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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조의명 기자

[현지르포] 홍콩은 왜...

[현지르포] 홍콩은 왜...
입력 2014-10-13 08:47 | 수정 2014-10-1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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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의 진주라는 홍콩 거리에 최루탄이 발사됐습니다.

    비즈니스맨들이 바삐 걸어다니던 중심가는 우산을 받쳐 쓴 시위대로 뒤덮였고,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시민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습니다.

    반환 17년 만에 최대 규모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벌어진 것.

    이번 우산 시위는 행정장관 직선제를 통한 완전 자치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100년간 따로 살아온 중국인과 홍콩인들의 갈등, 치솟는 집값과 경기침체에 대한 불만 등 복잡한 요인들도 잠복해있습니다.

    화려한 풍경 뒤에 숨겨졌던 홍콩의 속사정, 2580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

    지난달 26일, 홍콩 정부청사 앞.

    "지금부터 저와 함께 들어갑시다. 우리에게 광장을 돌려 달라!"

    수업을 거부한 채 청사 앞에 모인 학생들이 담을 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내 하나 둘 씩 경찰에 의해 끌려나갔고,

    "열어 줘요. 사람이 죽겠어요"

    시위는 금세 진압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분노한 시민들이 일제히 거리로 몰려나왔고, 8차선 도로는 10만 명의 군중으로 가득 찼습니다.

    홍콩에서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민주화 운동, 우산 혁명의 시작이었습니다.

    우산 혁명의 시발점이 됐던 홍콩 중심가의 애드머럴티 지구.

    10만 명의 인파가 운집했던 대로는 이제 한산해졌지만, 여전히 수천 명의 시위대가 열흘 넘게 노숙을 해 가며 최후의 보루로 남은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낮 기온 30도가 넘는 늦여름 더위가 이어지던 지난 5일.

    도로 위의 시위대는 우산 그늘 아래 삼삼오오 모여앉아, 점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슴에는 노란 리본을 달고, 손에는 각각 도심을 점령하라, 끝까지 싸우자는 팻말을 든 사람들.

    "홍콩인 힘내자! 홍콩인 힘내자!"

    수만 명이 모이는 점거 시위는 홍콩 역사상 처음.

    이곳에 모인 대부분은 난생 처음 시위에 나와 본 사람들입니다.

    ◀ 크리스틴 쳉 / 홍콩 시민 ▶
    "TV에서 진압 장면을 보고 화가 많이 났습니다. 제가 지금 나서지 않으면 나중에 나설 기회가 없을 것 같았어요."

    이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도화선은 최근 개정된 홍콩 선거법.

    오는 2017년 통치 수반인 행정장관 선거 후보에 친중국 성향의 인사만 등록할 수 있도록 중국측이 법을 바꾸자 홍콩 시민들이 크게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50년 동안 자치권을 보장하기로 한 약속을 뒤집었다는 겁니다.

    ◀ 홍콩 시민 ▶
    "선택하지 말라는 게 무슨 공정 선거란 거냐?"

    ◀ 에드워드 친 ▶
    "이건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죠. 중국 당국이 여전히 홍콩을 원격 조종하려는 겁니다."

    홍콩 경찰은 군중들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했습니다.

    ◀ 홍콩 시민 ▶
    "경찰들이 순식간에 들이닥쳐서 우리를 제압했습니다. 우리가 저항하려 하자 최루스프레이를 뿌렸어요"

    시위대는 물러서지 않고, 우산을 방패 삼아 맞섰습니다.

    ◀ 홍콩 경찰 ▶
    "안전을 위해 최대한 빨리 이곳을 떠나시길 바랍니다."

    ◀ 시위대 ▶
    "학생들을 지키자! 학생들을 지키자!"

    최루탄까지 써가며 학생들을 강제 진압하는 경찰의 모습에 분노한 시민들이 대거 가담했고, 순식간에 전세계의 눈은 홍콩으로 쏠렸습니다.

    시민들이 점거한 도로 표지판엔 원래 도로명 대신 민주주의, 자유 같은
    새로운 이름이 붙었습니다.

    시위 경험이 없는 홍콩 시민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사온 빵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 홍콩 시민 ▶
    "뭐라도 드셨어요? 빵이에요."

    햇볕이 따가울 때는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고,

    중앙분리대 너머 시위 현장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 윙호 / 자원봉사자 ▶
    "대단한 건 아니지만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우리가 단결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의미입니다."

    시키는 사람없이 자발적인 시위다 보니 재기발랄한 모습도 눈에 띕니다.

    망가진 우산을 활용해 조각보자기 같은 대형 차양막을 만들기도 하고,

    쓰고 남은 나무조각으로 만든 이른바 '우산을 든 시민상'은 이번 시위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거리의 화가는 시위 현장 한 복판에서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화폭에 담고 있습니다.

    ◀ 페리 / 화가 ▶
    "역사의 한 장면을 포착해 기록하는 겁니다. 다시 볼 수 없을 사건입니다"

    ◀ 줄리아 헌틀리 / 홍콩 거주 영국인 ▶
    "(무섭지 않나요?) 전혀요. 이곳 학생들과 사람들은 친절하고, 배려심 깊고, 예의 바르고 매우 평화로워요"

    배낭여행을 온 중국 청년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 데이브(가명) / 중국 관광객 ▶
    "여기 도착해서 진실을 알고 난 뒤에 저는 나흘이나 여기 앉아 있었어요. 많은 중국사람들은 모릅니다. 그 분들이 알게 되면 이들을 지지할 겁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홍콩인 할머니는 오히려 청년을 걱정합니다.

    ◀ 홍콩 시민 ▶
    "(이 학생) 얼굴이 방송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공산당이 해치려고
    마음먹으면 간단한 일이니까요."

    제2의 천안문 사태다, 중국 정부의 무력진압이 임박했다, 갖가지 풍문이 돌 정도로 상황은 커졌지만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은 시민들의 대화 요구를 잇따라 거부하고 있어 점거 시위는 벌써 보름 째를 맞고 있습니다.

    ◀ 알렉스 초우 / 시위 대학생 대표 ▶
    "이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부를 더욱 압박해야 합니다"

    '항쟁의 길'이라 새로 이름 붙여진 도로 표지판에 누군가 '장기'라는 말을 덧붙여 놨습니다.

    '장기 항쟁', 길고 힘든 싸움을 각오해야 할 거란 뜻입니다.

    동양의 진주라고 불리며 아시아 금융 경제의 중심으로 번영을 누리던 홍콩의 전성기는 1997년 중국 반환을 기점으로 천천히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살인적인 물가와 집값 폭등은 홍콩 사회 전체의 가장 큰 고민입니다.

    그 문제의 원인이 중국에 있다는 생각은 홍콩 시민들의 반중 감정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스물 아홉 살 응초홍 씨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취직한 평범한 홍콩 청년입니다.

    응 씨는 도심에서 일곱 정거장 떨어진 교외의 25년 된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 응초홍 / 홍콩 시민 ▶
    "여기는 주방인데 세탁기도 있어서 조금 좁고요.."

    우리나라 원룸 정도 크기의 작은 신혼집.

    ◀ 응초홍 / 홍콩 시민 ▶
    "사실 친구들이 놀러 와도 앉을 자리가 부족합니다."

    이 아파트의 월세는 15,000 홍콩달러.

    우리 돈으로 200만 원이 넘습니다.

    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응 씨의 월 수입은 홍콩 대졸자 평균 초임인 2만 홍콩달러 남짓,

    월급의 4분의 3이 고스란히 집세입니다.

    이대로라면 앞날이 없다는 생각이 응 씨 같은 젊은이들을 거리로 나서게 만들었습니다.

    ◀ 응초홍 / 홍콩 시민 ▶
    "원래 정치는 별로 관심 없는데 이건 우리의 미래잖아요. 지금 홍콩 반환한 지 20년도 안 됐는데.. 계속 이렇게 가다 보면 앞으로 생활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홍콩 전역의 집값은 최근 6년새 2.5배로 뛰었습니다.

    물가상승률도 반환당시인 1997년에 비해 일곱 배나 솟구쳤습니다.

    반환이후 중국인이 몰려오면서 모든 게 변했다는게 상당수 홍콩인들의 생각입니다.

    ◀ 최금란 / 홍콩 한국교민-30년 거주 ▶
    "중국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가지고고급 아파트를 구입하고 이러면서 아파트 가격을 올려놓았기 때문에 (홍콩인) 본인들이 장래에 대한 불안이 더 커지고..."

    하지만 홍콩 정부는 중국의 눈치만 볼 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 리푸이탁 교수 / 홍콩대 ▶
    "홍콩인은 홍콩인의 이익을 대표하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저 북경 중앙정부만의 이익만을 대표하는 지도자를 가져야 하는가, 관건은 결국 여기에 있습니다."

    꾸준히 쌓인 앙금은 갖가지 사건으로 터져나왔습니다.

    2012년, 홍콩의 한 명품 매장 앞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 곳 경비원이 매장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홍콩 행인은 제지하고 중국 본토 관광객에게는 사진 촬영을 허락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차별하지 말라며 반발한 겁니다.

    얼마 후엔 중국을 미화하는 내용의 역사교육 개정안이 추진되면서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함께 들고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 장정아 교수 / 인천대학교 중국학과 ▶
    "홍콩인들은 자신이 세계 최고라는, 한때 세계 최고였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우리가 갖고 있던 많은 것들이 다 없어졌을까에 대한 상실감, 무력감.."

    같은 민족, 다른 사회로 살아온 지 100년.

    "(당신은 중국인인가요?) 홍콩 사람입니다."

    중국 반환 1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들은 홍콩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합니다.

    ◀ 케네스 쳉 / 홍콩 시민 ▶
    "오랜 기간 다른 사회로 살아왔고 다른 정치 구조에 따라 살아왔는데, 우리는 중국이 정하는대로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무역규모의 절반 이상, 관광산업의 70%를 중국이 이미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중국에 정면으로 부딪쳐서는 승산이 없다는 의견도 점차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 홍콩 시민 ▶
    "홍콩 정부가 해결을 못 하면 중국 인민 해방군이 올 거야. 학생들은 너무 순진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냐."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생계에 타격을 입게 된 사람들은 시위대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 홍콩 시민 ▶
    "학생들은 이제 젖병을 뗀 아이나 다름 없는데 무슨 민주주의를 알겠습니까?"

    지난 7일, 점거가 이어지고 있는 애드미럴티 지하철 역 인근으로 또다른 시위대가 몰려들었습니다.

    친정부, 친중 성향의 맞불 시위대, 일명 푸른 리본들이 현장에 나타난 겁니다.

    ◀ 레티 리 / 친중단체 대표 ▶
    "당신들이 이러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야. 길을 차지하고 비켜주지 않고 있어."

    감정이 격해지다가 우발적인 상황이 터지진 않을까 우려되는 순간,

    ◀ 시위대 ▶
    "생일축하합니다~ 생일축하합니다~"

    시위대들은 언성을 높이는 대신 노래와 환호로 응답합니다.

    ◀ 시위대 ▶
    "노래 한 곡 하세요! 노래 한 곡 해 봐요!"

    결국 친중 시위대는 머쓱해진 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 첸 / 홍콩 시민 ▶
    "폭력배와 반대 시위자가 우리 학생들을 다치게 한 일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분들과 싸우지 않고 노래하는 방식으로 우호적인 운동을 펼칠 겁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시위대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지만, 이들은 침착함을 잃지 않아야만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영국도, 중국도 아닌 홍콩 스스로가 홍콩의 미래를 결정하고 싶다는 겁니다.

    ◀ 위척키 / 홍콩 시민 ▶
    "우리는 평화로운 투쟁으로 우리의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바랍니다.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일을 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

    100년의 식민지, 그리고 중국으로의 반환 17년만에 큰 몸살을 앓고 있는 홍콩.

    현실적인 한계 속에 미완의 혁명으로 주저앉을 것인지, 반쪽짜리 민주주의 대신 자신의 주권을 스스로 얻어낼 수 있을 것인지.

    홍콩의 내일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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