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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필리핀 살인사건, 한국인은 맛있다?

필리핀 살인사건, 한국인은 맛있다?
입력 2017-02-13 12:04 | 수정 2017-02-14 11:41
필리핀 살인사건 한국인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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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필리핀에서 한국인 사업가 지 모 씨가 납치됐습니다.

    범인들은 지 씨 가족에게 1억 2천만 원을 요구했고, 몸값을 줬지만 지 씨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수사 결과 필리핀 전현직 경찰이 포함된 범인 일당은 납치 당일 경찰청 주차장에서 지 씨를 목졸라 살해한 뒤, 시신은 화장장에서 소각해 화장실에 버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이 연루된 충격적인 범죄에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 씨 가족에게 사과하고 유감을 표명했지만, 경찰청장을 유임시키고 사건 주모자는 여전히 체포되지 않는 등 필리핀 당국의 사건 처리는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심지어 델라로사 경찰청장은 지 씨의 죽음에 한국인 조폭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필리핀 경찰의 범죄 사실을 물타기 하려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필리핀에서는 경찰 등 부패한 공권력이 결탁해 무고한 시민을 용의자로 몰고 금품을 뜯어내는 이른바 '셋업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한국인들이 종종 범죄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한국인 관광객 3명이 마약범으로 몰려 700만 원을 갈취당하는가 하면, 이달 초에는 30대 한국인 여성이 현지인을 살해 협박했다는 이유로 구속됐습니다.

    현지 교민 20만 명에 한국인 관광객 1백만 명.

    무법천지 필리핀에서 반복되는 한국인 대상 범죄,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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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의 유명 관광지 앙헬레스.

    지난해 10월 18일 낮 12시 반, 한국교민 사업가인 53살 지익주 씨 집에 무장괴한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괴한들은 가정부 혼자 있던 지 씨 집에 총기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약 1시간 반여 동안 이들은 지씨 집을 뒤져 돈과 보석 등 귀중품을 약탈했습니다.

    그리고 오후 2시15분쯤, 집 밖으로 나오던 괴한들은 때마침 점심을 먹으러 집에 들렀던 지씨를 그대로 차에 태우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김대희 영사/필리핀 주재 한국 대사관]
    "마침 나오다 보니까 지익주씨를 납치 하려는 경찰관들이 지익주 씨하고 조우가 된 겁니다. 그래서 지익주 맞느냐 하니까 지익주가 맞다 그래서 바로 납치를 한 거예요."

    당시 맞은편 집에 살고 있던 이웃 주민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영상입니다.

    여러 명의 괴한들이 강제로 지 씨를 차 안으로 밀어 넣는 모습이 그대로 찍혔습니다.

    괴한들은 이날 밤 지 씨를 목 졸라 살해했고, 시신을 불태운 뒤 유골을 화장실 변기에 버렸습니다.

    [화장장 직원]
    "아마 그 여자(장례식장 직원)가 화장실에 유골을 버린 것 같습니다."

    백주대낮에 주택가에서 벌어진 납치 살해와 잔인한 시신 훼손 유기.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괴한들은 알고 보니 필리핀 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이었습니다.

    필리핀 경찰관들이 집에 쳐들어가 한국 교민을 납치해 살해한 사건.

    교민 사회는 물론이고 필리핀 전역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2580 취재팀은 필리핀 현지에서 사건 현장을 추적했습니다.

    지익주씨의 집이 위치한 곳은 프렌드십 플라자라는 앙헬레스의 고급 주거타운입니다.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앙헬레스 안에서도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주민 대부분이 부유한 외국인들이고, 한국 교민들도 약 30가구가 살고 있습니다.

    [프렌드십 플라자 주민]
    "(치안이 괜찮은 곳이죠?) 제일 좋아요? (치안이 제일 좋은 데예요?)그럼."

    프렌드십 플라자로 들어가는 출입구엔 총으로 무장한 경비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드나드는 사람의 이름과 출입 시간도 꼼꼼히 기록합니다.

    이곳저곳에 CCTV도 설치돼 있습니다.

    하지만, 지씨가 납치되는 동안 이런 치안시설과 무장 경비들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범인들이 현직 경찰관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정부와 함께 자신의 차인 검정색 포드 SUV에 올라탄 지씨.

    공포에 질린 그가 차 안에서 자신을 풀어주는 대가로 4백만 페소, 우리 돈 9200만 원을 제시했다고 함께 납치됐던 가정부는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범인들은 무슨 생각에선지 지씨의 제안을 무시했다고 합니다.

    대신 지 씨의 현금카드를 빼앗아 은행 ATM기 네 곳에서 각각 2만 페소씩 8만 페소, 우리 돈 180만 원을 인출했습니다.

    이들은 지씨를 끌고 간 곳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 있는 경찰청이었습니다.

    이들은 가정부를 풀어주고, 경찰청 마약수사국 건물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차 안에서 밤 10시쯤 지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습니다.

    법을 수호해야 할 공권력의 안마당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필리핀 경찰청장 집무실이 있는 경찰청 본관입니다.

    이 건물에서 불과 40m 떨어진 이곳에서 지씨가 숨졌습니다.

    [김대희 영사/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
    "테이프로 얼굴을 감으라고 했었어요. 자기는 모르고 감았답니다. 감고, 수술용 장갑을 껴서 사람을 살해하는 장면을 자기(빌레가스, 지씨 납치범)가 목격했대요. 그 목격한 걸 그걸 갖다가 자기가 고백을 한 거예요."

    지씨를 납치해온 범인 6명 가운데 3명은 산타 이사벨, 로이 빌레가스, 크리스토퍼 발도비노라는 이름을 가진 현직 경찰관.

    모두 필리핀 경찰청의 마약수사국 대원들이었습니다.

    [김대희 영사/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
    "에이스 경찰관들이죠. 에이스 경찰관."

    이들은 지씨의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보내 관에 넣고 사망확인서를 위조했습니다.

    이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제라도 산티아고라는 사람은 전직 경찰관입니다.

    2580이 입수한 지씨의 사망확인서입니다.

    목이 졸려 질식사한 지씨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을 심한 폐렴, 여기에 고혈압과 천식이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시신의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호세 살바도르. 국적은 필리핀이라고 돼 있습니다.

    문제없이 화장하기 위해 지씨를 필리핀 사람으로 위장한 겁니다.

    [화장장 직원]
    "10월 19일 호세 살바도르로 예약을 했습니다. 호세 살바도르 이름을 명시한 사망 진단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의심 없이 화장을 한 거죠)"

    그리고는 필리핀인 직원을 망자의 조카인 것처럼 위장해 지씨의 시신을 마닐라의 한 화장 시설로 가져갔습니다.

    조카로 위장한 직원은 유가족인 것처럼 연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조 OO/화장장 운영자]
    "서류를 갖다가 이렇게 접수할 때 (유가족인 거처럼) 굉장히 울먹이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혀 뭐 그런 (이상한) 눈치라든지 그걸 몰랐고."

    화장시설 측은 지씨의 유골을 함에 담아 줬지만, 전직 경찰관인 장례식장 주인 산티아고는 직원을 시켜 지씨의 유골을 장례식장 화장실 변기에 버리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시신을 처리해 준 대가로 산티아고는 우리 돈 69만 원과 지씨의 골프클럽을 받았습니다.

    [김대희 영사/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얘기죠. 전 세계에 이런 데가 있다고 그런 아마 생각, 상상도 못할 상황입니다. 이제 그 유골이 발각이 되면 증거가 분명히 보이잖습니까? 그래서 증거 인멸하기 위해서 화장실 안에 변기에다가 재를 갖다가 버려서 물로 씻어버린 겁니다."

    지씨를 살해하고 시신마저 불태워 없앴지만 이들의 범죄행각은 계속됐습니다.

    납치 12일 만인 10월 30일 지씨 부인 최모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몸값 8백만 페소, 약 1억 8천만 원을 요구한 겁니다.

    범인들이 최씨에게 보낸 실제 문자 메시지 내용입니다.

    '8백만 페소를 원하지만 5백만 페소도 괜찮다. 경찰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라. 우리는 당신이 뭘 하는지 알고 있다.'라고 보냈습니다.

    그때까지도 남편의 생사를 알지 못했던 최씨는 서울의 친척들에게 연락해 1억 2천만 원을 구했습니다.

    다음날 오전 10시 범인들이 시키는 대로 차 트렁크에 돈을 넣어두고 근처 식당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30분 후에 차에 돌아와 보니 돈은 사라졌고 범인들의 행방이나 단서는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틀 뒤인 11월 2일 범인들은 다시 문자메시지로 '남편은 무사하다'며 '마지막으로 1억 원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부인 최씨가 '남편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부탁하자 범인들은 앞으로 지켜볼 것이라고 말하곤 연락을 끊었습니다.

    남편의 생사가 걱정된 부인 최씨와 현지 한국대사관은 납치 발생 직후 필리핀 정부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지만, 이때까지 수사당국의 움직임은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수사였습니다.

    지씨의 집 주변의 CCTV를 찾아보면 범인들이 타고 온 차량과 번호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상황.

    또 은행 CCTV를 확인해 보면 ATM기에서 돈을 뽑아간 사람이 누군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필리핀 경찰의 수사 과정은 이상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2580이 단독 입수한 필리핀 경찰의 사건 기록과 수사 일지입니다.

    필리핀 경찰은 사건 발생 일주일 후인 10월 25일 범인들이 검정색 토요타 하이럭스 차량을 타고 왔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차량 번호도 확인했습니다.

    차량이 등록된 소유주 명의는 범인 일행 중 한 명인 마약수사국 경찰관 산타 이사벨의 부인.

    한국 같으면 이때부터 수사가 급물살을 탔겠지만 필리핀 경찰의 수사 속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느렸습니다.

    3일 뒤인 10월 28일에야 산타 이사벨의 부인이 경찰청에 출두해 범행에 사용된 도요타 하이럭스 차량이 자신의 차가 맞다고 확인했고, 다시 8일 뒤인 11월 5일에야 산타 이사벨은 자신의 변호사와 함께 출두해 자신이 도요타 하이럭스 차량을 타고 사건 당일 지씨의 집에 갔다고 진술했습니다.

    필리핀 경찰청이 이 사건을 심각한 납치 감금 사건으로 규정한 건 다시 5일 뒤인 11월 10일.

    그나마 본격적인 조사는 20일 뒤인 12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도 납치된 지씨의 생사조차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필리핀 경찰이 지씨를 구하고 범인을 잡겠다는 의지가 아예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은행 CCTV 수사도 마찬가지.

    범인들이 방문했던 ATM기 네 곳의 CCTV를 모두 확보하는 데 두 달이나 걸렸습니다.

    [김대희 영사/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
    "AKG(필리핀 경찰청 납치수사국)는 좀 늑장 수사를 했어요. 자기들도 상부에 보고를 해야 되고 자기들 변호사가 있습니다. 법무관한테 요청받아서 정식 공문 작성해서 BPI 은행장한테 보내서 거기 허락받아서 CCTV 화면을 떠보겠다. 이렇게 늑장 (수사 때문에) 그래서 답답하죠. 저희들은."

    참다못한 부인 최씨가 변호사들과 상의해 12월에 경찰의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최 OO/지익주 씨 부인]
    "(남편을) 빨리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필리핀 언론이 지씨 납치 사건에 경찰이 연루된 것 같다는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하자 필리핀 경찰청도 그제야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습니다.

    지 씨 납치 사건에 연루된 건 경찰청 소속 경찰관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사건 당일 찍힌 은행 CCTV화면.

    돈을 인출하는 경찰관 산타 이사벨 뒤에 팔짱을 낀 채 지켜보는 사람이 보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제리 오믈랑 NBI, 즉 필리핀 국가수사국 직원들의 정보원으로 밝혀졌습니다.

    NBI는 미국으로 치면 FBI와 같은 조직인데 지 씨 납치 살인사건에 경찰청은 물론이고 연방 경찰들까지 관여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그렌 둠라우 국장/필리핀 경찰청 납치수사국]
    "제리 오믈랑도 NBI고 에빈 파리고 데라도 장례식장에 있던 사람인데 그도 NBI에 있는 사람입니다."

    한국인 사업가 한 명을 납치해 돈을 뜯어내기 위해 필리핀 경찰 조직 두 곳이 함께 작업을 한 겁니다.

    제리 오믈랑은 자신에게 범행을 지시한 NBI 간부 네 명을 지목했고 NBI는 이들을 직위해제 했습니다.

    [김대희 영사/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
    "이 친구(제리 오믈랑)의 고백에 의해 가지고 모든 것이 밝혀진 거야. 보니까는 NBI 수사국장, 그다음에 NBI 부국장, 그다음에 NBI 전문 수사팀장 하여튼 NBI 4명 정도가 지익주 납치 살인 사건에 관련돼 있는데."

    해가 바뀌고 지난달 16일 지씨 납치에 참여했던 경찰관 로이 빌레가스가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빌레가스는 동료인 산타 이사벨이 지씨를 직접 살해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지씨가 납치 당일 밤에 살해됐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진 겁니다.

    납치 90일 만에야 드러난 지씨의 죽음.

    그런데 발레가스가 직접 살해자로 지목한 산타 이사벨은 이를 부인했습니다.

    자신은 죄가 없으며 자신의 상관이자 마약수사국 팀장인 라파엘 둠라오가 지 씨를 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 씨를 체포한 것도 팀장 둠라오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산타 이사벨/지익주 씨 살해사건 용의자]
    "(주차장에) 라파엘 둠라오와 부하들이 왔습니다. 지 씨를 자기가 처리할 거라고 둠라오가 말했습니다. (가정부를 풀어주고 오니) 한국인(지 씨)이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이후 라파엘 둠라오는 자취를 감췄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직접 방송에 등장해 당장 나타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둠라오 이XX. 안 나타나면 정말 죽일 거다."

    잠적했다 다시 나타난 둠라오.

    하지만, 그 역시 결백을 주장하며 모든 건 수하인 산타 이사벨의 범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라파엘 둠라오/지익주 씨 살해사건 용의자]
    "이사벨의 부하를 포함한 모든 목격자들이 이사벨을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진행 상황이 명백해질 것입니다."

    지씨를 납치한 빌레가스와 이사벨의 계급은 말단인 경장 경사 정도에 불과합니다.

    필리핀 경찰은 마약 범죄자를 체포하기 위해 출동할 때는 여러 관계 기관에 통보하게 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필리핀에선 산타 이사벨이 이 모든 사건을 계획하고 주도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군다나 지 씨 살해 사건은 연방 경찰까지 관련돼 있기 때문에 경찰 고위층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사는 아직까지도 경찰청 마약수사국 팀장 라파엘 둠라오 위로는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필리핀 경찰은 둠라오의 체포영장을 신청했지만 영장을 기각돼 그를 체포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산타 이사벨이 엄청난 재산을 축적했다는 사실이 청문회에서 드러났습니다.

    이사벨의 월급은 2만 9천 페소,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67만 원 정돕니다.

    그런데 그는 집 다섯 채, 4층짜리 건물, 토지 세 필지와 여러 대의 자동차 등 모두 4억 6천만 원 상당의 재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평범한 필리핀 직장인은 상상하기 힘든 막대한 돈입니다.

    [산타 이사벨-그레이스 포/필리핀 국회의원]
    "(처음 자본이 어디서 났습니까?) 형수한테서요. (형수가 보험을 하는데) 보험에서는 수수료 기준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업이 커진 겁니다."

    지 씨의 시신을 화장한 뒤 유골을 버린 전직 경찰관 제라도 산티아고는 캐나다로 도망갔다 최근 필리핀에 돌아와 체포됐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혐의를 부인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제라도 산티아고/장례식장 주인]
    "전 죄가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필리핀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캐나다에 그냥 숨었을 겁니다. 변호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이사벨과 산티아고는 경찰 고위층에 숨어 있는 진짜 범인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며 자신들의 신변을 보호해 줄 것을 필리핀 정부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들이 이동할 때는 늘 방탄모와 방탄복을 입고 다니고 있습니다.

    한국인을 납치 살해한 필리핀 경찰들이 이젠 오히려 또 다른 필리핀 경찰을 두려워하며 공포에 떨고 있는 겁니다.

    부패한 필리핀 경찰의 단면입니다.

    필리핀 경찰이 지씨의 사건을 한창 수사 중이던 지난해 12월 말.

    필리핀 경찰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필리핀 경찰관들은 다시 한번 한국 교민의 집을 습격해 한국인들을 납치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습격한 곳은 이번에도 프렌드십 플라자였습니다.

    필리핀 앙헬레스 프렌드십 플라자의 지익주씨 집.

    현재는 텅 비었습니다.

    부인 최 모 씨가 이곳에서 지내기 무섭다며 현재는 마닐라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입니다.

    같은 프렌드십 플라자 안, 지씨 집에서 불과 5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집이 하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까지 박 씨 등 한국인 남성 세 명이 머물던 곳이었습니다.

    지난가을 앙헬레스로 이른바 골프연수를 온 박 씨 일행은 서너 달째 이 집에 머물며 골프를 배우는 중이었습니다.

    [프렌드십 플라자 주민]
    "여기서 나한테 (젊은 사람들이 너무 논다고) 핀잔을 받았다고."

    그런데 지난해 12월 30일 필리핀 경찰 7명이 이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당시 CCTV 영상입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승합차 한 대가 집 앞에 멈춰 섭니다.

    경찰들이 차에서 내려 집에 들어가더니

    잠시 후 한국인들을 체포해 나옵니다.

    한 한국인이 도망가자 권총을 뽑아들고 위협하며 쫓아갑니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 저항해 보지만 여러 명의 힘을 당하지 못하고 강제로 차에 태워집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경비가 왔지만 경찰인 걸 알고는 그냥 돌아갑니다.

    이들은 돈, 신발, 가방, 금붙이와 스피커까지 빼앗았습니다.

    이들은 박씨 일행을 경찰서로 데려가 유치장에 가뒀습니다.

    그리고 돈을 요구했습니다.

    박씨 일행은 아는 한국인들에게 약 700만 원을 빌려 경찰에게 줬고 불법 구금 8시간 만에 풀려났습니다.

    이 일 직후 박씨 일행은 서둘러 귀국했습니다.

    이 사건 역시 그냥 묻히는 듯했지만

    지익주씨 살인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되면서 함께 부각됐습니다.

    델라로사 필리핀 경찰청장은 사건 발생 한 달이 넘게 지난 지난 1일 문제의 경찰관들을 찾아가 거친 욕설을 쏟아냈습니다.

    [델라로사/필리핀 경찰청장]
    "한 짓이 너무 심각하고 정말 창피하다. XX. 이번이 몇 번째야. 한국인을 몇 번째 체포한 거야?"

    그러고는 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기합을 줍니다.

    [델라로사/필리핀 경찰청장]
    "엎드려. 한 손을 다른 손 위에 올려"

    이 와중에도 한 경찰관은 잘못한 게 없다고 변명을 합니다.

    [앙헬레스 경찰관]
    "적법한 단속이긴 했는데."

    [델라로사/필리핀 경찰청장]
    "적법했다고? 그럼 돈은 왜 빼앗았어? (한국) 관광객들을 왜 때렸어? 세상에 이런 ‘적법’이 어딨어?"

    하루 뒤 2580 취재진이 이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이곳의 책임자에게 경찰청장에게 공개 망신을 당한 해당 경찰관들은 어떤 징계를 받았을까?

    [롤란도 도로자 수사팀장/앙헬레스 경찰서]
    "돈을 빼앗은 7명의 경찰들은 경찰 본부 안에서만 근무합니다. 그들은 경찰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관광객을 납치해 강도질을 했는데도 내근을 하도록 조치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교민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앙헬레스 교민]
    "그게 말이 됩니까? 범죄를 저질렀으면 체포를 해서 감옥에 보내야지 '이 나쁜 놈아'라고 소리 지르고 카메라 앞에서 소리 지르고. 엎드려뻗쳐 시켜서 팔굽혀펴기시키고. 코미디죠. 그냥 쇼를 하는 거죠. 쇼. 보여주기 위한 쇼."

    필리핀에서 한국인의 별명은 '마사랍 코리안'입니다.

    마사랍은 '맛있다'는 뜻의 필리핀어입니다.

    한국인에게 돈을 뜯어내기 그만큼 쉽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ATM기로 불리기도 합니다.

    [롤란도 도로자 수사팀장/앙헬레스 경찰서]
    "한국 사람들은 여기 휴가 와서 돈을 많이 씁니다. 바에 가면 돈을 나눠주는 게 기본입니다. 사실 모두에게 돈을 주는 것 같아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필리핀에 온 한국 관광객들은 대개 돈을 잘 씁니다.

    이 때문에 한국인은 모두 부자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또 문제가 생겼을 때 한국인들은 정상적인 방법보다 뒷돈을 주고 해결해 왔습니다.

    이를 본 부패한 경찰과 공무원들이 한국인을 상대로 문제를 만들어 돈벌이로 삼는 겁니다.

    이렇게 경찰이나 공무원이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체포해 겁을 주고 돈을 빼앗는 범죄를 필리핀에선 '셋업'이라고 부릅니다.

    필리핀 마닐라에 사는 김 모 씨도 3년 전 셋업을 당했습니다.

    [김 OO/셋업 피해자]
    "느닷없이 누군가가 저를 잡은 거예요. 아무런 말도 없이. 저를 그 사람들은 둘러메고 차에다가 무조건 집어넣더라고요. 제 딴에는 경찰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고. 누가 납치하려 하나 나를."

    차 안에선 두 시간 동안 전기 고문이 계속 됐다고 합니다.

    [김 OO/셋업 피해자]
    "굉장히 고통스러워요. 그 지지는 동안에. 소리를 버럭버럭 지를 정도로. 어느 정도였냐 하면 하도 괴로우니까 옆에 사람을 끌어안았단 말이에요. 끌어안으니까 옆에 있던 경찰 녀석까지도 아아악 할 정도였으니까요."

    김씨를 체포한 사람들은 지방경찰청 경찰관들이었습니다.

    [김 OO/셋업 피해자]
    "'돈을 1밀리언(2300만 원) 준비해라' '없다' '얼마까지 준비할 수 있겠느냐' '없다' 제가 그 당시에 겁이 없었던 거죠. 내가 니들한테 돈을 주느니 차라리 죽고 만다."

    김씨가 끝까지 버티자 경찰은 김씨를 마약판매범으로 엮어 재판에 넘겼습니다.

    [김 OO/셋업 피해자]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내가 한국 사람들을 많이 잡아 봤지만 너같이 돈 없다고 끝까지 버티고 돈 안 주는 사람은 처음이다'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김씨는 유능한 변호사를 쓰고, 담당 영사의 도움을 받은 덕에 지난해 3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지 2년 만이었습니다.

    필리핀에서 취재를 진행하는 도중 2,580팀은 뜻밖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아무 죄 없는 한국인 가정주부가 또다시 필리핀 경찰에 체포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취재진은 사실을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앙헬레스에 있는 광역수사대.

    체포된 주부 박 모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박 OO/필리핀 앙헬레스 거주]
    "아기 너무 많이 보고 싶고요. 저 좀 꺼내 주세요. 저 여기 감방에서 너무 무섭고요. 감옥에서 감옥에서 진짜 꺼내주세요. 저 너무 무섭고 진짜 살 수가 없어요."

    세 아이의 엄마인 박씨는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 나오다 끌려왔다고 했습니다.

    집에 찾아가 봤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있던 박씨의 어머니는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김 OO/박 OO 씨 어머니]
    "환장하죠. 그러니까 환장하죠. 딸이 왜 협박을 해. 딸이. 자기들이 사기 쳐 가지고 우리한테 돈 다 뜯어가 놓고. 그냥 애들하고 살려고 왔는데 우리가 협박을 왜 해요."

    박씨의 체포 사유는 살해 협박.

    살해 협박을 당했다며 그녀를 고소한 사람은 칼마 벤쓰라는 이름의 필리핀인인데, 박씨가 살고 있는 화랑빌이라는 한국인 마을을 지어 분양한 회사의 대표입니다.

    칼마의 고소장을 보면 지난해 7월 12일 박씨가 남자 두 명을 데리고 화랑빌 사무실로 쳐들어와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으면 살해하겠다'며 유창한 영어로 협박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인 백모씨가 칼마의 말이 맞다고 증언했습니다.

    백씨 역시 같은 회사의 직원입니다.

    다른 직원 장 모 씨도 박씨가 자신들을 협박했다고 합니다.

    [장 OO/화랑빌 개발회사 직원]
    "네 협박이나 어떻게 보면 위협적인 행동이죠. (위협적인 행동은 또 뭘 했어요?) 쉽게 말하면 그거잖아요. 가만 안 있겠다. 너희들을 감옥에 보내겠다. 말과 굉장히 거친 행동이겠죠. (거친 행동이 뭐냐고요. 뭘 집어던졌어요?) 삿대질을 하고 눈을 부릅뜨면서."

    하지만, 박씨는 사실이 아니라며 펄쩍 뜁니다.

    [박 OO/필리핀 앙헬레스 거주]
    "필리핀 사람한테 제가 무슨 영어도 할 줄 모르고 따갈로그어도 못 하는데 그 사람한테 어떻게 죽인다고 살인 협박을 하겠어요."

    박씨가 영어를 못하는 게 맞는지 화랑빌 측에 물어봤습니다.

    [장 OO/화랑빌 개발회사 직원]
    "(박 OO 씨가 영어를 못해요?) 전혀 못합니다. (전혀 못해요?) 네. 테이블이 영어로 뭡니까 하는 사람입니다. (이 고소장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Ms Park shouted at me in very loud. 'You f****** s*** I will kill you if don't.영어 못한다면서요?) 한국말로 욕한 거를 그대로 번역됐다고 제가 볼 때는 이게 쉽게 말하면 서류상 약간의 실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이 유창한 영어로 살해 협박을 했다는 이해할 수 없는 얘기.

    이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박씨는 화랑빌로부터 1억 5천만 원에 땅과 집을 샀습니다.

    화랑빌 측도 그렇다고 말합니다.

    [장 OO/화랑빌 개발회사 직원]
    "박 OO 씨가 산 땅은 분양평수는 130평이었고요. 실제로 공유 면적을 뺀 면적은 91평입니다."

    그런데 고소장에는 집을 산 게 아니라 박씨와 칼마가 서로 마음이 맞아 동업을 했고 박씨가 월세 6만 페소에 집을 빌렸다고 돼 있습니다.

    [장 OO/화랑빌 개발회사 직원]
    "(매달 6만 페소를 월세로 내기로 했어요?) 그거는 벤쓰(칼마)하고 박**하고 어떤 계약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 집값을 다 냈는데 6만 페소를 또 내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잔금 지급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아니 그게 무슨 얘기에요? 집을 내가 돈 주고 산 내 명의의 집을 월세를 왜 내요?) 아니요. 쉽게 말하면 잔금이 안 끝나서 그 사람 집이 아닙니다."

    고소장을 거짓으로 작성한 겁니다.

    박 씨가 살해 협박을 하긴 한 걸까?

    이날 있었던 박씨와 화랑빌 개발회사 측 간의 실제 대화 내용입니다.

    박씨는 이날 자신을 도와줄 두 명의 지인을 데리고 화랑빌 개발 회사의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화랑빌 개발회사 관계자/박 OO 씨 녹취, 지난해 7월 12일]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한국분이세요?"

    상호 동의하에 서로 녹음도 했습니다.

    [화랑빌 개발회사 관계자/박 OO 씨 녹취, 지난해 7월 12일]
    "(제가 중간에 끊어서 죄송합니다. 이게 또 이설이 있을까 봐 동의하에 녹취를 좀 했으면 합니다.)좋아요. 예. 예."

    박 씨는 약 한 시간 동안 대화에서 필리핀 사람인 칼마에겐 단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개발 회사의 실질적인 주인인 한국인 배 모 씨에게만 얘기를 했습니다.

    [화랑빌 개발회사 관계자/박 OO 씨 녹취, 지난해 7월 12일]
    배 OO: 지금 이거 나한테 요구 사항을 다 했는데 이걸로 인해서 박 OO 씨한테 피해가는 게 있습니까?
    박 OO: 피해라기보다 회장님 저는 이 빌리지라고 샀는데 빌리지라는 허가를 시청에 여기 빌리지가 없는 걸로 제가 알기로는 돼 있어요.

    박씨는 자기가 산 땅과 집이 필리핀 법과 절차상 문제가 없는지 회사 사무실을 찾아가 묻고 관련 서류를 달라고 요구했던 겁니다.

    거짓 고소라는 증거가 이렇게 명백한데 박씨는 어떻게 체포가 된 걸까?

    박씨는 땅과 집값으로 회사 측에 1억 5천만 원을 보낸 내역과 녹음 파일을 필리핀 검사에게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필리핀 검사가 작성한 서륩니다.

    송금 내역 외에는 박씨가 화랑빌에 집을 샀다는 걸 입증할 만한 서류가 없다며 박씨가 칼마와 동업한 걸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제출한 녹음 파일에 대해서는 번역을 믿지 못하겠다며 설사 번역이 정확하다 하더라도 파일이 편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반면 칼마 측의 고소 내용은 모두 사실로 보인다며 박씨에 대한 체포 영장을 신청해 발부받았습니다.

    [조 OO/박 OO 씨 친구]
    "그 검사가 박 OO씨를 조사도 한번 개인적으로 한 적이 없어요. 그 판사도 역시 검사 말만 듣고 일괄적으로 아무런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박 OO 씨를 영장을 내린 겁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영장이 발부된 건 지난달 31일 화요일.

    그런데 경찰은 3일을 기다렸다.

    지난 3일,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 6시에 그녀를 체포했습니다.

    한국대사관과 변호사에게 연락해도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보석 신청도 불가능한 시간에 체포한 겁니다.

    [조 OO/박 OO 씨 친구]
    "이 나라 필리핀 법정이 금요일 6시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문을 닫는 거를 알고 이 경찰서에서 고생을 더 많이 하라고 일부러 금요일 날 6시에 구속을 하는 겁니다."

    박씨를 체포한 경찰서는 CIDG.

    마약과 살인 사건을 전담하는 경찰서로 한국 경찰로 치면 광역수사대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아주 이례적으로 박씨에 대한 고소 사건을 접수해 처리한 겁니다.

    [조 OO/박 OO 씨 친구]
    "너무 이상하죠. 누가 봐도 이상해. 이게 말이 안 돼 이게. 필리핀에서 정상적으로 저희 같은 사람이 CIDG에 와서이랬다고 (고소 사건을 접수시키겠다고) 하면 웃죠. 그 사람들이."

    취재진이 박씨를 만나기 위해 앙헬레스의 CIDG를 찾아가자 여러 교민들이 화랑빌 개발회사에 사기를 당했다며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송 OO/앙헬레스 교민]
    "(화랑빌에) 돈은 다 줬는데 물건은 안 줘요. 비싸게 받는 건 제가 이해를 하겠는데 물건을 안 줘가지고."

    취재진이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화랑빌의 사기 내용을 고발하겠다는 제보가 쇄도했습니다.

    [이 OO/화랑빌 피해자]
    "(7억이 넘는 돈을 사기당하셨죠?) 네 정확히는 지금 현재 법적 대응 중이고요. (고소하셨어요?) 네 지금 현지는 되어 있습니다."

    [주 OO/화랑빌 피해자]
    "(계약금 돌려받으셨어요?) 아니 못 돌려받았죠. 왜 우리가 줘야 되냐고. 뭐 그쪽(화랑빌)은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거예요."

    주부 박씨는 체포 직후 영사협력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영사 혼자서 많은 교민을 모두 보호하기는 힘든 일.

    그래서 정부는 교민 중에 영사협력관을 뽑아 영사를 돕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영사협력관은 박 씨의 체포 사실을 영사에게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박씨는 코리안 데스크에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코리안 데스크는 한국 정부가 필리핀에 파견한 한국 경찰관들로 필리핀 경찰을 도와 한국인 범죄자를 체포하고 한국 교민을 보호하는 업무를 수행합니다.

    코리안 데스크 이 모 경감이 박씨에게 보내온 답변 문자 내용입니다.

    '박씨는 체포영장에 의한 적법한 체포가 맞'다며 '소송을 통해 해결할 일이지 자기가 하는 게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이 경감 역시 무슨 이유에선지 박씨의 체포 사실을 영사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김대희 영사/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
    "자기는 '이건 뭐 별로 대수롭지 않아 가지고 제가 영사한테 안 알렸습니다.' 그런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할 말이 없더라니까요."

    이 경감은 박 씨의 체포 사실을 듣고는 박씨를 찾아간 게 아니라 화랑빌 회사 직원을 불러 회사 측의 설명부터 들었다고 합니다.

    [박 OO/필리핀 앙헬레스 거주]
    "자기가 찔리는지 (화랑빌 직원을 만났다고) 먼저 얘기했어요. 너무 어이가. 딱 와서 (제) 얼굴 한번 보고 그냥 가고. 한패라는 느낌밖에 안 드는."

    박 씨는 다행히 체포 4일 만인 지난 7일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런데 다음날인 8일 앙헬레스에 살던 한국인 김 모 씨가 이민국 직원들에게 체포돼 마닐라에 있는 이민국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한국 여권이 말소됐다는 사소한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김씨 역시 화랑빌의 피해자들을 돕고 있었습니다.

    [김 OO/이민국 수용소 수감]
    "이상하죠. 이거는 어린 애들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그 사무실하고 '배'라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배 회장은 (한국에서 사기로) 기소 중지되어 있고 사건이 되어 있는데 잡아가지도 않고 저렇게 놔두는 이유가 뭔가요? 지금 교민들이 이렇게 난리 치고 있는데도. 그렇지 않습니까?"

    필리핀 경찰관들은 한국인을 마구잡이로 체포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일이 잇따랐고 그때마다 언론과 시민들은 정부의 대책을 촉구해왔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우리 정부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요?

    10년 전 주 필리핀 한국대사관은 비자 발급 업무를 중단했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의 한국 입국을 막아버린 겁니다.

    문제의 발단은 필리핀 이민국의 표적 단속이었습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만 골라 단속했고 이를 자랑하듯 방송까지 했습니다.

    [필리핀 이민국 직원/2007.08.12 <마사랍 코리안>]
    "장사에 필요한 구비 서류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 없다면 이민국으로 연행하겠다."

    필리핀 현지어를 알아듣지 못해 체포된 교민도 있었고 금품을 갈취당한 교민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항의로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겁니다.

    이를 결정한 홍승목 당시 공사는 블로그에 '한국인들이 부패 공무원들에게 희생되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고 적었습니다.

    필리핀 정부는 처음엔 반발했지만 결국 한국 정부에 사과했습니다.

    부패한 공무원들 때문에 필리핀 국민들이 한국에서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됐다며 비난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입니다.

    [마르셀리노 리바난 당시 필리핀 이민국장/ 2007.08.12 <마사랍 코리안>]
    "우리 이민국은 내부 개혁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겠다."

    값진 외교전의 승리였지만 이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수없이 많은 셋업 사건이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못 본 척하거나 셋업된 자국민을 범죄자로 몰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2580에 보도됐던 김규열 선장 사건입니다.

    [故 김규열 선장/ 2013.01.20 <셋업에 당했다.>]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그런 것밖에 없습니다. 제가 왜 살아야 되냐면 이대로 죽으면 안 되잖아요. 이대로 죽으면 제가 너무 억울합니다. 너무 억울해."

    그는 2009년 마약판매 혐의로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마약을 팔았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고 재판과정에서 필리핀 경찰들이 증거를 조작했다는 게 밝혀져 크게 이슈가 됐지만 우리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 선장은 2013년 12월 병에 걸려 필리핀 감옥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박준연씨는 여러 차례 셋업을 당했습니다.

    필리핀에서 콘도와 호텔을 운영하며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여행 상품을 파는데 영업 수완이 좋은 그가 사업을 좀 일으키면 경찰이나 이민국 직원이 그를 체포하고 그사이 필리핀 사람들이 그의 사업을 가로채갔습니다.

    [박준연/셋업 피해자]
    "뭐 12년 가까이 제가 여기서 일궈 놓은 어떤 비즈니스 터전을 다 잃은 거죠. 금전적인 거나 어떤 모든 걸."

    2011년 이민국에 체포가 됐을 당시 담당 영사는 빨리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이라며 한국인 한 명을 소개시켜 줬다고 합니다.

    [박준연/셋업 피해자]
    "영사가 그분을 모시고 온 거예요. 그리고 그분이 박준연 씨를 많이 도와주실 분이다. 이 나라 이민국하고 그다음에 NBI 경찰 쪽에는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계신 분이래요."

    박씨는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그의 말을 믿고 20만 페소를 줬습니다.

    영사가 소개해 준 사람이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뒤 연락이 끊겼습니다.

    [박준연/셋업 피해자]
    "(해결이) 안 됐습니다. 안되니까 연락도 안 돼요. 거의 45일간 두 달간 연락이 안 돼요. 신호는 가는데 안 돼요."

    영사가 브로커를 소개해 준 겁니다.

    정부와 영사의 태도가 이러니 교민 보호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한국 교민들은 유독 한국인만 셋업 범죄를 많이 당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한 OO/필리핀 마닐라 거주]
    "나라에서 대응을 안 해 주시니까 아무래도 필리핀 사람들도 더 쉽게 생각하지 않을까. 제가 보기엔 한국 사람이 제일 만만하지 않나."

    [서 OO/셋업 피해자]
    "(필리핀 공무원들이) 일본 중국 애들은 (셋업) 못해요. 한국 애들만 그러고 있지."

    한국인은 셋업해도 뒤탈이 없다는 인식이 필리핀 경찰과 공무원들에 사이에 퍼져 있는 게 가장 큰 문젭니다.

    [이재현/선임연구위원 아산정책연구원]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를 경우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시 잡혀서 처벌된다라는 인식이 생겨야 될 거 같아요."

    중국과 일본은 강경대응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겁니다.

    [서 OO/셋업 피해자]
    "이 일본 교포들, 중국 교포들이 결탁을 잘해서 항상 어떤 식으로 간에 보복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기 자국민이 그런 일에 관계가 됐다면 그렇게 꼭 그와 비슷한 불이익을 주는."

    필리핀 경찰관에게 한국 정부의 강력한 조치가 있다면 셋업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지 물어봤습니다.

    [롤란도 도로자 수사팀장/앙헬레스 경찰서]
    "예 효과가 있을 거 같습니다. 정부 대 정부로 얘기한다면."

    지익주씨 살해 사건이 알려지자 두테르테 대통령은 직접 한국에 사과했고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습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필리핀 대통령(지난달 26일)]
    "여러분의 동포가 죽은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범죄자들은 최대한의 처벌을 받게 될 거라고 약속드립니다."

    하지만, 그는 경찰청장의 사표를 반려했고 아직 경찰 조직 내 누구에게도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적극적인 사과와 외교적 제스처에 우리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두테르테 대통령은 최근 태도를 바꿔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언론이 지씨 살해 사건의 배후에 한국 범죄 조직이 있다는 근거 없는 보도를 시작하자.

    [필리핀 GMA뉴스/지난 4일]
    "한국 마피아가 한국 사업가 지익주 씨 납치와 살해에 연루됐을 수 있다고 합니다."

    두테르테는 기다렸다는 듯 한국 범죄자들을 사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필리핀 대통령]
    "한국 정부에는 실례되는 얘기지만 세부에서 마약과 매춘을 하는 사람은 그(한국) 사람들이다."

    부패한 경찰들에게 마약사범을 사살해도 좋다고 사실상의 살인 면허를 준 것도 무고한 지 씨가 살해된 한 요인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한국 범죄자를 사살하라는 지시를 받은 부패한 경찰들이 한국인들을 상대로 무슨 일을 벌일지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외교부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이 왜곡돼 보도된 것이라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태훈 과장/재외동포영사국 재외국민보호과]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필리핀 범죄자들과 똑같이 대하겠다. 이런 취지에서 말씀하신 걸로 이해 되고요. 특별히 우리 한국 사람을 염두에 두고 사살 경고라든지 이렇게 된 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너무나 많은 한국인들이 필리핀에서 죽거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돈을 얼마나 뜯겼는지 모릅니다.

    그때마다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사실상 이를 방관해 왔고, 그 결과 유골조차 찾지 못하는 끔찍한 납치 살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현지 교민 20만 명에 한해 한국인 관광객 1백만 명 필리핀에서 더 이상 마사랍 코리안, '맛있는 한국인'이라는 말이 들리지 않도록 필리핀 정부를 상대로 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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