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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최 훈 기자

집주인이 안 낸 세금, 세입자가 낸다?

집주인이 안 낸 세금, 세입자가 낸다?
입력 2016-05-02 10:39 | 수정 2016-05-0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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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상가건물에서 삼겹살집을 하는 김 모 씨는 최근 가게 보증금 1억 5천만 원을 고스란히 날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알고 보니 건물주가 지방세와 국세 등 각종 세금 28억 원을 체납했는데 구청과 서울시가 상가 건물을 압류한 것입니다.

    보증금 반환보다 세금 징수가 우선이라는 법 때문에 김 씨의 보증금은 체납 세금을 징수하는 데 쓰이게 됐습니다.

    한 마디로 김 씨의 보증금으로 건물주 세금을 대신 내주게 된 셈입니다.

    김 씨뿐만 아니라 전세 세입자 중에서도 집주인이 세금을 체납해 전세 보증금을 떼이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건물주나 집주인이 세금을 체납했는지 여부를 세입자는 미리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도 언제든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건물주도, 세무당국은 하나 손해 보는 것 없이 세입자만 돈을 떼이는 이상한 법, 이대로 괜찮은지 점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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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구의 한 음식점.

    지글지글 익는 삼겹살에 동료들과 함께 소주 한잔을 기울입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북적거립니다.

    주인 김수연 씨도 정신없이 바쁩니다.

    [김수연/상가 세입자]
    "언니 오삼 2개 해야 돼요. 오삼 합이 4개 있어요. 4개. 자 언니 나가 12번."

    하지만, 김 씨의 표정은 왠지 밝지 않습니다.

    입주할 때 낸 가게 보증금 1억 5천만 원을 전부 날리게 됐기 때문입니다.

    화병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잡니다.

    [김수연/상가 세입자]
    "못 살겠더라고요. 일단 잠을 못 자고 사람이 이건 사는 게 아니다."

    보증금을 날린 이유는 건물주가 세금 28억 원을 체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물이 공매에 넘어갔습니다.

    공매는 국가가 주도하는 경매를 말하는데, 마포세무서와 서울시는 이 건물을 팔아 밀린 세금을 거둬갑니다.

    그리고 나서 남는 돈은 은행이 가져갑니다.

    결국, 건물주가 안 낸 세금을 아주 잘못 없는 세입자가 대신 내주는 꼴입니다.

    [김수연/상가 세입자]
    "(실제 손해액은) 1억 5천만 원이 (아니고) 거의 7~8배가 되는 상황이더라고요.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서 처음 이 일을 알고 세달 동안은 정말 미친 듯이 막 알아보고만 다녔는데 이제 수습하려고 그래서 살던 집 다 내놨고 부모님 집 처분하려고 내놓고..."

    세금을 체납한 건 건물주인데, 결과적으로 그 책임은 세입자가 져야 한다.

    이런 경우가 있나 싶지만, 현재 우리나라 법이 그렇습니다.

    국세와 지방세는 다른 채권 보다 우선 징수한다고 돼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세입자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김 씨 같은 황당한 일을 겪게 될 수 있는 겁니다.

    김 씨가 이 건물에서 상가 계약을 한 건 6년 전, 당시 확정일자도 받았고, 등기부등본도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은행에 질권 설정이란 것도 했습니다.

    집주인 계좌에 질권 설정을 하면 법적으로 보증금과 월세를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은행도 그렇게 설명했기 때문에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김수연/상가 세입자]
    "매매 계약이나 임대 계약을 수십 차례 여러 번 해봤어요. 부동산 중개업자가 껴있고, 은행이 껴있고 건물주가 있고 신탁회사가 있었기 때문에 보증금에 대해서 불안하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죠."

    그런데 작년 1월 상가 보증금에 압류가 들어왔습니다.

    압류를 해온 곳은 마포세무서와 서울시.

    건물주가 상가 운영이 안 된다며 부가가치세와 지방세 등 세금을 안 냈기 때문입니다.

    [양 ○○ 건물주]
    "45개 상가가 미분양이 났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거에 대해서 재산세니 이런 걸 안 내다보니까 그거 나온 건데."

    그래도 김 씨는 자신이 상가를 계약한 건 2010년으로 압류가 들어온 날보다 5년이나 앞섰기 때문에 세금보다 우선해 자신의 보증금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압류된 날짜는 전혀 상관없고, 건물주가 세금을 안 내기 시작한 시기가 기준이 된다는 것.

    이 건물의 경우 세금 체납이 시작된 건 2009년.

    즉, 김 씨가 가게를 계약하기 전인 2009년부터 세금이 체납됐기 때문에 세금이 보증금보다 우선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계약할 때 확정일자를 받았더라도, 질권 설정을 했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세무서는 세금을 효과적으로 거두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홍성구 팀장/마포세무서 징세팀]
    "억울하게 쫓겨나신 분들에 대해서는 뭐 개인적으로 정말 미안한 생각인데, 국가도 또 세금을 받아야지 운영을 하니까.."

    이 건물 다른 가게들도 마찬가지.

    추어탕 집, 한식당, 스크린골프장, 자동차 대리점까지, 6~7곳이 각각 수억 원대 피해를 봤습니다.

    그나마 다른 상점들은 2013년 월세 압류가 들어온 날부터 월세를 내지 않아서 피해를 줄였습니다.

    어차피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차라리 월세를 안 내고 보증금에서 차감해 조금이나마 손해를 줄인 겁니다.

    [최OO/상가 세입자]
    "진짜 막말로 아무것도 안 돼서 나 진짜 알거지로 나간다. 그러면 나가서 불이라도 지를 거야. 내 뭐 이래도 죽나! 저래도 죽는 건데. 뭘 방법이 없잖아요."

    결국, 월세까지 꼬박꼬박 낸 김 씨 가게와 자동차 대리점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됐습니다.

    보증금 떼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다음 달 공매가 진행돼 건물주가 바뀌면 세입자들은 수억 원대 보증금을 또 내고 장사를 하거나, 아니면 수억 원대 권리금마저 못 받고 건물에서 쫓겨나야 합니다.

    [정 OO/상가 세입자]
    "힘들죠! 다. 다 마찬가지에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여기 가게 하면서 한 7~8억 이상 손해 봤을 거예요."

    이런 억울한 피해는 주택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

    김종분 씨는 150제곱미터짜리 큰 집에서 전세로 살다 3년 전 쫓겨났습니다.

    집주인이 세금을 체납해 집이 공매로 넘어갔고 김 씨는 전 재산이었던 전세보증금 1억 6천5백만 원을 한 푼도 못 받았습니다.

    사정이 딱하다며 새 집주인이 이사비용으로 건네준 2백만 원이 김씨에게 남은 돈 전부였습니다.

    [김종분/전세 세입자]
    "그때는 마음이 많이 아팠고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떻게 할 수도 없었고 어디다 도움을 요청할 만 데도 없었고."

    김 씨는 지금 컨테이너로 지은 허름한 원룸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 살던 대형 아파트와는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이마저도 2년 동안 사글세를 전전하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전세금 3,500만 원을 빌려 어렵게 들어온 겁니다.

    집주인이 세금을 체납했는데 아무 죄 없는 자신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아직도 납득이 안됩니다.

    너무 억울해서 아파트를 공매한 시청에 따졌다가 더 큰 상처만 받았습니다.

    [김종분/전세 세입자]
    "이 돈(전세금)이 전부인데 어떻게 살으라고 이렇게 힘들게 만드냐고 따졌죠. (그러니까 뭐래요?) 그런 사람이 많답니다. 이런 사람이 많게 시청에서 지금 사람들을 많이 거지 만들고 있는 거냐고 제가 따졌어요. (그러니까 뭐래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된대요."

    이들의 사연을 그저 운이 나빠서 당하는 일이라고만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입자 입장에선 집주인이 세금을 성실하게 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계약해야 하지만 문제는, 그걸 알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경기도에 사는 박 모 씨 부부도 조만간 쫓겨나게 생겼습니다.

    이 집주인도 세금 7천만 원을 체납해 집이 공매에 넘어갔습니다.

    세금 체납액도 크고, 은행 융자도 많아서 전세보증금 1억 2천만 원의 절반도 못 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공매절차가 마무리되면 곧바로 이 집에서 나가야 합니다.

    [유 OO/전세 세입자]
    "피해액이 상당히 커졌고 결혼해서 지금까지 모았던 돈인데 내가 뭘 잘못해서 날린 게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날아가 버렸으니까."

    집주인의 세금 체납 사실도, 내 보증금보다 집주인 세금이 우선이라는 사실도 집이 경매로 넘어간 이후에 처음 알았습니다.

    [박 OO/전세 세입자]
    "당연하죠, 몰랐죠. 이걸 알았으면 누가 이 집을 들어오겠어요."

    집주인의 납세 사실은 등기부등본에 표시가 안 되기 때문에 세금을 내고 있는지 밀리고 있는지.

    세입자는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조심한들 예방할 수 없는 겁니다.

    [장 OO/공인중개사]
    "공인중개사도 등기부등본 상을 보고 현재 뭐 그렇게 대출이라든지 권리관계가 깨끗하면 그걸 믿고 계약을 하는데. (지금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 네.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김 씨는 소송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곧 포기했습니다.

    법이 그러니 국가를 상대로 소송해봐야 패소할 게 뻔하고, 집주인을 상대로 소송해봐야 대부분 체납자들은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이 없어 받을 길이 없단 겁니다.

    스마트폰에 집주인이 잘사는 듯한 사진들이 올라올 때마다 속상하지만, 국세청도 은닉재산을 못 찾았다고 하니 의심만 할 뿐, 방법이 없습니다.

    [박 OO/전세 세입자]
    "지금 좀 막막해요. 사실. (집은 좀 알아보셨어요?) 지금 알아보고 있죠. 월세로 알아보고 있는데 만만치 않죠. 월세도 보증금이 많이 약하면 월세가 한 달에 돈 백 돈이니까."

    이런 피해는 주변에 의외로 많습니다.

    [김수연/전세 세입자]
    "제 세무 담당 직원이 결혼 초창기에 이 일을 당했더라고요. 세무사가 저보다 세법을 더 잘 알잖아요. 그걸로 압류가 돼서 자기가 파산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집주인의 세금 납부 여부를 알아볼 방법이 없다 보니, 법이나 부동산을 잘 안다는 세무사와 법무사, 금융회사 직원 할 것 없이 세입자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겁니다.

    [민 OO/금융회사 직원]
    "저도 한번 경험했거든요. 제3자들이 빼돌리고 저도 그런 경험 있어요. 저같이 금융회사 직원들도 사실은 쉽게 그러니까 좀 나쁜 건물주를 만나면 그렇게 되는 거라서..."

    한 법무사는 전세금을 2억 넘게 날린 뒤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고, 권익 위는 국토 해양부와 기획 재정부 등에 관련 법령을 개정하라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법제처도 이 법이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달라지는 건 없을까?

    지난 2013년.

    국회의원 15명은 부동산 계약을 할 때 집주인의 세금 체납 사실을 공인중개사가 대신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정부의 반대로 결국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계약 전 집주인이 세금을 체납했단 사실을 미리 알 수 법안이지만, 개인 정보가 침해될 수 있다는 게 반대 이유였습니다.

    [김재경 위원장/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개인 정보가)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제가 볼 때는 악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보는데 (개인 정보가 악용될 우려가 있다면 세금을 내면 되잖아요.) 맞습니다."

    지금도 세입자가 집주인의 동의를 얻으면 체납사실을 열람할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실제 동의해주는 집주인은 거의 없어서 있으나 마나 한 제도입니다.

    [박 OO/전세세입자]
    "어떻게 물어봐요. 기분 나빠할 수도 있는데 그리고 집주인한테 물어본다고 집주인이 얘기하겠어요?"

    [장○○/공인중개사]
    "그걸 요구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방세나 국세 체납 연체 사실 확인서를 요구했더니 굉장히 기분 나빠하셔가지고 계약을 못 한 경우도 있었어요."

    최근 이같은 세입자 피해가 속출하자! 세금 징수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전세금을 압류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올해 1월부터 시행 중입니다.

    하지만, 체납한 집주인의 다른 재산을 추적해 보고 정말 없을 때만 세입자 보증금을 징수하란 얘긴데, 현실에선 도움되지 못합니다.

    대부분 실제 재산이 없거나 다른 명의로 재산을 돌려놓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송헌 변호사]
    "저도 최근에야 이런 사건들을 접합니다. 어찌 보면 사실 신종 사기죠. 임대인들이 저지르는 신종사기죠. 체납 세금을 보증금으로 갚아버리는 꼴이잖습니까."

    우리 법에는 밀린 세금을 걷더라도 체납자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비용이나 석 달치 식료 등은 압류가 금지되고, 체납자의 월급과 연금, 상여금과 퇴직연금 등은 50% 이상 압류하지 못하도록 돼 있습니다.

    세금체납자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삶을 꾸릴 여지는 남겨놓겠다는 보호장치입니다.

    하지만, 남이 안 낸 세금 때문에 잘못도 없이,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나야 하는 피해자들에겐 이 정도의 보호장치조차 없습니다.

    [유 OO/전세 세입자]
    "돈 없는 게 제일 억울하죠. 법은 있는 사람 편. 없는 사람들은 더 피해보는 거. 이런 일 겪고 내가 이렇게 아등바등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나한테 도움되는 법은 하나도 없으니까 이게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나..."

    안 낸 세금을 찾아내 징수하는 일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행정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남의 잘못 때문에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상가보증금, 전세보증금이 국고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서민들의 처지를 이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국회와 정부가 서둘러 해법을 찾고, 이를 법에 반영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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