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이지수 기자

장하나 LPGA를 떠나다

장하나 LPGA를 떠나다
입력 2017-06-19 10:24 | 수정 2017-06-19 13:15
재생목록
    지난달 골프선수 장하나가 돌연 국내 무대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LPGA 4승을 달성하며 세계적 스포츠 스타로 발돋움하던 그녀.

    장하나는 “부모님과의 행복한 생활이 성공보다 중요했다”고 말했습니다.

    팬들의 궁금증은 커집니다.

    과연 그녀가 돌아온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2580은 5일간 장하나 가족을 동행 취재했습니다.

    그들의 속 얘기를 들었고, 하루하루를 지켜봤습니다.

    매주 미국 전역과 해외 곳곳을 옮겨 다녀야 하는 LPGA 선수 생활입니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고단함은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는 게 장하나의 얘기입니다.

    이런 고민을 한 건 장하나 만이 아니다. 많은 LPGA 선수들은 성공과 행복의 기로에서 갈등합니다.

    누군가는 결혼을 늦추고, 개인 생활을 포기하면서 정상을 위해 청춘을 바칩니다.

    반면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찾기도 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장하나의 복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행복 한가’.

    -------------------------

    2017 LPGA 호주 오픈 마지막 날 라운드.

    장하나가 17번 홀에서 15미터 이글 퍼팅에 도전합니다.

    흰 점처럼 멀어 보였던 홀컵은 순식간에 공을 빨아들입니다.

    단독 1위에 오른 장하나, 실수가 없어야 하는 마지막 홀.

    멋진 세컨 샷, 그리고 버디.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장하나 프로 골퍼]
    "17번 홀은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이글에 성공했을 때 우승을 예감했어요. 기분 좋은 날입니다."

    LPGA 진출 2년 만에 통산 4승.

    거침없이 세계 정상을 공략하던 장하나가

    지난달 돌연, LPGA 회원권을 반납하고 국내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국내 복귀 기자회견/5월 23일]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 고심했던 결정이었고 행복한 결정인 거 같습니다."

    지난해 한국 선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세 차례 LPGA 우승.

    앞으로 더 많은 우승이 기대되던 선수의 갑작스런 결정이었습니다.

    [유억윤 교수 건국대학교 체육학과]
    "획을 그을 수 있는 선수였다고 보는 관점에서는 굉장히 아쉽죠. 꿈의 무대를 접고 왔다는 거는 상당히 안타깝고."

    스피드와 파워를 갖춘 스윙, 웃음을 잃지 않는 밝은 성격, 우승 때마다 보여주는 세리머니, 외국인 갤러리들의 환호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세계적 스포츠 스타로 부상해 가던 그녀, 스스로 국제무대에서 내려온 가장 큰 이유는, 어머니였습니다.

    [국내 복귀 기자회견/5월 23일]
    "저 힘들까 봐 말도 하지 못하시고 그냥 '네가 골프를 하면 그게 엄마 행복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보면서 골프를 잘 치면 될 줄 알았던 그 순간들이 다 후회가 되고 좀 힘들었던 거 같아요."

    LPGA는 여자 골프 선수들에겐 꿈의 무대입니다.

    챔피언의 명예와 거액의 상금, 그 상금을 뛰어넘는 고액 광고 모델료와 협찬, 이 모두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장하나는 그런 성공보다 가족이, 그리고 행복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26살 그녀의 생각을 들어 봤습니다.

    지난 8일, 장하나가 연습경기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장하나 프로 골퍼]
    "아 진짜 힘들다. 어디서 해요?"

    전날부터 장염 때문에 한 끼도 먹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김연숙 씨는 그런 딸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부부가 모두 마흔이 넘어 낳은 외동딸, 딸이 해외에서 활동한 2년 반 동안 어머니는 이렇게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김연숙/장하나 어머니]
    "엄마가 해주는 그 밥상이 얼마나 그리웠겠느냐고요. 성당에 가서 또 기도하고. 기도하는 게 일이었어요."

    지구 반대편에서 경기 중인 딸의 모습을 방송으로나마 보기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였습니다.

    [김연숙/장하나 어머니]
    "밤에 보니까 보통 (새벽) 2-3시쯤 중계하잖아요. 아침에 보통 한 8시나 9시쯤 끝나요. 그럼 그때부터 쭉 자야 돼요."

    남편도 현지에서 딸을 챙기느라 1년 중 340일을 혼자 보낸 그녀에게, 급기야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김연숙/장하나 어머니]
    "아무도 없는 생활이 정말 너무 힘들더라고요. 너는 너, 나는 나. 이런 생활하는 거를 가끔씩 볼 때 마음에 우울증이 더 오는 것 같아요."

    부모님의 헌신적 지원 속에 앞만 보고 달려왔던 장하나는 더이상 어머니를 외롭게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승을 한 뒤에도 챔피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안간힘을 쓰던 사이, 어머니는 더 외로워졌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장하나 프로 골퍼]
    "어머니한테 엄마 아픈 데 없어? 이러면 어 없어 괜찮아, 이렇게 하시는데 제가 눈치가 되게 빠르거든요, 그래서 괜찮으니까 말씀해 주시라고 그러면 엄마 병원 갔다 오셨다고 (마음이 안 좋았겠어요.) 그렇죠, 무겁죠, 아무래도 타지에 있으니까."

    경기도 용인 장하나 가족의 집.

    오래간만에 주방이 분주합니다.

    [김연숙/장하나 어머니]
    "(옆에서 챙겨주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그거야 말할 것도 없죠. 새끼 옆에서 끼고 사는 게 제일 행복이잖아요."

    [김연숙/장하나 어머니]
    "뭐 찾는 건데? 팬?"

    [장하나 프로골퍼]
    "계란 하게."

    [장하나 프로골퍼]
    "계란말이. 안 망했어요. 안 태웠어요." (평상시에도 계란말이 잘하세요?)"

    [김연숙/장하나 어머니]
    "얘 담당이에요."

    [장하나 프로골퍼]
    "제가 계란을 좋아해서 많이 해요."

    굳은살이 박인 손, 잘 펴지지 않는 손가락, 주방 기구를 다루고 있지만 손 마디마디엔 선수의 고단함이 느껴집니다.

    [장창호/장하나 아버지]
    "이야. 맛있게 먹자. 이거 소주 한 잔 해야 되는데."

    [장하나 프로 골퍼]
    "계란은 망했어. 짜. 밥이다. 5일 만에 밥."

    장하나는 미국에 집이 없었습니다.

    LPGA 투어를 돌며 늘 호텔이나 임시로 빌린 집을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평범한, 가족과의 일상이 그리웠습니다.

    [장하나 프로골퍼]
    "(미국에선) 집에 들어왔을 때 뭔가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우승하면 뭐하나. 우승해도 그때뿐이고 약간 떠돌이,방랑자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LPGA 2년 반 동안 스케줄 조정과 운전기사 역할 등 각종 뒷바라지를 다 해 준 아버지도, 어느 순간, 예전과 달리, 피곤해 하는 걸 보면서, 가슴 아팠다고 합니다.

    [장하나 프로골퍼]
    "짐을 저를 못 들게 하세요. 다칠까 봐. 시차적응 하시는 게 조금 더뎌지셨어요. 아버지는 일주일 정도 가시더라고요. 예전엔 저랑 비슷했는데."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소중한 것들.

    자신을 향한 각종 논란과 악플들.

    세간의 과도한 관심.

    장하나는 고민했고 결심했습니다.

    [장하나 프로골퍼]
    "좀 채워지지 않는 행복감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면들이 되게 사소한 거거든요. 친구들이 한강에 피크닉을 간다든가. 그런 것조차 못 해본 제가 좀 많이 그렇더라고요. 불쌍하고 너무 골프만 쳐온 것 같아서."

    장하나의 결단에 골프계는 대체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유억윤 교수/건국대학교 체육학과]
    "LPGA 무대의 화려함 속에는 뒷면에 굉장히 고단함이 있습니다."

    [박원 JTBC골프 해설위원]
    "행복이란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결정을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현재 LPGA엔 박인비, 유소연, 전인지 등 20여 명의 한국 선수들이 뛰고 있고, 많은 한국 선수들이 도전해 왔습니다.

    이들 가운데 '국내 복귀'를 고민했던 선수는 장하나 뿐만이 아닙니다.

    적지 않은 선수들이 국제무대의 화려함보다 진정한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2015년 LPGA 생활을 마치고 방송 해설가로 변신한 서희경 씨.

    "맛있어. 맛있어."

    국내에서 상금왕과 다승왕 등을 휩쓸고 2010년 미국에 진출했지만, 달라진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서희경 SBS 골프 해설위원]
    "혼자 다니는 것들에 대한 외로움이나 향수가 큰 거 같아요. 정말 내가 이 운동을 하면서 행복한가 하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었거든요."

    출산 후 고민은 더 커졌고 은퇴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서희경 SBS 골프 해설위원]
    "첫째 낳고 8개월 만에 다시 미국 시합을 갔는데 사실 정말 어린아이를 떨어뜨려 놓고 한 2, 3주 가 있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정말 내가 원하는 행복은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거였던 것 같아요."

    전문가들은 이런 개인사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LPGA가 주는 부담은 심리적·체력적 한계를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조진현 전 MBC-ESPN 해설위원]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일간 치르고 있습니다. 선수는 월화수 남아있는 3일 동안에 이틀을 또 대회에서 연습라운드. 일주일 내내 하루도 쉴 날이 없다."

    대회가 열리는 11개월 동안 미국 전역과 해외를 매주 이동하고 또 이동해야 합니다.

    [박원 JTBC골프 해설위원]
    "익숙지 않은 장소로 매번 이동하기 때문에 긴장을 이야기하는 거고 그래서 보이지 않게 이유 없이 스트레스가 굉장히 많이 쌓이게 되죠."

    25주 연속 LPGA 순위 1위였던 신지애도 2014년 슬럼프가 찾아왔다고 느꼈을 때, 미련없이 LPGA를 떠나 일본으로 옮겼습니다.

    박세리의 은퇴 고별사에도 LPGA 생활의 고뇌가 잘 묻어납니다.

    [박세리 <은퇴 기자회견 지난해 10월>]
    "그 많은 시간을 다 투자하고 명예를 가졌지만 결국에 남는 건 허무함이 될 수도 있거든요. 제일 중요한 건 선수들이 자신에 대해선 약간 인색했다는 거죠. 저도 그랬었기 때문에."

    최근 백규정과 박주영 등 신인 선수들도 LPGA 문을 두드렸다 돌아왔고, LPGA 우승 경험이 있는 이선화와 임성아도 국내 무대에 정착했습니다.

    이런 복귀 결정의 배경엔 한국 여자프로골프(KLPGA) 대회의 성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장하나 프로 골퍼]
    "한국도 그만큼 지금 굉장히 많이 성숙해졌고 많이 커지는 시장이기 때문에 좀 내려놓고 오는 데에 후회가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실제 KLPGA의 연간 총상금은 최근 5년간 131억에서 209억 원으로 약 60% 늘었습니다.

    LPGA와의 격차는 4.2배에서 3.7배로, 일본과는 2.4배에서 1.8배로 줄었습니다.

    대회 수는 22개에서 31개로 많아져 미국(35개), 일본(38개)의 80%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한국 여자 프로골퍼 1호인 강춘자 KLPGA 부회장은 국내 대회를 대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졌다고 합니다.

    [강춘자/수석부회장 KLPGA]
    "꼭 외국으로만 나가서가 아니라 국내에서도 충분히 자기 목표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국내에서 뛴다고 해서 결코 외국에서 활동하는 것만큼 수입이 적지 않습니다."

    박세리의 '맨발 투혼'에 이어 '박세리 키즈'들의 한국 골프 전성시대, 그들을 롤모델로 삼는 어린 선수들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골프 강국의 위상에 맞게 선수 육성에 대한 가치관도 재정립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최근 10년간 신지애, 전인지 등 국내 선수 10여 명의 전문 캐디로 일한 호주인 딘 허든 씨.

    더 큰 무대, 더 어려운 무대에서 뛴다는 압박감에, 쉬는 날에도 연습에만 매달리던 한국 선수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딘 허든 전문 캐디]
    "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을 위한 휴식 시간인 거죠. 프로 골프에는 엄청난 압박이 있어요. 정신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아마 실수를 하겠죠."

    '골프 대디', '골프 마미'로 불리는 부모들의 간섭도 지나친 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딘 허든 전문 캐디]
    "부모님은 선수 주변에 막을 형성하거든요. 보호막을. 저는 그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격 형성의 시기에 훈련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은, 어느 종목에서나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박원 JTBC골프 해설위원]
    "상황 대처 방법 이런 데서 굉장히 미숙함을 보여주면서 선수들이 투어 생활을 굉장히 힘들게 할 수가 있어요."

    지난 9일 제주도, 장하나가 국내 복귀 후 두 번째 대회에 나섰습니다.

    장하나가 샷을 날리고 이동하면 부모도 함께 걷습니다.

    [김연숙/장하나 어머니]
    "(18홀 다 따라다니세요?) 네네 3일 (피곤하시겠어요?) 아니에요. 절대로 안 피곤해요."

    딸이 친 공을 따라 몸도 마음도 움직입니다.

    [장창호/장하나 아버지]
    "(잘 맞은 건가요.) 아 공이 안 보이는데? 약간 우측 같은데? (올라갔어?)

    어렵게 잡은 버디 기회.

    어머니는 두 손을 모읍니다.

    결과는.

    [김연숙/장하나 어머니]
    "좋아. 나이스. 한 10년은 젊어지는 것 같아요."

    3일간의 시합 내내 가족은 함께 했습니다.

    장하나는, 어머니가 곁에 있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오늘 밤 보살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고 편안합니다.

    [김연숙/장하나 어머니]
    "나이스. 천당 가네 또."

    첫날 5언더파 공동 5위로 출발했던 장하나는 이 대회를 공동 29위로 마무리했습니다.

    [장하나/프로 골퍼]
    "그래도 엄마와 함께라서 너무 좋았고요. 이번에 제주도 오셔서 조금 밝아진 모습이 딸로서 굉장히 웃음을 띄울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던 것 같아요."

    호쾌한 장타, 항상 밝은 표정으로 국내외에서 사랑받는 장하나.

    LPGA 2년여 생활 동안, 직업에서의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행복인지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