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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공윤선 기자

우리 집은 컨테이너

우리 집은 컨테이너
입력 2016-04-18 11:00 | 수정 2016-04-1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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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고등학교 교장에서 은퇴한 양정필 씨가 최근 이사한 곳은 특별합니다.

    아파트에 살던 양 씨가 이사한 집은 컨테이너. 땅값, 컨테이너를 집으로 개조하는 비용 등을 모두 포함해 3억 원이 들었습니다.

    아파트 팔고도 남는 비용으로는 역시 컨테이너를 이용한 카페를 열었습니다.

    비용도 싸고 언제든 이동이나 철거가 가능하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는 양 씨.

    이처럼 화물선에나 실리던 컨테이너가 도시 안으로 속속 상륙하고 있습니다.

    주거용은 물론 쇼핑몰, 사무실 등으로 폭넓게 변신하고 있습니다.

    폐기 비용이 거의 없어 친환경적이고 쌓는 방식에 따라 좁은 도심의 유휴지에서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미래의 대안 건축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컨테이너, 그 가능성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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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채색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로 선명한 파란색 건물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가까이 가보면 주변의 건물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컨테이너로 하나하나 쌓아 올렸습니다.

    건물이 들어선 곳은 원래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아 30년 넘게 택시 차고지로 사용돼 왔습니다.

    그런데 1년 전, 한 대기업에서 컨테이너로 복합 쇼핑몰을 세우면서 하루 평균 1만여 명이 방문하는 지역 명소가 됐습니다.

    쇼핑이 아니라 건물을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박소희]
    "한국에서는 이런 건물이 많이 없잖아요. 그래서 사진 찍으면 외국에서 사진 찍는 느낌도 나고.. 세련되고 낮보다 밤이 더 이쁘더라구요."

    이 건물의 기본 개념은 옛 시장의 기능을 되살리는 것.

    물건을 사고파는 건물론, 먹고 마시고, 거리공연을 즐기는 것까지 한 공간 안에 섞어보자는 겁니다.

    이를 위해 컨테이너를 겹겹이 쌓은 뒤 그 사이에 커다란 광장을 만들고, 꼭대기 층에는 음식점과 카페들을 배치해 노천 시장 느낌을 냈습니다.

    광장에선 밤마다 갖가지 공연이 펼쳐집니다.

    [백지원/건축가]
    "고속성장을 하면서 전부 콘크리트에 가둬놓고 소비문화 조장을 했어요..여기서는 좀 더 햇빛도 많고 비도 맞고 공연도 보고.. 예전의 시장의 가치를 다시 조명한 겁니다."

    5천2백 제곱미터나 되는 큰 건물, 하지만 짓는 데는 단 여섯 달밖에 안 걸렸습니다.

    콘크리트로 짓는 것보다 공사비도 20% 아꼈습니다.

    또, 이 땅의 임대기간이 끝나면 건물을 그대로 다른 곳에 옮겨 다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컨테이너로 지은 건물이라 가능한 일입니다.

    화물을 싣고 뱃길을 다니던 컨테이너가 사람을 담는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파주의 한적한 마을.

    흰색, 검은색, 컨테이너 6개를 2층으로 쌓아 만든 집이 눈에 띕니다.

    지난해 은퇴한 61살 양정필 씨 부부는 노후를 보낼 집으로 수십 년 살았던 아파트 대신 컨테이너 주택을 택했습니다.

    [양정필]
    "주변에 전원주택을 아주 멋지게 돈 많이 들여서 지은 집들이 있었어요. 근데 그분들이 막상 시골을 떠나려고 하니까 집도 팔리지도 않고.. 어차피 우리 둘이 살다가 끝났을 때 이 컨테이너 하우스라는 게 철거도 쉽고, 고철로 재활용도 되고 돈도 저렴하고."

    평생 모은 9천 장의 LP와 DVD 3,500개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2층은 카페로 꾸몄습니다.

    1,2층 포함해 165제곱미터.

    건축비와 땅값을 모두 더해 3억 원 정도가 들었고, 공사는 석 달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쇳덩어리로 만든 집, 겨울에 춥지는 않을까, 난방비는 많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말 그대로 걱정일 뿐이었습니다.

    [양정필]
    "아파트 살 때 저희가 전기 포함해서 난방비 겨울에 한 45만 원씩 냈었거든요..여기와서 저희가 가스 안 쓰고 다 전기로 난방도 하고 취사도 하고..저희가 25만 원에 해결되더라구요. 그러고도 그렇게 춥다는 생각 없이.."

    지난해 제주도에 컨테이너 주택과 카페를 짓고 새 삶을 시작한 김은하 씨 가족.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며 아파트에서 살던 김씨 부부는 삶의 여유를 찾고 싶어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왔습니다.

    물려받은 땅이 있었지만, 카페와 집을 모두 짓기엔 부담스러웠던 건축 비용.

    해답은 컨테이너에서 찾았습니다.

    [김은하]
    "지나가다가도 그냥 진짜 신기해서 와봤다는 분들도 있고, (집을 보면서는)예쁘다.. 부럽다 저희한테 막 여기서 살아서 좋겠다.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해요."

    30대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고, 7살짜리 딸아이가 마당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잘 결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은하]
    "여유로워졌어요. (서울서는) 좀 조급함이 없지 않아 있었거든요. 애들도 뭐 이렇게 키우고 싶고 근데 여기 오니까 조금 애도 풀어놓게 되고."

    건축에 사용되는 컨테이너는 국제적으로 규격화된 해상 운송용 컨테이너입니다.

    애초에 컨테이너 자체가 험한 해상 환경을 견디고 여러 개를 쌓아올려도 버틸 수 있게 제작된 만큼 내구성과 안전성은 문제 될 게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장석훈 겸임교수/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구조가 취약하다고 생각을 해요 컨테이너 구조가 그런데 실질적으로 겪어보면 전혀 아닙니다. 구조가 강인하기 때문에 (건축) 구조의 안정성이 있다는 거죠."

    또, 석회석이 주재료인 콘크리트 건물보다 강철 재질에 단열재와 벽지만 붙이는 컨테이너 건물이 인체에도 더 안전해 해외에서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건축 소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컨테이너 주택 공장.

    길이 12미터짜리 해상 운송용 컨테이너가 공장 안으로 속속 옮겨집니다.

    주택용으로 개조하려면 우선 창틀과 문틀을 붙이고 전기를 연결합니다.

    사람이 들어가 살 공간인 만큼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단열.

    우레탄이 주로 사용됩니다.

    [권웅택 사장/컨테이너 주택 공장]
    "우레탄 판넬의 특징은 열 전도율이 상당히 낮아가지고 단열 효과가 좋은 점과 그다음에 방음, 방수 이런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자재."

    마지막으로 도배, 바닥 난방, 마루 깔기가 끝나면 주거용 컨테이너가 완성됩니다.

    이렇게 공정의 7,80%가 공장에서 이미 진행되고, 현장에 옮겨 조립만 하면 되기 때문에 비용도 최대 30~40% 아끼고 공사 기간도 40% 이상 단축할 수 있는 겁니다.

    [신주호 사장/컨테이너 주택 공장]
    "작년 대비 100% 이상 신장 추세고요. 최근 아파트 전세난이라든가 그다음에 싱글족 젊은 세대주들이 늘어나면서"

    토지를 다양하게 이용하고 싶은 토지 소유주들에게도 환영받고 있습니다.

    [송시연/컨테이너 주택 주인]
    "만약 제가 여기다가 4층짜리 빌딩을 제대로 지어서 뭐 하고 싶다 그러면 그때는 완전히 이 집을 무너 뜨려야 되는데 (이 집은) 하나씩 다 떼어가지고 가서 새로 집 짓는 것처럼 뭐 그러면 훨씬 좋지 않을까.."

    컨테이너를 지어도 갖다 놓을 내 땅이 없으면 무용지물 아닐까.

    최근 컨테이너 주택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서 관심 있는 동네를 검색하면 해당 토지와 주변의 유휴지를 알려주는 서비스도 생겼습니다.

    또, 컨테이너를 원하는 모양으로 배치해보며 집을 먼저 지어볼 수도 있고, 건축 비용도 미리 뽑아볼 수 있습니다.

    [김동우 팀장/디자인 건축 회사]
    "컨테이너 주택은) 제품화하기 때문에 전국 어디에 있든, 어느 공간이 됐든 일정한 가격으로 사용자들한테 제품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 이게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거든요."

    값이 싸다, 이동과 철거가 쉽다, 환경 친화적이다.

    이런 컨테이너 주택의 장점은 내 집을 짓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공익적인 시도를 가능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컨테이너 건축은 미래 건축의 대안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늦깎이 대학생인 배정훈 배지훈 형제가 컨테이너로 청년들을 위한 집을 만들고 있습니다.

    컨테이너 11개를 활용해 스무 명 정도가 함께 살 수 있는 쉐어하우스를 지을 예정입니다.

    협동조합 형태로 자금을 모으고 있고, 취지에 공감한 서울시가 놀고 있는 시유지를 싼값에 임대해주기로 했습니다.

    완성되면 한 사람에 보증금 100만 원, 월세 29만 원을 받고 임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배정훈]
    "주변 친구들이 사실 월 100만 원 정도의 소득을 갖고 있어요. 근데 그중에 월세 내고 나면은 절반이 빠져나가거든요. 그렇게 하면 되게 궁핍하게 생활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또 저희 일이기도 하고"

    우선은 청년주거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고 싶지만 향후엔 좀 더 범위를 넓혀볼 생각입니다.

    [배정훈]
    "지금은 청년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나중에 가서는 어르신 분들 그리고 또 약자, 사회적 약자 분들께도 좀 좋은 공간,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게 저희의 최종 목표입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그동안 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각종 사업에 컨테이너 건축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성동구는 한 대기업과 손잡고 청년들과 경력단절 여성들의 자립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제빵, 바리스타 등 다양한 취업 교육이 이뤄집니다.

    [박마벨]
    "저는 바리스타를 배웠어요. 근데 외국인이라서 개인 카페로 못 들어가는 거에요. 취업을 시켜주셔서 진짜 감사하고.."

    이곳은 서울숲 근처 방치된 연못이 있던 자투리 공간에 컨테이너 100여 개를 활용해 만들었습니다.

    유휴지에 비싼 돈을 들여 새 건물을 덜컥 짓기엔 부담이 크지만, 컨테이너 건축이 해결책이 되면서 이런 공익사업을 더 활발히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백지원/건축가]
    "예전에는 건물하고 땅이 붙어 있는 거였어요. 움직이지 못하는. 컨테이너 건축은 이동성이 있어요. 그러면 토지주와 건물주가 결별을 해도 누구도 그거에 대해서 불안해하지 않아요. 그래서 유휴지 개발이 가능한 거죠."

    빽빽한 아파트촌 사이, 개발되지 않은 채 어중간하게 놓여 있던 이 유휴지에도 컨테이너 61개가 쌓이면서 우리나라 최초 컨테이너 공연장으로 변신했습니다.

    서울시는 공연장 운영과 함께, 예술가들에게 무료로 작업실을 빌려줄 예정입니다.

    [신대철/기타리스트]
    "여기에만 서울시민들 한 300만 정도가 사신다고 그러더라고요. 여기가 사실상 문화적으로 소외받았던 그런 지역이기도 하구요. 향후에 서울에 또 다른 문화 중심지로써 이곳이 거듭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한 건축'의 개념에서 봤을 때 컨테이너 건축이 미래 건축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환경 친화적이라는 점에선 더 그 가치를 주목받고 있습니다.

    [백지원/건축가]
    "콘크리트는 부숴야죠. 부수면 그 에너지가 그냥 지하에 묻혀요. 또 콘크리트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석회석도 캐야죠. 그러면 지구에 남은 에너지가 그냥 없어지는 거에요."

    하지만, 단순히 '싸다'는 이유로만 너도나도 달려들 게 아니라 도시, 사회, 환경 등 보다 큰 틀에서의 고민이 함께 어우러져야 그 생명력이 길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깁니다.

    [강주형/건축가]
    "유럽이나 이런 데서 컨테이너 건축물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이유가 고비용을 지불하고라도 그 이런 재료를 쓰는 것이 사회문제에 맞거나 또는 추구하는 바에 맞거나 어떤 환경보호에 맞거나 하기 때문이거든요."

    누군가에겐 포근한 집으로, 누군가에겐 일하는 공간으로, 때로는 소외된 이들을 위한 공익적 공간으로.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무한한 변신이 가능한 네모 상자 컨테이너가 도시에 속속 상륙하고 있습니다.

    20세기 물류 혁신을 이끌었던 컨테이너가 21세기 도시 건축에서 어떤 혁신을 이끌어 낼지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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