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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박진주 기자

"낚시 채용에 웁니다"

"낚시 채용에 웁니다"
입력 2017-03-06 10:59 | 수정 2017-03-0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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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취업준비생인 A씨는 국내 굴지의 보험회사에서 금융전문가를 육성한다는 한 달 과정의 인턴 프로그램에 지원해 높은 경쟁을 뚫고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합격한 인턴들을 기다린 건 보험 영업.

    모두에게 지급한다던 교육비 100만 원도 보험영업 보험료 70만 원을 제외한 30만 원이었고 금융전문가 양성이라던 프로그램은 단 열흘 보험영업 교육이 전부였습니다.

    2. 역시 취업준비생인 B씨.

    지난해 국내 3대 소셜커머스 회사중 한 곳에서 100명 정규직 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입사해보니 100명중 40명은 단순 사무업무만 시키다 해고됐고, 남은 60명은 1년간 피말리는 실적 경쟁에 내몰렸습니다.

    결과는 정규직 100명은커녕 30명 채용으로 종지부를 찍었고, 나머지는 모두 1년간 희망고문만 당한 셈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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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OO]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쓸 수 있고 대기업에서 시행하는 거니까 메리트도 있고 경험 쌓을 수도 있고 교육비 100만 원 준다고 하니까 지원한 건데."

    [이 OO]
    "괘씸했죠, 속았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흔히 말하는 낚시 한다고 하죠 되게 절박하게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을 대상으로 이런 식으로 우롱하는 것이 아닌가."

    올해 1월 기준으로 취업준비생이 역대 최대인 70만 명에 달했습니다.

    취업의 문이 좁아져 이 숫자가 올라가는 만큼 취업준비생들의 절박함도 더해갑니다.

    그리고 이런 절박함을 이용한, 사실상 취업 사기나 다름없는 일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모 씨도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금융권 취업을 목표로 하던 이 씨는 작년 12월, 한 금융권 대기업의 인턴 채용 공고를 봤습니다.

    [이 OO]
    "페이스북에서 공고모집, 인턴을, 동계 인턴십이라는 명목으로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이 씨가 본 모집 공고입니다.

    '취준생 스펙업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제목.

    종합재무설계 전문가의 길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홍보합니다.

    한 달 인턴십 과정을 수료하면 수료증과 함께 교육비를 지급한다고 돼 있습니다.

    70번 넘게 금융권 취업에 실패했던 취준생 이 씨를 포함해, 모두 55명이 서류전형에 면접까지 거쳐 최종합격했습니다.

    하지만, 큰 기대를 갖고 참여한 프로그램은 설명회 때 들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강 OO]
    "실제로 가서 보니까. 인턴 과정은 7일밖에 안 되고 그 뒤에는 실제론 보험 설계사를 키우는 3주 과정이었던 거죠. 애들이 많이 사기당한 것 같다고. 왜 포스터대로 하지 않느냐고."

    인턴십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역할극의 일부.

    "보험회사에서 찾아뵙겠다고 했을 때 부담스럽지 않으셨어요? 재테크를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저희는 돈이 없는 분께는 돈을 모으는 방법을, 돈을 굴리는 방법을 조언해드리고 있습니다."

    금융전문가 양성 인턴사원으로 알고 지원한 건데 알고 보니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보험설계사'를 모집한 겁니다.

    [이 OO]
    "친구한테 전화해서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어떤 식으로 말을 건네는지부터 시작해요, 직장 상사한테 어떻게 전화하는지,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가는지, 전반적으로 암기를 시켰어요, 강제적으로."

    인턴 과정을 마치면 준다고 했던 수료증도, 교육비 백만 원도 말이 바뀌었습니다.

    보험설계사로 계약을 해야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KB 생명보험 인턴 프로그램 강사]
    "여러분들, 교육만 받았다고 해서 교육 훈련 수수료가 나가느냐, 절대 아닙니다. 반드시 위촉을 하셔야 합니다."

    [강 OO]
    "동기들하고 얘기했던 게 뭐 배운 것도 없는데 어떻게 나가서 보험을 팔아오라고 하는 거지?"

    결국, 합격자 중 40여 명은 일주일 만에 그만뒀고, 이 씨를 포함해 10여 명은 서류전형에 면접까지 준비한 시간이 아까워 인턴십 수료증이라도 받으려고 밖에 나가 보험 영업을 뛰며 한 달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회사 측은 보험설계사로 일하려면 보증보험을 들어야 한다며 보험료 70만 원을 약속했던 교육비 100만 원에서 떼갔고, 결국 이들에겐 30만 원만 지급됐습니다.

    결국, 한 달에 30만 원 받고 보험 영업만 뛰다 끝난 인턴 생활.

    한 달 동안 다른 일도 못하는 바람에 월세까지 밀려 일용직 노동으로 내몰린 사람도 있습니다.

    [강 OO]
    "새벽에 일어나서 일용직 노가다를 가서 오후 네 다섯 시에 마치고 와서는 자기 소개서를 쓰고 밥 먹고, 자격증 공부하는데 차라리 그 시간에 돈 벌고 공부를 하고 자격증 공부하거나 그 시간에 구직활동을 했더라면 다른 데에 취직했을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KB 생명보험의 해명을 들어봤습니다.

    정규 채용이 아닌 계약으로 뽑는 보험설계사 모집에 인턴이라는 형식을 쓴 건 잘못된 거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채용 공고를 구직 사이트에 올린 건 본사가 아니라 한 지점의 보험설계사이며, 이미 해촉했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 될 건 없다는 반응입니다.

    [KB 생명보험 관계자]
    "(보험설계사는) 자영업자 신분인데 본인의 어떤 영업력을 어떻게 해보려고 오버 하신거죠. 설계사 분들이 그렇게 일탈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계속 예의주시하고 교육 강화하고. 그렇다고 해서 설계사 모집을 안 할 수도 없잖아요?"

    2580은 해촉됐다는 보험설계사를 수소문해 사실을 확인해봤습니다.

    이런 식으로 설계사를 모집한다는 건 회사도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털어놨습니다.

    [OOO 전 KB 생명보험 보험설계사]
    "(본사 차원에서 특별히 문제 제기를 안 했나요?) 쉬쉬하는 분위기였죠, 다들 모집만 잘 되면 그만이니까 보험설계사가 취준생 차원에선 하기 싫은 일 중의 하나니까. "(그럼 다른 지점에서도 인턴십이란 명칭을 쓰고 있나요?) 당연히 쓰죠, 당연히 쓰는데 제가 걸렸을 뿐이고 다들 쓰는 단어입니다. KB 생명만 쓰는 것도 아니고. 타 보험 회사들도 다 쓰고 있고."

    심지어 인턴 프로그램 설명회도 본사 강당에서 이뤄졌다며, 자신도 피해자라고 했습니다.

    "방관했던 사람들도 책임져야 하는 데이건 그냥 꼬리 자르기 식으로 저만 떨어져 나갔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또 그런 식으로 모집을 할 거에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각종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문건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실제로 각종 취업사이트에는 계약직 보험설계사를 모집하면서 인턴사원 공채로 오인할 소지가 많은 채용 공고가 다수 올라있습니다.

    [이 OO]
    "(애초에)보험설계사로 이런 모집을 했다면 또 다른 시각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 인턴십 프로그램에 임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보험설계사라는 걸 공지하지 않고 또 투명하게 운영하지 않은 점에 대해 굉장히 의문이 들었고."

    하지만, 금감원에 조사 감독 권한이 없어 피해를 예방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
    "제재가 아니고 지도는 할 수 있죠, 지도. 유의사항이죠, 설계사를 뽑을 때는 인턴이라든지 이런 표현을 써가지고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표현을 쓰지 마라. 유의사항 통보인 거고. 보험업법에도 그런 건 없습니다. 채용의 문제는 회사가 하는 경영이니까."

    [김성희 교수/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애매모호하게 표현해서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다는 희망하에 기업의 홍보나 마케팅에 활용되는 경우는 구직자들을 두 번 울리는 사태고, 엄밀하게 따지면 다단계 영업과 가까운 취업 사기에 해당하는 값질 횡포다."

    허위 공고로 피해를 본 취준생들은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제기했고, KB 생명보험은 결국 사장 명의로 된 사과문을 피해자들에게 보냈습니다.

    처음에 공지된 내용과 실제 업무가 다른 채용을 취준생들은 흔히 '낚시 채용'이라고 합니다.

    이런 낚시 채용은 구직자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문구를 앞세우되 최대한 모호하게 표현해 빠져나갈 여지를 두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를 100% 믿고 입사하면 그때부터 이른바 '희망 고문'이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한 모 씨는 작년 1월, 국내 3대 소셜커머스 회사 중 하나인 티몬에 입사했습니다.

    직접 상품을 기획, 개발하는 MD 신입사원 공채, 가장 핵심직종입니다.

    [한 OO]
    "합격했을 때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죠. 이 시간만 견뎌내면 MD가 되고 정규직 사원이 돼서 나도 직장과 직업을 가질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100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을 채용하는 건 소설 커머스 업체 가운데 첫 시도였던 만큼 당시 주요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3천 명 가까운 대졸자들이 몰렸습니다."

    [티몬 인사팀 관계자/2015년 언론사 인터뷰]
    "MD라는 직업에 열정이 있으셨으면 좋겠고요. 70명에서 100명 정도의 공채로 채용을 진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종합격자 100명 안에 들었던 한 모 씨, 그런데 입사하자마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최종 합격한 100명 중 절반은 MD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티몬 신입 MD 교육 담당자]
    "4개월 후 어떻게 평가하느냐 궁금할 텐데 상대 평가에요. 저희가 예상하기로는 약 70~80퍼센트 계획하고 있습니다. (4개월 후) 합격하신 분들 중 70~80퍼센트도, 12월까지 MD 트레이닝을 받고 진짜 MD가 될 수 있는지 판단을 받으시게 돼요."

    살아남는 기준은 매출 실적.

    합격생들은 서류전형과 두 번의 면접을 거칠 때까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했습니다.

    회사 측은 오히려 기회를 준 거라고 했습니다.

    [OOO 티몬 직원]
    "사실 여러분들한테 저희가 투자를 하고 있는 거에요. 어느 회사가 1년 동안, 지금 연봉을 주워가면서 가르쳐주고."

    정규직 전환을 위한 피 말리는 경쟁, 결국 입사한 지 4개월 만에 절반 가까운 40명이 실적이 저조하다며 회사를 떠나야 했고, 1년이 지난 지금 38명만이 MD로 정식 채용됐습니다.

    나머지 수십 명은 불안정한 고용 속에 1년 동안 속칭 희망 고문을 당한 셈입니다.

    [한 OO]
    "계속 희망고문을 하시니까. 떨어질 거 알았으면 다른 데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기회 있는 데 그런 기회 없이 일정 부분 합격할 수 있으니까 계속 열심히 하란 식으로만 다독이고, 많이 뽑지 않으니까 다른 데를 지원하라고 이야기를 하신 적도 없어서..."

    회사 측은 애초 채용 공고에 정규직 전환율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 될 게 없다는 반응입니다.

    [티켓몬스터 홍보팀 관계자]
    "몇 명을 몇 퍼센트의 비중으로 뽑겠다고 공시를 한다거나 교육 중에 저희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했기 때문에 언급한 적 없다고. 100% 다 되면야 좋겠지만 신입사원이다 보니까 평가를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러나 전문가들은 구직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1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응시자의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평가방식을 수시로 변경한다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일종의 '횡포'라고 지적합니다.

    [김종진 연구원/한국 노동사회연구소]
    "기업들이 지금 인사관리 정책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그래서 부동산 매매, 자동차 매매 이때는 명확하게 공시가격을 밝히고 제품에 대한 사용 설명을 하잖아요. 그래서 회사가 취업 공고를 할 때는 명시적으로 근로기준법에 준하는 내용을 같이 공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구직자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한 취업 포털업체의 조사결과, 취업준비생 26%, 4분의 1 이상이 취업 사기를 경험했다고 응답했지만 항의하거나 신고하는 등 피해에 대처했다는 비율은 32%에 그쳤습니다.

    향후 또 다른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한 OO]
    "계속 얘기하지 마라. 아니면 이런 것들 얘기하는 것이 너한테 불리하다고 자꾸 말씀을 하시니까 계속 얘기하기도 굉장히 어려웠죠."

    전문가들은 투명하지 않은 채용은 결국 그동안 쌓아온 기업의 이미지까지 훼손하는 부메랑이 될 거라고 경고합니다.

    [김성희 교수/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당장에 작은 이익을 기업이 얻을지 몰라도 더 큰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죠. 기업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향후의 (미래의) 소비자이자 재직자의 헌신을 받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이 횡포를 하는 것은 소탐대실하는 행위인 거죠."

    채용은, 개인이 평생의 직업을 얻는 일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기업의 입장에서도 소중한 자산을 얻는 일입니다.

    채용이 구직자의 절박함을 이용한 일방통행이 아닌, 양쪽 모두에게 신뢰와 투명한 절차를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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