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공윤선 기자
암 진단 받았는데 치료비 못 준다?
암 진단 받았는데 치료비 못 준다?
입력
2017-05-01 11:26
|
수정 2017-05-0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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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학병원에서 직장암 판정을 받은 윤 모 씨는 8년 동안 납입한 종신보험 약관에 따라 암 진단비 1천만 원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경계성 종양이라며 200만 원만 지급했습니다.
두통으로 병원에 갔다가 뇌경색 판정을 받은 이 모 씨도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보험사들의 거절 근거는 보험사 자문의사의 판정.
하지만, 막상 의료자문을 해준 의사가 누구인지, 정말 의사가 판정한 것인지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이유로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아플 때를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고도 제대로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는 가입자들이 적지 않지만, 해결방법은 소송뿐. 결국 많은 가입자들이 보험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주치의와 자문의사의 의료판정은 왜 다른지, 보험사 자문의사 제도의 허점과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은 없는지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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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의 한 보험회사 건물 앞.
윤혁씨가 일인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윤혁]
"억울함과 분함과 진짜 고통 속에 살았는데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윤혁씨가 보험회사와 기나긴 분쟁을 시작한 건 지난해 3월.
배가 아파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직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 뒤 보험사에 암 진단금 1천만 원을 청구한 게 발단이었습니다.
당연히 며칠 안에 보험금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윤씨.
[윤혁]
"암 진단서인데 암 진단받았잖아요. 그럼 끝난 거 아니에요? 뭐가 더 필요해요?"
하지만, 보험사는 윤씨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해당 보험 회사가 암 진단금을 주지 않은 이유는 간단히 말해 윤혁씨가 '암'에 걸린 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대학병원에서 '암'을 진단받아 수술까지 받았는데, '암'이 아니라는 보험회사 어떻게 된 일일까요?
윤혁씨가 받은 보험금 청구 결과 안내서입니다.
제3 의료자문 결과 암이 아니라 '경계성 종양'으로 봐야 한다는 소견이 나와 경계성 종양 진단금인 200만 원만 지급하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제3 의료 자문'이란 보험사가 계약한 자문 의사에게 피보험자의 질환에 대해 소견을 묻는 것으로 피보험자의 의료 기록을 의사에게 보내면 의사가 자문료를 받고 소견서를 써주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자문료는 한 건에 2, 30만 원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험사가 윤씨의 수술까지 한 주치의의 진단서는 믿지 않고, 의료기록만 본 자문의사의 소견을 근거로 지급할 보험금을 깎은 겁니다.
'암'을 진단한 고려대 병원은 거듭 '경계성 종양'이 아니라 '암' 이 맞다고 확인해 줬지만
[고려대학교안산병원]
"저희 병원에서는 공식적으로 암이라고 인정하는 거고요. 저희 교수님도 확실히 암이라는 얘기를 하셔요. 그레이드1이라는 것은 암에만 붙습니다."
보험사는 '경계성 종양'이란 주장을 고수한 채, 어느 의사의 자문을 받았는지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윤혁]
"제가 그러면 그 의사가 어디 의사냐, 어느 병원이냐 알려달라고 그렇게 3개월을 싸웠죠. 의사의 프라이버시라고 그걸 끝까지 안 알려줘서."
결국, 금감원에 민원을 넣어 3개월 만에 자문 병원을 알아낸 윤혁씨.
해당 의사에게 '경계성 종양'이라고 진단한 이유를 묻자 의사는 돌연 '암'이 맞다며 말을 바꿨다고 했습니다.
[윤혁]
"1번부터 5번까지가 다 암이라는 (고대 병원) 설명이 있어요. 여기 녹취가. 녹취를 들려주니까 그제서 잘못했다고 시인을 하면서 경계성 종양이라고 한 걸 취하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보험회사는 그제서야 8백만 원의 암 진단금을 추가로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보험사와 분쟁을 벌이는 동안 제대로 암 치료에 전념할 수 없었던 윤씨는 지난해 10월 폐암까지 걸려 또다시 수술을 받았습니다.
[윤혁]
"괜히 내가 그 보험 들어가지고 직장암만 걸렸으면 지금 다 났었을 텐데 신경을 엄청 쓰고 의사도 암 딱 보더니 이렇게 커지는 게 아닌데 갑자기 커졌다는 거에요."
보험사 의료자문을 근거로 보험금을 받지 못한 가입자는 적지 않습니다.
지난 2014년 말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뇌경색 진단을 받은 이동헌 씨도 지금까지 뇌경색 진단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뇌경색의 진단 근거가 없다는 게 의료자문 소견이었습니다.
[이동헌]
"그 자문의사가 (보험)회사로부터 돈을 받은 사람이에요. 그 사람의 판정을 내가 믿어라? 그거는 좀 얼토당토 않는 소리 같아요."
전문의들은 뇌질환의 경우 특히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의료기록만으로 판단한 자문의의 소견보다는 직접 진찰한 주치의의 소견을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구자성 교수 강남성모병원 신경외과]
"(의무 기록에) 그 증상의 어떤 느낌이랄까 세부적인 걸 다 쓸 수가 없거든요. 근데 그걸 복사해서 갖다주면 제3자는 저라고 해도 아주 엄격하게 얘기하면 이 자료만 가지고 판단이 어렵다."
게다가 자문의사는 누구인지, 어떤 의료기록을 근거로 판단했는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어 책임을 묻기도 어렵습니다.
[A 보험사 직원]
"당사 간 의료 자문을 할 때는 그분에 대해서 이게 공개가 안 되도록 서로 그렇게 자문 계약을 처음에 맺습니다."
자문의의 의료적 판단이 틀렸다고 여길 경우 이를 입증해야 하는 수고는 온전히 가입자의 몫입니다.
태아보험에서 보장한 딸의 몽고반점 레이저치료비를 받아온 김진경 씨
지난 2월 보험사 의료 자문에 의해 딸의 반점이 약관에서 보장하는 종류가 아니라는 소견이 나오면서 보험금을 못 받게 됐습니다.
[김진경(가명)]
"내가 무슨 근거로 어떻게 믿냐. 너희가 전문의가 피부과 보더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아닌 사람을 썼을 수도 있고, 그냥 간호사가 썼을 수도 있고 증거가 없는데 내가 왜 어떻게 믿어서."
오기가 생긴 진경 씨는 딸을 데리고 다니며 대학병원 두 곳에서 진찰을 받았고, 원래 진단과 같은 진단서를 추가 제출해 한 달여 만에 다시 보험금을 받게 됐습니다.
[김진경(가명)
"보험사의 행태에 부당하게 계속 참을 수는 없었어요. 그게 얼마 되지도 않는 금액이지만 저희가 매달 매달 얼마씩 돈을 내고 그 돈에 대해서 정당한 권리를 청구하는 거거든요."
자체 의료 자문을 근거로 보험 계약을 해지하거나 보장내용을 줄이기도 합니다.
김영태 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6월 보험회사로부터 그동안 입원비로 받은 3천 7백여만 원의 보험금을 반환하라는 '지급 명령서'를 받았습니다.
자체 의료 자문 결과 최근 8차례에 걸친 88일의 입원이 병세에 비해 지나치게 길었다는 것
이미 심사를 거쳐 지급한 보험금이 부당 이득금이라는 겁니다.
[김영태(가명)]
"자기네들 보험사 자체적으로 심사를 해가지고 삭감할 건 삭감했어요. 다 준 게 아니고 그러니까 저희 어머니는 그냥 주는 대로 받은 거죠."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김씨가 법원에 이의 신청을 하자 보험사는 조정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동안 지급한 입원비를 달라는 소송을 걸지 않을 테니 앞으로 입원 일당은 보장하지 않는 걸로 계약내용을 바꾸자는 거였습니다.
[김영태(가명)]
"입원 일당 담보는 전부 삭제하자. 앞으로 보험금이 많이 나갈 거 같으니까 담보를 삭제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라는 거죠."
이런 경우 대부분의 보험 계약자는 소송 비용과 복잡한 절차에 부담을 느껴 보험사의 조정안에 동의하게 마련입니다.
[김계환 변호사]
"변호사 비용도 몇백만 원 들어가죠. 당장 덜컥 겁이 나죠. 그렇게 되면 사실 보험사 요구의 상당부분 응하는 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거죠. 보험사는 그렇게 소송에서 10명 중 한 명만 해지해도 남는 거죠."
사실상 보험사가 '의료 자문제도'를 보험 계약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 소비자원은 최근 보험금 지급 관련 피해 신청 중 보험사 자체 의료 자문 관련 내용이 20%를 넘어선다고 밝혔습니다.
[황기두 팀장 한국소비자원 금융보험팀]
"법적 근거로 보면 주치의는 진단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보험회사는 진단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요. 의료적으로,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의료 자문을 해서 받은 결과를 더 중요시해서 그걸 근거로 못 준다고 하는 거죠."
오랫동안 보험관련 일을 해온 손해사정사는 '의료 자문 소견'이 보험사의 수익 관리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변운연/손해사정사]
"당연히 지급해야 될 보험금을 못 주겠다. 이렇게 하면 그건 또 불법행위고 뭔가는 덜 주고 안 줘야 되는데 계약자에게 뭐라고 변명을 해야 될까 방법은 보험회사가 의료 자문 의사의 자문서밖에 없는 거에요."
보험회사 입장에서 보면 '의료 자문제도'는 보험 사기 등을 가려내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그 과정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진다면 가입자들의 불만도 줄어들 텐데요. 전문가들은 보험사들의 의료 자문 동의 절차부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생명보험협회에 가입된 생명보험사 21곳의 보험금 청구 서류를 살펴봤습니다.
형식만 약간 다를 뿐 내용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개인정보 처리 동의 항목 중 설명 일부에 '의료 자문 및 심사' 가 포함돼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으면 보험금 지급이 불가능할 수 있다거나 아예 불가능하다고 못 박은 보험사도 있습니다.
마치 의료자문에 동의하지 않으면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험금 청구서를 만들어 놓은 겁니다.
[황기두 팀장 한국소비자원 금융보험팀]
"동의를 하지 않아도 보험금을 줘야죠. 의사의 진단을 가지고 보험금을 줘야 되는데 그걸 동의를 해주지 않으면 보험금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 거는 분명히 잘못된 겁니다."
게다가 보험 계약자가 가입 당시 보험사 의료 자문에 따라 보험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듣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 OO 보험설계사]
"자기네(보험회사)들 손해인데. 그러니까 분명히 설계사들은 판매만 시킬 거고 회사에서 '야 이거대로 그냥 팔면 돼' 무조건 (보험금이 지급)된다고 하죠."
의료 자문을 한 병원과 의사를 밝히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의료 기록 같은 개인 정보를 제3자에게 위탁, 제공하는 경우 해당 정보를 누가 처리하는지를 밝히도록 돼 있습니다.
보험사가 의료 자문을 맡긴 컨설팅 업체나 병원, 의사를 계약자는 물론 홈페이지 등을 통해 밝힐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생명 보험 회사 21곳을 확인해 보니 단 2곳 만이 규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전문가는 명백한 법규위반이라고 지적합니다.
[김경환 변호사]
"고객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제3자에게 제공할 때는 다시 말해서 자문 의사가 되겠죠. 자문의사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만 보호법령에 따르면 적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익명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현행법에 따르면 어쨌든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게 돼 있습니다."
의료자문의 책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병원과 의사 이름은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장덕조 원장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
"의사의 실명을 밝히고 향후에 자기가 한 의료자문에 대해서 분명히 책임지는 그런 자세가 필요한데."
보험사와 의료 분쟁이 생겼을 때 소송 외엔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금융감독원이나 한국소비자원에 민원을 제기할 수 있지만 보험사가 조정안을 따르지 않아도 법적인 책임은 없습니다.
또, 보험 표준 약관에는 보험사와 계약자가 제3의 의료기관을 정해 그 판단을 따를 수 있다고 해놨지만 따르지 않아도 강제력은 없습니다.
심지어 제3 의료기관을 정할 때 보험사가 특정 병원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동헌]
"딱 지정을 하셨잖아요. OO대학병원이랑 OO병원이랑 두 개를."
[A 보험사 직원]
"제일 공신력 있는 병원이 OO대학병원이랑 OO병원이잖아요.
[김진경(가명)
"자기네들이 딱 원하는 병원 리스트 몇 개 뽑아서 저한테 이 병원들을 선택하세요 하는 그거는 3자 협의가 아니잖아요. OO보험회사에서 로비를 했을 수도 있고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뭘까.
지난 2013년 금융위원회는 모든 보험사가 공동으로 의료자문을 받을 수 있는 의료심사자문위원회를 만들 것을 제안했습니다.
생명보험협회와 대한의학회의 의견차이 때문에 결국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공동의 의료자문기구가 마련돼야 과정이 투명해질 거란 지적이 여전합니다.
[서인석 보험이사 대한의사협회]
"어떤 의사를 지정하는 방법적인 과정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걸 배제하기 위해서는 보험사에서 어떤 제3의 자문의를 선택하고 지정해서 의뢰하는 방식은 피해야 하고요."
또, 보험금을 악의적으로 안 줄 경우 보험사가 향후 몇 배의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장덕조 원장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
"원래 지급해야 될 보험금의 3배 이상에 해당하는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면 향후에 그런 행위를 다시 못하도록 하는 어떤 억제책이 될 수 있지 않나."
지난해 국내 보험사 전체 순이익은 6조 1614억 원에 이릅니다.
치료비 걱정없는 노후를 약속하고 따지지 않고 보장해 준다며 유혹하는 보험 회사들 하지만 막상 보험금을 받을 때가 되면 약관처럼 간단하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이동헌]
"보험에 대한 신뢰도를 떠나서 이거는 고객에 대한 횡포죠. '법으로 하세요.' 그러면 누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연 법으로 그걸 다시 대처할 사람이 몇 명 되겠어요."
[윤혁]
"불신이고 살기 위해서 (보험을) 드는데 결국은 더 죽게 되는 거 그렇게 생각 들죠."
금감원은 의료자문 병원을 공개하는 방안 등 보험사 의료 자문 제도에 대한 종합적 개선방안을 개혁 과제로 선정해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두통으로 병원에 갔다가 뇌경색 판정을 받은 이 모 씨도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보험사들의 거절 근거는 보험사 자문의사의 판정.
하지만, 막상 의료자문을 해준 의사가 누구인지, 정말 의사가 판정한 것인지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이유로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아플 때를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고도 제대로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는 가입자들이 적지 않지만, 해결방법은 소송뿐. 결국 많은 가입자들이 보험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주치의와 자문의사의 의료판정은 왜 다른지, 보험사 자문의사 제도의 허점과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은 없는지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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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의 한 보험회사 건물 앞.
윤혁씨가 일인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윤혁]
"억울함과 분함과 진짜 고통 속에 살았는데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윤혁씨가 보험회사와 기나긴 분쟁을 시작한 건 지난해 3월.
배가 아파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직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 뒤 보험사에 암 진단금 1천만 원을 청구한 게 발단이었습니다.
당연히 며칠 안에 보험금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윤씨.
[윤혁]
"암 진단서인데 암 진단받았잖아요. 그럼 끝난 거 아니에요? 뭐가 더 필요해요?"
하지만, 보험사는 윤씨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해당 보험 회사가 암 진단금을 주지 않은 이유는 간단히 말해 윤혁씨가 '암'에 걸린 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대학병원에서 '암'을 진단받아 수술까지 받았는데, '암'이 아니라는 보험회사 어떻게 된 일일까요?
윤혁씨가 받은 보험금 청구 결과 안내서입니다.
제3 의료자문 결과 암이 아니라 '경계성 종양'으로 봐야 한다는 소견이 나와 경계성 종양 진단금인 200만 원만 지급하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제3 의료 자문'이란 보험사가 계약한 자문 의사에게 피보험자의 질환에 대해 소견을 묻는 것으로 피보험자의 의료 기록을 의사에게 보내면 의사가 자문료를 받고 소견서를 써주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자문료는 한 건에 2, 30만 원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험사가 윤씨의 수술까지 한 주치의의 진단서는 믿지 않고, 의료기록만 본 자문의사의 소견을 근거로 지급할 보험금을 깎은 겁니다.
'암'을 진단한 고려대 병원은 거듭 '경계성 종양'이 아니라 '암' 이 맞다고 확인해 줬지만
[고려대학교안산병원]
"저희 병원에서는 공식적으로 암이라고 인정하는 거고요. 저희 교수님도 확실히 암이라는 얘기를 하셔요. 그레이드1이라는 것은 암에만 붙습니다."
보험사는 '경계성 종양'이란 주장을 고수한 채, 어느 의사의 자문을 받았는지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윤혁]
"제가 그러면 그 의사가 어디 의사냐, 어느 병원이냐 알려달라고 그렇게 3개월을 싸웠죠. 의사의 프라이버시라고 그걸 끝까지 안 알려줘서."
결국, 금감원에 민원을 넣어 3개월 만에 자문 병원을 알아낸 윤혁씨.
해당 의사에게 '경계성 종양'이라고 진단한 이유를 묻자 의사는 돌연 '암'이 맞다며 말을 바꿨다고 했습니다.
[윤혁]
"1번부터 5번까지가 다 암이라는 (고대 병원) 설명이 있어요. 여기 녹취가. 녹취를 들려주니까 그제서 잘못했다고 시인을 하면서 경계성 종양이라고 한 걸 취하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보험회사는 그제서야 8백만 원의 암 진단금을 추가로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보험사와 분쟁을 벌이는 동안 제대로 암 치료에 전념할 수 없었던 윤씨는 지난해 10월 폐암까지 걸려 또다시 수술을 받았습니다.
[윤혁]
"괜히 내가 그 보험 들어가지고 직장암만 걸렸으면 지금 다 났었을 텐데 신경을 엄청 쓰고 의사도 암 딱 보더니 이렇게 커지는 게 아닌데 갑자기 커졌다는 거에요."
보험사 의료자문을 근거로 보험금을 받지 못한 가입자는 적지 않습니다.
지난 2014년 말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뇌경색 진단을 받은 이동헌 씨도 지금까지 뇌경색 진단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뇌경색의 진단 근거가 없다는 게 의료자문 소견이었습니다.
[이동헌]
"그 자문의사가 (보험)회사로부터 돈을 받은 사람이에요. 그 사람의 판정을 내가 믿어라? 그거는 좀 얼토당토 않는 소리 같아요."
전문의들은 뇌질환의 경우 특히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의료기록만으로 판단한 자문의의 소견보다는 직접 진찰한 주치의의 소견을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구자성 교수 강남성모병원 신경외과]
"(의무 기록에) 그 증상의 어떤 느낌이랄까 세부적인 걸 다 쓸 수가 없거든요. 근데 그걸 복사해서 갖다주면 제3자는 저라고 해도 아주 엄격하게 얘기하면 이 자료만 가지고 판단이 어렵다."
게다가 자문의사는 누구인지, 어떤 의료기록을 근거로 판단했는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어 책임을 묻기도 어렵습니다.
[A 보험사 직원]
"당사 간 의료 자문을 할 때는 그분에 대해서 이게 공개가 안 되도록 서로 그렇게 자문 계약을 처음에 맺습니다."
자문의의 의료적 판단이 틀렸다고 여길 경우 이를 입증해야 하는 수고는 온전히 가입자의 몫입니다.
태아보험에서 보장한 딸의 몽고반점 레이저치료비를 받아온 김진경 씨
지난 2월 보험사 의료 자문에 의해 딸의 반점이 약관에서 보장하는 종류가 아니라는 소견이 나오면서 보험금을 못 받게 됐습니다.
[김진경(가명)]
"내가 무슨 근거로 어떻게 믿냐. 너희가 전문의가 피부과 보더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아닌 사람을 썼을 수도 있고, 그냥 간호사가 썼을 수도 있고 증거가 없는데 내가 왜 어떻게 믿어서."
오기가 생긴 진경 씨는 딸을 데리고 다니며 대학병원 두 곳에서 진찰을 받았고, 원래 진단과 같은 진단서를 추가 제출해 한 달여 만에 다시 보험금을 받게 됐습니다.
[김진경(가명)
"보험사의 행태에 부당하게 계속 참을 수는 없었어요. 그게 얼마 되지도 않는 금액이지만 저희가 매달 매달 얼마씩 돈을 내고 그 돈에 대해서 정당한 권리를 청구하는 거거든요."
자체 의료 자문을 근거로 보험 계약을 해지하거나 보장내용을 줄이기도 합니다.
김영태 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6월 보험회사로부터 그동안 입원비로 받은 3천 7백여만 원의 보험금을 반환하라는 '지급 명령서'를 받았습니다.
자체 의료 자문 결과 최근 8차례에 걸친 88일의 입원이 병세에 비해 지나치게 길었다는 것
이미 심사를 거쳐 지급한 보험금이 부당 이득금이라는 겁니다.
[김영태(가명)]
"자기네들 보험사 자체적으로 심사를 해가지고 삭감할 건 삭감했어요. 다 준 게 아니고 그러니까 저희 어머니는 그냥 주는 대로 받은 거죠."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김씨가 법원에 이의 신청을 하자 보험사는 조정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동안 지급한 입원비를 달라는 소송을 걸지 않을 테니 앞으로 입원 일당은 보장하지 않는 걸로 계약내용을 바꾸자는 거였습니다.
[김영태(가명)]
"입원 일당 담보는 전부 삭제하자. 앞으로 보험금이 많이 나갈 거 같으니까 담보를 삭제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라는 거죠."
이런 경우 대부분의 보험 계약자는 소송 비용과 복잡한 절차에 부담을 느껴 보험사의 조정안에 동의하게 마련입니다.
[김계환 변호사]
"변호사 비용도 몇백만 원 들어가죠. 당장 덜컥 겁이 나죠. 그렇게 되면 사실 보험사 요구의 상당부분 응하는 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거죠. 보험사는 그렇게 소송에서 10명 중 한 명만 해지해도 남는 거죠."
사실상 보험사가 '의료 자문제도'를 보험 계약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 소비자원은 최근 보험금 지급 관련 피해 신청 중 보험사 자체 의료 자문 관련 내용이 20%를 넘어선다고 밝혔습니다.
[황기두 팀장 한국소비자원 금융보험팀]
"법적 근거로 보면 주치의는 진단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보험회사는 진단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요. 의료적으로,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의료 자문을 해서 받은 결과를 더 중요시해서 그걸 근거로 못 준다고 하는 거죠."
오랫동안 보험관련 일을 해온 손해사정사는 '의료 자문 소견'이 보험사의 수익 관리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변운연/손해사정사]
"당연히 지급해야 될 보험금을 못 주겠다. 이렇게 하면 그건 또 불법행위고 뭔가는 덜 주고 안 줘야 되는데 계약자에게 뭐라고 변명을 해야 될까 방법은 보험회사가 의료 자문 의사의 자문서밖에 없는 거에요."
보험회사 입장에서 보면 '의료 자문제도'는 보험 사기 등을 가려내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그 과정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진다면 가입자들의 불만도 줄어들 텐데요. 전문가들은 보험사들의 의료 자문 동의 절차부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생명보험협회에 가입된 생명보험사 21곳의 보험금 청구 서류를 살펴봤습니다.
형식만 약간 다를 뿐 내용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개인정보 처리 동의 항목 중 설명 일부에 '의료 자문 및 심사' 가 포함돼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으면 보험금 지급이 불가능할 수 있다거나 아예 불가능하다고 못 박은 보험사도 있습니다.
마치 의료자문에 동의하지 않으면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험금 청구서를 만들어 놓은 겁니다.
[황기두 팀장 한국소비자원 금융보험팀]
"동의를 하지 않아도 보험금을 줘야죠. 의사의 진단을 가지고 보험금을 줘야 되는데 그걸 동의를 해주지 않으면 보험금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 거는 분명히 잘못된 겁니다."
게다가 보험 계약자가 가입 당시 보험사 의료 자문에 따라 보험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듣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 OO 보험설계사]
"자기네(보험회사)들 손해인데. 그러니까 분명히 설계사들은 판매만 시킬 거고 회사에서 '야 이거대로 그냥 팔면 돼' 무조건 (보험금이 지급)된다고 하죠."
의료 자문을 한 병원과 의사를 밝히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의료 기록 같은 개인 정보를 제3자에게 위탁, 제공하는 경우 해당 정보를 누가 처리하는지를 밝히도록 돼 있습니다.
보험사가 의료 자문을 맡긴 컨설팅 업체나 병원, 의사를 계약자는 물론 홈페이지 등을 통해 밝힐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생명 보험 회사 21곳을 확인해 보니 단 2곳 만이 규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전문가는 명백한 법규위반이라고 지적합니다.
[김경환 변호사]
"고객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제3자에게 제공할 때는 다시 말해서 자문 의사가 되겠죠. 자문의사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만 보호법령에 따르면 적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익명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현행법에 따르면 어쨌든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게 돼 있습니다."
의료자문의 책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병원과 의사 이름은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장덕조 원장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
"의사의 실명을 밝히고 향후에 자기가 한 의료자문에 대해서 분명히 책임지는 그런 자세가 필요한데."
보험사와 의료 분쟁이 생겼을 때 소송 외엔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금융감독원이나 한국소비자원에 민원을 제기할 수 있지만 보험사가 조정안을 따르지 않아도 법적인 책임은 없습니다.
또, 보험 표준 약관에는 보험사와 계약자가 제3의 의료기관을 정해 그 판단을 따를 수 있다고 해놨지만 따르지 않아도 강제력은 없습니다.
심지어 제3 의료기관을 정할 때 보험사가 특정 병원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동헌]
"딱 지정을 하셨잖아요. OO대학병원이랑 OO병원이랑 두 개를."
[A 보험사 직원]
"제일 공신력 있는 병원이 OO대학병원이랑 OO병원이잖아요.
[김진경(가명)
"자기네들이 딱 원하는 병원 리스트 몇 개 뽑아서 저한테 이 병원들을 선택하세요 하는 그거는 3자 협의가 아니잖아요. OO보험회사에서 로비를 했을 수도 있고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뭘까.
지난 2013년 금융위원회는 모든 보험사가 공동으로 의료자문을 받을 수 있는 의료심사자문위원회를 만들 것을 제안했습니다.
생명보험협회와 대한의학회의 의견차이 때문에 결국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공동의 의료자문기구가 마련돼야 과정이 투명해질 거란 지적이 여전합니다.
[서인석 보험이사 대한의사협회]
"어떤 의사를 지정하는 방법적인 과정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걸 배제하기 위해서는 보험사에서 어떤 제3의 자문의를 선택하고 지정해서 의뢰하는 방식은 피해야 하고요."
또, 보험금을 악의적으로 안 줄 경우 보험사가 향후 몇 배의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장덕조 원장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
"원래 지급해야 될 보험금의 3배 이상에 해당하는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면 향후에 그런 행위를 다시 못하도록 하는 어떤 억제책이 될 수 있지 않나."
지난해 국내 보험사 전체 순이익은 6조 1614억 원에 이릅니다.
치료비 걱정없는 노후를 약속하고 따지지 않고 보장해 준다며 유혹하는 보험 회사들 하지만 막상 보험금을 받을 때가 되면 약관처럼 간단하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이동헌]
"보험에 대한 신뢰도를 떠나서 이거는 고객에 대한 횡포죠. '법으로 하세요.' 그러면 누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연 법으로 그걸 다시 대처할 사람이 몇 명 되겠어요."
[윤혁]
"불신이고 살기 위해서 (보험을) 드는데 결국은 더 죽게 되는 거 그렇게 생각 들죠."
금감원은 의료자문 병원을 공개하는 방안 등 보험사 의료 자문 제도에 대한 종합적 개선방안을 개혁 과제로 선정해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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