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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만 넘으면 7천만원인데"…철조망 친 아파트

"담만 넘으면 7천만원인데"…철조망 친 아파트
입력 2013-10-28 09:48 | 수정 2013-10-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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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쩡한 아파트 담벼락에 주민들이 철조망을 치고, 한 달 째 24시간 조를 짜서 불침번을 이상한 아파트가 있습니다.

    도둑이 많아서도 아니고 흉악범을 막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알고보니 새로 이사오려고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막는 건데요.

    이웃이 될지 모르는 사람들을 왜 막아서게 됐을까요. 스스로를 철조망 안에 가둔 입주민들, 무슨 일인지 찾아가봅니다.

    =============================

    경기도 파주의 한 아파트 단지.

    새벽 두 시가 다 된 시각에 누군가 손전등을 들고 이곳 저곳 둘러보며 돌아다닙니다.

    ◀SYN▶
    "이상 없으시죠 (네 이상 없습니다)"

    무전까지 주고받으며 순찰을 돌고 있는 사람은 경비원이 아닙니다.

    석달 전 이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 김현태씨입니다.

    ◀SYN▶ 김현태
    "입주하고 두 달 동안 평화롭게 살다가 지금 이렇게 밤마다 근무서고 있는 거고요." (군대 생활 생각나시겠어요) “군대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

    맞은편에서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옵니다.

    ◀ SYN▶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수고하십쇼."

    김 씨 뿐 아니라 이 아파트 주민들 모두가, 집집마다 조를 짜서 매일밤 이렇게 교대로 불침번을 돌고 있습니다.

    ◀SYN▶ 김현태
    "다들 자기 재산 지키는 거 아니에요 지금. 저 또한 내 재산 지키려고 하는 거고, 그러니까 밤낮 있겠어요? 앉아서 돈이 날아갔는데요."

    이 아파트의 이상한 점은 이 뿐이 아닙니다.

    아파트 울타리가 온통 군부대에서나 볼 법한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순찰 도중 울타리 밑에 사람 하나가 드나들 만큼 움푹 파인 자리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어디선가 철조망을 가져와 설치하기 시작합니다.

    ◀SYN▶ 김현태
    "땅을 파서 들어옵니다. 그래갖고 아래쪽으로 아예 철조망을 쳐 놓으면 땅을 파고도 못 들어오니까"

    누가 자꾸 숨어 들어온다는 얘기일까.

    ◀SYN▶
    "어떻게든 집을 보려고 들어오니까요 지금 다..."

    흉악범을 잡겠다는 것도 아니고, 도둑을 막겠다는 것도 아니고, 새로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을 막겠다며 요새처럼 철조망을 두른 입주민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이 아파트에서 한 달째 벌어지고 있습니다.

    팔리지 않은 빈 집들 때문입니다.

    파주 운정지구 한라 비발디 플러스 아파트.

    총 820여 세대 중 입주한 집은 350세대, 절반 이상이 미분양 아파트입니다.

    그런데 건설사 측이 입주 두 달 만에, 이들 남은 집을 할인 분양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기존에 분양받은 사람보다 최대 30퍼센트나 싼 가격이었습니다.

    ◀SYN▶ 이혜정
    “20퍼센트, 30퍼센트 그 금액이면 8천만 원 정도 되잖아요. 그거를 지금 자다가도 벌떡벌떡 눈이 떠져요.”

    기존 입주민들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많게는 1억 원이 넘는 돈을 앉아서 손해 본 셈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제로라도 할인 분양을 막겠다며 밤낮으로 지키기에 나선 겁니다.

    혹시나 밤중에라도 집을 보러 올 수도 있으니 들어오는 사람도, 차량도 모두 주민들이 직접 검문 검색합니다.

    ◀SYN▶ 김현태
    “횟집 하시는 분이에요. 거의 1시, 12시에서 2시 사이에 들어오세요.”

    하나하나 출입부까지 기록해 낯선 사람이 아예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SYN▶ 유지영
    "차 뒷좌석에도 몰래 숨어 들어오시고 트렁크에도 숨어 들어오시는 분도 계시고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냐고 묻자, 단지 뒤편 작은 쪽문으로 취재진을 안내합니다.

    철조망이 잘린 흔적이 보입니다.

    ◀SYN▶ 김현태
    "앞전에 여기를요 누가 자르고 들어 왔더라고요." (니퍼 같은 걸로 자른거예요?) "네."

    할인분양을 받으려는 사람들도 철조망까지 잘라가며 담을 넘을 만큼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SYN▶ 김현태
    "분양 대행사에서 하는 말이, 담만 넘으면 7천만 원 (이득)인데 담 한 번 못 넘겠냐 그렇게 말을 해요."

    교대 시간이 끝난 뒤에도 좀처럼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김 씨.

    ◀SYN▶ 정재우
    “근처에 금촌에서 전세 살다가, 와이프가 반대를 했는데, 설득을 해서 분양을 받았거든요. 그랬는데 이런 사태가 벌어지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SYN▶ 김윤호
    "좀 큰 평수 가서 그래도 애들 시집장가 가면 (부모가) 큰 평수로 가야 위신도 좀 서고 겸사겸사 해서.."

    남편들이 없는 낮 시간엔 부인들이 대신 나와 보초를 섭니다.

    오가는 사람 확인하랴, 아이들 챙기랴 정신이 없습니다.

    ◀SYN▶ 유병애
    "잠깐 아이를 데리러 갈때나 그 때는 되게 (다른 주민에게) 미안하고 그런 마음이 들기 때문에..마트도 제대로 못 가고요"

    한 달 가까이 온 식구가 하루 종일 나와 살다시피 하다 보니, 생활은 엉망이 된지 오랩니다.

    ◀SYN▶ 유지영
    “저희 아기 같은 경우엔, 제가 정말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와서 저희 집을 지킨다고 하다가 맹장이 터진 줄 모르고 복막염으로 열흘 이상 입원했습니다."

    스스로 어이없을 때도 있지만, 돈 생각만 하면 화가 치밉니다.

    더구나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유 씨 같은 경우는 집값이 떨어지면 담보가 줄어든 셈이라 그만큼 은행에 돈을 더 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습니다.

    ◀SYN▶ 유지영
    “3년 거치 27년 상환 이런 식으로 하는데 당장 30퍼센트를 다운시켜 놓으니까 거치기간 지난 후에 30퍼센트 상환을 당장 요구를 하더라고요.”

    건설사에 찾아가 냄비뚜껑과 페트병을 두들기며 구호도 외쳐봤지만, 사실 뾰족한 방법은 없습니다.

    할인분양 상담을 받는 사무실,

    싼 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SYN▶ 분양상담사
    "보통 미분양 할인은 2년이 지나야 할인이 들어가요. 모든 아파트가 다 그래요. 그런데 (이번엔) 바로 다음 달에 파격 분양을 하게 됐는데 아시는 분들은 아시더라고요."

    상담사는 주민들의 경계가 심해 당장은 집 보러 가기 힘들 거라며, 아파트 내부를 촬영한 모니터 화면을 대신 보여줍니다.

    ◀SYN▶ 분양상담사
    "(아파트 단지)안에는 철통같아서 어쩔 수 없이 못 들어가요. 이거를 놓치시면 이 아파트 놓치시는 거예요. ‘아 못 보는데 어떻게 계약을 해’그냥 이걸 믿고 하셔야 되는 거예요."

    워낙 많이 깎아줘서인지, 집도 안 보고 계약한 사람들이 많아 한 달 만에 벌써 절반 넘게 팔렸습니다.

    집을 싸게 산 사람도 이런 상황에 마음이 편치 많은 않습니다.

    ◀SYN▶ 할인분양 계약자
    "저번에 돌아다니다 보니까 그 철조망을 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무슨...(이사해도) 맘 놓고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죠. 어떻게 해코지를 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왜 엉뚱하게 우리한테 화풀이 하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입니다.

    ◀SYN▶ 할인분양 계약자
    "돈 내고 물건 산 건 똑같은데, 누구보다 단지 싸게 샀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것도 문제가 되는 거고. 신규분양자들이 인질도 아닌데 이러는 것도 이해가 안되고."

    몇 년 전만 해도 이곳 파주 운정 신도시는 '제 2의 판교'라 불리며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분양가가 너무 높아 논란이 될 정도였습니다.

    ◀SYN▶ 뉴스데스크/2006년 9월 18일
    "아파트 분양가 거품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산정되기에 이렇게 고무줄인지"

    당시 주변 시세보다 무려 60퍼센트 높은 분양가를 책정하며, 부동산 열풍을 주도했던 한라.

    하지만 불과 6년 만에 30퍼센트 할인 분양으로 입주민들의 원성을 듣게 됐습니다.

    한라 측은 자금난 때문에 자신들도 손실을 감수해 가면서 할인 분양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SYN▶ 설재균 대리/(주)한라 홍보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다 보니 미분양 물량을 계속 안고 갈 수도 없고. 저희뿐만 아니라 건설업계 전체가 안고 있는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적으로 따져보면, 건설사가 자기 상품인 집을 싸게 팔겠다는 걸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높은 분양가는 아직까지 규제 대상이지만, 반대로 낮은 분양가를 제제할 이유는 없다는 겁니다.

    집 없는 사람 입장에선 반가운 소식입니다.

    결국 비싼 돈을 주고 먼저 입주한 사람만 앉아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SYN▶ 강보형/한라아파트 입주자
    "업체는 업체 나름대로 그 사정이 있겠죠. 애로사항이 있고 또 그렇게 안 하면 안 되겠지만... 그러면 먼저 입주한 사람은 쉽게 말해서 사기 당한 거예요. 그러니까 바보가 된 거죠."

    할인분양 문제로 말썽이 생긴 곳은 이 아파트뿐이 아닙니다.

    특히 대규모 공급이 많았던 수도권 신도시 단지에서 이런 일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다급한 일이 생겼는지, 입주민 수십 명이 피켓을 들고 뛰어나갑니다.

    알고 보니 할인분양을 받은 사람이 이사를 온 것, 이삿짐차를 막아섭니다.

    ◀SYN ▶
    "특별 분양 받은 자는 정문통과 어림없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이사 오는 차가 많은 이른바 손 없는 날.

    누굴 막고 누굴 들여보내야 할지 헷갈리는 상황까지 벌어집니다.

    ◀SYN▶
    "(403호면 일반 분양이에요) 일반 분양이야? 일반분양 받아서 들어온 사람이면 통과시켜 줘야지. 할인분양 아니라고.“

    경찰까지 출동하자 어쩔수 없이 차량을 들여보냈지만,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습니다.

    이사하는 집 앞까지 쫓아가 시위를 이어갑니다.

    ◀SYN▶
    "여기 할인분양 왜 시작하셨는지 아십니까! 집 주인 나와봐! 할인 분양 받으니까 좋아? 똥냄새 나는데? 뭘 쳐다 봐!"

    주민들은 새로 지은 아파트가 오수정화시설 하자로 악취 문제가 심각해지자, 건설사 측이 소문이 퍼지기 전에 서둘러 할인분양을 시작한 거라고 주장합니다.

    ◀SYN▶ 신은혜
    “뭔가 좀 해결을 해 달라고 그러는데 정화조 그거 만드는 거 얼마 안 든대요. 그런 방법을 만들어보지 않고 왜 할인 분양부터 하냐고요.

    그러나 건설사 측은 하자와 할인분양은 별개의 문제라며, 시위 주민들에게
    억대의 배상을 요구하는 업무방해 가처분신청까지 내는 등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약 6만 8천여 가구.

    이 가운데 40%인 2만 6천여 채는 준공이 끝난지 오래인데도 주인을 찾지 못해 결국 값을 깎아서라도 처분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특히 양도세 5년 면제 등 부동산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정책의 효력이 올해 말까지로 예정돼 있어, 최근에는 입주도 하기 전부터 할인분양에 나서는 곳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SYN▶ 변창흠 교수/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정부가) 여러 가지 세제 혜택이라든지 금융상의 혜택을 줄 때, 건설사는 거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할인까지 더 얹어서 빨리 기존에 있던 미분양 물량을 밀어내려는 욕심이 있죠."

    전문가들은 집을 짓기 전에 소비자들이 돈부터 내는 선분양제, 공급자 우선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SYN▶선대인/선대인경제연구소
    "완성된 물건을 보지도 못하고 주변에 어떤 환경인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소비자가 거액을, 그것도 빚으로 거액의 돈을 들여서 집을 사게 하는 구조거든요. 이런 시대착오적인 제도를 아직도.."

    전세 값은 61주 연속 치솟고 있지만 주택경기는 여전히 침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집이 없어도 골치, 집을 사려 해도 골치인 지금의 주택시장,

    집 한 채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던 중산층이 맞닥뜨린 냉혹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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