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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권희진 기자

소녀상과 '12·28 합의'

소녀상과 '12·28 합의'
입력 2017-01-23 11:39 | 수정 2017-01-2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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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을 맞아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됐습니다.

    그러나 부산 동구청은 소녀상을 철거해 폐기물 야적장에 버렸고, 분노한 시민들이 댓글과 전화로 항의하자 다시 소녀상 설치를 허용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10억 엔을 받고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며 대사와 영사를 불러들이고, 통화 스와프 협정을 중단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1년 전 위안부 합의가 과연 어떻게 이뤄졌길래 이런 갈등이 빚어지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역사적인 합의라며 큰 성과라고 자평하고 있는 반면, 학계와 시민 여론은 1993년 고노 담화보다도 후퇴한 것으로 졸속 협상이 빚은 외교 참사로 보고 있는데요.

    한일 위안부 합의의 실체적 진실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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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 28일 오후, 부산 일본영사관 옆 도로.

    팔짱을 낀 시민들이 작은 소녀상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경찰의 엄호 속에 부산 동구청 직원들이 시민들을 한 명씩 끌어냈고, 뜯겨 나간 소녀상은 폐기물처리장으로 실려갔습니다.

    시민들의 분노와 항의가 동구청에 쏟아졌고, 결국 구청 측은 소녀상 설치를 허가하기로 입장을 바꿨습니다.

    [박삼석 동구청장/부산광역시 동구]
    "(소녀상 설치를 막지 않겠다라는 말씀이시죠.)네 저도 저희 힘으로써는 막을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12월31일 밤,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온 소녀상 앞에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1년 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뒤 이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부산 소녀상 설치 모금.

    초등학생의 저금통, 마트 계산원이 낸 만 원짜리 지폐 등 시민 5,143명이 모은 8천 5백만 원이 소녀상이 됐습니다.

    시민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정희/대구광역시]
    "여기를 한 번은 꼭 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왔어..너무 눈물이 나요."

    [정태철/인천광역시]
    "우리 딸한테 잊지 말고 그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 딸한테 그걸 알려주고 싶어서 오게 됐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가슴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은 '평화의 소녀상'은 지난 2011년, 1,000번째 수요집회를 기념해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 49곳에 설치됐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한일 위안부합의를 지키라며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면서 이 작은 조형물은 악화되고 있는 한일 관계의 중심에 놓이게 됐습니다.

    소녀상 제막식 다음 날인 새해 첫날, 일본이 10억 엔을 한국에 줬는데도 한국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는 마치 보이스피싱, 입금 사기를 당한 것 같다"며 아베 총리에게 측근들의 불만이 쇄도하고 있다는 발언이 일본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한국이 돈만 챙기고 소녀상 철거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베 총리도 "10억엔을 이미 줬으니, 다음은 한국이 성의를 보일 차례"라고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약속을 어기는 한국보다는 일본이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일본 외무성 간부의 발언도 전해졌습니다.

    일본 정부는 주한 일본 대사와 영사를 소환하는 외교적 초강수을 뒀고, 한일 통화스와프 중단, 고위급 경제교류 중단 등 경제 제재도 시작했습니다.

    [아소 다로/일본 재무상]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빌려준 돈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스와프 따위도 지켜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깁니다."

    일본이 이렇게 소녀상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왤까.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 외교장관의 위안부 합의 발표에서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 이전해달라는 일본의 요구에 대해 한국 정부가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언급한 대목 때문입니다.

    일본의 반발이 거세자 외교부는 소녀상을 이전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윤병세/외교부장관]
    "(소녀상) 장소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우리가 더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우리 정부가 내세우는 건 비엔나협약.

    각국 정부는 외국 공관의 보호와 품위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국제협약을 소녀상이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겁니다.

    [이면우 박사/세종연구소]
    "소녀상을 더 세울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관 앞에 세워지는 소녀상에 대해선 좀 더 우리가 생각을 하자. 역사를 잃지 말자는 차원에서 공원 같은 그런 데로 옮겨도 좋고."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기범 박사/아산정책연구원]
    "정부가 이것을 철거하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이것이 공관의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인지..이건 사안이 다르다는 거죠."

    그렇다면, 부산 소녀상 건립의 단초가 된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을까.

    일본 측은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는 점에서 정부의 책임을 통감하고 아베 총리가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위안부 재단에 일본 정부가 돈을 내 피해자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한국 측은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를 이행할 경우, 다시 말해 일본 정부가 돈을 낸다면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창록 교수/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한국 정부가 그 대가로 약속해 준 것은 엄청난 거죠.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걸 약속해 줬고요. 그다음에 국제사회에서 비난, 비판 자제도 약속해줬고요."

    우리 정부는 역사적 합의라며 높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완벽하거나 100퍼센트는 아니라도 여태까지 손도 못 대고 포기하다시피 저건 우리가 할 수 없다 이렇게 그분들은 계속 연세가 들어가서 이제 89세, 90세 되는데 어쩔거냐 이거고."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아냈다는 점, 또 사과의 뜻으로 일본 정부가 돈을 내기로 결정했다는 점은 그 누구도 못했던 합의라고 평가합니다.

    [윤병세/외교부장관]
    "정부 쪽에서 돈이 나와야지만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하고, 정부 출연의 돈이 나오면 이 세 가지가 합쳐져 가지고 우리가 바로 원하는 그런 모습에 근접하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합의의 내용은 일본이 이미 밝힌 적이 있습니다.

    지난 1995년 일본이 하시모토 총리 명의로 보낸 사죄의 편지.

    이 22년 전의 사과 편지 속엔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 '책임을 통감한다',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 등 이번 합의의 문구가 그대로 포함돼 있었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조차 부족하다며 거부했습니다.

    그보다 2년 앞선 1993년 이른바 '고노 담화'에서는 일본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정부 책임을 공식 인정한 적도 있습니다.

    이번 합의가 과거보다 후퇴한 거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 이유입니다.

    [김창록 교수/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일본에 대해서 국가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게 핵심입니다. 근데 일본 정부는 그걸 부정하고 싶은 거죠. 그러니까 군이 일부 관여가 있었다는 식으로 애매하게 처리를 하려고 했던 거죠."

    위안부 합의 발표 직후인 작년 1월18일, 아베 총리는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전쟁범죄로 인정한 건 아니"라며 합의에서 밝힌 '군의 관여'는 위안소 설치나 위안부의 위생관리 등에 대해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이지, 군이나 관헌이 강제로 연행해 갔던 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2016.1.18]
    "(지금까지 정부가 발견한 자료 내에는) 군 및 관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기술은 보이지 않았다는 입장을 2007년에 각의 결정했고 그 입장에 아무런 변경도 없습니다."

    위안부를 강제 연행한 증거가 없다는 일본의 기존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합의를 먼저 깨뜨린 쪽은 일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교부는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준혁 대변인 외교부 브리핑/2016.1.19]
    "현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합의사항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입니다."

    그저 충실히 합의사항을 이행해야 한다는 외교부.

    대체 합의사항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지난 6일, 법원은 극히 이례적으로 위안부 협상 과정에서의 외교 문서인 한일 국장급 협의 전문을 공개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일본이 강제 연행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 국민들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인 '강제연행' 부분에 대해 어떻게 협의했는지 공개하라는 취지입니다.

    [송기호 변호사]
    "정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라는 이유로 이 문제를 덮으려면 최소한 그런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서 일본이 강제연행을 인정했는지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설명해야 된다.(그런 취지입니다.)"

    그런데 법원의 판결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외교부 스스로가 역사적 합의라고 평가한 위안부 합의 과정의 협상 기록들을 외교부가 몇 년 뒤 폐기하려 했다는 의혹입니다.

    영구보존하는 것이 마땅한 이런 중요한 문서를 외교부는 왜 폐기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시행령입니다.

    외국 정부기관과의 협상 기록은 영구보존하도록 명시돼 있습니다.

    [조준혁 대변인 외교부]
    "제가 아는 한 교섭에 관한 사안은 영구보존입니다…."

    그런데 외교부는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 과정의 원본 보존 기간을 고작 5년으로 제한했습니다.

    지금부터 3년 뒤면 위안부 협상 기록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재판 과정에서 외교부가 제출한 기록물을 재판부가 검토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났습니다.

    5년 뒤 폐기할 수 있는 정부 문서는, 기관을 유지하는 예산·회계 관련 기록물, 그러니까 부처의 회식비 영수증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송기호 변호사]
    "정부 스스로가 역사적인 합의라고 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이라고 보존 기간을 정한 거는 저는 합의의 실체를 역사 속으로 묻어버리려고 했다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랬는지 외교부 측에 물어봤습니다.

    [외교부 담당자]
    "그 문서에 5년이라고 했다고 해서 모두 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당시 협상단은 5년이라고 결정을 했던 거군요) 그거는 뭐 그 순간에 그렇게 협상하는 당시에 그렇게 지정을 한 거죠."

    지난 수요일 열린 제1266차 수요집회.

    매주 수요일, 일본 정부의 정확한 사과를 요구하는 이 집회가 시작된 지 이제 25년이 넘었습니다.

    집회에선 위안부 합의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김선실 공동대표/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죠. 왜냐면 어느 거 하나도 피해자들의 견해와 그동안 25년 동안 활동 같이해 온 지원단체들의 의견이 하나도 반영돼 있지 않기 때문에.."

    [함혜빈 고등학생]
    "제가 나중에 커서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가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서도 계속 같이 이런 수요집회 행사에 참여하고 그럴 예정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위로금 10억 엔을 관리하는 화해·치유 재단 측은 서둘러 돈을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황의숙 공동대표/수원평화나비]
    "할머니 더 늙으시면 그나마 이것도 못 받습니다. 이 돈 갖고 그나마라도 맛있는 거 사 잡수시고 여행다니시고..막 그렇게 설득을 하는데 정말..."

    이렇게 돈을 받은 경우 정부는 할머니들이 위안부 합의를 찬성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강은희 장관 여성가족부/2016.10.18]
    "합의에 반대하시는 분들도 다소 있지만 현재 저희가 파악한 걸로는 소수이십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할머니들께서 찬성을 하셨고.."

    위안부 합의에 반대해 온 경남 통영의 100살 김복득 할머니.

    화해·치유 재단이 조카에게 돈을 지급하고 할머니의 도장이 찍힌 서류를 받아간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습니다.

    [김복득/강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왜 이럴 때 나를 공부 좀 안시키고..나는 바보 천치가 돼 있는데..내 피묻은 돈이다.."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지급한 돈 1억 원을 되돌려주기로 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배상금 성격의 돈이라고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절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상한 돈.

    [하종문 교수/한신대학교 일본학과]
    "그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30년 동안 노력했던 부분들이 고작 1억 원의 돈으로 그냥 무산되는 느낌이라면 얼마나 그것이 서글프고 불합리한 현실이라고"

    한일 관계의 우호 증진과 미래를 위한다며 상당수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둘러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한 지 1년.

    독도를 둘러싼 영토분쟁까지 다시 불거지면서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하종문 교수/한신대학교 일본학과]
    "한국 쪽에서도 위안부 합의가 잘못되면서 일본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이 높아졌고 반대로 일본 쪽에서도 이런 위안부 합의를 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 우호적인 감정이 생겼는가? 그렇지 않다라는 것이죠."

    정부는 한일 관계의 오랜 걸림돌이던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평가하지만 그래서 나아진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협상을 하자는 쪽과 재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여론은 또 갈라지고 있습니다.

    [하종문 교수/한신대학교 일본학과]
    "피해자가 배제된 국가의 새로운 형태의 합의라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것이죠."

    [조진구 연구교수/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재협상 불구)]
    "그 합의 외에 다른 어떤 조건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합의가 가능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보면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합의 과정에서 배제된 피해 당사자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복동/강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녀상을 철거하고 앞으로는 위안부라 하는 거 절대 일절 없애게 하라 그러면 아무 역사도 없는 거라. 그럼 우리들로는 과거에 할매들이 돈벌이로 가서 그랬지. 결국, 우리는 언제까지나 위안부라 하는 꼬리를 달고 있을 거 아닙니까."

    최종적이라는 말로 덮지 못한 과거의 치유, 서로의 미래를 위한 진정한 화해, 적절한 해법을 찾기 위한 고민이 다시 필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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