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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이필희 기자

누가 이 아이를 때렸나?

누가 이 아이를 때렸나?
입력 2015-07-13 09:30 | 수정 2015-07-1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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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다리에 보라색 멍이 들고 성기에 상처를 입은 참혹한 사진.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3학년 어린이가 끔찍한 폭행을 당했습니다.

    피해 아동은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아 왔는데, 평소 '체포놀이'라는 장난을 통해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합니다.

    말이 어눌하고 표현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의 특성상,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부모의 심정은 참담하다.

    가해자로 지목된 아동측은 일관되게 폭행을 부인하고 있는데...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이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지,

    조금 다른 아이들을 우리 학교와 사회에서 어떻게 보듬고 함께 해야할지 살펴봅니다.

    ======================================================================

    인호 어머니는 요즘 인호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합니다.

    또래보다 말이 어눌하고 표현력이 부족하지만 말하는 내용은 분명한 인호

    [김인호(가명) / 학교폭력 피해학생]
    방부제를 먹으면 죽어요..하늘나라로 거기 갈 수 있어요. 못가요? (방부제 먹으면 하늘 나라 가는 줄 알았어?) 네 (방부제 먹을려고 그랬어?) 네 (왜?) 나 하느님 만나고 싶으니까..

    방금 샤워하고 나왔는데도 자기 몸이 더러워졌다며 다시 씻겠다고 고집을 부리는가 하면

    [김인호(가명) / 학교폭력 피해학생]
    평생 씻을 거야 죽기까지

    세상에 태어난 걸 자책하기도 합니다.

    [김인호(가명) / 학교폭력 피해학생]
    다시 돌아가고 싶어. 세상으로 괜히 내려왔나봐 (그러면 나는 인호 못 보고) 다시 위로 올라가야 돼 (아니야) 다시 위로 올라갈래 (어디를 올라가 엄마는) 나 하늘나라로 갈래

    인호는 지난 5월 중순부터 두 달 가까이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호를 진찰한 정신과 의사는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당장 입원해서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소견을 밝혔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만 9살 아이가 이렇게 된 건 학교 안에서 폭행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 11일 저녁, 인호 어머니는 인호를 씻기다가 이상한 멍자국을 발견했습니다.

    [인호 어머니]
    고추 바로 위에 멍이 있어서 이거 어쩌다 생겼냐 물으니까 자꾸 말을 둘러대요. 대답을 안하고 '친구랑 이렇게 부딪혔어요. 달리기를 하다가' 너무 이게 말이 정황이 맞지 않아서..

    멍자국은 성기 주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허벅지 바깥쪽으로 커다란 멍이 데칼코마니처럼 양쪽의 같은 위치에 있었고
    왼쪽 팔 곳곳에도 크고 작은 멍이 보였습니다.

    인호 어머니는 대답을 안하려는 아들을 달래 같은 반 친구들이 자신을 때렸고, 성기까지 꼬집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인호(가명) / 학교폭력 피해학생]
    이거 선생님한테 말하면 OO가 우리 엄마한테..선생님한테 이르면 '친구들이 고추 다 보인다 라고 그래' 라고 그랬어요.

    인호 부모님은 다음날 학교를 찾아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 재발 방지를 당부했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체포놀이'를 하다 상처를 입은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튿날,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온 인호 어머니는 더 심한 상처를 발견했습니다.

    [김인호(가명) / 학교폭력 피해학생]
    쉬할 때 아파요 (아파요?) 하

    인호의 속옷은 피로 젖어있었습니다.

    서둘러 찾아간 종합병원에서는 성기 부위에 찢어진 상처와 염증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인호는 같은 반 친구들의 이름을 댔고 인호 어머니는 보복을 의심했습니다.

    [인호 어머니]
    치료를 받고 오니까 옆구리에 또 큰 멍이 있고 양쪽 정강이를 발로 걷어찬 멍이 있더라구요. 이야기를 하고 사안 처리중에 어떻게 이런 또 사고가 났나..

    인호의 학교에서는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를 열어 사건을 논의하고 가해 학생과 학부모는 2시간의 특별교육을 받고, 종업식 때까지 인호에 대한 접촉-협박-보복을 금지하도록 했습니다.

    인호 부모님은 반발했습니다.

    [진한수 변호사 / 피해 학생측]
    20~30명 있는 데서 접근금지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담임이 그렇게 애들 전체를 갖다가 통제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거 불가능하죠. 담임이 신입니까?

    비교적 가벼운 수준의 결정이 내려진 이유는 피해자의 진술 외에 가해학생을 특정할 증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해 학생측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때리거나 꼬집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성기가 찢어져 피가 날 정도면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는데
    그걸 봤다는 목격자가 한 명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아이가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억울한 누명을 써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일시와 장소를 알 수 없고
    학교라는 공개된 장소임에도 증인이 없어 판단이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이같은 의견이 다수결로 반영되면서 성기에 대한 폭력은 인정되지 못한 겁니다.

    [진한수 변호사 / 피해 학생측]
    제삼자 목격자가 없으니까 인정 못하겠다 그거는 너무 피해학생을 갖다가 뭐랄까 방치하고 그냥 학교의 보호를 갖다가 너무 방기해버리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 가해자를 잡아줘야죠.

    인호 부모님은 학폭위의 결정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대답을 피하던 인호도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인호(가명) / 학교폭력 피해학생]
    OO랑 xx이 둘이 벗겼어요. (인호 바지를요? 팬티는요?) 벗겼어요. (같이 벗겨졌어요? 그리고 누가 꼬집었어요?) xx이요. (xx이 꼬집었어요?) 네 (그리고 걔네들이 어떻게 했어요?) 그냥 가버렸어요.

    엄격한 징계를 요구하는 인터넷 서명 운동도 벌였는데 현재까지 8만명 넘게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인호 아버지]
    인터넷 공개해서 자기 아이가 이런 아이이고 쉽게 말해서 아이 온 몸을 다 보여주는 건데 부모 심장을 내놓는 거나 똑같은 거에요.

    학폭위의 결정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려 했지만, 회의록이 부실한데다 녹취록은 아예 폐기된 뒤였습니다.

    [ 진한수 변호사 / 피해 학생측]
    4번의 회의 각각의 회의록이 있잖아요. 그냥 회의록 6장 짜리 하나를 줬어요. 그 회의록이 언제 회의록인지, 누가 참석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죠.

    [학교 관계자]
    재심까지는 학교 측에서 어떤 반박이라든지 이런 거를 할 수 없어요. 학폭위 모든 것들이 비밀, 학교측에서 모든 것이 비공개가 원칙이고..

    뚜렷한 증거가 없고 양쪽의 엇갈린 진술만 있을 뿐, 목격한 제3자도 없다면..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호의 사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인호가 자폐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관심분야가 제한적이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특징이 있어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거나 자기 마음을 남에게 전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경아 자문위원/한국자폐인사랑협회]
    사회적 문제에서는 갈등상황 그 다음에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있는거죠.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은 한 고등학생에게 친한 친구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윤OO / 아스퍼거 증후군 학생]
    십여년 지기 친구가 있거든요. 주민번호 앞자리를 알아요 제가 /(그 앞자리가 뭔지 선생님한테 얘기해 줄 수 있어? ) 임OO이고 970711 이렇게 했는데.

    생일까지 기억하는 친구, 그런데 수년동안 만난적은 없다고 말합니다.

    [윤OO / 아스퍼거 증후군 학생]
    지금은 안 본지 9년이 됐는데.(안 본지 9년 됐어?) 초등학교 3학년 때 제가 전학왔잖아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는 이들을 위한 연극 치료 교실은 사교성을 키워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함께 쫓고 쫓기는 술래 잡기 놀이를 하거나 서로 역할을 바꿔보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교감하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겁니다.

    [이효원 / 연극치료사]
    관계의 끈이 있어도 굉장히 약하고 거의 없는 경우가 많고 그게 제일 결핍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람의 얼굴을 볼 때와 사물을 볼 때 두뇌는 서로 다른 부위가 반응을 하는데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똑같이 사물을 보는 부위가 반응합니다.

    농담이나 장난 등 말이나 행동의 속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들의 특성입니다.

    [이경아 자문위원/한국자폐인사랑협회]
    친구가 그냥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하는 것과 실징적인 괴롭힘이 시작된 것을 얘네들이 인식하지 못해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인공이자 컴퓨터의 기초를 닦은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처럼 특정 분야에서 천재성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장애가 드러나지 않고 자폐와 일반인 사이의 이른바 회색지대에 있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오해를 사기 쉽습니다.

    일반 아이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해야 하는 아스퍼거 증후군 학생들이 학교 폭력에 노출된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중학생인 형석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이들과 게임을 하다 등 전체에 멍이 드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형석이 어머니]
    너 왜 이래 이랬더니 엄마 인디언밥 하다가 그랬어요 이러더라구요. 같이 하는 아이들이 그랬대요. 너 다른 아이들이랑 인디언밥 했으면 이것보다 더 아팠을거야.

    운동능력이 떨어지고 언어표현이 어눌하다보니 아이들 사이에서는 쉽게 놀림감이 되곤 합니다.

    [형석이 어머니]
    런닝맨 놀이 하자고 그러고 단체로 굴렸다고 우리애를.. 그런데 우리 애는 그런 거를 파악을 못하는 거에요. 아 나랑 놀아줬구나 친구가 없으니까 친구를 그리워 하는데 친구랑 사귈 수가 없으니까..

    올해 6학년인 지훈이도 지난해 동급생들에게 밀려 넘어져 뇌진탕을 겪었습니다.

    [지훈이 어머니]
    전화가 아침에 드르륵 심장이 벌렁 벌렁 거려요. 무슨 일이지? 스팸이나 이런 거 오면은 얼마나 다행인가 모르겠어요./(전화받았는데 학교입니다. 그러면?) 어휴 그럼 정말 죽고 싶어요.

    학교를 옮기기도 벌써 세번째.

    지금은 학교의 배려 속에 겨우 적응하고 있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지훈이 어머니]
    중학교 가면 애들도 덩치도 커지고 한 대를 때리더라도 아이들이 맞는 강도도 더 세질 테니까 . 맞아죽을까봐요. 전 그게 정말 걱정이에요. 진심 걱정이에요.

    부산에서 발달장애 복지관을 운영중인 방대유 이사장.

    방 이사장은 자폐증이 있는 아들이 미국 학교에 다닐 때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방대유 / 발달장애복지관 '나사함']
    학교 갔다 왔는데 백팩, 백팩을 열어보니까 편지 2장하고 1불짜리 몇 장하고 동전 몇 개하고 이렇게 들어가 있더라고요.

    한 백인 여학생이 아들을 놀리자 학교측이 그 부모에게 사과문을 쓰게 하고 해당 여학생은 스스로 저금통을 깨서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게 한 겁니다.

    2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당시 학교측의 대응에서 느낀 점은 컸다고 합니다.

    [방대유 / 발달장애복지관 '나사함']
    장애와 비장애 같이 어울려서 사는 게 정상적인 세상이거든요. 그게 '좋고, 나쁨'의 개념이 아니고 '다르다'라는 개념을 그 때부터 가지게 되는거죠.

    한국에 돌아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복지관을 건립한 이유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장애에 대한 인식이나 지원이 부족함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방대유 / 발달장애복지관 '나사함']
    내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 어쨌든 부모가 먼저 가잖아요. 한 20년 먼저 가니까 내가 없어도 살 수 있는 시스템을..이게 사실은 국가가 할 일이죠.

    중증 발달 장애인이나 지체 장애인과 달리 아스퍼거 증후군처럼 겉모습에서 드러나지 않는 장애는 그저 조금 이상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정도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려와 이해는 필수적입니다.

    [인호 아버지]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하면 이렇게 다치지도 않았겠죠. 자폐성 아이니까 자기 혼자 참아 왔다는 거죠. 그게 좀 가슴이 많이 아프죠

    어릴 때의 경험은 특히 중요합니다.

    [이경아 자문위원/한국자폐인사랑협회]
    학교안에서 이런 놀림이나 괴롭힘이 이 친구들에게 굉장히 치명적인 것이 사회를 믿지 못하고 자신을 믿지 못하는 그런 누적된 나쁜 경험이 되기 때문에...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보듬어 안을 수 있도록 우리의 인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나이가 어려 처벌할 수 없다해도 폭행의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고통받는 제2, 제3의 인호는 언제든 계속 나타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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