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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정영훈 기자

1년 새 8명...집배원 잔혹사

1년 새 8명...집배원 잔혹사
입력 2017-02-20 11:00 | 수정 2017-02-2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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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충남의 한 원룸에서 40대 집배원이 돌연사했습니다.

    업무량이 많아 신혼인데도 아내와 떨어져 우체국 앞에 원룸을 구해 홀로 지내왔던 집배원은 휴일에도 출근해 우편물 분류작업을 했고, 평일에는 최근 결원된 동료의 구역까지 책임졌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지난해 6명의 집배원이 특이한 지병이 없는데도 업무 중 사망했고 올해에만 두 명이 숨지는 등 집배원들의 ‘죽음의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집배원 1인당 하루 배달량은 2천 통.

    시골 집배원은 하루 100km를 넘게 달려야 합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들에게 일찍 출근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지만 집배원들은 인력 부족으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우체국에선 새벽에 나와 일을 하더라도 초과 근무 대장을 작성하지 말라는 부당 지시까지 내려졌다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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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충남 아산의 한 빌라에서 44살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근처 우체국에 근무하는 조만식 씨, 15년차 집배원이었습니다.

    [이원 집배원/충남 아산 영인우체국]
    "문을 개방하고 강제로 그렇게 들어가 보니까 이렇게 침대에 누운 채로 그냥..."

    조 씨의 사인은 동맥경화에 따른 심정지.

    돌연사할 경우 흔히 나타나는 사인입니다.

    조씨는 숨지기 전날, 일요일에도 출근해 일했다고 합니다.

    [OOO 집배원]
    "돌아가시기 전에 일요일 날도 나오셔서 편지 구분을 하셨어요. 그거 때문에 나오셔서 배달할 편지를 순서 잡기 위해서 나오셔가지고 일을 하시다가."

    조씨는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미지급된 수당 반환 소송을 내는 등 집배원의 열악한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일에도 남다른 애착을 보였던 터라 남은 동료의 가슴에는 더 묵직한 상처가 남았습니다.

    [김일환 집배원/충남 아산 영인우체국]
    "우리 힘든 이 상황을 이 기회에 알려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기회도 없어요. 사실 만식이가 우리한테 이런 기회를 줬어."

    요즘 세상에 종이로 된 편지 배달할 일이 그리 많겠나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 우편물은 줄었지만 수취인을 직접 만나야 하는 등기와 택배는 늘어나면서 업무의 강도는 더 세졌다는 게 집배원들의 얘깁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과로를 호소하며 쓰러지고 숨지는 집배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조 씨가 살던 집에서 유품을 정리하는 유족들.

    [OOO 故 조만식 집배원 부인]
    "요즘 행복하다고 너무 좋게 있다 간다고 갔는데 그 다음 날 그랬다고 하니까 장난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숨진 조 씨는 마흔셋에 늦장가를 든 새신랑이었지만 아내와 떨어져 이곳에서 혼자 월세로 살았습니다.

    신혼집은 우체국에서 4,50분 떨어진 거리라 매일 아침 7시까지 출근하고 야근과 주말근무를 밥 먹듯 해야 하는 조씨에겐 출퇴근 시간을 아끼는 방법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청소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어수선한 집안.

    [조영욱/故 조만식 집배원 형]
    "치울 시간도 없고 씻을 시간도 없고 그냥 힘드니까 바로 그냥 누워 자고 눈 뜨면 바로 나오고 그런다고."

    유족들은 평소 조 씨가 지병이 없었다며 과로사로 보고 있습니다.

    [조영욱/故 조만식 집배원 형]
    "그 영정사진 보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살이 좀 있었는데 저렇게 마른 지를 몰랐어요. 좀, 그래서 더 안타깝고 마음이 좀 심란하더라고요."

    조 씨의 근무시간 내역도, 마지막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조차 선뜻 내주지 않았다는 우체국 측의 태도에 의혹은 더 커졌습니다.

    동료 집배원들도 최근 2명의 집배원이 몸이 아프거나 다쳐 결원이 생기면서 업무 강도가 더 세졌다고 말합니다.

    [A 집배원]
    "이거 지원을 받아야 된다. 저희는 안 그래도 힘든데 지금 두 명이 이렇게 됐다, 그걸 또 우리가 메꾸다 보면 또 한 명이 사고가 터질 것이다. 우리끼리 메꾸다 보니까 결국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양이 많다고 해서 내일로 미룰 수가 없는 게 이 업무의 기본 특성.

    조씨가 스스로 일요일에 출근한 건 이유가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A 집배원]
    "오늘 100개를 못해버리면 내일 200개가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만식이 형도 일요일 날 나오고 싶어서 나왔겠습니까?"

    [B 집배원]
    "만식이 형님이 말씀하셨듯이 이건(집배원은) 종합 예술인이다. 신문, 책자, 우편, 민간 카드회사에서 오는 카드도 해야 되죠. 또 택배, 택배도 해야죠."

    조 씨보다 앞서 심근경색으로 죽음 문턱까지 갔다 온 동료 집배원을 만났습니다.

    조 씨 얘기를 꺼내자마자 오열합니다.

    [김 OO 집배원]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해야 되니까 다 똑같아요. 집배원들은, 별거 아니면 진짜 다리 부러져서 뭐 진짜 독감 독하게 걸리든지 진짜 누워 있지 않은 한 다 나오는 거예요, 다 똑같아요. 직원들 마음이."

    집배 노조원들이 상복을 입고 우정사업본부 앞에 모였습니다.

    "집배원 다 죽이는 우정사업본부 박살 내자."

    조만식 집배원 등 잇단 사망사고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김재천/사무국장 전국집배 노동조합]
    "살인기업 우정사업본부, 그것을 방조하면서 조장하는 수장, 이 박자가 모두 맞아서 9명의 집배원은 죽은 게 아니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난달 31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 아파트.

    우체국 택배차량에서 물건을 내린 남성이 경비실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119구급차가 도착하고 곧이어 이 남성은 들것에 실려 나옵니다.

    우체국 택배를 배달하던 50대 안 모 씨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경비원에게 배달 확인 서명을 받던 중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OO아파트 경비원]
    "(택배에)동호수 적다가 쓰러진 거예요. 딱 보니까, 이렇게 해서 쓰러졌어요. 깜짝 놀랐죠! 놀라도 엄청 놀란 거죠."

    안 씨의 사인은 심근경색.

    유가족들은 안 씨가 최근 2년 새 병원 진료를 받은 기록도 없다며 과로사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직원들이 지병이 있었다는 근거 없는 말을 퍼뜨리며 과로사가 아닌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안 OO 유가족]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 그렇게까지 몰아세우는 자체가 저희들은 너무 뭐라 그러죠? 서운하죠, 서운하다 못해 이제는 뭐냐하면 조금 괘씸하다고 할까요?"

    지난 1년 새 모두 9명의 집배원이 숨졌습니다.

    이 가운데 7명은 흔히 돌연사로 불리는 뇌 심혈관계질환으로 사망했습니다.

    특히 모두 전조 증상 없이 갑자기 쓰러졌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2580은 집배원의 일상을 뒤쫓아 봤습니다.

    좁은 산길을 부지런히 오가는 오토바이.

    급경사가 많고 눈까지 쌓인 언덕길은 위험천만합니다.

    24년차 베테랑 집배원인 정창수 씨에게도 버거운 일입니다.

    [정창수 집배원/경기도 파주 문산 우체국]
    "부러지고 골절되는 것들이 기본이죠. 그런 상황에서 겨울에 배달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런데 어쨌든 고객들하고 약속이라."

    천 개 가까운 우편물을 모두 배달하려면 쉴 틈이 없습니다.

    [정창수 집배원/경기도 파주 문산 우체국]
    "부족하죠! 빠듯해요. 그러니까 집배원들이 밥도 안 먹고 일하는 거를 우정사업본부는 잘 몰라요. 그러면서 휴게 시간 얘기하고 점심시간 보장해달라 그러면 일도 없는 데 무슨 소리냐고 얘기하고."

    올해로 18년 경력인 조경훈 집배원.

    오토바이를 타고 부지런히 주택가를 누비지만 잇단 동료들의 사망 소식에 불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조경훈 집배원/인천 계양우체국]
    "내일도 모레도 오늘도 살아있구나 하는 그런 안정감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것이 너무 부족하니까."

    더구나 작년부터는 토요일 택배까지 시작돼 일은 더 많아졌습니다.

    조 씨가 이날 배달한 우편과 등기, 택배물량은 천4백여 개.

    [조경훈 집배원/인천 계양우체국]
    "점심 먹을 시간이 거의 있지 않아요. 단지 한 5분, 10분의 시간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저 같은 경우는 거의 거르다시피 하는 게 대부분이고."

    우정사업본부가 정해놓은 집배 업무 표준시간을 봤습니다.

    표준시간이란 집배원의 오토바이 우편물 함에서 고객에게 우편물 한 개가 전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평균으로 계산한 겁니다.

    이런 계산으로 저 중량 소포는 개당 30.7초, 고중량은 49초. 일반우편물은 1통당 2.1초로 정해놨습니다.

    [조경훈 집배원/인천 계양우체국]
    "본부장님이든 청장님이든 내려오셔서 실질적을 저희들이 배달하는 거를 다 따라다녀 보셔야 돼요. 그런 데이터 상으로만 사람들을 조이고 조이고, 조이는 결과가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거죠."

    과로사 논란이 거세지자 우정사업본부는 얼마 전 불필요하게 일찍 출근하지 말라는 내용의 지침을 전국 우체국에 내려보냈습니다.

    집배원들은 일이 쌓여 있는데 어떻게 일찍 안 나오느냐며 우정사업본부가 탁상행정으로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심양안 부위원장/전국우체국노동조합(지난 15일)]
    "우정사업본부는 뚜렷한 대책은커녕 집배원들에게 출근을 늦게 하라 지시하고 감추려는 모습만 보이고 있습니다. 정녕 우정사업본부는 모든 집배원들이 죽어나가야 정신을 차릴 것입니까, 더 이상 죽음을 없어야 합니다."

    그러자 일부 우체국에선 일은 처리해야겠고, 본사의 지침도 따라야 하다 보니, 집배원들에게 일찍 나오더라도 기록은 남기지 말라는 지시까지 했다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최승묵 위원장/전국집배노조합(지난 15일)]
    "출근을 해도 등록을 못 하니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찍 출근해야만 하는 현실을 고의로 외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과로로 돌아가신 집배 인력에 대한 모욕입니다."

    우정사업본부는 2015년 시민단체 등에서 '업무 중 사망사고 건수'를 기준으로 선정한 이른바 '살인기업' 4위에 올랐습니다.

    공사현장이 많은 대형건설사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순위입니다.

    작년 7월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표한 초과근로 실태조사에서 집배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5.9시간,
    연평균 노동시간은 2,888시간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반 근로자보다 1년에 평균 621시간, 매주 12시간씩 더 일한 셈입니다.

    [김형렬 교수/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노동 강도가 아주 센 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심혈관 질환에 대한 위험이 증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집배원의 경우는 노동시간도 길지만 실제 단위 시간당 노동 강도도 엄청나게 강한 그런 업무라서."

    그러나 우정사업본부는 자체 조사결과 집배원 연간근로시간은 2,531시간, 월 초과근무 시간은 50시간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또 우편 물량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지만 집배 인력은 최근 5년간 4백여 명 늘렸다고 강조했습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
    "나 자신보다는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될 입장이 필요한데, 요새 젊은 사람들은 그런 게 많이 부족한 거 같더라고."

    김경록 집배원을 만난 건 장례가 끝난 지 일주일 뒤였습니다.

    故 조만식 집배원이 김 씨에게 처음 일을 가르친 선임자였습니다.

    자신에겐 늘 우상이었던 선배였지만 같은 길을 걷고 싶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김경록 집배원]
    "(형님 같은 집배원이 되고 싶으신 거죠?) 솔직히 말하면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형님처럼 바보처럼 그러고 싶진 않아요."

    2580이 만난 집배원 대부분은 아파서 병원에 다니는 호사를 누려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또, 동료가 숨지면 다음 차례는 내가 아닐까 불안하다고 합니다.

    이들의 업무환경에 대한 철저한 조사는 더 미룰 수 없는 일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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