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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노경진 기자

내 집 앞 악취도 '기업 비밀?'…동네 뒤덮은 냄새에 '불안한 주민들'

내 집 앞 악취도 '기업 비밀?'…동네 뒤덮은 냄새에 '불안한 주민들'
입력 2015-06-22 10:05 | 수정 2015-06-2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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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세먼지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기 중의 미세먼지, 황사 지수가 한 시간 간격으로 동네별로 공개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내 집 앞 공장에서 발암물질, 생식독 성 등을 지니고 있는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고 있는데 전혀 모른다면?

    우리 동네를 뒤덮은 악취가 도대체 무슨 냄새인지, 무슨 유해성분이 있는지, 심지어 어디서 오는 지도 모르는 상황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해당 업체가 ‘기업 비밀’이란 말 한마디만 붙이면 이런 유해성분에 대해 주민들에게 알릴 의무가 없고, 정부도 딱 히 공개할 방법이 없다는 것.

    지금 우리 동네 공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

    장비를 가득 짊어지고 20미터 높이의 굴뚝을 오릅니다.

    굴뚝 내부에 직접 호스를 연결한 뒤 배출가스를 추출합니다.

    공장에서 어떤 물질을 내보내는지 담당 공무원들이 현장 점검에 나선 겁니다.

    악취를 유발하는 염화수소와 페놀이 기준치 이상 나오는 지가 관건입니다.

    ◀ 박종철 / 울산시 환경관리과 주무관 ▶
    "밑에서 펌프로 배출가스를 당겨서 필요한 가스를 특정 가스에 반응하는 습성을 가지고 결합을 시켜서 분석하는 거죠."

    최근 울산에는 악취가 심하다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말 공단 근로자 수십명이 갑작스런 악취에 두통과 메스꺼움을 호소하며 병원에 실려가거나 조퇴를 하는가 하면, 이달 초엔 장생포 고래축제를 보러온 시민들이 비릿한 냄새를 참지 못하고 신고하기도 했습니다.

    ◀ 이갑순 / 울산시 장생포동 ▶
    "여기요. 차도 넘으면 냄새나고요. 사람이 못살겠어요. 공장이 많잖아요. 나오면 코를 막고 다녀야 하고요. 숨을 못쉬어요. 숨을.."

    현장조사에도 불구하고 악취의 원인은 오리무중입니다.

    눈에도 안보이고, 금방 사라져 버리는 공기의 특성 때문입니다.

    업체들은 가스 누출이 발생해도 규모가 크지 않으면 숨기기 쉽고, 주민 신고로 뒤늦게 출동해봤자 이미 악취 물질이 흩어져버려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기 어렵습니다.

    ◀ 윤영찬 / 울산시 환경관리과장▶
    "악취라는 물질이 지속되지 않고 순간적으로 발생했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에 저희들이 현장에 나가면 악취가 사라지고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주민이나 근로자들은 악취가 발생하면 그냥 참습니다.

    ◀ 김경옥 / 울산시 ▶
    "(그런걸 시청이나 업체에서 알려주거나?) 그건 잘 모르겠어요. 냄새나면 사무실 바로 문 닫고 냄새난다 이렇게 하는 것 뿐이지 따로 조치하거나 그런 건 없어요."

    하지만 대체 뭣 때문에 냄새가 나는지, 혹시 몸에 나쁜 건 아닌지, 이러다 사고가 나는 건 아닌지, 불안감까지 떨칠 수는 없습니다.

    ◀ 전덕남 / 울산시 ▶
    "냄새가 나면 무방 비 노출이 되는 거죠. 굴뚝에 흰 연기만 올라와도 이게 스팀이 나오는 건지 아니면 가스가 나오는 건지 그런걸 모르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황사나 미세먼지 농도를 정부가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할 정도의 시대에 이미 살고 있지만 정작 집 앞의 공장에서는 어떤 화학 물질을 다루는지, 혹시 해로운 성분을 배출하진 않는지 알아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경기도 화성시 조용한 시골마을의 새벽.

    높이 솟은 공장 굴뚝마다 쉼없이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온 마을에 자욱하게 연기가 내려앉습니다.

    ◀ 화성시민 ▶
    "가끔 차에 뭐가 앉아요. 그래고 냄새도 나요./ 먼지가 아니고 쉽게 말하면 새똥 비슷하게 뭐가 앉아 차에. 사람한테 엄청 해롭겠지."

    무엇보다 주민들을 괴롭히는 건 지독한 악취.

    ◀ 장경석 / 경기도 화성시 ▶
    "분뇨냄새에 우리 자동차 불완전 연소해서 배기가스 나오는 혼합이라고 그럴까? 악취가 심할 때는 눈도 못뜨고 코로 숨을 못쉬어요. 가스맞는 식으로 속이 불편해서 메스껍고.."

    냄새가 심해선지, 성분이 해로워서인지 통증도 호소합니다.

    ◀ 화성시민 ▶
    "처음에 여기 왔을 때 맡으면 머리도 아팠고, 나가기도 좀 두려웠고. 그제도 아줌마 밭에 계시면서 너무 목이 칼칼하고 아프셔서 찾아갔다 오셨다고."

    공장에서 3km 가까이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서도 비슷한 악취를 호소하는 민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입주민은 여기로 이사온 뒤부터 자녀에게 아토피 증상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 오산시민 ▶
    "태어날 때부터 깨끗했어요. 피부가 너무 좋아서 사람들이 하얘서 외국애 같다고 그랬어요. 그랬는데 여기 이사오고 나서 점점 피부가 이상해지더니 얼굴에 눈 밑에 번져서 빨갛게 ..물집 잡히고 너무 심각했었죠.."

    어떤 공장이길래 주민들이 이렇게 괴로워하는걸까?

    오후가 되자 쓰레기를 가득 실은 차량이 쉴 새 없이 드나듭니다.

    노란색의 폐유운반차량도 수시로 오갑니다.

    이곳은 민간으론 규모가 10위권 안에 드는 폐기물 소각처리장, 즉 쓰레기를 태우는
    곳입니다.

    주민들은 업체 측에 뭘 태우는지, 그걸 태우면 뭐가 배출되는지 그때그때 알려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업체는 서면 약속까지 해놓고 지키지 않았습니다.

    ◀ 장경덕 / 경기도 화산시 ▶
    "쓰레기를 그 날 매일매일 공지사항을 자기네들이 그랬는데, 차량이라는 게 수십대가 오는데 자기들이 뭐를 소각을 하고 그런걸 과연 그게 가능하겠냐는 거야."

    시에 민원을 제기해도 기준치 이하다 또는 개선명령을 내렸다는 답만 반복하는 상황.

    결국 악취는 여전하고 주민들의 불안과 고통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 환경단체가 만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켜봤습니다.

    전국의 공장 또는 소각장 정보, 그리고 거기서 다루는 물질에 대한 정보를 한데 모아놓은 애플리케이션입니다.

    5km 반경 안에 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장들이 뜨고, 소각업체의 경우 20여가지의 유해물질을 배출한다고 나타납니다.

    각 물질마다 인체에 얼마나 해로운지, 폭발 같은 사고위험성 등은 없는지 등도 나옵니다.

    주민들은 처음보는 자룝니다.

    ◀ 장경석 / 경기도 화성시 ▶
    "(발암성 1급도 있네요. 벤젠도 있고, 발암성 3급. 이것도 있는데 이런 거 아셨어요?) 저희는 전혀 몰랐죠. (이런 것들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지 어떻게 관리가 되고 있는지 전혀?) 설명을 못들었죠."

    사실 이 자료는 이미 환경부에 공개돼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집 주변에 어떤 공장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복잡한 화학물질명을 일일이 입력해 유해 정보를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 현재순 /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사무국장 ▶
    "주민들의 알권리가 중요하다. 알아야 대책도 세우고 예방도 할 수 있다라는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좀 더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손쉬운 방법이 뭐가 있을까..고민한 끝에.."

    많은 국민들이 환경부가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지도 모르지만, 힘들여 정보를 찾는다고 해도 정보의 질이나 양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환경부가 국민에게 공개하는 화학물질 정보는 전체 사업장의 20%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사용량이 적어서, 또는 영업비밀이란 이유로 공개를 거부해왔고, 정부도 별 제재없이 비공개 요청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작년 2월, 경기도 남양주 빙그레 아이스크림 공장.

    냉매로 쓰이는 암모니아 가스 배관이 작업부주의로 폭발하면서 암모니아가 다량 누출됐습니다.

    ◀ 백경호 ▶
    "코가 찡하고 코 끝이랑 굉장히 역하고 애들은 다 집에 나오지 말라고 하고 창문 다 닫아놓고..."

    호흡 정지도 일으킬수 있는 위험물질, 직원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습니다.

    주민 수백명이 악취와 통증을 호소하며 대피하는 등 일대가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하지만 환경부 자료에선 이 공장에서 암모니아를 취급한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암모니아 사용량이 기준치에 미치지 못해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 빙그레 관계자 ▶
    "신고 기준이 암모니아 충진량(연 사용량)이라고 하더라고요. 새롭게 충진하는 양이 10톤 이상일 경우에는 신고하게 돼있고, 10톤 이하일 경우 신고 안하게 돼있다고 합니다."

    재작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불산 누출사고로 근로자가 사망하자, 한 국회의원은 삼성 측에 해당공정에 어떤 화학물질을 사용하는지 정보공개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며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이처럼 영업비밀이란 이유로, 사용량이 기준치에 못미쳐서 등 다양한 이유로 국내 기업의 86%는 화학물질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 심상정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 ▶
    "정보가 제공되지 않음으로써 노동자나 지역주민의 생명이 완전히 위협될 수 있다면, 그건 우리가 아무리 기업이 이윤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사회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어요."

    반면, 미국 등 선진국에선 유독성 물질을 사용하면 영업비밀이든, 사용량이 많든 적든, 반드시 공개하게 돼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주 정부는 삼성측으로부터 이 공장에서 쓰이는 화학물질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 정부에 정보공개를 요구하면 화학물질 이름과 고유번호, 구성성분은 물론 보유량, 보관장소까지 일일이 알려줍니다.

    같은 반도체 공장 자료인데, 국내에선 비밀이고 미국에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정부도 올해부턴 미국처럼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사업장들은 100% 공개를 원칙으로 하도록 법을 개정했습니다.

    그런데, 법이 바뀌어도 기업들은 여전히 영업비밀을 내세워 특정 물질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박봉균 / 환경부 화학안전과장▶
    "기업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것에 대해 기업들이 관심이 많고 이런 부분이 보장돼야한다는 부분 때문에 저희가 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만들어서 위원회에 기업이 신청한 비공개 정보가 과연 기업의 영업비밀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판단한 후에 공개여부를.."

    영업 비밀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심의위원회를 만든다는 건데, 산업계와 환경단체 쪽의 입장이 서로 팽팽해 법이 바뀐 지 반 년이 되도록 구성되지 않고 있고, 화학물질 공개도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 최악의 화학사고로 기록되는 구미 불산사고.

    더욱 피해가 컸던 건 주민들이 사고 당시 뿜어져 나온 연기가 불산인지를 모른채 무방비로 노출됐기 때문입니다.

    현장을 다시 찾았지만 3년이 지나도록 바뀐 건 별로 없었습니다.

    주민들은 여전히 인근 공단에서 나오는 온갖 가스와 악취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 김옥순 / 경북 구미시 ▶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하면서 1000ppm이 나와야한다는데 1000ppm 나오면 사람이 진짜 죽지, 사나.. 기준치라고 하는건 기계가 하지 말고 당신들이 와서 우리집 빌려줄게 1달만 살아봐라."

    작년 6월에도 주변 공장에서 발암물질인 디클로로프로판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주민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 주민 ▶
    "(어떤 물질인지 실제 인체에 해로울 수도 있고 그런 걸 전혀 고지를 못받으세요?) 시에서 지금 우리가 얼마나 문의를 해도.. 거기서 듣지를 않는데.."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주민들이 스스로 사고를 대비하고 예방할 수 있다는 것.

    이른바 알 권리가 보장돼야 안전할 권리도 지켜진다는 게 최근 메르스 사태를 포함해 화학사고까지 일관되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안전할 권리는 기업의 이윤 추구나 정부의 행정편의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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