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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이호찬 기자

“강제입원 가능합니다”

“강제입원 가능합니다”
입력 2014-10-27 08:43 | 수정 2014-10-2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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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자만 동의하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될 수 있다면?

    그리고 항의해서 퇴원했는데 그 자리에서 다른 정신병원으로 또다시 이송된다면?

    막장드라마에서나 보던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2580이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본인의 뜻은 깡그리 무시된 채 14번이나 전국의 병원으로 이리저리 실려다니며 강제 입원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병원으로 실어나르는 소위 ‘이송단’은 법적, 의학적 근거도 없이 보호자들에게 “우울증 진단서 하나면 쉽게 입원된다”며 사실상 조언까지 해주고 있는데...

    =============================================

    지난달 25일, 경기도의 한 다세대주택.

    경찰이라며 문을 열어달라는 소리에 정혜 씨는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들이닥친 건 사설 응급구조대원 두 명.

    함께 살던 유림 씨를 그대로 끌고 갔습니다.

    ◀ 이정혜 (가명) ▶
    "여자 경찰분이 저를 막으셨어요. 신발도 전혀 못 신고 맨발로, 그때 입은 차림 그대로 (유림이가) 끌려간 거죠.."

    어디로, 왜, 이런 설명 하나 없이 구급차에 실렸습니다.

    ◀ 이정혜 (가명) ▶
    "소리 지르고 살려달라 그러고 구해달라, 도와달라 그러고.. 바로 뛰쳐나갔는데 이미 구급차에 실려있던 상황이었어요.."

    구급차가 도착한 곳은 수도권의 한 정신병원.

    의사와의 짧은 면담을 거친 뒤 유림씨는 바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됐습니다.

    ◀ 이정혜 (가명) ▶
    "놀러도 다니고 친구들도 보러 다니고.. 수다도 떨고 나가서 차도 마시고.. 주위에 있는 친구들도 다 놀라요. 이렇게 해서 강제입원 됐다고.. 걔가 왜? 그렇게 입원될 만큼 무슨 문제가 있냐?"

    유림씨는 입원되기 석달 전 대형 종합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습니다. 경미한 우울증이었습니다.

    일상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유림 씨는 성적 소수자, 동성애자입니다.

    2년 전 정혜 씨를 만나 교제를 시작했고, 유학 도중 학업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모님과의 불화는 극도로 심해졌습니다.

    결국 유림 씨는 집을 나와 정혜 씨 집에 머물렀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유림 씨 부모님이
    치료가 필요하다며 사설 구조대에 요청해 입원을 시킨 겁니다.


    ◀ 이정혜 (가명) ▶
    "동성애 자체를 굉장히 질환으로 보시고, 저하고의 관계 때문에 가정의 불화가 있다고는 하는데.. 이 방식은 조금 아니죠..."

    병원측은 이런 사정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 김유림(가명) 이정혜씨와의 전화통화 ▶
    "무조건 입원하라고.. 부모가 동의해서 입원하는 거기 때문에 내 의지는 상관없고 내가 상담을 하든 말든 입원을 하는 건 정해져 있는 거라고 그랬어..."

    부모님의 허락 없인 면회 불가.

    정혜 씨는 유림씨의 동거인 자격으로 법원에 인신보호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강제입원이 부당하니, 법원에서 판단해 달라는 거였습니다.

    그러자 병원측은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던 입장을 바꿔 퇴원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유림씨를 또다른 병원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 김유림(가명) ▶
    "병원 측에서 이제 소송을 하고 싶지 않다면서 부모님한테 저를 이제 데리고 나가달라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EMS라고 구급차 있죠? 그거를 불러서 저를 끌고 왔죠. 여기로.."

    경기도의 한 아파트 단지 옆 상가 건물.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철조망 안 의자에 앉아 있고, 아래 층 창문 안으로 병실 내부가 들여다 보입니다.

    침대 위에 혼자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이 유림 씨입니다.

    ◀ 김유림(가명) ▶
    "'나가고 싶냐?'고 물어봐서 '그럼요. 나가고 싶죠' 이렇게 얘기를.. (그때 의사는 뭐라고 했어요?) 그냥 별말 없었어요. 다른 환자들이랑 다르게 진단을 목적으로 지금 입원해 있는 상태다.. "

    병원을 찾아가 봤습니다.

    병원측은 부모와 유림 씨 의견이 완전히 엇갈리는 상황에서 지켜볼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습니다.

    ◀ 병원 관계자 ▶
    "보호자분들의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는 병증이 심한 상태이고, 환자분 이야기 들어볼 때는 병증이 심하지 않고.. 상황이 너무 애매하니까 2주 정도 지켜보고 그리고 문제가 없으면.."

    검사 결과 입원이 필요없다는 진단이 나왔고, 유림 씨는 입원 한달 만인 지난 금요일 퇴원했습니다.

    당초 2580과 만나 병원 진단을 믿을 수 없다며, 또 다른 정신병원에 유림 씨를 입원시키겠다던 부모님도 일단 통원 치료로 마음을 돌렸습니다.

    ◀ 김유림(가명) ▶
    "이런 상황에서라면 이제 부모님께서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저는 다시 강제입원이 될 수 있는 상황인데.. 이제 저는 성인이고, 크게 그런 정신질환이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강제입원이 가능하다는 게 좀 문제인 거 같아요. "

    올해 49살의 김성한 씨.

    지난 4년 동안 무려 14번의 강제 입원을 당했습니다.

    ◀ 김성한(가명) ▶
    "새벽 12시에서 1시 사이에 깡패 같은 덩치 큰 사람들이 신발 신고 제 방에 들어와서 깨우고 막 저를 그냥 강제로 이렇게 막 납작 묶여가지고 거의 뭐 이렇게 들려서 나간 거죠.."

    이혼과 실직 이후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과음이 잦아지자 아버지가 김 씨를 습관적으로 병원에 집어넣는다는 겁니다.

    ◀ 김성한(가명) ▶
    "과음이 됐다거나 했었을 때 아버님이 저한테 이제 "왜 이놈의 **야 또 술을 먹었어"라고 했었을 때 뭐라 그러나.. 반박을 한다고 그러나? 들이받으면 이제 또 잠이 들고 병원에 끌려가고 그런 패턴입니다. "

    심지어 강화도 병원에서 경남 의령까지 강제 이송된 적도 있다고 말합니다.

    ◀ 김성한(가명) ▶
    "납치하다시피 해서.. 현관에 있던 응급차에 강제로 태워 싣게 됐고.. 어디로 가는지 물어봐도 가르쳐주지 않고..."

    정신보건법 24조.

    보호의무자 2인이 동의하고,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이 있으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정신병원 입원이 가능합니다.

    입원 사유 역시 추상적이어서 가족들과 의사만 합의하면 큰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입원시킬 수 있는 겁니다.

    ◀ 김성한(가명) ▶
    "보호자가 요청하면 100% 의사는 오케이, 콜입니다. 거의 90% 수용 개념입니다. 가족들이 편안하니까요. 합법적인 강제 민간인 감금 시설입니다. "

    앞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강제입원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건 사설 구급대입니다.

    응급상황이 아니고선 강제로 사람을 싣지 않는 119와 달리 이들은 전화 한 통이면 어디든 달려온다고 합니다.

    다섯 곳에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경미한 우울증, 가정불화. 이 정도면 모두 강제 입원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 A 사설구급대 ▶
    "(우울증 약간 있고요. 집에서 좀 가정불화 약간 있고 그러면 보통 좀 가능한 거에요?) 그렇죠. 거의 90% 정도 (입원이) 가능해요..."

    ◀ B 사설구급대 ▶
    "(병원 다닌 기록만 있으면 괜찮은가요?) 예. 바로 가능하십니다."

    의사 면담 방법을 알려주는 곳도 있습니다.

    ◀ C 사설구급대 ▶
    "여자 문제 그런 거는 말씀하지 마시고요. 집에서 폭력적이라든지 아니면 혼자 자살을 하려고 하는 그런 형태가 약간 보인다.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셔야지.. 가족분들이 동일하게 말씀을 해주셔야 돼요. 그런거는.."

    이송 과정은 어떨까.

    2580 취재진이 직접 전화를 걸어 구급대를 불러봤습니다.

    ◀ 구급대 (전화통화) ▶
    "(정신과 입원이 가능한지 여쭤보려고요.) 정신병원, 가능하시고요. 환자분하고 어떻게 관계가 되세요? (아. 동생이에요..)"

    30분 뒤 도착한 구급차.

    구급차에서 내린 남성 3명이 취재진에게 다가갑니다.

    ◀ 00 사설구급대 대원 ▶
    "병원에서 나왔어요..(네? 무슨 병원이요?) 좀 아프시다 그러셔가지고 진찰을 좀 받으실 겁니다. (제가 병원을 왜 가요?) 그러니까 그건 저희도 모르겠고..."

    신분 확인도 없이 그대로 구급차까지 끌고 갑니다.

    가지 않겠다고 버텨봐도 남성 3명의 힘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구급차에 타자마자 한 사람은 다리, 한 사람은 팔과 목을 누르며 제압합니다.

    "저희가 묶는다니까 이러면.. (아, 풀어요..)"

    오로지 이송만 할 뿐 입원할 만한 환자인지 아닌지도 관심 밖입니다.

    "(내가 병원을 왜 가냐고요..) 아이 몰라 나도 왜 가는지 선생님..(내 동의 없이 어떻게 나를 이렇게 끌고 가요.) 그래도 갈 수 있는게 법이에요 지금. "

    저항할수록 완력은 더 거세집니다.

    "안될 것 같으면 묶어 묶어. 에이 진짜 가만히 있어요. 가만있어! 이러다 다리 부러지는 수 있어요."

    협박도 이어집니다.

    "진짜 그럼 내 마음대로 해볼까요? 이게 얼마나 편한 건지 당해보실래요? 진단도 안 나오고 곡소리 나오니까 가만히 계셔.. 우리가 힘들잖아?. 선생님 그럼 다 꺾어서 막 척추 눌러 버려..."

    병원에 도착하자 병원 직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갑 얘기를 꺼냅니다.

    ◀ 병원 관계자 ▶
    "수갑 안 찼어요? (예.. 다치시면 안 될 것 같아서..) (수갑) 차야 할 것 같은데..."

    다른 구급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환자가 문제가 있든 없든 보호자만 동의하면 그냥 태워갔습니다.

    구급차 안에선 역시 힘으로 제압합니다.

    ◀ ** 사설구급대 ▶
    "나 이기려고 하지 마요. 이제 나 좋게 말하는 건 끝났어.. 이제 나 진짜 지금 기분 안 좋으려고 해. 그냥 가요. (이게 납치하는 거예요. 뭐에요..) 아, 그러니까 마음에 안 들면 나중에 납치로 신고하시라고요.."

    강제입원의 경우 당사자 대부분은 이유를 모른 채 갑작스레 끌려갑니다.

    저항은 이보다 훨씬 심할 수 밖에 없고, 결국 폭력이 동원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2월 강제 입원된 이 모 씨는 사설구급대에 의한 이송 과정에서 전기충격기에 의한 화상까지 입었다고 말합니다.

    ◀ 이00 ▶
    "무조건 나를 묶으려고 하니까..이제 강도인 줄 알고 소리를 질렀죠. 그랬더니 얼굴을 구둣발로 짓밟고 전기충격기를 막 더 세게 막 하니까.. 이제 배에 10센티미터 정도 상처 나고..."

    구급차에서도 폭행은 계속됐다고 합니다.

    ◀ 이00 ▶
    "응급차에 이렇게 침대가 있으면 거기다가 얼굴을 딱 올려놓고, 주먹으로 눈만 집중적으로 몇 십대를 때리더라고요."

    이 씨는 퇴원 뒤 이들을 고소했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혐의 처리됐습니다.

    황당한 건, 수사 과정에서 당시 출동한 구급대원의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출동했던 대원 2명 모두 정식 구급대원이 아니었습니다.

    ◀ ## 구급대 관계자 ▶
    "(옆사무실) 직원하고 아르바이트생하고 보냈었거든요. 그 사람은 잠깐 썼던 거거든요, 그날만.. (신원 확인은 안 하신 거예요?) 아.. 그런 거는 못했죠.."

    교육도 제대로 받을 리 없고, 심지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정신질환자의 이송을 맡겼던 겁니다.

    현행법상 사설 구급대는 응급 상황에서 환자 이송이 가능하고, 정신질환자의 응급 상황은 자해와 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로 한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질환자의 경우 보호자의 요청만 있으면, 이런 위험 없이도 강제 이송이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 김원영 조사관//국가인권위원회 ▶
    "그런 이송의 경우에는 사실 법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형법상 체포죄나 감금죄의 적용도 있을 수 있는 위법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것들이 공공연하게 사실상 허용되고 있는 것이죠. "

    강제 입원에 대한 판단이 너무도 쉽게 이뤄진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 전태우 변호사 ▶
    "(정신병원 강제입원은) 구속이랑 유사한 효과를 갖고 있는데 구속같은 경우는 검사, 또는 법관이 거기에 관여하게 되는 데에 비해서 강제입원은 사인인 보호의무자, 의사에 의해서 그 집행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봅니다. "

    이렇다보니 우리나라의 강제입원율은 매년 70%를 넘기고 있습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20% 아래인 것과 비교하면 크게 높은 수치입니다.

    ◀ 이진형(가명)//강제입원 피해자 ▶
    "(정신질환자 중에는) 위험한 사람이 있고, 그냥 특이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이렇게 청소하듯이 병원으로 수용시키는 건.."

    ◀ 권오용 변호사//한국정신장애연대 사무총장 ▶
    "입원 판단하는 사람이 그 병원 의사라면 그 병원에서 자기 수익이 되는데 그걸 입원을 시키지, 부당하게 이뤄지는 많은 입원들, 이런 것들이 거의다 경제적인 이익 때문에 이뤄지거든요.."

    그래서, 이제 강제 입원의 경우 입원 심사 자체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의사들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 홍진표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 ▶
    "정신과 의사가 이런 환자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신청을 하고 그거에 대해서 제3자가 그 심판위원회에서 그 환자에 대해서 심사를 해서 입원을 허가해 주는 제도가 되도록 도입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침해다 위헌이다 끝없는 논란 속에 현재 국회에는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열 개도 넘게 제출돼 있습니다.

    지금의 제도가 취지대로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고 보호하고 있는지, 거꾸로 이들의 기본권마저 손쉽게 옥죄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건 아닌지 따져보는 게 그 첫걸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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