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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송양환 기자

내 인생의 역주행

내 인생의 역주행
입력 2015-01-05 08:45 | 수정 2015-01-0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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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이 찍은 직캠영상 덕분에 음원순위 역주행에 이어 대세로 떠오른 걸그룹,

    자신의 설렘을 좇아 NGO 사무총장 자리를 박차고 나온 기자출신 화가,

    '인문대생 90%가 논다'는 신조어 '인구론'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 철학도,

    4전 5기의 도전만에 합격한 50대신입 공무원까지..2580이 인생의 재도약을 시작한 그들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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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에게나 특별한 새해지만 남다른 각오 속에 2015년을 맞이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력해 온 일이 결실을 맺고 지금까지 걷던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 2015년 힘찬 새출발을 기원해봅니다."

    흔히'서촌'으로 불리는 서울 통인동의 한 빌라 옥상.

    낡은 기와집과 복잡한 전깃줄, 나무 위에 앉은 참새와 연기 나는 지붕까지.

    조금은 옛스러운 서촌의 풍경과 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인왕산이 고스란히 화폭에 담깁니다.

    서촌의 옥상화가로 불리는 김미경씨는 조선의 문인 겸재 정선이 이곳 서촌에서 그린 수묵화 '인왕제색도'를 새롭게 표현하고 싶어 지난 여름 옥상으로 올라왔습니다.

    ◀김미경/서촌 옥상화가▶
    겸재가 그렸을 때는 밑에 한옥 몇 채가 있던지 산과 계곡만 있었는데 지금 인왕산은 저기까지 연립주택이 들어서고 이렇게 보이는 장면 이게 좋아서 그리기 시작한 거죠."

    1960년생으로 올해 나이 쉰 여섯. 처음부터 화가는 아니었습니다.

    1988년 신문사에 입사한 뒤 20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했고, 지난해 초까지는 시민사회단체에서 사무총장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에 마음을 빼앗겨 지난해 스스로 회사를 나왔습니다.

    ◀김미경/서촌 옥상화가▶
    "새 애인이 생긴 것 같은, 자꾸만 그림에 대해서 자꾸 생각을 하니까 회사 일에 대해서 죄책감이 느껴지고.."

    '나이 먹어 무슨 화가냐' 비웃음도 많았고, 월급이 안 들어오니 먹고 사는 것도 문제였지만 욕심을 비우니 살만 했습니다.

    ◀김미경/서촌 옥상화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도 다 잘벌고 편안하고 그런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로또인 거고. 로또를 기대하고 살 수는 없는 거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 생활이 불편해지는 것을 감당하자.."

    해질녘 집 근처 빵집으로 향한 김씨는 앞치마를 두르고 능숙하게 빵을 자릅니다.

    일주일에 두 번 이 곳에서 아르바이트로 버는 30~40만원이 김씨의 주요 수입원.

    그리고 교열 아르바이트로 받는 돈을 더해 생계를 꾸려나갑니다.

    ◀김미경/서촌 옥상화가▶
    "그림을 그리는 일로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지만 그걸 하고 싶고, 그걸 위해서 생계에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하는 부분에서 여러 조건이 잘 맞는데서 하는 감사한 일이다.."

    지난해 화가의 길에 들어선 데 이어 올해부터는 화가로서의 본격적인 삶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그린 그림을 모아 다음달 개인전도 엽니다.

    ◀김미경/서촌 옥상화가▶
    "사실은 가슴이 두근두근, 두근두근해요 진짜 거창한 건 없고 끝없이 그리는 거예요 행복하게. 내가 그리는 것이 지긋지긋해서 도저히 못하겠다라는 때가 안왔으면 좋겠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뻔하지만 쉽지 않은 이 말을 실감하게 한 또 다른 이웃을 찾아 2580은 전남 나주로 향했습니다.

    "삐-" "나와요? 방송 안 나오는데 이쪽은"

    방범용 CCTV를 점검 중인 두 사람.

    선배가 장비에 대해 설명하면 후배는 하나하나 받아 적습니다.

    "목소리가 끊기기 때문에 이 부분은 보완을 해줘야 해요." (네.)
    "이 부분을 조정 해줘야 해요." (네.)

    얼핏 보기에도 연륜이 느껴지는 외모.

    김형운 씨는 작년 9월에 9급 수습으로 임용된 나주시청 막내 공무원입니다.

    올해 58살, 정년까지 채 4년도 남지 않았지만 나이 어린 선배의 밀착지도를 받습니다.

    직속 사수는 김씨보다 6살 어리고 30년 경력의 소속 팀장은 김씨와 동갑입니다.

    ◀김덕운/나주시 공무원▶
    "대하시는 게 조심스러우세요 어떠세요?"
    "당연하죠. 젊은 사람 같으면 완전 열심히 뺑뺑이 시키죠. 하하"

    잘 나가던 대기업 부장이던 그는 2009년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김형운/58살 수습 공무원▶
    "처절함이랄까 괴로움이랄까. '아 내가 참 열심히 일을 했는데 내쳐지는 구나' 그런 생각에서.."

    방황 끝에 도전하기로 한 게 젊은이들도 붙기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

    하지만 30년 놓았던 공부를 다시 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외우고 돌아서면 까먹고, 또 잊어버리고, 그래서 보고 또 보고 쓰고 또 쓰고.

    어느새 영어사전은 너덜너덜해졌고, 이면지를 접어서 손으로 써가며 정리한
    노트는 수백 장에 달했습니다.

    이렇게 애를 썼지만 공부가 부족해서, 운이 없어서, 나이가 많아서 떨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김형운/58살 수습 공무원▶
    "젊은 애들은 2-3분이면 쭉 하는 것을 제가 나이가 들고 순발력이 떨어지다 보니까 답안지 마킹이 7-8분이 걸립니다. 일일이 보고 체킹하다 보면. 그래서 한 문제 마킹 잘못해가지고 그 차이로 떨어질 때는 집에 와서 원망스럽고 집에 와서 문 잠그고 울기도 했죠."

    그렇게 공부하기를 4년 마침내 지난해 전라남도와 서울특별시 공무원 시험에 동시 합격한 김씨는 서울을 포기하고 고향인 나주를 택했습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작된 9급 공무원으로서 제2의 인생.

    정년까지 4년도 남지 않았지만, 새해를 맞는 그에겐 새로운 삶을 향한 설렘이 가득합니다.

    ◀김형운/58살 수습 공무원▶
    "4년 남았지만 이 4년을 다른 사람 40년 못지 않게 활동을 해서 여러가지 의미있고 뜻깊은 일을 해보자는 마음뿐입니다."

    대기업 부장, 명예퇴직, 공무원 합격

    김형운 씨의 삶처럼 인생은 위 아래로 롤러코스터처럼 움직입니다.

    이름없는 중고 걸그룹에서 요즘 대세로 떠오른 5명의 걸그룹 멤버들은 지금 아찔하게 급상승중입니다.

    "위! 아래! 위위! 아래!"

    무대에 등장하기 전, 이미 체육관은 그녀들을 부르는 소리가 가득합니다.

    "EXID의 무대입니다! 위 아래" "우와~~~~"

    올해 데뷔 4년차를 맞은 걸그룹 EXID.

    그녀들에게 지난해는 노래 제목처럼 '위 아래'로 정신없이 흔들린 한해였습니다.

    '위 아래'는 지난해 8월 EXID가 발표한 신곡.

    1년 반동안 준비한 곡인만큼 애정이 컸지만 별다른 호응없이 3-4주만에 활동을 접어야했습니다.

    ◀하니/EXID 멤버▶
    "저희에 대한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보셔서 얘네 다음 앨범 내도 되겠다 생각만 하게, 그게 저희의 활동 목표였어요, 1위 이런 게 아니라.."

    그러다 극적인 반전이 시작됐습니다.

    한 팬이 직접 찍어 올린 무대 영상이 SNS에서 화제가 됐고, 뒤늦게 곡이 음원차트에 진입하더니 지난 달엔 급기야 1위에까지 올랐습니다.

    '음원역주행'이라는 수식어가 그녀들에게 붙었고, 음악방송과 예능 프로그램이 앞다퉈 그녀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혜린/EXID 멤버▶
    "60위 50위 40위, 이렇게 10위권 안에 들어가니까 솔직히 꿈같고 뭔가 마냥 좋게 보다는 무서웠어요. 어쨌든 기대치가 높아진 거니까"

    운이 좋았다고 하기엔 기다림이 길었습니다.

    12살부터 연습생을 시작한 정화, 데뷔 꿈을 이루지 못해 중국 유학을 갔다 돌아와 재도전한 하니, 간신히 데뷔했지만, 그들을 찾는 무대는 많지 않았습니다.

    ◀정화/EXID 멤버▶
    "저도 그랬고 저와 같이 연습했던 친구들도 그냥 다 데뷔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맞아 나도 그랬어."
    "그냥 가수 되면 끝! 그러고 나면 다 잘되는 줄 알았죠. 내가 꿈꿔왔던 것과 너무 달라서 데뷔하고 초반에는 되게 많이 힘들었어요.“

    2006년 다른 그룹으로 데뷔했지만 뚜렷한 반응을 얻지 못했던 맏언지 솔지는 데뷔 8년만에 자신의 노래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솔지/EXID 멤버▶
    "저도 계속 포기를 하고 싶었던 적이 많아요. '다시 잡고 다시 해보자, 다시 해보자 괜찮아 잘할 수 있어'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면서 했더니 한번은 기회가 오더라고요."

    어렵게 찾아온 기회, 다음엔 더 잘해야한다는 부담감도 커졌습니다.

    일정이 바빠졌지만 신곡연습에 더 매진해야 합니다.

    ◀하니/EXID 멤버▶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요.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요. 너무 힘들게 찾아온 기회고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온 기회이기 때문에.."

    ◀LE/EXID 멤버▶
    "최대한 저희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는 EXID가 되겠습니다. 2015년 2016년에도."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그 말을 실감하기 어렵게 힘겨운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문대생의 90%가 논다'는 뜻의 '인구론'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인문대생들이 느끼는 좌절은 특히 더 큽니다.

    ◀송용욱/연세대 사학과 4학년▶
    "경영학을 이중전공하거나 아니면 제가 아는 선배같은 경우는 CPA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생각해보면 사학하고 CPA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잖아요."

    최민철 씨도 지난해까지 같은 고민을 하던 취업준비생이었습니다.

    인문대 철학전공자로 프로그래밍은 배운 적도 없지만 지금은 굴지의 전자회사에서 기초부터 배우며 프로그래머로 일합니다.

    지난해 이곳에 합격하기까지 10여 곳의 회사에 떨어졌고, 전공탓에 지원조차 못한 곳은 더 많았습니다.

    ◀최민철/철학전공 프로그래머▶
    "별의 별 생각을 다했죠. 좌절도 많이 했고"

    하지만 그는 인문학과 IT 결합을 강조하며 오히려 인문학전공을 장점으로 내세웠습니다.

    ◀최민철/철학전공 프로그래머▶
    "어려운 맥락 속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한줄기 논리의 맥을 잡아내는 능력 이런 것을 배양했기 때문에 이게 오히려 더 강점이라 생각한다 했고.."

    그리고 2015년 신입사원 민철씨의 목표는 스스로 그 가치를 증명해 내는 것입니다.

    ◀최민철/철학전공 프로그래머▶
    "만약 제가 잘 하지 못한다면 '인문학도라고 해봤자 별 게 없네, 뭘 인문학적 소양이야" 이런 소리가 나오면 안 되게 그래서 제 뒤에 있는 많은 인문학 분들이 올 길을 조금이라도 편하게끔.."

    누구나 원하는 만큼 얻기는 힘든 그래서 웃음과 눈물이 함께하는 게 삶입니다.

    ◀김미경/서촌 옥상화가▶
    "이렇게 살고 저렇게 실패하고 힘들고 재밌고 하던 게 합쳐져서 새로운 꽃을 피운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행복할 수 있다는 기대 지금보다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원동력 삼아 우리는 또 1년을 보낼 것입니다.

    ◀김형운/58살 수습 공무원▶
    "열성적으로 하다보면 목표에 도달하고 자기 성취감이랄까요? 자기성취감은 맛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맘 때 서로의 행복을 바라며 평범하지만 힘이 되는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 땀과 눈물이 기쁨으로 보상받는 사회.

    해도 안된다며 좌절한 이에겐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2580도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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