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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민병호 기자

거실 벽을 뜯은 이유

거실 벽을 뜯은 이유
입력 2015-12-21 11:05 | 수정 2015-12-2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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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구 한 리모델링으로 아파트에 입주한 오 모 씨는 2년 넘게 소음 노이로제에 시달려왔습니다.

    바로 옆집에서 들려오는 벽간 소음.

    그렇다고 옆집 부부가 유난히 시끄럽게 구는 것도 아닙니다.

    노부부가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까지 오 씨의 집 거실로 고스란히 들려오는 것입니다.

    반대로 오 씨의 집에서 나누는 대화 역시 옆집에서 그대로 들립니다.

    두 집이 서로 조심하며 내 집인데도 소곤소곤, 남의 집처럼 불편하게 살기를 2년.

    참다못한 오 씨는 도대체 원인이 무엇인지라도 알아야겠다며 거실 벽을 통째로 뜯기로 했습니다.

    --------------------------------------------

    서울의 한 아파트.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옵니다.

    [오헨리]
    "(이게 지금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요?) 집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내용도 정확히 대충 들리세요?) 예. 들리죠. 선명하게 들리는데요. (뭐라고 했나요?) 지금 전화 통화를 하는 소리고요. 강남역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 소리에요."

    이사 온 지 2년, 그 후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같이 겪고 있는 일입니다.

    옆집의 부주의라고 보기엔 너무나 평범한 집안 소음들.

    [오헨리]
    "옆집에서 두런두런 하시는 말소리가 그냥 그대로 들리다는 거는 저는 정말 황당했죠. 이런 거를 상상을 하면서 아파트를 사는 사람은 없쟎아요."

    옆집 소리가 이렇게 들린다는 건, 거꾸로 내가 내는 소리도 옆집에 들린다는 얘기.

    [오헨리]
    "손을 뻗다가 이게 (벽을) 칠 때가 많아요. 자기도 모르게 칠 때가요. 근데 이렇게 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예요. 옆집에서 주무시다가 깨셨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노부부 단둘이 산다는 옆집에 가봤습니다.

    소리가 들린다는 걸 알고 나서는 모든 게 조심스럽다고 했습니다.

    [박○○/옆집주민]
    "그 이후로는 음악을 제가 좀 자제를 한다든지 이 방에서 얘기를 잘 안 했어요. 그냥 잠만 잤어요... 드라이도 하고 싶은데 안 했어요. 시끄러울까 봐."

    내 집인데 말 한마디 속시원히 못하고 서로 눈치 보고 조심하며 사는 두 집.

    벌써 2년째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옆집 소리가 그대로 들려오는 이른바 벽간 소음.

    벽을 통해 옆집과 대화도 할 수 있을 정도라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요.

    두 집은 거실과 안방을 맞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마주칠 일이 없는 옆집입니다.

    [오헨리]
    "저희는 엘레베이터 라인이 달라요. 같은 라인이면 아래위에 다니면서 뭐 뵙고 인사도 하고 하겠지만 전혀 다른 라인이라서 뵐 일이 거의 없는 분들이시죠."

    옆집에서 나는 소리가 어느 정도로 들리는 것일까.

    소음측정기로 측정해봤습니다.

    먼저 오 씨 집에서 벽을 두드려봤습니다.

    두드리는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수치는 70db에서 80db 사이를 오갔습니다.

    이번엔 옆집에서 두드려봤습니다.

    역시 70db 정도, 큰 차이 없이 잘 들렸습니다.

    집주인은 벽을 통해 옆집과 대화도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말을 걸어봤습니다.

    "(들리십니까?) 네, 들립니다. (구구단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네. 3*6 (18) 4*5 (20) (그쪽에서 질문해보세요) (2*7) 14 (5*4) 20."

    [오헨리]
    "여기 아파트값이 보통 비싼 아파트가 아니거든요. 최고급으로 지어졌다고 말을 하는 아파트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건설회사에 몇 차례 항의도 해봤지만 한 번 방문해 상황만 둘러보고 갔을 뿐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오헨리]
    "건설회사는 더 황당해요. 자기가 사는 집도 그렇다 해요. 그러고 이런 분쟁이나 이런 민원이 되게 많대요. 보통의 아파트들이 다 그렇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보통의 아파트가 정말 옆집에서 하는 얘기를 다 듣고 살까요?"

    이곳은 지난 2011년 완공된 서울 강남의 한 리모델링 아파트입니다.

    지은지 30년 지난 아파트를 다 허물지 않고 그 기본 골격을 활용해 만든 겁니다.

    내진 설계를 잘 했다며 모 언론사로부터 올해의 건축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파트에서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집주인은 벽 속의 상황이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두드리는 곳마다 소리도 제각각인 의문의 벽.

    2580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벽의 실체를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현장에 와서 두 집 간의 소음을 실제로 들어본 전문가들은, 이런 일은 처음 본다고 했습니다.

    [김근영 교수/연성대]
    "지금 현재 상태로 봐서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고. 테스트 하나마나 일 거 같은데."

    벽 내부를 확인해보기 위해 각종 장비를 투입했습니다.

    열 화상카메라와 내시경 카메라.

    원인을 알아내기 여의치 않자 집주인은 직접 벽을 뚫어 보자고 했습니다.

    구멍 안으로 벽돌이 쌓여있는 게 보였습니다.

    [김근영 교수/연성대]
    "아파트들은 보통 벽돌 안 쓰죠. 콘크리트로 쳐버리죠. 여기는 어쩔 수 없이 리모델링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기존 것을 이용한 거죠."

    벽 안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갈수록 궁금증은 커져 갔습니다.

    그런데 2580의 취재가 시작되자 6개월 넘게 연락이 없던 건설사 관계자들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검토하겠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오헨리]
    "내가 궁금하거나 의심하는 부분을 해결해주셔야지. (있는 상황 다 봤고 소리도 다 듣지 않았습니까. 저희가 검토를 해보겠다고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얘기는 저번에 거쳤쟎아. 지금 와서 똑같은 얘기를 하면 안 되쟎아. 지금은 좀 다른 얘기를 하셔야지."

    건설사의 태도에 울화통이 치민 집주인은 이번에 끝장을 보겠다며 급기야 벽 전체를 뜯어보기로 했습니다.

    석고보드 뒤로 속살을 드러낸 벽은 이곳저곳 빈틈 투성인 벽돌들이었습니다.

    [김근영 교수/연성대]
    "이 틈으로 인해서 소리가 그대로 다 전달이 되는 거죠. (이렇게 하고 또 이 벽에다가 미장을 해야 되는 거죠?) 그렇죠. 미장도 한번 더 해주고... 이런 틈으로 인해서 소리가 거의 7~80% 이상이 그대로 전달된다고 볼 수 있죠."

    [김근영 교수/연성대]
    "(여기 원래 대면 이렇게 해서 이렇게 빠지는 게 말이 되는 건가요?) 이건 상식을 워낙 벗어난 정도의 수준이죠."

    집주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입니다.

    [오헨리]
    "빠지는 거야? (빠져요. 빠지는 거예요) 그리고 위에 가 전혀 미장이 없네요... (사이는 완전히 비어있어요. 아무것도 없고요) "

    벽돌이 빠진 빈 공간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또 한 줄의 벽돌이 보였고 단열재나 흡음재가 들어갈 자리로 보이는 공간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오헨리]
    "지금 여기는 그냥 완전히 비어있네. (네, 비어있어요. 원래는 아마 단열재가..) 기도 위에 가 다 떠 있고 이게 다 떠 있쟎아요. 이게 소리가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고..."

    빈 공간으로 드라이버를 넣었더니 곧바로 옆집 벽에 닿았습니다.

    현장을 지켜본 건설사 관계자도 순순히 부실공사임을 인정했습니다.

    [건설사 관계자]
    "법 문구상으로는 '밀실 하게 시공해야 된다'라고 한 줄 되어 있는 상황이라서 가능하면 그렇게 지키려고 하는데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까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연 이 집뿐일까.

    380여 세대가 사는 이 아파트에서 지금까지 4년 동안 100세대 넘는 집들이 피해를 호소했지만 건설사가 보수해 준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오헨리]
    "건설사)가 거의 무반응으로 나온다든지 무시한다든지 이런 경우가 너무 허다했었데요. 싸우다 지쳐버린 거죠."

    건설사는 오 씨 집의 벽을 뜯어낸 16일, 전체 세대의 1/3 정도가 벽간 소음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며 전면 보수 작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벽간 소음은 이 아파트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관련 단체에 접수된 민원이나 인터넷에 올라온 피해 사례는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피해자 대부분은 소음에 시달린다면서도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걸 꺼렸습니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카페.

    벽간 음 때문에 힘들다는 글이 여러 개 올라와 있습니다.

    연락이 닿은 피해자들의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아파트 벽간 소음 피해자]
    "방송에 나가는 자체가 싫다는 거죠. 하자 부분에 대해서 방송 나가게 되면 아무래도 아파트 가격이라든지 이미지가 너무 안 좋다는 거죠."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어렵게 벽간 소음 피해자를 만났습니다.

    이 집은 옆집과 안방끼리 맞대고 있어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이○○]
    "여기는 정말 어우 소리가 어마어마해요 진짜. 어떨 때는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까지 다 들려요. 저희가 잠자려고 누우면 소리가 다 들려서 잠자기가 힘든 날도 있어요."

    아이가 있는 이웃들은 피해가 더 심하다고 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잠을 못 잔대요. 애가 너무 못 자니까 엄마도 못 자고 애도 못 자니까 서로 짜증을 내더라고요. 저도 애가 있었으면 가만히 못 있었겠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서로 조심하는 게 전부였다고 합니다.

    [이○○]
    "(건설사에) 할 말을 하면 뭐 해요. 돌아오는 게 없는데. 마음 같아선 보상비를 받아서라도 싹 다 뜯어고쳐서 해보고 싶은데 그게 쉽냐고...."

    벽간 소음의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요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주택법상 아파트 세대의 벽은 두께 기준만 있을 뿐 전달되는 소음의 크기 같은 성능 기준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벽이 일정 두께 이상만 되면 그 안에 뭘 채우든, 소음을 막든 못 막든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기준이 없으니 문제를 제기해도 건설사가 굳이 들어줄 이유가 없습니다.

    [차상곤 박사/주거생활개선 연구소]
    "우리 나라에는 위층 소리에 대한 제도라든가 기준은 분명히 존재하는 반면에 내가 옆집 소리로 뭔가를 제기했을 때는 어디에도 구제받을 어떤 공간은 하나도 없다."

    언제 또 이사를 가야 할지 모르는 입주민들의 상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성근 교수/경희대 부동산학과]
    "야, 여기 부실공사한 아파트야' 그러면 외부 사람이 안 들어오잖아요. 그러니까 하고는 싶은데 못합다. 사실은 해야죠."

    [오헨리]
    "건설회사 입장에서는 그것이 (입주민들의) 약점인 거예요. 민들이 소송하거나 항의하거나 뭔가 다른 액션을 취하게 되면 '결국은 니들만 손해 아니야?"

    층간 소음도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부의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폭행과 살인사건 등 심각한 이웃 분쟁으로 번져나가자 뒤늦게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는 중입니다.

    벽간 소음 역시 서로가 쉬쉬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사회적 관심을 기울이는 게 필요합니다.

    [차상곤 박사/주거생활개선 연구소]
    "한 번 소음에 노출이 된 사람들은 굉장히 벗어나기가 힘이 듭니다. 벽을 건설회사에서 다시 시공을 해준다 하더라도 그 소리 자체에 귀가 열린 경우에는 그 소리에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할 것이다."

    이웃끼리 조심하고 배려하는 건 공동주택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자기 집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말조차 옆집에 들릴지 몰라 조심해야 할 정도라면, 그리고 이에 대한 기준조차 없다면 분명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집이라는 게 사람이 내가 내 집에 오면 마음껏 웃을 수도 있고 옷을 갈아입을 수도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집이쟎아요. 근데 그걸 못한다면 그건 집이 아니죠."

    제대로 지었는지에 대한 책임과 감시는 뒤로 한 채 주민들에게만 배려와 불편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제도 정비가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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