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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김현경기자

한자 VS 한자(漢字)

한자 VS 한자(漢字)
입력 2015-09-07 11:44 | 수정 2015-09-0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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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쓰자는 소위 한자 병기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교육부의 이같은 방침이 확정되면 1970년 이후 48년 만에 초등학교 교과서에 다시 한자가 등장하게 되는 것인데..

    한자를 일찍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쪽과 아이들의 학습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라는 쪽이 첨예하게 맞서는 가운데 교육부가 마련한 공청회는 양측의 충돌로 난장판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 편에선 한자 병기 방침이 나오자 벌써부터 한자 사교육 열풍의 조짐도 벌어지고 있는데..

    ======================================================================

    지난달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가 주최한 초등학교 한자 교육 관련 공청회 장 앞.

    행사장 정문에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공청회의 주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쓰는, 이른바 한자 병기를 하는 게 맞느냐는 문제입니다.

    기자회견장에서부터 찬반 양측이 서로 맞붙은 겁니다.

    공청회장 안으로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충돌합니다.

    50여개 단체가 모인 한자병기 반대측은 현수막에 적인 공청회 제목부터 잘못됐다며 단상을 막아섰습니다.

    "교육부는 현수막을 내려라! 제대로 된 공청회를 시작해라!"

    당초 예고했던 '한자교육관련 공청회' 대신 '한자 교육 활성화를 위한 공청회'로 갑자기 제목을 바꾼 것은 처음부터 한자 병기를 하는 쪽으로 몰고 가려는 것 아니냐는 반발입니다.

    [이대로/초등교과서 한자병기반대 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오늘 공청회가 한자 병기, 이 문제 어떻게 할 거냐 공청회라고 공문도 왔어요 우리 한글 쪽에. 그런데 어떻게 한자교육 '활성화'를 위한 공청회라고 해요. 이게 말이 됩니까 여러분?"

    그러자 한자 병기를 지지하는 단체 회원들이 행사 진행을 막지 말라며 맞섭니다.

    급기야 양측 회원들 간에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까지 벌어집니다.

    결국 공청회는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이나 지나 주최 측이 문제가 된 현수막을 내린 뒤에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험악한 충돌까지 벌어진 건, 교육부가 2018년부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한글 옆에 한자를 함께 쓰겠다는 방안을 내놨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얼마나 가르쳐야 할 것인가는 사실 오래된 논란거리입니다.

    지금 일선 초등학교에선 한자를 얼마나,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한 초등학교의 6학년 실과 수업 시간.

    교사가 의.식.주와 관련된 내용을 설명합니다.

    의.식.주는 한자어지만 한자를 직접 써가며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식생활이 뭘까?(먹을 식!)먹을 식. 그런데 딱 그 뜻 가지고는 좀 어려워. 먹는다. 또 편한 말로는 뭐라고 할 수 있어?(밥) 밥 또? (음식) 음식..."

    한자어의 뜻을 풀어 말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겁니다.

    [홍순희/초등학교 교사]
    "각 교과에서 용어나 이런 것들이 어려우면 같이 우리 말로 풀어요. 굳이 제가 한자를 직접 안 써도. 애들이 '먹을 식' '옷 의' 그렇게 얘기하면서 풀면 되는 건데 그것을 한자를 쓴다고 해서 애들이 더 이해를 잘 할까요?"

    하지만 한자 쓰기나 읽기를 별도로 가르치는 초등학교들도 있습니다.

    "셋,넷,다섯..."

    [원정환/초등학교 교장]
    "3학년에 1년 동안 20시간, 1학기에 10시간 2학기에 10시간, 20시간을 가지고 한자의 기초를 이해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거죠."

    이처럼 현재 우리 초등학교 한자 교육은 내용이나 방식이 상당 부분 학교 자율에 맡겨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 9월 교육부는 초등학생에 적절한 수준의 한자를 정해 교과서에 병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한자교육을 확대함으로써 인문학적 소양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김경자/국가교육과정개발연구위원장]
    "초등학교에서 저희가 보기에 전체 의견을 종합해보면 300자에서 600자 정도를 적정 한자수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본문 안 한자어 옆에 괄호를 치고 한자를 나란히 쓰거나 각주에 한자를 제시하는 방식 등이 한자병기방식으로 검토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는 1970년 이후 한글로만 쓰고 있기 때문에, 이 계획이 확정되면 48년 만에 큰 변화가 생기는 셈입니다.

    찬반은 첨예하게 엇갈립니다.

    우리말 어휘의 상당부분을 한자가 차지하는 만큼 우리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한자를 함께 배워야 한다는 찬성 의견.

    [진태하/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
    "한글 사전 속에 '사기'라는 말이 27개인가 있어요. 그런데 괄호 속에 한자가 다 다르다는 거예요. 한글과 더불어 한자를 공부했을 때 한글을 더 잘 쓸 수 있고.."

    반대쪽에선 한글만 써도 문맥 상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이건범/한글문화연대 대표]
    "산부인과 의사나 한중근 의사, 뭐 이걸 애들이 헷갈려 한다, 이런 식의 얘기를 하시는데, 언제나 말은 맥락과 함께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나 독립운동 이런 말과 함께 그 문장 속에서 나오는 거기 때문에 전혀 헷갈릴 소지가 없는 거죠"

    찬성하는 쪽은 젊은 세대들이 한자를 안 배워서 기초적인 단어도 모른다고 하고,

    [진태하/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
    "미모가 '일취월장'인데 미모니까 '얼짱'이구나 이러는 거예요. 상당수가 '이명고시'를 본다는 거예요. '임용고시'를 발음만 들었지 한자로 써본 적이 없으니까 '임용고시' 본다는 거야."

    반대쪽은 맞춤법이 틀리는 것은 스마트폰 시대의 문화적 현상일 뿐 젊은 층의 독해 능력은 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이건범/한글문화연대 대표]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 거기에서 우리나라 학생들 만 15세, 중3 학생들이 늘 읽기 능력 부문에서 독해력 그 부분에서 세계 1,2위를 하고 있어요."

    일반인들의 의견도 엇갈립니다.

    [김충현]
    "우리나라 말 자체가 한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알아두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연주]
    "아이들이 한글하고 같이 표기돼있으면 사실 한자를 보면서 '이게 이런 뜻이구나' 이해를 하지 않고 사실 한글 읽는 것도 벅차거든요 솔직히."

    한자 병기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게 된 또 한가지 큰 이유는 바로 사교육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조기 교육 열풍이 거센 우리 교육 풍토에선 한자가 교과서에 실리는 순간 곧바로 아이들의 학습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안녕하세요."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7살 예서는 매일 학습지를 보며 한자를 공부합니다.

    "위 상, 두 이, 한 일, 아래 하.."

    한자 공부를 처음 시작한 건 여섯 살이던 1년 전.

    [최미나]
    "국어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엄마들이 책 읽는 학원에 보내게 돼요. 그런데 보냈는데 책을 읽거나 할 때 우리 말에 한자어가 많기 때문에 또 한자를 시키거든요. 이게 다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냥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한자 자격시험도 준비 중입니다.

    "예서 다 맞았다 축하해. 100점 써줄까?"

    [최미나]
    "요즘 많이 (한자 급수를) 딴다고 하고 다른 선배 어머니들에게 들어보면 학교 가서 자격증 같은 거 하나 있으면 좋다.. "

    지난 주말 한 민간 업체가 주관한 한자능력검정 시험장.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이 대기실에서 시험 시작 직전까지 열심히 모의시험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최세훈/초등학교 3학년]
    "4급 한자 시험 치러왔는데요. (4급 시험을 치려면 몇 자 정도 알아야 돼요?) 한 900자? (900자를 그럼 공부를 다 한 거에요?)네."

    응시생은 예서와 같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아이들이 시험을 보는 동안, 대기실에선 학습지 업체 관계자들이 부모들을 상대로, 교과서 한자 병기에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학습지 업체 관계자]
    "2018년부터 현재 초등학교 사회랑 도덕 교과에 한자가 병기돼서 한자가 좀 나오게 되거든요. 어렸을 때 좀 체험이 돼 있으면 학습에 대해서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많이 도움이 되고요."

    같은 날 치러진 다른 시험장에도 수 백명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몰렸습니다.

    [학부모]
    "영어 접하는 거 보니까 빨리 접해서 조기교육 나쁜 거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그냥 자연스럽게 한자까지 같이 접하게 됐어요."

    5년 전 학교 생활기록부에 자격증 기재가 금지되면서 최근엔 이 시험응시생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였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교육부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 병기를 검토한다는 소식이 나온 이후 관련 사교육 시장이 이처럼 다시 들썩이고 있는 겁니다.

    [최현주/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연구원 많은 사교육 업체들은 한자 병기가 2018년부터 도입이 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영유아 단계에서부터 한자를 배우는 것이 좋다라는 식의 메세지 홍보들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는 상황이고 또 이제 그런 것들을 학부모님들도 불안해하면서 받아들이시고.."

    초등생과 유치원생 두 자녀를 둔 이정아씨.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아이만 중국어와 함께 한자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 한자가 실린다면 지금 6살인 둘째도 한자 공부를 미리 시키겠다고 합니다.

    [이정아]
    "그러면 이제 (둘째 아이도) 선생님이 일주일마다 방문해서 단어 암기하는 식으로 시키겠죠. 그러면 너무 부담스러운 거예요. 영어도 해야 되는데 한글도 지금 겨우 뗐는데 한자까지 하려고 하면.."

    이 때문에 학교 현장에선 한자가 처음엔 교과서에 함께 쓰는 수준으로 시작해도, 결국엔 정규 교과가 돼 아이들이 배워야 할 가짓수만 늘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희정/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 대표]
    "영어도 처음에는 재량활동으로 들어왔어요. 재량활동으로 들어왔다가 정규 교과가 됐고 그 다음에는 교과 시간 수를 늘리고 양이 늘어나면 학교교육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님한테는 훨씬 더 사교육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이에 대해 한자 병기를 찬성하는 쪽에선 아이들의 과도한 학습부담이 문제라면 다른 과목을 줄여서라도 가르쳐야 하는 게 한자라고 주장합니다.

    한자어 공부는 곧 국어 어휘 공부이고, 모든 학습의 밑거름이 된다는 겁니다.

    [전광진/성균관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시킬 건 안 시키고 안 시킬 건 시키고 있있어서 그런 거예요. 해야 될 건 사실 이 (한자어) 공부에요. 이 어휘 문제를 잘 해결해 놓으면 뒤에 다른 학원을 안 해도 다른 과외를 안 하더라도 해결할 수가 있어요."

    교육부는 한자 병기를 하더라도 학교에서 시험 문제는 내지 않도록 할 방침이라 사교육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도, 논란이 거세지자 한 발 물러섰습니다.

    당초 오는 24일로 예정됐던 확정안 발표도 미뤄지는 분위기입니다.

    [교육부 관계자(전화)]
    "(교육과정 개정)연구진들이 1년 정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을 했죠. 그 부분을 우리가 결정할 부분은 남아있는 거죠."

    많이 알아서 나쁠 것 없고, 다양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어른들의 선의가 잘못된 건 아닐 겁니다.

    그러나 이미 너무 어린 나이부터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 앞에서 보내고 있는 게 우리 아이들이 처한 현실이라면, 배움의 가짓수를 늘리고 그 출발점을 자꾸 앞당기는 것이 거꾸로 배움에 대한 아이들의 의욕을 꺾는 건 아닌지, 신중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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