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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 2580] 6살 태완이를 덮친 '황산테러'

[시사매거진 2580] 6살 태완이를 덮친 '황산테러'
입력 2013-10-14 10:05 | 수정 2013-12-0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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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겠다며 집을 나섰던 6살 배기 어린 아이가 골목길에서 황산을 뒤집어 쓴 채 발견됐고 아이는 49일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가족들의 마지막 약속은 ‘범인을 잡아 사과하게 해주겠다는 것’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지난 세월, 어떤 의문 하나 풀린 것 없이 가족들은 그때에 머물러있다.

    공소시효는 내년 5월, 남은 시간 가족들은 태완이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

    사당 곳곳에 불을 밝히고…

    정성스레 절을 올립니다.

    이것저것 골라온 과자는 봉지를 뜯어 펼쳐 놓습니다.

    ◀SYN▶
    "태완이 잘 있었어? 심심하지"

    한마디를 건네고 나니 이내 눈물이 납니다.

    엄마의 시간은 14년 전 그때에 그대로 멈춰있습니다.

    ◀SYN▶
    "엄마 갈게…또 올게…."

    사진 속의 아이는 14년 전, 6살 나이에 골목길에서 황산 테러를 당한 태완이입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린 아이가 황산을 뒤집어쓰고 숨진 사건, 어떤 증거도 확보하지 못한 채 경찰조사는 막을 내렸습니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저지른 걸까.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건은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SYN▶
    "태완아 숨 쉬어"

    머리부터 배까지 작은 몸의 절반 이상을 붕대로 휘감고, 눈과 코 입 안까지 모두 녹아내려 숨을 쉬기도 힘겨운 상태.

    병원에서도 처음 보는 치명적인 화상이었습니다.

    1999년 5월 20일.

    1주일에 한 번 태완이가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오전 11시.

    여느 때처럼 태완이는 엄마가 운영하던 미용실에서 나와 맞은 편 골목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5분도 채 안 돼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INT▶ 박정숙/고 김태완 군 어머니
    "어떤 애가 전봇대에 앉아있는데 옷이 다 녹았어. 위에 옷이 녹고 얼굴이 이렇게 뿌옇게, 비슷하게 돼 있는데 / 눈이 반쯤 떠졌더라고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근처에 살던 이모, 이웃집 아저씨와 함께 20여 분만에 겨우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처음 간 병원 두 곳에선 치료를 거부해 대학병원에 도착한 건 오후 3시가 다 돼서였습니다.

    아이에게 부어진 것은 '황산'이었습니다.

    고기조각을 순식간에 기름으로 녹여버릴 정도의 독한 물질.

    ◀SYN▶ 박정숙/고 김태완 군 어머니
    "까맣게 변한 모습이 내 아들인데도 보기 힘들었어요. (생존율) 5% 이런 얘기 하셨던가"

    골목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간신히 입을 뗀 태완이는 "골목길 중간쯤 어떤 아저씨가 자신의 뒤에서 뜨거운 물을 부었고, 엄마를 향해 돌아오다 골목 어귀에 주저앉았다"고 말했습니다.

    ◀SYN▶ 김동규/고 김태완 군 아버지
    "나쁜 아저씨가 일부러. 태완이가 '일부러'라는 표현도 썼어요. 일부러 얼굴에다 부었다.(뭘 부었다고 그래요?) 뜨거운 거."

    ◀INT▶ 박정숙/고 김태완 군 어머니
    "엄마 뜨거우니까 앞이 잘 안 보이더라. 엄마한테 올라하니까 옷이 저절로 찢어지더라."

    사건 발생 49일.

    태완이는 그렇게도 좋아하던 형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엄마 아빠 곁을 떠났습니다.

    ◀SYN▶ 고 김태완/당시 6세
    "형아야 나 혼자만 골드런(로봇) 신발 엄마가 사준다고 했는데 사도 되나? 나 다 낫고 나면 아빠 엄마한테 돈 얻어서 형아야 아이스크림 사줄게 나 나을 동안 참아"

    ◀SYN▶ 박정숙/고 김태완 군 어머니
    "엄마 나 갈래 그래서 내가 응? 하니까 갈래 갈래 그러더라고. 그때 내가 푹 떨어지대. 가슴이…."

    태완이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가족은 한목소리로 약속했습니다.

    ◀SYN▶
    "태완아 아빠가 꼭 잡아줄게."

    ◀SYN▶ 박정숙/고 김태완 군 어머니
    "그 나쁜 사람 잡아주는 게 우리가 마지막으로 해줘야 될 일 같아요."

    그리고 14년,

    동네는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남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 때를 똑똑히 기억합니다.

    ◀SYN▶ 이웃주민
    "여기여기 요 자리. 난 영문도 모르고 나오니까 여기 시커멓고 가방 하나가 있고 (14년이 지났는데 상세하게 기억하고 계시네요?) 알지요! 겁이 얼마나 났는데."

    태완이 엄마가 하던 미용실은 간판도 그대로 큰이모가 대신 지키고 있습니다.

    ◀INT▶ 박진영/고 김태완 군 이모
    "걔(태완이)가 있던 자리고 이러니까 떠나야겠다는 생각보다도 혹시 뭔가 달라질까 싶어가지고 그랬는데 세월에 묻혀 여기까지 와버렸어요."

    하지만, 혹시나 했던 기대는 아직도 아무런 답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범인은 대체 누굴까?

    14년 전 사고 당시 가족들은 한 사람을 용의자로 점찍었습니다.

    태완이는 사경을 헤매면서도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해냈습니다.

    ◀SYN▶ 당시 녹취
    엄마: "골목에서 본 아저씨 네가 가니까 기다리드나? 아니면 오드나?
    태완: (오더라)
    엄마: 그때 누가 부었지? 그리고 샤론 피아노 골목으로 가는 사람은 누구드노?
    태완: (00 아저씨)"

    태완이는 황산을 뿌린 사람을 똑바로 보진 못했지만, 사고를 당하기 전 그 장소에서 한 아저씨가 먼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SYN▶ 고 김태완 군 당시 녹취
    "전봇대 작은 거, 큰 거 있는데서도 불렀고, 거기(골목)에서 한 번, (병원) 갈 때 두 번"

    사고현장에서 태완이를 직접 안고 병원으로 옮긴 이웃집 남자였습니다.

    당시 남자의 팔다리엔 상처가 있었습니다.

    ◀INT▶ 박진영/고 김태완 군 이모
    "순간적으로 내가 어? 다리는 왜 그러냐고 물었지. 그 옷이 많이 버려져 있길래 왜 옷, 바지가... 다리에 왜 다쳤냐 하니까 '아 그냥 다쳤어요"

    경찰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했습니다.

    ◀INT▶ 천민호/당시 수사반장 인터뷰
    "피해자 상태하고 황산의 원액으로 볼 때는 가해자도 손이나 옷이나 발등이나 어딘가에 자기도 신체적인 화상을 입었을 걸로 예상하고 있어요."

    하지만, 경찰은 이 남자를 불러 조사한 뒤 '증거가 없다'며 풀어줬습니다.

    사건 당시 남자가 집에 있었다 진술했고, 거짓말 탐지기에서도 진실 반응이 나왔다는 이유에였습니다.

    ◀INT▶ 천민호/당시 수사반장 인터뷰
    "그 시간 경에 그 사람은 집에 있었어. 거짓말탐지기라고 이것도 2회에 걸쳐서 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경찰이 시간을 끌다 이 남자의 옷조차 조사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INT▶ 김동규/고 김태완 군 아버지
    "그 옷을 확보하라는데도 무시했다니까"

    이 남자는 태완이를 병원으로 안고 가던 중 옷에 황산이 묻어, 버렸다고 경찰에 진술했습니다.

    또 팔에 난 상처는 태완이를 안다 난 것이고, 다리에 난 상처는 축구를 하다가 다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INT▶ 박진영/고 김태완 군 이모
    "과학적으로라도 화학(물)에 의해 다친 건지, 정말 축구를 하다 다친 건지 왜 못 알아보노 하니까 상처가 이미 다 아물어 알 수가 없다고"

    한 번만 더 확인해달라고 매달렸지만 경찰은 안 된다는 답을 내놨고, 가족들의 의심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INT▶ 박진영/고 김태완 군 큰 이모
    "그때 (이웃집 남자가) 엄청 쪼들리는 상황이었어요. (태완이 가족들에게 돈 빌려달라며) 무릎을 꿇고 울면서 사정을 했대요. 자기 살려달라고 그런 상태에서 몇 번 거절당하고 (그런 게 아닌가?)

    그러나 그 이상의 조사는 없었습니다.

    그 무렵,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평소 태완이를 늘 따라다니던 동네친구 인수였습니다.

    ◀SYN▶ 박현숙/이인수 군 어머니
    "골목에 서서 내가 두리번거리니까 그걸 보고 막 이렇게 안기는 거라예. 고함 지르면서 그래서 얘 봤나? 생각하고 골목을 인수보고 봐라 했거든. 봐라하니까 (뒤집어쓰는 흉내) 이렇게 하는 거예요."

    태완이는 숨지기 전 녹취에서 사고 당시 인수와 함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인수를 목격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이라는 이유였습니다.

    ◀INT▶ 천민호/당시 수사반장 인터뷰
    "의사전달이 안 되고 그러기 때문에 그 애가 얘기하는 걸 우리가 인정하기가 좀 힘들어"

    답답한 가족들이 나서 인수의 지능이 정상이며 의사표현도 가능하다는 검사 결과까지 받아왔지만, 경찰은 농아들의 의사표현을 해석하는 통역인조차 부르지 않았습니다.

    ◀INT▶ 김동규/고 김태완 군 아버지
    "쟤는 말도 못하고 저능아다. 그렇게 자기들이 판단해버리니까"

    14년이 지난 지금 스무 살이 된 인수는 멀쩡히 대학까지 진학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해 최근에도 자주 꿈을 꾼다고 합니다.

    ◀SYN▶ 이인수
    "악몽악몽 (악몽, 어떤 꿈을 꿔요?) 태완이"

    ◀SYN▶ 이인수 군 아버지
    "검은 봉지 들고 다니는 사람 무섭다 이러거든요. 요즘도 해요. 경찰 바보라고"

    황산이 들어 있던 검은 봉지.

    사건 당시 인수는 범인이 검은 봉지를 들고 있었다고 기억했고, 태완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SYN▶ 김태완 군 생전녹취
    엄마: 하얀 통이드나?
    태완: (봉지)
    엄마: 봉지 안에 들었어?
    태완 :(응)
    엄마: 봉지 어떤 색깔이던데?
    태완: (까만색)"

    하지만 경찰은 당시 황산과 관련한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INT▶ 박진영/고 김태완 군 이모
    "봉지에 황산을 넣으면 봉지가 녹아내릴 건데 어떻게 되냐, 해갖고 실험을 해보자 해갖고 하니까 그대로 물 담겨 있듯이 안 녹고 그냥 있는 거예요. 그래서 (태완이) 말을 확신한 거죠."

    범인은 못 잡더라도 의문만이라도 해소해줬더라면,

    그래서 자신들의 갖고 있던 의구심이 완전히 해소됐다면, 가족들은 10여 년 세월을 원망으로 살진 않았을 거라 말합니다.

    ◀INT▶ 박정숙/고 김태완 군 어머니
    "우리가 가진 의구심이 명쾌하게 밝혀졌다면... 만약에 그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 나름대로도 힘들게 살았을 것인데 왜 우리가 억울한 사람을 그렇게 마음속에 두고…."

    경찰 수사는 정말 이대로 끝나버린 걸까.

    ◀SYN▶ 대구지방경찰청 관계자
    "씁...근데 공소시효가 다 지난 부분인데 (그러면 그 사건은 종결을 하신 건가요?) 우리는 상해치사로 시작했고 지금 상태에서는 그걸로 해서 종결이 됐습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지만, 죄명이 상해치사라 이미 7년 전에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입장은 다릅니다.

    상해치사인지 살인인지는 범인을 잡아봐야 아는 거지 경찰이 미리 결론짓고 수사를 끝내선 안 된다는 겁니다.

    ◀INT▶ 백형구 변호사
    "결론이 안 났으니까 수사를 해봐서 살인죄의 고의가 인정되면 살인사건이고 살인죄의 공소시효 기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이 사건 수사는 해야죠"

    가족들은 얼마 전 당시 수사경찰을 다시 찾아갔지만 기억이 안 난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SYN▶ 천민호/당시 수사반장
    "나는 거짓말이 아니라 지금 전혀 기억을 못 하겠어.
    엄마: (언제하고 그만두셨는데요. 수사를?)
    2천 년도지. 2000년"

    해당경찰서를 찾아 수사기록만이라도 보여달라 했지만, 가족들의 진술조서조차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SYN▶ 대구 동부경찰서 관계자
    "굳이 기록을 안 봐도 (당시) 조사관 얘기만 들어도 전반적인 대답이 가능한데"

    자식을 먼저 보낸 죄책감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다는 태완이 엄마.

    ◀INT▶ 박정숙/고 김태완 어머니
    "마음 놓고 크게 웃어보지도 못하고 살았어요. 맛있는 음식조차 못 먹었어. 맛있다고 하는 그 자체가 죄책감이어서…."

    태완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살인죄를 적용하더라도 내년 5월, 남은 시간은 7달에 불과합니다.

    ◀INT▶ 박정숙/고 김태완 어머니
    "태완이에게 약속도 했었는데 꼭 잡아서 사과하게 해줄게. 벌 받게 해줄게가 아니라 태완이에게 사과하는 거 그걸 듣고 싶어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가족들은 마지막으로 태완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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