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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공윤선 기자

6천 원 실내화, 검사비가 30만 원?

6천 원 실내화, 검사비가 30만 원?
입력 2017-03-06 10:18 | 수정 2017-03-0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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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언뜻 들으면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법안 하나가 700만 소상공인들을 들끓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전기용품에 한해 의무사항이었던 안전인증이 옷이나 신발, 액세서리 등 '몸에 걸치는 모든 생활용품'으로 확대됐기 때문입니다.

    법의 취지는 좋지만 부작용은 큽니다.

    동대문의 상인이 자신이 파는 물건들의 안전인증 비용을 계산해봤더니 8천 원에 파는 슬리퍼 한 켤레의 검사비용이 27만 8천 원으로 나왔습니다.

    소상공인들은 이처럼 현실을 무시한 법 개정으로 소규모 영세업자들은 모두 길거리로 나앉을 판이라며 격렬히 반발하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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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 브로치에 가죽으로 만든 여권 지갑.

    털실로 짠 가방까지.

    다양한 수제품이 모인 벼룩시장입니다.

    "체인을 달아서 저만의 개성을 표현한 제품이거든요."

    그런데 제품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모두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물건을 팔면 만든 사람이 범법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겁니다.

    [손인혜/수제품 작가]
    "(수제품)사업을 규제하는 법을 만듦으로써 어느 날 우리가 법을 어겼다 이런 상황에 처해진다는게 큰 충격이죠. 그래서 그런 상황을 좀 희화하 하고자..."

    이들을 범법자로 만든다는 법은 바로 지난 1월 28일부터 시행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이른바 '전안법'입니다.

    전안법의 핵심은 전기 제품처럼 생활용품도 안전 인증인 KC 마크를 달고 판매해야 한다는 겁니다.

    옷, 신발, 목걸이 등 거의 모든 가죽, 섬유, 금속 제품들이 적용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법이 시행되자마자 수제품 작가나 동대문 상인 등 소상공인들이 '지킬 수 없는 법'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고운 천을 골라 자르고 재단해 재봉틀을 돌려 박습니다.

    모든 작업을 직접 손으로 하기 때문에 옷 한 벌 만드는데 며칠씩 걸립니다.

    "디자인도 제 손을 다 거치고, 원단도 제가 다 사러 나가거든요."

    허사랑 씨는 이렇게 생활 한복을 만들어 2년째 인터넷 등을 통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안법이 시행되면서 사실상 일을 놓았습니다.

    만드는 한복마다, 쓰이는 옷감 하나하나에 대해 피부에 문제가 없다는 안전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 비용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허사랑]
    "원단이 16가지가 들어가는 경우는 인증받으려면 거의 160만 원이 들어가는 거에요. 그럼 그 소량씩 2,3장을 팔기 위해서 인증을 받아야 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인증을 받는 데 걸리는 기간도 문제입니다.

    "안 그래도 혼자 작업을 하니까 빨리 올리지 못하는 상황인데 이런 인증 때문에 더 오래 걸리는 거죠. 저 같은 경우 2,3주 제작이거든요. (인증을 받으면 손님이)한 달을 기다리게 되시거나 그 이상을 더 기다릴 수도 있어요."

    이러다 보니 새로운 디자인의 한복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허사랑]
    "제가 원단 화려하고 예쁜 치마를 구상을 해놨어요. 근데 원단 값이 너무 많이 들어요. 인증받는… 그럼 못 만드니까 원단을 하나씩 빼기 시작하는 거에요. 할 수 없어요."

    전안법이 규제하는 품목은 모두 257개, 위해 수준에 따라 모두 3단계로 구분해 관리하는데, 비교적 낮은 단계인 의류나 가죽 제품은 안전 기준에 맞는지 여부를 제조자가 확인하도록 돼 있습니다.

    확인 뒤 반드시 시험성적서를 보관하고, 인터넷 판매 시엔 이를 표시 해야 합니다.

    위반하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습니다.

    하지만, 자체 시험 설비가 갖춰진 대기업과 달리 외부 시험 기관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소상공인의 경우 안전 인증 자체가 큰 부담이라는 겁니다.

    다양한 원석을 활용해 액세서리를 만드는 방재현 씨, 주변의 요청으로 블로그와 벼룩시장 등을 통해 소량씩 판매해왔지만 최근 일을 중단했습니다.

    역시 전언법 때문입니다.

    [방재현]
    "(재료)종류도 이렇게 다양한데 저희가 그 인증비를 판매 가격에다 녹여낸다고 하면 너무 가격이 올라가서 소규모로 (재료를)구매하시는 분들한테는 굉장히 손해가 될 수밖에 없죠."

    이미 인증을 받은 재료를 사서 만들 생각도 했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재료상들이)인증을 위해서 뭘 해야 되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인증 관련으로 저희가 여쭤봐도 답변을 잘 못해 주세요. 그분들도 전해 받은 게 거의 없고."

    안전 인증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실제 얼마나 될지 알아봤습니다.

    80원짜리 금속 침 등 액세서리 부자재 두 개를 검사하는데 7만 400원이 들었고, 기간은 9일이나 걸렸습니다.

    [전희경(가명)/수제품 작가]
    "핸드메이드 액세서리는 하나에 만 원짜리도 아니고 5천 원, 몇천 원짜리인데 다 망하는 거죠. 이제 다 없어질 걸요."

    동대문에서 9년째 신발 도매업을 하고 있는 김태우 씨도 가벼운 마음으로 안전 인증을 맡겼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 8천 원 상당의 구두가 69만 2천 원, 만 5천 원짜리 단화는 59만 2천 원, 6천 원짜리 슬리퍼는 27만 8천 원이 검사비로 들었습니다.

    이마저도 색깔별로 인증을 다시 받아야 되고, 검사 기간도 2주나 걸렸습니다.

    [김태우]
    "저희가 500개 디자인 가까이 되고 컬러가 많잖아요. 그걸 다 돈으로 환산할 때 거의 억 단위가 넘어가는 검증 비용이 나오죠. 근데 그게 사실상 도매 입장에서는 감당이 안 되고."

    인증 기관도 모자랍니다.

    섬유 제품의 경우 사설 기관까지 합쳐도 스무 곳에 불과해 하루에도 수백 가지 디자인의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동대문 남대문 시장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싼값에 유행에 맞는 상품을 빠르게 만들어 파는 이곳 만의 유통 방식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한영순 회장/동대문 평화시장 상인회]
    "(옷을)오늘 주문 나가서 오늘 저녁에 팔면 되는데, KC 인증 마크를 받기 위해서 소모비용도 옷 한 장에 10만 원이 들지만 보름 이상 걸려야 되고. 그럼 바이어가 왔다가 이미 떠나버린 상황에서 누구한테 이 옷을 보여주고 대금을 받을 것이며…"

    몇천 원 차이에도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검사비까지 부담하게 되면 시장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원진/동대문 상인]
    "2만 원짜리가 예를 들어 검사해서 5만 원 정도가 되면 손님이 안 올뿐더러 (벌금)500만 원을 어떻게 내요. 장사하지 말라는 소리밖에 안 되는 거죠."

    색깔별, 디자인 별로 안전 확인을 받으려면 검사 품목만 1만여 가지가 넘는다는 원단 업체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박재준/원단 도매상]
    "저 재고 인증을 다 받아라. 그러면 저희 10년 매출 합쳐도 저 인증 비용 안 나옵니다. 막말로 저 하나 원단 스와치(원단 샘플) 받는데 몇천만 원씩 들어가는데 벌금 맞죠."

    청년 창업자들도 위기입니다.

    야구 모자에 3D프린트로 만든 LED 조명을 결합한 상품을 개발한 손규보 씨.

    전안법이 시행되자 상품 출시를 미뤘습니다.

    [손규보]
    "소비자가 원하는 컬러나 디자인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거에 맞춰서 여러 가지 샘플링을 해본 다음에 반응이 좋은 거에 대한 제품을 만들어야 되는데, 아무래도 인증 기간이 길거나 한다면 힘들어질 거 같습니다."

    그래픽 디자인 일을 하다 패션 쪽 창업을 준비 중인 김성남 씨도 앞길이 막막합니다.

    [김성남]
    "사실상 개인 창업자가 다품종 소량의 창업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지니까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돼버린…"

    소비자가 원하는 물품을 해외에서 온라인 등을 통해 구매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구매 대행업은 업종 자체가 사라질 처지입니다.

    물건이 해외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가기 때문에 안전 검사를 받으려 해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종혁 대표/구매대행업]
    "이거는 해외에서 고객님께 직접 가는 제품입니다. 이래서 배송이 7일에서 최대 2주까지 걸릴 수 있습니다. 이런 게 다 표시가 돼 있어요."

    구매대행 업계는 헌법 소원까지 불사한다는 각오입니다.

    [안영신/구매대행업]
    "특히 구매대행 사업자들은 아예 (사업을)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직업 선택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라는 법적인 법률 검토가 끝나서."

    정부는 이런 소상공인들의 반발에 전안법 일부 조항의 시행을 내년 1월 1일로 미뤘습니다.

    시행 한 달만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인데, 이 법이 통과된 과정을 되짚어 보면 이런 부작용은 이미 예견돼 있었습니다.

    정부 입법으로 전안법이 발의된 건 지난 2015년 8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태로 안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기존의 '전기용품 안전 관리법'과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 관리법' 이른바 '품공법'을 통합 개정해, 안전관리 제도를 통일하자는 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19대 국회는 정부 제안 3개월 뒤 법안 심사를 마쳤습니다.

    국회 공청회는 생략됐습니다.

    정부는 자체 공청회를 통해 업계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국회에 보고했고, 결국 전안법은 참석 의원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습니다.

    실제로 업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됐을까.

    막상 시행되고 나서 각종 문제들이 터지자 지난달 법안 개선을 위해 마련된 국회 공청회.

    국회의원들의 사과가 이어집니다.

    [홍익표 의원]
    "여러 가지 부작용, 또 예견되는 상황들에 대해서 저희가 미리 살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정부가 공청회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집니다.

    [송기헌/국회의원]
    "봤더니 공청회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 공청회도 하지 않았고, 전자공청회 한 것은 사실 공청회 아니라고 제가 확인을 받았습니다."

    [정만기/제1차관 산업통상자원부]
    "기대한 만큼 그 의견을 수렴하거나 그걸 진지하게 검토해 보거나 그러지 못했었던 것 같습니다."

    소상공인들은 분통을 터뜨립니다.

    [박중현 위원장/소상공인연합회 전안법 대책위원회]
    "우리 시장 말로 도매금으로 다 법안이 졸속 처리된 거잖아요. 심지어 거기에 찬성표를 던졌던 국회의원마저도 나도 몰랐다고 하는 상황이니까 그럼 이걸 누가 책임지냐는 거에요."

    정부는 기존의 품공법에도 안전 확인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전안법으로 업체들의 부담이 늘어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정민화 과장/국가기술표준원]
    "의류라든지 신발이라든지 이런 것들 다 안전 관리 품목으로 해서 다 관리가 됐던 부분이기 때문에 이 법이 되면서 새로 안전 관리 대상이 됨으로써 그 사업자들의 부담을 강화시켰다. 이런 부분들은 일부 오해가 있습니다."

    소상공인들은 기존 품공법 하에서도 비용과 기간의 문제로 대부분 안전인증을 받지 않아 사실상 유명무실한 법이었다고 말합니다.

    단속 권한이 있는 서울시조차 품공법에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관련 부처에 개정을 건의할 정도였습니다.

    [서울시 관계자]
    "대기업을 위한 규정이 맞거든요. 동대문은 망하라는 얘기에요. 저도 못 지켜요. 이거는 지킬 수가 없는 규정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전안법이 시행되면서 안전 인증 표시가 의무화되고 유통업계에서도 이를 요구하자 상공인들이 못 견디겠다며 항의에 나선 겁니다.

    전문가들은 좋은 취지에서 탄생한 법이라도 집행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혁우 교수/배재대학교 행정학과]
    "(인터넷에선)3천 원, 5천 원 사이에 구매 결정을 다르게 한단 말에요. 그럼 어떤 문제가 생기냐 인증을 받은, 가격이 올라간 물건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인증을 받지 않은 물건이 팔리는 사이트가 생기겠죠. 당연히 법망을 피해서 근데 소비자들이 거기 가서 사기 시작할 거에요. 역선택이 벌어지는 거죠."

    정부와 국회는 뒤늦게나마 업계와 소비자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해 전면적으로 전안법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윤한홍 의원/국회산업통상자원위원회]
    "현장에 있는 소상공인이나 구매대행업자라든지 이런 분들하고 진짜 소비자를 위하고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되느냐… 허심탄회하게 토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점에서 아마 모든 것이 재검토돼야 되지 않겠느냐."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이 안전해야 한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전제입니다.

    그러나 '지키면 망하는 법'이라는 소상공인들의 아우성이 단순한 불만으로만 들리지 않는 것도 현실입니다.

    전안법이 입법 취지는 살리지 못한 채 영세상인만 죽이는 '악법'이란 오명을 벗고 소비자와 업계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규제 품목부터 수준 등 원점에서부터 보다 현실적이고 세심한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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