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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권희진 기자

“우리 집 맥주 어때요?”

“우리 집 맥주 어때요?”
입력 2015-07-20 09:57 | 수정 2015-07-2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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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이 대량 생산하는 병맥주 대신 동네 별로 소규모, 다양한 맛을 내세우는 수제 맥주, 일명 크래프트 비어.

    맥주 왕국 독일 등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 여겼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그런 풍경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난 해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소규모 자영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의 외부 유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맥주는 포도주와는 달리 재료인 맥아나 홉이 건조 상태로 유통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추면 얼마든지 경쟁력 있는 맥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세계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과연 세계적인 ‘토종’ 수제 맥주의 시대가 열릴 수 있을까요?

    =============================================

    마음맞는 사람끼리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잔.

    덥고 축축한 여름밤이 시원해집니다.

    맑은 황금빛 액체를 뒤덮은 두툼한 거품.

    쌉쌀한 향기를 뿜어내는 시원한 필스너 맥주입니다.

    ◀ 조수진 ▶
    "맛있다.."

    이 맥주는 이 가게안에 있는 양조시설에서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필스너 맥주와도 다른 이 곳만의 풍미를 갖고 있습니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이런 개성 강한 맥주들을 크래프트 맥주, 보통 수제맥주라고 부릅니다.

    ◀ 조성용 / 수제맥줏집 운영 ▶
    "수제맥주같은 경우는 맥아비율이 상당히 높아요. 그래서 좋게 말하면 대단히 농후한 맛을. 진한 맛을 느낄 수가 있거든요."

    초콜릿향과 커피향이 나는 흑맥주, 쌉쌀한 맛과 함께 과일향기가 쏟아지는 IPA, 시원하게 목을 타넘어 들어가는 페일 라거 등, 소규모로 생산하다보니 얼마든지 다양한 맥주를 만들 수 있습니다.

    ◀ 이기중 교수 / 전남대 인류학과 ▶
    "식전에 먹느냐 식후에 먹느냐 날씨 추울 때 먹느냐 더울 때 먹느냐 오늘 도수가 높은 거 먹고 싶다. 오늘 쓴 맛의 맥주를 먹고 싶다. 아니면 가벼운 오렌지 향의 맥주를 먹고 싶다.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저마다의 비법으로 맛도 다르고 특징도 다른 수제 맥주. 외국에서나 익숙하던 풍경이었지만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대량생산되는 몇몇 대기업 병맥주만 마시는게 아니라, 내 입맛에 맞는 맥주를 찾아 마실 수 있는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진 겁니다.

    라거와 에일.

    맥아를 발효하는 방식에 따라 맥주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라거는 투명한 색에 깔끔하고 가벼운 맛이 특징으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흔히 마시는 필스너 맥주가 여기 해당합니다.

    에일은 향이 강하고 쌉쌀하고 진한 맛이 나는 게 특징인데, 요즘 유행하는 인디언페일에일이나 독일의 밀맥주가 대표적인 에일 맥주입니다.

    ◀ 이기중 교수 / 전남대 인류학과 ▶
    "사실 이렇게 위에까지 채우는 것보다 이렇게 따라야지 보기에도 좋습니다. 식욕도 확 돋구고요.그럼 한 번 꿀떡.. 어느 정도 바디감이 더 있고 특징이 뭐냐면 솔 향이나 홉의 향이 드러나고.."

    맥줏집 한 쪽의 양조시설에서 싹튼 보리, 맥아를 분쇄합니다.

    빵 냄새와 비슷한 구수한 향기가 짙게 퍼집니다.

    한 차례 끓여내자, 마치 식혜에 들어가는 엿기름 같은 향이 나는 달콤한 맥즙이 만들어졌습니다.

    "맛있네요.. 달달하네요.."

    맑게 걸러낸 맥즙에 맛과 향을 내기 위해 홉을 넣고 한 번 더 끓인 뒤 발효시키면 맥주가 됩니다.

    맥아의 종류와 홉의 배합, 끓이는 시간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색깔의 맥주가 나옵니다.

    ◀ 조성용 / 수제맥줏집 운영 ▶
    "맥주가 탁 넘어가면서 좀 쓰면서 딱 끝났을 때는 쓴 맛이 좀 깔끔하게 떨어질 수 있는. 어떤 음식과 어울렸을 때 좀 더 좋을 맛을 줄 수 있는 맥주를 만들어보려고.."

    토요일 오후, 이태원의 한 맥주공방에 맥주 애호가들이 모였습니다.

    오늘 만들 맥주는 홉의 쓴 맛을 많이 살리고, 열대 과일향이 강조된 미국식 페일 에일 맥주.

    ◀ 김욱연 / 수제맥주 공방 대표 ▶
    "트로피카라고 굉장히 쌉싸름한 뭐 그런 플로럴하고 뭐 그런 맥주가 나오는 거에요."

    땀을 뻘뻘 흘리며 맥주를 빚는 직장인들.

    주말마다 나와 매번 다른 맛의 맥주를 만들다보니 단순취미 이상의 실력이 쌓였고, 가족들도 응원도 받고 있다고 합니다.

    ◀ 이병희 / 직장인 ▶
    "대회 나가서도 막 이제 상위에도 랭킹되고 맥주가 이러다 보니까 와이프가 (맥주) 공방은 가서 좀 해도 된다. 흐하하. 유일한 낙이죠."

    ◀ 윤현 / 직장인 ▶
    "친구들하고 또 나눠먹어야 되고 와이프한테도 줘야되고. 제 와이프는 요즘 하도.. 재고가 떨어지면 화를 내는 수준까지 와서 흐흐흐"

    맥주가 완성되면 둘러앉아 나눠 마시며 전문용어들이 쏟아지는 품평회도 갖습니다.

    ◀ 윤현 / 직장인 ▶
    "맥주도 음식이라 균형이 잘 맞아야 맛이 있어요. 그런데 이거는 쌉쌀한 만큼 과일 향이나 보리, 몰트의 맛들이 진하니까.."

    ◀ 김욱연 / 수제맥주 공방 대표 ▶
    "단맛과 쓴맛이 적절하게 배합이 돼있고 그리고 심지어는 꽃 향기까지 뭐 찾을 수 있는 굉장히 복합적인 그런 맥주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박사공부를 하던 김보현씨는 취미로 맥주를 만들다가, 이젠 공부를 중단하고 맥줏집 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김보현 ▶
    "전공이 언어학이랑 언어인지과학 쪽이었는데 문화적인 경쟁력을 쌓을 수 있고 해서 결국은 맥주를 통해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과의 소통을 할 수 있어서.."

    아예 양조장까지 차리고 본격적으로 수제맥주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유명 대기업의 젊은 임원으로 있던 도정한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1년 전 이 곳 경기도에 작은 맥주 양조장을 차렸습니다.

    미국인 맥주 전문가를 포함해 서너 명이 이곳에서 맥주를 만듭니다.

    ◀ 브랜든 페너 / 맥주양조 전문가 ▶
    "맥주는 살아있는 것이고 발효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지내면서 맥주에 문제는 없는지 살펴본다."

    6개의 커다란 발효통에서 흑맥주와 밀맥주 등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 브랜든 페너 / 맥주양조 전문가 ▶
    "음 맛있다. 초컬릿 맛과 커피 향이 진하죠.."

    미묘한 맛의 차이를 내는 홉은 양조장 바깥 한 켠에서 직접 키워서 씁니다.

    덩굴식물인 홉의 암꽃 안에 있는 루플린이라는 노란 부분이 쓴맛과 함께 오렌지향, 꽃향기, 과일향과 같은 독특하고 복잡한 맥주의 향기를 만들어냅니다.

    발효가 끝나 숙성을 앞둔 밀맥주.

    맥주를 발효시키는 효모의 풍미가 밀맥주의 맛을 좌우합니다.

    ◀ 도정한 / 대표 ▶
    "효모가 아직도 많이 살아있으니까. 여기서는 효모를 안 빼요. 그래서 생맥주라 그러는 거에요. 효모가 계속 살아있으니까."

    한국맥주는 맛이 없다는 논란이 일 무렵, 보란듯이 맛있는 맥주를 만들어보이겠다는 각오가 양조장까지 차린 원동력이 됐습니다.

    ◀ 도정한 / 대표 ▶
    "돈 때문에 했었으면 그냥 그 전에 있던 회사에서 있고 꾸준히 돈 받고 그렇게 있을라 그랬는데 이거는 그냥 한국에서도 이런 좋은 맥주가 선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만든 거에요."

    서울 안암동의 한 작은 맥줏집.

    이 곳의 대표 이현승 씨가 양조시설에서 떠낸 맥주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 이현승 / 사장 ▶
    "만들어 놓은 맥주의 비중을 재는 건데요. 이제 완성이 됐는지 안됐는지 체크를 하는 거에요."

    나만의 맥주를 만들어 지역 주민들과 나누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

    안정된 직장을 떠나 맥주를 직접 만들어 팔기로 한 이유였습니다.

    ◀ 이현승 / 사장 ▶
    "해외출장 나갔을 때 그 지역 기반으로 하는 양조장이 되게 많더라구요. 규모가 작으면서도 지역 주민들과 잘 융화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펍'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이 가게에선 직접 수제 맥주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곁들일 안주는 인근 치킨집이나 피잣집에 주문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 이현승 / 사장 ▶
    "저희도 영세한 가게지만 지역의 다른 영세한 가게들끼리 연합을 해서 매출을 좀 키우는 그런 방향으로 해보고 싶어서.."

    작년 4월 소규모 맥주 양조장의 수제맥주 유통이 일부 허용된 이후 국산 수제맥주 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비싼 가격 때문에 수제맥주를 즐기는 게 돈 있는 사람들의 사치 아니냐는 시선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합니다.

    제도만 더 보완되면 훨씬 더 싼 값에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게 수제 맥주 만드는 사람들의 얘깁니다.

    수제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지 1년 반.

    이 작은 회사의 맥주가 세계 3대 맥주 대회 가운데 하나인 호주 대회에서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수제맥주의 인기가 급등하면서 생산 시설을 늘리고 있고, 대형 투자 전문회사로부터 투자금도 받았습니다.

    ◀ 윤정훈 이사 / 맥주 양조전문가 ▶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성장률이 굉장히 빠릅니다. 저희가 뭐 보통 네 배에서 다섯배 성장을 지금 하고 있는데요.."

    수입 수제맥주의 가격은 한 잔에 평균 만원 안팎.

    국산은 절반 정도인 5,6천원 수준이어서, 지금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인기입니다.

    전국적으로 20여개의 소규모 양조장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거나 증설을 준비 중입니다.

    그러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인 수제맥주 사업자들은 세금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현행 주세법상 모든 맥주의 세율은 72%.

    소량 생산으로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는 영세업자들의 수제맥주가 대량생산으로 원가가 낮은 대기업 맥주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 셈입니다.

    ◀ 홍종학 의원 / 국회 기획재정위 ▶
    "소규모니까 처음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겠죠. 고정비용이. 이런 회사들은 상당히 처음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까 세금을 많이 물게 된단 말이에요. 이거는 틀림없이 잘못된 거죠."

    원가가 늘어나면 세금이 늘어나 맥줏값이 너무 비싸지기 때문에 좋은 맥주를 만들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 이인호/ 수제맥줏집 운영 ▶
    "홉이 맥주 재료 중에 굉장히 비싼 재료 중 하나예요. 그러다보면 홉도 좀 더 넣고 싶지만 좀 참고. 그리고 오너가 이런 거 개의치 않고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을 때는 한 잔에 말도 안되는 가격이 나오는 거죠."

    이제 시작단계인 수제맥주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생산량에 따라 세율을 달리하자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소규모일수록 세금을 덜 내는 미국의 경우 수제맥주 시장은 매년 17% 이상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 윤정훈 이사 / 맥주 양조전문가 ▶
    "전 세계가 불경기인 시대에 20프로 가까이 성장한다는 산업이 사실 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국 내에서도 IT 산업과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몇 안 남은 블루오션이라고 그렇게 알려져 있고요."

    맥주의 주재료인 맥아와 홉은 건조상태로 유통됩니다.

    이 때문에 생산지가 중요한 와인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맥주가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있습니다.

    ◀ 조성용 대표 / 수제맥줏집 운영 ▶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 닭' 먹고 대단한 충격을 받았거든요. 도저히 이전에 먹던 닭들은 못 먹겠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와서는 할아버지 닭을 안 먹어요. 제 주변사람들이. 왜냐하면 우리 닭들이 너무 맛있거든요."

    지역마다, 동네마다 독특한 색깔을 가진 작은 맥줏집들이 들어서고,

    그런 작은 맥줏집들이 어느날 세계적인 맥주를 만들어내는 상상.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우리 토종 맥주들이 출발선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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