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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토론
기자이미지 민병호 기자

소녀의 '귀향'

소녀의 '귀향'
입력 2015-06-22 10:06 | 수정 2015-06-2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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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의 아픔을 다룬 독립영화 한 편이 지난주 촬영을 마쳤습니다.

    13년 만의 완성. 모두가 안 된다고 말렸던, 그래서 무일푼에서 시작한 영화 제작비는 이제 국민 모금과 기부를 통해 5억 원 가까이 마련되었고, 15살 재일교포 소녀부터 유명 연극인 등 모든 배우들은 출연료 없이 나섰습니다.

    우리 모두 잊고 있던 사이,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모여 작은 기적을 이루어낸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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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살이란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우여곡절끝에 모든 촬영을 마쳤습니다.

    이 영화가 처음 기획된게 2002년이니까 무려 13년이 걸린 셈입니다.

    영화의 제목은 <귀향>.

    타국에서 죽어간 소녀들의 혼이라도 집으로 모셔온다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촬영날입니다.

    시골의 한 마을에 살았던 평범한 아이.

    하지만 14살의 이 소녀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목숨을 잃게 됩니다.

    우리말 억양이 조금은 낯선, 주인공 정민 역의 강하나 양.

    하나 양은 재일교포 4세, 일본에서 조선인학교에 다니는 15살 학생입니다.

    엄마를 따라 나간 자리에서 우연히 출연 제의를 받은 하나 양은 시나리오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 강하나 ▶
    “군인들이 너무 잔인하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소각장에서 처녀들이 총맞고 살아있는데 불태워지고..”

    15살이 감당해 내기엔 쉽지 않은 역할.

    하지만 하나 양에겐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 강하나 ▶
    “그렇게 고민은 안 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해야겠다' 이런 마음이 강해서 그렇게 시간은 걸리지 않았습니다.”

    함께 영화에 출연한 하나의 어머니도 고민 끝에 딸의 결정을 받아들였습니다.

    ◀ 강하나 ▶
    “가족회의를 했을때 하나가 막 울었어요. '꼭 하고 싶다 이거는' 울면서 하는 모습을 보고..'해야겠다..꼭 잘 만들어서 이 역사에 남겨야 겠다'”

    하나양 모녀 말고도 또 다른 재일교포 5명이 일본군 역을 부탁받아 촬영에 참여했습니다.

    모든 촬영이 끝난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

    즐거운 분위기도 잠시.

    갑자기 하나 양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촬영현장에 있었고, 제작진이 나름 세심히 배려하긴 했지만 일본군에게 겁탈당하는 장면을 찍을 땐 특히 마음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 강하나 ▶
    “그 촬영찍기 전에 몇 시간, 세시간 네시간전부터 계속 힘들었고..연기부분에서의 걱정보다도 진짜로 무서웠어요. 많이”

    어른들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합니다.

    ◀ 김동석 (가명) / 재일교포 3세 ▶
    “촬영장에서도 하나가 울고불고해서.. 화면을 보면서 못 보겠다고 다..아버지 심정으로서..“

    영화에 출연한 재일 교포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은 건 물론, 비행기 삯이나 숙박비도 모두 자비로 냈습니다.

    그러면서도 배역촬영이 끝나면 촬영장에선 여러 허드렛일도 도맡아 했습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송재일 (가명) / 재일교포 3세 ▶
    “'우리는 여기 살아있다고 그런데 정말 잠도 못자고 죽지도 못한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걸 (일본에)전달해달라고' 이 말을 일본말로 들었을 때 정말 힘들었고 마음이 아팠어요.”

    회사원, 음식점 주인..

    무엇이 바다 건너 일본에 사는 이들을 하던 일을 제쳐놓고 이 곳까지 뛰어들게 만들었을까.

    ◀ 송재일 (가명) / 재일교포 3세 ▶
    “왜 일본에서 왜 한국 사람으로 살아야 되는가.. 한국에서는 반쪽바리라고 불리면서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자기 역사의 뿌리잖아요. 그 존재 자체가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13년전부터 묵묵히 이 영화를 준비해온 사람.

    조정래 감독에게 지난 시간을 물었습니다.

    시작은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제목은 '태워지는 처녀들'..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이 산 채로 불구덩이에 던져져 불타는 모습과 당시 가까스로 탈출한 강일출 할머니의 아픈 기억이 담겨있습니다.

    ◀ 조정래 / ‘귀향’ 감독 ▶
    이거는 말하자면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본인들이 조금 아프거나 병이 있거나 이런 소녀들을 집단 학살하는 그런 범죄현장이거든요.

    할머니들의 아물지 않는 상처는 영화 제작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 조정래 / ‘귀향’ 감독 ▶
    “어깨에 안마를 해드리려고 손을 딱 대는 순간 할머니가 딱 뿌리치시는 거예요. 반사적이었어요. 할머니도 놀라고 저도 놀라고..할머니들이 아직까지 얼마나 끔찍한 고통 속에 사는가를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누구나 공감하고 마음아파할 것 같았던 이야기.

    하지만 투자나 지원을 하겠다는 곳도, 출연하겠다는 배우도 없었습니다.

    ◀ 조정래 / ‘귀향’ 감독 ▶
    “문전박대 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두번이나 협박을 받아서 죽을 뻔한 경험도 있고... (어떤) 정치인은 '너 젊은 놈이 그렇게 할 일이 없냐'는 말을 하시면서 시나리오를 제 앞에 던져 버리세요.”

    그렇게 흘러가버린 시간이 10여년.

    꺼져가는 불씨를 살린 건 시민들이었습니다.

    올해 초 한 포털사이트에 영화를 함께 만들자는 기사를 올렸는데 40일만에 무려 2억 5천만원이 모였습니다.

    여기에 배우 손숙씨가 출연료 없이 강일출 할머니 역을 맡겠다고 나섰고,

    조명, 미술 등 스태프들도 재능기부 형식으로 모여 들면서 지난 4월, 영화는 드디어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희망도 잠시, 촬영 일주일만에 제작비는 바닥나고 말았습니다.

    ◀ 조정래 / ‘귀향’ 감독 ▶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돈이 없다였죠. 장편 영화인데 일주일도 안되서 예산이 바닥이 난 거예요. 그때부터 예산에 기적이 일어났어요.”

    그가 말한 기적은 무엇이었을까.

    상하수도 배관일을 하는 신동헌 씨.

    바람도 통하지 않는 창고에서 허리 펼 틈도 없이 작업을 하다보면 땀이 비오듯 흘러내립니다.

    신동헌 씨는 이렇게 일해서 모은 1년 수입의 1/3을 이 영화에 투자했습니다.

    ◀ 신동헌 ▶
    “이런 이런 영화다라고 시나리오도 몇번 봤거든요. 다 14살, 13살 초등학교.중학교 생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당했다고 생각을 하면 많이 뭉클하죠.”

    초등학교 6학년 요한이는 며칠 전,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뒀던 50만원을 영화에 투자했습니다.

    ◀ 최요한 ▶
    “그냥 초등학교때 세뱃돈 받고 아니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신 돈 받고 그런거.. (그러면 몇년 동안 모은 거예요?) 12~13년. (평생을 모은거네) 네”

    학원에 붙어있던 영화 포스터를 보고 선생님께 여쭤본 뒤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 최요한 ▶
    “그 영화가 전 세계에도 나가고 그러면 분명히 일본에도 영향을 줄 거 아니에요.. 게다가 영화는 남는 거쟎아요. 그러니까 그런 데 투자를 했다고 하면 되게 뜻 깊을 것 같았어요.”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던 요한이 부모님도 이제는 아들을 따라 공동 투자자가 됐습니다.

    ◀ 박수정 / 최요한 어머니 ▶
    “이게 단순한 영화, 상업 영화 투자랑은 개념이 다르니까.. 투자를 해서 잃더라도 역사에 투자를 한다.”

    후원자이자 투자자로 이름을 올린 이가 모두 3만 5천여 명.

    적게는 1천원부터 시작한 후원금에 소시민들의 투자금까지 10억원 넘게 모이면서 영화 '귀향'은 두 달여 만에 촬영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 조정래 / 영화 ‘귀향’ 감독 ▶
    “내 누이가 내 딸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견딜 수가 없으니까요. 그 분들이 자발적인 후원자가 되고 우리 영화의 투자자들이 되고 주인이 되는거죠.”

    일본 오사카.

    하나 양이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또래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표정도 많이 밝아졌습니다.

    ◀ 강하나 ▶
    “친구들이랑 계속 얘기도 나누면서 수업도 오래간만에 받고.. 너무 즐겁고 '아, 현실이다' 이런 느낌이 많이 나요”

    하지만 하나 어머니는 일본으로 돌아온 이후 더 불안해졌습니다.

    최근 부쩍 잦아진 일본내 혐한시위.

    ◀ 김민수 / 강하나 어머니 ▶
    “한국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 역 바로 앞에서 그런 시위가 있었고. '바퀴벌레다', 조선사람 한국사람들이. '바퀴벌레는 당장 죽여야 한다.”

    위안부를 다룬 영화에 출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혹시 과격한 사람들에게 해코지라도 당하지
    않을까,

    그래서 어머니는 하나양이 다니는 학교나 집이 공개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 김민수 / 강하나 어머니 ▶
    “사실 엄마로서는 가장 걱정 되는 게 그 문제예요. 혼자 이렇게 보내야 하는데.. 언제 안 좋은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하나 양도 불안한 건 사실이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습니다.

    ◀ 강하나 ▶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무서운 일이라 할까. 이런 게 없을까. 이런 불안은 많아요. (하지만) 이런 불안이나 무서움이 있더라도 해야겠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 조정래 / 영화 ‘귀향’ 감독 ▶
    “어떻게 보면 목숨을 내놓고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도 대체 왜 이걸 하시냐. '이 영화를 통해서 감독님 저도 귀향했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는거예요.”

    열여섯의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는 일흔세 살의 할머니가 되어서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 강일출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
    (고향에 갔더니)엄마.아빠도 없는데 너무 서러운 거야. 내가 막 (맥이) 한풀 꺾이고 막 어떻
    게 울어야할지 실컷 울고 왔는지 몰라. 그리고 실제로 다리도 벌벌 떨리고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고향에) 가기도 싫고, 엄마 빈자리, 아빠 빈자리, 오빠들 빈자리 보기 싫어.“

    빼앗기고 유린당한 자신의 삶에 대해 어느 누구의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어느새 아흔 살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지난주 두 명의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를 비롯해 올해만 벌써 다섯 명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50명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 손숙 / 배우 ▶
    “정말 마음이 급해요. 정말 빨리 한 달이라도 빨리 만들어야 되는거 아닌가 이제 정말 세월이
    얼마 안 남지 않았나.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들은 다 죄인 같아.”

    우리의 이야기를 잊지 말아달라는 절규.

    나 살아있을 때 진정한 사과 한마디 듣고 싶다는 한 맺힌 외침.

    ◀ 김복득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013년 3월 ▶
    "분해서 말을 못하겠어요. 사죄받고, 사죄받는 것. 보고 눈감고 싶어요."

    광복 70년.

    오늘 도쿄에서 한,일 외무장관 회담이 열리는 등 두 나라 간에 이 문제를 풀기 위한 협상이 진행중이라는 얘기가 들립니다.

    이번엔 정말 진심어린 사죄를 받을 수 있는 건지, 또 한번 상처만 덧나는 건 아닌지.

    70여 년 전 지옥으로 끌려갔던 주름진 소녀들이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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