.

    문의를 했더니 귀가 솔깃한 제안을 먼저 꺼냅니다.

    입주만 하면 1년치 월세는 안 내도 된다는 겁니다.

    [A 상가 분양 대행사]
    "사장님께서 임차로 물건 진행하시게 되면 1년 동안은 월세를 안 내세요."

    월세 300만 원, 12개월치를 시행사가 한꺼번에 목돈으로 먼저 줄 테니 그 돈으로 달마다 월세를 내라는 설명.

    [A 상가 분양 대행사]
    "월세 300이 다하면 1년치면 3600(만원)3년이면 (월세가)1억이 될 거 아니에요, 1억 천인데 그중에서 3천은 빼도 되는 거죠. 회사에서 일시불로 한꺼번에 넣어드려요."

    용인의 또 다른 신규 상가 분양 사무실.

    최대 6개월까지, 마찬가지로 가게를 공짜로 쓸 수 있다고 말합니다.

    [B 상가 분양 대행사]
    "최소 3개월에서 최대 6개월까진 어떤 시설물을 가지고 인테리어 하시느냐에 따라서 조정이 가능하죠."

    근처 또 다른 상가도 똑같은 제안을 합니다.

    [C 상가 분양 대행사]
    "(보증금)8천에 (월세)500가 시구요. 1년 렌트 프리에요. 회사에서 내주는 거에요 월세를 회사에서 뒷받침을 해드리는 거죠. 임차인들을 장사를 할 수 있게끔."

    이렇게 일정기간 임대료를 면제해주고 임대차 계약을 맺는 것을 소위 렌트프리라고 합니다.

    렌트 프리는 원래 건물주들이 사무실 장기 임차인을 구하기 위해 제공했던 일종의 서비스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불황으로 임차인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상가에서도 이런 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임차인들에게는 솔깃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지만, 이것만 보고 가게를 얻었다가 크게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 상가.

    먹자골목으로 유명한 상권에 자리 잡고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 상가만 1층 대부분이 비어 있습니다.

    사용했던 뚝배기에 테이블, 의자가 그대로 남아있는 고깃집부터.

    바로 옆 김밥집까지.

    모두 영업을 서둘러 접은 듯 보입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이곳에서 지난 2015년 10월 주점을 연 한상욱 씨는, 115제곱미터 가게를 보증금 2억, 월세 1,600여만원를 주기로 하고 2년 동안 계약했습니다.

    주변 다른 상가보다 월세가 많게는 두 배까지 비쌌지만 그래도 가게를 연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상가 분양 대행사가 내세운 '렌트 프리' 조건 때문.

    14개월치 월세 2억 3천만 원을 분양 대행사가 한꺼번에 줄 테니 그 돈으로 가게 주인에게 다달이 월세를 내면 된다는 겁니다.

    [한상욱(가명)/임차인]
    "다른 이유 없고요. 지나가다 월세 지원 그 조건을 보고 들어갔어요. 저 같은 경우 14개월까지 월세를 지원해주면 그 금액이 대략 2억 3천이 됐어요."

    한 씨는 당장 2억 원에 달하는 돈을 먼저 손에 넣고 가게를 키워나가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보증금을 내고 장사를 시작하자마자 분양 대행사는 말을 바꿨습니다.

    당장 돈이 없다며 다달이 나눠 주겠다고 말을 바꿨고, 그마저도 넉 달만 주다 멈췄습니다.

    [한상욱(가명)/임차인]
    "그냥 매달 미뤘죠. 전화를 하니까 그때 언제까지 주겠다. 근데 지금까지 또 약속을 안 지켰어요."

    수백만 원을 들여 가게 홍보도 해봤지만 장사가 잘 안 돼 매달 적자만 천만 원 넘게 났고, 결국 운영 자금이 모자라 5개월 만에 영업을 접었습니다.

    [한상욱(가명)/임차인]
    "돈만 있었으면 계속 한번 해봤겠죠. 투자된 금액이 보증금 2억이지만 투자는 2,3억 더 됐겠죠. 4억 5억이겠죠! 그걸 누가 5개월 미만으로 하고서 접겠어요. 아무리 장사가 안 돼도."

    역시 이 상가에서 1년여 동안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김민영 씨.

    33제곱미터 남짓한 가게를 쓰는데 보증금 5천만 원에 매달 360만 원을 내고 있습니다.

    김씨 역시 12개월 렌트프리 금액 4천여만 원을 한꺼번에 받는다는 말에 덜컥 계약을 했지만 분양 대행사는 준다는 말 뿐,

    지금까지도 천 3백여만 원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골손님도 꽤 확보했지만, 애초에 주변 상가보다 임대료가 비쌌던 탓에 직원 1명 월급에 월세까지 내고 나면 적자입니다.

    [김민영(가명)/임차인]
    "처음에 이제 돈 안 들어왔을 때 3개월이 진짜 멘붕이 와가지고 이제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았거든요. 근데 그런 거 생각하면 막 일도 못하고 진짜 그때는 죽이고 싶었죠."

    이곳에 입점한 가게 14곳 중 절반 정도가 이렇게 폐업하거나 폐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상가 관리사무소 관계자]
    "저기 하나에 임대료 400,500만 원이 됐어요. 어떤 데는 건너편 600까지 줬어요. 그러니까 임차인들이 견디질 못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 (월세가) 반으로 떨어졌어요. 반으로. 근데도 (상가가)안 나가."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임차인들뿐이 아닙니다.

    지난 2015년 말 이곳의 35제곱미터짜리 상가를 13억 원을 주고 분양받은 김 모 씨.

    분양가가 다소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월세 520만 원에 2년 동안 임대차 계약이 성사됐다는 분양 대행사 말에 안심하고 상가를 구입했습니다.

    [김 OO/상가 임대인]
    "11평 정도 되는 공간에서 월 520만 원의 임대료가 나올 수 있느냐 의심은 계속 드는데 상가들이 다 입점이 돼 있으니까 임차인을 갖다가 자기들이 책임 분양을 해주는 거죠."

    그런데 첫 달부터 임대료가 제때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김 OO/상가 임대인]
    "임대료를 제때 주는 게 아니라 막 1개월씩 2개월씩 밀려서 자꾸 지연시켜요. 첫 달부터 계속 그러니까 저희는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임차인이 폐업까지 하자 그제야 가게 주인들은 분양 대행사가 렌트프리를 내걸고 임차인을 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정리하면, 분양대행사가 월세 1년치를 대신 내준다는 말로 임차인을 모으고, 분양 주들에게는 세입자를 다 구해놨으니 안심하고 분양받으라고 홍보한 겁니다.

    [유 OO/상가 임대인]
    "월세 걱정은 없다 그래서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임대를 맞추려고 무리하게 (분양 대행사가) 2억이라는 돈을 주기로 한 거였죠."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려 해도 월세가 주변에 비해 너무 비싸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고, 애초에 높은 가격에 분양을 받은 탓에 월세를 내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정 OO/상가 임대인]
    "대출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가뜩이나 지금 금리도 많이 올랐잖아요. 지금 이제 뭐 임대료를 그렇게 팍 깎아버리면 대출이자 내고 재산세 내고 뭐 내면 그냥 은행 좋은 일만 하게 되는 거죠."

    가진 돈 전부를 투자해 노후 대책으로 얻은 상가는 비어 있고 은행 대출금만 내고 있는 상황.

    [김 OO/상가 임대인]
    "판교에 아파트 전세를 살았는데 전세금이 5억이 되요. 그래서 그 전세금을 빼가지고 본가에 들어가면서 그 돈으로 산 거에요. 저도 그냥 올인한거에요.

    [정 OO/상가 임대인]
    "아버지가 40년 동안 일하신 돈에다 퇴직금에다 대출 받아가지고 그냥 40년의 모든 게 거기에 들어갔는데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거에요."

    현재 이 상가의 일부 임차인들과 임대인들은 해당 분양 대행사 관계자들을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고 분양계약 취소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도에서도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임차인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일산의 한 대형 상가.

    이곳 임차인들이 한곳에 모였습니다.

    [OO상가 임차인]
    "월세 같은 경우에도 매달 다달이 때 되면 내려가가지고 사람 뭐 거지 용돈 얻듯 이가 가지고."

    "지금 여기 있는 분들 중에 월세가 안 들어오면 매출로 월세 내고 이익을 보는 분들이 있으시냐고요."

    "이익이 아니라 생활도 못해요."

    이곳 역시 분양 대행사가 일부 임차인들에게 한꺼번에 지급하기로 했던 1년치 월세 지원금을 주지 않은 상황.

    그나마 거세게 항의를 하자 매달 한 달치씩 입금해주고 있습니다.

    한창 저녁 장사를 할 시간이지만 텅 비어 있는 가게.

    김명자 씨 부부는 작년 10월 39제곱미터 남짓한 상가를 월세 250만 원을 주고 얻었습니다.

    1년 월세 지원금 3천여만 원을 목돈으로 받아 가게 운영비와 병원비 등으로 쓸 생각이었지만 돈도 일부만 받고 장사도 안 돼 가게 문만 열어놓고 있습니다.

    [이용기(가명)/상가 임차인]
    "만약에 이걸(월세 지원금) 못 받게 되면.. 완전히 이제 빚쟁이가 되는 거지, 빚이 많이 불어나고..열심히 하긴 하는데."

    [김명자(가명)/상가 임차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생과일주스 가게, 와인 주점, 프렌차이즈 식당, 피자집, 치과 등

    한꺼번에 월세지원금을 받지 못해 곤란에 처한 임차인들은 10여 명이 넘습니다.

    [윤 OO/상가 임차인]
    "제가 한꺼번에 받기로 한 금액이 한 3천6백만 원 정도 되는데 근데 그 돈을 받아서 (다른 곳에)지급을 해야 되는데 그거를 지급을 못 하다 보니까 원치 않게 빚쟁이가 돼 버렸죠."

    [최 OO/상가 임차인]
    "여기 바로 옆 건물만 해도 저희 같은 평수에 비하면 저희 월세 반도 안 돼요. 근데 이제 여기에 들어온 계기는 비싼 거 알면서도 렌트프리를 해주면서 1년치 목돈을 준다는 것 때문에 거기에 메리트가 있어서 들어온 거지."

    [서 OO/상가 임차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가지고 장사가 잘되면 그래도 그냥 유지해나가는데 장사까지 안되니까 지금 월세를 안 내도 인건비 주기가 힘들 때도 있고."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상가의 분양 대행사와 시행사 관계자들은 법인 이름만 다를 뿐, 앞서 얘기했던 강남의 분양 대행사 운영자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분양 뒤 소송까지 휘말렸지만 새로운 법인 이름으로 경기도 일산의 미분양 상가를 사들여 또다시 렌트 프리로 분양과 임차인 모집을 한 겁니다.

    해당 분양 대행사는 계획한 대로 자금 유통이 잘 되지 않아 문제가 있었을 뿐, 다음 달까지는 모두 해결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분양 대행사 대표]
    "분양이 된 한,두 업장들이 계약을 하고 잔금 이행을 안 해버리는 바람에 3월에는 남아있는 (월세지원금)건 다 일시에 지급을 하는데."

    또, 분양 주들이 렌트프리로 임차인을 모집한 걸 모르고 있었던 건 임시로 고용한 영업직원들 탓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영업사원 입장에서는 이 렌트프리를 얘기하면 보러온 사람이랑 계약이 안 될 거 같으니 그 건에 대해서는 누락시킨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

    렌트 프리는 계약대로 지켜지기만 한다. 임차인들의 부담은 낮추면서 상권은 빠르게 활성화시킬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악용될 경우 임차인이 이처럼 낭패를 볼 수 있고, 막상 사기죄로 처벌하기도 힘든 함정이 있습니다.

    [이송헌 변호사]
    "10개월치 돈을 줘야 하는데 한 4개월치만 주고 더 이상 주지 못하는 경우에 우리 법원이나 검찰, 경찰은 여기에 대해서 아주 소극적으로, 사기가 아니라는 판단을 많이 해요. 그래서 아주 조직적으로 짜여진 사기꾼들한테는 우리 법원이나 검찰, 경찰이 속수무책입니다."

    그렇다면, 못 받은 월세지원금은 받을 수 있을까?

    민사 소송을 제기할 경우 승소할 가능성이 높지만, 분양 대행사에 돈이 없거나 다른 곳으로 빼돌려 놓으면 이 역시 속수무책입니다.

    [이송헌 변호사]
    "그 분양 대행사가 폐업해 버리거나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판결은 이길지언정 그걸 현금화해서 그 사람한테 드리는 것는 또 별개의 문제거든요."

    서울의 핵심 상권인 가로수길도, 강남대로도, 상가 매물이 넘쳐납니다.

    이대역 인근 큰길은 아예 비어 있는 곳을 찾는 게 더 쉬울 정도입니다.

    [가로수길 공인중개사 관계자]
    "요새 권리금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8천 원래는 1억 8천 정도까지 내놔도 안 나가고 하니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분기 8.9%였던 전국의 중대형 가게 공실률은 지난해 3분기 10.7%로 증가했습니다.

    핵심 상권인 홍대, 강남대로 등에 공실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시기일수록 현란한 광고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박원갑/부동산 수석전문위원 KB 국민은행]
    "좋은 곳이면 그렇게 화려하게 광고를 할 필요도 없고 조건을 걸 필요가 없는 거겠죠. 그런데 뭔가 거기에 화려한 포장이 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히 함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거죠."

    또, 관련 사기 사건이 증가할 수 있는 만큼 수사당국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송헌/변호사]
    "수사기관의 소극성, 법원의 소극성 이런 것들로 인해서 사실은 사기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만 변제하는 사기에 대해서는 우리 법원, 검찰이 소극적입니다. 이런 거는 좀 판례가 변경이 되어 가지고."

    부동산을 거래하는 일은 일차적으로 당사자의 선택이고 책임이지만 비즈니스와 사기의 모호한 경계에서 법망을 피해가는 신종 범죄가 생겨나고, 그로 인한 애꿎은 피해자가 늘어난다면 이를 꼼꼼히 감시하는 것 역시 놓쳐선 안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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