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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민병호 기자

"나는 경비원입니다" 고령노동자들의 삶과 애환

"나는 경비원입니다" 고령노동자들의 삶과 애환
입력 2016-07-04 11:18 | 수정 2016-07-0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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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배를 맡아주고, 분리수거와 주차 관리에 순찰까지. 아파트 경비원의 하루는 바쁘게 지나갑니다.

    제대로 쉴 수도 없고 때로는 폭행에 폭언을 듣기도 하는 힘든 일자리입니다.

    심지어 무인경비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해고의 위험도 커졌는데.. 이런 문제를 개선하고 더불어 살아가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경비실에 에어컨을 놔주자는 입주민들, 무인시스템 대신 경비원을 계속 고용하자는 아파트단지, 고령자들의 경비원 고용을 지원하는 지자체도 있습니다.

    아파트 경비원들의 애환과 삶을 좇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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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아파트 단지의 아침.

    경비원 아저씨가 출근하는 주민들의 차량 흐름을 정리합니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지도하고, 단지 내 곳곳을 청소하는가 하면 냄새 나는 음식물 쓰레기통도 구석구석 깨끗이 씻어냅니다.

    [이 OO/경비원]
    "(이 통을 다 닦으셔야 되는 거예요?) 예, 겨울철에는 괜찮은데 여름철에는 파리도 끼고 냄새도 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통을 닦고 있습니다."

    도시락을 꺼낸 점심 시간.

    젓가락질을 하면서도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시선은 계속 CCTV 모니터를 향합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되는 분리수거.

    정리하고 정리해도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경비실 한 켠에는 맡아놓은 택배 상자가 계속 쌓이고 주민들은 수시로 택배를 찾으러 옵니다.

    [이 OO/경비원]
    "(안녕하세요.) 예. (택배 왔어요?) 어서 오세요. 왔습니다. 여기 싸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요) 여기 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밤이 깊어지고 입주민들이 잠자리에 들면 이젠 야간순찰을 돌 시간입니다.

    꼭대기층에서 지하주차장까지 모두 돌고 나면 몸은 천근만근.

    아파트 경비원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갑니다.

    아파트 경비원은 원래 감시 근로자라고 해서 경비 관련 업무만 수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수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게 대다수 아파트 단지의 현실일 겁니다.

    60세 이상의 고령노동자가 대부분인 경비원들.

    이들은 과연 어떤 환경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을까요.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지난주 이 아파트 경비원 한 명이 입주자 대표에게 폭행을 당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었습니다.

    [김 OO/동료 경비원]
    "(입주자대표) 회장이 의자를 들고 돌아와서 가지고 자기를 내려치는 통에 왼팔을 들어 막으면서 부상을 입은 거예요. (의자가 어떤?) 철제 의자 이렇게 접는 거.."

    주민들에게 서명을 받아오라는 입주자대표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게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

    [김 OO/동료 경비원]
    "'왜 회장이 지시했는데 안 받았느냐. 여기서는 회장 지시가 대통령보다 위다. 당신네들 나가고 싶으냐, 이번 달 월급 받고 싶으냐', 그 얘기까지 했어요."

    하지만, 관리사무소와 용역업체에서는 서명을 받으러 다니지 말라고 지시해 경비원들은 곤란한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김 OO/동료 경비원]
    "서명받는 자체가 입주자대표회의에 의결된 사항도 아니고 입주자대표회장 개인이 받는 거기 때문에 경비원들이 서명받으러 다니지 마라. 이렇게 된 거예요."

    폭행을 당한 경비원은 이 일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허 OO/동료 경비원]
    "(몸은 좀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뭐 아무 일도 없는데...출근은 내일모레 할 거예요."

    2주 전 경기도 수원에서는 69살 경비원이 30대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복도에 놓여진 이웃 주민의 유모차를 치워달라는 입주민의 요구에 '개인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며 거부한 게 그 이유였습니다.

    [전 OO/피해 경비원]
    "(어깨를) 잡아당기면서 (무릎으로) 내리친 거야 나를. 너 같은 건 하나 죽어도 괜찮다 이거야, 죽어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도 입주민이 차량 통제를 하던 경비원의 얼굴에 침을 뱉고 폭행하는 일이 벌어져 관리소장이 호소문을 게시하기도 했습니다.

    툭하면 벌어지는 입주민들의 경비원 폭행.

    하지만,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면 참을 수밖에 없다고 경비원들은 말합니다.

    [최 OO/경비원]
    "주민들이 뭐라고 해도 '예 예 알겠습니다'하고 굽신거리고 말아야지...경비원은 무조건 을이고 암만 입주민이 잘못해도 말을 하면 안 돼요."

    72살 김수동 씨는 지난달까지 경비원 일을 해왔습니다.

    적으나마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든든했습니다.

    [김수동]
    "애들한테 손 안 벌리고 이러려고 하는 건데 일을 하다 보니까 활력도 나고..중국음식 좋아하다 보니까 봉급 타는 날은 식구들이 앉아서 자장면도 시켜먹고 그런거..."

    하지만, 갈수록 고된 업무에 몸이 버텨내지 못한데다, 마음의 상처도 커졌습니다.

    [김수동]
    "경비실 안에 보면 화장실이 있어요. 같이 붙은 데 그럼 화장실에서 밥 먹는다고요. (화장실에서? 왜요?) 찌개 같은 거 냄새 나면 뭐라고 하는 사람 있잖아요."

    무인 택배 함 이용방법을 모르는 입주민에게 사용법을 알려줬다가 질책을 받기도 했고.

    [김수동]
    "젊은 아줌마인데 관리실 가서 뭐라 그러냐면 '경비가 자기를 가르치려고 그런다','주민을 가르치려고 그런다.'고 그래서 관리소장이 그러는 거예요. 왜 그런 소리 해 가지고 그런 말 나오게 했냐고. 그게 가르치는 게 아니잖아요."

    입주민들에게 구호를 붙여가며 경례하도록 강요도 받았습니다.

    [김수동]
    "아침, 저녁에 나와 가지고 군인처럼 주민들한테 거수경례해라. 그리고 경례만 하면 괜찮은데 뭐 '친절' 이런 (구호를) 강요하니까 싫지. 조용한데 '친절' 그러면 좋아할 사람 없잖아."

    경비원들에게 가장 힘든 일과 걱정거리는 뭘까?

    한 자치단체의 법률교육에 참가한 경비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임 OO/경비원]
    "'오늘 하루 넘어가나?', '무사히 넘어가나?', 나이가 70이 되다 보니까는 우선 잘릴까 봐서.."

    입주민들의 폭행이나 푸대접보다도 가장 두려운 건 해고의 압박이었습니다.

    [유 OO/경비원]
    "한 달 후에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또 용역업체 바뀌면 또 불안한 거예요. 내가 나이로 (정년)해서 고용승계가 되지 않을까(봐) 뭐 모가지 때릴 거 아닌가."

    경비원 고용업체들의 편법 계약도 고질적인 병폐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가영 변호사/서울 사회복지 공익법센터]
    "퇴직금은 1년 이상 근무를 한 근로자들에게만 지급되도록 되어 있다 보니까 이걸 회피하려고 3개월로 계약기간을 자르는 거예요. 그래서 똑같은 곳에서 계속 일을 하는데도 3개월씩 3개월씩 계약이 되다 보니까 퇴직금을 못 받으시는 거예요."

    이렇게 제대로 된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사는 게 경비원들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경비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함께 더불어 살자는 작은 노력과 움직임들이 공감을 얻으며 확산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

    복도에 벽보 한 장이 붙어 있습니다.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해주자는 안건이 동대표 회의에서 부결되자!

    동대표 신찬수씨가 입주민 모금 벽보를 붙인 겁니다.

    [신찬수/OO아파트 동대표]
    "인터넷 가격으로 3,40만 원 정도 되니까 우선 모금을 하고 모금을 해서 안될 수도 있잖아요. 안되면 그냥 뭐 나머지는 사실 제가 할까 그런 생각으로... (세대당 얼마씩 내면 설치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저희 경비실 하나에 한 3개 동 정도를 관리하고 계신데요. 저희가 524세대에요 3개 동이. 제가 계산을 해보니까 70% 정도면 1천 원 정도, 50%가 참여하시면 1천5백 원 정도.."

    신씨의 의견에 뜻을 함께하는 입주민들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신찬수/OO아파트 동대표]
    "제가 붙인 다음 날부터 입금은 몇천 원 이렇게 꾸준히 들어왔고요.. 분위기가 이렇게 되다 보니까 다른 동에서도 뭔가 이런 에어컨을 설치하자는 안내문이 또 붙는 동도 있고..."

    경비원들은 입주민들의 마음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소 OO/OO아파트 경비원]
    "주민들이 그런 얘기를 해서 쫓아가 봤지. 그랬더니 그게 화살표 예쁘게 해놓고 볼펜으로 붙여놓고 해 놨더라고. 그래서 '아 참 고맙다', 젊은 분인데 이런 거 생각까지 해서 기특하구나.."

    입주민들의 자발적인 모금 운동에 결국 이 아파트는 다시 동대표 회의를 열고 모든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이곳은 용역업체에 위탁하지 않고 입주자 대표회의가 직접 경비원을 고용합니다.

    '위탁관리' 대신 '자치관리'를 택하면 관리비 등에 부가가치세가 붙지 않는데, 이렇게 아낀 비용은 경비원 임금 인상분으로 돌렸습니다.

    [남승보/OO아파트 입주자대표]
    "(경비원들의) 급여는 약 30만 원 정도 인상되는 그런 혜택들을 봤고 그다음에 고용이 안정되다 보니까 이직률도 낮아지게 되고 이직률이 낮아지게 되니까 그 사람들 서비스하는 자체가 향상되는 그런 결과들로 인해서 주민들이 상당히 좋아하는 그런 효과를 봤죠."

    [이계종/OO아파트 경비원]
    "일단은 직접 고용되니까요. 먼저 임금이 인상되니까 직원들 처우가 개선되고 고용불안이 많이 해소되니까 주어진 임무에 더 충실히 임할 수 있죠."

    또 경비원들은 청소와 분리수거 등 다른 잡일 없이 경비 업무만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입주자들이 책임져야 할 일은 조금 많아졌지만 그 효과는 모두에게 만족스럽다고 했습니다.

    [남승보/OO아파트 입주자대표]
    "주민들이 분리수거하고요.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미화원들이 하고 있고요. 경비원들은 아파트 경비 업무에 집중해서 근무해 달라는 거고 미화원들은 아파트 미화에 관련된 부분 집중적으로 해주고."

    하지만, 경비원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아파트단지들이 계속 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무인 경비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한 서울 강서구의 아파트

    다음 달이면 경비원 44명 전원이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조 OO/아파트 경비원]
    "여기 주민들이 진짜 고마운 분들이에요. 정도 많이 들었고 일하고 싶은데 뭐 여건이 안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니까 안타까운 거죠."

    몇몇 입주민들이 현수막까지 내걸며 경비원들을 지켜달라 호소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강 OO/아파트 입주민]
    "사실 취직하기 어려운 연세들이거든요. 70이 넘거나 60이 넘으면. 그렇죠. 근데 그분들이 여기서 잘리면 여기서 해고되면 도대체 어디 가서 밥 벌어먹고 살 것인가. 그런 생각 안 할 수가 없어요."

    전문가들은 단순히 경비원 임금 절감만을 생각하기보다 실질적인 주민들의 편익과 사회적 편익까지 함께 고려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하재룡 교수/선문대학교 행정학과]
    "우리 사회 전체가 누리는 편익도 있거든요...고령자의 건강이라든지 또 그 일자리가 확보됨으로써 전 사회가 갖게 되는 어떤 그런 반대급부들이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시나 이런 공공부문에서 어느 정도 지원을 해 주게 되면..증가되는 (사회적) 비용을 상쇄시킬 수 있는 그런 장점이 있다."

    실제로 한 지자체는 경비원들의 고용 안정을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55세 이상의 경비원을 고용하거나 계약기간을 안정적으로 늘리는 등 경비원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아파트에 시에서 보조금을 지원하는 겁니다.

    작년에 이미 4곳이 혜택을 받았고 5천만 원이 지원되는 올해는 11곳의 아파트가 신청서를 낸 상태입니다.

    [유선종 과장/아산시청 사회경제과장]
    "'경비원분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면 우리가 점수를 더 주겠다', '그런 데를 우선으로 하겠다.' 그러니까 시의 자체 노력만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우리 입주민들도 우리 고령자분들 아파트에 경비하시는 분들을 같이 생각하고 더불어 살아가자..."

    덕분에 이곳 경비원들은 일터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김희곤/아산 OO아파트 경비원]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서 주민들이 부담되니까 많은 경비원들이 해직을 많이 당했습니다. 근데 저희는 배려해주신 지원 덕분에 저희들이 보다 더 안정되게 또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끔 됐습니다."

    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경비원들.

    곳곳에서 더불어 살자는 입주민들의 따뜻한 배려와 인격적인 처우가 목격되고 있는 건 참 반가운 일입니다.

    여기에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고용의 불안함도 덜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함께 더해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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