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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노경진 기자

'미니멀라이프' 버리고 얻은 삶

'미니멀라이프' 버리고 얻은 삶
입력 2017-02-27 11:13 | 수정 2017-02-2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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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살이로 가득한 집에서 물건을 덜어내고, 단순하고 빈 공간의 여유를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이 인기입니다.

    이른바 '미니멀라이프'. 소유 대신 경험과 가치를 추구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과 만족을 높이는 것.

    서점에선 '정리' '버리기' 등 관련 서적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고, 물건 버린 뒤 사진을 찍어 인증하는 게임도 생겨났습니다.

    1인 가구가 보편화되는 세태와 공유경제가 널리 퍼지는 것도 미니멀라이프가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입니다.

    더 풍요롭고 싶다면 더 비우고 버리라는 사람들의 삶을 찾아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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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관 밖에서부터 생수와 유모차, 온갖 짐들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85제곱미터 방 세 개짜리 아파트로 젊은 부부와 어린 자녀 4가족이 살기엔 좁지 않은 집.

    하지만, 생활공간으론 거실만 사용할 뿐, 아이방엔 장난감과 온갖 교구, 옷들로 가득해 정작 아이들이 놀고 쉴 공간이 없습니다.

    주방 식탁 위에도 식품, 약, 서류들이 두서없이 놓여있어 제대로 밥을 차려 먹기는 불가능.

    옷 방 역시 옷과 화장품이 너무 많아서 어울리는 차림새를 연출하긴커녕 어디에 뭐가 있는지조차 찾아내기 힘듭니다.

    [이정선]
    "저도 버리고 싶은 마음들은 굉장히 많았는데 그걸 쉽게 혼자서 해야 한다는 강박감하고 스트레스들이 있어서 그걸 계속 마음의 짐처럼 들고 있었거든요.(물리적인 짐이었지만 마음의 짐으로) 네 맞아요."

    큰 맘 먹고 정리전문업체에 SOS를 요청했습니다.

    각 방마다 정리전문가들이 배치돼 물건들을 한데 모으고 버릴 것을 골라내고 용도별로 수납하기 시작합니다.

    꼬박 9시간이 걸렸습니다.

    다음날 오전 다시 찾은 이정선 씨의 집.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햇살이 환히 들어오는 쾌적하고 깔끔한 거실.

    제 모습을 드러낸 식탁.

    장난감들을 버리니 아이가 공부하고 놀 수 있는 온전한 아이 방이 생겼습니다.

    옷방에선 이씨의 옷만 100리터짜리 세 봉투를 처분했습니다.

    작년 가을 직장을 그만두고도 쉽사리 버리지 못했던 수십 벌의 정장들이 고스란히 봉투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정선]
    "옷 같은 것들은 사실 예전엔 정장 같은 것 많이 입고 다녔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들보다는 아이들하고 활동하기 편한 옷들 위주로 남기고 몇 가지만 두고서 남긴 거거든요. 사실 그런 것들에 대한 미련은 없었던 것 같아요."

    과감하게 버리고 났더니 오히려 홀가분해지고 앞으로 아이들과 무얼 할지, 자신의 새로운 삶은 어떻게 꾸려갈지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고 합니다.

    [윤선현/정리 컨설턴트]
    "정리된 공간 속에 살다 보니까 '아 그래 그걸 해야겠다'라는 결정이 쉬워지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삶의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제 주변에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버렸더니 오히려 풍요로워지더라'

    종교인이나 일부 자연주의자의 선언만은 아닙니다.

    최소한의 물건만 갖추고 사는 절제된 삶.

    젊은 세대에겐 세련된 생활형태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고

    전문가들은 풍요의 시대에서 가치의 시대로 넘어가는 사회의 한 현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작가 신미경씨가 화장대 서랍을 엽니다.

    비비 크림과 립스틱, 눈썹을 그리는 색조제품과 보습제가 화장품의 전부.

    [신미경]
    "아무도 (화장이 옅어진 지) 모르더라고요. 그냥 '화장 조금 하네!' 그러니까 남들은 의외로 제 생각보다 관심이 없어요. 타인한테. 그리고 화장을 한다고 해도 연예인이 되진 않잖아요. 그래서 포기했더니 그냥 제가 됐더라고요."

    냉장고 역시 혼자 사는 걸 감안해도 매우 단출합니다.

    딱 하루치 먹을 과일과 채소를 다듬어 넣어놓고

    쌀과 장류, 소스류를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게 답니다.

    냉동실에도 국물용 멸치와 들깻가루뿐.

    [신미경/작가]
    "저는 일단 바구니를 안 들어요. 장바구니를. 제 두 손에 못 드는 거는 안 사요. 예컨대 양파도 딱 하나만. 대량으로 사면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 안 먹으면 그거 다 버려야 되는데 ..."

    거실에는 TV를 없애고, 책도 대부분 남을 주거나 버렸습니다.

    옷은 옷걸이를 50개로 맞춰놓고 더이상 늘지 않도록 관리합니다.

    최소한만 갖춰놓고 사는 삶.

    처음부터 이렇게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신씨도 예전엔 그 누구 못잖게 많이 사고 많이 갖는 걸 즐겼는데, 4년 전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면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신미경/작가]
    "물건이 저한테는 되게 스트레스의 요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면 그 물건값을 갖기 위해서 일은 과중되고 물건은 늘어나고 너무 피곤하고 했었는데, 그러다가 건강에 이상이 생겼어요.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대안적인 삶을 고민했어요."

    그렇게 소비를 멈추고, 당장 필요치 않은 물건들을 하나둘씩 처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년째 덜어내고 비우는 생활을 하다 보니 마음도 한결 차분해지고 건강도 많이 회복됐다고 합니다.

    [신미경/작가]
    "실제로 삶이 편안해지고 그리고 예전보다는 많은 스트레스 같은 것들이 좀 많이 사라졌거든요. 집에 일찍 들어와서 뭔가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일찍 잠이 들고 피로를 많이 풀면 다음날 업무에 집중도가 달라지는 것 같긴 해요."

    물건 사는 걸 줄인 대신 여행과 공연처럼 즐기고, 경험하는 데는 과감히 돈을 쓰게 됐습니다.

    "새 옷을 사면 새 화장품을 사면 길어야 딱 일주일 딱 입고 이틀만 나갔다오면 '옛날 옷이네!' 이렇게 되잖아요. 근데 사실 여행은 '아 그때 이런 일도 있었지.' 갑자기 차 마시다 '그때 그것도 먹었지.' 순간순간 계속 살면서 쭉..."

    당장 버리기가 여전히 망설여진다면 일단 눈앞에서 치우는 방법도 있습니다.

    서울 외곽의 한 창고업체.

    기존 창고 개념이 무색할 정도로 하얀 벽에 빨간 문 인테리어가 인상적이고 온도와 습도도 조절됩니다.

    이른바 셀프 스토리지, 개인 창고입니다.

    사물함 크기부터 3.3 제곱미터 한 평 크기 이상의 비교적 넓은 방까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창고문을 열어보니 신발과 가방, 그릇 등 여느 집 구석방이나 다용도실을 차지하고 있을 법한 물건들이 빼곡합니다.

    [김태미 대리/개인창고업체]
    "내가 집에 들어갔을 때 물건이 쌓여 있고 꽉 찬 느낌보다는 그래도 좀 더 단순하게 보이길 원하고 내가 필요한 물품만 있길 원해서 불필요한 물건들, 아니면 꼭 그때만 필요한 물건들을 창고에 보관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이처럼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을 놓고사는 삶을 '미니멀라이프'라고 합니다.

    검정 터틀넥 티셔츠에 청바지로 옷차림을 단순화한 스티브 잡스의 모습이 대표적,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집이 무너지고 물건이 떠내려간 극단적인 경험을 겪은 일본에서는 버리기 열풍이 불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물건이 많다고 만족하고, 그득하게 채워놓는 게 행복한 게 아니라는 가치관이 꽤 많이 퍼지고 있습니다.

    서점가에선 '버리기', '비우기' 등의 미니멀라이프 관련서적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있고

    매일매일 물건을 버리고 사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미니멀라이프 게임도 인깁니다.

    [윤선현/정리 컨설턴트]
    "자신의 삶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확실히 구분을 못 한다거나 아니면 뭔가 불안하기 때문에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으로만 그거에 대한 물건을 구입하는 데만 (비용을) 쏟는 분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외양만 화려한 물건들, 벌여놓기만 한 인간관계, 정신없이 끌려가기 바쁜 일상.

    정작 나 자신을 잃기 전에 과감히 정리하고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자는 움직임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준영 교수/상명대학교 소비자주거학과]
    "기본적으로 풍요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그런 물건에만 쫓아서 살던 삶에서 자기가 잃어버렸던 어떤 삶의 가치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을 다시금 또 재발견하려고 하는."

    1인 가구의 보편화도 자연스레 미니멀라이프를 불러왔습니다.

    넉넉지 않은 공간에 이사도 수시로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애초에 많은 물건을 소유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또 장기화된 불황에 고가의 브랜드 제품보단 가성비 좋은 제품을 찾게 된 점, 빌려쓰고 나눠쓰는 공유경제의 활성화도 미니멀라이프를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준영 교수/상명대학교 소비자주거학과]
    "과거에는 브랜드 있는 제품을 소유하고 그걸 몇 개씩 가지고 있다는 것에 굉장히 뿌듯해하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이젠) 제품이 제공하는 혜택이라든가 성능 이런 데에다 초점을 맞추는 거고 자기가 굳이 물건을 소유하려고 한다는 그런 관점은 많이 줄어든다는 거죠"

    물건을 덜어낸 빈자리엔 무엇으로 채우게 될까?

    홀가분함 그 자체를 즐길 수도 있고,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새롭고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하는 이들도 늘고 있습니다.

    박기연, 김창민 부부는 해외의 영어 원어민 교사와 한국 학생들을 연결해주는 전화 영어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직원은 부부 단둘.

    나란히 앉아 업무를 보는 이곳도 이들의 집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불과 여섯 달 전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일을 했고, 아홉 달 전엔 호주.

    재작년엔 캐나다에서 같은 일을 했습니다.

    컴퓨터와 캠코더만 있으면 되는 일이다 보니 인터넷만 되는 곳이면 해외든 서울이든 제주도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이들을 요즘 '디지털 노마드' 즉 '디지털 유목민'이라고 부릅니다.

    [박기연]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나갔을 때 여기는 서울이고 한국이잖아요. 그런데 어떨 때 저희가 외국에 있을 때는 퇴근하고 나오면 다른 나라가 있으니까 그런 게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산책을 하더라도 더 탐사할 부분들이 더 많고..."

    높은 수입, 안정된 주거에 대한 바람은 일찌감치 접었습니다.

    대신 여행을 좋아하는 이 부부는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직업을 택했습니다.

    석 달 전 입주한 월셋집엔 가구도, 살림도 극도로 적습니다.

    눈에 띄는 것이라 봤자 여행용 트렁크 가방 4개.

    결혼식도 따로 올리지 않고 10만 원짜리 조촐한 웨딩드레스를 구입해 입고 다니며 사진 촬영을 한 게 전붑니다.

    그래도 무척 만족한다고 말합니다.

    [김창민]
    "저희는 적게 조금 더 적게 벌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여행을 다닐 수 있고 여가 생활을 즐길 수도 있고 또 운동을 할 수도 있고 그런 시간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안무가 석수정 씨도 함께하는 단원들이 십 수 명이지만, 별도의 작업실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공연이 잡힐 때마다 대학교 연습실이나 지자체의 창작센터 등을 빌려쓰고 단원들과의 회의는 인터넷 채팅과 일정 공유 프로그램 등으로 대신합니다.

    [석수정/안무가]
    "그냥 자기 캘린더 쓰는 거예요. 자기 캘린더 쓰는 거고 저한테 링크를 보내고 제가 이거 공유하겠다 하면 승인해주면 이 캘린더가 그대로 보이는 거거든요."

    노트북만 들고 다니는 단출한 차림새.

    작업실을 구하지 않는 대신 그 비용으로 작품에 투자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입니다.

    석씨의 안무는 올 초 2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첫 국악지원사업으로 선정되는 등 꾸준히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석수정/안무가]
    "수익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험적인 일도 되게 많이 있거든요. (작업실을)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을 좀 아끼고 대신 그 제작비를 작품에 쓰는 거죠. 콘텐츠에 쓰거나."

    많이 벌어 많이 사고 많이 쓰라며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 자본주의가 한계에 부딪힌 요즘 버림으로써 얻게 되는 여유의 행복은 작지 않습니다.

    더 많이 갖기보다 무엇이 내게 더 가치 있는 것인지 미니멀라이프는 가장 단순하고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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